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9화
울다가 웃기를 반복하는 진지춘의 모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시후는 캡슐을 열고 나오자 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하는 진지춘을 봤다.
‘내가 로그아웃하는 것보다 델루에게 죽은 게 먼저였나? 그런데….’
로그아웃했으면 한 거지 왜 저러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청승맞게 울고 있는 진지춘에게 이유를 물으려다가 괜히 귀찮아질 것 같아 슬쩍 내버려 두고 거실로 나왔다.
그렇게 조민과 함께 거실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진지춘이 실성한 듯 웃으면서 뛰쳐나왔다.
“으헤헤헤! 도련님! 이것 좀 보세요, 으헤헤헤!”
진지춘은 자신의 스마트폰을 시후에게 들이밀었다.
거기에는 오크 부족장의 오두막에서 벌어진 일들이 재생되고 있었다.
딱, 오크 부족장에게 은신술을 들켜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시후가 진지춘을 버리고 갈 때까지만 말이다.
영상을 보던 시후는 델루의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발견했다.
‘이 자식, 뭐가 더 남아 있었네?’
자신의 본실력을 보이지 않은 것은 시후만이 아니었다.
오크 장로들의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 델루의 표정에 자신감이 넘쳐흘러 보였다.
덕분에 델루와의 다음 만남이 살짝 기대됐다.
그때 옆에 있던 진지춘의 모습에 인상을 구겼다.
진지춘은 헤헤 웃다가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다.
“웃든지 울든지 하나만 하지?”
“이게 말입니다? 와!! 정말 장난이 아닌데요. 그런데! 와!! 너무 속상하단 말입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시후는 고개를 돌려 조민을 봤다.
조민은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와 입을 열었다.
“아마도 진지춘 님께서 캡슐에서 나오며 녹화하신 영상을 그대로 올리신 것 같습니다.”
“그러게. 그래 보이네, 그런데 왜 저러는 건데?”
“영상 조회 수를 보니 벌써 1만을 넘기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대박인 게 확실합니다. 다만….”
“다만?”
“오크 부족장에게 죽으면서 입고 있던 투명 망토가 손실되시고 경험치가 하락하신 것 같습니다.”
“고작 그거 때문에 저리 미친놈처럼 군다고?”
시후는 아이템 하나랑 경험치 좀 날렸다고 저러는 진지춘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고작! 고작이라니요! 도련님!! 제 레벨에서 경험치 하락이 얼마나 큰 치명타인데요! 지금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시후의 말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하소연하는 진지춘이었다.
시후는 진지춘이 이렇게까지 Safety World에 빠져 있는지 몰랐다.
술과 여자, 돈을 좋아하는 것은 알았지만 거기에 게임까지 좋아하니 새삼 방탕한 생활의 표본을 보는 것 같았다.
‘하긴, 나도 천마 시절에는 그랬었으니까.’
천마 시절 본인 또한 술과 도박과 여자를 항상 가까이했었으니 진지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이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했던가.
시후는 진지춘의 행동에 손을 휘휘 저으며 입을 열었다.
“너 그렇게 살다가는 언젠가 큰일 치른다. 이번에 액땜했다 생각해라.”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제 나이가 몇인데 그런 거로 액땜합니까?”
“아! 몰라! 너희 둘 다 집에 가. 나 이제 잘 거니까.”
느닷없는 축객령의 진지춘과 조민은 상반된 표정을 지었다.
진지춘은 무언가 보상을 갈구하는 표정이었고 조민은 무언가 야속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애써 그런 둘의 표정을 무시하며 집 밖으로 밀어내고는 현관문을 닫아버렸다.
“아! 급격히 피로해지네.”
이미 환골탈태에 만독불사지체를 이루었기에 삼 일 밤낮을 자지 않아도 피로하지 않을 시후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저 둘을 상대하고 있자니 적잖이 피로감이 몰려왔다.
특히, 진지춘이 투정을 부릴 때면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한대 걷어차 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앞으로 요긴하게 부려먹을 생각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내쳤을 거였다.
그 뒤로 시후는 오랜만에 피로를 달래기 위해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는 깊은 잠에 빠졌다.
* * *
시후는 자신이 지금 꿈속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면서도 천마분심공을 통해 운기조식을 하던 시후였기에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꾸는 꿈이니 즐기기로 했다.
꿈의 배경은 자신의 과거였다.
정확히는 시후가 되기 전, 천마가 살던 곳의 풍경이었다.
그렇다고 천마의 모습은 아니었다.
마치 자신은 제삼자의 시선이 된 듯 천마였던 자신을 근처 누군가가 되어 지켜보고 있었다.
“큭, 저렇게 보니 정말 망나니가 따로 없었네.”
천마가 저잣거리를 거닐다 자신의 앞을 지나는 똥개를 보고는 미친 듯이 쫓아가는 것을 보았다.
똥개는 살겠다고 침까지 질질 흘리며 어느 기와집 개구멍으로 숨어들었다.
천마는 그 똥개와 마찬가지로 개구멍으로 몸을 날려 들어갔다.
그러자 그 집의 주인들인지 뭐라 뭐라 소리를 지르고는 검까지 빼 들고 덤벼들자 천마는 미친 듯이 웃으며 손발을 뻗어갔다.
손짓 한 번에 집의 반이 날아가고 발길질 한 번으로 나머지 반도 부서져 버렸다.
그리고 잔재에 깔려 신음을 흘리는 이들을 천마등천공을 이용해 하늘 높이 들어 올렸다.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삼매진화의 불길을 쏘아 올리자 건물 잔재와 함께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이 전부 타버렸다.
다행이라면 팔이나 다리가 부러지거나 이마에서 피를 흘리기는 했지만 죽은 이들은 없다는 거였다.
그렇게 이름 모를 가문 하나를 가볍게 날려버린 천마는 자신이 쫓던 똥개의 목덜미를 잡고는 근처 다리 밑으로 향했다.
그곳은 개방 거지들이 있는 곳으로 그들과 함께 똥개를 일용할 양식으로 삼아버렸다.
그런 천마의 행동을 지켜보던 시후는 허허거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금의 자신이라면 저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다리 몇 개만 부러트려 주고 나왔을 거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천마를 보며 웃고 있던 시후의 눈을 번쩍 뜨게 하는 이가 보였다.
원한이다 복수다 무공을 회복한다고 하며 잠시 잊고 있던 그 얼굴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꿈이라 그런지 기억하고 있던 모습보다 더욱 고왔다.
똥개 뒷다리를 게걸스럽게 뜯고 있는 천마의 옆에 다가와 고급 비단으로 지어진 옷소매로 천마의 입가를 쓱쓱 닦아주는 여인.
천마의 인생에 오직 단 한 번 ‘사랑한다’라고 말했던 여인.
웃을 때는 한 송이 장미보다 아름다웠고 슬픈 표정을 지을 때면 비 내린 날에 수국처럼 아름다웠다.
특히 코에 찍혀 있는 작은 점은 그녀의 아름다움을 더욱 두각시켜 주는 화룡점정의 매력이었다.
시후는 저도 모르게 그 여인에게 다가갔다.
천마의 모습이 아닌 누구의 모습인지는 모르지만 다가갔고 당연하게 천마가 가로막았다.
그리고 자신이 익히 아는 천마멸겁장이 덮쳐오는 것을 물끄러미 보며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난 시후는 눈을 살며시 뜨며 자신의 방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 천장이었는데 꿈속에 그 여인이 스윽 하고 떠올랐다.
“하, 내가 그대를 잊고 있었다니…. 내 삶이 꽤 지쳤나 보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던 시후의 눈에 벽에 걸려 있는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등교를 위해 슬슬 일어나야 할 때였다.
잠시 후 언제나처럼 어머니 윤여정의 학교에 가라는 말이 들려왔고 평소와 다름없이 씻고 밥 먹고 등교를 했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이 태산과 인호에게 인사를 하고는 창밖을 바라보며 조회를 들었다.
언제나 다름없는 모습의 시후였기에 그 누구도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렇게 조회가 끝나갈 때 교실 앞문이 열리며 담임이 들어왔다.
“자, 조용! 오늘은 너희들에게 소개해줄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오오, 오오!!!”
담임의 말과 함께 누군가가 들어오자 반 아이들의 감탄사와 환호성이 들려왔다.
시후는 창밖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교탁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두 눈을 부릅뜨며 놀랐다.
오늘 꿈속에서 보았던 그 여인이 눈앞에 나타난 거였다.
“오늘부터 음악 과목을 보조해주실 교생 선생님이시다. 인사해.”
담임의 말에 여자가 교탁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당소영이에요. 앞으로 잘 부탁해요.”
콰당-
시후는 당소영의 소개에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덕분에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쓰러지는 소리에 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다들 시후의 멍한 표정을 보고는 키득키득 웃었다.
그중 누군가가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쌤~ 시후가 교생 쌤한테 한눈에 반했나 봐요~!”
그 말에 여기저기서 책상을 두들기며 환호성이 들려왔다.
“자자, 조용! 조용! 시후는 할 말이라도 있냐?”
담임의 장난에 시후는 진지하게 당소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 할 말이요? 아, 저도 앞으로 잘 부탁해요.”
“호, 호호, 저도 잘 부탁해요.”
웃을 때 눈이 초승달처럼 감기는 저 웃음을 다시 보다니 시후는 믿을 수 없었다.
* * *
한국대학교 총장실에는 깔끔한 정장을 입은 중년 신사인 총장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리는 것이 무언가 고민에 빠져있는 모습이었다.
“이 보법이 어찌 거기에 찍혀 있었단 말인가?”
한국대 총장이자 당가의 가주인 당성치. 그의 스마트폰 화면에는 발자국들이 찍혀 있었다.
그 발자국은 시멘트가 굳기 전에 누군가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장난스럽게 찍어 놓은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사진을 보며 당성치는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한국대 캠퍼스 바닥이 파손되었다며 결재가 올라왔었다.
보수 공사를 허가하는 결재 서류였는데 거기에 찍혀 있던 사진이 지금 당성치가 보는 사진이었다.
당성치는 한눈에 그 사진에 찍혀 있는 발자국이 자신이 잘 아는 보법임을 알아보았다.
당가의 춤.
당가에 입문하는 이는 누구든 배우는 춤이 있었다.
처음 배우는 이들은 상체의 움직임에 집중하여 배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기초일 뿐.
사실은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걸이가 제일 중요했다.
당주들은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알려 주지 않았다.
어차피 어린 나이에 입문하는 아이들에게 설명해봐야 알아듣는 아이는 없었다.
거기에 내공이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는 동작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후에 무공실력이 좋아진 몇몇 후기지수들에만 따로 전했다.
호접무(蝴蝶舞)를 말이다.
그런데 그 호접무가 떡하니 한국대 캠퍼스에 찍혀 있으니 당황스럽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것도 저렇게 뚜렷한 발자국을 남겼으니 그 대상이 누구인지 너무나도 궁금한 거였다.
“의심이 가는 놈이 하나 있기는 한데….”
당성치는 새벽녘에 총장실로 찾아왔던 낯선 중년인을 떠올렸다.
만독수를 한눈에 알아본 중년인.
자신을 당가의 은인이라 칭하며 무언가 알려줄 듯이 하더니 홀연히 사라진 중년인.
결코, 무공 수위가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던 그 중년인을 떠올리자 사진의 족적 또한 그의 짓일 거라고 추측했다.
“하아…. 이렇게 한숨만 내쉬며 기다려야 한다니.”
그때 첫째 딸이 총장실에 난입만 하지 않았다면 어떠했을까를 상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그날 그가 구해온 자신의 셋째 딸이 떠올랐다.
혹시나 그가 셋째 딸에게 연락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전화를 걸어보았다.
- 전화기가 꺼져 있어….
“이 녀석은 어디서 뭘 하고 있길래 전화를 꺼 놓은 거야?”
꺼져 있는 셋째 딸의 전화에 화풀이하듯 내뱉고는 의자에 몸을 깊숙이 눕혀다.
그날 중년인을 그렇게 보내고 난 후로 스트레스가 극도로 심해지는 당성치였다.
요즘같이 이렇게 힘들 때 자신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후….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볼까?”
스트레스가 심해져 두통이 밀려오는 것 같아지자 가볍게 몸을 푸는 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총장실을 빠져나와 당성치가 향한 곳은 한국대 뒷산인 관악산이었다.
아직 해가 떨어지기 전이었지만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은 거의 없었다.
덕분에 한적한 산길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산을 오를수록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한 당성치는 경공을 펼쳐 나무 위를 날았다.
당가 가주답게 나뭇잎을 밟고 날아오름에도 큰 소리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게 빠르게 날아간 당성치가 도착한 곳은 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 앞이었다.
머리가 혼란스럽거나 무언가 생각할 때면 당성치가 자주 찾는 곳이었다.
바위에 새겨져 있는 미륵불좌상을 볼 때면 마음이 차분해지며 저도 모르게 명경지수의 경지에 빠져들곤 했다.
오늘도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어도 총장실에서 받던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후! 역시 좋구나, 응?”
한껏 차분해진 마음을 만끽하던 당성치의 귀에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혹여나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싶어 귀를 기울이자 좀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퍽-퍽-
“아~! 잘 안 되는데?”
“마지막 2보부터 틀렸던 거 같은데?”
“잘 봐라. 이 형님이 하는 거!”
무언가 나무에 박히는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들리는 목소리들은 상당히 귀에 익었다.
당성치는 내공을 일으켜 발걸음에 소리를 지웠다.
그러고는 미끄러지듯이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갔다.
마애미륵불좌상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수풀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모여 있는 성인 남성 세 명이 눈에 들어왔다.
‘녀석들은…. 덕칠이? 만수? 만기?’
세 명은 며칠 전에 첫째 여식의 못된 심부름을 했다는 3인조였다.
분명 자숙하라 일렀는데 이곳에서 저리 놀고 있는 것을 보니 한소리 해줘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수풀을 막 나서려는 순간 덕칠의 손에서 미끄러지듯이 날아가는 호접에 걸음을 멈췄다.
나비 모양을 한 암기였지만 어쨌든, 금속이었기에 직선적인 움직임만 보이는 게 일반적이었다.
당가의 주요 직책을 맡은 이들이나 되어야 진짜 나비처럼 위아래로 움직이며 날려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덕칠의 손에서 날아간 호접은 말 그대로 한 마리의 나비였다.
어찌나 나비 같은지 날아가는 속도까지 시시각각 변했으며 위아래로의 움직임 또한 상당했다.
마치 당가 가주인 자신의 손에서 펼쳐진 암기술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호접이 나무에 박힐 때까지 파공성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더는 참을 수 없어 당성치는 수풀을 훌쩍 뛰어넘으며 셋에게로 날아갔다.
“이 녀석들!”
“헙! 가주님!”
자기들끼리 호접을 날리며 시시덕거리던 셋은 가주의 등장에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그나마 덕칠이 정신이 있는지 재빠르게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다.
“삼가 제자들이 가주님을 뵙니다.”
덕칠의 말에 다른 두 녀석도 따라 인사를 해왔다.
당성치는 지금 인사나 받고자 몸을 드러낸 것이 아니었지만 일단은 가주로서 체통은 지켜야 했다.
“그래, 반갑구나, 한 가지 물을 게 있어 불렀느니라.”
“아… 죄송합니다. 저희가 자숙하라는 말씀을 들었으나 무공연습을 게을리할 수 없어, 그만….”
가주가 자신들을 나무란다는 생각에 일단 사죄부터 하는 덕칠이었다.
하지만 당성치는 그런 덕칠의 말을 뚝 자르며 자신의 본론을 꺼냈다.
“아니다. 내 물을 것은 갑자기 향상된 너희들의 무위다. 어찌 된 일이냐?”
“그, 그게….”
가주의 물음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녀석들은 말을 아끼고 있었다.
평소 참을성이 그리 많지 않은 당성치는 미간을 좁히며 다시 물었다.
“내 평소 너희들의 무공 수위를 익히 알고 있다. 헌데 지금 보인 것은…. 이건?!”
당성치는 녀석들에게 대답을 촉구하려다가 바닥에 찍혀 있는 발자국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저 발자국의 배치는 분명 자신이 총장실에서 보던 사진에 찍혀 있던 발자국이었다.
호접무의 보법이 담겨 있는 발자국.
당성치가 발자국을 보며 놀라자 만수와 만기는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덕칠을 바라봤다.
덕칠은 둘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희에게 기연이 있었습니다.”
“기연? 어서 사실대로 말하지 못할까?”
“네, 그게… 첫째 아가씨의 심부름을 했던 날입니다.”
덕칠은 당성치에게 시후가 당가를 찾은 날에 일을 설명했다.
당성치에게는 거짓을 고할 수 없어 시후가 역용술을 펼쳐 중년인의 모습으로 당가에 들어선 것까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캠퍼스 바닥에 발자국을 찍으며 호접무라 하면서 수련하라 했고, 대성하게 된다면 무음투척술을 시전할 수 있다고 한 것도 말했다.
그날에 있었던 모든 것을 전해들은 당성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당성치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 떠올랐다.
‘자식 농사를 망쳤다. 첫째 여식 때문에 당가의 행운을 걷어차 버렸어!’
당성치는 갑자기 인상을 확 구기며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어 들어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는 통화가 연결되자 불같이 화를 내며 역성을 질렀다.
“네 이놈!! 당장 집으로 기어들어 오지 못할까!!”
그 통화가 첫째 여식에게 건 전화라는 것은 덕칠과 만수와 만기는 알 수 있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작게 저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