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21화 (21/275)

제21화

단상 위에 앉아 있는 녀석의 목소리는 자갈이 갈리는 쇳소리 같았다.

듣는 이로 하여금 신경이 날카로워질 수 있는 그런 목소리였다.

당연히 먼저 나섰던 태산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불나방?! 개소리!!”

쾅-

태산은 대화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이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거대한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는 민첩함으로 빠르게 단상 위로 올라섰다.

바로 다리를 좌우로 벌려 기마자세를 취하고는 주먹을 허리춤에 올렸다.

“일 초식!”

개걸폭렬권의 일 초식을 내질렀다.

여우들을 잡으며 초식을 반복하였기에 숙련도는 상당히 올라갔고 레벨도 올라간 상태였다.

성공 확률 25%의 불안정한 초식이었지만 기선 제압을 위해 태산은 일 초식을 사용했다.

발검과도 같은 속도로 내질러진 주먹은 주위가 일렁일 정도로 기운이 모여들었다.

주먹이 끝까지 내질러지자 뒤따라 소리가 들려왔다.

쉬잉- 쾅-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폭발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개걸폭렬권의 일 초식이 성공한 거였다.

성공 확률 25%가 성공하는 순간 태산은 웃음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기운이 폭발하는 순간 앞에 있어야 할 공격 대상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것도 생각지도 못한 모습으로 말이다.

째째째짹-

단상 위에 의자가 개걸폭렬권 일 초식에 의해 폭발하기 직전 의자에 앉아 있던 남자의 몸이 분열했다.

여러 갈래로 나뉘더니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지르며 날아올랐다.

박쥐 떼였다.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른 박쥐들은 무리 지어 단상 밑으로 내려와 합쳐갔다.

그리고 남자의 몸으로 합쳐져 갔다.

그 모습에 시후는 신기하다는 듯이 턱을 매만지며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봤다.

“신기한데?”

“헐! 저게 왜 여기서 나와?”

반면, 인호는 저 남자의 정체를 아는지 놀라고 있었다.

“쟤 알아?”

시후의 질문에 인호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드라큘라 백작.”

“드라큘라?”

하지만 시후는 드라큘라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어리둥절해하는 시후의 모습에 인호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흡혈귀! 드라큘라! 몰라?”

“흡혈귀? 피를 빨아 먹는다고?”

시후는 고개를 돌려 드라큘라 백작을 보았다.

녀석은 자신의 이야기가 오가는 것을 아는지 잠자코 있었다.

굳이 자신의 입으로 자기소개를 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나 알지?’ 이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시후는 드라큘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천마 시절에도 피를 빨아 먹는 존재들은 알고 있었기에 흥미를 보인 것일 뿐이었다.

“뭐야, 고작 피 좀 빨아 먹고 박쥐로 변하는 능력이 있다고 으스대는 거야?”

“뭐라?”

시후는 별거 아니라는 듯 거만한 표정의 드라큘라에게 손사래까지 치며 말했다.

그런 시후의 반응에 드라큘라는 어이없어 한 발 나서며 입을 열었다.

“나를 잘 모르는가?”

“알아야 하냐?”

“허….”

드라큘라 백작은 정말 자신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시후의 반응에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앉아 있던 단상을 공격한 녀석 또한 자신이 박쥐로 변하는 모습에 깜짝 놀라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시스와 활을 둘러메고 있는 녀석 또한 자신의 정체를 알고는 놀라는 모습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정체를 직접 떠들지 않아도 저들은 자신의 위용을 알았기에 어깨가 으쓱했다.

한데, 한 녀석이 고작 피 좀 빠는 재주가 어쩌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화가 치밀었지만 여기서 화를 내는 것은 백작의 지위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었기에 참기로 하였다.

그리고 친절하게 자신의 소개를 하여 저 보는 눈이 없는 녀석에게 자신의 위용을 알려주려 했다.

“내 소개를 하지. 나는 드라큘라 백작 브라드 쩨뻬쉬라 한다, 반갑다.”

한쪽 손은 허리로, 다른 쪽 손은 왼쪽 가슴에 살짝 가져다 대고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드라큘라 백작이었다.

드라큘라 백작이 자기소개를 하자 눈앞에 스테이터스 창이 나타났다.

띠링-

[히든 퀘스트를 최초로 발견하는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업적 보상으로 인해 전 스텟이 +5씩 상향됩니다.]

[드라큘라 백작의 관심을 받으셨습니다.]

[드라큘라 백작이 당신의 피를 원합니다. 피를 빼앗기지 않으며 살아남으십시오.]

[드라큘라 백작에게서 살아남아 퀘스트 여관 마스터에게 드라큘라 백작의 존재를 알리고 보상을 받으십시오.]

시후는 눈앞에 나타난 메시지들을 보며 인호와 태산을 바라봤다.

태산은 박쥐로 변한 드라큘라 백작을 보며 기겁했다.

아무리 게임이라 하지만 누군가에게 피를 빨리는 경험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시후와 드라큘라 백작이 대화를 나누는 자시에 재빨리 인호 옆으로 돌아왔다.

태산과 인호는 시후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들도 같은 메시지를 받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였다.

“그런데 왜 퀘스트 완료 조건이 이러지?”

드라큘라 백작을 죽이라는 게 아니라 살아남으라는 퀘스트 내용에 불만을 가진 시후였다.

그 말에 인호는 후다닥 달려가 시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쫌! 굳이 퀘스트 내용을 말해줄 필요는 없잖아?”

“아…. 그것도 그렇군. 쏘리!”

인호의 지적에 하마터면 귀찮은 일이 생길 뻔해서 사과하는 시후였다.

하지만 시후의 입장에서는 별 대수롭지 않았다.

박쥐로 변하여 도망쳐 다니는 게 조금 귀찮을 것 같았지만 드라큘라를 죽일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점점 밤도 깊어 가는데 드라큘라라는 녀석을 그냥 죽이고 다른 것을 할까 생각하던 시후는 문득 드라큘라의 자기소개가 떠올랐다.

“잠깐, 저 녀석 백작이라고 했었지?”

“어? 어, 드라큘라 백작.”

“백작이라는 게 직위를 말하는 거야?”

시후의 말에 인호는 무슨 그런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백작이라는 게 어느 정도 직위야? 황제?”

딱히 비교 대상을 찾지 못한 시후가 황제를 거론하자 인호가 대답해주었다.

“그 정도는 아니고, 음…. 무협지를 생각하면, 세가(世家)의 가주(家主) 정도?”

“오호~ 그럼 돈 좀 있겠네?”

“엥?”

직위를 물어오던 시후가 갑자기 돈타령해 오자 다들 무슨 헛소린가 하는 표정이었다.

사실 시후는 일전부터 돈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었다.

퀘스트 여관을 사용하려면 골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난 다음부터 말이다.

여러 퀘스트나 몬스터를 잡으면 보상으로 골드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자고로 돈이라는 것은 부족함 없이 쓸 수 있을 만큼 있어야 좋은 거였다.

그리고 일반 여유보다 붉은 갈퀴 여우를 잡았을 때 드롭되던 골드가 많았던 것으로 보아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잡아야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래서 레벨업도 하고 골드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던전을 찾은 거였다.

던전에 들어와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드디어 골드를 얻을 방법을 찾았다는 생각에 미소가 떠올랐다.

“빙고! 야! 백작! 너 돈 좀 있지?”

드라큘라 백작을 향해 소리치는 시후를 보며 다들 어이가 없었다.

이제는 대놓고 드라큘라를 그저 돈으로 보고 있는 시후의 모습에 말이다.

그런데 들려오는 백작의 대답이 더욱 어이가 없었다.

“당연하지 않나? 자고로 백작이라면 부족함 없는 풍요로운 삶을 살아야 하기에 저장고 가득 골드를 쌓아 놓았지.”

띠링-

드라큘라 백작의 말이 끝나자 알림 소리가 들리더니 스테이터스 창이 나타났다.

[히든 퀘스트 드라큘라 백작의 비밀 저장고를 찾아라 발동.]

[재주껏 비밀 저장고에 들어 있는 것들을 챙겨 빠져나가시오.]

나타난 스테이터스 창을 확인한 태산과 인호는 고개를 돌려 시후를 봤다.

시후는 거 보란 듯 어깨를 으쓱였다.

“자~ 그럼 얻을 것도 확인했겠다. 마지막 하나만 확인하면 되겠네?”

“또 확인할 게 있어?”

또 뭐가 있는지 궁금한 태산이었다.

“저 돈줄 놈이 히든 퀘스트라는 것은 알겠는데, 프랑시스, 저 녀석이 너를 어떻게 아는 거냐?”

“네?”

시후는 이곳에 들어오고부터 한 발 뒤로 물러나 손가락만 꼼지락거리는 프랑시스를 불렀다.

시후가 드라큘라 백작과 프랑시스의 관계를 눈치챈 것은 드라큘라가 자기소개를 할 때였다.

드라큘라의 시선이 자신과 인호를 거쳐 프랑시스에 닿았을 때 처음 보는 이를 대할 때 눈빛이 아닌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때 바로 프랑시스에게 물어보지 않은 것은 둘이 어떤 관계일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 이곳을 최초로 발견했다는 스테이터스 창을 보고는 프랑시스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을 알아 잠자코 있었다.

하지만 이제 드라큘라를 상대해야 했기에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알아야 했다.

시후의 물음에 프랑시스는 머뭇거리다가 각오를 다진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드라큘라 님의 시종이었어요.”

“시종? 그런데 ‘이었다’라면, 이제는 아니라는 말이야?”

“네, 도망쳤거든요.”

“오호~ 그런데 지금 네 표정을 보니 뭐가 남아 있구나?”

“그게…….”

프랑시스는 마지막 말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대신 그 답은 다른 쪽에서 들려왔다.

“그 애는 내 주변에 있어야 한다.”

“뭐?”

자갈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드라큘라였다.

그 말인즉슨, 프랑시스가 여전히 자신의 종이었기에 일정 범위에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프랑시스는 드라큘라를 이곳에 가두어 두고도 시계탑을 벗어나지 못한 거였다.

대신 유저들의 피를 흡혈하여 힘을 키운 뒤 드라큘라를 죽이고 자유를 찾을 생각이었다.

자세한 설명을 들은 시후는 턱을 매만졌다.

“프랑시스, 저 녀석이 죽어도 너는 문제없는 거지?”

“네? 무슨?”

“혹여나, 저 녀석이 죽으면 너도 죽는가 해서 물어보는 거야.”

천마 시절 흡혈을 하는 존재들의 대부분이 그랬다.

모체가 죽으면 그 종이었던 녀석들도 힘을 잃고 죽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시술자가 죽어도 다른 녀석들이 죽었다.

어쨌든 최초로 시작한 놈이 죽으면 그 밑의 녀석들이 같이 죽은 것이 기억나 물어본 거였다.

프랑시스는 시후의 질문에 얼굴을 붉혔다.

프랑시스에게는 방금 시후의 질문이 ‘네가 죽는 건 싫다’라고 들렸다.

얼굴을 붉히던 프랑시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전 괜찮아요. 백작님이 죽는다 해도 제가 피해를 보는 것은 없어요. 하지만… 백작님은 너무 강해서 죽일 수가 없어요.”

죽이기 힘들다는 프랑시스의 말에 드라큘라 백작이 웃었다.

“클클클, 잘 아는구나? 아이야, 내 저것들의 피를 전부 빨아낸 후에 너를 마음껏 귀여워해 주마.”

드라큘라 백작이 음흉하게 눈을 빛냈다.

프랑시스의 몸을 위에서 아래로 훑으며 혀를 살짝 핥아가는 게 귀여워해 주겠다는 게 무엇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 모습에 태산과 인호가 프랑시스의 앞을 가로막았다.

“시, 시후야, 프랑시스는 우리가 보호할게.”

“그래,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힘내!”

프랑시스를 지키겠다는 둘의 말에 시후는 미소로 답했다.

그리고 드라큘라를 향해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

“프랑시스, 든든한 오빠들이 생겼다 생각하고 뒤에 숨어 있어.”

시후의 말에 프랑시스는 태산과 인호를 보며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웃어갔다.

프랑시스의 반응에 태산과 인호는 얼굴을 붉히며 살짝 수줍어했다.

그리고 이런 귀여운 여동생을 만들어준 시후를 향해 소리쳤다.

“시후!! 파이팅!!”

둘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시후를 응원했다.

시후가 걸어 나가자 드라큘라 백작 또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싸울 준비를 했다.

“오라, 불나방이여! 크하하하하.”

처음에도 그러더니 불나방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고 저런 말을 하는지.

“그래, 여기 흡혈귀는 어떻게 다른지 좀 보자. 한번 놀아보자고 모기 새끼야!!”

시후는 드라큘라 백작을 ‘모기’라 부르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