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36화 (36/275)

제36화

시후는 제갈상민과 약속한 3일째 되는 날에 다시 제갈세가를 찾아갔다.

하지만 바로 들어가지 않고 저번과 마찬가지로 제갈세가가 보이는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으며 지켜봤다.

가장 높은 전각에서 펄럭이는 붉은 깃발에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그런 시후를 보며 옆에서 라면을 먹던 태산과 인호는 긴장감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후야, 진짜 저기 다시 들어갈 거야?”

“당연하지. 그러려고 Safety World까지 잠시 멈추고 이렇게 온 거 아니냐.”

제갈상민에게 옥병을 건네준 후 시후는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다.

낮에는 학교에 가고, 저녁 시간에는 Safety World에서 레벨업을 하며 말이다.

단 며칠이었지만 제갈상민을 만났을 때와는 또 달라져 있었다.

Safety World에서 레벨업을 한 것 외에도 현실 세계에서도 내공을 크게 증진시킬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신명단(神命丹).

마신방 녀석들에게 빼앗은 단약의 제조법으로 만든 첫 번째 산출물이었다.

예상보다 효과가 좋아 확실하게 소화시켜 내공으로 탈바꿈하는 데 엄청난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24시간 천마분심공을 통해 운기조식을 할 수 있는 시후였기에 큰 문제는 없었다.

덕분에 단 3일 만에 일 갑자에 달하는 내공을 쌓았다.

그리고 태산과 인호도 시후만큼은 아니었지만 효과가 있었다.

시후처럼 천마분심공을 통해 24시간 단약을 흡수할 수는 없었지만 둘 또한 시후의 도움으로 10년 내공을 쌓을 수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쌓으면 기경팔맥에도 손을 대볼 수가 있겠어.’

태산과 인호의 12경맥을 강하게 해준 이후로 기경팔맥에는 아직 손을 대지 못했다.

그 이유가 둘의 내공에 있었다.

사람마다 기경팔맥의 위치가 다르기에 난제였지만 직접 몸속에 내공을 흘려 넣어 그 위치를 찾을 수 있는 시후였기에 손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것이 뚫렸을 때 둘이 버틸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막혀 있는 기경팔맥 중 독맥만 타동되어도 둘은 엄청난 성취를 이룰 거였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증진시킨 내공으로 둘의 뇌에 이상이 생길까 걱정이었다.

‘본신의 내공이 받쳐 주거나 12경맥과 기경팔맥의 자리로 그 기운을 순조롭게 이끌어야 하는데 녀석들에게 그것을 바라는 것은 무리고.’

결국, 가장 안전한 방법을 찾은 것이 신명단이었다.

시후가 길잡이 역할을 해주고 신명단으로 내공을 증진해 놓아 임독양맥이 타동되는 기운을 견디게 하려는 거였다.

그 밑거름으로 둘에게 개걸심법과 천투심법까지 전수해 주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거지와 도둑놈의 무공 같지만, 그것을 창안한 녀석들은 정파에서 알아주는 내가고수들이었다.

두 심법은 소림 달마조사가 전했다는 역근세수경(易筋洗髓經)에 필적한다는 게 객관적인 평가였다.

자신이 이런 엄청난 것을 전수해 줬다는 것을 이 녀석들이 아는지 모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함께하려면 둘은 반드시 강해져야 했기에 시후가 세워 놓은 큰 그림이었다.

“걱정하지 마. 저 깃발은 나를 환영한다는 깃발이니까. 그보다 너희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부탁?”

태산과 인호는 자신들에게 부탁이라는 것을 한다는 시후의 말에 관심을 가졌다.

유약했던 옛날이나 상상도 못 할 무공 고수가 된 지금이나 시후가 둘에게 부탁을 한 일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랬기에 둘은 귀를 쫑긋 세우며 시후의 말을 기다렸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나는 누구를 치료해야 해. 그렇게 되면 나를 보호해줄 가드가 필요해져. 그 역할을 너희들이 해주었으면 좋겠어.”

“우리가?”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그런 큰 역할을 맡기는 시후의 말을 되새겼다.

둘 또한 시후가 무엇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흔히 무협지에 나오는 그것을 할 생각일 거였다.

“그 등 뒤에 손 올리고 내공을 불어넣는 그거 하려는 거지?”

“맞아.”

인호의 말에 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산과 인호는 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시후의 반응과는 반대로 긴장감을 높였다.

어찌 보면 목숨을 자기들에게 맡기는 셈이었다.

그렇게 생각되자 둘은 굳은 결의를 다졌다.

“걱정 마. 우리가 꼭 지켜 줄게!”

“그래, 우리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 줄게!”

목숨까지 거론하며 결의에 찬 둘의 모습에 시후는 뒷말을 굳이 잇지 않았다.

사실 시후는 천마분심공을 통해 제갈신길을 치료할 생각이었기에 이런 부탁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도 이런 부탁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아닌 제갈신길을 위해서였다.

‘나는 내공 치료를 하다 물러나면 되지만 그렇게 되면 그 녀석은 그 자리에서 죽어버릴 테니까.’

시후는 천마분심공을 통해 밥을 먹으면서도 내공 치료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갈신길은 내공 치료를 받는 도중에 외부의 충격을 받게 되면 그대로 절명할 것이 분명했다.

그 부분을 염두에 둔 거였다.

제갈세가 안에서 치료를 진행하고 그 대상이 가주이지만 세상에는 변수가 무수히 존재했기에 그 변수를 줄이고자 태산과 인호에게 부탁한 거였다.

“좋아, 그럼 부탁 좀 하자. 이제 들어가 볼까?”

시후의 말에 태산과 인호는 먹던 것을 정하고는 뒤를 따랐다.

셋은 편의점을 나와 골목으로 들어서고는 비천잠행술을 펼쳤다.

해가 중천에 떠 있는 대낮인데도 셋은 그림자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렇게 그림자와 그림자 사이를 이동하며 빠르게 제갈세가 안으로 들어갔다.

목적지는 3일 전에 시후가 와 봤던 제갈신길이 누워 있는 가주의 방이었다.

그런데 방 상황이 저번과 달랐다.

제갈신길은 여전히 침상에 누워 있었고 많은 의료기기가 즐비해 있는 것은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때는 간호사 한 명만이 방 안에 있었는데 지금은 제갈상민을 포함해 여러 명이 제갈신길의 침상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들은 제갈신길을 바라보는 게 아닌 침상을 등지고 있는 모습이 그를 보호하기 위한 것처럼 보였다.

‘쯧, 쓸데없이 손을 쓰게 만드는군.’

시후는 제갈상민에게 분명 자신에 관한 이야기는 비밀이라 말했건만 사람들을 이렇게 배치한 것에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나중에야 모르겠지만 지금은 제갈신길과 제갈상민만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시후는 그림자에 숨어든 상태로 열 손가락을 쫙 펴며 순간적으로 지풍을 쏟아냈다.

목표는 제갈신길을 제외한 전원이었다.

제갈상민에게까지 지풍을 날린 이유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서였다.

“윽!”

지풍은 시후의 생각대로 정확히 모두의 수혈을 짚었다.

방 안에 녀석들도 나름 무공을 익히고 있었지만 시후가 뿜어낸 지풍을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그렇게 전원이 풀썩 쓰러지며 잠이 들자 침상에 누워 있던 제갈신길의 눈이 커졌다.

“이, 이게 어찌 된….”

“쉿, 조용.”

제갈신길의 당황하는 목소리와 함께 시후가 침상 바로 앞에 쑥 하고 올라왔다.

그러고는 조용히 하라며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가 대었다.

제갈신길은 비록 병상에 누워 있었지만 신명단을 통해 예전의 기감을 되찾은 상태였다.

자신의 이목을 속이고 이곳에 들어와 세가 사람들을 잠재운 시후의 실력을 보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역시, 똑똑하군.”

시후는 이 상황에서 침착하게 자신의 의도를 파악한 제갈신길을 칭찬했다.

그러고는 옆에 쓰러져 있는 제갈상민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푹-

“헉! 오, 오셨습니까?”

제갈상민은 정신을 차리는 순간 자신을 내려다보는 시후를 발견하고는 벌떡 일어났다.

두 손을 가지런히 포개어 허리를 숙이는 제갈상민의 모습에 시후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 분명 우리의 일은 비밀이라 이야기했건만? 이것들은 뭐지?”

“그게…. 세가의 깃발을 꽂은지라 다들 이렇게 모였습니다.”

제갈상민의 말은 이러했다.

세가의 깃발을 꽂게 되면 세가의 핵심 인물들이 소집된다고 한다.

그런데 세가의 깃발을 사용한 연유를 제갈상민이 설명하지 못하자 가주와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결론을 내더니 이곳에 모인 거였다.

그 말을 들은 시후는 역시 머리 좀 쓰는 녀석들이라 그런지 쓸데없는 곳에 눈치가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뭐, 이 기회에 수혈을 짚어 두었으니 치료 중에 갑자기 난입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이런 곳에서는 치료할 수 없으니 이 녀석들 좀 치워주겠어?”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제갈상민은 문 앞으로 다가가 노크를 했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제갈상민이 문으로 걸어가는 동안 시후는 이미 그림자로 몸을 숨긴 상태였다.

방 안 상황에 놀란 그들에게 제갈상민은 서두르라며 손을 휘저었다.

“놀랄 것 없다. 어서 이분들을 아래층으로 뫼시어라.”

“아, 네!”

사람들은 제갈상민의 명령에 빠르게 움직이며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날랐다.

그렇게 방 안이 정리되어 제갈신길과 제갈상민만이 남자 시후가 그림자에서 솟아올랐다.

그때까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제갈신길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자신의 정체를 물어오는 제갈신길을 보며 시후는 입을 열었다.

“너를 치료해줄 사람. 그러니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따르길 바라.”

시후는 지금의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주화입마에 빠진 것을 치료할 수 있다는 시후의 말을 들었을 때 제갈신길은 그 어느 때보다 놀랐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라 생각했으나 3일간 먹은 신명단을 시후가 제조했다는 말을 듣고 눈빛이 기대감으로 가득 차올랐다.

의심의 꼬리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기 아들이 저리 극진히 모시는 것과 방 안에 있던 세가 사람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제압한 무공을 지녔음에도 호의적인 것에 의심을 풀었다.

이제 제갈신길이 할 일은 몸을 맡기는 일뿐이었다.

“그럼, 제갈상민 너는 이제부터 우리를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게 하게 해.”

“알겠습니다.”

제갈상민은 시후의 말에 긴장감을 고조시키며 내공을 몸에 돌렸다.

어떤 일이 생겨도 바로 대처하겠다는 자세였다.

시후는 그런 모습을 보고는 다시 제갈신길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는 침대에서 좀 내려와. 가부좌 틀고 앉아.”

제갈신길은 시후의 명령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신명단을 먹은 후부터는 이 정도의 거동은 가능했다.

제갈신길이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자 시후는 등 뒤로 다가가 앉고는 양손을 제갈신길 등에 가져다가 대었다.

그리고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는 기를 흘려 넣기 시작했다.

“위중혈을 지나 용천혈을 돌아 다시 단전으로 돌려. 그리고 다시 배꼽, 중완, 단중, 천돌을 지나 천택을 지나 노궁혈을 돌아 다시 천돌로 돌린 후 멈춰.”

시후의 말에 제갈신길은 시후가 불어넣어 주는 기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돌린 후 목젖 근처에서 멈췄다.

“좋아, 이제 일정한 간격으로 불어넣어 줄 테니 같은 방법으로 운기하도록.”

시후는 주화입마에 빠진 제갈신길을 치료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내공을 사용했다.

등 뒤로 내공을 불어넣어 혈을 따라 움직이게 한 후 주화입마에 빠질 때 썩어버린 기를 토해내게 하려는 거였다.

괜히 찔끔찔끔 토해냈다가는 몸이 버티질 못할 것 같아 한 번에 토해내게 하려고 목젖 근처에 있는 천돌혈에 모으게 했다.

시후와 제갈신길의 이마에는 점차 구슬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하더니 곧 수증기가 일어났다.

한눈에 보아도 중요한 순간에 치닫는 모습이었다.

그때 지금까지 주위를 경계하던 제갈상민이 등을 돌려 둘을 힐끗거렸다.

잠시 둘의 상태를 주시하더니 갑자기 땅을 박차며 뛰어올랐다.

챙-

검이 뽑히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제갈상민이 검을 빼 들었다.

그리고 낙하하는 힘을 검에 담고는 제갈신길을 향해 빠르게 내려쳐 갔다.

그런데.

퍽- 우당탕탕

“커헉!”

뛰어든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제갈상민이 튕겨 나가 벽에 처박혔다.

제갈상민은 벽에 처박힌 충격으로 한 모금의 피를 토하고는 인상을 구기며 고개를 들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제갈신길과 시후의 앞에는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두 남자가 서 있었다.

태산과 인호였다.

태산과 인호는 시후의 지시대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시후는 언제 준비했는지 검은색 복면을 둘에게 주고는 쓰고 있으라고 했다.

이미 안면이 있는 제갈상민에게 정체를 감출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따랐다.

그리고 벌어진 지금의 일에 복면을 쓰고 있음에도 둘은 분노가 느껴졌다.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려 하다니? 미친 거 아니야?!”

“그러게! 쓰레기네!”

둘은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제갈상민을 보며 혀를 찼다.

패륜을 저지르는 제갈상민에게 일전에 느꼈던 두려움보단 화가 치밀었다.

제갈상민은 입가에서 흐르는 피를 소매로 스윽 닦더니 검을 길게 늘어트렸다.

그러고는 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로 기를 끌어 올렸다.

이번 공격으로 어떻게 해서든 결과를 만들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태산과 인호는 피부가 찌릿찌릿하며 숨이 막혀 오는 것을 느꼈다.

‘역시, 우린 아직 저자의 상대가 아니야.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자신들이 비켜선다면 시후가 큰 봉변을 당할 거였다.

태산과 인호는 그런 일이 벌어지게 둘 수 없다는 생각에 입술을 악물며 자세를 잡았다.

그러고는 내공을 끌어 올려 시후에게 전수받은 무공을 사용할 생각을 했다.

제갈상민은 둘이 뿜어내는 기운에 미소를 지었다.

저 둘은 자신의 검을 막을 수 없을 거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러고는 단숨에 튀어 나갔다.

“타핫!”

태산과 인호는 기합을 토하며 순식간에 가까워져 오는 제갈상민에 순간 움찔했다.

실전이 처음이라 목숨이 오가는 순간에 실수한 거였다.

아차 하는 순간 이미 제갈상민은 둘 사이에 멈춰 선 상태였다.

제갈상민은 둘 사이에서 몸을 회전시켜 기를 가득 담은 검으로 둘의 목을 벨 생각이었다.

그런데.

“죽어…. 헙!”

푹- 털썩

몸을 회전시키려는 순간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지며 눈앞이 캄캄해져 갔다.

그리고 잃어가는 의식 속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 새끼, 더럽게 시끄럽네.”

시후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