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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9화 (9/275)

제9화

해가 떨어졌지만, 아직 어머니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시후는 연락을 해볼까도 싶었지만, 곧 오실 거라는 생각에 다른 방들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이 방도 무협지 방만큼이나 문이 큰데?”

무협지 방보다 큰 문이 시후의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바로 열지 못했다.

“끙…. 이게 전자 도어락이라는 건가?”

시후의 눈앞에 있는 문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리는 문이었다.

환골탈태를 이루어 어느 정도 내공을 회복하였기에 발길질 한 번이면 문을 부수고 들어갈 수 있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집주인이 자기 집 문을 부수는 예는 없지.”

부술 수 없다면 아직 소식이 없는 어머니를 기다려야 하나 생각하던 중에 전자 도어락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이 집을 들어올 때 보았던 버튼식의 도어락과는 형태가 달랐다.

좀 더 널찍하고 손바닥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음…. 대라는 건가?”

손바닥 모양에 맞게 손을 올려놓자 빛이 일어났다.

손바닥 전체를 확인하려는 듯 아래에서부터 위로 움직였다.

띡, 띠리릭- 철컥.

경쾌한 알림음과 함께 잠금장치가 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신기한데? 마치 천마동에 들어갈 때 같아.”

천마 시절 천마동에 출입하기 위해 했던 일이 떠올랐다.

수련을 위해 그곳에 처박혔을 때는 몰랐지만, 천마가 된 후에 심심해서 놀러 갔다가 큰 망신을 당할 뻔했었다.

천마 신교에서 가장 똑똑한 지괴(智怪)가 그곳에 기관진식(機關陣式)을 깔아 놓은 거였다.

천마가 그 기관진식을 모두 가동시키고 부수는 바람에 몇 달 동안이나 많은 이들이 고생했었다.

그들의 노고에 눈곱만큼의 미안함을 느껴 다음부터 천마동에 들어갈 때는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들어갔었다.

그때 안전장치를 해제하는 방법이 지금처럼 손바닥을 대는 거였다.

물론 지금처럼 지문을 확인하는 전자장치가 아니라 천마지기를 불어넣는 거였지만 말이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그때를 떠올리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 안에도 천마동처럼 재미있는 게 있으면 좋으련만…. 저건?”

문을 여는 순간 기대감은 반가움이 되었다.

태산과 인호와 함께 게임방에서 본 Safety World의 캡슐이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훨씬 좋아 보이는 것이 10대나 말이다.

“이거 비싸다고 했었는데? 허…. 시후 이 녀석이 사달라는 건 부모님이 다 사주는 건가?”

태산의 집에서 들었던 바로는 시후가 집에서 Safety World를 같이 하려고 캡슐을 구매했었다고 했었다.

그때 태산의 집에는 왜 없냐는 질문에 태산과 인호는 ‘비싸서’라는 대답을 해왔었다.

비싼 것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 모르지만 그들이 한 대 사기도 힘든 것이 이곳에는 열 대나 있는 것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허영심…은 아니었나 보군.”

그저 돈 있는 놈이 돈 자랑하는 것으로 생각하던 때에 캡슐에 붙어 있는 이름표가 눈에 들어왔다.

[친구 1 김태산], [친구 2 차인호], [친구 3 없음], [친구 4 없음]….

나름대로 친구라고 생각하는 녀석들을 이곳으로 데리고 와서 논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열 대나 있는 것을 보면 친구를 여럿 만들고 싶었나 보다는 생각이 들어 좀 짠했다.

그렇게 캡슐들에 붙은 이름표를 보던 중 의외의 이름이 보였다.

“아버지 강인, 어머니 윤여정. 두 분도 Safety World를 하시는 건가?”

병원장인 아버지와 변호사인 어머니가 게임을 할 시간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뭐, 자식 사랑인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유약한 자식을 위해 자식이 좋아하는 게임을 같이 한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시후는 자신의 이름이 적힌 캡슐을 찾을 수 있었다.

다른 캡슐과는 색이 다른 시후의 캡슐을 보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아무래도 녀석도 나처럼 황금색과 붉은색을 좋아했나 보군?”

천마 시절 유독 좋아했던 색인 황금색과 붉은색이 ‘강시후’라고 적힌 캡슐에 조화롭게 칠해져 있었다.

마음에 드는 색을 보자니 저절로 손이 올라갔다.

그러다 손목에 묶여 있는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제니에게 가 봐야 하는데, 새벽에 다녀와야겠군.”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에 황금색과 붉은색 실을 엮은 끈 팔찌를 선물로 준 제니가 떠올랐다.

천음절맥을 가진 제니의 심장에 내공을 불어넣어 놨었다.

얇은 막을 만들어 음기가 심장에 닿는 것을 막아 놓았는데 새벽에 가서 다시 한번 해야 할 것 같았다.

“음백초로 단약을 만들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지.”

마신방 녀석들이 만들었던 단약으로 내공을 회복하려고 했다.

그리고 만드는 김에 끈 팔찌에 대한 보답으로 제니 것도 만들 생각이었다.

“그럼, 새벽까지 이 녀석과 놀아 볼까?”

시후는 새벽에 제니를 찾아갈 때까지 남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하다 눈앞의 Safety World를 하기로 했다.

게임방에서 태산이 캡슐을 다루는 것을 눈여겨봐 두었기에 캡슐을 작동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캡슐이 열리고 안에 들어가 고글을 집으려는데 앞에 놓인 메모지가 눈에 들어왔다.

「Safety World 하기 전에 어머니께 연락하기」

어머니께 연락하라는 메모를 보자 자연스럽게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어머니가 바쁠까 봐 전화하지 않았는데 이런 메모까지 보았는데 연락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꼭 전화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야. 이 메모를 봐서 하는 거지, 크흠!”

혼자만 있는데 애써 어머니 번호를 누르는 자신에게 변명하는 시후였다.

그사이 통화 연결음이 몇 번 들리지도 않았는데 연결이 되었다.

- 시후니? 엄마가 좀 늦었지? 지금 가고 있단다. 배고프지는 않니?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배는 고프지 않고요, 천천히 오세요. 저 Safety World 하고 있을게요.”

- 너무 오래하지는 말고 집에 도착하면 엄마가 메시지 보낼 테니까 나와야 한다?

사소한 것까지 걱정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싫지 않았다.

그렇게 Safety World를 할 준비를 마치자 빠르게 고글을 쓰고는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눈이 부실 정도로 빛이 번쩍이자 곧 익숙한 배경이 눈에 보였다.

작은 방이지만 적당히 딱딱해 보이는 침대와 몇 가지 없는 가구들이 보였다.

“내가 환골탈태를 한 여관방인가?”

아무래도 이 게임은 로그아웃이라는 것을 하기 전에 있던 장소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때 시후의 생각을 방해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유저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들어와.”

노크하며 들어온 것은 1층에 있던 바텐더였다.

“무슨 일이지?”

“대실 시간이 지났기에 추가 요금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래? 얼마지?”

시후는 좀 더 생각할 시간을 갖기 위해서 빨리 바텐더를 내보내고 싶었다.

바텐더는 시후가 당연히 그렇게 이야기할 거라 예상했는지 바로 대답해왔다.

“현재 접속하신 곳은 게임포인트를 사용할 수 없는 곳입니다. 추가 요금은 1골드 되시겠습니다.”

웃는 얼굴로 손을 내미는 바텐더에 시후는 당황스러웠다.

생각해 보니 저번에는 게임방이었기에 무료로 이곳을 사용했었다.

슬쩍 주머니를 뒤져보아도 주머니에서 만져지는 것은 없었다.

여전히 자신의 손만을 바라보는 시후를 보며 바텐더가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게임이 처음이신가 봅니다?”

“어? 어….”

“‘스테이터스’라고 불러 보시면 보유하고 계신 게임머니를 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래? 그런 건 진작 알려 줬어야지! 스테이터스!”

바텐더의 말에 살짝 역정까지 내며 스테이터스 창을 불러냈다.

눈앞에 여러 개의 창이 나타나자 ‘골드’라고 적힌 것을 찾기 위해 눈을 굴렸다.

“찾았다, 골드! 그런데…. 0골드라고 적혀 있는데?”

스테이터스 창에 소지 골드가 ‘0’이라고 적혀 있는 것을 말하자 지금까지 웃고 있던 바텐더의 얼굴이 구겨졌다.

“하? 0골드? 없어? 거지야? 아놔! 이래서 초보 유저들은 들이지 말아야 했는데.”

“뭐? 너 이 자식 말이 심하다?”

거지라는 말에 발끈하는 시후를 보며 바텐더가 한 발 다가왔다.

분명히 이곳이 허구라는 것을 아는데도 바텐더가 한 발 다가오자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마치 절정의 고수를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심한 건 너지. 어디서 공짜로 여관을 이용하냐? 그것도 퀘스트 여관을?”

“퀘스트 여관?”

“그래, 퀘스트 여관. 퀘스트를 통해 유저가 아이템이나 골드를 벌 수 있도록 의뢰를 전달해 주는 곳을 말하는 거다.”

“그래? 그럼, 그 퀘스트 나도 하지!”

“…….”

험악한 분위기를 풍기던 바텐더는 시후가 퀘스트를 하겠다고 말하자 한쪽 눈을 치켜들며 입을 열었다.

“네가? 초보 유저인 네가? 입구 앞에 있는 토끼도 못 잡을 것 같은 네가?”

“내가 뭘 못 잡아?”

토끼도 못 잡을 것 같다는 바텐더의 말에 이번에는 시후가 발끈했다.

돈과 관련된 것에 무시당할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힘에 대해 무시를 당하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자 몸에서 자연스럽게 내공이 일어났다.

내공을 일으키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는 시후를 보며 바텐더의 표정이 변했다.

하는 짓이나 머리 위에 떠 있는 레벨 수치로 보아 초보가 분명했는데 어떻게 이런 기운을 풍기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지? 분명 레벨이 1인데 어떻게 이런 기운을?”

“이제 좀 네가 심했다는 생각이 드나?”

자신의 기운을 읽은 바텐더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좀 더 기운을 일으켰다.

점점 강해지는 시후의 기운에 바텐더는 한 발 뒤로 물러나며 다급히 손을 들어 올렸다.

“아이고! 고객님, 그런 기운이 있으셨으면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습니까? 바로 퀘스트를 드리겠습니다. 이번만 특별히 고객님에게만 후불제로 사용비를 받겠습니다.”

참으로 대처가 빠른 바텐더였다.

시후는 이 기회에 바텐더를 이용하여 이곳에 대한 정보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풀 기세가 꺾인 바텐더는 시후가 물어보는 말에 즉각 답해가기 시작하였다.

“이곳에서 사용하는 화폐는 실버와 골드가 있습니다. 100실버가 1골드의 가치가 있고 사탕 하나 정도가 1실버입니다.”

은화와 골드의 가치에 대해서 쉽게 이해가 됐다.

“그럼 골드는 네 말대로 퀘스트를 해야만 벌 수 있는 거냐?”

“아닙니다. 마을 밖에 있는 몬스터를 잡으시면 경험치와 함께 얻으실 수 있습니다.”

바텐더는 몬스터를 잡으면 그에 맞는 보상을 받는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낮은 레벨의 몬스터보다 레벨이 높은 몬스터를 잡아야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도 해주었다.

“좋아. 그럼, 이곳 사용비를 낼 수 있는 퀘스트를 줘봐.”

“아유~ 드리죠, 드리고말고요.”

퀘스트를 달라는 말에 바텐더가 허공에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시후의 눈앞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띠링-

[퀘스트 발생 : 퀘스트 여관 마스터의 돌발 퀘스트]

[마을 밖에 있는 토끼를 잡아라 : 당신의 기운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레벨이 낮아 믿지 못하니 토끼를 잡아 증명하라. 0마리/100마리]

[보상 : 마스터 호감도 증가, 100골드]

퀘스트라는 스테이터스 창이 나타나자 그 안의 내용을 읽어 보았다.

“마스터?”

바텐더에게 마스터라며 손가락을 향하자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왔다.

“앞으로 퀘스트 여관의 마스터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스터의 말과 함께 머리 위의 글씨가 바뀌었다.

‘퀘스트 여관의 마스터’라고.

유저뿐만 아니라 NPC들의 이름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사실 지금 이 발견은 엄청난 발견이었다.

이것은 히든 퀘스트를 해야만 발견하거나 고레벨 유저들만이 알고 있는 정보였다.

그것을 레벨 1짜리의 초보 유저가 발견한 것은 큰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알 길이 없는 시후로서는 그저 재미있는 이벤트 정도의 일이었을 뿐이었다.

“좋아, 토끼 잡아 오지. 100마리 토끼쯤이야.”

기껏해야 팔뚝만 한 토끼 100마리 잡는 것은 환골탈태한 시후에게는 누워서 떡 먹기였다.

지풍을 날려도 되고 돌멩이를 던져도 백발백중으로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볍게 몸풀기에는 딱 알맞다고 생각하며 퀘스트 여관을 나왔다.

“기껏 큰 귀에 땅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네발짐승을 잡는데 응원까지 하다니, 짜식, 마음에 드는데?”

토끼를 잡아 오겠다며 퀘스트를 수락하고 여관을 나설 때 마스터가 격하게 응원을 해왔었다.

두 주먹을 움켜쥐며 꼭 살아 돌아오라는 말을 할 때는 한 대 쥐어박고 싶기도 했다.

그래도 응원을 하는데 때릴 수는 없어 그저 손 한번 흔들어주고 마을 밖으로 나왔다.

집에 돌아오고 계시는 어머니가 자신을 찾기 전에 토끼를 잡아 토끼탕이라도 끓여 먹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런데 마을 밖으로 나와 토끼를 찾던 시후의 표정은 급변했다.

“저게 토끼라고? 이런 또라이 마스터 새끼가!!”

시후는 마스터에게 욕을 한 바가지 하며 자신에게 달려드는 토끼를 향해 내공을 일으켰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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