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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35화 (35/275)

제35화

시후는 부복하고 있는 제갈상민을 향해 슬쩍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제갈상민은 거부할 수 없는 부드러운 힘에 의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확실하다, 저자는 결코 아버님 아래가 아니다.’

제갈상민이 객관적으로 내린 시후의 평가였다.

시후는 몸을 일으켜 줬는데도 여전히 멀뚱히 서 있는 제갈상민을 보며 턱을 까딱였다.

“앉아. 이야기는 앉아서 해야지?”

착석을 권하는 시후의 말에 제갈상민은 얌전히 따랐다.

태산과 인호 또한 시후의 손짓에 옆에 앉았다.

모두가 자리에 앉자 시후는 용정차 한 모금을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말을 빙빙 돌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네.”

“그래서 말인데, 거래를 하나 할까?”

“거래요? 어떤…?”

“제갈신길을 회복시켜 주지.”

“네? 그게 가능합니까?”

제갈상민은 주화입마에 빠진 아버지를 고쳐 주겠다는 시후의 말에 깜짝 놀랐다.

현대 의학이 아니었으면 진작 세상을 하직했었을 아버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갈세가에는 알아주는 의원이 상주하고 있었다.

그 의원이 지금도 열심히 주화입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약을 만들어 보고 있었지만 언제나 고배를 마시고 있었다.

제갈상민은 시후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입을 열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저희 세가의 유명한 의원께서 상주 중이십니다만….”

“의원?”

“네, 중국 약선방(藥膳幇)에서 고명하시다는 분을 초청하여 그분이 이곳에 머무르고 계십니다. 그분께서 백방으로 노력 중이십니다만….”

“그래서 일어났냐?”

시후의 말에 제갈상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팩트였으니 할 말이 없는 거였다.

시후는 이런 제갈상민의 반응을 보며 자신이 추측이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이 세계에도 무림은 있다.’

제갈상민이 보이는 반응에서 확신한 거였다.

길거리에 검이나 도와 같은 병장기를 들고 다니는 무인들은 없었으나 이 세계도 분명 어딘가에 무림이 존재했다.

그곳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는 똑똑하기로 소문난 제갈세가가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 아직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제갈상민을 확실히 꼬드길 거리를 주기로 했다.

“좋아, 네가 못 믿는 눈치니 내가 고민을 덜어 줄 물건을 하나 주지.”

스윽-

시후는 품속에서 작은 옥병을 하나 꺼내었다.

옥병에는 아무 글씨도 쓰여 있지 않았는데 시후가 마개를 열자 순식간에 청아한 향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후각을 자극하는 청아한 향을 맡자 일순간 머리가 맑아지기까지 했다.

제갈상민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어갔다.

“이게 무엇입니까?”

“음과 양의 기운을 담은 단약이다. 이것을 하루에 하나씩 먹이면 지금보다 상태가 나빠지지는 않을 거야.”

제갈상민은 시후가 내미는 옥병을 조심스럽게 받았다.

시후는 마개까지 건네주며 손가락 세 개를 폈다.

“그 안에는 3알의 단약이 있다, 무슨 뜻인지 알겠지?”

단약이 3알뿐이니 3일 안에 마음을 정하고 연락을 하라는 말이었다.

제갈상민 또한 그 뜻을 충분히 알아들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상민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제갈상민도 덩달아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연락은 어떻게 해야….”

시후에게 어떻게 연락을 취해야 하냐며 슬쩍 스마트폰을 내미는 제갈상민이었다.

시후는 제갈상민의 손에 들려 있는 스마트폰을 물끄러미 보다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희가 잘 쓰는 거 있지 않으냐, 세가의 깃발을 꽂아라.”

“그, 그걸 어떻게?”

제갈상민은 세가의 위급한 일이 생겼을 때 소집을 알리는 세가의 깃발을 떠올렸다.

제(諸)자가 적힌 붉은 깃발을 전각 위에 꽂으면 세가의 주요 인사들이 모였다.

아주 오래전에 사용된 후 지금까지 사용된 적이 없던 세가의 깃발을 시후가 거론하자 놀랐다.

시후는 입을 다물지 못하는 제갈상민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그때까지 우리에 관한 이야기는 비밀인 거 알지?”

그 말을 남기고는 태산과 인호를 힐끗거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제갈상민의 눈앞에서 훅 하고 사라졌다.

제갈상민은 순식간에 세 명이 사라지자 깜짝 놀랐다.

즉시 기감을 높여 셋을 찾아보았지만, 전혀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시후의 눈짓으로 태산과 인호가 동시에 비천잠행술을 펼쳐 사라진 거였다.

제갈상민은 셋의 은신술이 자신의 이목을 완벽하게 속일 정도라는 것에 등골이 오싹했다.

만약 저들이 악(惡)한 마음을 먹고 세가에 들어왔다면 자신은 물론이고 아버지의 목숨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였다.

제갈상민은 들고 있는 옥병의 마개를 닫으며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옥병을 건넨 남자는 절세 무공의 소유자였다.

그런 그가 저런 잠행술을 갖고도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보면 우호적이라는 뜻이었다.

그러면 아버지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말의 진위를 가려내면 되는 거였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구나. 이 단약이 진짜인지 아닌지만 확인하면 되겠군.”

제갈상민은 아버지의 병세를 악화시키지 않을 수 있다는 이 단약의 정체에 결정권을 부여했다.

그러고는 평소답지 않게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며 경공술을 펼쳤다.

제갈상민이 경공술까지 펼쳐 달려간 곳은 중국 약선방에서 초청해 온 의원이 있는 곳이었다.

세가 한쪽에 있는 별채로 빠르게 날아간 제갈상민은 입구를 지키는 문지기를 무시하며 직접 문을 열었다.

“의선님, 급히 드릴 말씀이….”

“으악! 깜짝이야!”

“지금, 무슨?!”

의선이라 불린 의원은 도둑질이라도 하다가 들킨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그의 앞에는 의원의 수발을 들라며 보낸 시비가 수줍은 표정으로 손을 내밀고 있었다.

“크, 크흠. 그, 그만하면 되었다. 이만 나가 보거라.”

제갈상민의 등장에 의원은 헛기침하며 시비를 물렸다.

시비는 제갈상민과 의원에게 차례로 인사를 하고는 방을 나갔다.

시비의 뒷모습을 아련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의원은 고개를 홱 돌려 제갈상민을 쏘아봤다.

“크흠, 시비의 안색이 창백해 보이기에 내 잠시 진맥을 좀 했소, 부가주(副家主)께서는 어인 일이시오?”

누가 봐도 시비에게 개수작을 부리다가 들킨 장면이었건만 저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자 제갈상민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160cm 정도 되는 키에 주름진 이마와 희끗희끗한 머리로 나이를 짐작하건대 한참이나 나이 차가 나는 시비를 꼬드기려 하다니.

평소였다면 호통을 쳤겠지만, 지금은 다른 사안이 중요했기에 탓하지는 않았다.

“이 단약을 좀 확인해 주시오.”

“단약?”

제갈상민은 의원에게 옥병을 내밀었다.

옥병을 받아 든 의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마개를 열었다.

뽕-

청아한 음과 함께 그에 어울리는 청아한 향이 확 피어올랐다.

의원은 그 향을 맡자 두 눈을 부릅뜨며 몸을 떨었다.

“이, 이것을 어디서 구했소?”

“아시겠소?”

제갈상민은 깜짝 놀라는 의원의 표정에 되물었다.

의원은 다시 한번 옥병을 코끝까지 가져가고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씁-하, 이 청아한 향. 이건 분명 신명단(神命丹)이 확실한데, 이 귀한 것을 어디서 구한 거요?”

탁-

제갈상민은 옥병에 든 단약이 진짜라는 의원에 말에 빠르게 낚아채 갔다.

시비가 방을 나설 때보다 훨씬 더 아쉬워하는 의원의 표정이 보였다.

그거면 되었다.

“이것이 아버님의 병세에 도움이 되겠소?”

“되다 뿐일까? 그것만 있으면 주화입마를 치료할 수도 있소. 물론, 내가 연구를 좀 더 해야 하지만 말이오. 그러니 그거 이리 주시오.”

옥병을 달라며 보채는 의원의 손을 보며 제갈상민은 결심을 굳혔다.

행실은 형편없지만, 실력만큼은 확실했으니 자신이 할 일은 한 가지뿐이었다.

제갈상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서더니 이곳에 올 때보다 더 빠른 경공술로 날아갔다.

의원은 간다는 말도 없이 제갈상민이 사라지자 벙찐 얼굴로 있다가 후다닥 방을 나섰다.

저리 뛰쳐나간 제갈상민의 목적지는 분명 하나였다.

바로 제갈신길의 방.

“안 돼! 그게 어떤 단약인데! 그걸 고작 죽기 일보 직전의 영감에게 먹인다고? 그것만 있으면 나는…. 나는!”

의원 역시 제갈상민의 뒤를 쫓아 경공술을 펼쳐 빠르게 날았다.

목적지는 역시나 제갈신길의 방이었다.

전각 최상층에 당도한 의원은 문지기들에게 손을 휘저었다.

고개를 숙이던 문지기들은 서두르는 의원의 모습에 빠르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순간, 의원은 보았다.

병상에 누워 있던 제갈신길의 목젖에 무언가가 넘어가는 것을 말이다.

“이… 이런….”

의원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걸어 들어갔다.

제갈상민은 자신을 따라 달려온 의원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아버지인 제갈신길만을 바라봤다.

의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은 없었지만 단약을 먹은 후 낯빛이 좋아지는 아버지의 얼굴로 알 수 있었다.

시후가 건네준 단약에 확실한 효능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제갈신길이 잠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스르륵 눈을 떴다.

“음…. 오랜만에 잘 잤구나.”

“아버지, 좀 어떠십니까?”

“평소와는 조금 다르구나.”

제갈신길은 정말 평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매번 잠에서 깨어날 때면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두통에 휩싸였었는데 지금은 그런 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배 속이 후끈거리는 것이 운기조식을 막 끝냈을 때처럼 상쾌한 기분이었다.

제갈신길과 제갈상민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의원은 한숨을 내쉬며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후…. 그럴 수밖에요. 그 단약이 어떤 단약인데, 저희 약선방에서도 방주 어르신께서만 만드실 수 있는 단약이랍니다. 도대체 그것을 어디서 구한 것이오?”

의원에 말에 제갈상민은 고개를 돌려 의원을 바라봤다.

“이것을 약선방에서도 만들 수 있었단 말이요? 한데, 왜 주지 않은 것이오?”

만들 수 있었으면서 왜 아버지에게 사용하지 않았냐며 따지는 거였다.

그 말에 의원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것은 재료가 참으로 귀한 것이오. 양기와 음기를 같이 담아야 했기에 아주 관리가 잘된 천년산삼이 있어야 하고 음기도 강한 것을 써야 했기에 백골초나 음백초와 같이 귀한 것이 있어야 하오.”

천년산삼이나 백골초나 음백초는 제갈상민도 들어 봤다.

천년산삼만 해도 기적에 가까운 기연이 아니면 구할 수 없는 거였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귀한 재료가 필요한지 알 수 있었다.

“내 흥분하여 말이 심했소. 미안하오.”

짐짓 의원에게 큰소리를 낸 것이 미안했는지 제갈상민이 사과를 했다.

의원은 손사래를 치며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며 입을 열었다.

“됐소이다. 그보다 그 단약은 누가 준 거요? 재료도 재료지만 만드는 방법 또한 엄청 어려운데 그런 옥병에 보관한 것을 보면 분명 엄청난 의술을 가진 이가 분명한데 말이오?”

주저리주저리 신명단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는 의원을 보며 제갈상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 그때까지 우리에 관한 이야기는 비밀인 거 알지?

시후가 사라지기 전에 했던 말이 떠오른 거였다.

그리고 그 말이 떠오르자 제갈상민은 결심이 섰다.

지금 제갈세가의 가주는 자신이 아니었기에 ‘세가의 깃발’을 꽂으려면 가주인 제갈신길의 허락이 필요했다.

“아버지,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지만 세가의 깃발을 사용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

제갈신길은 그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눈이 살짝 커졌을 뿐.

자신이 아는 제갈상민은 절대로 세가에 손해가 생기는 일은 하지 않는 아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머리도 비상했기에 세가의 지식을 이용해 사업도 번창시켰다.

그런 녀석이 저렇게까지 진지한 눈빛으로 세가의 깃발을 논하는 것에는 분명 큰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갈신길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세가의 깃발 사용을 허락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제갈세가의 가장 높은 전각 위에 붉은색의 깃발이 펄럭였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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