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0화
시후는 본격적으로 오크 부족장 퀘스트 준비에 들어갔다.
우선 필요한 인원 모두를 모았다.
냉혈미녀 유라로 플레이하는 제갈조민의 합류는 예상외였지만 퀘스트 여관으로 모두를 불러 모았다.
비천대 녀석들이 유라를 만났을 때 태산과 인호 때처럼 호들갑을 떨어 한바탕 소란이 일었었다.
굳이 그들에게는 유라가 제갈조민이라는 사실을 밝힐 필요는 없어 좋을 대로 하라며 내버려 두었었다.
그리고 많은 유저들의 시선을 받으며 타란이 퀘스트 여관에 도착하자 더욱 시끄러웠다.
그렇게 1번 방은 시후가 불러들인 이들로 시끌벅적했다.
시후는 어차피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떠들도록 내버려 두었다.
대신 자신은 할 일을 했다.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 Safety World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Lv. 300대 유저의 플레이를 찾아보기 위함이었다.
오크 부족장의 추정 레벨이 Lv. 300대였기에 그와 비슷한 레벨을 가진 유저의 플레이를 참고하려는 거였다.
Lv. 300대의 유저들은 대부분 개인방송을 했기에 영상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철권으로 바다뱀 사냥하기]
[헤라 왕국 수호기사 아킬라이의 대련]
[사막 지렁이 배 속에서 뚫고 나오기]
이 외에도 100개 이상의 영상들이 있었다.
“으흠, 뭐가 적당하려나?”
시후는 꽤 많은 영상 중에서 무엇을 고를까 고민스러웠다.
그때 커뮤니티 창을 가리키는 유라의 손이 보였다.
“<수호기사 아킬라이와 대련>을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아킬라이?”
“제가 헤라 왕국에 갔을 때 저 영상에 나오는 것을 직접 봤는데 엄청났어요.”
“어땠는데?”
유라의 말에 호기심이 인 시후는 일단 이야기 먼저 들어 보기로 했다.
유라가 저 영상을 직접 보게 된 것은 헤라 왕국에 돌아갔을 때였다.
타란의 수호자 퀘스트를 누구 때문에 포기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헤라 왕국으로 들어가는데 입구가 많은 인파로 막혔다.
무슨 일인가 싶어 확인해보니 수호기사 아킬라이가 유저들의 입장을 막았다.
아킬라이는 헤라 왕국 수호기사 중 가장 유명한 유저였다.
유저가 왕국의 수호기사로 임명받은 것만으로도 유명했는데 실력 또한 엄청났다.
그리고 아킬라이가 유명해진 데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싸우는 모습이 엄청 아름다웠어요.”
유라의 말에 시후는 <헤라왕국 수호기사 아킬라이의 대련> 영상을 클릭했다.
그러자 입구를 지키고 있는 금발의 잘생긴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왕국의 수호기사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장비들을 걸치고 있었다.
은으로 만든 갑옷을 풀세트로 장착하고 있었는데 관리를 잘한 것인지 번쩍번쩍 빛이 났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헤라 왕국으로 들어가는 유저들을 막고 있었다.
유저들은 소리를 지르며 항의하기 시작했고 결국, 무력행사를 하는 유저까지 나타났다.
창을 높이 치켜든 유저는 땅을 박차며 힘껏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낙하하는 힘을 더해 아킬라이에게 창을 던졌다.
날아가는 창이 불길에 휩싸이는 것이 화염계 스킬인 듯했다.
마치 미사일이라도 날아가는 듯한 모습에 유저들은 저마다 방어 스킬을 사용하며 폭발에 대비했다.
정작 아킬라이는 그 창이 지척까지 다가와서야 검을 뽑았다.
그리고 벌어진 일에 유저들과 NPC들은 입을 다물었다.
아킬라이의 검 끝이 창을 향하고 큰 원을 그리자 창에 둘러싸여 있던 화염이 사라졌다.
거기에 또 한 번 휘두르자 무섭게 날아가던 창이 실 끊어진 연처럼 땅에 툭 하고 떨어졌다.
창을 던진 유저도 그것을 보고 있던 이들도 너무나 간단히 막아낸 아킬라이의 실력에 감탄만 자아냈다.
그 장면을 본 시후의 눈빛이 빛났다.
“이화접목(移花接木)의 수법이라? 제법인데?”
적의 공격을 그대로 흘리거나 다른 곳으로 유도하는 모습에 흥미가 일었다.
이화접목의 수법이 극에 다르게 되면 천마멸겁장도 다른 곳으로 흘릴 수 있었다.
‘그때 무당의 장삼봉 녀석 때문에 꽤 힘들었었지.’
시후는 천마 시절 무당파를 공격했을 때 자신을 막아서던 장삼봉이 떠올랐다.
무당파 장문인이던 녀석은 가장 먼저 달려 나와 천마를 맞이했었다.
천마는 그 의기를 높이 사 직접 나서서 천마멸겁장을 날렸다.
한 방에 죽이지는 못해도 뒤로 물리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장삼봉이 휘두르는 검에 천마멸겁장이 되돌아왔다.
천마는 되돌아오는 천마멸겁장에 다시 천마멸겁장을 날려 상쇄시켰다.
그러고는 장삼봉에게 경의를 표한다며 직접 뛰어들었다.
장삼봉과 100초식을 겨누는 와중에 가장 귀찮은 것이 이화접목의 수법이었다.
천마 역시 이화접목의 묘리를 터득하고 있었기에 파훼하는 방법을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천마신교 교도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하여 힘으로 짓눌러야 했다.
결국, 100초식을 더 겨루고 나서야 이화접목으로 흘릴 수 없을 만큼의 힘으로 장삼봉을 무릎 꿇렸다.
그때 장삼봉이 보였던 이화접목 묘리를 아킬라이가 재현하는 것 같았다.
때문에 흥미를 갖고 아킬라이의 영상을 지켜봤다.
아킬라이가 보여준 실력 덕분에 주위는 조용해진 상태였다.
다들 힘으로는 아킬라이를 밀어내고 헤라 왕국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거였다.
그때 아킬라이가 그들에게 자신이 받은 퀘스트를 공개했다.
자신과 비무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으면 헤라 왕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거였다.
아킬라이의 실력에 엄두도 내지 못하던 이들도 있었지만 당당하게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이 아킬라이의 한 수에 맥을 추지도 못하고 패배했다.
시후는 이화접목의 수법을 보면서 가졌던 흥미를 슬슬 잃어가고 있었다.
“으흠, 좀 제대로 된 싸움은 없나?”
“이때까지는 좀 지루했죠? 영상 종료하기 5분 전부터 봐 보세요. 오빠가 보고 싶은 영상이 있을 거예요.”
시후는 왜 그런 이야기를 영상을 본 지 10분이나 지나서야 하는지 인상을 구겼다.
조민은 그런 시후를 보며 혀를 살짝 내밀고는 웃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저런 표정을 지으니 뭐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시후는 조민이 시키는 대로 영상 종료 5분 전부터 재생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헤라 왕국의 입구를 지키고 있던 아킬라이가 처음으로 공중을 날고 있었다.
아킬라이는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키더니 검에 회전력을 넣어 땅으로 돌진했다.
지상에서 아킬라이를 기다리는 유저는 두 손에 건틀렛을 끼고 있는 몽크 유저였다.
진지한 표정의 아킬라이와는 반대로 헤벌쭉 웃는 얼굴로 연신 ‘하, 하하’라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저런 멍청하게 웃는 표정과는 반대로 매섭게 내리찍어 오는 아킬라이의 검을 요리조리 잘도 피했다.
그리고 아킬라이가 빈틈을 보일라치면 빠르게 품속으로 달려들어 주먹을 내질렀다.
“오호~ 제법인데?”
“저자가 ‘철권 배달’이에요.”
이름에서 무언가 중국집의 기운이 물씬 풍겼지만 싸우는 모습은 정말 일품이었다.
그렇게 5분 동안 아킬라이와 배달이라는 유저의 비무를 보며 시후는 Lv. 300대의 실력을 가늠했다.
객관적인 평가로 현재 자신은 저들과 겨뤄 승패를 장담할 수 없었다.
시후는 영상을 종료시킨 후 스테이터스 창을 닫았다.
그러고는 테이블을 톡톡 건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오크 부족장이라는 녀석은 Lv. 300대로 추정하고 있었다.
그 말은 그보다 강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거기에 오크 부족장이라는 녀석은 최전방에 나서지 않을 게 뻔했다.
척살 퀘스트를 진행해야 하는데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태산과 인호의 비천잠행술도 눈치챈 오크 부족장이었기에 암살도 불가했다.
번거롭지 않고 최대한의 효율을 낼 방법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 보았지만 좀처럼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렇게 시후가 테이블을 톡톡 치면서 생각에 잠기는 바람에 방 안에 있는 인원들은 입을 다물고 조용히 있었다.
괜히 여기서 떠들었다가는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시후는 자신 때문에 조용해진 주변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었다.
다들 시후가 무슨 말을 할지 기다리는 표정들이었다.
단 한 명. ‘냉혈미녀 유라’라는 닉네임에 어울리지 않게 싱글벙글한 표정을 짓는 조민만 제외하고 말이다.
조민은 할 말이 있는 듯 입이 근질근질하다는 표정이었다.
“왜?”
“저에게 방법이 있어요!”
시후의 입이 떨어지기 무섭게 조민이 대답했다.
시후는 어서 더 이야기해 보라는 듯이 바라봤다.
“오빠가 여기 마을 공성전의 지휘권을 갖는 거예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럼요! 제가 보기에 오빠가 오크 부족장과 일대일로 겨루기에는 그만한 방법이 없어요.”
조민이 이야기하는 것은 이곳에 모인 유저들과 NPC들을 이용하여 오크들과 싸우라는 말이었다.
시후도 그 생각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유저들과 친분을 도모하지 않는 NPC나 자신의 퀘스트 클리어만이 목적인 유저들이 시후의 명령을 따를 리 만무했다.
시후는 한숨을 내쉬며 손사래를 쳤다.
“하아, 됐다, 내가 좀 더 생각해보마.”
“그 방법이 제일이에요. 그러니 그들이 오빠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요.”
“무슨 상황?”
시후는 시원하게 대답하지 않는 조민에 슬슬 약이 올랐다.
겉으로는 무표정으로 일관하고 있었지만 내심 속이 탔다.
조민은 그런 시후의 미묘한 표정 변화를 보았는지 씨익 웃으며 시후의 손을 잡아갔다.
“그들을 움직일 지휘권을 받으러 가요. 자~! 어서요!”
시후는 조민이 끌어당기는 대로 일단은 끌려가 주기로 했다.
아무래도 조민의 태도로 보아 더는 설명해 주지는 않을 것 같아서였다.
시후가 나가자 방 안에 있던 이들도 뒤를 따랐다.
퀘스트 여관을 빠져나온 조민은 여전히 시후의 손을 이끌고 남쪽으로 향했다.
한스텔 마을의 남쪽.
좀처럼 시후가 가보지 않은 곳이었다.
남쪽은 이곳 한스텔 마을의 NPC 중에서도 골드 좀 있다는 이들이 주거지를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중세시대 배경에 어울리게 고급진 옷을 입고 하인을 부리며 마차를 타고 다니는 그런 부류들.
언제나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다니는 녀석들은 유저나 NPC 가릴 것 없이 하대하는 녀석들이다.
그런 녀석들과 괜히 부딪쳐 싸우기라도 하면 아까운 시간만 낭비하는 것이기에 그곳을 피해 다녔다.
그런데 그곳으로 들어선 조민은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성 앞에 시후를 끌고 갔다.
“여기가 네가 말한 상황을 만들 곳이야?”
“맞아요. 여기가 한스텔 마을의 영주가 사는 곳이에요.”
영주라면 마을을 다스리는 귀족이라는 소린데 이곳과 그 상황이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문이었다.
그런 시후의 생각을 읽은 건지 조민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이번 퀘스트의 진행에는 영주가 꼭 등장해요. 영주의 권한으로 퀘스트 참여가 결정되거든요.”
“그러니까 네 말은…?”
“맞아요. 영주에게 이번 수성전의 지휘권을 달라고 하는 거예요.”
시후는 그제야 조민이 말한 계획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전투이니 마을의 주인인 영주에게 전투 지휘권을 받아 유저들과 NPC들을 움직이자는 거였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었다.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좋은 방법을 찾은 조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영주가 나한테 지휘권을 줄까?”
“아마도요?”
당연히 시후에게 지휘권을 줄 것이라고 말하는 조민에 시후는 일단 지켜보기로 했다.
이것으로 조민의 능력을 시험할 생각이었다.
만약, 조민이 좋은 방법을 찾고 거기에 일 처리까지 깔끔하게 한다면 천마 시절 곁에 두었던 지괴(智怪)를 대신할 인재로 점찍었다.
그런데 뒤에서 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인호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 여기 영주는 유저를 안 만나주는 거로 유명한데?”
“그거야 뭐, 지금이라도 숨어 들어가면 되지.”
만나주지 않는다면 은신술을 사용하여 숨어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민이 검지를 치켜들더니 좌우로 까딱거렸다.
“놉! 더 좋은 방법이 있어요.”
“그래? 뭔데?”
“영주가 요즘 정신 못 차리는 게 있거든요. 헤헤.”
조민은 시후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리며 윙크를 날리고는 영주성을 향했다.
그러고는 두 손을 입으로 가져다 대며 크게 심호흡하고는 소리를 질렀다.
“환락탑의 주인이 한스텔 마을 영주님을 뵈러 왔습니다!!!”
시후는 여기서 느닷없이 환락탑이 왜 나오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물을 수가 없었다.
영주성에서 NPC들이 부랴부랴 뛰쳐나오는 게 보여서였다.
옷차림으로 보아 하인 같은데 빠르게 달려온 그들은 조민에게 고개를 숙였다.
“진짜요? 환락탑의 주인이 왔다는 게?”
“그럼요, 여기 이분이 바로! 환락탑의 주인이십니다~!”
조민은 두 손을 모아 정중하게 시후를 가리켰다.
그러자 하인 중 하나가 빠르게 등을 돌려 영주성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영주성에서 갑옷을 입은 근위병들이 나오더니 길을 만들었다.
하인들은 시후를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영주님께서 들라 이르십니다.”
“그래?!”
조민의 한마디에 영주를 만날 수 있게 되자 시후는 허허 웃으며 조민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찾은 지괴(智怪)의 손을 꼬옥 잡고는 하인들을 뒤따랐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