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17화 (17/275)

제17화

시후가 로그아웃을 하고 캡슐을 나오니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방금 집에 들어오신 것인지 옷을 갈아입지 않은 정장 차림의 모습이었다.

“오셨어요?”

“그래, 우리 시후 친구들과 놀고 있었구나?”

“아저씨, 안녕하세요~!”

아버지의 인사에 태산과 인호는 활짝 웃으며 목소리 높여 인사를 했다.

‘평소 큰 거리감 없이 지내던 사이였나?’

친구의 아버지를 어렵게 대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시후는 그 모습에 다행이라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얘네 오늘 자고 갈 거예요.”

“그러니? 잘되었구나. 이제 시후도 건강해졌으니 예전처럼 자주 놀러 오려무나.”

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옷을 갈아입어야겠다며 캡슐 방을 나갔다.

셋만 남게 되자 태산과 인호는 고개를 홱 돌려 시후를 바라봤다.

“우리 자고 가?”

“왜?”

사전에 상의 없던 취침 예약에 둘은 이유를 물었다.

그 모습에 시후는 당연한 소리를 왜 하냐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한 거 아니냐? 게임해야지!”

“에엥?”

시후의 말에 둘은 세상 싫은 표정을 지었다.

그냥 게임도 아니고 가상현실게임의 최고봉인 Safety World였고 돈도 들이지 않고 마음껏 할 수도 있는 데다 그 게임 안에서 무공도 배울 수 있었지만, 지금의 둘에게는 휴식이 먼저였다.

어째서인지 몸은 그 어느 때보다 개운한 상태였다.

하지만 정신만큼은 아니었다.

시험공부를 밤새 한 후에 6시간 내리 시험을 본 후의 그런 정신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시후를 향한 둘의 눈빛은 상당히 간절했다.

“우리 내, 내일 학교 가야 하는데?”

“맞다, 우리 학교 가야 해!”

인호의 말에 태산이 나이스 타이밍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시후는 그런 둘을 보며 한쪽 눈썹만 치켜들며 피식 웃었다.

“내일 토요일이다.”

“헉!”

“그, 그럴 수가….”

둘의 절망에 빠진 듯한 표정을 보며 시후는 어깨를 토닥여줬다.

“밥 먹자. 금강산도 식후경, 밥 먹고 게임하자?”

“…응.”

시후의 말에도 둘은 어깨가 추욱 처져 있었다.

이쯤 되자 시후도 슬슬 짜증이 밀려왔다.

“너희, 무공을 배우는 게 쉬운 건 줄 알아?”

“어?”

“너희들에게 가르쳐준 무공을 실제로 활용해보기 위해서는 10년 동안 몸을 만들고 10년 동안 정신 수양을 쌓으며 10년 동안 초식을 공부해야 해. 그러고 나서 절기를 전수하는 게 기본이야.”

천마 시절 개방 방주가 자신의 절기를 수제자에게 가르치기 위해 들인 시간을 말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그때 체내에 나쁜 기운을 몰아내며 몸을 만드는 데 10년, 기본 소양을 쌓아 맑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10년, 초식의 오묘함을 깨닫는 데 필요한 게 10년이라고 했었다.

그 말을 그대로 둘에게 하는 시후였다.

“그런데 나는 너희에게 12경맥을 뚫어주고 직접 시연까지 해주며 가르쳐 주는데 복에 겨운 소리나 하는 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자신들이 배운 무공이 얼마큼의 시간이 필요한지 들은 둘은 고개를 푹 숙였다.

현세에 다시없을 기연을 만난 것인데 좀 피곤하다고 해서 투정을 부린 자신들이 한심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묵언으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둘이었다.

시후는 이쯤 했으니 알아들은 것으로 보이기에 둘의 어깨를 밀며 입을 열었다.

“친구 잘 둔 거라 생각하고, 열심히 하자.”

“아, 알았어.”

“아! 생각해보니 밥 먹고 바로 Safety World에 접속하지 않아도 된다.”

“어? 진짜?!”

갑자기 바로 게임에 로그인하지 않는다는 시후의 말에 둘은 화색이 돌았다.

‘그래 시후도 사람인데, 저도 피곤한 거야.’

‘시후가 그렇게 모진 애가 아니지.’

둘은 저마다의 생각으로 쉴 수 있겠다는 희망에 물들었다.

하지만 시후의 계획은 전혀 달랐다.

저녁 식사 후에는 둘의 달라진 몸 상태를 확인할 생각이었다.

자신은 천마분심공을 통해 게임에서 얻은 능력을 현실에서 내공으로 증진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작용할지 확인해 보는 작업이 필요했다.

둘의 화색이 도는 얼굴을 보며 굳이 그 말까지는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밥 먹고 말해도 늦지 않겠어.’

굳이 지금 즐거워 보이는 모습을 망치고 싶지는 않은 시후의 배려였다.

어차피 오늘은 밤새 Safety World를 할 생각이었기에 지금은 그냥 두기로 했다.

‘카오질하던 녀석이 돌아오기까지 20시간 정도 남았나?’

애초의 계획대로 자신이 없어도 태산과 인호가 카오에게 죽지 않을 정도까지만 만들자는 생각이었다.

카오질하는 녀석들은 본캐의 렙이 높았고, 카오캐는 대부분 Lv. 100 정도였다.

더 높은 레벨의 카오도 있었지만 그건 나중의 일이었기에 지금 당장 신경 써야 하는 ‘눈에 띄면 죽는다’ 녀석으로 기준을 잡은 거였다.

태산과 인호는 익숙한 모습으로 손을 씻고 식당으로 향했다.

확실히 저 둘이 시후네 집에 들락거린 게 한두 번이 아닌 게 확실했다.

저녁 식사는 주방 아주머니께서 차려주시는 음식으로 진수성찬이었다.

찜 요리에 전 요리에 구이 요리까지 빠지는 게 없었다.

단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아버지가 들이켜고 계시는 저 ‘술’이었다.

천마 시절에 좋은 술이라는 좋은 술은 모두 마셔 봤었다.

천 일에 한번 피는 꽃으로 만든다는 천일홍주.

만년설을 녹여 술을 빚었다는 만년설주.

개방 거지들이 주로 마시는 독하면서도 속을 확 뒤집는 게 매력인 화주까지 안 마셔본 술이 없었다.

이렇게 좋은 요리들과 한 잔 걸치면 천국이 따로 없을 거라는 시후의 생각이었다.

그렇게 그림의 떡 같은 술이 아버지의 목구멍으로 한 잔 두 잔 석 잔이 넘어가자 아버지가 진지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시후야, 학교에서 연락이 왔었다.”

“무슨 일로요?”

“네가 학교 애들과 싸웠다는 소문이 있다고 하더구나?”

병상에 눕기 전까지만 해도 연약하기만 했던 시후가 다시 건강해져 학교를 다니는 것이 너무 기쁜 아버지였다.

그런데 병원에서 열심히 운동하여 몸을 키우더니 이제는 학교에서 싸웠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오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환자를 살리는 의사로서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도 내주고 오라고 가르쳤었는데….’

몸이 좀 고달파도 마음만은 편하게 지내자는 아버지의 생각이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이는 아버지에게 시후는 당당하게 말해갔다.

“싸우지 않았어요.”

“맞아요, 시후는 싸우지 않았어요, 아저씨!”

“그래? 그런데 듣기로는 시후 네가 애들의 몸 이곳저곳을 찔렀다고 하던데?”

“아? 그거요?”

도대체 누가 일러바치었는지 아주 자세하게도 아버지에게 이른 것 같았다.

대충 눈치를 보니 전후 사정을 다 알고 있는 것 같아 숨김없이 말하기로 했다.

“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애들이 시비를 걸어왔어요.”

“허…. 그래서 때렸니? 내가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도 내주고 오라고 그렇게 일렀잖니.”

뭔가 상당히 실망한 아버지의 눈빛이었다.

연약한 시절의 시후라면 저런 아버지의 눈빛을 보고 사과를 해갔겠지만 이제 그런 시후는 없었다.

‘당하기 전에 친다. 그게 천마의 상식이지.’

천마 시절 언제나 선봉에서 적을 공격한 천마의 사고방식이었다.

하지만 그건 그 세계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이고 여기는 여기만의 방식이 있었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없던 천마 시절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 수 있었다.

자식이 거친 태풍에도 부러지지 않는 큰 거목이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말이다.

‘어떻게 설득한다.’

그렇다고 사과를 하기에는 두고두고 한쪽 뺨을 내줘야 할 것 같았기에 절충안이 필요했다.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해야 효과적일까를 생각하던 때에 지원 사격이 들어왔다.

“아저씨, 요즘은 예전 같지 않아요.”

“뭐가 말이냐?”

“솔직히 아저씨에게는 말씀드리지 않았는데 요즘은 뺨 한 대 내준다고 해서 끝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럼?”

인호가 아버지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아저씨도 들어 보셨을 거예요, 셔틀이나 왕따, 그런 거요.”

“그럼? 하….”

아버지도 그 단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셨는지 이마를 짚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우리 시후 많이 힘들었겠구나. 아빠가 미안하구나.”

진심으로 걱정하는 아버지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 시후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저도 이제 17살이에요, 옛날이었으면 자식이 한둘은 있었을 나이잖아요?”

“허, 녀석도.”

시후의 실없는 말에 걱정 가득한 아버지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덜어졌다.

“그리고 저는 그 애들을 다치게 하지 않았어요.”

“듣기로는 반에서 비명까지 들렸다던데?”

이쯤 되자 시후는 그때 일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녀석들이 시비를 건 것부터 바지를 뚫을 듯이 튀어나오던 냄새나는 이물질의 이야기까지 자세하게 말이다.

“그러고 보니 녀석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좀 다쳤겠네요, 똥싸개 패거리로 불릴 정도니까요.”

“그런 별명도 생겼니?”

“네, 아! 그리고 그 녀석들 좀 창피하기는 했지만, 집에 가서는 상당히 개운했을 거예요.”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는 시후에 아버지가 궁금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제가 누른 혈이 쾌변을 해주게 하는 혈이라서 아마, 장이 깔끔해졌을 거예요.”

“허, 허허, 그런 혈도 있니?”

이제는 걱정하는 눈빛이 사라진 아버지를 보며 시후는 한시름 놓았다.

혈 자리에 대한 것을 어떻게 알았냐는 것은 무협지를 보면서 알게 되었고 의학서적을 찾아보았다고 했다.

평소 시후가 무협지를 자주 읽는 것을 알았기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 말을 믿는 눈치였다.

그리고 쾌변을 가능하게 해주는 혈 자리를 물어왔다.

아마도 병원에서 환자들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시는 것 같았다.

시후는 내공이 없는 아버지가 혈 자리를 단번에 자극할 수는 없었기에 정확한 혈 자리를 짚어 주며 시간을 들여 누르면 효과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아버지의 걱정을 덜어주는 저녁 식사가 끝난 후 시후와 태산과 인호는 다시 캡슐 방으로 돌아왔다.

“시, 시후야? 우리 좀 쉰다고 하지 않았어?”

캡슐 방으로 자신들을 끌고 오자 당장 로그인할 것 같았기에 엄살을 피우는 태산이었다.

“지금 말고. 우선 너희들의 변화를 관찰할 필요가 있겠더라, 가부좌 틀고 거기 앉아봐.”

시후의 말에 둘은 얌전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았다.

시후는 두 눈을 감은 둘의 정수리에 손을 얹어 내공을 흘려 넣었다.

‘오호~ 얘네들에게도 어느 정도의 효과는 있구나?’

태산과 인호의 몸에 내공을 흘려보내자 변화된 상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단전의 틀만 있던 녀석들이 지금은 단전이 만들어져 있었다.

자신처럼 환골탈태를 이루지는 못하겠지만 확실히 현실 세계에서 훈련하는 것과는 다른 효과가 있었다.

시후는 둘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는 입을 열었다.

“그대로 들어. 너희에게 단전이 생겼다.”

“진짜?”

“그래, 그래서 하는 말인데 앞으로는 몸 쓰는 거에 조심해라, 단전이 생겼으니 보통 사람들은 크게 상할 수 있다.”

시후가 지금과 같은 당부를 하는 것은 순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었다.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을 내주라는 말을 곡해하지 않은 거였다.

‘다 잘되라고 하는 말이시지, 그리고 혹여나 너희가 그 힘으로 누군가를 상하게 한다면 크게 후회할 테니까.’

시후는 태산과 인호가 새롭게 얻은 힘을 주체하지 못해 큰 실수를 하지 않도록 경고한 거였다.

“좋았어, 그 상태로 각자 알려준 심법으로 운기조식 한번 한 후에 접속하자.”

“어? 오늘 게임하는 거야?”

“당연하지, 단전이 생겼으니 그걸 써봐야 할 거 아니냐.”

단전이 생겼다는 말에 태산과 인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히 자신들도 욕심이 생긴 것이었다.

시후가 알려준 대로 게임을 했을 뿐인데 단전이 생겼다니 더 많은 것을 얻고 싶은 거였다.

결국, 둘은 강해지려는 욕심에 정신적인 피로를 잊고 있었다.

그리고 셋은 바로 캡슐로 들어가 Safety World에 로그인했다.

* * *

S.W SOFT 운영기획실장 김철수는 직원들에게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빨리 알아봐! 저게 왜 저렇게 변한 건데?!”

운영기획실 전면에는 한쪽 벽을 가득 채우는 메인 스크린이 있었다.

그 스크린에는 Safety World의 여러 맵들이 띄워져 있었다.

그런데 유독 하나의 맵이 커다랗게 띄워져 있었는데.

“어떻게 된 거야? 한스텔 마을에 왜 저 손바닥 모양의 웅덩이가 생긴 건데?!!”

운영기획실에 있는 여러 명의 직원에게 소리치는 김철수였다.

직원들은 그 웅덩이가 생긴 이유를 찾아 열심히 영상을 확인했다.

그러다 한 직원이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실장님! 여기입니다!”

“그래? 크게 띄워봐!”

김철수의 말에 영상을 찾은 직원은 메인 스크린에 해당 영상을 크게 띄워 재생시켰다.

그리고 재생되는 영상에 다들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와…. Safety World에 저런 스킬도 있었어?”

“나 저런 거 처음 보는데?”

“누구야? 얼굴이 잘 안 보이는데?”

저마다 한소리씩 하며 믿기지 않는 장면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메인 스크린에 나오는 영상은 시후가 천마멸겁장을 펼치는 영상이었다.

김철수는 영상에서 언덕이 사라지는 것까지 보고는 정지 버튼을 눌렀다.

“됐어, 모두 각자 일해!”

느닷없이 업무를 지시하는 김철수의 말에 직원들은 익숙한 듯 혀를 차고는 각자의 일을 시작했다.

그사이 김철수는 조용히 스마트폰을 들었다.

“김철수 실장입니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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