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화
대박이라는 소리를 듣고 시후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자신의 레벨을 확인하는 거였다.
종족 : 인간
직위 : 없음
직업 : 무림인
파티 : 2명(힘만 센 대머리, 얍삽한 로빈훗)
<스텟 정보>
힘 : 130
민첩 : 130
체력 : 110 (HP : 11,000)
지능 : 125 (MP : 12,500)
분배 가능한 스텟 : 15
드라큘라 백작을 잡고 퀘스트 여관 마스터에게 보상을 받으니 레벨이 또 올랐다.
그렇게 오른 레벨이 이제는 70이었다.
하지만 보통의 70레벨과는 달랐다.
스텟을 올려주는 특별한 무언가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레벨 70짜리가 가질 스텟이 아니었다.
보통 유저가 레벨 70이 된다면 종합 스텟 280이 기본이었다.
그런데 지금 시후의 종합 스텟은 자그마치 495였다.
아직 넣지 않은 스텟까지 계산한다면 Lv. 120 정도의 유저와 동등한 스텟이었다.
하지만 지금 시후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레벨이었다.
“레벨 70이라…. 인호야, 내 레벨에 뭐를 입어야 괜찮은 거냐?”
“장비 입으려고?”
“응, 아무래도 레벨 올리는 속도에 박차를 가해 볼까 싶어서.”
레벨 올리는 속도를 더 올리겠다는 시후의 말에 태산과 인호는 낯빛이 어두워졌다.
둘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났다.
시후는 한동안 채찍질만 했으니 이제 당근을 건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걱정하지 마라. 이번에는 나 혼자만 갈 거니까.”
“어? 진짜?”
“길도 잘 모르는 곳에 친구 혼자 간다는데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니냐?”
“우, 우리가 그랬나? 하, 하하….”
이번에는 동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시후의 말에 태산과 인호는 뛸 듯이 기뻤다.
Safety World는 가상현실 게임이었다.
말 그대로 게! 임!
즐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 게임이었는데 태산과 인호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무공을 배운다는 것에 즐거움이 있었지만, 고등학교 1학년에게 그것을 구분하는 것은 힘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즐기는 것이고 힘든 것은 힘든 거였다.
둘의 그런 생각을 눈치챈 시후는 이번의 휴식을 통해 둘에게 재충전을 시켜줄 요량이었다.
“너희 둘은 프랑시스를 도와주며 쉬고 있어.”
“우리가? 뭐를 도와줘?”
“날파리가 꼬이지 않게 하는 역할?”
시후가 프랑시스에게 앞으로 지시한 일은 돈을 버는 일이었다.
드라큘라 백작의 저장고에서 얻은 몇십억의 골드가 있었지만 금방 사용할 것만 같았다.
그 이유를 생각한 건 Lv. 300짜리 아이템을 보며 인호와 대화를 나눴을 때였다.
자신은 아직 착용도, 정보도 확인할 수 없는 Lv. 300짜리 아이템을 보며 인호에게 저건 얼마나 하느냐며 물어갔었다.
그때 인호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Lv. 300짜리 레어 아이템은 경매에 내놓고 잘만 받으면 1억은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면 대부분 아이템을 팔겠다는 생각을 하겠지만 시후는 달랐다.
이곳에서의 레벨업은 곧 현실에서 천마의 무공을 되찾는 길이었다.
레벨이 어디까지 올라갈지는 모르지만 Lv. 300이 그 끝은 아닌 게 분명했다.
인벤토리에 나와 있는 전신 그림에 비어 있는 칸은 머리, 몸, 바지, 목걸이, 귀걸이, 반지, 무기.
가죽 부츠와 가죽 장갑까지 합친다면 아이템은 총 12개나 입을 수 있었다.
만약 Lv. 300짜리 아이템을 12개나 입어야 한다면 12억은 있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시후는 프랑시스를 거두면서 생각해 두었던 ‘돈 많이 벌자’ 계획을 시작하려는 거였다.
인호는 태산의 부탁으로 인벤토리에 있는 Lv. 70짜리의 아이템 중 희귀 아이템으로 시후의 몸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좀 아쉬운 거라면 세트 아이템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것저것 착용한 것치고는 상당히 멋져 보였다.
“음~, 역시 게임은 템빨이지!”
“그러게? 입어보니 불편하지도 않고 모양이 좀 사는 것 같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거울에 비친 모습은 자신이 봐도 멋져 보였다.
귀걸이와 목걸이는 최대한 보이지 않게 작은 것을 착용했다.
머리에는 투구같이 무거운 게 아닌 머리끈을 사용했다.
시후의 게임 캐릭터는 검은 흑발을 휘날리는 단발의 캐릭터였기에 목덜미 즈음에서 묶어주는 머리끈이 제법 잘 어울렸다.
몸에는 열기와 냉기를 막아주는 옵션이 달린 골드색 무복을 입었다.
바지 또한 골드색으로 맞추어 민첩을 올려주는 바지를 입었고 부츠는 검은색과 붉은색이 뒤엉킨 부츠를 신었다.
부츠에는 위급할 때에 사용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옵션이 붙어 있어 인호의 강한 추천이 있었다.
장갑은 힘을 올려주는 것으로 신발과 맞춘 듯 색도 문양도 같았다.
그리고 인호가 골라준 것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무기였다.
“팔찌가 검으로 변한다니, 아주 마음에 들어.”
챙-
시후는 마음에 든다며 팔찌를 교차하여 부딪쳤다.
그러자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팔목에 차고 있던 금색 팔찌가 빛이 번쩍이더니 각각 검으로 변하였다.
하나는 용이 새겨진 문양, 다른 하나는 호랑이 문양이 새겨진 검들이었다.
완벽하게 전신에 아이템을 착용하고 검까지 빼내어 든 시후의 모습은 태산과 인호가 보아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모습이었다.
“오~ 옷이 날개라더니, 템빨 장난 아닌데?”
“그러게? 옷에 잘생겨 보이는 옵션이라도 붙어 있는 거 아냐? 왜 이리 멋져 보이냐?”
“농담은, 그래도 잘생겨 보이는 것은 인정. 크큭.”
자아도취에 빠져 있던 시후는 몸을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프랑시스에게 시선이 닿았다.
프랑시스는 시후가 아이템을 장착하는 내내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황홀경에 빠진 저 표정하고는, 녀석.’
자신을 넋 놓고 바라보는 프랑시스의 모습에 시후는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주었다.
“프랑시스, 시계탑이 다시 복구되면 네가 원하는 모양으로 꾸며 봐라. 돈은 쓸 만큼 써도 되니 마음 놓고 쓰고, 최고의 환락탑을 만들어 보아라.”
“네!!”
시후가 프랑시스에게 지시한 것은 시계탑을 환락탑으로 만드는 거였다.
시계탑의 주인인 프랑시스만 살아 있다면 다른 여자들은 다시 복구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 여자들은 프랑시스의 명령을 무조건 듣느냐고 물었더니 그렇다 했다.
그래서 계획하였다.
한스텔 마을에 최고의 기루를 만들기로.
전투에 지친 몸을 재충전하는 데에는 기루만 한 곳이 없었다.
‘기루’라고 해서 꼭 쾌락만을 추구하는 곳은 아니었다.
천마 시절, 중원의 으뜸이었던 기녀는 단 하룻밤도 사내를 허락한 일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녀는 남, 녀 모두에게 인기가 있었으며 무용이나 악기 연주 등 그녀의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리켜 팔방미인이라고 불렀다.
시후는 그때 그곳을 이곳. Safety World에 재현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름도 ‘환락탑’이라 칭하였고 이곳을 프랑시스에게 맡기려는 거였다.
그리고 환락탑에는 중요한 역할이 하나 더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에는 그만큼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가 모일 거였다.
그것을 프랑시스와 부하들에게 수집하게 할 생각이었다.
기루라는 말을 들었을 때 태산과 인호가 반대했었지만, 정보 수집을 하는 역할이라는 말에 동의했다.
그런데 인호가 의문점이 생겼는지 질문을 해왔다.
“그런데 시계탑을 그런 역할로 바꾸게 되면 S.W SOFT에서 딴지를 걸어올 텐데?”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무슨 소리야?”
“나이 제한이 있는 게임이지만 기루는 분명 19금의 영역이지. 그런 곳이 만들어진다면 개발자라는 녀석들이 관심을 가져오겠지?”
“설마…!”
“그래. 토끼 굴에 연기 좀 피우는 거야.”
개발자한테까지 무언가를 얻어낼 생각을 하는 시후의 모습에 태산과 인호는 혀를 내둘렀다.
“그럼, 너희는 그렇게 알고 일을 진행해줘라. 나는 나갔다가 오마.”
“어디 가는데?”
“퀘스트하러!”
시후는 나머지 일들은 프랑시스와 태산과 인호에게 맡기고 본인은 레벨업에 필요한 퀘스트를 하기 위해서 마스터를 찾아갔다.
* * *
S.W SOFT의 운영기획실장 김철수는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최고급 소파에 앉아 있었다.
지금 그가 앉아 있는 곳은 사장실이었다.
긴장감을 달래기 위해 앞에 놓인 커피를 드는 순간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철수 실장님, 제가 지금 보고 있는 영상이 진짜입니까?”
김철수는 대답하기 위해 마른침을 한번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네, 박철 사장님께서 일전에 말씀하신 대로 한스텔 마을에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일이라는 게 언덕이 사라지고 시계탑이 사라진 이 영상이라는 말씀이시죠?”
“네, 맞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같은 흔적을 남긴 것이 분명 동일 유저의 소행이 확실합니다.”
김철수의 말에 박철은 태블릿 PC의 영상을 확대했다.
분명 하늘 위에는 남성 유저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지만 너무 먼 곳에서 찍은 탓인지 정확한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태블릿을 잠시 들여다보던 박철은 김철수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이 유저를 찾아야겠습니다.”
“그렇지요? 아무래도 찾아서 버그인지를 확인해야….”
“그게 아닙니다. 찾아서 꼭 우리 회사로 영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영입이요?”
운영기획실장인 김철수는 이 일련의 사태를 박철에게 보고하는 이유는 버그라 생각해서였다.
버그는 잡아야 한다는 게 김철수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버그 유저일지도 모르는 이를 영입해야 한다고 하는 박철의 말에 정확한 의중을 알 수가 없었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김철수의 표정의 박철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앞으로 저와 한배를 타게 되실 분이니 말씀드리죠, 사실 시계탑은 제가 성기사 길드를 이용해 클리어할 계획이었습니다.”
“네?”
여기서 갑자기 성기사 길드가 왜 튀어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성기사 길드라면 시계탑 던전의 히든 퀘스트인 드라큘라 백작을 잡을 수 있을 줄 알았으니까요.”
“히든 퀘스트요?”
점점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튀어나오자 김철수는 손에 땀이 흥건해져 갔다.
이제 이 자리는 그저 버그를 보고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S.W SOFT의 여러 파벌 중의 하나인 박철의 파벌이 자신을 끌어들이는 자리이었다.
꿀꺽-
침 넘김 소리가 김철수의 긴장감을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다른 형제들보다 먼저 이자를 찾아주세요, 돈? 인력? 필요한 게 있으시면 뭐든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빵빵한 지원을 약속하는 박철의 말에 김철수는 살짝 들뜨기까지 했다.
그런 김철수를 보며 박철은 낮은 어조로 다시 말해갔다.
“……! 시간이 없다 말씀드렸습니다.”
“아! 바로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김철수는 박철에게 허리를 90도로 숙이며 인사를 하고는 사장실을 후다닥 빠져나갔다.
김철수가 나가자 박철은 자리에 앉아 다시 한번 영상을 재생시켜 보았다.
언덕을 부수는 것은 그저 그렇구나 하고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블러드 토네이도를 찍어 누르는 순간 박철은 알 수 있었다.
“Safety World에 없던 스킬이다, A.I가 스킬로 등록시킬 정도의 가치와 정확도가 있는 기술이라는 소리란 말이지, 넌 누구냐? 누군데 그런 스킬을 사용하는 거냐?”
박철은 영상 속의 주인공을 흐릿한 얼굴을 보며 자신이 세운 계획에 꼭 필요한 인재라 생각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