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시후는 토끼 사냥을 하던 마을 입구 풀밭에 앉아 있었다.
팔짱까지 끼고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놓인 아이템 4개를 노려봤다.
그 모습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 형제들은 떨고 있었다.
“후, 후 님, 저희는 인제 그만 로그아웃을 해도 될까요?”
“안 돼!”
“왜, 왜요? 아이템도 드렸고, 친구 추가도 했는데요?”
사 형제는 친구 추가하자는 시후의 말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동의했다.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친구 추가를 했으니 이 계정을 삭제하기 전까지는 자신들의 위치가 노출될 거였다.
그래도 카오에게 당장 죽지 않는 게 어디냐 하는 생각으로 로그아웃을 하려는데 시후가 강제로 무릎을 꿇게 했다.
그러고는 저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들이 바친 아이템을 노려보고 있으니 전전긍긍할 뿐이었다.
반면 시후는 심히 당황스러웠다.
다만 사 형제가 눈치를 채지 못하게 내색하지 않을 뿐이었다.
‘이것들은 뭔데 내가 쓸 수 없다는 거야?’
사 형제가 바친 아이템은 [바람의 단도], [늑대의 외투], [가죽 부츠], [가죽 장갑]이었다.
가죽 부츠와 가죽 장갑은 초보 유저들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다.
맨몸으로 사냥할 수 없었기에 조금이나마 민첩과 체력을 올려주는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둘째가 바친 [늑대의 외투]는 방어력을 상당히 높여주는 아이템이었다.
마지막으로 큰형이 바친 [바람의 단도]는 희귀 아이템으로 추가 공격력에 특수 스킬까지 있었다.
하지만 시후는 이런 내용을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유저 레벨이 낮아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할 수 없습니다.]
[필요 레벨 Lv. 10]
[강제 확인은 상인에게서 가능합니다.]
각각의 아이템들 이름 밑에 이런 내용만 적혀 있었다.
결국, 레벨이 낮아서 못 본다는 말이었다.
내일 태산과 인호를 만나 레벨업 방법을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그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인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야!”
“네?!”
시후의 부름에 큰형이 즉각 대답해왔다.
“너 말고 막내.”
“저, 저요?”
막내는 시후가 자신을 부르자 사색이 되었다.
자신이 바친 가죽 장갑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을 찾은 건가 싶었다.
“제, 제가 아직 Lv. 5밖에 안 되어서 그, 그게 제일 좋은 아이템이에요.”
“오호, 네가 Lv. 5야? 너 이리 와 봐.”
시후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막내는 마른침까지 삼켜가며 힘겹게 다가갔다.
막내가 다가오자 시후는 막내 어깨에 팔을 걸치고는 막내만 들을 수 있게 속삭였다.
“Lv. 5까지 어떻게 올렸냐?”
“네?”
“쓰읍! 조용히, 대답만!”
시후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에 깜짝 놀라던 막내는 시후가 인상을 팍 쓰자 목소리를 낮추었다.
“퀘스트 보상으로 경험치를 얻어서 올렸어요.”
“오호~ 퀘스트 보상? 그건 어디서 얻는데?”
“퀘스트를 준 NPC를 찾아가 보상을 받으시면 돼요.”
“그래?”
막내의 말에 퀘스트 여관 마스터의 히죽거리는 얼굴이 떠올랐다.
어쩐지 당장 찾아가 그 면상을 한 대 치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좋았어, 너희 나랑 같이 좀 가자.”
“어, 어디를요?”
시후는 같이 가자는 말을 끝으로 앞장서서 마을 입구로 향했다.
사 형제는 그런 시후의 등에 이유를 물어갔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사 형제는 한숨을 푹 내쉬고는 시후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그렇게 다섯은 잠시 후 퀘스트 여관 앞에 당도했다.
“여기는 퀘스트 여관이잖아요?”
“어, 여기서 퀘스트 받았거든.”
“여기서 토끼잡이 퀘스트를 받으셨다고요? 왜요?”
“왜는? 주니까 받지?”
초보 유저나 잡는 토끼잡이 퀘를 받았다는 말에 사 형제는 어이가 없었다.
분명 좀 전에 보여준 모습은 고레벨 유저, 아니 카오의 모습이었는데 어째서 그런 퀘스트를 받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을 하기에는 여관에 당도하고부터 시후에게서 풍겨오는 기운이 심상치 않아 입을 꾹 다물었다.
시후는 사 형제가 더는 질문해오지 않자 퀘스트 여관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십시오. 여러분의 안락한 휴식을 제공하는 퀘스트 여과안…….”
“나도 반가워, 마스터!?”
정해진 멘트를 날리던 퀘스트 여관의 마스터는 자신을 향해 반갑다며 손을 흔드는 시후의 모습에 말끝을 흐렸다.
시후를 발견한 마스터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상당한 불쾌감을 내비쳤다.
그런 마스터의 표정을 보면서도 시후는 히죽거리며 당당히 걸어갔다.
시후와 사 형제가 마스터의 앞에 당도하자 마스터가 먼저 입을 열었다.
“생각보다 포기가 빠르십니다?”
“포기? 난 그런 거 모르는데?”
“그럼?”
“스테이터스.”
당연히 시후가 퀘스트를 포기하고 돌아왔을 거라 생각한 마스터였다.
사실 마스터가 시후에게 준 퀘스트는 초보 유저가 혼자 달성하기에는 힘든 퀘스트였다.
Lv. 50 정도의 유저가 도와준다면 모를까. 스테이터스 창을 열어 소지금도 확인하지 못하는 초보 유저가 토끼를 100마리나 잡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런데 시후의 스테이터스 창은 하늘의 별을 따왔다고 말하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퀘스트 완료’ 메시지에 마스터는 잠시 생각에 빠졌다.
‘어떻게? 이렇게나 빨리? 혹시, 저들이?’
마스터는 시후의 뒤에 있는 사 형제를 바라보았다.
“아하! 생각 외로 아는 유저가 있으셨나 봅니다?”
“무슨 헛소리야? 그보다 보상이나 줘.”
“그럼, 드려야지요. 친구분들의 도움을 받으셨다지만 완료는 완료니까요. 흥!”
마스터는 시후가 사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토끼잡이 퀘스트를 완료한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콧방귀를 뀌며 퀘스트 완료를 인정해 주었다.
마스터가 퀘스트 완료를 인정하자 시후의 앞에 다른 스테이터스 창이 나타났다.
[마을 밖에 있는 토끼를 잡아라 : 100마리 / 100마리 완료]
[보상으로 마스터 호감도 10% 증가하고, 100골드를 지급합니다.]
메시지와 함께 시후의 스테이터스 창에 골드 수치가 100으로 바뀌었다.
마스터의 호감도 따위는 필요도 없었기에 드디어 돈을 벌었다는 기쁨에 빠져드는 시후였다.
“100마리 잡아서 100골드라니, 생각보다 짭짤했어!”
“헙!”
“헉! 뭐라고요?”
시후가 기쁨을 만끽하며 보상 내용을 말하자 앞과 뒤에서 헛바람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후는 찰나의 순간 사 형제의 눈치를 보는 마스터의 눈빛을 읽었다.
“이것 봐라? 야, 일비(一飛) 앞으로.”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시후가 일비(飛)를 부르자 사 형제 중 큰형이 한 발 다가왔다.
“그…. 일비라는 말은 좀….”
“됐고, 내 말에 왜 놀랐는지 이유나 말해봐.”
“설명을 잘하면 그 호칭은 바꿔주시는 겁니까?”
“봐서.”
시후의 뚱한 반응에 큰형은 한숨을 내쉬었다.
큰형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한 시후의 말 때문이었다.
사 형제는 첫째부터 김일석, 김차석, 김삼석, 김말석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상당히 촌스러운 이름이었지만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이름이라 개명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Safety World에서는 일석, 차석, 삼석, 말석이라고 닉네임을 정하자 사람들이 재미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시후의 친구 스테이터스 창에는 사 형제의 이름이 일석, 차석, 삼석, 말석이라고 되어 있었다.
시후는 스테이터스 창을 보며 그들의 이름을 부르다가 갑자기 한 명씩 가리키며 앞으로 부를 이름이라고 다른 이름을 말해주었다.
[일비(一飛), 이비(二飛), 삼비(三飛), 사비(四飛).]
사실, 이 비(飛)라는 호칭은 시후가 천마 시절에 가장 곁에 두었던 비천대(飛天隊)의 호칭이었다.
어느 전장에나 천마와 함께 시산혈해를 이루던 부대의 이름.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사 형제는 그저 시후의 작명 센스를 탓할 뿐이었다.
그렇게 호칭에 대해 불만을 품은 일비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초보 유저들은 토끼 10마리를 잡아 오면 1,000골드를 줍니다. 그런데 후님께서는 어째서 100마리나 잡으셨는데 100골드만 받으셨습니까?”
“하?”
일비가 말을 하면 할수록 마스터 얼굴의 입꼬리가 점점 내려오고 있었다.
반면 일비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시후의 입꼬리는 올라가고 있었다.
그것도 한쪽만.
“하, 하하, 지금 나한테 사기를 쳤다 이거야?”
“그, 그게…. 헙! 이, 이러시면 안 됩니다!”
덥석-
시후는 변명을 늘어놓으려는 마스터의 멱살을 확 낚아채 갔다.
손에 내공까지 불어 넣어 잡았기에 마스터는 한순간에 숨이 턱 막혔다.
둘의 그런 모습을 보던 사 형제는 어이가 없었다.
간혹 NPC가 장난을 치는 경우가 있었지만, 퀘스트를 주는 NPC가 사기를 치는 예는 없었다.
그리고 ‘카오’라고 생각했던 시후가 어째서 사기를 당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유저에게 저렇게까지 쩔쩔매는 NPC의 모습도 처음 보았기에 신기했다.
반면 마스터는 시후의 손을 뿌리쳐 보려 하였지만 좀처럼 꼼짝도 하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초, 초보 유저가 아닌가?’
하는 짓은 초보 유저인데 가진 힘이 상당했다.
“퀘스트 여관에서 이, 이러시면….”
“일비, 이 녀석 죽일 수도 있냐?”
“헙!!”
일비에게 자신을 죽일 수도 있냐고 묻는 시후의 말에 마스터는 사색이 되어갔다.
사실 시후에게 내준 퀘스트는 마스터의 장난이 조금 섞여 있었다.
고생 좀 해보라고 내준 퀘스트였기에 보상을 크게 줄 수가 없었던 마스터였다.
하지만 이미 자신을 갈아 먹을 것 같은 시후의 눈빛에 그것을 설명하기보다는 다른 방법을 택해야 했다.
“죄, 죄송합니다. 대신 무엇이든 말씀하시면 들어 드리겠습니다.”
“무엇이든?”
당장이라도 마스터의 얼굴에 천마면폭장을 날리려던 시후는 손끝을 멈추었다.
그 반응에 마스터는 신명 나게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제가 들어 드릴 수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들어 드리겠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그러니 제발…. 이 손 좀….”
마스터의 말에 시후는 곰곰이 생각했다.
사기를 친 마스터를 죽여 화를 푸는 것도 괜찮았지만 이곳은 게임 속이었다.
현실에서 자신에게 누군가가 사기를 쳤다면 당장 목을 꺾어 버렸겠지만, 이곳에선 보상이라는 것을 받아 레벨업을 해야 한다는 것을 좀 전에 깨달았기에 좋은 수가 떠올랐다.
“무료.”
“네? 무료요? 무슨 무료요?”
“나를 포함한 내가 지정한 유저들은 이곳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줘.”
“네? 아, 아니, 유저님이야 그렇다 치지만 다른 분들은 왜요?”
“오호, 된다는 말이구나?”
“헙!”
마스터는 순간 아차 싶었다.
무료라는 말이 나왔을 때 바로 발뺌을 해야 했다.
그런데 살벌한 시후의 눈빛에 그만 다른 유저는 안 된다고 말해버렸다.
그런 마스터의 말을 들어줄 리 없는 시후였기에 요구는 더욱 당당해져 갔다.
“딱 말해. 나와 내가 지정한 유저들은 이곳 사용료가 무료. 싫으면 뒈지시든가.”
“아, 알겠습니다.”
마스터가 시후의 요구를 인정하자 시후와 사 형제 앞에 스테이터스 창이 나타났다.
[퀘스트 여관 사용 비용이 무료가 되었습니다.]
[See후 님이 파기하기 전까지 유지됩니다.]
[See후 님을 제외한 유저는 See후 님이 지정한 닉네임만 가능합니다.]
[See후 님이 일비, 이비, 삼비, 사비를 등록하셨습니다.]
나타나는 메시지에 시후는 씨익 웃으며 마스터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반면 사 형제의 표정은 오묘했다.
퀘스트 여관을 사용하면서 언제나 골드를 지불했다.
먹는 것, 자는 것, 퀘스트를 받는 것까지 골드를 사용해야 했기에 지금의 혜택은 놀라운 거였다.
그런데 문제는 자신들의 이름이었다.
시후가 사 형제를 일비, 이비, 삼비, 사비로 등록한 거였다.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사 형제였다.
그때 시후의 귓속에 음성이 들려왔다.
- 시후야~ 엄마 왔어, 이제 그만하고 나와요.
어머니가 돌아오셨다는 말에 시후는 고개를 돌려 사 형제를 바라봤다.
“너희들 다음에 들어올 때까지 닉네임 바꿔 놔. 앞으로 너희들을 비천대(飛天隊)라고 부를 거다.”
“네?”
사 형제는 비천대가 또 뭔가 하는 표정이었다.
그런 사 형제를 보며 시후는 피식 웃고는 손을 흔들었다.
“간다, 어머니가 부르셔서.”
그렇게 사 형제와 마스터의 앞에서 시후는 로그아웃을 하며 모습을 감추었다.
남겨진 사 형제는 이 황당하고도 신기한 경험에 어이가 없어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곧 있어 사 형제 역시 머리를 쥐어뜯는 마스터를 두고 로그아웃을 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