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화
시후는 한국대 총장실에서 천잠음영술로 빠져나온 후 근처에 있는 덕칠을 찾았다.
녀석들과 티격태격할 때 이미 기를 읽어 놨기에 기감을 넓히자 금방 찾았다.
덕칠은 같이 있던 두 놈과 함께 여전히 건물 밖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런 녀석들 앞에 훅 하고 나타나자 녀석들은 한차례 흠칫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해왔다.
‘짜식들, 놀라지도 않네. 이미 한번 봤다 이건가.’
중년인과의 싸움에서 보여 주었던 천잠음영술이었기에 녀석들의 반응이 뜨든 미지근했다.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지 못한 게 조금 아쉽지만, 용건은 그게 아니었기에 본론을 꺼냈다.
“너희들 이름이 뭐냐?”
“저는 김덕칠, 쟤는 김만수, 쟤는 김만기입니다.”
어째서인지 녀석들의 이름이 상당히 촌스럽게만 느껴졌다.
그것이 표정으로 드러났는지 덕칠이 녀석이 쑥스러워하며 입을 열었다.
“어르신들께서 이름은 촌스럽게 지어야 오래 산다고 하셔서….”
굳이 녀석들의 촌스러운 이름의 기원을 알 필요는 없었지만 시후는 자신의 이름을 강시후라고 지어주신 부모님에게 감사하는 순간이었다.
이름 때문인지 녀석들이 살짝 안쓰러웠다.
그래서 이왕 챙겨주는 거 좀 더 챙겨주기로 했다.
‘당가까지 안내하면 별 탈 없게 하여 준다고 약속했으니.’
당가 가주의 방에 쳐들어온 여식의 말투로 보아 분명 녀석들에게 조만간 분풀이할 게 뻔했다.
그때를 대비해 소명단이 든 옥병 하나를 주려다가 이름에 대한 안쓰러움 때문에 좀 과분하다고 생각할만한 것을 전수하기로 했다.
“호접 하나만 줘봐라.”
“네?”
“두 번 말하는 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 네!”
덕칠은 급격히 어두워지는 시후의 표정에 품속에서 나비 모양의 암기를 하나 꺼내어 주었다.
호접을 받아 든 시후는 한쪽으로 물러나며 입을 열었다.
“호접무(蝴蝶舞)라는 것이다. 잘 봐두거라.”
무엇을 잘 봐두라는지. 묻기도 전에 이미 시후는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셋의 두 눈은 부릅떠졌다.
시후가 한 발을 내디디며 호접을 들고 있는 팔을 품속으로 가져가는 동작은 자신들이 익히 아는 거였다.
당가의 춤.
당가의 제자들이 가장 처음에 배우는 춤이었다.
그것도 입문하여 단전을 만들 때까지 매일같이 췄던 춤이었다.
스승님은 그 춤을 추며 당가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지라고 했었다.
이름은 달랐지만 분명 당가의 춤이었다.
또 다른 것이라면 시후의 호접을 가지고 놀듯 춤을 춘다는 거였다.
한참 넋을 잃고 보던 중 덕칠의 입에서 감탄이 흘러나왔다.
“아…. 아름답다.”
두 손을 나풀거리며 움직이는 시후의 모습은 그 어떤 여인의 춤보다 아름다웠다.
흐느적거리면서도 절도가 느껴지는 동작에 섬세한 손끝의 표현은 감탄을 자아냈다.
어느덧 그 아름답던 춤이 멈추자 시후는 손에 들려 있던 호접을 슬쩍 던져 덕칠에게 돌려주었다.
“잘 보았느냐?”
“잘 보았습니다만, 저희도 ‘당가의 춤’은 알고 있습니다.”
“당가의 춤?”
시후는 호접무가 언제부터 당가의 춤으로 불렸는지 의아했다.
천마 시절 천마동에서 읽었던 무공서적 중에 당가에 대한 호접무도 있었다.
하늘하늘 팔을 휘저으며 나풀나풀 움직이는 움직임이 그려져 있던 특이한 무공서적이었다.
후에 당가 가주 늙은이와 술잔을 기울이며 물었더니 호접무의 완성은 호접을 이기어술(以氣馭術)로 움직였을 때 그 진가가 나온다며 주절거렸었다.
방금 녀석들에게 보여준 것이 그 이기어접(以氣馭蝶)을 이용한 호접무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녀석들의 무위로는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운 것 같았다.
“뭐, 너희가 아둔할 거라는 예상은 했다.”
“…네.”
시후의 비평에도 녀석들은 그저 대답만 할 뿐이었다.
자신들이 잘났다면 당가 첫째 여식의 그런 지시를 따를 이유도 없었을 거였다.
녀석들이 한껏 시무룩한 표정을 보이자 시후는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쯧, 잘 좀 봐라. 호접을 날리던 것에 눈이 팔린 너희들을 위해 친절히 새겨 놓았으니.”
“무엇을…. 헉! 언제 저런 걸?”
덕칠은 시후의 발밑에 새겨진 족적(足跡)을 발견하고는 놀랐다.
콘크리트 바닥에 너무나도 또렷하게 찍힌 발자국.
그것이 시후가 호접무라며 움직이며 찍은 발자국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다만, 그 찍힌 모양이 너무나도 깔끔했다.
자신들도 콘크리트 바닥에 발자국 정도는 찍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주변이 갈라지지 않고 모랫바닥에 족적을 남기듯이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만으로도 시후의 경지가 자신들은 범접할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너희들이 호접무에 대한 묘리를 1할이라도 득하려면 오늘은 밤을 새워야 할 것이지만,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런 것도 할 수 있을 거다.”
휘릭-
자리에서 슬쩍 뛰어오른 시후는 호접무의 한 동작을 취하며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들려 있지도 않은 호접이 선명하게 시후의 손에서 떠났다.
그러고는 10장밖에 있는 가로수를 꿰뚫고는 돌아왔다.
그 장면을 본 덕칠과 만수와 만기는 경악에 휩싸였다.
시후의 손에 기로 만들어진 호접이 들리는 순간 두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그것이 가로수를 뚫는 순간 당연히 들려야 할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자 무엇인지 깨달았다.
“무음투척술(無音投擲術)!!”
너무 놀란 셋은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었다.
무음투척술은 당가의 오의였다.
암기투척술이 극에 따르면 파공성(破空聲)뿐만 아니라 관통성(貫通聲)까지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암기술을 가르치던 스승님에게 귀가 닳도록 들었던 말.
하지만 실제로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런 것을 가르쳐 준다는 생각에 절로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그래, 다음에 볼 때까지 부디 걸음걸이 정도는 익히길 바라마.”
“꼭! 그리하겠습니다!”
시후의 독려하는 말에 셋은 결의에 찬 대답을 했다.
하지만 그런 셋의 앞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어느새 시후가 떠난 거였다.
셋은 오늘 있었던 일이 전화위복이 되었다는 생각에 서둘러 시후의 발자국을 따라 움직였다.
아마도 셋은 시후의 말대로 한국대 캠퍼스에서 밤새도록 달밤에 춤을 출 거였다.
그리고 다음에 시후를 만났을 때 변화된 자신들을 보여줄 거였다.
그렇게 녀석들이 가슴 깊이 은인을 생각할 때 시후는 이미 한국대학교를 빠져나와서는 건물 위를 날고 있었다.
부모님께서 일어나시기 전에 집에 들어가기 위해 경공술을 펼쳐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가는 길에 궁금한 것은 해결해야 했기에 스마트폰을 꺼내어 들었다.
- 네, 제갈신길입니다.
“수련 중이었느냐?”
시후가 전화를 건 상대는 제갈신길이었다.
분명 자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제갈신길의 목소리는 잠겨 있지 않은 또렷한 목소리였다.
이 시간에 깨어 있다는 것은 분명 이유가 있을 터. 시후는 그가 수련에 몰두 중이라고 생각했다.
- 네, 얼마 전에 알려주신 것 덕분에 작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래? 잘되었구나.”
진심으로 축하를 해주었다.
제갈신길 정도 되는 무인이 깨달음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닐 테니 말이다.
분명 현원진신공을 대성하는 데 얼마 남지 않았을 거였다.
- 감사합니다. 한데, 축하해 주시려고 전화를 거신 건 아니실 테고 무슨 일이신지요?
역시나 명석한 두뇌의 제갈신길.
용건을 꺼내라는 제갈신길의 말에 시후를 바로 물었다.
“묻자. 당가를 아느냐?”
“…….”
그런데 어째서인지 제갈신길에게서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시후는 혹시 통화가 끊겼나 싶어 화면을 보았지만, 여전히 연결 중이었다.
자신의 말을 들었음에도 대답에 뜸을 들인다는 것은 당가의 존재를 알지만 무슨 문제가 있어 보였다.
“전화로 대답하기는 어려운 이야기인가?”
- 아닙니다. 다만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아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까 고민하였습니다.
“그럼 조민에게 전달해 놓아라.”
시간도 시간이고 방금까지 수련하던 이를 더는 방해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시후는 조민을 떠올렸다.
- 네, 그 아이에게 전해 놓겠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서 당가를 거론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직접 뵙고 싶습니다.
“알겠다.”
시후는 자신과 만남을 바라는 제갈신길의 말에 후일에 약속을 잡고는 통화를 종료했다.
아무래도 제갈세가와 당가는 무슨 사연이 있는 듯했다.
오늘 당가를 만나 보고서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었다.
우선 당가 또한 제갈세가처럼 자신이 알던 곳과는 확연히 다르게 약해져 있다는 거였다.
가문의 절기를 가주가 제대로 대성하지 못한 것이 그 이유였다.
연유를 캐묻기에는 가주라는 녀석들이 아는 게 별로 없어 보였다.
그리고 또 알게 된 것은 확실히 이곳에도 무림이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거였다.
그렇다면 제갈세가, 당가와 마주친 이후에 무당파, 곤륜파, 화산파.
종적에는 소림까지 만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앞으로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시후는 절대 그들에게 머리를 숙이는 관계가 될 생각이 없었다.
“그러려면 강해져야겠지.”
시후는 다시 한번 천마 시절의 내공을 찾아야 할 이유를 되새기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Safety World에서 이번 오크 부족장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끝내야 했다.
시후는 건물 위를 나는 경공술에 더욱 내공을 불어넣어 박차를 가했다.
결국, 해가 뜨기 전에 집에 도착한 시후는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태산과 인호가 잠들어 있었다.
시후는 그들을 보며 날이 밝으면 같이 Safety World에 접속하여 만반의 준비를 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때문인지 방금까지 아기 같은 표정으로 잠들어 있던 두 녀석의 표정이 변했다.
“으… 음…. 그… 만…. 후야, 그… 만.”
“으…. 너무…. 힘들어, 으….”
인상을 한껏 구기며 신음까지 흘리는 것이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시후는 피식 웃고는 자리에 앉아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천마분심공을 통해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운기조식을 할 수 있는 시후가 이렇게 자세를 잡고 운기조식을 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였다.
바로 천마의 무공을 습득하기 위함이었다.
현재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천마의 무공은 예전 천마 시절 1할에 해당하는 정도였다.
즉, 천마 시절 내공에 비하면 이제 10%에 달하는 내공을 회복했다는 뜻이었다.
이만해도 현재 제갈세가나 당가의 가주 정도는 가볍게 상대할 만한 무공 수위였지만 만족할 수 없었다.
천마가 힘이고 천마가 말이 곧 법인 그때와 똑같이 되기 위해 좀 무리를 하기로 했다.
시후는 천마분심공을 통해 마음을 둘로 나누었다.
나눈 한쪽으로는 북해빙궁의 심법으로 운기를 했다.
그러자 시후의 왼쪽 몸에 하얀색 서리가 맺히기 시작했다.
이것은 북해빙궁의 심법이 10성을 달성했을 때 나오는 현상이었다.
이번에는 다른 쪽으로 천마열화장을 사용할 때의 심법으로 운기를 했다.
그러자 곧 오른쪽에 푸른색 불길이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일렁이기 시작했다.
‘음과 양의 기운을 극까지 끌어 올렸으니 준비는 되었다.’
시후는 북해빙궁의 심법으로 음의 기운을, 천마열화장의 심법으로 양의 기운을 몸에 두르고는 천천히 충돌시켜 갔다.
아주 작은 바늘로 실타래의 실을 꿰듯 섬세하게 두 기운을 충동시켰다.
시후의 몸을 양쪽으로 분리하고 있던 서리와 불길이 점차 융화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불길에 닿아 서리가 녹거나 서리에 닿아 불길이 사라지거나 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시후의 몸은 서리로 뒤덮이는 와중에 푸른색 불길이 되어 일렁였다.
잠시 후 시후의 이마에 굵은 땀방울이 비 오듯 흘러내리자 두 기운이 시후의 몸속으로 사라져 갔다.
음과 양의 기운을 받아 단전에 넣는 거였다.
하지만 그 과정이 편치 않았다.
‘으!!! 버텨야 한다!!’
한껏 찡그린 얼굴이 말해주듯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여기서 고통에 못 이겨 신음을 흘리거나 정신을 놓친다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었다.
시후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정신을 잃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조, 조금만. 조금만…! 됐다!’
몸속에 스며들었던 음과 양의 기운은 점차 단전으로 스며들었다.
시후의 백회혈에서 새하얀 연기가 피어오르자 한껏 찡그리고 있던 표정이 점차 풀어져 갔다.
그리고 차 한잔 마실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피어오른 연기는 백회혈로 스며들어 갔다.
시후는 천천히 눈을 떴다.
“후…. 성공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시후였다.
사실 시후가 지금 한 것은 일종의 편법이었다.
솔직히 시후도 일전에 환골탈태를 이루지 않았더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방법이었다.
오늘에서야 이 방법을 사용하여 내공을 증진한 이유는 당가와 관련이 깊었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시후는 몸속에 흐르는 내공으로 몸 상태를 확인하였다.
“이제 2할의 경지인가. 그래도 만독불사지체(萬毒不死之體)를 이루었다.”
시후의 말대로 방금 시후는 단번에 평소 내공의 두 배에 달하는 내공을 증진했다.
천마 시절에 비하면 20%에 해당하는 내공이었지만 어마어마한 성과였다.
그리고 만독불사지체는 그 어떤 독도 통하지 않는 신체였다.
당가에서 전설로나 내려오는 그것을 시후가 이룬 거였다.
극심한 통증과 주화입마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이겨내고 말이다.
“그 자식들만 아니었으면 이런 수고는 하지 않았을 텐데. 두고 보자.”
시후는 오늘 당가를 만나면서 자신이 독에 대해 두려움을 앓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저급한 독이나 가벼운 산공독쯤은 내공으로 물리칠 수 있었지만, 무색무취의 극독은 시후도 피할 수 없었다.
만약 서울 총장실에서 당가 가주가 독을 써왔다면 큰 곤욕을 치렀을 거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다시는 그런 것을 느끼지 않기 위해 시후는 자칫 잘못하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 있는 수단까지 동원하여 만독불사지체를 이룬 거였다.
이로써 당가가 어떤 독을 사용해도 시후를 해할 수는 없을 거였다.
시후는 확연히 달라진 자신을 느끼며 어서 테스트를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엄청난 무위를 사용하여 테스트할 아주 좋은 곳도 알고 있었다.
바로 Safety World.
이미 날도 밝았으니 어머니와 아버지께 문안 인사를 드린 후 시후는 Safety World에 접속할 생각이었다.
마침 잘만 자던 태산과 인호도 인기척을 느끼고는 눈을 떴다.
둘은 문 앞에 멀뚱히 서 있는 시후를 발견하고는 눈을 껌뻑거렸다.
시후는 그런 둘에게 세상 환한 미소를 보여주며 입을 열려 했다.
그런데.
““놉!””
“뭐?”
“싫다고!”
“뭐가?”
밑도 끝도 없이 싫다고 투정 부리는 둘이었다.
“너 아침부터 접속하려는 거지? 아 쫌!!”
“오늘 일요일이라고~ 새벽까지 했으면 좀 쉬자~! 응?”
“무공 수련에 일요일이 어디 있냐? 어서 일어나라.”
태산과 인호는 어림도 없다는 시후의 말에 격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특히 태산은 시후에게 얼굴을 삐쭉 내밀고는 자신의 눈을 가리키며 언성을 높였다.
“봐봐! 이 다크서클!! 뱀파이어 백작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시계탑에서 보았던 뱀파이어 백작을 거론하며 있지도 않은 다크서클을 가리키는 태산이었다.
그 모습이 하도 어이가 없어 시후는 말을 잃었다.
그러자 인호까지 나섰다.
“시후야, 우리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응? 오늘만 쉬자.”
“너까지?”
“너도 요즘 너무 게임만 해. 아주머니께서 어제 엄청나게 걱정된다고 하셨어. 응? 그러니 오늘만 쉬자. 응?”
두 손 모아 제발 부탁이라는 인호의 말에 시후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앗싸!!”
둘은 시후의 허락에 환호성을 지르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두르고는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아무래도 둘은 다시 꿈나라로 갈 생각인 것 같았다.
천마 시절이었으면 자신의 말에 반하는 이들을 가만두지 않았을 터인데 저 둘의 요구를 들어준 자신을 보며 시후는 피식 웃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그때와는 달랐다.
이런 소소한 일상들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산과 인호가 벌써 꿈나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시후는 조용히 방을 빠져나와 부모님의 침실로 향했다.
두 분은 어느새 일어나셨는지 이미 방을 나오고 계셨다.
그렇게 시후는 두 분과 함께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고는 태산과 인호의 말마따나 자신도 휴식이라는 것을 가져보기로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