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2화
시후는 김철수의 환락탑 희(喜)층 경험을 모두 지켜봤다.
환락탑의 실질적인 주인이기에 가능했다.
“저 녀석이 S.W SOFT의 직원이라는 말이지?”
자신의 내공을 회복할 수 있는 Safety World을 만든 회사의 직원이라니 관심이 갔다.
그리고 혹시나 이 게임이 사라지게 되면 내공을 회복하는 시간이 길어질 거라는 생각에 불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S.W SOFT 직원인 김철수를 보자 흥미가 일어 따라나섰다.
김철수는 환락탑을 경험 후 바로 로그아웃을 하지 않았다.
이왕 온 김에 시계탑을 날려버린 그 유저에 대한 정보를 직접 알아보려는 심산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저들이 몰리는 곳이 적합하다는 생각에 퀘스트 여관을 찾았다.
역시나 시계탑이 환락탑으로 바뀌면서 그전 시계탑을 날려버린 유저에 대한 이야기는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김철수도 한자리 꿰차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그 유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있습니까?”
“에이~! 그걸 아는 사람이 어디 있나? 그때 그 엄청난 스킬 덕분에 주위에 몰려 있던 유저들이 훨훨 날아다녔는데.”
“에이! 그래도 누군가는 그가 어디로 갔는지 본 사람은 있을 거 아닙니까?”
“아! 그거라면 다들 알고 있지.”
“그래요?! 어디랍니까?”
김철수는 드디어 실마리를 찾았다는 생각에 살짝 흥분했다.
그런 김철수를 보며 다른 유저들을 실실 웃기만 했다.
김철수는 자신의 물음에 대답은 하지 않고 실실 웃기만 하는 유저들을 보며 다시 물었다.
“거참, 좀 알려주쇼.”
안달 복걸하는 김철수의 반응을 재미있게 지켜보던 유저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여기.”
“네?”
“여기, 퀘스트 여관이라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계탑을 날려버린 유저가 퀘스트 여관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 유저가 있었다.
지금도 이곳이 북적이는 이유가 그 유저를 한 번이라도 보겠다는 이들이 모여서였다.
김철수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돌려 컵을 닦고 있는 퀘스트 여관 마스터를 봤다.
마스터라면 무언가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 마스터에게로 가려는 김철수를 다른 유저들이 잡았다.
“소용없어. 우리도 여러 번 물어봤는데 마스터는 입을 꾹 다물더라고.”
“진짜요? 정보료를 줘도요?”
정보료는 퀘스트 여관 마스터의 부수입과도 같았다.
퀘스트를 주고 그것에 대한 추가 정보를 줄 때 언제나 챙기는 거였다.
또한 퀘스트와 관련 없는 정보도 골드를 지급하면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시계탑을 날려버린 유저에 대한 정보는 절대 얻을 수 없었다.
어떤 유저가 100골드를 들이밀었을 때 마스터가 똥 씹은 표정으로 매몰차게 내친 일은 이미 유명했다.
김철수도 그 이야기까지 듣자 가망이 없다는 생각에 포기하고는 술과 안주를 즐기기 시작했다.
퀘스트 여관 마스터는 김철수가 있는 테이블에서 자기에 관한 이야기가 오가자 닦고 있는 컵을 더욱 열심히 닦았다.
이것에라도 집중하지 않으면 속에서 열불이나 참을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뽀득- 뽀득-
어찌나 열심히 컵을 닦는지 뽀득거리는 소리가 퀘스트 여관을 울렸다.
“마스터? 그러다가 컵이 닳아 없어지겠네.”
“…….”
“마스터? 이거 리필 좀 부탁해?”
“…….”
“마스터? 여기 막걸리 같은 전통주는 없나?”
“아! 쫌! 후 님, 왜 이러십니까? 네?!”
마스터 앞에 앉아 있는 유저는 시후였다.
시후는 김철수를 따라 들어와 곧장 마스터 앞에 있는 바 테이블에 자리했다.
맥주와 안주를 마스터가 건네주자 그것을 홀짝거리며 김철수의 이야기를 엿듣고 있었다.
그러다 마스터의 반응을 보고 살짝 골려준 거였다.
“왜? 내가 뭘?”
시후는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냐며 어깨까지 으쓱이며 약 올렸다.
그 모습에 마스터는 고개를 빼꼼히 들이밀고는 작게 속삭였다.
“하루에도 사람들이 열댓 번씩 후 님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오는데 아주 죽겠습니다.”
“그냥 모르는 체하면 되는데 마스터가 왜 죽지?”
“아니, 그거야, 골드를 들이미니까….”
“아~, 그러니까 골드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내 정보를 팔면 좀 챙길 수 있는데 아쉽다?”
“그렇…. 크흠, 아니, 뭐 꼭 그렇다는 거는 아니지만요.”
마스터는 불평을 내뱉다가 시후의 표정을 보고는 거두었다.
여기서 더 투정을 부렸다가는 좋은 꼴을 못 볼 것 같아서였다.
시후는 그런 마스터를 지긋이 보다가 맥주를 한 모금 홀짝이고는 작게 속삭였다.
“나한테 좋은 정보가 있는데….”
“정보요?”
“그래, 아마도 조만간 오크 무리 쪽에서 큰 사달이 날 거야.”
“네? 그게 무슨?”
“걔네 창고가 탈탈 털릴 예정이거든.”
마스터는 느닷없는 시후의 말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크가 어떤 녀석들인데 지네 창고를 털린단 말인가.
1km 밖에서 나타나는 적의 냄새를 맡는 녀석들의 창고를 털다니.
말도 안 되는 헛소리였다.
그런데 그 헛소리를 시후가 하니 어째서인지 지금 당장 창고가 털리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만약, 시후의 말대로 그렇게 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무리를 지어 부족을 만든 오크들의 번식력이란 상상을 초월했다.
때문에 녀석들은 언제나 많은 자원을 가지고 싶어 안달했다. 특히, 식료품에 대한 집착이 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녀석들이 사냥을 통해 나온 부산물을 근처 마을에 팔아 필요한 것을 유통했다.
그런데 부산물을 모아놓은 창고가 탈탈 털린다면.
그 무식한 녀석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뻔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오크 부족이 있는 곳에서는 약탈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그렇겠지?”
시후 역시 그럴 거라 생각했다.
마스터는 이미 최악의 상황까지 예측한 시후가 태평한 모습을 보이자 눈을 번쩍였다.
알고 지낸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스터가 아는 시후는 대책 없이 무언가를 저지르는 유저가 아니었다.
“그것을 두고만 보실 겁니까?”
“그럼?”
“막으실 거 아닙니까?”
“내가? 왜?”
시후의 나 몰라라 하는 대답에 마스터는 살짝 당황했다.
하지만 곧 그 이유를 알게 됐다.
“나는 성인군자가 아니야. 그리고 오히려 나로서는 오크들이 쳐들어오는 게 더 이득인데 내가 왜 막겠어?”
“오크들이 마을을 침략하는데 왜 후 님께 이득입니까?”
“몰라서 물어? 굳이 내가 거기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되잖아?”
“아…!”
그제야 시후가 계획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 마스터였다.
어떤 방법으로 창고를 터는지는 모르겠지만 오크 사냥을 손쉽게 하려고 녀석들을 이곳으로 끌어들이는 거였다.
그렇다고 의문점이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그 많은 오크를 혼자 사냥하려고 하십니까?”
“그럴 리가. 오크들이 한번 움직이면 300마리는 움직인다며? 그럼, 만약 그 많은 오크가 마을을 공격해 오면? 마스터는 어떻게 할까?”
“그거야 당연히 퀘스트를…. 아!”
시후는 그제야 마스터가 자신이 계획한 것을 이해한 것 같아 미소를 지었다.
저번에 루프를 타고 케냔 협곡으로 갔을 때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번거롭다는 거였다.
루프는 혼자서 이용도 못 하고, 퀘스트를 받고 보상도 받으려면 결국 마을로 돌아와야 했다.
그렇게 버리게 되는 시간을 아까워하던 차에 기회가 왔다.
때마침 오크 부족의 창고를 털어야 하는 상황이 생긴 거였다.
‘뭐, 내 검을 만들기 위해서 그러는 거기는 하지만.’
어쨌든, 태산과 인호가 오크 부족의 창고를 터는 순간 마을을 침략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면 가만히 앉아 경험치들이 찾아오는 상황을 즐기면 될 거였다.
덤벼드는 수가 살짝 걱정되었지만 생각해보니 마을이 침략당하는데 마을 NPC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아마도 ‘마을을 지켜라’ 같은 퀘스트를 이곳저곳에 뿌릴 거였고, 유저들을 그것을 받아들여 오크들과 싸울 거였다.
오크 300마리를 아직은 혼자 감당하기에 벅찰 거라는 생각에 시후가 짜본 계획이었다.
마스터는 시후의 계획을 알게 되자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시후의 생각대로 오크가 쳐들어오려는 분위기를 보이면 마을 이곳저곳에서 퀘스트가 생성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저들에게 받는 수수료가 줄어들 테고.
그런데, 만약. 다른 녀석들보다 먼저 그 퀘스트를 만들어서 뿌린다면?
“수수료를 독점할 수 있어. 300마리의 오크들이 쳐들어오는 퀘스트의 수수료라면…. 이게 얼마야?!”
현재 마을에 있는 유저 수로만 대충 계산해도 200명은 될 것이었다.
그들에게 1골드씩만 받아도 수수료는 200골드라는 소리였다.
‘거기에 연계 퀘스트들까지 발생한다면…. 미친!’
마스터는 비워진 맥주잔을 흔드는 시후의 모습에 뒤로 휙 돌았다.
그러고는 진열장 가장 안쪽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아주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감싸 쥐고는 방금까지 닦고 있던 크리스털 잔에 따랐다.
크리스털 잔의 불규칙한 형태 때문인지 잔에 채워지는 것의 색이 알록달록해 보였다.
마스터는 들고 있던 병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크리스털 잔에 덮개를 씌워 시후에게 스윽 디밀었다.
“이게 아주 귀한 술입니다. 아무나 드리는 게 아닌데, 제가 특별히 후 님이시니까 드리는 겁니다!”
“이게 그렇게 귀한 술이라고?”
“그럼요! 여기 한스텔 마을의 영주는 이 ‘레인보우 워터(Rainbow Water)’만 마실 정도로 아주 귀하고 맛이 좋은 술입니다!”
천마 시절 중원부터 서역까지 술이란 술은 모두 마셔 보았었다.
그랬기에 애주가로 정평이 나 있는 한스텔 마을의 영주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었다.
그런 영주가 즐겨 마시는 술이라니.
잔뜩 기대한 눈빛으로 크리스털 잔을 잡았다.
마스터가 덮어 놓은 덮개를 살짝 들어 올리자 형형색색의 영롱한 자태를 뽐내는 액체가 보였다.
그리고 색에 어울리게 코끝을 자극하는 향긋한 내음이 콧속을 파고들어 왔다.
아직 입에 대보지 않았는데도 그 맛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하는 술이었다.
‘대단한데?’
크리스털 잔을 들어 올리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천천히 레인보우 워터를 입 안으로 흘려 넣자 혀끝에서부터 짜릿한 느낌이 전해졌다.
식도를 타고 넘어가며 위까지 닿는 동안 후끈거리는 느낌이 확실히 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처음 맡았던 향기가 콧속에서 감돌다 뿜어져 나오자 비로소 레인보우 워터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시후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마스터를 바라봤다.
그 흡족한 미소를 보자 마스터는 방긋 웃었다.
“하, 하하, 마음에 드실 줄 알았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앞으로 이런 거 잘 부탁하지. 마스터가 나를 배반하지 않을 때까지 말이야?”
“어구! 무슨 그런 큰일 날 소리를 하십니까. 이제 저는 후 님과 한배를 타는 전우입니다. 전. 우!”
시후의 엄포에도 마스터는 넉살을 떨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내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해서 배반은 생각하지 않겠군.’
당근과 채찍을 적당히 휘두른 결과였다.
앞으로 종종 이런 일을 계획할 때 마스터에게 귀띔해줄 생각을 했다.
그때 로비에서 술을 마시던 김철수가 일어나는 기척을 느꼈다.
아무래도 밖으로 나가 로그아웃을 할 생각인 것 같았다.
시후는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붙었다.
김철수는 한스텔 마을 광장 한복판에서 로그아웃을 준비하다가 옆으로 다가온 시후를 발견했다.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내가? 나보다는 당신한테 있을 것 같은데?”
“네? 제가 왜….”
“나 찾아다닌 거 아니었어?”
“설마?!”
김철수는 눈을 번뜩이며 이자가 바로 자신이 찾던 그 유저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후는 놀란 표정에 어찌할 줄 몰라 하는 김철수를 향해 고개를 까딱이며 따라오라고 했다.
김철수는 시후의 뒤를 바짝 따라갔다.
둘이 향한 곳은 마을 입구의 언덕이었다.
김철수는 이곳의 언덕이 사라지고 커다란 웅덩이가 나타난 영상을 떠올렸다.
“당신이 정말 그 유저입니까?”
“네가 찾는 게 여기 언덕을 날려버린 사람을 찾는 거라면 내가 맞아.”
김철수는 눈을 크게 뜨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저는 S.W SOFT 운영기획실장 김철수입니다.”
“그래. 나도 반가워~”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혹시 버그 유저….”
“잠깐, 내 질문 먼저.”
“네?”
시후는 김철수의 말을 끊었다.
말을 하던 호흡 중간에 틈을 찌르고 들어갔기에 김철수는 말문이 턱 막혔다.
“너희가 만든 이 게임, 언제까지 운영할 생각이냐?”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Safety World 말이야. 게임이니까 언젠가는 서비스를 종료할 거잖아? 아니야?”
시후의 말에 김철수는 눈을 껌뻑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 세계 사람이라면, 아니, Safety World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물어오자 이상하게 생각했다.
하는 행동이나 벌인 일들을 보면 보통의 유저는 아닌데 왜 저런 바보 같은 질문을 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시후는 질문에 답은 하지 않고 뜸을 들이는 김철수의 모습에 눈을 흘겼다.
“말하기 싫으면 말고. 다음에 보도록 하지. 로그아웃.”
“자, 잠깐….”
시후는 그렇게 마을 입구 앞에 김철수를 버려두고 로그아웃을 해버렸다.
김철수는 자신이 잠시 뜸을 들이는 순간 시후가 사라지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금 그의 표정은 딱. 닭 쫓던 개의 표정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