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화
한스텔 마을 영주인 레오나르도 디카의 허락이 떨어지자 유저들은 추가 퀘스트들을 받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틀은 조민이 이야기한 성벽 강화, 철문 거치, 해저 설치, 인력 배치를 토대로 한 퀘스트였다.
제작 계열 유저들이 성벽과 철문을 만들면 다른 유저들은 그것을 설치했다.
해저 설치 또한 많은 유저들이 동원되어 삽과 곡괭이로 성벽 주위에 땅을 파는 퀘스트가 진행됐다.
태산과 인호 역시 그 퀘스트를 받아 열심히 삽질 중이었다.
“헉, 헉헉, 삽질 장난 아니다. 왜케 힘드냐?”
“야, 말 시키지 마. 말할 시간이 있으면 삽질 한 번이라도 더 해!”
태산의 투정에 인호는 서둘러 삽질이나 하라며 일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들이 받은 퀘스트 내용은 삽질을 얼마나 정확하게 하는지와 횟수로 클리어되는 내용이었다.
[한스텔 마을 성벽 외곽에 해자를 설치하시오.]
[지급되는 삽으로 흙을 퍼내시오. 321/500]
[일정량을 퍼내지 않으면 카운트에 적용되지 않음.]
태산은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 퀘스트 내용을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179번이나 남았다, 하아…. 진짜 보상만 아니면 이런 거 하지 않았을 텐데.”
태산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보상 내용을 확인했다.
[보상 : 한스텔 마을 이용 수수로 10% 할인, 한스텔 영주와의 친밀도 상승, 한스텔 마을 영주 영역에서 퀘스트 진행 시 경험치 보너스 10% 적용, 경험치.]
이용 수수료 할인과 영주와의 친밀도야 그렇게 필요하지 않았다.
시후 덕분에 퀘스트 여관 사용료는 이미 무료였고 영주와의 친밀도야 자신들이 올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경험치 보너스 10%]는 달랐다.
그것도 영주의 영역에서 진행하는 퀘스트들 모두가 10% 적용이라니.
여우 사냥 10번이면 1번 치는 공짜라는 말이었으니 무조건 받아야 했다.
태산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간단한 스트레칭을 해주더니 다시 삽을 고쳐 잡았다.
“좋았어! 조금만 더 해보자, 아자! 아자!”
“잠깐!”
기합을 잔뜩 넣으며 자세를 잡던 태산을 누군가 불러 세웠다.
활활 불타오르는 의욕에 찬물을 끼얹는 게 누군가 싶어 인상을 팍 쓰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태산을 불러 세운 건 너무나도 의외의 인물이었다.
번쩍번쩍 빛나는 은빛 갑옷에 샤랄랄라 휘날리는 금발의 조각 미남.
‘헤라 왕국 수호기사 아킬라이와의 대련’ 동영상으로 더 유명한 고레벨 유저 아킬라이였다.
그런 아킬라이를 이곳에서 보게 되다니 믿을 수 없었다.
태산은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 옆에 있던 인호를 툭툭 건드렸다.
“인, 인호야? 대박! 저분이 여기 오다니 실화냐?”
“아씨! 너 그만 농땡이…. 헐! 저분이 왜 여기서 나오냐?”
태산과 인호는 아킬라이를 보며 ‘형이 왜 거기서 나와?’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둘만이 아니었다.
해자 설치를 하기 위해서 모인 유저들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아킬라이를 바라보았다.
반면 아킬라이는 그런 주변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폴짝 뛰어내리며 해자 안으로 들어왔다.
“둘은 아직 군대를 다녀오지 않았나 봐?”
“네? 아, 네, 저희 아직 고딩이라.”
“어쩐지, 삽질이 너무 형편없더라. 이 형이 하는 거 잘 봐!”
아킬라이는 태산이 들고 있던 삽을 뺏어 들고는 자세를 잡았다.
왼발을 앞쪽으로 내밀고 오른발은 뒤쪽으로 벌리며 어깨 정도로 간격을 벌렸다.
그 상태에서 앞쪽으로 무게 중심을 넣어 허리를 살짝 구부렸다.
왼손으로는 삽의 머리 쪽을 잡고 오른손으로는 손잡이를 잡아갔다.
“삽질은 전진하는 자세로, 머리, 목, 허리를 일직선을 유지해주며 빠르게 목표 지점을 찌르는 거야. 이렇게!”
푹-
아킬라이가 시법을 보이며 삽을 땅으로 찌르자 아주 깔끔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지렛대의 원리로 손잡이 쪽을 눌러서 퍼내는 거지. 이렇게!”
휙-
가볍게 퍼낸 흙을 해저 밖으로 휙 던졌다.
이렇게 일괄적인 동작을 반복적으로 몇 번 보여주고는 삽을 태산에게 돌려주었다.
이제 네가 해보라는 뜻이었다.
태산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일단은 아킬라이가 주는 삽을 받아 들고 삽질을 했다.
아킬라이는 태산이 하는 동작에 고개를 끄덕였다.
“잘하네. 너 나중에 군대 가면 욕은 안 먹겠다.”
“하, 하하, 네….”
이게 칭찬인지 아니면 악담인지, 고등학교 1학년한테 벌써 군대를 일깨워 주는 아킬라이의 말에 태산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
분명한 건 아킬라이가 군필자라는 거였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삽질을 정확히 하는 올바른 방법과 군대를 거론할 리가 없었다.
그렇게 태산이 삽질을 하는 때에 인호가 아킬라이에게 물었다.
“그런데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나? 당연히 퀘스트 하러 왔지. 여기 한스텔 마을에 총지휘관이 계시다며?”
퀘스트를 하기 위해 총지휘관을 찾아왔다는 아킬라이의 말에 인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작 Lv. 200대의 퀘스트를 하기 위해서 Lv. 300대의 유저가 찾아왔다?
경험치나 보상도 크게 받지 못할 텐데 왜 그런 수고를 하러 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호가 그런 고민을 하던 때 아킬라이가 씨익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유저들에게 물어보니 너희가 그 지휘관과 아는 사이라던데? 안내 좀 해줄래?”
“아, 네! 따라오세요.”
인호도 때마침 호기심이 일었기에 삽질하는 태산을 툭툭 치고는 아킬라이를 안내했다.
태산과 인호는 아킬라이를 데리고 한스텔 마을로 들어와 탑 건설이 한창인 곳으로 갔다.
그곳에는 누군가가 NPC들과 유저들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하고 있었다.
인호는 그 사람 가까이 가더니 입을 열었다.
“유라 님!”
인호는 Safety World 닉네임 냉혈미녀 유라로 제갈조민을 불렀다.
아킬라이가 현실 세계에서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데 괜히 조민의 실명을 거론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여기…. 이분이 용건이 있으시다고 해서요.”
“누구…? 어머? 헤라 왕국 수호기사 아킬라이 님?”
유라는 태산과 인호 뒤에서 은빛 갑옷을 번쩍이며 존재감을 보이는 아킬라이를 보고는 눈을 껌뻑이며 인호를 되돌아봤다.
유라 역시 왜 저자가 여기에 있냐고 묻는 눈빛이었다.
인호는 정확한 이유를 모르기에 그저 어깨를 들썩일 뿐이었다.
그런 인호를 밀치며 아킬라이가 나섰다.
“반갑습니다, 아킬라이입니다. 냉혈미녀 유라 님께서 한스텔 마을의 지휘관이시라니, 놀랐습니다!”
아킬라이가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자 유라는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로 손을 맞잡았다.
“반갑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저를 찾으셨나요?”
“헤라 왕국에서 한스텔 마을을 도우라는 퀘스트를 받아 이렇게 오게 되었습니다.”
“헤라 왕국이 왜요?”
“아마도 저희 헤라 왕국의 국왕님과 한스텔 마을의 영주님이 친분이 있으신 듯합니다.”
“그래요? 그런데 혼자 오신 거예요?”
“그럴 리가요. 저 외에도 저기 있는 기사단을 대동하였습니다.”
아킬라이가 손을 들어 뒤쪽을 가리키자 그와 같은 은색의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보였다.
조민 또한 그들이 누구인지 익히 알고 있었다.
헤라 왕국 은빛 날개 기사단. 아킬라이가 기사단장으로 있는 기사단이었다.
NPC와 유저들로 이루어진 은빛 날개 기사단은 대체로 Lv. 230 이상이었다.
그런 데다 기사의 숫자가 무려 40명이나 되었다.
조민은 이런 때에 이런 전력이 참전하게 된다고 생각하자 빠르게 어디에 누구를 배치할지 생각했다.
“감사하네요, 한스텔 마을의 지휘관으로서 이번 퀘스트 참전을 환영합니다.”
띠링-
은빛 날개 기사단의 참전을 허락하자 조민의 앞에 스테이터스 창이 나타났다.
[헤라 왕국 은빛 날개 기사단이 휘하에 들어왔습니다.]
[기사단을 효율적으로 지휘하여 성과를 내십시오.]
[성과에 따른 보상이 차등으로 지급됩니다.]
[보상 : 경험치, 골드, 아이템(희귀 ~ 레어)]
조민은 눈앞에 나타난 내용들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킬라이 또한 스테이터스 창을 만지작거리는 것이 이곳에 참전하는 보상을 받으며 연동 퀘스트를 확인하는 것 같았다.
그사이 조민은 고개를 돌려 성벽 위를 바라봤다.
그곳에 있는 시후를 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시후 또한 조민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둘은 눈이 마주쳤다.
조민은 메시지를 보내 지금의 상황을 전해 주려고 하였는데 그때 시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 요긴하게 쓰일 녀석이 들어왔구나? 제일 빡센 데로 배치하거라.
“……!”
조민은 시후를 바라보며 놀란 토끼 눈을 떴다.
자신이 들은 것은 분명 머릿속에서 직접 들리는 전음(傳音)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사람이길래 Safety World에서 전음을 사용한단 말인가.
영주를 만날 때 보여 주었던 호신강기도 그렇고 도대체 시후의 능력은 어디가 끝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저리 멀리 있는 시후의 표정이 자신의 이런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는 듯한 표정이었다.
“쳇!”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분한 마음에 혀를 찼더니 어느새 다가온 아킬라이가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물어왔다.
“아니에요. 그럼, 친추해 주시면 앞으로의 일정은 메시지로 보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제가 평소에 유라 님 팬이었는데 이렇게 친추를 하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아… 네.”
조민은 시후의 반응에 신경이 쓰여서인지 아킬라이의 말에 대충 대답했다.
그 후에도 아킬라이가 퀘스트 내용이나 평소 개인 방송하는 것에 대해 질문을 하였지만, 냉혈미녀 유라답게 무표정한 얼굴로 대응해 주었다.
둘의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태산은 인호에게 속삭였다.
“아킬라이 말이야. 뭔가 우리가 상상하던 그런 모습이 좀 아니다? 그치?”
“그러게 말이다. 유라 님한테 겁나 치근덕대는 게 좀 그러네?”
둘은 유라에게 치근덕거리는 아킬라이의 모습을 보며 어째서인지 가볍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유라가 현실 세계에서는 16세의 중학생이라는 게 떠오르자 안쓰러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됐다, 지 팔자지 뭐. 우리는 삽질이나 하러 가자.”
“그래. 그런데 시후는 저기서 뭐 하는 거래?”
“진법이 어쩌고저쩌고하던데?”
“진법? 시후가 진법도 펼칠 줄 알아?”
“난들 아냐? 시후가 언제 우리 상식에서 일 벌인 적 있었냐?”
투닥투닥거리며 다시 삽질하기 위해 떠나는 태산과 인호였다.
둘의 말대로 시후는 성벽 위에서 진법을 구상 중이었다.
천마 시절 진법에 대해 크게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시후였다.
하지만 천마동에서 읽은 책 중에는 무공서뿐만 아니라 서책과 진법에 대한 문헌들도 가득했었다.
무공에 대한 것들 외에는 관심이 없던 천마도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읽어야 했다.
그리고 모두 암기해야만 천마동을 나갈 수 있었기에 머릿속에 진법에 대한 지식은 가득했었다.
시후는 스테이터스 창에서 맵을 눌러 한스텔 마을 주변의 지도를 펼쳤다.
지도에 나와 있는 것과 밖에 있는 지형지물들의 배치를 확인하던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음, 확실히 정확하네. 이 정도면 희로애락진을 살짝만 변형해서 설치하면 되겠어.”
환락탑에 설치한 희로애락진을 마을 네 방위에 설치할 생각이었다.
사실 환락탑의 각 층은 시후가 진법을 설치한 거였다.
프랑시스가 시계탑의 주인이었기에 안으로 들어온 유저를 원하는 층의 특정 지점으로 이동시키기는 쉬웠다.
그 위치를 진법의 시작점으로 지정하여 진법을 펼쳐 놓으니 유저들은 그것이 그저 시스템 일부라고만 생각하는 거였다.
시후는 지도에 직접 표기까지 하며 희로애락진을 변형했다.
평소라면 굳이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가르쳐야 할 학생도 있었기에 감수했다.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 조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이리 와. 가르쳐줄 게 있다.
조민이 오면 진법에 대한 기초부터 간략하게 설명 후 희로애락진의 설치 방법을 설명할 생각이었다.
역시나 조민은 메시지에 대답 대신에 전심전력으로 달려왔다.
“헉, 헉헉, 오빠! 뭘 가르쳐 주실 거예요?”
조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시후가 무엇을 가르쳐 줄 것인지 알려 달라고 재촉했다.
게임에서 호신강기와 전음을 펼치는 시후의 모습에 무공과 관련된 거라 생각했다.
조민은 자신의 두뇌를 믿었다.
10살에 나이에 중등교육을 마쳤고 12살에 대학교 교육을 이수했다.
그리고 15살에는 하버드대로 월반하였다가 세가의 가주인 제갈신길이 쓰러졌다는 소식에 한국으로 돌아온 자신이었다.
겉모습이야 어떻든 나이야 어떻든.
조민은 제갈세가에서 자신의 두뇌만큼은 어른들에 필적한다고 자신했다.
그래서 시후가 이곳에서 가르쳐주는 무공을 현실에서도 사용할 자신이 있었다.
자신감과 기대감을 숨기지 못하는 조민의 얼굴을 보며 시후는 피식 웃었다.
“진법(陣法)에 대해 아는 게 있느냐?”
“진법이요? 들어서는 알고 있습니다만…. 혹시 제게 가르쳐주실 거라는 게 진법입니까?”
“그렇다.”
조민은 무공이 아닌 진법을 가르쳐준다는 시후의 말에 살짝 실망감을 보였다.
“왜? 배우기 싫으냐?”
“아뇨…. 그런 것은 아닌데….”
도대체 조민이 냉혈미녀라고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지금만 봐도 조민의 표정은 눈에 띄게 시시각각 변했다.
누가 봐도 진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에 실망한 모습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가르쳐주지 않을 생각은 없었다.
지금 가르쳐놔야 후에 이런 일이 생길 때면 조민에게 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진법은 인술진(人術陳)과 기문진법(奇門陣法)으로 나눌 수 있다. 인술진을 대표하는 것으로는 기문둔갑의 음양, 삼재, 오행 등의 자연요소를 사용한 진법이 있다. 기문진법은 말 그대로 자연물이나 기계물을 사용하는 산공진법이라 생각하면 된다. 내가 이번에 네게 가르칠 것은 기문진이다.”
시후는 조민의 생각이 어떻든 설명을 늘려놓기 시작했다.
조민이 영특한 아이라면 자신이 말을 하는 순간 모두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알 거였다.
그렇지 않으면 제갈세가에 큰 불이익이 생기리라는 것을 알 테니 말이다.
역시나 조민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시후의 말을 모두 기억하기 시작했다.
처음 설명은 이미 조민도 알고 있는 것이었기에 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지만 이후 시후의 설명은 전혀 달랐다.
“환락탑에 있는 희로애락층은 내가 만든 진법이다.”
“네?! 진짜요?!!”
“그 희로애락진을 이곳 마을 사방에 펼칠 생각이다.”
“그게 가능합니까?”
“별걱정을 다 한다. 가능하니 이렇게 네게 시간을 투자하는 것 아니냐.”
조민은 ‘투자’라는 말에 살짝 이상한 낌새가 느껴졌지만, 환락탑이 진법으로 만들었다는 것과 그것을 시후의 작품이라는 것에 의심을 지웠다.
이쯤 되자 조민의 표정은 다시 진지해졌다.
‘역시 제갈세가 핏줄이군. 머리 쓰는 거를 좋아해.’
선천적으로 머리 쓰는 것을 좋아하는 제갈세가답다는 생각을 하며 시후는 말을 이어 갔다.
“흥미를 보이니 보기가 좋구나, 혹여나 네가 이번 설명을 잘 들어 활용한다면 소림의 백팔나한진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백팔나한진이라는 말에 조민은 귀를 쫑긋 세우며 경청하기 시작했다.
이후 시후는 진법에 대한 심화 설명을 끝없이 늘려놓았다.
간간이 이해를 돕기 위해 팔괘자모진(八卦子母陳)이나 포라만상진(包羅萬象陳)을 설명하기도 했다.
쉴 새 없이 말을 하기를 한 시간이 지나자 시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알아들었냐고 묻는 거였다.
조민은 그 표정에 난처한 표정을 보였다.
“내일까지 꼭 암기하고 이해하도록 하겠습니다.”
시후는 한 시간 동안이나 이어진 자신의 설명을 듣고도 의지를 보이는 모습에 칭찬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진짜로 칭찬할 생각은 없었다.
“부디 내일까지는 이해해서 오기를 바란다. 내일부터는 내가 직접 진법을 설치할 테니까 말이다.”
“네!”
“그런데 말이다.”
“네?”
설명을 끝낸 시후가 난데없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조민 또한 무슨 중요한 설명이 더 남아 있나 하는 생각으로 집중했다.
“왜 나한테 그런 말투를 쓰는 것이냐?”
“네?”
“밖에서는 ‘오빠’라고 부르며 좀 부드러운 말투였던 거 같은데?”
물론, 지금은 전쟁을 준비하는 전시상황인 것은 맞지만 단둘이 있는 상황이고 이곳은 게임 속인데 저렇게 ‘다, 나, 까.’를 사용하는 조민의 말투를 지적한 거였다.
그 물음에 차마 조민은 시후의 분위기가 변해서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현실에서 제갈세가를 찾아와 보인 모습이나 진지춘을 상대할 때 보인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전쟁을 준비하는 시후의 모습은 명검의 날을 정성스럽게 가는 무인의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에서 풍기는 기운과 분위기는 16세 소녀가 감당하기에 벅찼다.
어째서인지 실언 하나에 자신을 포함한 제갈세가의 운명이 결정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조민의 촉은 정확했다.
시후는 이번 일로 조민을 다시 한번 테스트했다.
열심히 눈을 굴리는 조민을 보며 시후는 손을 휘저었다.
“됐다. 가서 꼭 도움이 되도록 공부해라.”
저 말은 내일 진법을 설치할 때 거들지 못한다면 제갈조민은 시후에게 필요가 없을 거라는 소리였다.
조민은 강한 의지를 보이며 대답을 하고는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시후가 진법에 관해 설명한 1시간짜리 영상을 저장했다.
아마도 조민은 로그아웃한 후에도 집에서 미친 듯이 영상을 보고 또 볼 거였다.
시후는 이미 자신이 말한 것을 되감아 보는 조민을 확인하고는 태산과 인호에게 로그아웃하자는 메시지를 보내고는 로그아웃을 했다.
이제 현실에서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서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