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화
시후와 일행들은 일단 퀘스트 여관으로 돌아왔다.
시계탑 던전은 마을 중앙에 있었기에 그런 곳에 그 난리가 났으니 유저들과 NPC들이 빠르게 모인 것은 당연했다.
평소라면 던전을 클리어했다며 자랑을 하고 박수를 받았겠지만 프랑시스의 존재가 걸렸기에 그러지 못했다.
한스텔 마을의 시계탑 던전은 초보 유저들이라면 누구나 다녀온 던전이었기에 프랑시스의 얼굴을 아는 유저가 많았다.
던전의 주인이 던전 안에 없고 밖에서 싸돌아다닌다면 바로 사냥감이었다.
물론, 시후가 나서서 달려드는 놈들을 혼내주거나 죽여 버리면 되었지만 그렇게 되면 귀찮아지는 일이 많아질 게 뻔했다.
그래서 인호의 의견을 따라 퀘스트 여관으로 돌아온 거였다.
마스터는 시후를 보는 순간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를 표정을 지으며 반겼었다.
그런 마스터에게 웃든지 울든지 하나만 하라며 일침을 날리고는 프랑시스를 퀘스트 여관 무료 사용자로 등록했다.
한번 나갔다가 오면 꼭 한두 명씩 데리고 와 여관을 무료로 사용하게 하니 마스터로서는 미칠 노릇이었다.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1번 방으로 올라가는 시후 일행을 보며 마스터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렇게 1번 방에 모인 넷은 자연스럽게 시후를 중심으로 앉았다.
“와~ 커뮤니티에 난리가 났는데?”
인호가 스테이터스 창을 통해 Safety World 커뮤니티를 확인하며 시후를 바라보았다.
“시후 네가 시계탑 던전을 없애 버려서 여기저기서 난리가 났어.”
“뭘, 탑 하나 없어진 걸 가지고 난리들은.”
담담하게 말하는 시후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인호의 말에 대해서는 담담한 모습을 유지할 수 없었다.
“봐봐. 여기 누가 영상을 촬영했어.”
“뭐?”
인호는 스테이터스 창을 확대하며 동영상 하나를 재생시켰다.
영상의 시작은 10명 정도의 유저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인호와 태산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저 유저는 성기사 길드의 알렉산더라는 유저인데 Safety World 개인방송 채널로 유명한 사람이야.”
개인방송이 뭔지는 몰랐지만 영상 속에서 말하는 녀석은 제법 말재간이 있어 보였다.
-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성기사 길드의 루키! 여러분의 럭키! 알렉산더입니다~, 오늘은 그동안 성기사 길드가 벼르고 벼르던 시계탑 던전을 완전 클리어를 방송할 텐데요….
초반에 주절주절 떠드는 내용을 보니 길드라는 녀석들이 모여 시계탑 던전을 공략할 생각인 것 같았다.
그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하여 자신들의 홍보 수단이자 돈벌이로 활용한다는 인호의 설명도 있었다.
“그런데 영상을 보여주고 돈을 받나?”
“그럼~ 대단한 애들은 한 달에 1억씩도 벌어!”
“1억!?”
생각보다 큰 금액에 시후는 살짝 놀랐다.
아버지가 병원장이니 돈 걱정은 없었지만, 현실에서 돈을 좀 써보니 1억이 얼마큼의 가치가 있는지는 알았다.
학생 신분으로 게임방 1시간 이용하는 데 고작 2천 원이었는데 누구는 하루에 1억을 벌다니, 대단해 보였다.
신기하다는 생각과 함께 계속 재생되는 영상을 보던 때 드디어 인호가 말한 문제의 장면이 시작되었다.
- 여러분~ 그럼, 성기사 길드 출바알~~ 헉! 저거 뭐야?
- 콰지직- 콰드드득-
녀석들이 시계탑 안으로 막 들어서려는 찰나 블러드 토네이도가 시계탑을 뚫고 솟구쳐 올랐다.
건물 잔해 따위는 산산이 부서트리고 녹여버리며 점점 커지는 블러드 토네이도의 모습이었다.
‘이렇게 보니 제법인데?’
앞에서 보았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영상으로 보니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볼 수 없는 자연재해 같아 보였다.
성기사 길드의 루키라는 알렉산더는 혼비백산하며 멀찍이 물러나 촬영에만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사이 블러드 토네이도는 시계탑을 완전히 집어삼키고 일어나 점점 켜졌다.
성기사 길드는 점점 덩치를 키워가는 블러드 토네이도를 보며 어떻게 막아야 하나 의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닿는 즉시 집어삼켜지고 녹아버리는 건물들을 보며 딱히 묘수가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그때 시계탑이 있던 자리에서 땅을 뚫고 무언가가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멀리서 촬영한 탓에 정확한 얼굴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시후였다.
시후는 하늘 높이 날아오른 상태로 몸을 회전시키고는 블러드 토네이도를 향해 손을 내질렀다.
그러자 거대한 손바닥이 나타나며 블러드 토네이도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 와…. 저거 뭐냐? 스킬이냐?
알렉산더의 넋 나간 듯한 멘트와 함께 성기사 길드원들도 멍하니 바라만 봤다.
그리고 다시 한번 시후가 손을 내지르자 똑같이 거대한 손바닥이 나타나 블러드 토네이도를 짓눌렀다.
드디어 버티고 버티던 블러드 토네이도가 엄청난 굉음과 함께 폭발하며 사라졌다.
폭발의 위력이 어찌나 강했는지 그 여파가 성기사 길드에까지 미쳤다.
성기사 길드들은 멍하니 있다가 후폭풍에 휘말려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알렉산더 또한 마찬가지였기에 영상은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시계탑이 있던 자리를 비추는 영상에 4명의 모습이 보였다.
너무 멀리 있어 정확한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3명의 남성과 1명의 여성이었다.
- 여러분! 제가, 가보겠습니다. 어? 사라졌다?
알렉산더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넷에게 달려가려는 순간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알렉산더는 빠르게 달려나가 넷이 있던 자리에 다다라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영상의 끝에는 시계탑이 사라지고 남은 거대한 웅덩이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기까지 영상을 확인한 태산과 인호는 시후를 바라봤다.
“그때 시후 네가 빨리 뜨자고 하지 않았으면 저 영상에 우리 얼굴이 다 나왔겠는데?”
“크~ 그랬으면 우리 엄청 유명해지는 거 아녔냐?”
태산과 인호는 인기를 탈 수 있던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아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후는 꽤 진지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너희들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시후는 살짝 들떠 있는 둘에게 낮은 어조로 말해갔다.
진지한 모습의 시후에 둘은 알았다며 귀를 기울였다.
“앞으로 내가 괜찮다고 할 때까지 우리는 저런 영상에 노출되는 것을 피할 거야.”
“어? 왜?”
“내가 너희에게 가르쳐준 거는 게임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아….”
태산과 인호는 시후의 말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테이터스 창에 스킬로 등록은 되었지만, 주먹 한 방에 땅이 갈라지고 발길질 한 번에 회오리가 몰아치는 것을 스킬로 생각할 리가 없었다.
혹여나 Safety World 제작자가 그것을 보고는 확인이라도 하려고 찾아온다면 무어라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버그 유저로 검열되어 캐릭이 삭제될 수도 있었다.
“그럴 수는 없지, 그동안 모아놓은 골드며 아이템이 얼마인데.”
“맞아. 어? 골드랑 아이템 하니까 생각난 건데 드라큘라 백작의 저장고, 시후 인벤토리로 되었다고 하지 않았어?”
인호가 히든 퀘스트 보상으로 받은 저장고를 떠올렸다.
시후도 여기까지 오면서 내내 인벤토리라는 것이 궁금하였기에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 공유해 주었다.
인호는 시후가 공유해준 스테이터스 창을 꼼꼼히 읽어 나가는데 어째 표정이 점점 이상하게 변하고 있었다.
“와…. 개사기!”
“왜?”
인호의 말에 태산이 슬쩍 다가와 같이 내용을 읽었다.
역시나 태산의 반응도 인호와 마찬가지였다.
“이거 너무한데?”
시후는 이쯤 되자 슬슬 짜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인내심이 그리 좋지 못한 편이었기에 당장 둘의 이마에 딱밤이라도 먹이고 대답을 듣고 싶었다.
다행히 눈치가 빠른 인호가 입을 먼저 열었다.
“먼저, 시후 너 대박 맞았다?”
“대박?”
“어, 드라큘라 백작이 저장고에 어마어마한 물건들을 쌓아뒀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인벤토리라고 말해봐. 설명해줄게.”
인호의 말대로 ‘인벤토리’라고 부르자 스테이터스 창과는 별개로 다른 창이 떠올랐다.
거기에는 시후를 축소시켜 놓은 전신 사진이 있었는데 가죽 부츠와 가죽 장갑을 착용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네모 모양의 칸들이 상당히 많았는데, 처음 보는 물건들의 사진이 작게 들어가 있었다.
그나마 알 수 있는 것은 딱 하나가 있었는데 바로 ‘소지금’이라는 것이었다.
“소지금이라면 내가 가진 골드를 말하는 건가?”
“그렇지, 그런데 그게 어마어마해!”
“얼마나…. 일, 십, 백, 천…. 이게 얼마야?”
시후는 골드의 액수를 확인하다가 끝나지 않는 자릿수에 포기했다.
대신 인호가 액수를 확인시켜 주었다.
“이번에 드라큘라 백작에게서 얻은 골드가 40억 골드다!”
“40억 골드?!!!”
40억 골드가 얼마큼의 가치인지 바로 알 수는 없었지만 버럭 소리를 지르며 놀라는 태산의 반응을 보니 상당한 액수 같았다.
태산은 벌떡 일어나 미간을 찌푸리며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시후를 바라보았다.
저 녀석이 갑자기 왜 저러나 싶을 때 태산이 훅 다가왔다.
태산은 빠르게 시후 앞으로 다가와 무릎을 꿇더니 두 손을 가지런히 포개 시후 턱밑으로 들어 올렸다.
“뭐…냐?”
이게 무슨 의미냐는 뜻에 태산은 찌푸리고 있던 인상을 풀고는 헤헤 웃으며 입을 열었다.
“헤헤, 시후 님~ 한 푼만 줍쇼!!”
갑자기 구걸하는 듯한 태산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태산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인호가 후다닥 달려와 태산과 똑같은 행동을 했다.
둘은 언제 합이라도 맞춘 것처럼 입을 모아 한소리를 내었다.
“시후 님~~~ 한 푼만 줍쇼~~!”
“이 자식들이, 일어나~!”
일어나라는 시후의 말에 둘은 벌떡 일어나더니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개방의 무공을 가르쳤더니 제가 진짜 거지인 줄 아나?’
태산에게 개방의 무공을 가르친 것을 살짝 후회하는 시후였다.
그러고 보니 저들에게 이쯤에서 꼭 해줘야 할 말이 있었다.
“너희들! 다시는 내 앞에 무릎 꿇지 마라.”
“응?”
장난으로 구걸하는 모습을 보인 둘은 시후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나는 친구 사이에 상하관계가 없다고 생각해. 내가 생각하는 친구는 나와 언제나 동등한 입장이야, 그게 내가 비루먹어 죽을지언정 말이야!”
태산과 인호는 시후의 말을 들으며 웃는 얼굴을 지웠다.
자신들은 장난으로 하였지만 시후는 그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았다.
장난을 장난으로 넘기면 어떠냐고 하려고 했는데 자신이 죽어도 친구는 친구라는 뜻에 둘은 이해를 했다.
“알겠다. 앞으로 네 앞에 죽어도 무릎 꿇지 않으마!”
“절대! 근데 드러눕는 거는 괜찮지?”
“크크큭, 그래라! 그건 나도 할 거니까!”
태산의 농담에 시후도 같이 웃어갔다.
셋의 이런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프랑시스는 슬쩍 시후에게 다가왔다.
“저… 후 님, 저는…요?”
저들이 친구라면 자신의 입장은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거였다.
시후는 프랑시스를 바라보며 어떻게 설명해줄까 잠시 생각했다.
‘시종? 시녀? 살림꾼? 부하? 앞으로 돈 벌어줄 인재? 음…. 아!’
앞으로 프랑시스의 역할을 생각하던 시후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넌 내 거!”
“네?!”
시후의 말에 프랑시스는 갑자기 저런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쿵쾅거려왔다.
붉어진 얼굴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고개를 홱 돌리고는 혼자서 뭐라 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런 둘의 모습에 태산과 인호는 입을 틀어막았다.
입틀막 각이라며 놀려주고 싶었지만, 그 소리를 했다가는 프랑시스에게 죽을 것만 같아서 참고 있는 거였다.
시후는 그런 셋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앞으로 갈 길이 멀고도 멀었는데 자신의 말 하나하나에 이런 반응들을 보이니 시간이 아까워서였다.
“자, 자! 일단 내가 받은 골드는 일정 부분 너희들에게 줄게. 받아.”
“땡큐~!”
시후는 태산과 인호에게 1천만 골드씩을 주었다.
적은 골드는 아니었지만 둘은 이게 전부냐는 눈빛을 보내왔다.
“나머지는 프랑시스가 쓸 거라서.”
프랑시스가 이번에 번 골드를 쓸 거라는 말에 셋은 시후를 바라봤다.
그 후 시후는 셋에게 간략하게나마 앞으로 자신이 Safety World에서 돈을 벌어들일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태산과 인호는 설명을 들은 후 뭔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프랑시스는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며 두 주먹을 말아 쥐었다.
“뭐…. 당사자가 저렇다니, 알았어, 아! 그리고 골드만 들어온 게 아니야.”
프랑시스의 반응에 떨떠름해하던 인호가 추가적인 설명을 해왔다.
“저장고에 들어 있던 것은 골드뿐만 아니라 아이템들도 가득 들어 있었어. Lv. 10~Lv. 300까지 쓸 수 있는 아이템들이야.”
인호의 말대로 시후의 인벤토리에는 많은 아이템이 있었다.
네모 칸에 들어 있던 작은 사진을 누르자 아이템이 확대되며 설명이 나타났다.
인호의 말대로 낮은 레벨부터 고레벨의 유저가 사용하기에 적절한 아이템들이 들어 있었다.
그중에는 희귀 레벨과 레어 레벨의 아이템들도 있었다.
아직은 그것들의 가치를 모르는 시후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차차 알아가면 되지.’
하나하나 써보며 그 가치를 알아가겠다는 생각이었다.
자신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는 시후를 보며 인호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대단히 진지한 모습을 해왔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하나 더 있어.”
“뭔데?”
“네 인벤토리 용량이 엄청나게 커졌다는 거야.”
“커졌다고?”
인호의 설명을 이번에는 이해하지 못한 시후였다.
“원래 인벤토리는 10X10으로 100칸이야. 칸을 늘리려면 현질을 해야 하는데, 시후 너는 이번에 그게 엄청나게 늘었어.”
“그래? 어디…. 100X100? 1만 칸?”
시후가 인벤토리의 칸수를 세자 인호와 태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우리 시후 대박 터졌어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