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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10화 (10/275)

제10화

Safety World는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가상현실 게임이었기에 초보 유저가 거의 없었다.

있어도 대부분이 어느 정도 레벨이 되는 지인들이 데리고 다니면서 키워주는 게 보통의 렙업 방식이었다.

지금 마을 입구로 향하는 유저들 역시 막냇동생이 Safety World를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길래 길잡이 역할을 자처한 형들과 동생이었다.

“여기는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 모드여서 마을 입구로 나가면 토끼가 있어.”

“토끼요? 왜 하필 토끼예요?”

“오~ 날카로운 질문~ 중세시대에 토끼 모피가 그렇게 인기 있었다나? 그래서 토끼 10마리를 잡아다가 퀘스트 상인에게 가져다 주면 1,000골드를 줘.”

“와~ 많이 주네요?”

“그치? 그 1,000골드로 초보 장비를 맞추라는 S.W SOFT의 배려지.”

이제 막 시작한 막냇동생의 질문에 형들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다들 토끼를 잡는 것을 상당히 귀찮아하고 있었다.

말이 토끼지, 솔직히 도움을 주는 유저가 없다면 초보 혼자서 그 토끼를 잡기는 힘들었다.

“좀 이따가 보면 알겠지만, 여기 토끼들은 좀 특이해.”

“특이해요?”

“응, 우리가 아는 조그마한 토끼가 아니라 온몸이 근육질로 이루어진 사람만 한 덩치를 가진 게 여기 토끼야.”

“헐! 그렇게 큰데 제가 어떻게 잡아요?”

형들의 말에 겁을 먹었는지 살짝 움츠러드는 막냇동생이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던 큰형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마, 그래서 우리가 있는 거니까. 우리가 딸피 만들어 놓으면 막타를 네가 날리면 돼.”

“아~! 이해했어요.”

자신들의 말을 빠르게 이해하는 막내를 기특하게 바라보며 형들은 작전을 짰다.

“토끼가 힘도 세고 재빠르니까 내가 몸빵을 하고 너희가 공격하는 거로 하자.”

큰형의 말에 다른 형제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형제들이 짠 이 방식이 가장 기본 중의 기본 방식이었다.

형들은 기본을 바탕으로 물약을 가장 적게 사용하는 방법을 구상 중이었다.

그때 형들의 귀에 귀여운 막내의 감탄사가 들려왔다.

“우와! 멋지다!”

“뭐가? 뭐가 멋진데?”

“저 사람이요!”

“누구? 헐!!??”

막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 형제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사람만 한 크기에 온몸이 근육질인 토끼들이 한 유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원래 이곳 토끼들은 서로서로 상당히 거리를 두고 풀을 뜯었다.

거기다 유저가 먼저 건드리지 않는 이상 선공(先攻)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저 유저에게는 언덕 위에 있는 토끼들까지 미친 듯이 달려와 공격하고 있었다.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버, 버그인가 본데요?”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일에 형제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버그’뿐이었다.

그런데 토끼들이 저렇게 달려드는 것은 그렇다고 쳐도 그런 토끼 떼를 무참히 짓밟는 저 유저는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고렙 유저가 놀러 온 건가?”

“그, 그렇겠지? 스킬도 쓰지 않고 맨몸으로 저러는 거 보면?”

사 형제들이 입을 떠억 벌리고 구경하는 유저는 시후였다.

여관비를 벌어 보겠다고 마스터에게 퀘스트를 받아 토끼 같지 않은 토끼를 잡는 시후.

벌떼처럼 달려드는 토끼들로 인해 한시도 몸을 멈출 수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은 마스터에 대해 욕을 한 사발 내뱉는 것뿐이었다.

“이런! 미친 마스터! 머리에 큰 귀만 달려 있으면 토끼냐?!”

욕을 내뱉으면서도 통나무 같은 토끼의 주먹을 피하며 돌려차기로 반격을 했다.

솔직히 처음 토끼 떼를 보았을 때는 깜짝 놀랐었다.

덩치 큰 사람이 토끼 귀를 매달고 토끼 이빨을 따닥거리며 풀을 뜯는 모습이라니.

본능적으로 소름이 쫙 돋았다.

만약, 녀석들 머리 위에 ‘토끼’라고 명시되지 않았다면 건드리지도 않았을 거였다.

이 녀석들이 퀘스트 여관 마스터가 말한 토끼라는 생각에 다가갔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험악하게 생긴 몰골과는 다르게 바로 달려들지 않아 이상하다 생각했었다.

그래서 시험 삼아 가장 가까이 있던 토끼를 한 대 쥐어박아 보았다.

주먹에 담은 힘은 웬만한 거목을 한 방에 부러트릴 정도의 힘.

그 정도면 죽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지만 완전 의외였다.

바닥에 널브러져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부들부들 떠는 것이 죽지는 않아 보였다.

생각보다 맷집이 있다며 놀라던 차에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살기를 느꼈다.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진 토끼와 똑같이 생긴 녀석들과 피 튀기는 전투가 시작되었었다.

“빠르지는 않은데 맷집이 좋아, 귀찮게!!”

토끼라면 응당 민첩해야 하는데 이 녀석들은 되레 정반대의 특징을 보였다.

덕분에 적당한 연습 상대가 되었다.

그동안 내공을 회복하고 몸을 풀 기회가 없었는데 이참에 내공을 발끝까지 보내며 감각을 일깨우고 있었다.

그러기를 얼마, 주변에는 겨우 숨만 붙어 있는 토끼들로 즐비해지고 있었다.

눈에 띌 정도로 몇 마리가 남지 않은 것이 보였다.

슬슬 박투(搏鬪)로만 상대하던 녀석들에게 내공을 이용한 기술 한 방을 먹여줘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좋을까나? 그래! 얼굴이 꼴도 보기 싫으니 천마면폭장(天魔面爆掌)이 좋겠구나.”

천마면폭장은 말 그대로 얼굴을 터트리는 장법이었다.

천마 시절 토끼 녀석들처럼 속을 울렁거리게 할 정도의 면상을 가진 녀석들에게 주로 사용했던 장법이었다.

그리고 이 장법에는 숨겨진 기술이 있었다.

철썩- 철썩-

시후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남은 토끼들에게 달려들었다.

토끼들의 주먹과 발차기를 가볍게 회피하며 녀석들의 뺨을 한 차례씩 때려주었다.

바람이 스치듯 토끼들을 스치고 지나간 시후는 언덕 위에서 가볍게 몸을 돌렸다.

“10마리, 폭(爆).”

퍼버벙-

주문을 외우는 듯한 시후의 말과 함께 뺨을 맞은 토끼 10마리의 머리가 동시에 폭발했다.

머리의 잔재가 사방으로 튕겨 나가는 것을 보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천마면폭장의 숨겨진 기술은 이렇게 여럿의 머리를 원하는 숫자만큼 동시에 폭파할 수 있다는 거였다.

더는 주위에 서 있는 토끼가 없자 눈앞에 떠 있는 스테이터스 창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을 밖에 있는 토끼를 잡아라 : 10마리/100마리]

스테이터스 창에 10마리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방금 머리를 터트려 죽인 10마리만이 계산된 것 같았다.

“그럼, 나머지 녀석들을 천천히 죽여볼…. 어?”

[마을 밖에 있는 토끼를 잡아라 : 11마리/100마리]

갑자기 스테이터스 창의 마릿수가 변하는 것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을 입구에 창을 들고 있는 녀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 보이는 녀석이 바닥에서 꿈틀대고 있는 토끼의 심장을 찌른 것이 보였다.

“어쭈? 감히 내 사냥감을 뺏어가?”

천마 시절부터 유독 소유욕이 강했던 시후는 다리에 내공을 확 주고는 튕겨 나가듯 달려 나갔다.

쾅-

한순간에 마을 입구까지 날아온 시후는 굉음을 내며 내려섰다.

명백한 경고의 의미였다.

그 모습에 사 형제들은 깜짝 놀라며 저마다의 무기를 들어 올렸다.

“뭐야? 싸우게?”

그 모습에 시후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다급하게 큰형이 입을 열었다.

“아, 아닙니다. 저희가 감히 어찌 고렙 유저님께, 어, 어서 무기들 내려!”

다급한 큰형의 목소리에 형제들은 슬그머니 무기를 내렸다.

싸울 의사가 없음을 이해한 시후는 막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런데 왜 내 것에 손을 대냐?”

“그, 그건, 저희 막내가 초보라서 그랬습니다.”

“오호? 초보면 남의 거 막 손대도 되는 거냐?”

시후의 말에 큰형은 진땀까지 빼며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변명하기 시작했다.

“아, 아닙니다. 아직 철이 없어서 그랬습니다. 마침 저희도 토끼를 잡아야 했는데 바닥에 움직이지 않는 토끼를 보자 저도 모르게 창을 찌른 듯싶습니다.”

“쳇!”

큰형의 말에 시후는 오히려 아쉬워했다.

혹시나 초보 유저라면 남의 거에 손을 대도 되나 싶어서였다.

‘그게 된다면 은신술을 이용해 손쉽게 이득을 볼 수 있었을 텐데.’

은신술을 이용해 뒤 치기를 순간적으로 계획했던 시후였다.

덕분에 아쉬움을 가득 담은 혀 차는 소리는 사 형제의 심장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시후가 토끼들을 때려잡을 때만 해도 고렙 유저가 스트레스 풀러 토끼들을 학살하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갑자기 몇 마리 남지 않은 토끼들의 머리가 폭죽 터지듯이 터져버리는 것을 보고는 경악했다.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몬스터를 저렇게 잔인하게 죽이다니.

정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괜히 저런 고레벨 유저의 심기라도 건드렸다가는 좋은 꼴을 못 볼 것 같았다.

그래서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을 반대편으로 이동하자고 막내 녀석에게 말을 걸려는 차였다.

그런데 막내 녀석이 자신의 발아래서 꿈틀대고 있는 토끼를 보자 욕심을 참지 못하고 창을 찌른 거였다.

“워,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면 드리겠습니다. 제발 죽이지만 말아 주십시오.”

큰형은 심기가 불편해진 고레벨 유저가 자신들을 죽일까 봐 걱정되었다.

Safety World에서 죽는다고 하여도 현실 세계에서 피해를 보는 것은 없었다.

다만 몬스터에게 죽든 유저에게 죽든 24시간 동안 접속을 하지 못할 뿐.

하지만 좋아하는 게임을 24시간 동안 하지 못한다?

어찌 보면 그것만큼 불행한 일도 없었기에 이렇게 애원하는 거였다.

시후는 어이가 없었다.

갑자기 살려만 달라며 뭐든 내놓겠다고 하니 말이다.

딱히 녀석들을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저 다 잡아 놓은 토끼에 손을 댔으니 살짝 나무랄 생각이었다.

겁을 집어먹은 모습을 보니 마음도 풀렸다.

그때 근처에서 꿈틀대는 토끼가 보였다.

‘또 다른 놈들이 손대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겠어.’

시후는 발치에 있는 풀을 한 움큼 뜯었다.

뜯은 풀 한 가닥 한 가닥에 내공을 불어 넣었다.

그리고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날아갔다.

피슝-

“깨깽!”

목표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토끼들.

시후가 손가락을 한번 튕기면 한 마리 토끼의 비명이 들려왔다.

부지런히 손을 놀린 덕분에 어느덧 널브러져 있던 토끼들 모두가 사라졌다.

띠링-

[마을 밖에 있는 토끼를 잡아라 퀘스트 완료 : 100마리/100마리]

퀘스트 완료 메시지가 나타났다.

토끼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녀석들이었지만, 덕분에 몸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상대는 되었다.

‘좋아, 갈 길이 멀긴 하지만 시작이 좋아.’

만족스러운 몸 상태에 시후는 마을로 돌아가 마스터를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받아 주십시오!”

등을 돌리는 순간 사 형제가 시후를 향해 엎드렸다.

각자 자신의 앞에 무언가를 꺼내 놓으며 간절하게 말했다.

“이, 이것이 저희가 가진 아이템 중에서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큰형의 말끝에는 간절함까지 보였다.

사 형제는 토끼가 죽어 나가는 모습에 시후를 ‘카오’로 생각했다.

Safety World의 고레벨 유저 중에서는 특이한 취미를 가진 이들이 많았다.

그중에 가장 악질이 바로 ‘카오’였다.

몬스터가 아닌 유저를 죽이고 다니는 유저.

유저가 유저를 죽이면 머리 위의 이름이 빨간색으로 변한다.

그 상태에서 죽게 되면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 중 하나를 떨구기에 카오들은 맨몸으로 다니는 녀석들이 많았다.

그런 특징에 딱 맞아떨어지는 시후의 모습에 사 형제는 등골이 오싹했다.

그래서 각자의 인벤토리에 있는 가장 좋은 아이템을 바쳐 죽음을 면하려는 거였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사 형제의 행동에 시후는 시후대로 당황스러웠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 생각했는데 부복까지 하며 무언가를 바치는 모습을 보이다니.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천마 시절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줬던 이들.

가장 지척에서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했던 이들.

시후는 그들을 떠올리며 사 형제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친추! 하자!”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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