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화
시후는 마을 밖으로 나와 토끼가 있던 언덕 정상에 서 있었다.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이다.
“저게 여우라고?”
“응!”
언덕을 올라온 후 재차 물어보는 시후의 말에 태산이 강한 어조로 대답했다.
시후는 언덕 밑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여우(?)들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번에도 그렇고 여기 몬스터들은 다 저렇게 생긴 거냐?”
“하, 하하…. 그건 아니야, 초보들이 공략하는 마을 근처만 저렇게 생겼어.”
태산은 자신이 만든 게임도 아니었지만, 여우라고 불리는 몬스터를 보며 민망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우라고 불리는 몬스터는 일전에 시후가 잡은 토끼와 상당히 비슷했다.
한 덩치 하는 근육질 몸에 여우 귀와 코를 달고 꼬리를 살랑거리는 모습이었다.
저렇게 생긴 녀석들이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즐겁게 뛰어놀고 있는 것을 보니 당장 달려들어 죽여 버리고 싶은 모습이었다.
“만약, 여기 제작자가 이걸 의도하고 만든 거라면 칭찬해주마.”
시후는 사냥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여우들의 모습에 몸을 풀기 시작했다.
“잘 봐. 좀 전에 설명했던 개걸심법으로 내공을 운기해서 개걸폭렬권을 펼칠 테니.”
“알겠어!”
시후의 말에 태산은 눈을 부릅뜨며 집중했다.
여관을 나오기 전 시후는 둘에게 초식을 가르쳤다.
태산에게는 개걸심법을 이용한 개걸폭렬권(丐乞爆烈拳).
인호에게는 천투심법을 이용한 투신검각권(偸神劍脚拳)을 가르쳤다.
역시나 긴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둘은 초식을 완벽하게 외웠다.
“초식을 외웠다고 해서 끝이 아니야. 외웠으면 정확한 초식을 펼치는 것을 보고 그것을 반복적으로 따라 해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해.”
여우들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며 말하는 시후의 말에 태산과 인호는 귀를 쫑긋 세웠다.
“개걸폭렬권은 기운을 한순간에 폭발시키는 게 특징이야. 먼저 일 초식.”
타탓-
시후가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목표는 가장 가까이 있는 근육질의 여우였다.
개걸폭렬권의 일 초식은 주먹을 허리춤에서 내지르는 동작이었다.
마치 검집에서 검을 순간적으로 뽑는 발검과 같은 이치로 폭발하는 기운을 빠르게 내지르는 초식이었다.
주먹 주위가 일렁일 정도로 기운이 모이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주먹이 내질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후에 소리가 따라왔다.
쉬잉- 쾅-
주먹이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태산은 두 눈을 부릅뜨고 시후를 보고 있었기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시후의 주먹이 내질러지는 순간 기운이 폭발하며 공기를 밀어냈다.
그렇게 밀려난 공기는 여우의 가슴에 정확히 닿았다.
그리고 닿는 순간 가슴 부분이 움푹 파이며 터져 나갔다.
마치 여우의 몸속에서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보였다.
그 장면에 태산은 저도 모르게 입을 떠억 벌렸다.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이 초식.”
태산이 입을 떡 벌리고 놀라는 모습을 흘깃 본 시후는 집중하라는 듯이 말하고는 오른 다리를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들어 올린 다리에 기운을 집중시켰다.
이번에는 주먹이 아닌 발에 기운이 몰리며 주위를 일렁이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 기운이 모이자 시후는 바닥을 향해 수직으로 내리찍었다.
쾅-
발이 찍힌 부분부터 거미줄이 퍼져 나가듯 땅거죽이 갈라져 갔다.
그러자 그 땅거죽 위에 있던 여우들이 몸을 부들부들 떨며 움직임을 멈추고 있었다.
이번에는 다른 쪽 발을 옆으로 넓히며 기마자세를 취하더니 한순간에 호흡을 터트려 갔다.
“흡!!”
콰과과곽-
그와 동시에 갈라져 가던 땅거죽이 땅을 파고 들어가듯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 위에 있던 여우 또한 무언가에 짓눌리듯 납작해지며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갔다.
“이 초식은 중력을 가중한다. 대성하면 산 하나를 땅속에 묻을 수도 있다.”
믿을 수 없는 시후의 말이었지만 어째선지 믿고 싶어졌다.
그렇게 주위에 있는 여우들이 정리되자 시후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여우 떼를 향해 몸을 돌렸다.
“마지막, 삼 초식.”
파바바밧-
기마자세를 유지하며 빠른 속도로 주먹을 여러 차례 내질렀다.
그러자 주먹에서 무언가가 쏟아져 나갔다.
주먹만 한 크기의 그것들은 시후를 향해 달려드는 여우들의 머리에 정확히 닿았다.
그러자 간결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퍼버버벙-
마치 주먹만 한 소형 폭탄을 여우들에게 던진 것 같았다.
단 삼 초식만으로 주변에 있던 여우 모두를 정리한 시후였다.
그 모습에 태산과 인호는 벌린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와…. 이, 이게 내가 배운 개걸폭렬권이라고?”
“그래, 이 삼 초식을 응용하는 것은 네 재량이지만, 기본은 삼 초식이다.”
개걸폭렬권은 천마 시절 알게 된 개방 절학(絶學) 중 하나였다.
술친구를 맺었던 개방의 늙은 거지와 내기에서 따낸 거였다.
그때 받은 개걸폭렬권의 비급을 한번 읽어 본 것만으로도 완전히 익혔었다.
하지만 천마 시절, 그 무공을 사용한 적은 없었다.
‘천마의 무공이 더욱 고강했으니까.’
하지만 태산에게는 이게 딱 맞았다.
한 덩치 하는 태산이었기에 속도를 중요시할 필요가 없는 무공이 제격이었다.
사실 삼 초식마다 제각기 이름이 있었다.
‘일 초식 발권(發拳), 이 초식 중권(重拳), 삼 초식 백열권(白裂拳). 하지만 이름이 뭐가 중요해.’
개걸폭렬권을 창시한 개방 방주가 들었으면 대로할 만한 일이었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시후가 아니었다.
태산은 몸을 움직이며 개걸폭렬권의 초식에 따라 몸을 움직여 보기 시작했다.
12경맥을 뚫어 주었다 하지만 아직 내공이 미약하기에 시후와 같은 효과는 기대할 수가 없었다.
대신 시후조차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어? 이거 스킬로 등록할 거냐는데?”
“뭐?”
태산의 말에 시후와 인호가 후다닥 다가갔다.
태산은 자신의 앞에 나타난 스테이터스 창을 둘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공유 버튼을 클릭했다.
그러자 시후의 눈에도 스테이터스의 내용이 보였다.
[시스템 범주에 없는 새로운 스킬을 사용하였습니다.]
[스킬의 이름을 ‘개걸폭렬권’으로 지정하시겠습니까? 예 / 아니요]
스테이터스 내용을 보고 시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태산이 ‘예’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다른 스테이터스 창이 나타났다.
[스킬 : 개걸폭렬권 – 알 수 없는 능력의 생초보 무림인이 전수하였다.]
[폭발하는 기운을 담아 적을 섬멸한다.]
[총 3초식으로 되어 있으며 숙련도에 따라 다음 초식을 사용할 수 있다.]
“알 수 없는 능력의 생초보? 나?”
“그런 거 같은데?”
“생초보? 그냥 초보도 아니고 생~초보? 이 게임 제작자가 누구라 했지?”
천마 시절에도 이렇게 무시를 당해본 기억이 없었다.
천마동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칠 때도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 있었다.
그 후 천마가 되기 위해 많은 업적을 쌓을 때도 언제나 최고였다.
“그런 나에게 뭐?”
어찌나 주먹에 힘을 세게 주었는지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는 시후의 모습에 태산과 인호는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서 S.W SOFT 누구의 이름이라도 말했다가는 내일 아침에 그 사람의 이름을 포털사이트 메인 기사에서 볼 것만 같았다.
인호는 어서 시후의 관심을 돌려야겠다는 생각에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시후야, 내 거는?”
“후…. 그래, 너희가 먼저지. 천투심법을 이용한 투신검각권을 펼쳐 보일 테니까 잘 봐둬.”
시후는 애써 떨리는 주먹을 내리며 심호흡을 하며 진정시켜 갔다.
그렇다고 이 무시당한 개 같은 느낌을 그대로 묵힐 생각은 없었다.
‘이거와 관련된 녀석들 곡소리 나게 해주마.’
앞으로 어디선가 들릴 곡소리를 예언하는 시후였다.
셋은 투신검각권을 사용하는 데 필요한 여우를 찾아 이동했다.
처음 마을 입구를 나올 때 동쪽 문을 이용하였기에 밑으로 내려가자 남쪽 입구가 나왔다.
토끼 떼를 지나 언덕을 넘자 좀 전에 보았던 근육질의 여우들이 보였다.
“다시 보아도 당장 달려들어 때려죽이고 싶게 생겼네?”
시후의 섬뜩한 말에 태산과 인호는 숨죽여 지켜만 봤다.
“투신검각권은 말 그대로 발차기를 주로 이용한 무공이야, 세상의 모든 것을 훔쳤다고 말하던 늙은이가 만든 무공인데 극성까지 익히면 손오공의 여의봉도 훔칠 수 있다고 알려진 무공이야.”
갑자기 튀어나온 서유기에 웃을 만도 했지만, 인호의 얼굴은 진지하기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태산에게 가르쳐준 개걸폭렬권의 위력을 보았으니 자신이 배울 투신검각권에 대해 기대감이 큰 거였다.
인호의 그런 진지한 표정을 보던 시후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인호가 상당히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투신검각권 일 초식.”
일 초식이라 말하며 근처에 있는 여우를 향해 살짝 뛰어올랐다.
그러고는 허공에 뜬 상태로 몸을 비틀면서 오른발을 길게 늘어트렸다.
비튼 상태로 한 바퀴 회전하고는 여우를 향해 늘어트린 발을 휘둘렀다.
길게 늘어트린 발이 마치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시후와 여우의 사이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도저히 지금의 발차기로 여우를 가격할 만한 거리가 아니었다.
혹시 시후가 조준을 잘못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던 때 인호의 입이 떡 벌어졌다.
후아앙-
채찍처럼 휘둘러진 시후의 발이 지나자 여우 앞에서 바람이 일렁이나 싶더니 한순간 회오리가 일어났다.
고개를 위로 꺾어야 그 끝이 보일 정도로 거대한 회오리는 시후 앞에 있던 여우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는 여우들을 끌어당기며 집어삼켰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자연재해를 만든 시후의 모습에 넋이 빠져 있는 사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초식. 바람을 가른다.”
이 초식이라 외치며 시후는 한쪽 발을 수직으로 올려 찼다.
그러자 시후의 발끝에서 날카로운 칼날이 솟구쳐 올라갔다.
바람을 가른다는 말처럼 일 초식이 일으킨 회오리를 반으로 쪼개며 솟구쳤다.
그것을 보는 인호의 입은 점점 커졌다.
회오리에 갇혀 있던 여우들이 바람의 칼날에 갈기갈기 절단되며 죽어가자 시후가 몸을 돌렸다.
“투신검각권은 이 두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초식의 이름은, 풍(風), 섬(殲).”
“…나는 두 초식뿐이야?”
인호는 몸을 돌려 자신을 바라보는 시후를 보며 등 뒤에 아직 남아 있는 여우들을 봤다.
개걸폭렬권을 펼칠 때는 보이는 여우 모두를 사냥했는데 지금은 남겨뒀기에 혹시나 하는 생각에 물은 거였다.
인호의 그런 눈치 있는 모습에 시후는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역시 태산보다는 눈치도 있고 머리도 똑똑하단 말이지. 반면 태산은 우직한 심성을 지녔고.’
이쪽에 일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한쪽에서 묵묵히 초식 연무를 하는 태산을 보았다.
천마 시절에도 두 녀석과 똑같은 성격을 가진 녀석들이 곁에 있었다.
형제라는 이름 아래 등을 돌린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시후는 이들이 그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천마가 된 후에 인연을 맺은 이들이었고 유약했던 시후의 곁을 지켜준 진짜 친우였다.
그 사실은 변함이 없었기에 믿고 있는 거였다.
여전히 남아 있는 여우들을 보며 아쉬운 표정과 기대감에 찬 표정을 짓는 인호를 보며 입을 열었다.
“생각대로 투신검각권에는 숨겨진 보법이 하나 있다.”
“보법?”
“그래, 늙은 도둑놈을 천투(天偸)로 불릴 수 있게 도와준 보법이지, 이름도 거창해, 천기보(天欺步), 하늘을 속이는 걸음걸이라는 뜻이다. 잘 봐라.”
스팟-
시후는 말을 끝냄과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인호는 시후가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저 시후의 모습이 일렁이더니 사라지는 거만 보았다.
“어? 어, 어디?”
시후의 행적을 찾아 고개를 돌리던 때 저 멀리 여우의 머리 위에서 시후의 모습이 나타났다.
시후는 여우의 머리 위에 나타나자 가볍게 머리를 짓이겨 갔다.
퍽-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는데도 여우의 머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또다시 시후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더욱 멀리 떨어진 여우 머리위에 나타나 머리를 짓이겼다.
대충 20마리 정도의 여우의 머리를 짓이긴 시후가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은 처음 있던 자리인 인호의 앞이었다.
“봤어?”
“…….”
시후는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인호의 반응에 미소를 지어갔다.
대답은 하지 않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이 무언가 봤다는 것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봤구나? 사실 이 천기보는 꽤 심오하다. 그래서 여러 번에 걸쳐서 보여준 것도 있으니 지금 잡은 그 끈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응!”
시후의 말에 인호는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역시나 이번에도 스테이터스 창이 나타나며 투신검각권을 스킬로 등록할 거냐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렇게 스킬을 등록한 인호는 심호흡하며 자신이 본 장면들을 되새겨보았다.
그러고는 구슬땀을 비 오듯 흘리는 태산의 옆으로 이동해 투신검각권의 초식을 연습하기 시작했다.
시후는 그 후로도 둘이 펼치는 초식을 바라보며 몇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둘은 눈에 띌 정도로 빠르게 초식의 틀이 잡혀갔다.
둘 또한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초식을 정확하게 움직이면 숙련도가 상승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틀리면 숙련도가 상승하지 않는 스테이터스 창을 봤다.
그것으로 자신의 완성도를 체크하는 둘이었다.
“이제 조금만 더하면 틀은 잡히겠네.”
태산과 인호가 초식의 틀만 잡으면 로그아웃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때 셋을 향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 남자 셋이 모여서 뭐 하냐?”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노란색 머리를 뾰족하게 세우고 뱀 같은 눈초리를 가진 녀석이 웃으며 걸어왔다.
“넌 뭐냐?”
“나? 크큭, 보면 모르냐? 이거?”
녀석은 들고 있는 칼로 자신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그 위에는 녀석의 정체를 알려 주는 이름이 붉은 글씨로 나타나 있었다.
“눈에 띄면 죽는다?”
“그래, 그래! 이 말뜻을 알겠냐?”
이죽거리는 녀석의 얼굴이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던 시후는 녀석의 얼굴에 천마면폭장을 날려 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때 시후의 앞을 태산과 인호가 막아섰다.
“시후야, 피해! 카오야!”
“카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말이었다.
잠시 생각을 더듬자 사 형제가 자신을 부르던 말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다른 유저를 죽이고 다니는 고레벨 유저를 ‘카오’라고 부른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자 시후의 입꼬리가 양쪽으로 말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너구나? 보물 상자?”
“뭐?”
시후의 말에 셋은 동시에 시후를 이상한 눈으로 봤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