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화
Safety World에서 ‘카오’로 활동 중인 ‘눈에 띄면 죽는다’는 카오의 세계에서 제법 유명한 녀석이었다.
하지만 본캐가 몇 레벨인지,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다.
유저를 죽이고 다니는 다른 카오들도 많았지만, 그중에서 ‘눈에 띄면 죽는다’가 유명해진 이유는 녀석의 변태 같은 행동 때문이었다.
녀석은 청부업자처럼 의뢰가 들어오면 카오 활동을 했다.
그런데 그 의뢰 내용이 특이했다.
의뢰 대상이 Safety World의 아이디를 삭제할 때까지 죽이는 것.
녀석은 평소 Safety World는 아무나 하면 안 된다는 사상을 갖고 있었다.
특별한 사람. 즉, Safety World에 의해 선택된 자만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죽이는 유저의 아이디가 삭제될 때 녀석은 희열을 느꼈고 그로 인해 유명해졌다.
그리고 이번에 받은 의뢰는 그런 사상을 가진 녀석에게 더욱 특별한 의뢰였다.
청부 의뢰를 한 이가 특별했다.
하지만 의뢰 내용은 간단했다.
마을 밖에서 여우를 사냥 중인 3인조를 혼내 주라는 거였다.
들뜬 마음으로 마을 입구를 나왔고 드디어 표적을 발견했다.
여기가 태권도 도장도 아니고 주먹을 내지르거나 발차기 연습을 하는 꼴이라니.
저런 얼빠진 녀석들은 Safety World를 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하며 이번 의뢰도 쉽게 끝낼 것 같았다.
갑자기 기습해 죽이는 방법도 있었지만 저런 얼빠진 녀석들에게는 자신의 위엄을 보여 줘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목소리 높여 녀석들을 불렀다.
“여~! 남자 셋이 모여서 뭐 하냐?”
녀석들에게 친절하게 자신의 빨간색 아이디를 보여주며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줬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녀석들 중 한 녀석이 얼빠진 소리를 해왔다.
“너구나? 보물 상자?”
“뭐?”
시후는 ‘눈에 띄면 죽는다’를 보며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비천대 녀석들에게 들었던 게 네 얘기구나? 보고 싶었다!”
“시, 시후야?!”
카오를 보면 도망을 가야 하는데 오히려 반기는 시후의 모습에 태산과 인호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자신을 뺀 셋의 공통된 반응에 시후는 어깨를 으쓱여가며 입을 열었다.
“카오라며? 카오가 죽으면 소지하고 있던 좋은 아이템을 떨군다며? 아니야?”
시후의 말에 셋은 이제야 시후가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이해했다.
“하?! 뭐지? 이 얼빠진 녀석은?”
눈에 띄면 죽는다는 자신을 보고 두려워하기는커녕 자신을 죽여 아이템을 가져갈 생각을 하는 시후가 어이없었다.
그러면서도 역시나 고레벨 유저답게 셋이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을 훑어갔다.
얼빠진 녀석의 앞을 가로막고 있는 두 녀석이 착용한 아이템을 보니 둘의 레벨은 Lv. 50~60 사이로 보였다.
그리고 정신병자 같은 말을 내뱉는 저 얼빠진 녀석은 초보에게나 지급되는 가죽 부츠와 가죽 장갑을 착용하고 있는 것을 보니 초보가 분명했다.
“하아…. 이래서 나 같은 사람이 Safety World를 정화해야 하는 거야, 개나 소나 Safety World를 하니 이런 얼빠진 녀석도 있잖아?”
눈에 띄면 죽는다는 시후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후는 그런 녀석을 보며 인호를 향해 확인할 것이 있어 물어갔다.
“인호야, 내가 저 녀석을 죽인다고 해서 카오가 되는 건 아니지?”
“어… 그건 아니야. 카오는 죽여도 우리에게 피해는 없어. 보통의 유저도 셋은 죽여야 아이디 색이 붉어지기도 하고.”
Safety World에서 유저를 한 명 죽이면 아이디가 흰색으로 변한다.
둘을 죽이면 검은색, 셋을 죽여야 붉은색으로 변하며 카오로 불리게 된다.
하지만 붉은색 아이디를 보이는 카오는 죽여도 본인의 아이디 색이 변하지 않는다.
그것을 간단하게 설명한 인호의 말에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걸어갔다.
“네가 부디 좋은 아이템을 들고 있길 바란다.”
“하아… 너부터 죽여주… 헙!”
쾅-
눈에 띄면 죽는다는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시후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덕분에 시후의 손등 치기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위력이 엄청났기에 녀석은 뒤로 튕겨 나가며 바닥에 나뒹굴었다.
눈에 띄면 죽는다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퉁겨져 일어나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시후의 공격을 막은 두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오히려 ‘눈에 띄면 죽는다’의 그런 모습에 시후는 감탄사를 내뱉어갔다.
“오~ 막았어? 제법인데?”
“너, 너 뭐냐?!”
분명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은 초보 아이템인데 어째서 이런 위력을 보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길게 할 여유는 없었다.
어느새 시후의 모습이 일렁이며 흐려지는 것이 보였다.
“쳇!”
탓-
녀석은 본능적으로 다리에 힘을 주어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그러자 자신이 있던 자리에 갑자기 나타난 시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시후는 한 번 더 막아 보라는 뜻에서 방금과 똑같이 손등 치기를 날려갔다.
이번에는 막는 게 아니라 하늘로 도망가는 녀석을 보며 박수까지 보내고 있었다.
짝짝짝-
“오~ 완전 대단해? 카오는 다들 너 같은 움직임을 보이나?”
명백히 자신을 무시하는 듯한 시후의 말에 눈에 띄면 죽는다는 칼을 높이 치켜들었다.
단숨에 시후를 죽여 버리겠다는 의도였다.
자신이 가진 카오 캐릭터의 최고의 공격 스킬을 사용하기 위한 준비 자세였다.
“죽어! 번개 치기!”
우르르 쾅-
녀석의 입에서 스킬명이 나오자 녀석의 신형이 번쩍이며 땅으로 내리꽂혔다.
목표는 시후.
시후는 자신을 향해 하늘에서 번개가 내려치는 듯한 모습을 보며 신기해했다.
Safety World에서 제대로 된 스킬을 보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며 끝까지 지켜보기로 했다.
카오라는 녀석이 스킬을 사용하자 녀석의 몸이 번개로 변하여 움직여왔다.
하늘이 번쩍이는 순간 빠르게 땅을 향해 내리쳐 오는 모습이 진짜 번개와 똑같았다.
‘대단하군, 마치 뇌신(雷神)을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천마 시절 비천대의 수장이었던 뇌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뇌신은 어린 시절 번개를 얻어맞은 후에 몸의 내공을 번개처럼 사용할 수 있는 특이체질이었다.
그것을 갈고닦아 무공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준 게 천마였기에 녀석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천마의 곁을 지키다가 죽어갔었다.
잠깐 감성에 젖어 있는 때에 어느새 번개로 변한 ‘눈에 띄면 죽는다’가 코앞까지 다다랐다.
시후는 이 정도면 다 보았다는 생각에 몸을 비틀며 땅을 박찼다.
콰지지직-
번개가 내려친 땅은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터져 오르며 주위에 전기를 흘렸다.
스파크가 튀기며 퍼져나가는 모습에 멀리서 지켜보던 태산과 인호는 두 손을 꼭 쥐어갔다.
둘은 카오를 보는 순간 시후와 함께 로그아웃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후가 자신들을 지나치며 속삭여 온 말에 이렇게 지켜보는 중이었다.
“잘 봐. 너희들의 무공을 실전에서 사용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 테니까.”
게임상의 몬스터를 때려잡는 것과 지능을 가진 사람을 대할 때는 명백히 달랐기에 둘은 집중했다.
두려운 마음과 걱정하는 마음을 움켜쥐고 시후의 움직임을 한순간이라도 놓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며 말이다.
그리고 이번 움직임에 인호는 보았다.
시후가 땅을 박차는 순간 발을 어지럽게 움직이며 천기보를 펼치는 것을 말이다.
“아! 저렇게 사용하는 거구나?”
카오의 번개 치기를 천기보로 가볍게 피해낸 시후는 감탄하는 인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번개 치기에 실패한 녀석을 바라보자 녀석의 표정은 당혹감으로 물들어 있었다.
“또 들어와 봐라.”
시후는 녀석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공격해 보라는 표현을 했다.
반면, ‘눈에 띄면 죽는다’는 카오 캐릭이 가진 최고의 공격 스킬인 번개 치기가 실패하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래, 그 녀석이 청부 의뢰를 했을 때부터 잘못된 거였어, 여기서 도망가야 한다.’
눈에 띄면 죽는다는 여유롭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시후의 모습을 보며 도망갈 궁리를 꾀했다.
처음부터 의뢰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에 의뢰인을 찾아가 멱살을 잡아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후는 엉덩이를 뒤로 빼며 무게 중심을 뒤로 흘리는 녀석의 모습에 도망치려는 것을 눈치챘다.
“흥! 어딜 가려고! 흡!”
콰과과곽-
시후는 빠르게 두 다리를 양쪽으로 벌리며 기마자세를 만들었다.
그리고 기운을 폭발적으로 퍼트렸다.
“어? 개걸폭렬권 이 초식이다!”
태산의 말처럼 시후가 펼친 것은 개걸폭렬권 이 초식인 중권이었다.
땅거죽이 거미줄처럼 으깨어지며 도망치려는 카오의 몸을 짓눌렀다.
“커헉!”
눈에 띄면 죽는다는 갑자기 몸을 짓누르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땅에 얼굴을 처박았다.
마치 거대한 바위에 깔리는 듯한 고통에 카오가 비명을 질렀다.
“크아악! 그, 그만!”
녀석의 비명에 시후는 기운을 천천히 거두었다.
태산과 인호가 실전에서 무공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본 것만으로 큰 수확이었다는 생각에 기운을 거둔 거였다.
아이템을 준다는 보물 상자인 카오였지만 지금 보니 태산과 인호를 훈련할 수 있는 아주 좋은 재료로 보였다.
바닥에 엎드린 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눈에 띄면 죽는다’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죽이지는 않으마. 대신 네가 해줘야 할 일이 생겼다.”
‘눈에 띄면 죽는다’를 태산과 인호의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대련 상대로 써먹을 생각이었다.
‘눈에 띄면 죽는다’는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시후의 발걸음 소리가 사신의 발걸음 소리처럼 들려왔다.
“죽, 죽음이 다가오는구나….”
시후는 고개를 힘겹게 들어 올리는 녀석을 보며 특이한 녀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그아웃하면 죽지 않아도 되는데 그냥 죽는 것을 택하려는 것인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약간 도를 넘는 것으로 보이기는 했지만, 로그아웃보다 죽는 것을 택하는 녀석의 모습에 관심이 갔다.
시후의 생각대로 ‘눈에 띄면 죽는다’는 여기서 로그아웃하는 것은 자신의 가치를 낮추는 행위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개를 들어 목을 길게 빼고 단칼에 치라고 말하려 하였다.
그런데 힘겹게 고개를 들어 바라본 시후의 모습에 숨이 막혀 왔다.
“머, 멋지다.”
땅에 처박힌 채 올려다봐서일까.
올려다본 시후의 등 뒤에 보이는 푸른 하늘과 해를 가리고 있는 모습이 후광이 비치는 모습처럼 보였다.
자신의 최고 기술을 가볍게 피한 모습하며,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술로 자신을 옭아맨 모습은 눈에 띄면 죽는다가 꿈꿔온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멈칫.
시후는 당장이라도 죽여달라는 눈빛을 보내던 녀석의 눈빛이 무언가 기분 나쁜 눈빛으로 변하자 걸음을 멈췄다.
“뭐냐? 그 눈빛은?”
녀석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지만, 녀석은 여전히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올 뿐이었다.
시후는 고개를 돌려 다가오는 태산과 인호에게 고개를 까딱이며 이유를 물어갔다.
그 모습에 태산이 무언가 생각이 난 듯 손뼉을 쳐가며 입을 열었다.
“아! 맞다! 나 커뮤니티에서 읽은 기억이 있어, 눈에 띄면 죽는다는 청부 의뢰를 받는데 상당히 깔끔하다. 다만, 그는 변태 같은 성향이 있다고….”
태산이 말끝을 흐리며 걸음을 멈추자 인호 또한 걸음을 멈추었다.
변태라는 말을 들은 시후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 모습에 ‘눈에 띄면 죽는다’는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아, 아닙니다. 저, 저는 진정한 주군을 만나지 못한 것에, 아니! 그보다, 저를 받아 주십….”
“닥쳐!”
‘눈에 띄면 죽는다’의 입에서 ‘저를 받아주십’까지 들은 시후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녀석은 시후에게 한 발 걸어가며 손을 뻗어갔다.
“오, 오해십니다. 저는 당신을….”
“갈(喝)!”
쉬잉- 쾅-
시후는 녀석이 손을 뻗어오자 반사적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내지른 주먹의 끝에서는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눈에 띄면 죽는다’의 몸이 폭죽이 터지듯 터져 버렸다.
그 모습에 태산은 눈빛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와! 개걸폭렬권의 일 초식은 저렇게 사용하는 거구나?!”
뜻하지 않은 순간 개걸폭렬권의 오의를 엿본 태산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