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40화 (40/275)

제40화

악몽의 시계탑, 이제는 환락탑이라 불리는 그곳의 최상층에서 태산과 인호는 눈치를 보고 있었다.

고급 소파에 앉아 있는 것과는 다르게 둘은 상당히 안절부절못했다.

“야, 시후는?”

“좀 전에 대장장이 누굴 만나야 한다며 나갔어, 그런데 왜 저 둘이 같이 있는 거냐?”

“난들 아냐? 와씨…. 겁나 살벌하네.”

태산의 말대로 방 안은 냉기가 쌩쌩 돌 정도로 살기가 요동쳤다.

사건의 시작은 환락탑에 들어서고부터였다.

제갈세가를 다녀온 후 몸 좀 풀어 보겠다고 Safety World에 접속한 셋은 시후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개걸폭렬권과 투신검각권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함이었다.

Safety World에서 숙련도는 스킬 성공률에 영향을 미쳤다.

스킬을 사용한다고 모두 발동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였다.

그나마 태산과 인호가 시후에게 배운 것들은 기를 운용하여 펼치기에 성공 확률이 높았다.

거기에 시후의 정확한 가르침이 더해져 빠르게 숙련도를 올릴 수 있었다.

시후는 적당한 시점에 정확한 지적을 통하여 두 번에 한 번은 성공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마치 버프를 쓴 것처럼 둘은 잠깐 사이에 숙련도 레벨을 1단계나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태산과 인호가 신나게 숙련도를 올리는 사이 시후는 고민에 빠졌었다.

좀 더 효율적으로 레벨업에 박차를 가할 방법을 찾는 거였다.

그에 인호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을 알려 줬다.

바로 템빨.

좋은 아이템을 착용하고 높은 레벨의 몬스터를 사냥하거나 퀘스트를 클리어한다면 빠른 레벨업이 가능하다고 했다.

문제는 시후 레벨이 너무 낮아 좋은 아이템의 레벨 제한에 걸린다는 거였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아이템 제작이었다.

입맛에 맞는 아이템을 만들어 쓸 수 있다는 소리에 시후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고는 둘에게 환락탑에 먼저 가 있으라는 말과 함께 감감무소식이었다.

그렇게 둘은 시후 없이 프랑시스를 찾아갔다.

그런데 최상층에 올라 방에 들어서는 순간 둘은 깜짝 놀랐다.

프랑시스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태산과 인호도 익히 잘 아는 NPC를 노려보고 있었다.

타란.

케냔 협곡의 타란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말이 들렸다.

“주인님은 어디 계시지?”

“네 주인을 왜 여기서 찾나?”

“주인님의 체취가 이곳에서 맡아지니 그렇지. 너 같은 어린 계집한테서 맡아지는 것이 믿을 수 없지만 말이다.”

“뭐? 어린 뭐?! 이런 아줌마 주제에!!”

프랑시스는 자신을 어린아이라고 놀리는 타란을 향해 나이 공격을 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말에 타란은 눈을 내리깔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어때서? 아가야, 남자들은 다~ 이 언니 같은 성숙미를 좋아한단다?”

“이! 이!!”

타란의 놀림에 프랑시스는 이를 갈며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둘을 보며 태산과 인호는 걱정이 커졌다.

둘이 싸우게 된다면 엄청난 골드를 들여 리모델링한 환락탑이 무너져 내릴 게 뻔했다.

이곳에 들어간 골드가 얼마며 투자한 노력과 시간이 얼마인데 그걸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결국,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일어나 태산은 프랑시스에게, 인호는 타란에게 달려들었다.

“워워, 프랑시스? 진정 좀 해. 그러다 큰일 나겠다.”

“타란, 좀 진정해요, 여기서 싸우면 서로 곤란해져요.”

태산과 인호의 말에 프랑시스와 타란은 잠시 숨을 돌렸다.

그 모습에 태산과 인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빠르게 메시지 창을 열어 시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시후야, 어디야? 여기 큰일 났어!!

- 시후야!! 좀 와봐! 타란과 프랑시스는 우리가 맡기에 너무 벅차!

둘이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내던 그 시각 시후는 투산의 대장간에 있었다.

투산에게 간단한 인사를 건넨 후 본격적인 용건을 설명하던 시후는 연신 울리는 알림 소리에 메시지 창을 확인했다.

상당히 다급해 보이는 둘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하지만.

- 알았다.

지금은 이곳의 일이 더 중요하기에 간략하게 답했다.

간단한 메시지를 전송한 후 시후는 대장장이 투산을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뭐를 요구하는지 알겠지?”

“당신이 어떤 검(劍)을 요구하는지는 알겠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오.”

“왜지? 골드도 준다고 했고 케냔 협곡에서 나오는 광물도 공짜로 제공해 준다고 했는데 뭐가 문제지?”

시후가 대장간에 들어와 의뢰한 것은 검(劍) 한 자루였다.

투산은 그런 시후를 보며 마지못해 갖고 있던 검을 꺼냈었다.

자신이 만든 검 중에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만든 레어 아이템이었다.

특수 스킬은 물론, 착용자의 스텟까지 올려주는 옵션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시후는 그것을 들고 이리저리 휘둘러보고 정보를 확인하더니 대장간 구석에 대충 던져버렸다.

레어템을 퇴짜 놓고는 이렇게 새로운 검을 만들어 달라니 미칠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시후가 제시한 조건이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아니, 도대체 파쇄되지도 않고 Lv. 100대의 유저도 사용할 수 있고, 거기에 허리띠처럼 찰 수 있는 그런 검을 만들어 달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시후가 투산에게 원한 것은 세 가지였다.

자신의 내공을 불어 넣어도 부서지지 않는 강도(剛度).

현재 시후의 레벨인 Lv. 115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조건.

사용하지 않을 때는 허리띠처럼 차고 다닐 수 있게 변형되는 검.

이 세 가지 조건이었는데, 마지막 조건은 천마 시절 시후가 주로 사용하던 검을 떠올려 제시한 거였다.

“내가 손에 뭘 주렁주렁 들고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래.”

“아니, Safety World를 하면서 그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니오? 아니면 인벤토리에 넣고 다니든가?”

“거기 넣었다가 언제 빼 써. 위급할 때 바로바로 쓰기에는 허리띠가 딱이야, 응?”

“하, 거참. 그리고 부서지지 않는 검이라니? 장비에는 내구도라는 게 있는데 그게 가능키나 하냔 말이오?”

Safety World의 모든 아이템에 있는 내구도.

평상시에는 내구도가 하락할 일이 없었지만, 전투 때 스킬을 사용하거나 공격을 받으면 떨어졌다.

내구도가 하락하여 10% 미만으로 떨어지면 사용할 수 없었는데, 간혹 그 상태에서 수리하지 않고 방치했다가는 파괴가 되기도 했다.

시후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인호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방법이라는 게 있잖아. 아니면 엄청난 내구도를 가진 아이템을 만들든가? 응?”

“엄청난 내구도를 가지려면 만년한철(萬年寒鐵) 정도는 있어야 가능하단 말이오.”

“만년한철? 알았어, 그리고?”

“그리고 아이템에 변형을 일으키려면 드라큘라 백작의 송곳니가 필요하오.”

“드라큘라? 어?! 잠깐만!”

시후는 드라큘라 백작이라는 말에 인벤토리를 열었다.

인벤토리의 스크롤을 내리며 한참을 뒤지던 시후는 눈을 번쩍이며 무언가를 빠르게 꺼냈다.

“자! 송곳니!”

“뭐요? 아니, 무슨 아무 송곳니나…. 헐!”

투산은 어디 동물 송곳니라도 가지고 왔나 싶어 정보를 확인하는데, 스테이터스 창에 나타나 있는 이름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드라큘라 백작 브라드 쩨뻬쉬의 송곳니.]

[악마와 계약했던 드라큘라 백작이 죽기 전에 남긴 네 개의 송곳니 중 하나.]

[아이템을 제련에 사용 가능, 제련 시 대장장이의 레벨에 따라 사용 가능.]

투산은 송곳니를 들고 있는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 귀한 것을 어디서…?”

“그리고, 또 뭐가 필요한데?”

시후의 말에 투산은 어버버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 그리고…. 장비의 레벨 제한을 풀려면 정령의 축복도 받아야 하고…. 아! 그건 당신이 이미 갖고 있으니 뭐….”

“내가?”

이번에는 투산의 말에 시후가 놀랐다.

인벤토리 어디에서 정령이라는 단어가 새겨진 물건은 없었다.

그런데 자신한테 있다고 말하는 투산의 말에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거 있잖소, 케냔 협곡의 주인.”

“케냔 협곡의… 주인이면, 타란?”

“그렇소. 타란도 엄연히 정령이기에 축복을 내려 주면 가능할 거요.”

투산의 말에 시후는 옳다구나 싶었다.

딱 필요한 시점에 타란이 꽤 가까운 곳에 있으니 말이다.

자신이 생각한 정령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르지만 타란도 정령이라고 하니 외모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좋아, 그러면 만년한철만 구해오면 되는 거잖아?”

“하아…. 내 좀 전에도 말했다시피 만년한철이라는 걸 얻으려면 웬만한 퀘스트로는 어림도 없소이다. Lv. 200대의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오크의 성에 들어가 훔쳐 와야 하는 퀘스트들에만 있단 말이요.”

투산의 말에 시후는 투산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오크를 죽이는 게 아니고 훔쳐만 와도 된다는 거야?”

“그게 그거요, 오크들은 말이오, 시각, 청각, 후각이 엄청 예민해서 1km 밖에 누가 나타나기만 해도 알아차린단 말이오.”

투산의 말대로 오크 사냥은 꼭 대규모의 토벌 퀘스트로 이루어졌다.

무리를 지어 생활하며 번식 능력까지 빠른 오크들은 언제나 부족을 형성했다.

적어도 100마리 정도가 무리 지어 생활하는 오크들이었기에 유저들은 언제나 300명은 모아서 퀘스트를 진행했다.

도둑 스킬을 가진 유저가 간혹 그곳에 들어가 만년한철을 훔쳐 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정말 가물에 콩 나듯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굳이 싸우지 않아도 조용히 훔쳐만 오는 것이라면 아주 딱 맞은 무공이 있었다.

시후는 그것도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투산에게 목소리 높여 말했다.

“그것도 금방 구해오지! 그러니 일단 시작부터 해. 내가 몇 시간 안으로 구해 올 테니까.”

“아니, 물론, 드라큘라 백작의 송곳니를 다루는 데만 몇 시간이 들기는 하지만 나도 내 스케줄이라는 게 있잖소? 나도 지금 어디를 가야 한단 말이오.”

“아니, 가기는 어디를 가? 대장장이가 대장간에 붙어서 무기나 만들지!”

“어허! 내가 일이나 하려고 게임을 하는 줄 아쇼?”

“아 쫌! 그러지 말고 쫌! 어?”

“어허! 그렇게 정 급하면 내가 환락탑에 다녀온 후에 의뢰하시오. 그때 다른 물건들도 구해 와서 들이밀면 내 바로 만들어 드리리다!”

생떼에 가깝게 투산을 설득하던 시후는 환락탑이 거론되자 말을 멈췄다.

지금 투산의 말을 종합하면 결국 환락탑에서 놀기 위해 무기를 만들 시간이 없다는 거였다.

투산은 시후가 더는 땡깡을 부리지 않자 포기했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 외출 준비를 했다.

그런 투산을 보며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괜히 그랬다가는 검을 만드는 시간만 더 길어질 것 같아 회유하기로 했다.

“좋아, 환락탑! 내가 오늘 풀코스로 예약해두지!”

“뭐요? 아니, 당신이 뭔데 예약해주네 마네 하는 거요? 지금 가도 2~3시간은 줄을 서야 하는구만?”

시후는 괜히 여기서 실랑이를 더 벌여 봐야 소용이 없겠다는 생각에 투산의 등을 떠밀었다.

방금까지 검을 만들어 달라고 투정을 부리던 시후가 등을 떠밀며 대장간을 나오자 투산은 당황했다.

“어? 어? 갑자기 왜 이러시오?”

“긴말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낫다 싶어서, 가자! 환락탑으로!”

그러고는 투산의 뒷덜미 옷깃을 잡고 풀쩍 뛰어오르며 경공술을 펼쳤다.

대장간과 환락탑까지의 거리는 약 3km 정도였다.

시후는 경공술을 펼쳐 건물 위를 날아 일직선으로 내달렸다.

물론, 투산의 뒷덜미를 잡은 채로 말이다.

그러자 한스텔 마을에 투산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 살려줘!!! 살려주시오!!!”

시후는 투산이 비명을 지르건 말건 내공을 끌어 올려 속도를 냈다.

그렇게 3km에 달하는 거리를 단 3분 만에 도착한 시후와 투산이었다.

투산은 새처럼 훨훨 날아 환락탑 꼭대기에 내려서자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어찌나 놀랐는지 콧물이 흐른 자국을 닦지도 못했다.

“헉, 헉헉, 이, 이게 무슨 짓이오!!”

“뭘? 최대한 빨리 온 건데.”

“아니, 그보다 이렇게 환락탑에 들어오면 강제로 추방당하오. 으악! 그거 보시오!”

투산의 말이 끝마치기 무섭게 원래 시계탑에서 출몰하던 여성들이 탑 꼭대기의 문을 열고 나왔다.

투산은 저 여인들에게 반항할 만한 무력이 없었기에 그저 밖으로 쫓겨날 일만 기다렸다.

그렇게 한숨을 내쉬며 기다리는데 어째서인지 여인들이 다가오지 않았다.

대신 양쪽으로 나란히 정렬하여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의미를 알 수 없는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렸다.

“주인님, 어서 오세요.”

“주, 주인? 누가?”

한 여인의 말에 투산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 순간 거만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후와 눈이 마주쳤다.

“설…마…?”

“일어나지? 시간 아까운데?”

시후는 일어나라는 말과 함께 먼저 여인들 사리로 걸어갔다.

너무나도 당연하며 당당한 모습이었다.

시후는 자신을 쫓아오지 않는 투산을 보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그러자 두 여인이 투산의 양쪽 팔을 잡고는 질질 끌고 왔다.

투산은 놀란 토끼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그저 여인들에게 몸을 맡길 뿐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듣지 못할 정도로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저 안하무인 같은 유저가 환락탑의 주인이라니….”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