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화
시후는 학교 수업을 받으며 어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Safety World에서 앞으로 손과 발이 되어줄 이들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현실에서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볼까도 싶었지만, 그것은 차차 하기로 했다.
‘게임 안에서 당근과 채찍을 적당히 주면서 어떤 놈들인지 파악한 후에 찾아도 늦지 않으니까.’
다시는 믿는 칼에 등이 꽂히는 일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쳇!”
“시후야, 무슨 일 있어?”
시후의 혀 차는 소리에 짝인 인호가 걱정되는지 말을 걸어왔다.
안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인호가 걱정하는 마음이 거짓이 아님을 알기에 더러운 기분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별거 아니야. 어제 잠을 좀 짧게 자서 그래.”
“혼자 또 Safety World 한 거야?”
잠을 짧게 잔 이유가 게임을 해서만은 아니었지만 혼자 Safety World를 한 것은 맞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시후는 어제저녁에 Safety World에서 로그아웃한 후에 어머니와 간단하게 저녁을 때웠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것을 확인한 후에는 조용히 밖으로 나가 병원을 찾았다.
얼마 전까지 시후가 입원해 있던 그 병원이었다.
아버지가 병원장으로 있는 병원이었지만 이 늦은 시간 시후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아버지가 아니었다.
시후는 내공을 온몸으로 돌리며 발소리를 없애 버렸다.
거기에 CCTV를 피하고자 한 가지를 더하였다.
“요즘 들어 천마동에서 익혔던 것들을 요긴하게 써먹네? 천잠음영술(天暫蔭影術)!”
천마동에서 배웠던 은신술 중의 하나인 ‘천잠음영술’을 펼쳤다.
하늘의 그림자가 되어 잠깐 숨는다는 의미로 전대 천마가 창시한 무공이었다.
다른 귀식대법과는 다르게 그림자에 숨어 이동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이 천잠음영술을 기억해 낸 것은 사 형제를 만났을 때 초보가 뒤치기해도 되냐는 이야기가 오갈 때였다.
‘숨어서 막타만 때려도 다른 이들이 이해만 한다면 참 쓸모 있는…. 어? 그러고 보니, 아무도 모르면 되는 거 아냐?’
제니의 병실에 다다르는 사이 제법 괜찮은 생각이 떠올랐다.
다른 유저가 사냥하는 것을 낚아채다 들키면 귀찮은 일에 휘말릴 거라는 인호의 충고가 있었다.
그럼, 반대로 낚아채다가 들키지만 않으면 문제가 없다는 말처럼 해석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완벽하게 시행할 방법도 지금의 시후에게는 있었다.
‘이거 내일 애들이랑 Safety World 좀 들어가 봐야겠는데?’
혹시나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내일 태산과 인호를 집으로 초대할 생각이었다.
‘뭐, 지금은 이 녀석 먼저 해결하고.’
스윽-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는 생각에 병실 안에 있을 제니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병실 문을 열지도 않고 그림자 속에 숨어들어 제니의 침상 앞까지 다다랐다.
새근새근 자는 제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미소가 떠올랐다.
제니가 선물로 준 끈 팔찌가 묶인 손으로 제니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며 내공을 흘려보았다.
‘다행히 잘 막아주고 있었군. 음백초를 단약으로 만드는 데 1주일 정도가 필요하니 그때까지는 무탈할 수 있게 해주마.’
시후는 제니의 심장에 자신의 내공으로 얇은 막을 만들기 시작했다.
천음절맥을 타고난 제니가 음기에 의해 심장이 악화하지 않도록 하는 조치였다.
그리고 시후의 예상대로라면 앞으로 1주일 후면 제니의 상태는 점점 호전될 수 있었다.
‘끈 팔찌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해라. 1주일 후에 보자꾸나.’
제니를 보고 있자면 천마 시절에는 느껴보지 못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인재를 찾아서가 아닌 무언가 맹목적으로 지켜주고 싶은 그런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제니의 심장에 막을 만든 후 빠르게 병원을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 침대에 누웠을 때 스마트폰의 시각은 새벽 3시였다.
아침 등교를 위해 잠을 3~4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환골탈태까지 한 마당에 그 정도 못 잤다고 피로가 느껴질 리 없었다.
그래도 자신을 걱정해주는 인호를 위해 손가락 세 개를 펴며 보여주었다.
“3시에 잤다.”
“헐~! 너 요즘 몸 좀 괜찮아졌다고 해서 그렇게 무리하면 안 돼!”
“알았어, 알았어! 너 은근 잔소리 많다?”
걱정도 좋지만, 점점 한 가지 주제로 말이 길어지는 것 같아 슬슬 귀찮아졌다.
“크큭, 인호가 좀 그렇지? 예전부터 시후 너한테만은 시어머니 같은 잔소리꾼이었잖냐?!”
“태산, 닥쳐라?”
“왜? 내가 틀린 말 했냐? 시어머니~!”
앞자리에 있던 태산이 살짝 등을 돌려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후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을 때도 이들은 곁에 있어 준 것 같았다.
이곳에서 말하는 셔틀이나 따를 당하는 시후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두 녀석을 곁에 둘 이유는 충분했다.
“너희 내가 가르쳐 준 거 아침저녁으로 하고 있냐?”
“개걸심법?”
“천투심법?”
둘은 시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갑자기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어 왔다.
“뭐냐? 그 부담스러운 눈빛들은?”
“이거 진짜 대단하던데? 하고 나면 몸이 느껴질 정도로 달라져 있다?”
“아랫배가 묵직해지는 거는 있지만 그래도 몸이 확 가벼워지는 게 레알 대박이지 않냐?”
“호오?”
개걸심법과 천투심법을 가르쳐 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단전에 내공이 응집되는 것을 느꼈다니 생각보다 두 녀석에게 소질이 있어 보였다.
그렇다면 좀 더 빠르게 진도를 나갈 필요가 있어 보였다.
두 녀석을 어떻게 가르칠까 하는 생각에 빠지던 그때 앞쪽에서 선생님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세 놈! 그만 떠들지? 아주 시후가 돌아왔다고 살판이 났다? 어?!”
다들 선생님의 호통에 멋쩍어하는 태산과 인호를 보며 키득대고 있었다.
시후는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수업을 들어도 도통 이해를 할 수 없었다.
루트, 사인, 코사인 어쩌고저쩌고하는데 천마 시절 때부터 숫자랑은 친하지 않았었기에 그저 시선만 고정해 놓았었다.
머릿속에는 태산과 인호를 어떻게 훈련시킬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사이 수업은 끝이나 쉬는 시간이 찾아왔다.
쉬는 시간이 찾아왔지만, 시후는 화장실을 가거나 매점에 갈 생각이 없었다.
태산과 인호가 매점에 가자고 졸랐지만, 손만 휘휘 저어 거절했다.
태산과 인호는 어쩔 수 없이 자신들이 매점에 다녀오면서 빵을 사 오겠다며 교실을 나갔다.
시후는 그런 녀석들의 뒷모습을 보며 훈련 계획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시후의 생각을 방해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강시후! 아주 팔자가 폈다? 어?!”
교실이 떠나갈 정도의 고함에 고개를 돌리자 일전에 보았던 패거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똥싸개 패거리?”
“이…!”
시후의 기억 속에 저 녀석들은 그저 교실에서 똥을 싸지른 녀석의 친구들로만 기억되어 있었다.
그래서 똥싸개 패거리라고 부르자 녀석들의 표정이 말 그대로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교실에 남아 있던 학생들은 녀석들이 무서운지 입을 틀어막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었다.
녀석들은 시후의 한마디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멱살을 잡아갔다.
“야! 셔틀 주제에 너무 건방지다? 어디 추억여행 한번 해볼까? 어?”
시후가 멱살을 잡히자 교실 분위기는 한순간에 싸해졌다.
교실에 있는 대부분이 시후가 저들에게 맞아 큰 봉변을 당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오로지 단 두 명. 시후와 일전에 시후의 멱살을 잡았다가 똥을 싸지른 녀석.
둘만이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
시후는 녀석들 뒤에 숨어 우물쭈물하고 있는 녀석을 흘깃 보고는 입을 열었다.
“야! 똥싸개! 여기 네 친구 하나 추가다!”
“뭐? 뭔 개소…. 어?!”
푹 푸푹-
시후의 말에 다시 한번 고함을 지르려던 녀석은 시후가 뻗어 오는 손가락을 그대로 맞았다.
저번과는 다르게 이번의 공격은 모두가 볼 수 있을 정도의 빠르기였다.
‘슬슬 귀찮아지니까.’
재롱도 한두 번이지, 라는 생각으로 자신에게 덤비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 심산이었다.
역시나 시후의 손가락이 녀석의 어깨와 가슴 사이를 몇 번 찌르자 녀석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갔다.
그리고 교실 전체가 요동칠 정도의 큰 소리가 들려왔다.
푸득 푸드드득-
“꺄아악!”
“쟤도 쌌어!!”
시후의 멱살을 잡고 있던 녀석은 어느새 손을 놓고는 엉덩이를 부여잡았다.
하지만 바지를 부풀리며 비집고 나오는 녀석의 이물질은 멈출 줄을 몰랐다.
여기저기서 비명과 창문을 여는 소리에 교실은 난장판이 되었다.
똥싸개 패거리는 또 한 번 같은 일이 일어나는 것에 어찌할 줄 몰랐다.
시후는 그런 녀석들을 향해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그냥 보내주기 싫어졌다. 인과응보라 생각해라.”
스윽-
말이 끝남과 동시에 물이 흐르듯 가볍게 몸을 움직였다.
녀석들이 미처 반응하지 못하게 호흡과 호흡의 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한 녀석씩 어깨와 가슴 사이를 손가락으로 푹푹 찔렀다.
그런 시후의 모습에 다들 공통된 생각을 했다.
더는 이 교실에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똥싸개 패거리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장운동이 시작되었기에 화장실로 뛰쳐나갔고 다른 이들은 냄새 때문에 있을 수가 없었다.
시후 또한 손을 휘휘 저으며 태산과 인호를 찾아 나섰다.
“다행이야. 태산이랑 인호가 저 냄새를 맡지 않아서.”
의외의 부분에서 태산과 인호를 배려해주는 시후였다.
교실을 나오자 복도를 뛰어오는 태산과 인호가 시야에 들어왔다.
두 녀석은 복도에 서 있는 아이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빠르게 다가왔다.
둘은 시후 앞에 다다르자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 왔다.
“괜찮아? 똥싸개 패거리가 왔었다며?!”
아무래도 빵을 사고 있는 사이 교실에서 일어난 일을 들어서 이렇게 달려온 것 같았다.
“어디 다치거나 한 거 아니지?”
태산과 인호는 호들갑을 떨며 시후의 몸 여기저기를 살피었다.
그 모습에 시후는 이들의 생각을 고쳐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걱정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이제 녀석들이 알던 유약하기만 했던 시후는 이 세상에 없음을 알려줘야 했다.
“너희 둘에게 해줄 말이 있다. 오늘 저녁에 우리 집에 같이 가자.”
사뭇 진지한 표정을 보이는 시후의 모습에 둘은 거절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시후네 반은 예상치 못한 대청소로 인해 어수선한 오후를 보내며 하루 수업을 마치었다.
셋은 하교 후에 바로 시후네 집으로 향했다.
확실히 둘의 이름이 적힌 Safety World 캡슐까지 시후네 집에 있을 정도로 둘의 걸음걸이는 익숙해 보였다.
시후는 둘을 데리고 캡슐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이야기 끝에는 게임 속으로 들어가야 하니까.’
자신에 대해서 알려준 후에는 둘을 데리고 Safety World에 바로 접속할 계획이었다.
캡슐 방에 미리 마련해둔 테이블에 시후가 앉자 둘도 따라 앉아왔다.
여전히 진지한 시후의 표정에 태산이 참지 못하고 먼저 물어갔다.
“무, 무슨 일인데 그렇게 진지한 표정을 짓냐?”
“음….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
막상 이야기해 주자니 이들이 얼마나 믿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란 자신이 믿지 못하는 이야기에는 의심부터 하고 보기에 살짝 이야기를 꾸며 주기로 했다.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어떤 분을 만났다고 했었지?”
“어, 그래서 내공을 얻게 되었다고.”
“맞아, 그런데 너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게 엄청나. 너희 말처럼 하늘을 날아다니고 장풍을 쏘고 그러는 것보다 더.”
“……! 그 말을 믿으라고?”
역시나 의심부터 하는 둘이었다.
이럴 때는 백 마디 말보다 한번 보여 주는 게 확실했다.
시후는 테이블에 놓여 있는 음료수 잔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리고 내공을 운기하며 음료수 잔을 들어 올렸다.
내공 일 갑자는 있어야 가능한 허공섭물(虛空攝物)의 경지였다.
시후에게는 익숙한 일이었지만 둘에게는 마법과도 같은 일이었기에 깜짝 놀랐다.
“헐!”
“뭐, 뭐냐? 이거?”
둘의 믿을 수 없다는 반응에 시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희들도 무협 소설 좀 읽어 봤으니 허공섭물이라는 건 알지?”
시후의 말에 둘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갔다.
둘도 시후에게서 무협지를 빌려 읽을 만큼 무협지 덕후였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가르쳐 준 심법으로 인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다.
“정말인 거야?”
“그럼, 그 심법들도 진짜 심법인 거네?”
“그럼, 내가 너희들에게 가짜를 가르쳤겠냐?”
내공으로 들어 올렸던 음료수 잔을 내려놓으며 시후는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해보니 심법까지 가르쳐 줬는데 자신의 말을 바로 믿지 못한 것이 서운했다.
‘아무래도 좀 돌려야겠어.’
시후는 둘을 위해 계획했던 것을 빡빡하게 할 계획으로 수정했다.
“앞으로 그 심법 열심히 해라. 그럼, 무협지에서 본 것처럼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걸어 다닐 수 있으니까.”
시후의 말에 둘은 테이블 위에 놓인 음료수 잔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들도 진짜 저런 것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지 못할 희망이 생겨서였다.
희망이 보이자 둘의 눈에는 결의가 빛나 보였다.
“그럼,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뭐야?”
상당히 결의에 찬 둘의 표정에 시후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먼저! Safety World에 로그인하자!”
“엥?”
생각보다 김빠지는 시후의 대답이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