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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51화 (51/275)

제51화

한스텔 마을의 영주는 물론 NPC다.

이름은 레오나르도 디카. 중년의 나이로 슬하에 1남 2녀를 뒀다.

갈색 머리카락 반곱슬의 준수한 외모와 마을에 관심이 많아 덕망이 높기로 유명한 영주였다.

유일하게 단점이라면 애주가라는 거였다.

여기까지가 하인을 따라가며 Safety World 커뮤니티에서 시후가 영주에 관해 확인한 정보였다.

‘술을 좋아하는데 덕망이 높다?’

예부터 술 좋아하는 놈치고 덕망이 높은 이들은 별로 없었다.

술이 사람을 마시는 순간, 그야말로 개가 되어버리니 말이다.

천마 시절에 자신도 술을 좋아라 했지만 어느 적정선은 지켰다.

취기가 오르면 삼매진화로 술을 태워 취기를 밀어내기도 했다.

그만큼 술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잘 아는 시후였기에 영주에 대해 무언가 있겠다 싶었다.

하인들을 따라 조민의 손을 잡고 한참을 안으로 들어가자 높은 단상 위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자가 보였다.

아마도 저 남자가 영주라는 생각을 할 때 하인들이 영주에게 인사를 하고는 물러났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시후와 영주는 눈빛을 교환하고는 아무 말도 없었다.

잠시의 적막으로 시후 일행들이 어찌해야 하나 할 때 중저음으로 낮게 깔린 영주의 목소리가 들렸다.

“허, 허허, 유저라는 작자들은 여전히 예의가 없구나?”

너털웃음을 터뜨렸지만, 말 속에 담긴 뜻은 다분했다.

한마디로 영주에게 예의를 표하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천마 시절부터 목에 칼이 들어와도 남에게 머리를 숙이는 일이 없던 시후는 되레 피식 웃었다.

“언제 봤다고 반말이냐?”

“저, 저! 저런!!”

그 말에 영주 주변에 있던 신하들이 언성을 높이며 수군댔다.

대충 이곳에 흐르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유저와 NPC 간에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시후는 자신의 한마디에 소란스러워지는 장내를 한번 훑고는 입을 열었다.

“용건이 있으니 어중이떠중이들은 치우는 게 어떨까?”

“뭐야?!! 저 무뢰한 같으니라고!!”

시후의 말에 더욱 언성을 높이는 신하들이었다.

슬슬 그 모습에 짜증이 솟구치던 때에 장내를 울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

쿵-

영주의 낮은 목소리에 건물이 진동하듯 울렸다.

시후는 그 상황에 영주의 레벨이 절대 낮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덕분에 신하들은 입을 다물었고 메아리치던 영주의 목소리가 가라앉자 영주가 입을 열었다.

“내 그대가 환락탑의 주인이라는 소리에 알현을 허락하였다. 헌데 그런 무례한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나를 기만하는 것인가?”

“기만? 누가 누구를 기만한다는 거지?”

“유저 나부랭이 주제에 그대가 정녕….”

“이거 아무래도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겠는데?”

명백히 자신을 아래로 보고 있는 영주의 말에 대화의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도 실력 행사를 하기로 했다.

시후는 주머니에 손을 넣은 자세 그대로 쭈욱 미끄러져 갔다.

영주가 있는 단상은 적어도 20개의 계단이 있었지만 중력을 거스르듯 미끄러져 올라갔다.

“어딜!!”

채챙-

시후가 계단을 반 정도 올라갔을 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옷을 입은 병사들이 허리춤에 차고 있던 소드를 빼내며 날아왔다.

묵직한 중세풍 소드가 단숨에 시후를 덮쳤다.

영주를 포함한 신하들은 걸레짝처럼 찢어질 시후의 모습을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녀석들의 기대에 부응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소드가 지척까지 다다르는 순간 폭발적으로 내공을 뿜어냈다.

펑-

“크아악!!”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와 함께 달려들었던 병사들이 사방팔방으로 튕겨 나갔다.

병사들은 나뒹굴고 신하들은 폭발의 여파로 쓰러지며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시후의 주위에는 몸을 감싸는 듯한 형태로 얇은 막이 일렁였다.

여전히 양쪽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우뚝 선 시후는 영주를 똑바로 쳐다봤다.

순식간에 벌어진 난장판에 영주와 신하들이 당황했다.

그런데 그런 그들보다 더 당황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호신강기(護身罡氣)?”

조민은 Safety World에서 무공을 사용하는 시후의 모습에 놀랐다.

그 어디에서도 호신강기라는 스킬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너무 놀라 저 상황을 해석해줄 이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일행 중 자신만 놀라고 있었다.

태산과 인호는 저리 될 줄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비천대라 불리는 네 명은 놀라는 조민의 모습에 왜 놀라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타란은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시후에게 손을 뻗어 움켜쥐는 듯한 손동작을 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목소리의 ‘갖고 싶어’라는 중얼거림도 들렸다.

반응은 달랐지만 다들 저런 상황을 예측이라도 한 듯한 얼굴들이었다.

‘뭐야, 나만 바보 같잖아.’

호들갑 떠는 자신만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에 평소의 냉혈미녀 유라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시후는 호신강기를 거두지 않은 채 영주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단상이 움푹 파이면서 부서져갔다.

신하들은 이미 한두 걸음 물러난 상태였지만, 그래도 영주는 영주라는 체면이 있어서인지 자리를 지켰다.

다만 심각하게 요동치는 눈동자로 보아 상당히 놀란 듯했다.

시후는 독안공을 사용하여 영주의 속내를 읽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천마분심공을 사용하여 플레이 중이었기에 게임 중에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은 하나뿐.

혹여나 천마분심공을 사용하지 않고, 레벨업이라도 했을 때 현실에서 내공이 증진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저 흔들리는 눈동자만으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꼭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알겠냐?”

“크윽….”

영주는 신음만 흘릴 뿐 아무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시후도 이만하면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할 분위기가 되었다는 생각에 호신강기를 거뒀다.

“그럼, 우리 조용히 이야기 좀 해볼까?”

“…좋다. 여봐라, 손님들을 접견실로 모셔라.”

영주의 입에서 유저 나부랭이가 아닌 ‘손님’이라는 말이 나오자 신하들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신하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깔보는 시선 따위는 접어두고 미소로 일관했다.

그렇게 하인들의 안내에 따라 접견실로 이동하자 기다란 테이블 끝에 영주가 기다리고 있었다.

영주는 손바닥을 펴 의자를 가리켰다.

“앉으시지.”

“좋아, 조민. 네가 여기 앉아라.”

“네?”

영주가 착석을 권하자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조민을 불렀다.

그러고는 테이블 끝자리인 영주와 마주 보는 자리에 조민을 앉혔다.

조민은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앉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은 시후의 말을 따랐다.

그 옆에 시후가 앉자 다른 일행들도 모두 착석했다.

영주는 모두가 앉자 입을 열었다.

“나는 레오나르도 디카라 하네. 한스텔 마을의 영주이지.”

“나는 ‘See 후’, 유저지.”

“그래. 내 궁금한 것이 있으나 손님의 용건부터 듣는 게 예의겠지?”

영주는 간단한 자기소개가 오가자 바로 본론을 꺼냈다.

어차피 자신의 용건은 ‘환락탑’에 있다는 것을 시후네가 모를 리가 없으므로 자신을 찾아온 용건을 묻는 거였다.

그런데 영주의 물음에도 시후는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에 상석에 앉아 좌불안석인 조민이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오빠? 무슨 말 좀….”

조민이 영주의 말에 대꾸 좀 하라고 보채자 되레 시후가 조민을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봤다.

“말은 네가 해야지?”

“네?”

“네가 생각이 있다며? 난 방금 내 할 일을 충분히 했어. 이후부터는 네 차례 같은데?”

천마 시절에 지괴를 상대할 때의 방법을 그대로 조민에게 사용했다.

천마의 의지에 반하는 이들을 대할 때 천마는 자신의 무위가 어느 정도인지 보여 주었다.

그 후에 대화할 분위기가 조성되면 말싸움은 지괴(智怪)에게 넘겼다.

그것을 그대로 조민에게 사용하자 조민은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시후의 눈빛에 믿음이 가득 차 있지 않은 것은 알 수 있었다.

저 눈빛은 제갈조민이라는 지략가의 능력을 시험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조민은 시후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다시 냉혈미녀 유라로 돌아왔다.

허리를 펴고,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는 영주를 마주 봤다.

“디카 영주님, 저희는 이번 오크 퀘스트를 주도하고 싶습니다.”

영주는 조민의 말에 상체를 끌어당기며 호기심을 표했다.

“주도? 당신들이 오크 부족을 막아 보겠다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맡으면 막을 수 있습니다.”

“허허…. 내가 당신들의 무엇을 믿고…. 아!”

디카는 너희의 무엇을 믿고 그런 역할을 맡기냐고 말하려다 방금 시후의 모습이 떠올랐다.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니었다.

오크 부족을 막기 위해서는 레벨이 높은 유저나 NPC의 도움이 절실했다.

솔직히 시후가 찾아오기 전까지 오크 부족을 막기 위한 전투 회의가 한창이었다.

그때 들었던 오크 부족의 수는 적게 잡아도 두 개의 부족.

즉, 600마리의 오크들이 쳐들어온다는 말이었다.

그것도 오크 부족장이라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우두머리를 필두로 해서 말이다.

유저들이 오크 부족을 공격하다가 성문을 부수지도 못하고 패한 일은 디카도 익히 알고 있었다.

현재 한스텔 마을에 있는 NPC들의 숫자는 400명.

그중에서도 전투가 가능한 이들은 200명 정도뿐.

그마저도 초보 유저들이 방문하는 마을이라는 특성 덕분에 대부분의 NPC의 레벨은 Lv. 100 언저리였다.

그나마 영주 자신의 레벨이 Lv. 250으로 이 마을에 있는 NPC 중에서는 가장 높았다.

그런 자신을 긴장시킨 시후의 실력은 진짜였기에 디카는 고민에 빠졌다.

한편 디카가 고민에 빠지자 제갈조민은 이때다 싶어 입을 열었다.

“NPC들과 유저들의 전체 지휘권을 일임해 주신다면 한스텔 마을을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드는 수성전을 보여드리죠.”

“수성전을 할 줄 안단 말인가?!”

디카는 조민의 입에서 수성전이라는 단어가 타오자 살짝 흥분했다.

디카 영주 또한 수성전에 대한 지식은 있으나 경험은 없었다.

자신이 그럴지언정 다른 NPC들은 더욱 부족했다.

거기에 유저들이 대인 전투를 한다는 것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조민이 수성전을 보여준다고 하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조민에게로 걸어왔다.

디카 영주는 조민의 앞에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 촤악 펼쳤다.

그러자 한스텔 마을을 중심으로 한 지도가 열렸다.

“우선 그대가 가진 수성전에 대한 지식을 듣고 싶은데?”

조민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성격의 영주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수성전에 대한 지식을 설명했다.

한스텔 마을의 외벽은 이미 돌로 견고하게 쌓은 석성(石城)이었기에 입구를 철로 된 문으로 막기만 해도 큰 대비가 가능할 거였다.

거기에 다수의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탑과 성벽 외곽에 해자(垓字)를 설치하면 성벽을 바로 공격받는 것을 지연시킬 수 있었다.

그 후 성벽 위에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이들을 배치하고 백병전에 대비한 인원들을 여러 부대로 나누어 전술적으로 움직이는 것까지 조민은 빠르게 설명했다.

거기까지 들은 디카는 조민을 다시 보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또박또박 말하는 모습이 백전노장 같았다.

“대단하군.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네.”

영주는 궁금한 게 있다며 시선을 시후에게로 돌렸다.

조민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영주의 뜻을 눈치채고는 말을 이었다.

“저분은 별동대로 활동하실 겁니다.”

“별동대라면…. 설마?”

“네, 오크 부족장의 목을 치기 위한 별동대요.”

오크 부족장을 상대한다는 말에 영주는 눈을 크게 뜨며 시후를 바라봤다.

확실히 시후의 실력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크들이 한스텔 마을을 공격하는 도중에 시후가 오크 부족장을 죽인다면 우두머리를 잃은 오크들은 그저 무식한 몬스터일 뿐이었다.

영주는 빠르게 머리를 굴려 여러 가지 상황을 떠올려 보더니 시후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내가 해줘야 할 것이 무엇인가?”

시후는 그제야 자신이 원하는 말이 나왔다는 생각에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

“퀘스트 부여, 전체 퀘스트, 보상으로 너의 창고를 열어.”

“시후야!”

인호가 깜짝 놀라 그를 불러 세웠다.

아무리 한스텔 마을 퀘스트라지만 영주의 재산을 바치라니, 그 재산을 유저들을 위해 풀라는 말은 너무 터무니없는 요구였다.

하지만 인호의 우려와는 다른 디카의 말이 들려왔다.

“좋네, 내 열지. 대신!”

“대신?”

“오크 부족을 확실히 막아줘야 하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 그럼, 제대로 시작해볼까.”

영주의 말에 다들 놀라고 있을 때 시후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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