제61화
시후는 당소영이 당가의 사람이라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음악 교생 선생님으로 소개받을 때만 해도 그 사실을 알지는 못했었다.
하지만 왕십리역에서 만났을 때 알게 되었다.
두 손에 감겨 있던 붕대에서 스며 나온 독특한 피 냄새 때문이었다.
당가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독에 노출이 되어 있는 삶을 살았다.
태어날 때부터 독물로 몸을 씻기기도 하고 밥을 먹을 때 독충을 반찬으로 먹기도 했다.
그러면서 독에 대한 내성을 기르고 나아가 독에 대해 달인이 되는 거였다.
그랬기에 그들의 핏속에는 미약하게나마 독향(毒香)이 남게 되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알 수 없는 그런 정도의 향이었다.
‘천마 시절 당가 사람들의 피를 직접 손에 묻히지 않았다면 나도 몰랐을 테지.’
당가 사람들의 독특한 혈향(血香)을 기억하고 있었기에 당소영의 정체를 눈치챌 수 있었다.
꿈에서조차 잊지 못했던 여인의 얼굴을 한 당소영을 보며 시후는 여러 가지 생각을 했다.
태산과 인호가 당소영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헛소리할 때도 어찌해야 할까 고민이었다.
평소라면 혈을 집어 내막을 캐내었겠지만, 얼굴이 문제였다.
당소영의 얼굴이 고통에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피스텔에 데려다줄 때까지 그저 모른 척을 했었다.
그런데 비틀대며 품속에 들어온 순간 당소영은 시후를 향해 산공독을 뿜어내었다.
그것도 미리 입에 물고 있다가 말하면서 은연중에 내뿜을 정도로 치밀한 준비를 해서 말이다.
‘앙큼한 것.’
다른 이가 그랬다면 그 입을 찢어버렸을 거였다.
하지만, 그 대상이 당소영이었기에 시후는 기다리라고 했다.
전후 사정을 모르는 상태에서 당소영을 나무랄 수는 없었기에 일단은 물린 거였다.
다만, 당소영을 놓아주며 몸에 내공을 흘려 넣었다.
흘려 넣은 내공으로는 당소영의 단전에 막을 쳤다.
아마 앞으로 몇 시진은 내공을 일으킬 수 없을 거였다.
그것만으로도 당소영은 자신들을 따라올 수 없을 거였다.
시후는 당소영을 밀다시피 해 오피스텔로 들여보내 놓고는 태산과 인호와 함께 골목으로 들어갔다.
“가자. 지금부터 너희 둘은 비천잠행술로 은신하고 따라와. 그리고 내가 신호하면 절대로 움직이지 말고.”
“왜?”
이유를 물어 오는 태산의 말에 시후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가에 들어갈 거야.”
“당가?!”
태산과 인호도 많은 무협 소설을 읽어 보았었기에 당가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었다.
독과 암기로 유명한 당가.
단번에 시후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챘다.
둘은 독(毒)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둘의 눈빛이 변한 것을 본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그림자 속으로 몸을 스며들어갔다.
이후 태산과 인호 또한 시후를 따라오자 셋은 빠르게 한국대로 향했다.
건물과 건물 사이, 나무와 나무 사이, 때로는 사람의 그림자 사이를 오가며 셋은 빠르게 한국대 캠퍼스에 도달했다.
일전에 호접무의 족적을 남겨두었던 곳에 다다른 시후는 잠시 멈추었다.
족적이 남겨져 있던 곳은 이미 말끔하게 복구된 상태였다.
그런데 마치 발자국이 찍혀 있기라도 한 듯 그 앞을 서성이는 3인이 눈에 들어왔다.
덕칠과 만수와 만기였다.
그중 덕칠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던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걸음걸이는 떼었군.’
덕칠의 걸음걸이를 보니 노력을 게을리하진 않은 것 같았다.
천천히 걷고는 있지만 확실히 호접무의 보법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덕칠이 녀석이 무공에 소질이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기에 호접을 들고 움직이는 동작이 추가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지금은 저들을 봐줄 시간이 없었다.
시후는 태산과 인호에게 다시 전음을 보내 이동했다.
이동하는 내내 시후는 기감을 펼쳤다.
한국대 총장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가면서 그곳에 당가 가주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시후가 급히 움직임을 멈췄다.
- 멈춰! 호흡도 멈춰!
태산과 인호에게 전음으로 멈추고 숨도 쉬지 말라고 말한 시후는 그림자에서 쑥 하고 솟아올랐다.
“이것 봐라? 환영 인사가 거한데?!”
만독불사지체가 된 시후 눈에는 남들과는 다른 것이 보이게 되었다.
독을 색으로 볼 수 있는 거였다.
갈색 피부를 가진 살모사가 시후의 눈에 들어온다면 반짝반짝 빛이 나며 은은한 갈색을 띨 거였다.
조금 전에 당소영이 뿜어내었던 산공독은 옅은 분홍색이었다.
이처럼 시후의 눈을 피할 수 있는 독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건물 바닥에 반짝반짝 빛을 내며 은은한 녹색을 띠는 것들이 넓게 퍼져 있었다.
무슨 독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당가가 자신이 온 것을 알고 깔아둔 것이 분명했다.
“환영해 준다면 그에 대해 보답을 해야겠지?”
후아악-
시후는 괘씸하다는 생각에 내공을 끌어 올렸다.
그러자 양손에 푸른색 불꽃이 일렁이더니 확 하고 피어올랐다.
손에서 시작된 푸른 불꽃은 곧 시후의 팔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모르는 이가 보았다면 분신자살이라도 하는 줄 알고 놀랐을 광경이었다.
시후는 천마열화장(天魔熱火掌)에 이은 초극화신(超克化神)을 펼친 거였다.
그렇게 온몸에 푸른 불꽃이 둘린 시후는 태연하게 앞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치익-치익-
시후의 걸음걸이에 바닥에서부터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를 맡은 시후는 피식 웃으며 태산과 인호에게 전음을 흘렸다.
- 너희는 밖에서 기다려. 아무래도 나만 초대하는 것 같다.
태산과 인호 또한 시후가 초극화신이 되는 것을 보고는 이미 예상했었다.
독을 사용하는 당가이니 어쩔 수 없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중요한 일에는 빠지게 되는 자신들의 실력을 아쉬워했다.
태산과 인호는 한숨을 내쉬며 건물 밖으로 나갔다.
비천잠행술로 은신해 있던 터라 둘의 한숨 소리가 들릴 리 없었지만 시후는 어째서인지 뒤를 돌아봤다.
“걱정 마라. 너희가 물러나는 것은 오늘로써 마지막이 될 테니까.”
태산과 인호를 위해 그동안 꾸준히 준비한 일에 드디어 열매를 맺을 날이 다가왔음을 예고하는 시후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해야 했기에 다시 몸을 돌려 미끄러지듯이 나아갔다.
초극화신에 의해 독이 타들어 가자 끊임없이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치 화재라도 난 것처럼 연기가 자욱했다.
복도 끝에 다다르자 회의장이라고 쓰여 있는 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서 당가 가주의 기운이 느껴지기에 시후는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었다.
치이익-
철로 된 문이었지만 시후의 손이 닿자 흐물거리며 녹아내렸다.
시후는 자신이 들어갈 정도로 문이 녹아내리자 초극화신을 거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셨습니까? 기다렸습니다.”
회의장에 안에는 당가 가주인 당성치가 시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는데 생긴 면모로는 딱 교수 같은 외모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백회혈이 볼록 솟아올라 있는 것을 보았다.
당가의 주요 인사라는 뜻이었다.
시후는 자신의 등장에도 당황하는 기색이 없는 것을 보고는 역시나 싶었다.
‘덕칠이 녀석들이 일렀겠지.’
당가를 위한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녀석들이었기에 자신의 말보다는 가주의 명이 우선이었을 거였다.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기에 차라리 잘 되었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환영식이 조촐해서 놀랐다만?”
복도에 있던 독을 비아냥거리는 시후의 말에 당성치는 눈썹을 꿈틀대었다.
하지만 이내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허, 허허, 그랬습니까? 저희가 귀인의 실력을 좀 본다는 게 그만.”
“실력을 본다?”
“그렇잖습니까? 그대가 은인이라 자처하지만, 우리를 도와줄 실력이 있는지는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음….”
시후가 고민에 빠지는 것을 보자 당성치는 옳다구나 하고 말을 이었다.
“그래도 인면지주(人面蜘蛛)의 독을 그리 깔아 놓았는데 그리 멀쩡히 들어오신 것을 보면 실력은 있어 보이십니다? 허, 허허”
“그래서?”
“실력은 입증되었으니 이제 그대의 의중을 듣고 싶습니다만?”
“그러니까 네 말은 왜 당가를 찾아왔는지 나에 대해서 까발리라 이거잖아?”
“허, 허허, 그렇게 들렸습니까?”
너스레를 떨며 웃어가는 당성치를 보며 시후는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당가에 대해서는 제갈세가와는 다르게 접근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도 천마 시절 당가 늙은이와의 정을 생각해 곱게 상대해주려 했는데, 아무래도 이 녀석들은 그럴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어 보였다.
하나같이 자만심에 똘똘 뭉쳐 있는 녀석들이었다.
이런 녀석들에게는 그저 매가 약이라는 생각에 시후는 천천히 내공을 일으켰다.
“무, 무슨?”
시후가 내공을 일으키자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기가 뿜어져 나왔다.
당성치를 비롯해 이곳에 있는 모두가 그 현상에 깜짝 놀랐다.
기가 몸 밖으로 표출이 될 정도라면 족히 삼 갑자 이상의 내공이 있어야 했다.
그렇다는 것은 저 곱상하게 생긴 청년이 삼 갑자에 달하는 내공을 소유하고 있다는 말인데.
자신들의 상식으로는 믿기 힘든 일이었다.
“가, 가주!”
당성치를 불러 보았지만, 그 또한 이들과 같은 반응이었다.
슬슬 시후에 대해 잘못 생각한 것은 아닌가 하던 그때 돌연 시후가 훅하고 사라졌다.
“어, 어디에?”
털썩- 털썩-
당성치가 사라진 시후를 찾아 고개를 돌리던 그때 옆에 있던 인사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마치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픽픽 쓰러져 가는 모습에 당성치는 기운을 확 일으키며 몸을 날렸다.
일전에 경험해 보았듯이 시후는 신출귀몰한 능력이 있었다.
그 능력으로 동료들을 쓰러트린 것이라는 생각에 몸을 날리며 품속에 손을 넣어 환을 꺼냈다.
그러고는 시후가 뚫어 놓은 입구로 몸을 날리며 회의장 안으로 던졌다.
펑- 펑-
당성치가 던진 환이 터지자 회의장은 순식간에 검은색 연기로 뒤덮였다.
“흥, 어디 학정홍(鶴頂紅)도 버틸 수 있나 보자!”
당성치가 던진 환에는 학의 벼슬에서 추출한 극독이 들어 있었다.
쓰러져 있는 이들에게는 사전에 이야기해 놓았기에 해독약을 먹었을 거였다.
그래서 서슴없이 극독을 사용했다.
한 호흡만 들이마셔도 몸이 굳으며 쓰러질 극독을.
당성치는 곧 시후가 쓰러질 거라 생각하며 다른 이들을 데리고 올 생각에 복도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그곳에는 독무가 가득했다.
“이, 무슨?”
당성치는 시후가 어떻게 인면지주 독을 피해 들어온 건지 모르는 거였다.
초극화신으로 독을 태우며 지나왔기에 인면지주 독이 독무로 남아 있는 거였다.
인면지주 독은 피부를 자극하는 독이었기에 당성치조차 아무 대비 없이 저 독무를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잠시 망설이는 사이 회의장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님을 두고 주인이 뛰쳐나가다니 대접이 형편없는데?”
학정홍의 독무가 가득한 회의장에서 멀쩡히 걸어 나오는 시후를 보며 당성치는 기겁했다.
시후의 콧속으로 학정홍의 독무가 숨을 쉴 때마다 빨려 들어가는 것을 본 거였다.
한 호흡만 삼켜도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극독을 저리 들이마셔도 멀쩡하다는 것은.
“만독불침지체(萬毒不侵之體)?!”
당성치가 놀라 내뱉는 말에 시후는 피식 웃어갔다.
“오호~ 그런 것도 알아?”
만독불침지체보다는 몇 단계 위인 만독불사지체를 이룬 시후였지만 당성치가 알기에는 거기서 거기일 거라는 생각에 호응을 해주었다.
그보다 이제는 진짜 대화를 갖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시후가 대화를 편하게 하기 위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했다.
언제나 자신이 위에서 이야기를 진행해야 원하는 것을 쉽게 얻을 수 있기에 말이다.
훅-
“커억!”
시후는 사전 동작도 없이 사라지듯 움직여 당성치의 목을 움켜쥐었다.
순간 숨이 턱 막히며 말소리조차 내뱉지 못한 당성치는 떨리는 눈으로 시후의 눈을 바라봤다.
“이제 대화의 시간을 가져볼까?”
당성치는 가주가 되면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포에 몸을 떨었다.
그렇게 당성치의 눈에 공포가 내보이자 시후는 당성치의 목을 쥔 상태 그대로 천잠음영술을 펼쳐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천잠음영술은 비천잠행술과는 다른 특징이 있었다.
비천잠행술은 본인만 은신할 수 있지만, 천잠음영술은 시전자가 손을 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함께 은신할 수 있었다.
물론, 그게 당성치처럼 목을 조르는 경우라도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