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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58화 (58/275)

제58화

제일 큰 오두막 안은 생각보다 호화스러운 분위기였다.

어디서 구해 왔는지 바닥에는 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카펫이 깔려 있었고 벽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러 가지 몬스터들의 머리들이 걸려 있었다.

그중에는 시후가 익히 아는 것들도 있었다.

‘저건 토끼 귀랑 여우 귀? 이 자식은 취미가 뭐야?’

도대체 왜 이런 것들로 장식을 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런 짓을 한 이 방의 주인은 쉽게 발견했다.

한껏 거만한 자세로 커다란 의자에 앉아 있는 오크.

한눈에 이 방의 주인인 오크 부족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의 앞에는 다른 오크들이 양쪽으로 줄지어 있었는데 다들 상당히 흥분한 상태처럼 보였다.

콧김까지 내뱉으며 언성을 높여 의자에 앉아 있는 오크에게 연신 떠들어댔다.

“크룩, 크라락, 쿠루루룩!”

“크라! 크락!”

오크들의 언어인지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때 돌연 의자에 앉아 있던 오크가 시후 쪽을 힐끗 바라봤다.

‘에이…. 설마.’

시후는 설마하니 자신들의 은신을 눈치챘을까 싶다가 싸늘한 느낌에 움직임을 멈췄다.

- 모두 움직이지 마.

혹시 몰라 진지춘과 조민에게도 전음을 보냈다.

여전히 이쪽으로 향하고 있는 오크의 시선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때.

“쿠룩, 쿠라락.”

의자에 앉아 있는 오크가 손을 휘저으며 뭐라 하자 앞에 있던 오크들이 오두막을 빠져나갔다.

아무래도 분위기상 자신들 때문에 내친 것 같았다.

그렇게 오두막에는 의자에 앉아 있는 오크 한 마리만 남게 되자 녀석이 입을 열었다.

“크륵, 인간인가? 모습을 보여라.”

이곳에 들어와 처음으로 알아듣는 말이었다.

녀석은 아예 고개까지 돌려 시후쪽을 바라봤다.

무슨 방법인지는 몰랐지만, 은신이 들킨 것이 분명했다.

- 들켰다. 모두 은신 풀어.

시후는 둘에게 전음을 보내고는 먼저 은신을 풀었다.

시후가 모습을 드러내자 지척에서 진지춘과 조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둘의 표정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시후보다 한 발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시후는 자신들의 등장에도 전혀 놀라지 않는 오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부족장이냐?”

“크륵, 그렇다. 나, 오크 부족의 부족장 델루. 너는 누구냐?”

띠링-

오크 부족장이 본인 소개를 하자 눈앞에 알림음과 함께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오크 부족장 델루와 첫 대면을 이룩한 유저가 되었습니다.]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으로 인해 전 스텟이 +5 증가합니다.]

[죽지 않기 위해 살 곳을 찾아 떠나온 오크 부족장과의 대화는 업적으로 남아 대륙에 널리 퍼질 것입니다.]

오랜만에 업적 달성을 했다며 스텟이 증가했다.

‘아무래도 남들이 하지 못한 거를 해야 업적이 오르나 본데?’

시후는 자신의 스텟을 빠르게 향상시킬 수단 중 하나로 업적 달성을 꼽았다.

하지만 좀처럼 업적 달성을 하지 못했었는데 오늘 오크 부족장을 만나면서 실마리를 찾은 것 같았다.

시후가 대답에 뜸을 들이자 델루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지 자리에서 일어난 것뿐인데 뒤쪽에 있던 진지춘과 조민은 몸이 위축되는 것을 느꼈다.

오크 부족장이 Lv. 300대라는 소문은 절대 과장된 소문이 아니었다.

시후는 긴장한 표정을 역력히 내보이는 둘을 보며 혀를 찼다.

“쯧, 델루라고 했나? 나는 See 후, 이쪽은 유라, 이쪽은 다주힐이라 한다.”

시후는 델루에게 Safety World의 닉네임으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크륵, 쥐새끼의 이름은 기억할 필요 없다. 여기는 무슨 일로 왔냐?”

“쥐새끼?”

은신 스킬을 이용하여 이곳에 들어온 것을 비아냥거리는 델루의 말에 시후는 눈썹이 꿈틀거렸다.

솔직히 유라와 진지춘만 아니었으면 이런 곳은 정면에서부터 부수며 들어왔을 거였다.

이번에 이룬 만독불사지체를 이용하면 레벨이 낮다 하여도 이들을 상대할 수단은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미 들어왔고 이미 무시를 당했으니 시후가 할 일은 하나였다.

시후는 델루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그러면서 눈에서 살기를 뿜어냈다.

진지춘에게 했던 것과 같이 오직 델루 한 명에게만 보내는 살기였다.

델루는 순간 등골이 오싹거리며 몸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크륵, 인, 인간. 멈춰라.”

“어쭈? 이제는 명령까지 하네?”

떨리기까지 하는 델루의 음성을 들으며 시후는 천천히 위로 떠올랐다.

허공을 계단처럼 밟으며 자신보다 1.5배나 큰 델루와 눈을 맞췄다.

지금까지 3개의 부족을 통합한 델루.

각 부족을 대표하는 그 오크들과 싸움에서도 델루는 전혀 두렵지 않았다.

한눈에 알아봤으니 말이다.

자신이 절대로 지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리고 부족을 통합하니 장로 오크가 델루의 몸에 문신을 새겨주었다.

그 후로는 더욱 거칠 것이 없었다.

조금 전에도 오크들이 하루라도 빨리 인간 마을을 공격하자는 의견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때도 델루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당장 쳐들어가 마을을 점령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밖에 나왔으니 취미를 즐기고 싶었다.

마음에 드는 사냥감의 머리를 박재하여 자신의 거처에 걸어 놓는 취미를 말이다.

그렇게 부족장이 되면서 거칠 게 없었고 언제나 자신이 최고라 믿어왔다.

그런데 고작 자신의 오두막에 몰래 침입한 인간에게서 ‘공포’를 느끼다니.

믿을 수 없었다.

때문인지 델루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공포를 인정할 수 없어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크륵, 그럴 리 없다!! 크라락!”

쿵-

오두막이 울리도록 큰소리를 지른 델루는 두 주먹을 하늘 높이 치켜들더니 그대로 바닥을 내리쳤다.

그러자 델루를 중심으로 눈에 보일 정도의 기파가 솟구쳐 올라 시후를 밀어냈다.

“제법인데?”

시후는 자신의 살기를 이런 식으로 파훼하는 델루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델루가 내리친 바닥에서 거미줄이 퍼져나가듯 강한 기파에 오두막이 터져나갔다.

시후는 재빨리 호신강기를 불러일으켜 몸을 보호했다.

오두막의 잔재와 박제한 몬스터들의 머리를 뒤집어쓰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사이 델루는 의자 뒤에 놓여 있던 커다란 양날 도끼를 취했다.

무게감이 상당해 보이는 그것을 한 손으로 들고는 시후를 향해 달려들었다.

부푹- 부푹-

도끼의 크기 때문인지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여느 도끼들과는 달랐다.

델루는 자신의 팔뚝보다 두꺼운 도끼를 마치 단검을 다루듯 휘둘렀다.

도끼를 휘두르는 데 초식이나 격식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시후가 피하려고 하는 자리를 예측이라도 하듯 공격해왔다.

덕분에 시후는 호신강기로 도끼를 막아야 했다.

델루는 자신의 도끼가 알 수 없는 막에 막히자 공격을 멈추고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허리는 꼿꼿이 세웠지만, 무릎은 한껏 구부린 자세였다.

“크륵, 인간, 이상한 요술을 쓰지만 이건 어림도 없을 거다. 오크의 숨결!!”

콰과과곽-

오크의 숨결은 바닥에 쓸릴 정도로 낮게 낮춘 자세에서 도끼를 하늘 높이 치켜드는 스킬이었다.

그 결과 도끼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강기가 땅거죽을 뒤집으며 적을 공격했다.

돌무더기의 해일이 시후를 덮쳐갔다.

하지만 가만히 서서 당해줄 시후가 아니었다.

오크의 숨결이 시후를 쓸고 지나가는 순간 시후의 인영이 흔들거리더니 이내 사라졌다.

이형환위를 펼쳐 델루의 등 뒤로 움직인 거였다.

맛보기로 델루의 허리에 침투경을 쏘려고 손바닥을 가져다가 대었다.

‘이건 좀 짜릿할 거…. 헉.’

그런데 본능이 찌릿찌릿 경고 신호를 보내왔다.

시후는 빠르게 손을 회수하며 몸을 뒤로 젖혔다.

그러자 델루의 양날 도끼가 시후의 코앞을 스치듯 쓸며 지나갔다.

도대체 어떻게 양날 도끼가 델루의 등 뒤에 나타났는지 고개를 드는 순간 알 수 있었다.

몸이 기형적으로 뒤틀린 델루가 히죽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크륵, 오크의 춤도 피하다니. 인간, 운이 좋구나.”

오크의 춤은 자신의 신체를 연체동물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스킬이었다.

그것으로 델루는 허리를 180도 비틀어 양날 도끼를 휘두른 거였다.

자신의 공격이 두 번이나 실패했지만, 여전히 시후가 반격 한번을 못 하자 델루는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자신이 언제 공포를 느꼈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표정, 마음에 안 드는데?”

시후는 거만하게 웃는 델루의 표정에 눈썹을 꿈틀대며 침투경을 사용하려던 손을 슬쩍 앞으로 내밀었다.

“천마멸겁장(天魔滅劫掌).”

푸칵-

여우 언덕과 시계탑을 날려버린 천마멸겁장을 델루에게 날렸다.

순식간에 시후의 손바닥에서 집채만 한 형상의 무언가가 뿜어져 나왔다.

“크럭!!”

델루는 너무 깜짝 놀란 나머지 도끼를 들 새도 없이 몸을 홱 말았다.

마치 거대한 고무공처럼 델루의 몸이 말리는 순간 천마멸겁장이 델루를 덮치며 주변을 쓸어 버렸다.

순식간에 델루의 오두막이 부서지고 근처 오두막들까지 부서지자 주변에 있던 오크들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모두가 멀리서 방관만 할 뿐 다가서지는 못했다.

다들 같은 생각이었다.

저 싸움에 끼어들었다가는 죽는다.

그것은 조민과 진지춘도 마찬가지였다.

“도, 도련님이 이렇게나 강하셨나? 도대체 레벨이 몇이신 거야?”

“그, 그러게요?”

둘은 시후가 펼치는 무공 하나하나에 매우 놀랐다.

이형환위에, 호신강기에, 천마멸겁장까지.

눈앞에서 직접 보게 되니 그 위용이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델루가 천마멸겁장에 말려들어 멀리 날아간 사이 시후는 진지춘을 돌아봤다.

진지춘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까딱이며 두 눈썹을 위로 올렸다가 내렸다.

이만하면 되었냐는 듯한 의미였다.

진지춘은 그제야 시후가 자신의 컨텐츠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진지춘은 후다닥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 지금 영상이 촬영되고 있는지 확인했다.

“후…. 다행이다.”

다행히도 영상은 멀쩡히 촬영되고 있었다.

만약 방금 벌어진 상황을 촬영하지 못했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해보던 진지춘은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시후는 진지춘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자 눈을 가늘게 떴다.

“저 자식이, 영상은 촬영했는데 깜빡 잊고 있었다 이거지?”

한눈에 진지춘의 상황을 파악한 시후였다.

아무래도 한동안 당근만 던져 주었더니 나사가 빠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그아웃 후에 두고 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때 생각지도 못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륵, 인간. 정말 제법이구나?”

“오호~ 그걸 버텼어?”

“크륵, 오크의 굳센 의지가 아니었다면 위험했다.”

오크의 굳센 의지란 정신과 신체를 강화하는 스킬이었다.

델루는 벌써 자신의 스킬을 세 가지나 보여준 상황에서 시후를 어찌하지 못했다는 것에 자존심이 크게 상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오크 장로들을 쳐다봤다.

무언가 허락을 구하는 눈빛이었다.

오크 장로들은 델루와 시후를 번갈아 보더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델루는 씨익 웃으며 시후를 향해 양날 도끼를 치켜들었다.

“크륵, 인간, 각오해라!”

“음…. 싫은데? 천잠음영술(天暫蔭影術).”

훅-

전대 천마가 창시한 무공으로 하늘의 그림자가 되어 숨는 은신술을 사용하는 시후였다.

비천잠행술보다는 몇 배나 뛰어난 은신술이었다.

다만 그림자에서 그림자로만 이동할 수 있어 낮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어느새 해가 떨어져 땅거미가 길어지자 펼친 거였다.

델루는 시후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지며 기척까지 감추자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처음 시후가 오두막에 들어왔을 때 시후의 은신술을 간파한 것은 델루의 패시브 스킬 덕분이었다.

사물의 잔영을 볼 수 있어 은신술을 사용해 누군가가 움직이면 주변 사물이 흔들리기에 간파하는 거였다.

그런데 지금 천잠음영술은 그림자 속으로 숨어드는 무공이었기에 델루의 스킬로도 파악할 수 없었다.

델루는 시후를 찾을 수 없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같이 온 진지춘과 조민을 찾는 거였다.

진지춘은 델루가 자신을 바라보자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제, 제길. 도련님은 혼자 그렇게 사라지시면 어쩌자는 거야? 어? 어라?!”

진지춘은 혼자 내뺀 시후를 욕하며 조민을 바라봤다.

그런데 어느새 조민 역시 그 자리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시후가 몸을 숨기기 전에 조민에게만 전음을 보내 이곳을 빠져나가라고 한 거였다.

덕분에 조민 역시 은신 스킬을 사용하여 델루가 이곳을 쳐다보기 전에 오크 부족을 빠져나갔다.

결국, 홀로 남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진지춘은 재빠르게 인벤토리에서 투명 망토를 꺼내어 몸에 둘렀다.

“영상은 촬영했으니 어서 나도…. 으악!”

서둘러 모습을 감추려던 진지춘은 느닷없이 자신의 앞을 막는 거대한 몸뚱어리에 기겁하며 엉덩방아를 찌었다.

어느새 나타났는지 멀리 있던 델루가 앞을 막아선 거였다.

델루는 시후에 이어 조민까지 놓치게 되자 이미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당장 분풀이를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 진지춘이 투명 망토를 두르는 순간 몸을 날린 거였다.

“크륵, 너는 그저 분풀이다, 잘 가라!”

쿵-

아주 간결하면서도 빠르게 양날 도끼로 진지춘을 양단한 델루였다.

진지춘의 눈앞에 날이 시퍼렇게 선 양날 도끼가 보였다 싶은 순간 이미 메시지가 나타나고 있었다.

[사망하셨습니다.]

[몬스터에게 사망하여 24시간 로그인을 할 수 없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진지춘은 천천히 고글을 벗으며 캡슐을 열었다.

그리고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아직 시후의 캡슐이 열리지 않은 것을 확인하더니 머리를 쥐어뜯었다.

“으악!!! 죽었어!! 24시간 로그인 불가라니!! 으악!! 내 경험치!!”

진지춘은 이제 조금만 하면 Lv. 300을 달성할 수 있었는데, 이번 죽음으로 경험치도 잃고 아이템도 잃었다는 것에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질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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