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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41화 (41/275)

제41화

투산은 고급 소파에 앉아 제 눈앞에 벌어지는 믿기지 않는 광경에 볼을 꼬집었다.

지금 이곳은 투산이 Safety World를 하면서 처음 경험하는 일로 가득했다.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성인 남성보다 두 배나 큰 케냔 협곡의 주인 타란이었다.

타란은 저번에 채광굴 앞에서도 그렇고 8개의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는 머리를 조아렸다.

그런 조신한 모습의 타란 옆으로는 시계탑의 주인인 프랑시스도 있었다.

투산도 시계탑 퀘스트를 해본 적이 있었기에 프랑시스의 얼굴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때와 변함없이 귀여운 외모와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모습이었지만 어른 흉내를 내지 않아서인지 수수함이 보였다.

풋풋한 소녀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강조하는 듯한 표정을 보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둘의 모습에 투산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저 두 NPC가 안하무인 유저 앞에서 어린 양의 모습을 보이는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투산은 자신의 옆에 앉아 있는 태산과 인호에게 슬쩍 물었다.

“저기…. 누가 지금 이 상황에 대해서 말씀 좀 해주시오.”

“으잉? 이 아저씨 말투는 또 왜 이래?”

투산의 이상한 말투에 태산이 거부감을 보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인호가 태산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Safety World는 전 세계 게임 랭킹 1위를 1년째 놓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애용하는 게임이었다.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게임을 하니 성향이 남다른 이가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Safety World를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이 게임은 또 하나의 세상이라며 성별이나 외형을 크게 바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말은 저 배불뚝이 아저씨의 외모도 어느 정도 현실의 모습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는 거였다.

태산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에 인호가 태산을 나무랐다.

태산은 인호의 눈짓에 뒷머리를 긁적이며 투산을 향해 입을 열었다.

“죄, 죄송합니다.”

“하, 하하, 아니네, 내 말투가 이런 걸 어쩌겠나? 현실에서 쓰는 말투를 좀 고쳐보려 했지만, 한 세월 이런 말투를 써서 그런가? 그리 쉽지가 않더군.”

“아… 네,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 죄송해지네요.”

투산의 말은 게임 밖에서도 나이가 상당히 지긋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말에 태산은 더욱 죄송스러웠다.

그런데 그때 이들의 대화에 시후가 껴들었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하고 이리 와봐.”

“아, 그럴까요?”

투산은 시후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 시후의 옆으로 걸어가 앉았다.

태산과 인호는 그런 투산의 반응에 허탈하게 웃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유저에게 당연하듯이 반말하는 시후나 그 반말에 당연하듯이 반응하는 저 아저씨나.

태산과 인호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더는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깊게 생각해봐야 본인들의 손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후는 투산이 옆에 자리하자 타란을 불렀다.

“타란, 너 정령이라며?”

“네! 어떻게 아셨어요?”

타란이 정령이라는 것이 비밀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령에 대한 선입견 때문인지 타란의 모습을 보고 정령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타란도 굳이 자신이 정령이라고 광고를 하거나 소개를 하지 않았다.

그저 케냔 협곡 정상에 올라오는 유저들을 사냥할 뿐.

그런데 자신이 정령이라는 것을 시후가 먼저 밝히자 기분이 좋았다.

자신을 정령이냐고 묻는 시후의 표정에는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

오히려 잔뜩 기대에 찬 표정이었다.

시후는 타란의 대답에 씨익 웃으며 투산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뭐해? 정령 맞다잖아? 네 일 해야지?”

“아니, 그거야…. 내 볼일이 끝나고 한다 하지 않았소?”

투산은 시후가 정령의 축복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반대를 했다.

지금 당장 정령의 축복을 받는다면 시후는 검을 만들라며 보챌 게 뻔했다.

환락탑을 즐길 시간도 부족하건만 그러기 싫었다.

그런데 그때 그런 둘의 모습을 지켜보던 타란이 눈빛을 번뜩였다.

“주인님, 저 유저가 주인님의 명령에 반하는 것입니까? 감히?!”

“히익!!”

투산은 타란이 8개의 다리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나자 기겁하며 시후의 뒤로 숨었다.

어차피 게임이었기에 죽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타란에게 죽는 것은 달랐다.

타란은 유저를 거미줄로 꽁꽁 싸맨 후에 서서히 죽였기에 유저는 아주 큰 페널티를 받으며 로그아웃을 해야 했다.

그리고 거미줄에 묶여 있는 그 지루한 시간을 유저들은 유독 싫어했다.

투산도 마찬가지였기에 시후의 뒤에 숨어 어떻게 좀 말려보라고 보챘다.

그러자.

“타란, 앉아.”

“네, 주인님~”

시후의 한마디에 바로 착석하는 타란이었다.

저번에도 보았지만, 케냔 협곡의 주인인 여왕 거미의 저런 모습은 참 적응이 되지 않았다.

시후는 등 뒤에 있던 투산의 옷깃을 잡고 옆으로 끌어냈다.

“환락탑! 해결해 준다니까? 풀코스로! 프랑시스!”

“네~ 주인님~!”

이번에는 프랑시스는 경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여기 투산이 희로애락(喜怒哀樂) 4개 층 모두 대기 시간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등록해줘.”

“네?”

프랑시스는 시후의 말에 살짝 놀라며 투산을 힐끗 봤다.

그냥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배불뚝이 아저씨처럼 보였다.

시후의 말을 따르기 위해서는 프랑시스가 무리를 해야만 했다.

24시간이라는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프랑시스의 낙인이 필요했다.

그것도 프랑시스가 직접 손등에 입을 가져다가 대서 새기는 낙인이 말이다.

기름때가 덕지덕지 묻은 저 우악스러운 손에 입술을 대기 싫었다.

아니, 만지기도 싫었다.

“후님, 꼭 해야만 하는 건가요? 저… 생각보다 비위가 별로라….”

시후는 프랑시스가 자신의 명령에도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자 대충 눈치를 챘다.

프랑시스가 낙인을 어떻게 찍는지 알았기에 이해가 갔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기에 프랑시스를 위해 손을 좀 쓰기로 했다.

“프랑시스, 이리 와봐.”

시후의 부름에 프랑시스는 우물쭈물하며 천천히 다가왔다.

시후는 프랑시스가 지척까지 다가오자 자리에서 일어나 프랑시스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한 손에 쏘옥 들어오는 앙증맞은 프랑시스의 작은 손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쪽-

“흐읍!”

그 앙증맞은 손에 시후의 입술이 닿는 순간 프랑시스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손끝에서부터 타고 흐르는 전율에 주저앉을 뻔했다.

극한의 인내심으로 버티고 서있는 프랑시스의 귓가에 시후는 작게 속삭였다.

“들어, 줄 거지?”

투산에게 환락탑 풀코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주라는 시후의 말에 프랑시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투산은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이곳에서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은 몰랐었기에 충격이 새삼 컸다.

그때 어디선가 스산한 기운이 풍겨와 투산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여왕 거미 타란이 눈에 핏발까지 세우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뛰어들어 프랑시스와 시후를 갈기갈기 찢어버릴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렇게 투산이 타란의 눈빛에 몸이 얼어붙는 사이 시후 또한 타란의 시선을 느꼈다.

‘그래, 너도 있었지.’

시후는 아직 멍해져 있는 프랑시스를 뒤로하고 타란에게로 걸어갔다.

타란은 시뻘게진 눈을 부릅뜨고는 시후를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시후는 걸어가는 걸음 그대로 허공을 밟기 시작했다.

타란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허공답보(虛空踏步)를 펼쳤다.

그렇게 타란과 눈높이를 맞추고는 손을 들어 올렸다.

목적지는 타란의 윤기 있는 흑발.

시후는 타란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다가 천천히 뺨으로 턱으로 다시 반대쪽 뺨으로 옮기며 쓰다듬었다.

아주 세심한 터치였기에 타란은 마치 깃털이 얼굴을 스치는 듯 느껴졌다.

타란의 눈빛이 풀어지며 동공이 흔들리는 순간 시후는 손을 멈추며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정령의 축복, 필요한데, 해. 줄. 거. 지? 타란?”

마지막에 타란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순간 시후의 눈은 뜨겁게 타올랐다.

타란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읽을 수 있었다.

15세 게임에는 어울리지 않는 정열적인 의미였다.

타란은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삼켜가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홱 돌려 여전히 핏발선 눈으로 투산을 바라봤다.

“인간! 축복은 언제 필요하지?!”

“허….”

투산은 터치 몇 번과 말 몇 마디로 타란과 프랑시스를 설득한 시후를 보며 뭐라 할 말을 잃었다.

이 정도면 시후의 직업이 카사노바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시후는 자신을 바라보는 투산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제 만년한철만 구해오면 되는 거지?”

“아, 그렇소.”

“좋아, 만년한철을 구해오는 동안 송곳니와 축복에 관한 일을 마치고 내가 원하는 검을 만드는 순간! 환락탑 풀코스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

“조, 좋소!”

투산은 어차피 환락탑의 4개 층을 모두 이용하려면 4일이라는 시간이 걸렸기에 시후의 요구를 허락했다.

그러자 투산의 눈에 스테이터스 창이 떠올랐다.

“헐! 이럴 수가, 이게 퀘스트로 생성된다니?”

“응?”

“보시오.”

투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눈앞에 나타난 스테이터스 창을 시후에게 공유했다.

[히든 퀘스트 발생.]

[누구도 만들어본 적이 없는 검을 만들어라.]

[대장장이로서의 능력을 시험받을 정도로 대단한 검을 만들어라, 0 / 1]

[필요 물건 : 만년한철(0/10), 정령의 축복(0/1), 드라큘라 백작의 송곳니(1/1)]

[보상 : 대장장이 경험치, 숙련도, 명성, 골드.]

시후는 자신이 부탁한 검을 만드는 것이 퀘스트로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태산과 인호를 불렀다.

그의 인호가 나서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돌발 퀘스트는 히든 퀘스트일 확률이 높다고 했거든? 시후 네가 하는 일들이 모두 기존의 방식과 달라서 그런가 보다.”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시후는 자신이 특별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니고 이제는 적응할 만했다.

태산은 퀘스트의 내용 중 만년한철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런데 시후 너, 만년한철도 갖고 있었어? 저거 엄청 비싼 건데?”

태산은 드라큘라 백작의 저장고를 떠올렸다.

그때 시후의 인벤토리로 엄청난 양의 아이템들이 들어갔었기에 그중에 있는지 물은 거였다.

그 물음에 시후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태산과 인호를 바라봤다.

흠칫-

순간 태산과 인호는 알 수 없는 오한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시후는 둘의 어깨에 슬쩍 손을 올렸다.

“그건 너희들이 가져올 거야.”

“뭐? 우리가? 왜?”

“그럼 내가 가리? 여기에 저 둘을 두고?”

시후는 고개를 까닥여 타란과 프랑시스를 가리켰다.

태산과 인호는 그 말에 시후가 오기까지의 사태를 되새기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렇다고 만년한철을 얻으러 가는 장소에 대한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 그래도! 거기에 사는 오크들을 우리 둘이서 무슨 수로 해결하고 들어가?”

“맞아! 토벌대를 구성해도 한 달은 걸릴 텐데?”

인호의 말에 태산이 맞장구를 쳤다.

시후는 검지를 치켜세워 좌우로 흔들었다.

“놉! 누가 쳐들어가래? 몰래 들어가서 만년한철만 스윽 가져오라는 거야.”

“몰래? 오크들을 어떻게 따돌리고…. 설마, 비천잠행술?”

“정답!”

“와…. 그걸 이렇게 활용하는 거 보소! 소름!”

그제야 시후가 자신들에게 이 일을 시키는 이유를 깨달았다.

시후의 말대로 비천잠행술이라면 오크들의 시각, 후각, 청각을 속이고 만년한철을 구해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후도 둘을 따라 일어나며 타란과 프랑시스와 투산을 향해 말했다.

“그럼 둘은 투산이 말하는 걸 들어줘. 투산은 나와 친추하고, 필요한 거 있으면 쪽지 보내고.”

“알겠소.”

투산은 시후의 말에 빠르게 친추를 걸었다.

시후는 친구 목록에 투산이 등록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태산과 인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현실 세계에서 펼치던 비천잠행술을 Safety World 스킬로 등록시키려는 거였다.

그 방법은 일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기에 빠르게 진행됐다.

현실 세계에서처럼 오감을 닫거나 귀식대법을 하는 것은 아니었고 정확한 타이밍에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태산과 인호에게 스킬 생성 메시지가 나타났다.

일단 스킬 레벨을 올려야 오크 무리 안으로 들어갔다가 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약 1시간 정도를 더 투자해 숙련도를 올려줬다.

“좋았어, 그 정도면 다녀올 수 있겠다.”

“그러게, 그럼, 우리 다녀온다?”

“그래, 혹시나 만년한철 말고 좋아 보이는 게 있으면 그것도 챙겨오고.”

“그건 당연하지!”

셋은 오랜만에 환하게 웃으며 주먹을 맞대었다.

언제부터인가 시후는 둘과 헤어질 때면 이렇게 주먹을 맞대었다.

태산이 가르쳐준 것이었지만 왠지 주먹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기원하는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태산과 인호는 루프를 타기 위해 떠났다.

환락탑 밖에서 둘을 배웅하던 시후는 대기표를 뽑고 즐비해 있는 유저들을 봤다.

“음~ 좋아, 장사가 아주 잘되고 있어, 응? 저 자식은 뭐야?”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유저가 눈에 들어왔다.

착용하고 있는 장비로 보건대 Lv. 50은 되어 보였다.

그런데 환락탑 앞에서 엄청 놀라는 모습이었다.

Lv. 50이라면 한창 게임을 할 때인데 이곳에서 가장 핫한 환락탑을 이제야 발견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시후는 다른 이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 유저에게 따라붙었다.

그 유저는 S.W SOFT 운영기획실장 김철수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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