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로그인하는 천마님-6화 (6/275)

제6화

Safety World에 접속한 시후가 본 것은 살아오면서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부터가 달랐다.

천마 시절에 입었던 옷도 아니고 지금 시후로 살아가면서 보았던 옷들도 아니었다.

건물들의 생김새도 달랐다.

천마 시절 기와를 이어 만든 지붕의 건물도 아니고 초목을 엮어 만든 건물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지금 세상에서 보았던 네모반듯하게 각진 번쩍번쩍한 건물들도 아니었다.

“여긴 뭐야?”

“중세시대 배경이라서 그래. 우리가 마지막에 세이브한 곳으로 너를 불렀어.”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거대한 해머를 등 뒤에 멘 대머리 남자와 요상하게 생긴 모자를 쓴 활쟁이가 다가왔다.

“누구냐 너흰?”

생전 처음 보는 녀석들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자 경계를 하는 시후였다.

그 모습에 둘은 키득거리며 웃더니 서로 등을 맞대고 팔짱을 끼며 동시에 입을 열었다.

“우리의 정체가 궁금하다면 알려주는 게 인지상정!”

“Safety World 신입들에게 친절한 설명을 해주는 유저!”

“친절! 봉사! 헌신! 튜토리얼 유저~어어어~~”

말하는 중간중간 포즈를 바꿔가며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 둘을 보며 시후는 누군가가 떠올랐다.

“태산이랑 인호냐?”

“헙!”

단번에 자신들의 정체를 파악한 시후에 둘은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리고 상당히 아쉽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쳇, 기억이 돌아온 거야?”

“그건 아니고, 말이 길어서.”

자신들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낸 것이 자신들의 소개 때문이라는 소리에 둘은 인상을 구겼다.

“거봐! 내가 이거 하지 말자고 했지!”

“야! 이거 안 하면 우리 존재를 각인시킬 수 없다니까?”

“그냥 도와주면 되지!”

“그냥 도와주면? 우리 명성치는 어떻게 얻을 건데?”

갑자기 티격태격하는 둘에 시후는 벙쪘다.

“그만, 정신없다.”

시후의 낮게 깔린 음성에 둘은 티격태격하던 걸 멈추었다.

살짝 어두워진 시후의 표정에 인호가 활을 등에 둘러메고는 후다닥 다가왔다.

“진짜 기억 안 나?”

“어, 그런데 진짜 현실 같다?”

“당연하지. 잘 느껴 봐. 공기 냄새, 스쳐 가는 바람, 태양의 뜨거움까지, 모두 생생하지?”

인호의 말에 심호흡을 길게 해보자 말하는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정말 생생하잖아? 마치 현실 같아.’

고작 철로 된 커다란 달걀에 들어왔을 뿐인데 사술이라도 걸린 듯했다.

천마 시절 무림의 제갈세가에서 똑똑하다는 녀석들이 진법이라며 펼친 것이 이와 흡사했다.

하지만 진법은 많은 준비가 필요했는데 이것은 고작 고글 정도만 쓰는 노력에 이런 경험을 한다니 놀랄 따름이었다.

그렇게 놀라고 있는 시후를 보며 인호가 추가적인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번에 우리가 중세시대 퀘스트를 하고 있어서 너를 이곳으로 부른 건데, 다음에 할 때는 네 마음에 드는 곳으로 가자.”

“마음에 드는 곳? 그럼, 이런 환경 말고도 다른 환경이 있다는 말이야?”

“있지, 매해 업데이트되어 지금은 3개의 에피소드가 있어.”

인호의 설명에 점점 빠져드는 시후였다.

Safety World는 중세시대 유럽을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

미래를 배경으로 한 에피소드.

이렇게 3개의 에피소드가 존재했다.

처음 로그인을 할 때 배경 에피소드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에피소드마다 레벨이 호환되지는 않았다.

즉, 중세시대 고레벨 유저도 춘추전국시대를 시작할 때는 다른 유저와 마찬가지로 레벨 1부터 시작하는 거였다.

시후는 인호의 설명 중 레벨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자 의문이 들었다.

“레벨이 뭔데?”

“헐…. 그것도 생각나지 않는 거야?”

“됐고, 설명이나 더 해봐.”

“알겠어, 레벨은 경험치를 얻으면 능력치가 오르는 것을 말해. ‘스테이터스’라고 해봐.”

“스테이터스? 헉!”

촤아악-

인호를 따라 스테이터스라고 외치자 눈앞에 반투명한 창이 나타났다.

종족 : 인간

직위 : 없음

직업 : 없음

파티원 : 2명(힘만 센 대머리, 얍삽한 로빈훗)

창에는 ‘See 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저 이름이 이곳에서 시후가 사용하는 이름 같았다.

“따로 설정하지 않으면 인간으로 선택되어서 그렇게 나와. 파티는 우리 둘이고, 헤헤.”

“그럼, 힘만 센 대머리가 태산?”

태산의 유저 이름을 읽자 태산은 대머리를 쓱쓱 문지르며 배시시 웃어갔다.

“얍삽한 로빈훗이 인호?”

“맞아, 네이밍 센스 죽이지?”

“…다음 설명.”

칭찬을 바라는 인호를 애써 무시하는 시후였다.

그런 시후의 반응에 멋쩍어하며 인호는 말을 이어갔다.

“다른 창들에는 여러 가지 정보가 있어. 네 기본 능력치들의 수치가 적힌 창, 경험치를 얻을 수 있는 퀘스트가 적혀 있는 창, 친구를 등록할 수 있는 창. 아! 친추 하자!”

설명을 하다 말고 ‘친추’라며 스테이터스 창을 두들기는 인호였다.

띠링-

잠시 후 시후의 귀에 맑은 종소리가 들리며 스테이터스 창 하나가 깜빡거렸다.

그것을 누르자 익숙한 이름들이 보였다.

[힘만 센 대머리, 얍삽한 로빈훗을 친구로 등록하시겠습니까? 등록 or 취소]

등록이라는 버튼을 누르자 친구 스테이터스 창의 숫자가 ‘2’로 변하였다.

“친구로 등록하면 여러 가지 알림을 받아. 친구가 로그인하면 알려주기도 하고 귓속말을 할 수도 있고, 어? 태산아, 유라 님이다!”

“뭐? 유라 님?!!”

말하다 말고 갑자기 ‘유라’라는 이름을 부르며 한껏 들뜬 모습을 보이는 둘이었다.

둘은 시후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내뱉으며 안절부절못하였다.

말은 알아듣지 못해도 대충 눈치는 있었다.

“가봐. 나는 혼자 좀 돌아다녀 볼게.”

“그, 그래도 돼?”

“필요하면 귓속말하면 되잖아?”

“맞아, 그럼, 귓말해~ 우리 간다! 여신님~ 기다리십시오~ 소인들이 갑니다요~!”

타다다닷-

둘은 각자의 무기를 번쩍 치켜들더니 마을 입구 쪽으로 달려갔다.

“여신?”

유라라는 유저가 저 녀석들에게는 여신 같은 존재 같았다.

혈기 왕성한 남자들이 저렇게 달려가는 거라면 상당히 매력이 있는 여자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의 고1 남자라면 이쁜 여자를 찾아 따라나섰겠지만 시후는 달랐다.

“좀 전부터 생각한 건데 이곳, 자연기(自然氣)가 느껴져!”

인호가 한창 설명할 때부터 갑자기 느껴졌었다.

온몸의 털들을 자극하여 살살 간지럽히는 듯한 느낌.

천마 시절 느꼈던 자연의 기가 피부를 간지럽히는 그것을 말이다.

시후의 몸에 들어온 현실에서는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느낌이었다.

이 느낌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이런 낯선 곳에 혼자가 되는 한이 있어도 둘을 보낸 거였다.

시후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몸을 숨길 만한 곳을 찾아갔다.

그러다 침대 모양이 그려진 팻말이 걸린 곳을 발견하였다.

“여관인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시끌벅적한 식당이었다.

여러 개의 테이블이 놓여 있는 그곳에는 여러 명이 둘러앉아 술과 음식을 먹고 있었다.

천마 시절 무림에 나갈 때면 보았던 객잔과 비슷한 풍경에 시후는 익숙한 발걸음을 내디뎠다.

컵을 닦고 있는 바텐더에게 다가간 시후가 입을 열었다.

“방 있나?”

“오~ 유저시군요? 방이야 많습니다만?”

“다만?”

“숙박비가 필요하다는 말이지요. 대실은 2골드, 숙박은 5골드 되겠습니다.”

골드를 요구하는 바텐더에 시후는 멀뚱멀뚱 바라만 보았다.

바텐더는 유저가 아닌 NPC인지 시후의 그런 반응에도 다시 한번 친절하게 말해갔다.

“숙박비가 없으시면 포인트로도 결제할 수 있습니다. 손을 주시겠습니까?”

스윽-

바텐더의 말에 시후는 거리낌 없이 손을 내밀었다.

시후의 손을 잡은 바텐더는 잠시 눈을 감더니 입을 열었다.

“현재 게임방에서 접속 중이시군요? 월정액이 등록된 게임방이라서 대실 2시간이 무료이십니다. 이용하시겠습니까?”

“그러지.”

“네, 그럼 위층 1번 방으로 가시면 됩니다. 편안한 휴식 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까지 미소를 잃지 않는 바텐더를 보며 시후는 위층으로 올라갔다.

방으로 들어간 시후는 바텐더를 잠시 떠올려 보았다.

“NPC라….”

바텐더가 NPC라는 것은 금방 알 수 있었다.

머리 위에 태산과 인호와는 다르게 ‘퀘스트 여관 마스터 NPC’라고 적혀 있어서였다.

이름 색도 파란색으로 되어 있는 것에 주위를 돌아봤을 때 몇몇이 같은 색을 띠고 있었고, 이름 끝에 NPC라고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었다.

“녀석들은 사람이 아니다 이거지?”

자연스럽게 유저와 NPC의 차이를 알게 된 시후는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후…. 성공해야 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표정으로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북한산에서 내공을 이용하는 바람에 멈추었던 ‘천마분심공’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운기조식을 해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곳이 가상의 세계임을 알기에 운기조식은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마음을 둘로 나누는 ‘천마분심공’이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 거였다.

그리고 그런 시후의 예상은 적중했다.

“느껴져! 자연기가 느껴진다!”

시후는 주변 공기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즐거운 마음으로 천마분심공으로 마음을 둘로 나눈 후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 * *

에엥- 에엥-

“뭐야? 무슨 알람이야?”

Safety World의 개발회사인 S.W SOFT의 운영기획실장 김철수는 당황스러웠다.

지금 울리는 알림음은 Safety World 시스템에 이상이 생겼을 때 나타나는 알람이었다.

김철수의 외침에 부하 직원들이 빠르게 원인을 찾아갔다.

“실장님, 중세시대 에피소드에서 버그가 확인되었습니다.”

“버그? 어디서?”

“성북구에 있는 게임방에서 한 유저의 스텟이 재조정되고 있습니다.”

“에이 씨! 난 또 뭐라고, 종종 있는 버그잖아?”

부하 직원의 말에 김철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텟이 재조정되는 경우의 버그는 종종 있었다.

이번에 특별 이벤트라고 희귀 직업을 넣으면서 발생한 거였다.

처음에는 다른 유저들과 같은 스텟으로 조정하려고 했지만, 윗선에서 내버려 두라는 명령이 있었다.

이벤트이니 그런 정도의 버그는 있어야 사람들이 현질을 한다나? 뭐라나?

이번에도 그런 것이라 생각하며 김철수는 울리는 알람을 꺼버렸다.

“괜히 놀랐네, 나는 좀 잘 테니까, 다른 이상 생기면 불러라?”

“…네.”

어제부터 수면 부족이라며 투덜대던 김철수의 눈치가 보인 부하 직원은 추가적인 보고를 하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그도 종종 스텟 재조정 버그는 몇 번 봐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른 때와 조금 달랐었다.

지금까지의 사례들은 모두 50레벨이 넘은 유저들 사이에서 발생한 거였다.

희귀 직업으로 전직하면서 얻게 되는 스텟들이 달라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확인된 유저는 레벨이 1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시작부터 다른 유저들과는 다르게 시작한다는 말이었는데.

이런 사실을 말하려던 부하 직원은 평소 지랄 같은 김철수의 성격에 입을 다물었다.

“뭐, 지가 깨지지 내가 깨지나?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부하 직원은 버그에 대한 정보를 ‘확인’ 처리했다.

지금의 이 행동이 앞으로 어떤 파문을 불러올지 모른 채 말이다.

(다음 편에서 계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