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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인하는 천마님-7화 (7/275)

제7화

시후는 그동안 해 보지 못한 것들을 시도하고 있었다.

가슴속 깊이 자리한 한을 풀기 위한 그 첫 번째 목표가 바로 십이경맥(十二經脈)과 기경팔맥(奇經八脈)을 뚫는 거였다.

십이경맥은 이미 뚫어 놨었다.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에 몸을 완벽한 상태를 유지한 후 바로 뚫어 버렸다.

하지만 기경팔맥은 달랐다.

딱히 혈 자리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찾아서 뚫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했다.

그래서 편법으로 영약을 만들어 뚫을 생각이었다.

마신방에서 얻은 단약 제조법에 필요한 천년산삼과 음백초도 얻었겠다.

집에 돌아가 제조를 하여 그 실마리를 찾으려 하였는데 뜻하지 않게 Safety World에서 자연기를 찾은 거였다.

‘거의 다 되었다. 혈 자리가 없는 나머지 맥들은 뚫었고 이제 임맥(任脈)과 독맥(督脈)만 뚫으면!’

시후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좀 무리하는 감이 있었지만 지금 느껴지는 자연기로는 50 대 50이었다.

어느덧 가부좌를 틀고 앉은 지 1시간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땀은 비 오듯 흐르고 있었고 방안은 시후의 몸에서 나오는 수증기로 가득 차 있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내공을 돌리던 시후는 돌연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젠장! 웩!”

철퍽- 철퍽-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끼며 뚫려야 할 임맥과 독맥 대신에 기혈이 뒤틀렸다.

주화입마의 증상이었다.

“이럴 수는! 이럴 수는 없어!”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기에 주화입마의 증상에 큰 낙심이 들었다.

당장 몸속을 돌리던 내공을 회수해야 했지만 그럴 만한 정신이 없었다.

천마 시절로 돌아가 자신의 몸에 칼을 꽂아 넣은 배신자들을 죽여야 하는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근잘근 씹어 삼켜버려야 하는데 이렇게 병신이 될 수는 없었다.

이런 복수심에 불타기 때문일까.

시후는 평정심을 유지해도 극복될까 말까 하는 주화입마에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아찔한 정신에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띠링-

“뭐야?”

시후는 알림 소리에 눈을 뜨며 눈앞에 나타난 스테이터스 창을 보았다.

스테이터스 창은 시후가 손을 대지 않아도 빠르게 내용이 변했다.

[희귀 직업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전직을 하시겠습니까? 동의 or 거절]

[시스템의 범주에 벗어나는 오류가 발생하였습니다. 강제로 전직을 시작합니다.]

[전직으로 인해 스텟이 재조정됩니다.]

“이게 뭐야?”

의미를 알 수 없는 내용에 시후는 인상을 구겼다.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이런 것을 읽고 있는 자신이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래도 덕분에 정신을 차렸으니 내공을 회수하고 후일을 도모하려 했다.

그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스텟이 재조정되며 상태 이상을 되돌립니다.]

“뭐? 어? 어?!”

시후는 상태 이상을 되돌린다는 말에 눈이 커다래졌다.

상태 이상이라는 것은 지금의 주화입마를 뜻하는 것이었는데 저 메시지가 나타나자 바로 몸에 변화가 일어난 거였다.

꿈틀대며 뒤틀리던 혈관과 내장 기관들이 급격히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뿐만 아니라 몸속을 돌던 내공들에 의해 알아서 임맥과 독맥이 뚫리고 있었다.

뿌득 뿌드득-

막혔던 둑이 뚫리듯 임독양맥이 뚫리자 몸의 뼈마디가 뒤틀렸다.

거기에 근육과 피부까지 변하고 있었다.

피부가 쩍쩍 갈라지며 입고 있던 옷이 찢어지며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한순간 나체가 된 시후의 피부는 투명하다 못해 내장기관이 모두 보였다.

점차 보이던 내장기관이 흐릿해지며 본래의 살색을 찾아가자 시후는 깊이 숨을 들이켰다.

“흐읍~ 후우~!”

숨을 들이켤 때마다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던 안개들이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안개가 사라지자 가부좌를 틀고 있던 시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크큭, 크크크큭, 성공이다! 성공이야! 환골탈태까지 해냈어!”

시후는 변화된 자신의 몸을 둘러보며 기뻐했다.

아침까지만 해도 환골탈태를 이루기 위해서 30년은 내다봤다.

본래의 목표인 천마 시절의 힘을 되찾기까지는 한참 멀었지만, 드디어 온전한 첫걸음을 뗀 거였다.

이 모든 게 Safety World 덕분이라는 생각에 눈앞에 나타나 있는 스테이터스 창을 바라보았다.

종족 : 인간

직위 : 없음

직업 : 무림인

파티 : 2명(힘만 센 대머리, 얍삽한 로빈훗)

<스텟 정보>

힘 : 100

민첩 : 100

체력 : 100 (HP : 10,000)

지능 : 100 (MP : 10,000)

직업이 변한 것과 스텟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스텟은 수치가 적혀 있었지만, 저 수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대상이 없었기에 대충 훑었다.

대신 처음 보았던 기본 정보에서 바뀐 ‘직업’란을 보았다.

“무림인?”

이런 곳에서 ‘무림’이라는 단어를 접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이 게임이 어떻게 무림이라는 것을 알까 하는 의구심이 들던 때에 대화 창이 나타났다.

- 시후야, 어딨어?

시후를 찾는 대화창에는 반짝이는 대머리가 보였다.

- 태산?

- 어, 2시간 거의 다 되어가서 겜방 형한테 연락이 왔어. 슬슬 마무리하라고.

- 알았어, 이거 로그아웃을 누르면 되는 건가?

- 맞아, 그럼 좀 이따 보자.

태산이 걸어온 귓말에 시후는 로그아웃 버튼을 바라봤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심장의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진정하자, 진정해. 분명 밖의 내 몸에도 변화가 일어났을 것이다. 분명!”

천마분심공을 이용해 이곳에서 환골탈태를 이뤘지만, 이곳이 현실 세계가 아님을 알기에 걱정이 되었다.

현실 세계에 이상한 캡슐에 누워 있는 자신에게도 과연 환골탈태가 일어났을지가 궁금했다.

“만약, 된다면! 이 게임! 내가 정복해주마.”

시후는 결의에 찬 눈빛을 뿜어내며 로그아웃 버튼을 눌렀다.

눈앞에 펼쳐지던 세계가 흐릿해지며 깜깜해져 갔다.

그리고 곧 본래의 시력이 돌아오며 캡슐 안에서 쓰고 있던 고글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열리지 않은 캡슐 안에서 빠르게 몸을 살폈다.

“크, 크크, 크크큭! 성공이다!”

피슝-

시후는 캡슐의 문을 거칠게 열고 나가며 환호성을 질렀다.

두 주먹을 움켜쥐며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들고 참을 수 없는 기쁨을 표현해냈다.

미친 듯이 웃고 싶었지만, 이곳은 건물 안이었기에 그럴 수 없었다.

환골탈태를 이룬 몸이었기에 자칫 건물이 무너질 수도 있었다.

이런 기적과도 같은 일을 겪었음에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천마였기에 가능한 거였다.

그런 참을성을 보이는 자신을 칭찬하던 시후의 귀에 갑자기 비명이 들렸다.

“꺄악!! 변태야!!”

“꺄악!! 몸 좋은 변태야!!”

‘변태’라는 말에 시후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손가락을 쫙 펼쳐 얼굴을 가리고 있는 여자 몇몇이 보였다.

눈을 가리려는 것인지 무언가를 보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가리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문제는 그 손가락 사이로 보이는 눈의 초점이 시후를 향해 있다는 거였다.

“설마? 젠장!”

그제야 현실 세계에서도 환골탈태가 이뤄지면서 걸치고 있던 옷이 사라진 것을 깨달았다.

“야! 강시후! 뭐 하는 거야?!”

“옷은 왜 벗고 있어?!”

시후보다 한 발 늦게 캡슐에서 나온 태산과 인호는 깜짝 놀라며 자신들의 웃옷을 벗었다.

어디서 구했는지 웬 풀때기들로 중요 부위만 가리고 있는 시후를 위해 자신들의 웃옷으로 가림막을 해주는 거였다.

셋은 빠르게 게임방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게임방 근처에 태산이네 집이 있어 그곳으로 향했다.

그곳까지 가는 동안에도 몇몇 사람들의 시선과 비명이 들렸지만 셋은 우사인 볼트보다 빠르게 달려 태산이네 집으로 들어갔다.

태산은 시후에게 옷장에서 자기 옷을 꺼내어 건네주었다.

“크큭, 오늘 무슨 날이냐? 아침부터 똥싸개를 보지 않나? 강시후의 나체쇼를 보지 않나?”

태산의 놀림에도 시후는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 상황에서 자신을 위해 옷을 벗어 던진 녀석이 약을 올리자 굳이 딴지를 걸고 싶지 않아서였다.

천마 시절 이렇게까지 자신과 마음을 터놓고 지냈던 사람은 있었다.

무림 정복을 나섰을 때 천마에게 등을 돌렸던 형제들.

그때를 생각하자니 아랫배부터 끓어오르는 분노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한동안 잊고 있던 배신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덕분에 곁에 있던 태산과 인호가 뜻하지 않게 봉변을 당했다.

“컥!”

시후의 몸에서 본인도 자각하지 못한 사이에 뿜어져 나온 살기에 둘이 압박을 당한 거였다.

살기에 짓눌리자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현상에 둘은 괴로워했다.

‘이런, 이 녀석들은 아직 이런 살기를 견디기 힘들 텐데.’

시후는 무의식중에 뿜어낸 살기에 둘이 괴로워하자 마음을 진정시켜 갔다.

천마 시절 기분 내키는 대로 살기를 뿜어댔어도 주위에 있던 녀석들은 대충 견디었다.

자신의 밑에 있어서 그랬지 홀로 무림에 나갔다면 문파 하나를 세우고도 남았을 실력자들이었으니 말이다.

그랬기에 그런 녀석들에게 이런 배려는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녀석들이 아니었으니 배려가 필요했다.

시후가 마음을 진정하며 살기를 거두자 둘을 겨우 숨을 쉴 수가 있었다.

“흐으읍!!”

바닥까지 흡입해 버리려는 듯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는 둘을 보며 살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내 옆에 두려고 하는 녀석들인데 이렇게 빌빌거리게 둘 수는 없지.’

무언가 살짝 어긋난 방법을 생각하던 시후는 둘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만 헉헉대고 물어볼 게 있어.”

“뭔데?”

역시나 운동을 꾸준히 한 태산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대답해 왔다.

“그 달걀 기계 어디서 구하냐?”

“달걀? 기계?”

갑자기 달걀을 찾는 시후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방금 우리가 들어가 있던 그거.”

“아~ 캡슐? 그거야 게임방에 가면….”

“거기는 너무 사람이 많고, 집에 하나 들여놓으려면 어디서 구해야 하냐고.”

“…쳇.”

시후의 말에 태산과 인호는 재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혀를 차갔다.

갑자기 자신에게 저런 표정을 짓는 둘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유를 물어가려던 그때 태산이 입을 열었다.

“아까 그 캡슐이 마음에 들었냐? 또 사려고?”

“또?”

좀처럼 둘의 대화가 진전이 없자 인호가 나섰다.

“시후야, 너희 집에 이미 캡슐이 있어. 네가 우리보고 같이 놀자며 집에 들여놨다고 자랑도 했었는데….”

“아…. 내가 그랬냐?”

태산과 인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여전히 재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제야 시후는 둘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돈 있는 놈이 돈 자랑하는 꼴처럼 보였을 거였다.

그래도 저 눈빛은 그만 보고 싶었다.

“인상 펴라, 한 번 더 공기의 소중함을 알게 해주기 전에.”

“헉! 그거 네가 한 거였어?”

시후의 말에 둘은 펄쩍 뛰며 뒤로 물러났다.

도대체 병원에 입원한 후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괴물이 되어 돌아온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좁은 방에서 도망칠 않는 곳도 없었지만, 최대한 멀어지겠다는 심산으로 벽에 붙은 둘을 보며 시후는 씨익 웃어갔다.

“앞으로 너희는 좀 달라지자.”

“어?”

“아까 화장실에서 똥 싼 후 몸에 변화 느꼈지?”

화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거론하는 시후에 둘은 깜짝 놀라며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거 십이경맥을 살짝 손대준 거다.”

“네가? 진짜?”

12경맥이라는 말에 다시 한 걸음 다가오는 둘이었다.

“담벼락을 넘을 때랑 이곳에 올 때까지를 생각해봐. 평소랑 다르지 않았어?”

끄덕끄덕-

둘은 어느새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시후의 코앞까지 다다랐다.

평소 경험하지 못한 신기한 일이 두려움을 이긴 거였다.

‘의지는 있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한다거나 겁을 집어먹고 앞으로 다가오지 않았다면 시후는 둘의 기억을 지울 생각이었다.

기억을 지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머리에 내공을 슬쩍 흘려 넣어주면 오늘 하루 정도는 잊게 할 수 있었다.

둘은 자신들이 큰 화를 모면한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초롱초롱하게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기연을 좀 얻었다. 어떤 노인이 내게 힘을 주었어. 내공이라는 힘.”

“내공? 그 무협지에서 나오는 그거? 손짓 한 번에 집 한 채를 날려버리고 발차기 한 번에 지진을 일으키는 그런 거?”

시후는 생각보다 내공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둘에 살짝 당황했다.

“잘 안다?”

“우리가 무협소설 덕후 아니냐!?”

덕후라며 한쪽 벽을 가리키는 태산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책장이 눈에 들어왔다.

책장에는 당연히 책이 꽂혀 있는데 놀라운 것은 시후가 익히 아는 것들이었다.

“제갈세가의 첫째? 화산의 정수? 소림의 땡중? 어?! 처…. 천! 마?!”

천마 시절 자신이 알고 있던 이름들이 줄줄이 나오다 끝에는 ‘천마’를 거론한 책까지 보이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는 눈빛으로 태산을 바라보자 바로 대답을 해왔다.

“이거 모두 네가 빌려준 거잖아. 무협 소설 좋아한다고, 시후 네 집에는 방 하나가 무협소설로 꽉 차 있잖아.”

“이런 게 내 집에 많다고?”

시후의 말에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며 양손을 크게 벌리는 태산이었다.

엄청 많다는 것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 같았다.

이런 말까지 들으니 아무래도 집에 빨리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Safety World를 들어갈 수 있는 캡슐도 그렇고 천마를 거론하는 무협지가 가득 있는 방도 그렇고.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이 당연하게 있는 곳이 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시후를 당황하게 할 만한 사실 하나가 떠올랐다.

자신을 바라보는 태산과 인호를 향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 집, 어디 있냐?”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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