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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8화 (8/275)

제8화

시후는 천마 시절이라면 꿈도 꾸지 못했을 일을 경험하고 있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듯.

고개를 푹 숙이는 짓을 하고 있었다.

“시후야, 어떻게 등교 첫날부터 땡땡이를? 학교가 그렇게 싫었니?”

“…….”

“선생님께서 네가 없어지셨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라셨는지 아니?”

“…….”

“그러다 친구 둘과 같이 사라진 것을 아시고는 땡땡이라 생각하시고 엄마에게 연락하셨잖니!”

“…….”

“하…. 시후야, 아직 학교 가기 힘들면 집에서 며칠 더 쉴래? 엄마가 불안해서 회사에 나갈 수가 없구나.”

“…죄송해요.”

다른 말에는 묵묵히 있던 시후는 엄마가 불안해한다는 말에 사과했다.

‘사과’라는 단어가 익숙하지 않은 시후에게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말이었다.

천마 시절, 자신이 하는 행동에 누가 뭐라 해도 머리를 숙이지 않았었다.

그런 천마에게 ‘사과’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입에 칼이 들어오고 목이 잘려 나가는 한이 있어도 절대.

그런 시후가 엄마에게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하고 있었다.

시후의 엄마 윤여정은 잔뜩 미안한 표정의 아들을 보며 더는 뭐라 할 수 없었다.

“우리 시후, 집에서 좀 더 쉴래? 엄마는 괜찮아, 엄마가 같이 있어 줄게.”

“…….”

엄마의 말에 시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며칠 전에 알게 된 것이지만 엄마 윤여정은 변호사였다.

그것도 상당히 승률이 좋은 변호사.

거기에 고1 아들이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미인이었다.

그런 실력 있는 변호사가 오늘 일선에 복귀한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 드디어 윤 변이 돌아오는 건가? 이거 드디어 숨통이 좀 트이겠구만!

- 기다리고 있었어요. 윤 변호사님, 제발 제 아들 좀 살려주세요.

- 윤 변, 돌아온다고? 그럼, 미안하지만 내 사건에 대해 조언 좀 들을 수 있을까?

오늘 아침에 윤여정 스마트폰에 울리던 톡의 내용들이었다.

차 안에서 한참을 답장하며 진땀을 빼던 엄마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았다.

사실 윤여정도 시후가 등교를 하는 것에 큰 기대를 하고 있었다.

시후가 병원에 입원한 후에 그동안 맡고 있던 사건들을 모두 다른 동료에게 넘겨주었었다.

덕분에 동료들은 죽을 맛이었기에 언제나 고마움과 미안함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에 시후가 등교를 하자 드디어 복귀할 수가 있었다.

복귀하자마자 바로 법률상담이 들어왔고 윤여정 변호사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예약이 밀려 들어와 고객과 상담을 진행했다.

그러다 시후의 땡땡이 소식을 듣고는 만사 내팽개치고 한걸음에 달려온 거였다.

시후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냐고 물었을 때 친구네 집이라는 소리에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시후는 아침 등교 때 탔던 롤스땡땡에 몸을 싣고 윤여정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걱정 가득한 어머니의 눈빛에 시후는 걱정을 덜어주기로 했다.

“교실에 너무 냄새가 나서 다시 들어가기가 싫었어요.”

“냄새? 그게 무슨 말이니?”

시후는 똥싸개 패거리 사건을 간략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윤여정은 스마트폰을 들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저 시후 모친입니다.”

담임에게 전화를 건 거였다.

시후의 이야기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변호사답게 사건의 자초지종을 정확히 알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확인한 똥싸개 패거리 사건의 자초지종은 듣고만 있어도 코를 막게 할 정도로 충격이었다.

“네, 감사합니다. 시후도 깊이 반성하고 있으니 내일부터는 학교생활 성실하게 할 거예요. 들어가세요.”

담임과 시후의 등교를 약속하는 어머니였다.

솔직히 내일부터는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품속에 숨겨둔 천년산삼과 음백초를 손질해야 했고 집에 있는 캡슐과 무협지에 대한 것도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의 저런 행동에 한 발 물러나기로 했다.

등교하겠다고 말할 때 어머니의 눈빛이 기대감으로 잔뜩 물들어 있어서였다.

‘뭐, 환골탈태도 했겠다, 천마분심공을 사용하면 되니까.’

천마분심공을 이용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는 시후의 표정이 상당히 심각해 보였는지 윤여정은 걱정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후야, 내일부터는 등교할 거지?”

“걱정하지 마세요, 그럴게요.”

시후의 대답을 들은 윤여정은 환하게 웃어갔다.

예전부터 시후의 가장 큰 장점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입이 상당히 무겁다는 거였다.

[말에는 무게가 있다.]

이 말을 어렸을 때 알려준 후로 시후는 자신이 내뱉은 말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 때문에 말수가 적어 어두운 면이 있었지만, 거짓말을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었다.

둘이 그러는 사이 어느덧 차가 멈춰 서고 있었다.

‘드디어 집인가?’

드디어 자신의 집이라는 곳에 왔다는 생각에 살짝 들뜨기까지 하였다.

운전기사가 문을 열어주자 서둘러 내린 시후의 눈에 들어온 것은 상당한 층수를 자랑하는 고층 아파트였다.

저 수많은 집 중에서 자신의 집이 어딘지 모르는 시후는 어머니를 기다렸다.

“가자, 시후야.”

덥석-

윤여정은 멀뚱히 서 있는 시후를 보며 손을 잡아갔다.

손을 잡고 가는 것을 보며 피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가 하는 것에 반대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천마 시절에는 자신의 말이 곧 법이고 자신의 행동이 척도였기에 다른 이에게 끌려 다니는 듯한 지금의 모습이 생소했다.

하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따뜻하구나. 어머니의 손은.’

천마 시절 느껴보지 못한 ‘어머니의 손’은 참으로 따뜻했다.

인체공학적으로 남자보다 여자가 체온이 살짝 높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시후가 느끼는 것은 그런 딱딱한 게 아니었다.

손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윤여정의 심상이었다.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

집 앞에 내려서도 어디가 집인지 모르는 시후의 모습을 말없이 감싸주는 어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져왔다.

병원에 있을 때도 많이 타본 엘리베이터였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올랐다.

윤여정이 가장 위층의 버튼을 눌렀다.

‘집이 꼭대기 층이었어?’

끝없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시후는 살짝 들떴다.

천마 시절에도 자신의 숙소는 가장 높은 전각에 있었다.

그곳이야말로 천만 교도를 굽어살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자고로 사내대장부라면 가장 높은 곳에 살아야 하는 법이지.’

이상한 지론을 떠올리던 때에 드디어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서 보이는 문이라고는 하나뿐이었다.

“문이 하나뿐이네요?”

“당연하지. 이 층 전체가 우리 집이니까.”

“오~!”

어머니의 말에 시후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어머니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운 실내장식과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이 보였다.잘은 모르겠지만 ‘강시후’가 잘사는 집 자제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 하나하나를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해하는 시후를 보며 윤여정의 표정은 살짝 어두웠다.

아직 저렇게 완벽하게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는데 등교를 강요하는 것은 너무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병원장인 남편의 처방이 등교였기에 걱정하는 마음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자신의 남편이라서가 아니라 의사로서 남편은 상당한 실력자였기에 믿었다.

“어머니? 혹시 무협지 모아 놓은 방이 있나요?”

“어? 그게 기억이 나니?”

갑자기 무협지 방을 물어오는 시후를 보며 윤여정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남편의 처방이 벌써 효과를 보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한껏 기대감이 들어 있는 것을 본 시후는 살짝 부담스러웠다.

어머니가 무슨 생각으로 저런 시선을 보내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시후의 기억이 돌아온 것이라 생각하는 거겠지.’

하지만 자신은 천마였다.

시후의 몸을 빌린 천마.

그렇다고 마음을 다해 걱정하는 어머니를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곳이랑 캡슐이 있던 방도 기억이 나네요, 위치까지는 아니지만요.”

“진짜? 위치는 엄마가 가르쳐 줄게, 가자!”

또다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끌려가다시피 한 시후는 커다란 문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여기가 ‘무협지 방’이란다.”

철컥-

“와….”

어머니가 열어준 무협지 방은 좀처럼 놀라지 않는 시후도 놀라게 했다.

무협지라는 책이 들어 있는 방이라 해서 예상은 했었다.

천마 시절, 책이 가득한 방을 하나 알고 있었다.

천마동의 마지막 관문은 무림의 비급들을 모아 놓았던 방, 무림서고(武林書庫).

그곳에 있는 비급들을 전부 읽어야 밖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그때 천마동을 나오는 데 2년이라는 세월을 소비했었다.

그런데 이 무협지 방이라는 곳은 무림서고보다 책이 더 많았다.

그냥 많은 것도 아니고 고개가 꺾일 정도로 들어 올려야 끝이 보일 정도로 많았다.

“네가 무협지를 하도 좋아해서 고서부터 시작해서 모았더니 이렇게 많더구나.”

시후는 어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책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책들은 상당히 정렬이 잘 되어 있었다.

가나다라순으로 정렬이 되어 있어 제목만 기억하고 있다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시후는 눈앞에 보이는 책 중 ‘혈천마(血天魔)’라고 적힌 책 하나를 꺼내었다.

‘피로 물든 천마라는 뜻인가?’

책 제목에서 법정 땡중에게 당하던 때를 회상했다.

형제라 생각했던 이들의 배신으로 피에 얼룩진 모습을 떠올렸다.

배신의 아픔에 저도 모르게 씁쓸한 웃음이 지어졌다.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며 시후는 곧 책 속에 빠져들었다.

그런 시후를 보며 윤여정은 안도의 미소를 지어갔다.

“책을 좋아하는 그런 모습은 그대로구나.”

병원에 입원하기 전에 시후도 시간이 날 때면 이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좀 더 정확히는 Safety World를 하지 않는 시간이면 무협지 방에서 책을 읽었다.

한번 책을 읽기 시작하면 밥 먹으라고 부르기 전까지는 저렇게 움직이지도 않고 책을 읽었다.

그때는 책만 읽는 시후를 탓하기도 했었는데 지금 보니 그때가 너무 그리웠다.

우웅- 우웅-

그때가 그리워 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분위기를 깨는 진동음이 들렸다.

윤여정은 품속에 넣어둔 스마트폰을 꺼내어 발신자를 확인하였다.

회사였다.

시후의 땡땡이 사건으로 인해 급히 나오느라 마무리하지 못한 사건에 대한 전화가 분명했다.

여전히 진동하는 스마트폰과 꼿꼿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는 시후를 번갈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시후야, 집에 있을 거니?”

“어머니는요?”

“엄마는 다시 회사에 나가 봐야 하는데.”

“그럼, 다녀오세요. 아무래도 여기 오래 있을 것 같아요.”

“알겠어. 그럼, 엄마 금방 다녀올게. 저녁은 같이 먹자?”

저녁을 같이 먹자는 어머니의 말에 시후는 미소로 화답했다.

그 미소에 윤여정은 걱정을 덜어내고 회사로 떠났다.

홀로 무협지 방에 남은 시후는 들고 있던 ‘혈천마’라는 책을 빠르게 넘겼다.

천마동에서 수만 권의 비급을 읽을 때 익혔던 속독을 사용하는 거였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책 한 권을 전부 읽어버렸다.

“제법인데? 누가 썼는지 모르지만, 책에 나오는 무공들이 허무맹랑하지만은 않아.”

줄거리나 인물들 간에 갈등에 대한 것은 둘째 치고 무공에 관한 것은 제법이었다.

특히, 이 책에 나오는 ‘수라혈장’은 천마의 기억 속에 있는 ‘아수라혈장(阿修羅血掌)’과 비슷했다.

지금은 내공이 부족하여 펼쳐볼 수 없었지만, 아수라혈장을 펼칠 때 손이 붉게 물드는 것도 똑같이 묘사되어 있었다.

마치 직접 본 것처럼 말이다.

“아니면, 직접 펼쳐 보았거나?”

아주 적을 가능성의 하나를 생각해보는 시후였다.

그 후 시후는 ‘천마’라는 단어가 적힌 책들을 모조리 읽기 시작했다.

속독을 사용하여 읽었음에도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었다.

방이 좀 어두워지자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되었다.

내공을 안구로 운기하여 읽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읽고 있던 책을 덮었다.

“이 녀석, 애정이라 해야 하나? 집착이라 해야 하나? 천마에 대한 생각이 남다른데?”

‘무협지 방’에 있는 천마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이 몸의 주인이었던 강시후는 ‘천마’를 좋아했다.

다른 무협지도 상당히 많았지만, 책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읽은 책은 천마라는 이름이 들어간 책들뿐이었다.

이것은 읽은 것을 또 읽고 또 읽었다는 거였다.

“혹시, 그때 들었던 목소리가 강시후였나?”

염라대왕을 만나러 갈 때 들렸던 그 목소리.

[내가 천마였다면!]

혹여나 그 목소리가 강시후의 목소리인가 싶었다.

그래서 천마 자신이 이 몸에 들어온 것인가 하는 추측을 했다.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에 질문하던 시후는 떨어지는 해를 보며 잠시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품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었다.

그리고 익숙한 이름을 검색하고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태산이냐? 내가 하라고 한 건 아직도 하고 있냐?”

- 어, 이제 그만해도 되는 거야?

“그래, 그만하면 됐다. 내일 보자.”

시후는 태산에게 그만해도 된다는 소리를 한 후 인호에게 전화를 걸어 똑같이 말해주었다.

사실 어머니가 태산의 집으로 데리러 오기 전에 태산과 인호에게 한 가지씩 내공심법을 알려주었다.

둘의 성향이 달랐기에 다른 심법을 전해주었다.

태산에게는 육중한 거구를 살릴 수 있는 ‘개걸심법(丐乞心法)’.

인호에게는 날렵한 순발력을 살릴 수 있는 ‘천투심법(天偸心法)’을 알려주었다.

개걸심법은 개방 방주가 되어야 전수받을 수 있는 심법이었다.

천마 시절 정체를 감추고 저잣거리에서 놀다가 술친구의 연을 맺은 늙은 거지가 있었다.

나름 개방에서 한자리한다던 그의 부탁으로 개방일을 몇 번 도와줬었다.

그때의 보답으로 얻은 개걸심법.

극성으로 익히게 된다면 주먹 한번 내지르는 것으로 태산도 무너트릴 수 있었다.

천투심법은 도둑으로 유명한 ‘천투’의 심법이었다.

천투를 아는 사람이 드물었지만, 천마 시절 황궁에 놀러 갔다가 황제의 처소 지붕에서 발견했었다.

뼈만 남은 시체와 같이 있는 것을 보니 황실에 침투했다가 변을 당해 그곳에서 죽은 것 같았다.

하여튼 천투심법을 극성으로 익히면 벽을 귀신처럼 통과할 수도 있었고 눈앞에 있어도 상대방이 자신을 볼 수 없었다.

시후가 둘에게 심법을 알려준 것은 일종의 실험이었다.

자신이 아니어도 Safety World에서 심법을 수련한 게 반영이 될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당분간 너희들이 실험 재료가 되어 줘야겠어. 섭섭하게는 생각지 마라. 그만큼 너희들이 상상하지도 못할 만큼 강해질 테니까.”

시후는 앞으로 달라질 둘의 모습을 기대하며 미소를 지어갔다.

그 시각 시후가 알려준 심법을 열심히 수련한 태산과 인호는 샤워하려던 도중 깜짝 놀랐다.

등골을 타고 흐르는 스산한 기운에 누가 얼음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오한이 밀려왔다.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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