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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31화 (31/275)

제31화

채광굴 앞의 유저들은 상당히 성난 모습들이었다.

기분 좋게 광석을 캐고 돌아가려는 순간 하늘에서 뚝 떨어진 녀석이 세금을 내라고 하니 말이다.

문제는 그 말을 들은 후 채광굴 입구에 나타난 메시지였다.

[광산 소유자가 광석에 세금을 부여합니다.]

[세금은 상점 판매가의 10%입니다.]

[광석 채굴 후 케냔 협곡을 벗어나기 전 세금을 내야 광석에 대한 소유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메시지에 따지고 싶었지만, 거미 여왕 타란을 제집 강아지처럼 대하는 모습에 나서지 못했다.

결국, 근처 바위에 숨어 숙덕이며 손가락질만 해댈 뿐이었다.

시후는 그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아랑곳하지 않고 처음에 나선 유저를 바라봤다.

중년의 아저씨처럼 덥수룩한 수염에 볼록한 배를 가진 유저.

특이한 점은 상체가 엄청난 근육으로 다져져 있다는 거였다.

천마 시절에도 저런 근육을 가진 이들을 본 기억이 있었다.

“당신 직업은 대장장이인가?”

시후는 그 유저를 가리켜 물었다.

유저는 시후의 질문에 한 발짝 더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그렇소. 그보다 여기서 캐는 광석에 세금을 매긴다니? 그런 게 어디 있소?”

“여기 있지, 그보다 당신 이름이 뭐지?”

“내 이름은 투산이요, 아니 그보다 세금을 누구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 투산은 대장간이 있나?”

“있소. 한스텔 마을에. 아니? 이 사람이!”

투산은 어째서인지 시후의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했다.

혹시나 대답하게 하는 디버프에라도 걸린 건가 싶어 몸 상태를 확인해 봤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투산이 자신의 몸을 더듬으며 당황해하는 사이 시후가 입을 열었다.

“불만 있는 놈은 앞으로 나서라. 타란이 이유를 설명해줄 테니까.”

타란을 거론하자 유저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지금은 다소곳하게 앉아 있지만, 케냔 협곡을 밥 먹듯이 드나드는 대장장이들이었기에 타란에 대한 소문은 익히 알고 있었다.

매혹적인 여성의 상체를 갖고 있으면서도 거미의 본성을 그대로 가진 타란.

유저들은 완벽에 가까운 성숙한 여인의 상체와 거미의 하체를 번갈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거미줄에 꽁꽁 묶여 죽기는 싫은 거였다.

장내가 조용해지자 시후는 아주 흡족했다.

그때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태산과 인호였다.

- 시후야, 졸려. 자자! 자자고~ 졸린다고!!

- 언제까지 할 거야? 네 어머니 오셨어!

졸린다며 징징거리는 태산과 어머니의 귀가 소식을 알리는 인호의 메시지였다.

어머니께서 돌아오셨다니 오늘은 이쯤에서 로그아웃을 해야 했다.

그전에 이곳에 대한 것은 마무리 지어야 했기에 가까이 있는 투산을 바라봤다.

타란의 등장에도 소신 있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용기가 가상했다.

그리고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알 수 있었다.

다른 대장장이 유저들보다 투산의 레벨이 훨씬 위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그를 이용하기로 했다.

“투산, 네게는 세금을 1%만 받지. 그리고 네 휘하에 쓸 만한 이들을 모아봐. 그들 역시 1%만 받을 테니까.”

“뭐?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오?”

시후의 말과 함께 채광굴 입구에 메시지가 추가됐다.

[투산 대장간 소속 세금 1%]

시후는 자신에게 빗발치는 항의를 투산이라는 인물을 내세워 대신 받게 하려는 거였다.

그리고 그에 따른 안전장치 역할도 마련해 뒀다.

“타란! 앞으로 투산에 대한 것은 그렇게 하도록 하고, 혹여나! 무력을 사용하는 놈이 있다면… 알아서 해!”

시후의 말에 타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유저들을 훑었다.

타란의 살벌한 눈빛에 유저들은 알아서 하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시후는 잔뜩 기가 죽은 유저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아들은 것 같네. 타란.”

“네~.”

타란은 시후의 부름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덩치가 성인 남성의 두 배나 되는 타란이 8개의 다리를 휘저으며 움직이자 유저들은 후다닥 물러났다.

타란은 시후의 곁에 다가와 몸을 숙이며 눈높이를 맞췄다.

종으로서 주인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볼 수 없다는 의도였다.

타란의 그런 행동에 시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좋아. 몇 시간 후에 돌아올 테니까 여기 잘 관리하고. 알았지?”

그 미소에 타란은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타란도 유저들이 어느 순간 로그아웃이라는 것을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또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다시 나타난다는 것도 알았다.

시후와 한시라도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 미소를 기억 속 깊이 간직하려 했다.

“다녀오세요, 주인님.”

“그래, 몸조심하고. 로그아웃.”

굳이 몸조심하라고 할 필요는 없었지만, 타란에게서 변태 같은 성향을 지닌 화식녀를 떠올린 시후는 그 말을 남기고 로그아웃을 했다.

번쩍이던 시야가 어두워지자 시후는 고글을 벗었다.

캡슐을 열고 나오자 먼저 나온 태산과 인호가 시후를 반겨왔다.

“시후야, 프랑시스 장난 아니야! 무슨 골드를 물 쓰듯이 써!”

호들갑 떠는 태산의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났다.

오늘 게임에서 많은 일이 있어서인지 저런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당분간은 그냥 둬. 조만간 몇십 배로 벌어들일 테니까.”

“어떻게?”

프랑시스가 시계탑을 ‘환락탑’으로 바꾸는데 그게 어떻게 돈이 되느냐고 묻는 거였다.

태산과 인호는 정말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래, 아직 고등학교 1학년이면 모를 수도 있지.’

예로부터 돈을 물 쓰듯이 쓰는 장소는 사람의 웃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대부분 그것을 술과 성(性)에 국한되게 생각하겠지만 프랑시스에게 지시한 것은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었다.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 태산과 인호도 이것에 대해 알아야 했기에 설명해 주기로 했다.

“사람에게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라는 감정이 있지?”

“그렇지?”

“행복이라는 것은 말이야, 그 네 가지 감정들이 미묘하게 상호작용을 해야 느낄 수 있는 것이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태산은 시후의 말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후는 순간 천마 시절 자신이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던 이들이 그리웠다.

“예를 들어주지. 만일 네가 Safety World에서 어렵게 퀘스트를 성공했어. 그런데 보상이 고작 물약 하나였어. 그럼 어떨까?”

“미쳐버리지!”

마치 자신이 경험한 것 같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태산이었다.

시후는 그런 태산에게 진정하라며 손을 흔들어 주고는 말을 이었다.

“그런데 그 물약이 레벨업을 시켜주는 물약이었다면?”

“완전 땡잡은 거지?!”

“그렇지? 만약 처음에 퀘스트 보상으로 레벨업 물약을 받았다면 지금 네가 느끼는 그 감정을 느꼈을까?”

“아하!”

드디어 시후의 설명이 이해가 된 듯 태산은 유레카라는 표정을 지었다.

다행히 인호는 희로애락을 거론했을 때 알아들은 것 같았다.

이제 태산도 알아들은 것 같으니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했다.

“둘은 먼저 가서 자. 나는 운기조식 좀 하고 갈 테니까.”

“응, 알았어.”

태산과 인호는 운기조식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진짜로 무공을 배웠다는 생각에 과연 잠을 잘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방을 나서기로 했다.

둘도 무협지 덕후였기에 알고 있었다.

운기조식을 할 때는 외부의 간섭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이다.

보안이 철저한 시후의 집이었으니 오히려 자신들이 옆에서 자다가 건드리는 게 더 큰일 날 확률이 높았다.

그렇게 둘이 방을 나서자 시후는 인터폰을 통해 어머니에게 연락했다.

간단하게 서로의 안부를 묻는 대화가 오고 간 후에 책 좀 읽겠다며 무협지 방에서 잔다고 말해 놓았다.

평소 이렇게 무협지를 읽으며 잠들었던 것이었는지 그 방 한쪽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다.

그것을 떠올려 어머니가 안심하실 수 있도록 둘러댄 거였다.

시후는 일단 가볍게 샤워를 한 후에 무협지 방으로 들어갔다.

‘다시 봐도 정말 많은 수의 책들이야.’

이 책들에 적혀 있는 무공들이 작가의 상상에서 나온 것이라니 믿기지 않았다.

그리고 그 묘사가 상당히 현실에 가깝다는 게 더 놀라웠다.

지금도 ‘북해의 검’이라는 무협지에 나오는 빙백신장은 정말 사실에 가까운 묘사가 되어 있었다.

“손에서 응축된 냉기가 발하며 적중당한 이는 몸속의 피 한 방울까지 얼어붙는다. 이름까지 똑같고 묘사까지 똑같다니 마치 실제 인물이 써놓은 것 같지 않은가?”

시후는 한 손을 들어 기를 움직였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손에 서리가 끼기 시작했다.

빙백신장(氷白神掌)의 일 초식인 빙백수(氷白手)였다.

천마 시절 북해빙궁을 찾아갔을 때 북해빙궁의 궁주가 직접 가르쳐준 무공이었다.

물론, 멸문(滅門)이나 빙백신장 중 무엇을 가르쳐줄 것인가의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했었지만 말이다.

빙백수는 손에 서리가 낄 정도의 극한으로 온도를 낮추는 수법이었다.

이렇게 된 손은 강기를 두르지 않은 도검(刀劍) 정도는 상대할 수 있었다.

빙백신장을 극성으로 익힌다면 이 무협지에 적힌 것처럼 10장 밖의 상대에게 강기를 쏟아내 동사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천마 시절 시후는 빙백신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추운 건 질색이야, 으으!”

천마동에서 뼛속까지 시리다는 말을 절실히 경험한 시후는 한서불침(寒暑不侵)의 신체가 되었어도 추위를 싫어했다.

시후는 빙백신장이라 적힌 글귀를 다시 한번 읽으며 몸서리쳤다.

책을 원래에 자리에 꽂아 놓고는 침대 앞으로 걸어가 바닥에 걸터앉았다.

“오늘 레벨업을 했으니 얼마큼의 내공을 회복했는지 확인해볼까?”

퀘스트 여관 마스터에게 돌아가 보상을 받지는 못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거미를 사냥하는 것만으로도 Lv. 80까지 올렸다.

그 레벨업이 이룬 성과를 확인할 시간이었다.

천마분심공을 통해 마음을 둘로 나눈 후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한편으로는 지금의 내공으로 펼칠 수 있는 무공을 찾아봤다.

천마 시절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 회복했는지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천마멸겁장은 이제 두 번은 사용할 수 있겠구나. 천마동에서 익힌 것들은 물론이고, 천마열화장(天魔熱火掌)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었구나!”

천마열화장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에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천마멸겁장이 원거리 타격 무공이라면 천마열화장은 근거리 타격 무공이었다.

말이 열화장이지 10성에 달하는 기운을 사용한다면 온몸이 불타오르는 초극화신(超克化神)의 모습으로 전장을 누빌 수 있었다.

“이 정도면 8푼 정도인가?”

Lv. 80이 천마 시절 내공의 8%에 달하는 것을 확인한 시후였다.

이로써 Safety World의 레벨업으로 어느 정도의 무공을 회복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천마 시절 사용했던 무공과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의 종류가 너무나도 달랐기에 시후는 시간을 들이기로 했다.

날이 새기까지 운기조식을 하며 그동안 잊고 지냈던 무공들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시현을 하지 않아도 기의 흐름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그 무공을 사용할 수 있는 시후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아침이 밝고 시후는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무공을 모두 확인한 후에 다시 Safety World에 접속했다.

홀로 접속한 이유는 현재 펼칠 수 있는 무공을 시연해 보려는 거였다.

케냔 협곡은 무공을 펼쳐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특히, 타란의 거주지였던 정상은 더할 나위 없는 장소였다.

한스텔 마을 입구에서 천마멸겁장을 펼쳐 큰 웅덩이를 만들었을 때와는 다르게 초극화신까지 펼쳐도 주변 지형이 변형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모든 무공을 시연하는 데만 장장 2시간이나 필요했다.

그 2시간의 시간 동안 타란은 다시 한번 시후라는 늪에 빠져들었다.

자신은 상상도 못 할 능력을 보여주는 시후의 모습에 언제나 곁에 있고 싶다는 강렬한 소망을 품었다.

시후는 그런 타란의 모습을 애써 외면하며 2시간의 시연이 끝난 후 한스텔 마을로 돌아왔다.

타란이 따라오겠다고 했었지만 시후는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말과 함께 케냔 협곡에 남겨 두었다.

그리고 퀘스트 여관 마스터에게 그동안 받았던 퀘스트의 보상을 받는 순간 시후의 레벨은 Lv. 100이 되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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