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5화
시후는 아이템을 장착한 채 퀘스트 여관 마스터를 찾았다.
“마스터? 퀘스트!”
퀘스트를 요구하는 시후의 목소리에 마스터는 컵을 닦다가 한숨을 내쉬며 돌아보았다.
그리고 보이는 시후의 모습에 순간 놀랐다.
“헙, 다른 분이신 줄 알았습니다.”
“왜?”
“옷이 날개라더니, 그렇게 입으시니 이제야 제 레벨로 보이십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어오는 시후에 마스터는 허허 웃으며 대답해갔다.
“레벨에 맞는 옷을 입으시면 괜한 시비에 얽히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인데?”
마스터의 말이 상당히 귀에 익었다.
그러고 보니 천마 시절 언제나 붙어 다니던 녀석이 떠올랐다.
어려운 수 계산이나 병법에 대한 것에 관심이 없던 천마와는 달리 녀석은 그쪽으로 관심과 재능이 넘쳤다.
무공에 매진하던 천마와 달리 녀석은 지략, 법술, 심지어는 진법에도 능했었다.
다재다능해서 좋겠다고 말하면 언제나 발끈하며 달려들던 녀석이었다.
‘내가 꾀돌이라고 놀리니 언제부턴가 지괴(智怪)라고 불렸었지.’
시후는 천마 시절 지괴가 자신의 옷차림을 지적한 것과 마스터를 겹쳐보고 있었다.
마스터는 시후가 추억에 젖어 드는 것을 보이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려 주었다.
잠시 과거를 회상하던 시후가 정신을 차렸는지 마스터에게 시선을 돌렸다.
“고마워.”
뜬금없는 감사에 마스터는 그저 미소만 보였다.
감사하다는 말은 진심이었다.
과거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죽기 직전에 배신당하던 것만 기억났었다.
그런데 방금 천마 시절에 꽤 즐겁게 웃던 추억이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시후는 감사한 마음을 담아 스테이터스 창을 열었다.
“앞으로 이곳을 찾는 유저가 점점 늘어날 거야. 근처에 꽤 좋은 게 하나 들어설 거거든. 대신 그때까지 여기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질 좋은 서비스를 부탁하지.”
“그런 건 말씀하지 않으셔도 저희 퀘스트 여관은 서비스 질이 좋기로 소문나 있습니다만?”
“알아, 그래도 받아.”
시후는 스테이터스 창의 골드 중 1천 골드를 마스터에게 전송하였다.
마스터는 1천 골드를 보고는 무슨 의미냐며 바라봤다.
“그들에게 싸게 주라는 거야. 이 골드로.”
“무슨 의도이신지 말씀해 주시죠?”
이곳을 찾아올 유저에게 제 돈을 써가면서 싸고 질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라니. 시후의 정확한 의도가 뭔지 묻는 거였다.
“당분간 그들이 여기 묶여 있으면 해서.”
“네?”
“다른 유저 녀석들이 이 여관에 묶여 있으면 남아도는 퀘스트를 내가 몽땅 할 수 있지 않겠어?”
이제야 시후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한 마스터였다.
Safety World에서 주어지는 퀘스트 양은 어마무시했다.
개발자조차 정확한 숫자를 알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이유는 유저들이 동시에 같은 퀘스트를 받을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하나의 퀘스트를 파티를 맺어 이행하는 것은 별개였다.
하지만 파티를 맺으면 보상을 나누어 가져야 했기에 대부분의 유저들은 적은 수로 파티를 맺어 사냥하였다.
그래서 혹여나 파티를 맺지 않은 상태로 같은 퀘스트를 하는 꼼수를 막기 위해 A.I가 이런 시스템을 구축했다.
그래서 일전에 시계탑 던전에서 시후 일행이 프랑시스를 클리어한 후에 성기사 길드가 찾아온 거였다.
시후의 이런 말도 안 되는 계획을 들은 마스터는 어이없다는 듯이 물어갔다.
“진짜로 퀘스트를 혼자 다 하시려고 합니까?”
“뭐, 할 수 있는 거는?”
어깨를 으쓱이며 정확하게 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마스터가 가진 퀘스트 전부를 하고 싶었다.
마스터는 완강한 태도를 보이는 시후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퀘스트 목록을 열었다.
시후는 마스터와 자신의 사이에 펼쳐지는 거대한 스테이터스 창을 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게 다 퀘스트야?”
“네, 그렇습니다.”
생각보다 많아 보였다.
오른쪽 끝에 보이는 세로로 긴 막대기를 보니 인호가 이야기한 스크롤바가 분명했다.
‘저걸 내리면 더 보인다고 했는데, 그럼 이것들 말고도 더 있다는 거잖아?’
시후는 자신감에 차 내뱉었던 말을 순간 주워 담고 싶었다.
“후 님께서는 현재 레벨이 어떻게 되십니까? 레벨에 맞는 퀘스트를 제가 골라 드릴 수도 있습니다.”
마스터의 말에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낮은 몬스터를 잡아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여우를 잡으러 가다가 알았다.
마을 입구를 나가다가 토끼라고 부르기 민망한 녀석이 거슬려 한 방에 죽여 버렸었다.
그런데 저번과는 다르게 경험치가 전혀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때 시후가 레벨이 올라서 낮은 몬스터들의 경험치가 들어오지 않는 거라고 인호가 설명해 주었었다.
그것을 떠올린 시후는 마스터의 말에 순순히 응하기로 하였다.
“지금 내 레벨은 Lv. 70이다.”
“70이시라…. Lv. 70?! 고작?”
마스터는 시후의 말을 듣고는 황당했다.
하는 행동이나 같이 다니는 유저들로 짐작했을 때 적어도 레벨이 Lv. 100은 되어 보였다.
‘카오 유저도 죽이고 돌아왔기에 적어도 Lv. 100은 되는 줄 알았더니만?’
상식적인 계산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만약 마스터가 시후의 스텟을 보았다면 까무러쳤을지도 몰랐다.
마스터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머리를 굴리는 것이 시후의 눈에도 보였다.
“마스터? 눈 엄청 돌아간다? 왜? 한번 비벼보게?”
“네? 아, 아닙니다. 무슨 그런 섭한 말씀을, 하, 하하….”
마스터는 시후의 말에 뜨끔했다.
독심술 스킬이라도 가진 건지, 어떻게 자기 생각을 읽었는지 놀랐다.
마스터는 어서 화제를 돌려야겠다는 생각에 후다닥 퀘스트 목록을 뒤졌다.
스크롤바까지 내리며 한참을 뒤진 마스터는 몇 가지 퀘스트를 따로 빼내었다.
“Lv. 70이라고 하시니 이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거미 사냥?”
시후는 마스터가 빼낸 퀘스트 목록에 여러 번 적힌 말을 읽어 보았다.
“Lv. 70이시면 마을 근처에 있는 몬스터를 잡아서는 소득이 없으실 테니 케냔 협곡에 있는 거미 소탕 퀘스트들을 추천해 드립니다.”
마스터가 추천하는 케냔 협곡의 거미 사냥 퀘스트는 최종 보스인 ‘거미 여왕 타란’을 잡기 위한 퀘스트들이었다.
케냔 협곡은 한스텔 마을 서쪽에 위치한 협곡으로, 지형이 험난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곳에는 거미 여왕 타란이 왕국을 이루고 있었는데 엄청난 번식력으로 협곡을 모두 장악한 상태였다.
하지만 거미들은 케냔 협곡으로 들어오는 유저가 아니라면 쳐다도 보지 않았다.
마을에 쳐들어올 걱정이 없는 거미를 굳이 퀘스트로 진행하는 이유는 그 협곡에 광산이 있어서였다.
그래서 퀘스트 중 하나는 거미를 물리치고 광물 30개를 가져오는 퀘스트도 있었다.
시후는 마스터가 추천해준 퀘스트들을 빠르게 읽고는 단번에 수락했다.
“오케이, 모두 내가 가져가지.”
“한동안 고생하시겠지만 그만큼 보수는 빵빵하실 겁니다.”
마스터는 한동안 시후를 볼 수 없겠다 싶었다.
이 퀘스트들의 숫자는 무려 20개,
하루에 하나씩 한다고 쳐도 20일은 걸릴 퀘스트였기에 그리 생각한 거였다.
‘당분간은 숨 좀 돌리겠구나.’
시후를 당분간 보지 않을 생각에 벌써부터 속이 시원해지는 마스터였다.
한편 시후는 마스터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지는 것에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냥 두기로 했다.
왠지 마스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아서였다.
“마스터가 나를 그리 걱정해주니, 내 최대한 빨리 돌아올게.”
“네? 아니… 굳이 그러실 것까지야….”
빠른 복귀를 약속하는 시후의 말에 마스터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시후는 인제 그만 케냔 협곡으로 가자는 생각에 등을 돌리다가 문득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스터, 문제가 하나 있는데….”
“네, 말씀하십시오!”
“케냔 협곡은 어디에 있는 거야?”
“서쪽 입구로 나가셔서 쭉 가시면…. 설마, 정말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시후는 멋쩍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시후의 모습에 마스터는 이마를 살짝 짚어갔다.
이제는 저런 모습이 낯설지 않은 자신이 한심해서였다.
“스테이터스 창에 ‘맵’이라고 부르시면 지도가 나타납니다. 거기서 케냔 협곡을 지정하시면 지속해서 표시되니 찾기 쉬우실 겁니다.”
“오호~ 그런 방법이 있었어?”
시후는 마스터의 말대로 맵을 불러내어 케냔 협곡을 찾았다.
스테이터스 창에 나타난 맵은 한스텔 마을을 주먹만 하게 표시하고 있었다.
서쪽을 보니 케냔 협곡도 주먹만 한 크기로 보이는 것이 같은 크기인 것 같았다.
마스터의 말대로 케냔 협곡에 도착지라고 지정을 하자 빨간색 깃발이 꽂혔다.
그런데 맵에 나타난 깃발 위에 거리를 나타내는 숫자를 보고는 어이가 없었다.
“이거 진짜야? 케냔 협곡까지 거리가 240km?”
“그렇습니다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한 마스터의 태도에 시후는 은근 약이 올랐다.
얼마 전에 북한산을 오를 때 산책로의 길이를 나타내는 표시판을 보았기에 거리감이 있었다.
‘그때 1km 오르는 데 경공술을 사용해도 5분이 걸렸었는데….’
그때를 빌려 계산하면 케냔 협곡까지 경공술로 날아가도 20시간은 걸린다는 계산이 나왔다.
지금 현실 세계는 자정을 알리고 있었기에 시후는 내일 아침까지는 돌아올 생각이었다.
그 계획이 시작도 하기 전부터 난관에 부닥치자 고민이 되었다.
“저기까지 빨리 가는 방법은 없어?”
“뭐, 걸어가시는 것보다는 말이나 마차를 이용하시는 게….”
“그런 거 말고, 더 빠른 거!”
“굳이 찾으신다면 ‘루프’가 있습니다.”
“루프?”
“돈이 좀 드시기는 하지만 차원 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루프를 이용하시면 바로 가실 수도 있습니다.”
마스터의 말에 시후는 손가락을 튕기며 기뻐하였다.
“그런 게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그래서? 루프는 어디에 있는데?”
“마을 북쪽 입구 근처에 있으니 찾으시기는 어렵지 않으실 겁니다. 다만… 아닙니다.”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듯하였지만 이미 걸음을 옮기는 시후를 보고는 입을 닫았다.
그리고 여관을 나서는 시후를 보며 마스터는 묘한 미소를 지었다.
시후는 빠르게 마을 거리를 지나 북쪽으로 향했다.
마스터의 말대로 북쪽 입구 앞에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언뜻 보기에 신을 모시는 제단처럼 보였다.
다만 좀 다른 것이 있다면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거대한 거울이 있다는 거였다.
“저게 루프인가?”
저 거대한 거울이 루프인가, 하는 생각에 잠시 지켜보기로 하였다.
그러자 형형색색의 거울에서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 사람들이 걸어 나오자 누군가가 길을 막아섰다.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관심이 없어 귀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대충 어디서 왔는지, 왜 왔는지를 묻는 것 같았다.
“저 안으로 들어가면 되는 건가 보군. 그럼, 가볼까?”
시후는 케냔 협곡으로 가기 위해 거울을 향했다.
그러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남자들이 나타나 시후를 막아섰다.
“잠시 정지! 어디 가십니까?”
“케냔 협곡으로 가려는데?”
“루프를 이용하실 생각입니까?”
“그러니 여기에 왔겠지?”
“그럼, 이용 요금을 지불해 주십시오. 10골드입니다.”
이용 요금을 내라는 남자의 말에 시후는 스테이터스 창을 불러내어 골드를 지불했다.
시간이 아까운 상황이었기에 여관 이용료의 다섯 배나 하는 이용료에 딴지를 걸지는 않았다.
이용료도 냈으니 앞으로 나가려는 시후를 다시 남자들이 막아섰다.
“아! 왜?”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짜증을 내는 시후를 보며 남자들은 눈을 껌뻑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루프 이용은 꼭 2인 이상이 하셔야 합니다만? 동료분은 어디에 계십니까?”
“뭐?”
시후는 케냔 협곡으로 가기 위한 여정의 시작부터 발목이 잡히고 있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