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43화 (43/275)

제43화

시후는 김철수와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태산과 인호가 보낸 메시지를 확인했다.

- 시후야! 우리 다 훔쳐 나왔다~ 그런데 장난 아니었어! 엄청나게 살 떨렸다고.

- 우리 먼저 로그아웃할게. 나와서 이야기하자.

둘이 오크 부족 창고에서 만년한철(萬年寒鐵)을 모두 훔쳐 나왔다는 거였다.

보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일을 마치다니.

당장 만나 기특하다며 어깨라도 토닥여 주고 싶었다.

그러는 찰나 김철수가 뜸을 들이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로그아웃을 했다.

다급한 김철수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급한 건 그쪽이니 또 찾아올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시후가 캡슐을 열고 나오자 먼저 나온 태산과 인호가 한걸음에 달려왔다.

둘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장난 아니었어!! 대박!!”

“왜? 무슨 일 있었어?”

“글쎄, 오크 부족장이 우리를 발견한 거야!!”

시후는 그 말에 살짝 놀랐다.

아무리 Safety World 안에서였지만 자신이 가르친 비천잠행술은 그리 허술한 무공이 아니었다.

분명 스킬로 등록이 되고 완벽하게 펼쳐진 것을 확인했다.

그런데 오크 부족장이라는 녀석이 태산과 인호를 발견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자세히 이야기해봐.”

앞으로 일어날 오크와의 전쟁에 대비해 비천잠행술을 간파한 오크 부족장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태산과 인호는 오크 부족장에 대한 설명을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Safety World 커뮤니티에는 NPC, 맵, 몬스터 등에 대한 정보들이 가득했다.

오크 부족장을 검색한 인호는 시후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거기 적힌 것처럼 오크가 Lv. 200대인데 오크 부족장은 Lv. 300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이라는? 추측이라는 거야?”

“응, 아직 아무도 오크 부족장을 잡은 유저가 없거든.”

그 말은 의외였다.

그동안 Safety World를 하면서 시후 또한 많은 정보를 접했다.

2년 전에 출시되어 1년 동안 전 세계 게임 순위 1위의 자리를 놓치지 않은 게임.

재미를 위해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게임을 직업으로 하는 프로게이머들도 있었다.

레벨업과 아이템을 위해서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여 공략하는 이들이 오크 부족장을 내버려 뒀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인호는 그런 시후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이유를 설명했다.

“그게 말이야. 오크 부족장이 출현하려면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 하거든.”

“이벤트? 오크 부족장 출현이 조건부라고?”

오크 부족장의 출현 조건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는 오크들은 대개 300마리선에서 민락을 유지했다.

혹여 빠른 번식으로 그 마릿수가 넘으면 오크들은 알아서 정리된다고 했다.

때로는 부족과 부족 간에 전쟁이 일어나거나.

유저들이 퀘스트를 받아 토벌 사냥을 나간다거나.

식량난에 휘말려 일정 수의 오크들이 분가한다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300마리라는 리미트를 지킨다고 했다.

그런데, 정말, 어쩌다가. 극한의 확률로 300마리의 오크들이 모이는 경우가 있었다.

오크 님비(NIMBY)현상.

시후는 처음 듣는 단어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Not In My Back Yard의 약자인데…. 음…. 시후, 너도 사회 시간에 배웠잖아?”

“……?”

인호는 학교에서 배웠던 것을 떠올려 보라고 보챘다.

하지만 천마 때의 기억만 있는 시후가 경제용어를 기억할 리 만무했다.

둘의 눈에 의심이 깃들기 전에 이럴 때마다 통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까먹었어. 설명 좀 해줘 봐, 쉽게.”

일단 까먹었다고 우기자 인호는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이게 내 뒷마당에서는 안 돼! 이런 뜻인데 오크들이 오크의 이익은 중요시하지만, 자신이 속한 민락에 해가 되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이기적인 행동에서 나타나는 거야.”

“음…. 뭔지 알겠어.”

인호의 말에 딱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천마 시절 정파의 내로라하는 이들의 집안싸움.

그들은 정파 무림에 이익이 된다면 사파인의 목숨 따위는 개똥으로 여겼었다.

하지만 누가 먼저 사파인의 목을 칠 것인가를 두고는 언제나 서로에게 미뤘다.

후에 있을 사파인의 보복에 자기의 안위를 먼저 챙기던 이들의 모습이 지금 인호의 설명과 비슷했다.

인호의 말대로 오크 님비 현상은 여러 오크 부족들이 근접해 있어, 300마리에 대한 제한이 동시에 걸렸을 때 나타나는 거였다.

본래라면 부족 간의 전투가 일어나야 했지만, 자기 종족을 지키기 위해 다른 종족의 마을을 침략한다는 거였다.

그때 리더를 필요로 하는 오크들이 부족장을 선발하게 되면 Safety World에서 이벤트가 발생했다.

시후는 인호의 설명을 들은 후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그럼, 오크 부족장도 어차피 오크라는 건데, 갑자기 그렇게 강해진다고?”

“그게…. 오크 부족장이 되면 몸에 문신을 새기는데 그게 버프라고 하더라고.”

“아하! 그 버프로 엄청나게 강해진다?”

“어. 맞아.”

“그런데 왜 지금까지 오크 부족장이 유저에게 사냥당한 적이 없는 거야?”

“그게, 마을이 침략당하면 오크 부족이 바로 자리를 잡는데 그때 오크 부족장이 부족장이라는 직위를 내려놓고 마을 장로가 되기 때문에 사냥당한 적이 없대.”

인호의 말은 추정 Lv. 300대의 오크 부족장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초보 마을에 오는 고렙 유저가 없다는 거였다.

그 시간과 노력을 다른 곳에 투자하는 게 이득이기에 그러는 거였다.

“오크 부족장을 잡을 수 있는 고렙 유저들에게는 시간 낭비라는 소리구나.”

“그렇지. 그들이 그 이벤트를 접하고 초보 마을로 오는 시간보다 강해진 오크 부족장이 오크들을 모아 근처에 있는 마을을 공격하는 게 빠르기도 하고.”

여기까지 말한 인호는 태산과 눈빛을 교환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에 시후는 단번에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그 근처에 있는 마을이 한스텔 마을이라는 거지?”

“응…. 어쩌냐?”

기껏 환락탑을 만들어 한스텔 마을에 터를 잡기 시작했건만 오크들에 의해 쑥대밭이 되게 생겼으니 걱정을 하는 거였다.

하지만 시후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런데, 이 오크 부족장이라는 녀석은 지능도 높아?”

시후는 커뮤니티에 올라온 영상 하나를 재생시켜 태산과 인호에게 내밀었다.

영상에는 오크 부족장으로 보이는 오크가 성벽 위에서 도끼를 휘두르는 장면이었다.

그냥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도끼를 휘두르며 오크들을 지휘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크들이 성안에 자리를 잡고 마을을 점령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유저들이 공격을 한 것 같았다.

문제는 지능이 낮기로 유명한 오크들이 너무나도 체계적으로 움직였다.

반면, 유저들은 급하게 모였는지 명령하는 이들도 여럿이었고 저마다 스킬만 쏴댈 뿐 성벽을 부수지도 못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지.’

너무나도 한심한 모습들이었다.

그에 반해 오크들은 어디서 구해 왔는지 활이며 창이며 하다못해 바위까지 이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유저들은 떼거리로 달려드는 만큼 떼거리로 죽어 나가고 있었다.

“이거 완전 공성전(攻城戰)이잖아?”

오크들이 지키는 성을 공격하는 그 영상의 끝은 성문도 부수지 못하고 토벌대의 패배로 끝났다.

패배의 원인은 명확했다.

비유하자면 군부대를 민간인이 공격한 것과 같았다.

시후도 공성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었다.

천마 시절, 북방에서 중원을 침략하는 적을 물리치기 위해 성벽을 쌓았고 그것을 활용하는 전투를 곧잘 했었다.

모든 지휘는 지괴 녀석에게 맡겨 뒀었기에 천마가 한 일이라고는 아군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성벽에 서서 전투를 관람하는 거였다.

천마가 왔다는 것만으로도 아군에게는 사기가 충천되었고 적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 부분까지 활용하는 지괴의 전쟁을 자주 보았기에 시후도 공성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았다.

“오합지졸(烏合之卒)도 저런 오합지졸들이 있나, 멍청한 것들.”

시후가 동영상을 멈추며 혀를 차자 태산이 재차 물었다.

“아! 그래서~ 어떻게 하냐고, 한스텔 마을은!”

체계적인 지휘력과 엄청난 버프를 받아 강해진 오크 부족장이 오크들을 이끌고 한스텔 마을로 쳐들어오는 게 뻔한 상황에 저런 느긋한 태도를 보이자 성이 났다.

그런 태산을 보며 시후는 스마트폰을 이리저리 만지더니 다른 커뮤니티 창을 보여줬다.

“걱정하지 마. 이미 손을 써두었으니까.”

“이거 뭐야? 어떻게 벌써 퀘스트가 열렸어?”

태산과 인호는 자신들이 만년한철을 훔쳐 오면서 오크 부족장을 보았는데 어떻게 벌써 오크들이 쳐들어올 것에 대비하는 퀘스트가 생성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시후는 그런 둘에게 퀘스트 여관 마스터와 있었던 일들을 설명했다.

오크들과 다툼이 있어 퀘스트가 생성될 거라 생각은 했었지만 저런 오크 부족장의 등장까지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덕분에 퀘스트가 미리 만들어져 준비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시후의 말을 모두 들은 인호는 목 언저리를 긁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상황에서 만년한철까지 도둑맞았으니 오크들 엄청나게 열 받았겠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셋은 고개를 끄덕이며 멋쩍게 웃었다.

아무래도 불난 집에 부채질, 아니 선풍기를 강풍으로 틀어버린 것 같았다.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

“이번 전쟁에 우리도 참여하자. 내일 로그인하면 바로 퀘스트 수락들 해.”

“알았어.”

싸울 준비를 하라는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셋은 어느 정도 이야기가 마무리되자 방을 나서려고 했다.

그때 시후가 손뼉을 치며 둘을 불러 세웠다.

“아! 맞다! 나 S.W SOFT 직원 만났다?”

“진짜?”

“응, 방금 만나서 시계탑 날려버린 게 나라고 이야기했어.”

“그래서?”

“그런데 나보고 버그유저가 어쩌고저쩌고하길래, 무시하고 Safety World 게임 언제 종료되느냐고 물었지.”

시후는 자신이 김철수를 만났던 일을 둘에게 이야기했다.

그러자 태산과 인호는 무언가 체념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시후야, 아무리 네가 예전의 기억을 많이 잃었다지만, Safety World가 A.I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것까지 잊어버릴 수가 있냐?”

“나도 A.I으로 운영되는 것 정도는 알거든? 그런데 그거랑 그게 무슨 상관인데?”

시후는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둘의 반응에 살짝 열이 올랐다.

태산과 인호는 한숨을 내쉬며 시후의 등을 밀고 캡슐 방을 빠져나갔다.

거실까지 걸어가면서 인호가 시후의 어깨를 토닥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우리 시후, Safety World 공부 좀 해야겠는데?”

“무슨 게임을 하는데 공부까지 해?”

“어허! 모르는 소리. 게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하는지는 그 게임을 완전히 이해했느냐의 차이로 결정된다고!”

공부라는 말에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을 보이자 태산과 인호는 강경한 자세로 시후를 거실 소파에 앉혔다.

태산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TV 리모컨을 조작하여 스마트 TV를 켰다.

그러고는 빠르게 인터넷을 연결하고는 Safety World 사이트에 접속했다.

태산이 들고 있던 리모컨을 인호에게 넘기자 인호는 리모컨 커서를 이용해 시후에게 설명했다.

“봐봐. 여기를 클릭하면 기본 정보가 나와.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상세 정보가 나오고….”

인호는 시후에게 Safety World 사이트에 기재되어 있는 여러 가지 정보를 볼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시후 또한 효율적으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말에 집중했다.

시후가 Safety World의 정보를 훑는 사이 태산과 인호는 굶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라면을 끓였다.

그사이 시후는 빠르게 정보를 훑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아… 젠장.”

“크크큭!”

시후가 한숨을 내쉬며 욕설을 내뱉자 태산과 인호는 키득키득 웃었다.

자신을 비웃는 모습에도 시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S.W SOFT 직원 김철수에게 한 질문이 얼마나 한심한 것인지 깨달아서였다.

“너희들, 진작 좀 말해주지 그랬냐. A.I 시스템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게임이 사라질 경우는 없다고!”

“그거는 완전히 기초 상식이라서 네가 알고 있는 줄 알았지.”

“아이고, 두(頭)야!”

Safety World는 A.I 시스템으로 운영되기에 다른 게임들과는 다르게 게임사가 종료할 필요가 없었다.

게임을 플레이할 유저가 없으면 모를까.

단 1명의 유저라도 있으면 A.I 시스템은 가동되기에 Safety World는 영원히 존재할 게임이었다.

거기에 스스로 컨텐츠를 생성하고 스스로 관리하기에 솔직히 S.W SOFT가 하는 일이라고는 별것 없었다.

유저들에게 과금을 유도하는 이벤트를 개최하거나 버그를 발견하고 A.I 시스템에 입력하는 게 전부였다.

그 외에도 시후는 오늘까지 게임에 접속하면서 했던 행동들이 순전히 맨땅에 헤딩한 꼴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오늘 밤에는 그간 우격다짐식으로 벌였던 일들을 떠올리며 이불킥을 날리느라 밤을 새울지도 몰랐다.

시후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라면을 다 먹고 설거지까지 하는 태산과 인호를 보고는 피식 웃었다.

“그동안 너희 내 옆에 있느라 꽤 창피했겠다?”

자신 때문에 게임을 하면서 다른 유저들에게 창피를 당하지는 않았느냐는 시후의 질문에 태산과 인호는 어깨를 으쓱였다.

“글쎄? 별로? 네가 아프기 전에는 너 따라 게임을 하느라 재미를 못 느꼈는데 요즘은 오히려 네 그런 어리바리한 모습이 재미있었다.”

“맞아. 크큭, 저번에 들으니까, 너 루프 앞에서 깽판도 쳤다며?”

“아! 그건 좀 잊자!!”

그렇게 셋은 시후의 흑역사를 끄집어내며 웃음이 떠나지 않는 시간을 보냈다.

이들이 이렇게 웃고 떠드는 사이 Safety World는 시후의 의도치 않은 계획대로 오크들과의 전쟁 퀘스트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많은 유저들이 전쟁에 대비하는 퀘스트를 받았다.

대장장이들은 무기를 만들고 건축가들은 성벽을 보완하고 채집꾼들은 식량을 확보하는 퀘스트를 했다.

또 유저들은 Lv. 200대의 오크들과 싸우기 위해 최대한 레벨을 올려두기 위해 무리해가면서 사냥 퀘스트를 진행했다.

태산과 인호 역시 시후를 따라다니며 고레벨 몬스터들을 사냥하며 폭렙을 하여 Lv. 150을 맞추었다.

Safety World를 방송하는 프로그램에서는 이번 오크 부족과의 전쟁을 메인 컨텐츠로 소개했고, 많은 이목이 쏠렸다.

그러는 사이 시후 역시 레벨업을 이루어 이전보다 내공을 더욱 회복했다.

그리고 어느새 제갈세가와 약속한 1주일이라는 시간이 되었기에 시후는 홀로 세가를 찾았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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