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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53화 (53/275)

제53화

시후는 늦은 밤 강인 병원을 찾았다.

이런 시간에 시후가 이곳을 찾을 이유는 단 하나.

언제나처럼 천잠음영술을 펼쳐 그림자에 녹아든 시후는 빠르게 제니의 병실로 들어섰다.

제니 또한 언제나처럼 천사 같은 얼굴로 잠들어 있었다.

익숙한 손길로 제니의 백회혈에 손을 얹고는 내공을 불어넣었다.

제니의 몸을 빠르게 훑은 내공은 다시 회수되며 몸 상태를 알려 주었다.

“음, 좋아. 확실히 돌팔이가 실력은 있네.”

진지춘의 의술 실력이 생각보다 괜찮았다.

신명단을 이용해 천음절맥인 제니의 기운을 승화시켜 놓으라는 지시를 착실히 따랐다.

음기가 가득했던 제니의 몸에 양기가 보충되었다.

천마 시절 자신이었다면 천음절맥을 치료하기 위해 음양합일의 수법을 택했을 거였다.

오직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하지만 제니는 아니지.’

어여쁜 동생으로 보이는 제니였기에 시간이 얼마가 걸리든 안전하고 보편적인 방법을 택했다.

다시 한번 제니의 백회혈로 내공을 불어넣었다.

이번에 불어넣은 내공은 제니 몸에 승화되어 있는 양의 기운을 자리 잡게 하기 위함이었다.

역시 천음절맥답게 어린 나이지만 몸에 축적된 음기가 강했다.

시후는 몸에 퍼져 있는 양기를 조금씩 조금씩 갈아 모으듯 몰아갔다.

그렇게 몰아간 곳은 제니의 배꼽 아래에 위치한 단전이었다.

본래라면 심법을 배우고 수련을 통해 단전을 형성하여야 했지만, 제니는 그럴 수 없기에 시후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이 또한 시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천마분심공을 통해 제니의 몸속에 있는 내공을 긁어 오면서 다른 한편으로 단전을 만들고 있었다.

음양의 조화를 이루어 단전을 만들어야 했기에 필히 천마분심공이 필요했다.

그렇게 이각의 시간이 지났을 때 시후의 이마에 보기 드물게 구슬땀이 맺혔다.

그만큼 집중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잠시 후 제니의 백회혈에서 손을 떼며 크게 심호흡을 하는 시후였다.

“후~ 됐다. 아침이 되면 신세계가 열릴 거야.”

제니의 단전이 안정된 것을 확인한 시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이룬 결과에 뿌듯했다.

아직 갈 길이 좀 남았지만 이대로라면 한 달 안에 천음절맥은 치료될 거였다.

천마 시절이었으면 하지 않았을 수고를 한 자신을 돌아보며 확실히 변했음을 인지했다.

그리고 그 변함이 싫지 않았다.

언제나 생과 사를 오가던 천마 시절이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지금도 좋았다.

그렇다고 자신의 등에 칼을 꽃은 형제들을 잊은 것은 아니었다.

반드시 돌아가 그들에게 일벌백계를 내릴 마음은 변치 않았다.

천마신교라는 이름 아래 있던 동도들과 천마를 위해 따라나섰던 이들의 죽음을 헛되이 할 수 없었다.

피의 복수를 다짐하는 한편 현재의 생활에 변화된 자신을 인정한 시후는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좀 즐기면서 갈까. 갈 길이 멀다 하여 가는 길을 가시밭길로 만들 이유는 없으니 말이야.”

다짐하듯 작게 읊조린 시후는 다시 그림자에 녹아들어 강인 병원을 빠져나왔다.

병원 밖의 밤거리는 네온사인이 가득해 그야말로 불야성을 방불케 했다.

경공술을 펼쳐 건물 위를 빠르게 날아 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좀 걷고 싶었다.

서울의 밤거리라 그런지 공기는 맑지 않았지만 낮게 깔린 기온에서 느껴지는 축축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한껏 감성에 젖어 밤거리를 거니는 시후의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이, 이러지 마세요…. 제발요…. 읍, 읍!

두려움에 떠는 여자의 목소리.

밤거리에 으슥한 곳에서 저런 소리가 들리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떨리는 목소리 안에 불규칙하게 끊어지는 호흡이 시후의 발길을 이끌었다.

목소리가 들린 곳을 찾아가니 먹자골목이 나왔다.

늦은 밤이라 그런지 거리를 거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먹자골목 끝에 다다르자 건물과 건물 사이에 조명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골목이 눈에 들어왔다.

시후는 망설임 없이 그 골목으로 걸음을 옮겼다.

건물이 긴 것인지 골목은 생각보다 깊었다.

중간 정도 왔을 때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정말 할 거야?”

“그럼? 첫째 아가씨 명령을 무시하자고?!”

“미쳐 버리겠네. 우리 이렇게까지 해야 하냐?”

남자 세 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후는 목소리가 들리자 발걸음을 멈추고 눈에 내공을 집중시켰다.

그러자 어둠이 걷히듯 전방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쯧. 그때나 지금이나 이런 데서는 꼭 저런 일이 일어난단 말이지?”

“헉! 누구냐?!”

남자 중 한 명이 깜짝 놀라며 뒤돌아섰다.

덕분에 녀석들 앞에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여자가 보였다.

시후는 인상을 구기며 손가락을 튕겼다.

푹-

“크어…….”

지풍을 날려 그 남자의 수혈을 짚었다.

그가 쓰러지자 옆에 있던 놈이 뒤돌아봤다.

“야! 너 뭐야?”

“너는 쟤보다 낫구나?”

시후의 낫다는 말은 이 어둠 속에서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어서였다.

그 말은 녀석이 일반인은 아니라는 소리였다.

“뭔 개소리야!?”

“하지만 입이 거치니 너도 좀 자거라.”

푹-

이번에도 지풍을 날려 먼저 쓰러진 남자 옆에 그 남자를 잠들게 했다.

이쯤 되자 홀로 남은 녀석이 움직였다.

그 움직임에 시후는 확신했다.

‘역시나, 이 녀석들 무공을 익히고 있었어.’

녀석은 폴짝 뛰어올라 양쪽 벽을 번갈아 밟고 날아오르더니 품속에서 무언가를 던져왔다.

피슝-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날아오는 것은 시후도 익히 아는 물건이었다.

‘암기(暗器)? 그런데….’

이런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하는 암기는 천마 시절 수없이 봤다.

그런데 이 암기는 특별했다.

직선으로 쏘아져 오는 보통의 암기와는 다르게 중간부터 위아래로 흔들리며 날아왔다.

그렇다고 시후에게 위협이 될 정도는 아니었다.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잡아챌 수 있었지만, 고개를 숙여 앞으로 미끄러져 갔다.

그러고는 폴짝폴짝 뛰어오른 녀석의 눈앞에 불쑥 튀어 올랐다.

“헉!!”

푹-

녀석이 놀라는 사이 시후는 지풍을 날려 순식간에 마혈과 아혈을 짚었다.

몸이 빳빳하게 굳은 녀석은 그대로 떨어져 내렸다.

쿵-

아무 대처 없이 떨어져 내린 녀석은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시후는 그런 녀석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녀석의 눈동자가 무섭게 흔들리자 시후는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넌 좀 기다려라, 호접(蝴蝶)에 관해 물어볼 것이 있으니.”

“으! 으!”

시후의 입에서 ‘호접’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녀석은 눈이 찢어지라 부릅뜨며 신음을 흘렸다.

그런 녀석을 무시한 채 시후는 정신을 잃은 여자에게로 다가갔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인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렸다.

그래서일까.

흐트러진 옷매무새라도 잡아주기 위해 다가갔다.

그런데 익히 아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이것 봐라? 이곳에서 산공독(散功毒)을 만나다니.”

시후가 들은 여자의 목소리는 산공독에 중독당한 목소리였던 거였다.

산공독에 중독되면 평소 사용하는 내공이 흩어지며 몸을 가눌 수 없게 된다.

일반인이라면 그저 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끼겠지만 무공을 익힌 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내공이 흩어지면 평소 숨 쉬던 것의 반도 호흡을 유지할 수 없기에 호흡이 짧아지고 폐의 기능이 떨어져 말이 끊기는 거였다.

이는 마지막 전투가 되었던 소림에 올랐을 때 지겹도록 당했기에 또렷이 기억했다.

“덕분에 재수 없는 기억이 되살아났어.”

툭툭-

시후는 정신을 잃고 있는 여자의 혈도 몇 개를 눌러 산공독이 퍼지는 것을 막았다.

그러고는 몸을 일으켜 아직도 놀라고 있는 녀석에게로 걸어갔다.

가는 도중 한쪽 벽에 박혀 있는 호접을 향해 손을 뻗어 허공섭물을 일으켰다.

핑-

벽에 깊숙이 박혀 있었는지 뽑혀 나오며 금속성을 낸 호접은 빠르게 날아와 시후의 손에 살며시 안착했다.

금색의 나비 모양을 이루고 있는 호접이라는 암기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네놈, 당가와 무슨 사이더냐?”

시후의 말에 녀석은 침을 꼴깍 집어삼켰다.

대답을 듣기 위해 지풍을 날려 녀석의 아혈을 풀어주었다.

그러자 녀석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누, 누구십니까?”

“내 질문은 그게 아닐 텐데?”

“히익! 저, 저희는 당가의 문하들입니다.”

시후가 눈에 살기를 싣자 녀석이 곧바로 대답했다.

제갈세가에 이어 당가를 발견하게 되자 시후는 적잖이 놀랐다.

아직 제갈신길에게 무림에 대한 정보를 받기도 전에 단서를 발견한 거였다.

시후의 기억 속에 당가는 암기와 독에 능한 문파였다.

천마 시절에도 당가에 자주 놀러 갔었기에 익히 알고 있었다.

어디에나 썩은 녀석들이 있기는 마련이지만 그나마 당가는 나은 편이었다.

지금처럼 이런 으슥한 골목에서 여인에게 산공독을 먹이고 패악질을 부리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이 녀석들에게 무언가 벌을 주고 싶어졌다.

푹푹푹-

시후는 지풍을 날려 눈앞의 녀석과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녀석들의 혈을 짚었다.

이번 혈은 단전 바로 위에 위치한 혈로 내공의 운용을 방해하는 혈이었다.

아마 내공을 사용하려 한다면 아랫배를 칼로 쑤시는 듯한 통증에 몸부림칠 거였다.

“당분간 내공을 사용하기는 힘들 것이다. 몇 가지만 묻자.”

“네! 말씀하십시오!”

녀석은 지풍을 날리는 시후의 모습에 이미 순순히 응할 자세를 보였다.

그 모습에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지풍을 날려 나머지 녀석들을 깨웠다.

“으…. 으….”

“가서 쟤들과 한쪽에 서라.”

“네!!”

잠에서 깨어난 녀석들이 신음을 흘리자 녀석은 빠르게 달려갔다.

간단하게 현 상황을 녀석들에게 말하자 녀석들 또한 긴장한 눈초리로 시후를 바라봤다.

“묻자. 저 여인은 누구냐?”

“당가의 셋째 여식입니다!”

“야!! 미쳤어?!”

시후의 물음에 한 녀석이 즉각 대답하자 옆에 있던 녀석들이 미쳤냐며 다그쳤다.

그 모습에 시후는 두 녀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입이 꼭 세 개일 필요는 없다만?”

“아, 아닙니다!”

“성실히 대답하겠습니다!”

시후의 눈에서 다시 한번 살기가 피어오르자 녀석들도 드디어 상황을 인지했다.

여기서 혀를 잘못 놀렸다가는 시체가 될 거라는 것을 말이다.

시후는 쓰러져 있는 여인이 당자의 셋째 딸이라는 것에 호기심이 일어 계속 물었다.

그리고 듣게 된 녀석들의 말은 생각보다 추접스러웠다.

당가의 여식은 셋이 있었는데 그중 저 여자가 막내라는 거였다.

자신들은 첫째 여식의 수하들인데, 평소 눈엣가시였던 막내를 손봐주라는 지시를 따르는 중이라고 했다.

셋째 여식이 오늘 친구들과 클럽을 간다는 것을 알고는 산공독을 이용해 일을 벌였다는 거였다.

결국, 자매들끼리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쯧, 하는 짓거리들 하고는.”

시후의 혀 차는 소리에 녀석들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무리 명령이라 하지만 하려던 짓을 생각하니 자신들의 신세가 처량해 보이는 거였다.

시후는 풀이 죽어 있는 녀석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쟤 업어라. 밤이슬 더 맞기 전에 움직이게.”

“어디를요?”

시후의 말에 한 녀석이 여자를 둘러업자 다른 녀석이 목적지를 물었다.

그 말에 시후는 당연한 거 아니냐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당가.”

“네?!”

그 말에 여자를 업은 녀석을 제외한 두 녀석이 무릎을 꿇어왔다.

“제발요! 저희 이렇게 돌아가면 죽습니다!”

“당가의 규율이 엄하다는 것은 알지만 설마 죽이기야 하겠느냐?”

두 녀석은 당가 규율의 강도까지 아는 시후에 놀라면서도 빠르게 입을 놀렸다.

“이미 아시다시피 엄격합니다. 저희가 절대 살을 보태서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진짜입니다.”

시후는 두 녀석의 눈을 보며 순간적으로 독안공을 펼쳤다.

독안공으로 파악한 이들의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체벌이 강하거나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목숨을 앗아간다는 말이었다.

천마 시절에 당가의 규율이 강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제 문파 사람은 끔찍이 여기던 녀석들이었다.

시후는 자신이 생각하는 당가와 이곳의 당가와 다른가 하는 생각에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내 약속하지. 너희의 목숨이 온전할 수 있도록.”

“아니, 그게 약속만으로….”

“아니면, 그냥 너희를 죽이고 저 여자만 데리고 갈까?”

녀석들이 계속 거부를 하자 다른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자 녀석들은 빠르게 눈빛을 교환하고는 앞장서 갔다.

시후의 죽인다는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분위기만으로 충분히 아는 거였다.

언뜻 보면 술에 취한 여자를 남자 넷이 집에 데려다주는 광경을 만들며 시후는 당가로 향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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