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화
케냔 협곡을 내려가는 시후는 발걸음이 어찌나 가벼운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
타란의 주인이 된 후에 나타난 메시지 창을 다시 읽어봤다.
[케냔 협곡의 주인이었던 타란을 종으로 삼았습니다.]
[케냔 협곡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케냔 협곡에서 채굴되는 광석에 대한 소유권이 생깁니다.]
광석의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다는 메시지를 보자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이 정도 보상이라면 혹 하나 정도는 달고 다닐 만하지.’
‘혹’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돌리니 시후보다 두 배는 큰 타란이 뒤따르고 있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배꼽 앞에 모으고 고개를 살짝 숙인 모습이 새침해 보였다.
그 새침한 모습이 요염한 타란의 매력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었다.
진짜 하체가 거미의 몸통만 아니라면 천하제일미(天下第一美)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반인반주(半人半蛛)라 해야 하나? 태산과 인호가 보면 놀라겠군.’
다른 이들이 타란을 만나게 되면 좋은 반응을 보일 것 같지는 않았지만 괘념치 않기로 했다.
그만큼 케냔 협곡 광석에 대한 소유권은 엄청난 거였다.
케냔 협곡 입구에 들어선 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커다란 동굴에서 광석을 캐는 것을 봤었다.
게임에서 왜 굳이 돌을 캐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일비에게 물었을 때 일비는 엄청난 대답을 해왔었다.
Safety World의 모든 아이템에 들어가는 기본 재료에 케냔 협곡의 광석이 있다는 말이었다.
아이템마다 필요한 광석의 개수가 달랐지만 무조건 1개 이상은 들어간다고 했었다.
유저들 중에는 아이템 제작을 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도 있다고 했었다.
아이템의 가격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그것은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케냔 협곡에서 채광되는 광석 중에 ‘흑돌’은 1개에 1골드라고 했었다.
어느새 케냔 협곡을 다 내려온 시후의 눈에 처음 입구에 들어설 때 보았던 동굴이 보였다.
여전히 그곳에는 수많은 유저들이 채광을 하고 있었다.
쉼 없이 들락날락하며 채광하고 손수레 가득 광석을 싣고 나오는 유저는 얼굴에 웃음이 만개해 있었다.
손수레 하나에 실려 있는 흑돌의 수는 대충 어림잡아도 100개는 넘어 보였다.
‘저 수레에 100골드가 실린 셈이라는 건데….’
시후는 어느 순간 흑돌이 골드로 보이고 있었다.
꽤 많은 소지금을 갖고 있었지만 빠른 레벨업을 위해서는 더 많은 골드가 필요했다.
‘1골드에 거래되는 흑돌에 수수료를 매긴다면?’
채광하는 유저나 NPC들의 수도 어림잡아 300명.
“1골드에 하는 흑돌을 한 사람이 100개는 캐오고 사람이 300명 정도라 쳤을 때 10%만 수수료로 받으면…. 이게 얼마인 거야?”
머리 써서 산수 계산을 하자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계산하자면 못 할 것도 없었지만 이런 거는 언제나 귀찮은 것이었기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3처언….”
타란의 중얼거림에 시후는 고개를 홱 돌렸다.
뒤에서 졸졸 쫓아오던 타란은 시후가 고개를 돌리자 움찔했다.
“타란? 지금 뭐라 하지 않았어?”
시후의 물음에 타란은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3,000골드라고요.”
“뭐가?”
“후 님께서 말씀하신 계산을 하면 3,000골드라는 계산이 나와요, 수수료 말이에요.”
“그걸 계산한 거야?”
생긴 거와는 다르게 빠른 계산능력을 보이는 타란에 호기심이 일었다.
그런 시후의 시선에 타란은 살짝 흥분한 것인지 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거기에 저들이 채광하고 나오는 시간을 계산하면 하루에 30,000골드는 수수료로 버실 수 있으실 거예요.”
“오호~ 제법인데?”
시후의 칭찬은 진심이었다.
빠른 계산능력하며,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부분까지 알아서 계산하는 것을 칭찬한 거였다.
그러고 보니 타란이 어떤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쩌다 보니 이상한 취향이 있어 자신의 종이 되었지만 이런 거대한 협곡의 주인이었다면 분명 무언가 있었을 텐데 말이다.
“타란? 너에 대해 더 알고 싶은데 말이지?”
“네?! 여, 여기서요?!”
무슨 오해를 하는 것인지 몸을 배배 꼬며 얼굴을 붉히는 타란이었다.
“망상은 잠시 접어두고. 네 능력 말이야. 능! 력!”
“아….”
콕 집어서 능력을 알고 싶다는 시후의 말에 아쉬움이 가득 담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주인의 요구에 성실히 따르는 것이 종으로 해야 할 도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가치를 정확하게 알릴 만한 능력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했다.
곧 정리가 끝났는지 타란은 손가락 세 개를 펴왔다.
그리고 하나하나 접으며 자신의 능력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먼저, 저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도 전생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어요.”
“진짜?”
“네, 덕분에 사고능력이 빨라요. 방금 전과 같은 연산 능력도 그중 하나고요.”
실로 놀라운 말이었다.
Safety World의 NPC들은 죽으면 기억이 리셋된다고 알고 있었는데 타란은 예외라니 희소가치가 엄청나 보였다.
“두 번째로 탐지 능력이 뛰어나요.”
“탐지 능력?”
“네, 제 종족이 거미이기에 거미줄을 쳐서 그것에 걸리는 모든 것을 탐지할 수 있어요. 특히, 제 거미줄은 땅속에 묻을 수도 있어요.”
“그래? 범위는?”
“케냔 협곡 전체에 깔 수 있을 정도요.”
“오호~! 그럼, 입구부터 누가 들어오는지 다 알 수 있다는 거야?”
시후의 말에 타란은 고개를 강하게 끄덕였다.
그렇다면 자신이 협곡 정상까지 올라가는 동안 타란은 모두 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정상은 입구에서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높이에 있는데 그 전역에 거미줄을 깔 수 있다면 엄청난 거였다.
거기에 남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땅 밑으로 깔 수 있다는 것은 쓸모가 아주 다양했다.
시후가 눈까지 동그랗게 뜨며 놀라는 모습에 타란은 내심 어깨가 으쓱했다.
자신의 가치를 충분히 알아주기에 마지막 능력도 자신 있게 설명했다.
“마지막으로는 번식 능력이 있어요.”
“번…식?”
“네, 제가 새끼를 낳으면 수십, 아니, 수백의 아이들을 낳을 수….”
“그만!”
번식이라는 말에 숨이 가빠지는 타란을 보고는 급히 손을 내저었다.
번식에 필요한 무언가를 원하는 것 같았지만 그것은 알고 싶지 않았다.
대신 앞의 두 능력은 확실히 쓸모가 있었다.
계산 빠르고 탐지 능력까지 있다면 저 밑에 채광하는 이들을 충분히 다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케냔 협곡의 주인으로서 권리 좀 행사하러 가볼까? 가자, 타란!”
시후는 채광하는 곳까지 얼마 되지 않는 거리이기에 훌쩍 뛰어내렸다.
경신술을 이용해 몸을 가볍게 만들고는 훨훨 날아갔다.
타란 역시 그런 시후를 놓칠세라 반대편 협곡에 거미줄을 매달고는 8개의 다리에 힘을 주어 뛰어내렸다.
광석을 캐와 막 정산을 끝마치려던 유저 몇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시후를 발견했다.
“어? 협곡에서 누가 날아오는……. 으악! 타란이다!!”
시후 뒤에 따라오는 타란을 발견하고는 기겁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바람에 근처에 있는 모두가 시후와 타란을 발견할 수 있었다.
확실히 채광하고 있던 유저들은 전투 계열이 아니었기에 싸울 의지 따위는 없어 보였다.
다들 저 살기 바쁘게 채광하고 있던 광석을 내팽개치고는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시후는 가볍게 땅에 내려서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언제나 저런 두려움에… 응?”
천마 시절 자신을 처음 대하는 이들의 눈빛에는 언제나 저런 두려움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귀찮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기에 마음에 들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다들 바라보는 시선의 위치가 좀 높아 보였다.
쿵-
뒤쪽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리며 타란이 내려서자 시후는 그제야 저 두려움의 대상이 자신이 아닌 타란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는 천마가 아니었지만 저런 눈빛이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 대한 것이라는 것에 살짝 기분이 상했다.
그에 그 기분을 가득 실어 타란을 돌아봤다.
“헙! 왜… 왜요?”
“타란! 앉아!”
스르륵-
시후의 강한 눈빛에 타란은 숨이 턱 막혔다.
자신은 그저 시후를 따라 뛰어내렸을 뿐인데 왜 저런 눈빛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저런 흉흉한 살기를 내뿜는 시후의 모습이 너무 좋았다.
좋다 못해 짜릿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시후의 앉으라는 말에 아무 망설임도 없이 8개의 다리를 접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 상황을 지켜보던 유저들은 어이가 없었다.
케냔 협곡의 주인인 거미 여왕 타란을 제집 강아지 대하듯 하는 저 유저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유저 중에 그나마 대장장이 레벨이 높은 유저가 나섰다.
“누, 누구요?”
“나? 그 광석의 주인.”
“에?”
뜬금없이 자신들이 피땀 흘려 캐내 온 광석의 주인을 자처하는 시후의 모습에 다들 앞으로 튀어나왔다.
* * *
S.W SOFT 운영기획실장 김철수는 두 눈이 붉게 충혈될 때까지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운영기획실장의 권한으로는 Safety World에서 확인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실시간으로 특정 지역의 영상을 확인하는 것은 1급 보안 등급이었는데.
이번에 박철 사장이 임시로 권한을 주었기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권한이 자신에게 한정되어 있다는 거였다.
다른 부하 직원들을 시키지 못하고 이렇게 본인이 직접 모니터링을 하는 거였다.
“하아…. 어디 있는 거냐. 토끼 사냥, 여우 사냥, 시계탑 던전. 이 순서라면 분명히 저레벨 유저일 텐데, 어디로 간 거야?”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번 일을 저지른 게 고레벨 유저가 아니라는 것을 유추했다.
고레벨 유저가 시계탑을 들락거릴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에서 시작한 추측이었다.
그리고 확신에 가까운 추측으로 저레벨에 갈 수 있는 사냥터를 싹 다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설마… 몇 시간 사이에 케냔 협곡까지 갔겠…. 뭐야, 저건?”
설마 하는 심정으로 케냔 협곡을 확인했다.
그런데 평소와 다른 채광굴 입구가 눈에 들어왔다.
저건 분명 케냔 협곡의 주인인 거미 여왕 타란이었다.
왜 타란이 정상이 아닌 채광굴 앞에 등장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김철수는 직감적으로 헤드셋을 모니터에 연결하고는 귀에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타란의 앞에 나서고 있는 남자 유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저 광석들은 내 소유니까 앞으로 세금을 내라!
“헐… 뭐지? 저 미친놈은?”
김철수 실장은 헛소리를 내뱉는 유저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웬 미친놈인가 싶던 차에 또다시 미친 소리가 들렸다.
- 광석마다 세금은 상점에서 거래되는 가격의 10%다. 이에 반하는 놈은 앞으로 나와라. 타란이 이유를 설명해 줄 테니까.
미친놈이 말을 할 때마다 주위에 있는 유저들이 원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타란을 거론하자 다들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제야 김철수 실장은 타란의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8개의 다리를 가지런히 접고 조신하게 앉아 있는 타란은 한 손을 뻗어 앞의 남자를 향해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입술을 달싹달싹하는 것이 무언가 말하는 것 같았다.
“뭐라는 거야?”
김철수 실장은 너무 작은 타란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볼륨을 올렸다.
그러자 타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하아…. 하아…. 갖고 싶어, 아…. 주인님!
앞의 남자 유저를 향해 주인님이라고 말하는 타란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주인님? 누가? 저 남자 유저가? 왜?! 설마…?”
Safety World의 런칭 이후 단 한 번도 벌어진 적이 없던 일이었지만 김철수 실장은 드디어 찾았다.
단 한 번도 벌어진 적이 없는 버그에 가까운 일을 벌이는 유저.
마을 입구 언덕에 커다란 손자국으로 웅덩이를 만들고 시계탑을 박살 냈던.
그 엄청난 스킬을 사용하던 유저를 찾았다는 직감이 딱 들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