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태산이 녀석은 생각보다 다부진 체격을 갖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 보았더니 운동을 한 흔적이 보였다.
‘그런데 친구라는 녀석이 왜 가만히 있었을까?’
힘이 있었으면서도 친구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왜 보고만 있었는지 궁금했다.
“왜 가만히 있었냐?”
“어?”
자신이 빌려준 체육복을 들고만 있던 시후의 질문에 태산이 돌아보았다.
“운동 좀 한 거 같은데 왜 내가 당할 때 가만히 지켜만 봤냐고.”
“그건….”
정곡을 찌른 것인지 태산의 표정이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그에 대답은 인호가 대신했다.
“네가 가만히 있으라 했으니까.”
“내가?”
“그래. 시후 네가, 태산이는 유도부에 들어가 체육 전형으로 대학 가서 국가대표 되어야 한다고, 사고 치지 말라고, 만약 자신 때문에 사고 쳐서 국가대표 못 되면 다신 안 볼 거라고. 시후 네가 그랬잖아.”
인호의 말에 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 시후 녀석이 친구 위할 줄 알았나 보다.’
멍청하기만 한 것 같지는 않아 다행이었다.
시후가 하지 말라고 해서 하지 않았지만, 친구가 당하는데 방관만 했다는 것에 죄책감이 든 것인지 태산의 똥 씹은 표정은 그대로였다.
그런 태산을 보며 시후가 입을 열었다.
“앞으로는 그런 죄책감 들지 않게 해주마. 그러니 너는 국가대표인지 뭔지 꼭 해라.”
“어?”
자신의 말을 이해 못 하는 태산을 보며 시후는 교복을 벗기 시작했다.
상의를 벗자 태산과 인호가 놀랐다.
“와…. 언제 그렇게 몸이 좋아졌냐?”
“병원에 있었다는 거 거짓말이지? 보디빌딩이라도 한 거 아냐?”
둘은 아프기 전과는 전혀 다른 시후의 몸을 보며 놀랐다.
딱 벌어진 어깨, 쫙 찢어진 가슴 근육, 빨래판 같은 복근까지. 완벽한 몸매였다.
자신의 몸을 보며 감탄하는 둘을 보며 시후는 피식 웃었다.
천마 시절에도 그랬지만 선망의 시선은 언제나 기분 좋았다.
기분이 좋으니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짓(?)까지 하게 되었다.
“너희 둘, 앞으로 나와 함께 하려면 좀 달라지자.”
시후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손을 뻗었다.
툭- 툭-
목표는 녀석들의 머리에 있는 양경(陽經)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태산만큼은 아니었지만, 인호 역시 운동을 게을리한 몸은 아니었다.
기초는 다져져 있으니 작은 선물을 주기로 했다.
내공과 관련된 기경팔맥을 건드리는 것은 아직 일렀기에 간단하게 오장육부와 관련된 12경맥을 건드려 주기로 했다.
12경맥만 튼튼해도 앞으로는 겨울철에 감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거였다.
다만, 아주 간단한 문제가 있었다.
다행이라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에 지금의 장소는 최적이었다.
꾸르륵 꾸륵-
“어? 어?”
둘은 갑자기 장이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당황했다.
그리고 곧장 조여 오는 괄약근에 깜짝 놀라며 대변기 칸으로 냅다 튀어 들어갔다.
“뭐, 뭐야? 왜 이래? 크…어어억!!”
푸드득 푸득-
오장육부를 담당하는 12경맥을 건드렸으니 장에 쌓인 노폐물을 쏟는 거였다.
한참 쏟고 나오면 한껏 가벼워진 몸 상태를 느낄 거였다.
일단 오늘은 요 정도만 건드려 주기로 하고 화장실을 나섰다.
“나 먼저 간다. 다 끝나면 와라.”
“어…. 어! 흑!”
대답하기도 힘든지 힘을 주는 목소리들이었다.
시후는 녀석들의 반응에 피식 웃으며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에 도착하니 다들 몸풀기가 한창이었다.
굳이 체육이라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아 적당한 때에 북한산으로 향할 생각을 했다.
‘교복보다는 체육복이 편하네.’
빌린 옷이었지만 체육복이 활동하기 편하다는 것에 결심한 거였다.
체육 수업을 시작한다는 소리와 함께 시후는 손을 번쩍 들었다.
“양호실 좀 가도 될까요?”
배를 만지며 양호실을 운운하는 시후를 보며 다들 익숙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체육 선생님도 그런 시후를 보며 알아서 하라는 듯이 손만 휘휘 저었다.
‘간단한데?’
큰 문제 없이 땡땡이를 치게 된 시후는 체육관을 벗어나자 몸을 날렸다.
강당 뒤 담벼락을 가볍게 넘자 ‘북한산’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시후가 다니는 학교는 북한산 바로 밑에 있었다.
체육 시간은 50분.
그 시간 안에 시후는 원하는 것을 찾아야 했기에 내공을 일으키며 달렸다.
아침이라 그런지 등산객은 없었다.
등산객이 있어도 상관은 없었다.
내공을 일으키며 달리는 시후는 등산로가 아닌 나무 위를 달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빠르기도 빠르지만 우거진 나뭇잎은 시후의 몸을 완전히 가려 주었다.
그렇게 나무와 나무 사이를 뛰어다니던 시후는 좀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습하면서도 물이 흐르는, 해가 아주 찰나의 시간만 들 것 같은 그런 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곳을 발견했다.
탁-
가볍게 그런 곳에 내려선 시후는 주위를 훑어보았다.
“이런 곳에 있다고 했었는데….”
시후는 천마 시절 마신방에서 빼앗은 단약의 재료를 찾았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중 커다란 나무 밑이 시선에 들어왔다.
“찾았다.”
미끄러지듯이 빠르게 나무 밑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손바닥만 한 흰색 꽃이 즐비했다.
“음백초(陰白草), 너만 있으면….”
시후는 음백초를 이용하여 만들 수 있는 단약을 빠르게 떠올렸다.
떠오르는 몇 가지 중에는 지금 당장 시후에게 필요한 것과 다른 이에게도 필요한 것을 만들 수 있었다.
이런 귀한 것을 캘 때는 뿌리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기에 심혈을 기울여 작업했다.
그렇게 음백초 몇 뿌리를 캔 시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었다.
“좋았어, 몇 개는 남겨둬야 후일에 또 사용할 수 있을 테니 두고, 어? 저건?!”
음백초 몇 개를 남겨 두고 떠나려던 시후의 눈에 생각지도 못한 것이 들어왔다.
초록 잎 사이에 작은 열매를 맺은 풀.
“산삼이다!”
천마 시절 간식처럼 먹었던 산삼이었기에 한눈에 알아봤다.
무엇보다 열매의 크기나 잎의 개수를 보니 기대를 할 만한 산삼이었다.
음백초를 캘 때보다 더욱 조심스럽게 다루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뿌리를 보이는 산삼의 모습에 시후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곳에서 천년산삼을 얻다니!”
뿌리의 숫자와 크기로 짐작하건대 시후가 캔 산삼은 천년산삼이 분명했다.
음백초에 천년산삼까지 얻다니 기쁨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 두 가지를 사용해 그 단약을 만들면 훨씬 빠르게 내공을 회복할 수 있었다.
“좋았어,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돌아가자.”
시후는 천년산삼과 음백초를 주변의 이끼와 함께 포개었다.
그리고 품속에서 미리 준비해 온 보자기를 열어 담았다.
천년산삼과 음백초를 품속에 품으니 세상 뿌듯했다.
당장 집으로 달려가 이것들로 단약을 제조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아침에 어머니가 당부하던 모습이 떠올라서였다.
“뭐, 그렇게까지 나를 걱정하시는데 이 정도야.”
천마 시절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이들이 몇이나 있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에게 천마가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천마의 위치에서는 그런 것들을 당연히 받아야 했었다.
힘이 없는 지금, 맹목적으로 자신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모습에 시후는 변하고 있었다.
시후는 서둘러 북한산을 내려갔다.
큰 수확이 있어서인지 산을 오를 때보다 내려가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곧 학교 담장이 보이자 시후는 가볍게 담장을 훌쩍 넘었다.
“왁! 깜짝이야!”
“어? 너희 여기서 뭐 하냐?”
담장을 넘는 순간 옆에서 들리는 비명에 시후는 어떤 멍청이인가 해서 쳐다보았다.
태산과 인호는 담벼락에 바짝 붙어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으로 시후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너, 너…. 너…!!”
“하아…. 그 더, 더, 더듬거리는 것 좀 안 하면 안 되냐?”
태산의 더듬는 말투를 따라 하자 녀석은 입을 꾹 다물고는 얼굴을 붉히었다.
대신 옆에 있던 인호가 입을 열었다.
“너, 어디 갔다가 와? 한참을 찾았잖아?”
“뭐, 배가 아파서….”
“배가 아파서 담벼락을 넘었다고?”
“뭐, 뒷산에 시원한 공기를 마시면 나을까…. 것보다. 나는 왜 찾았는데?”
시후는 이야기가 길어지면 변명만 늘어놓게 될 것 같아 화제를 돌렸다.
급하게 화제를 돌리는 시후의 모습이 찝찝했지만, 인호는 시후를 찾은 이유를 말했다.
“아까 그 애들이 너 찾아.”
“아까?”
인호의 말에 시후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문득 교실에서 똥을 싸지른 녀석들이 생각났다.
“똥싸개 패거리?”
“풉!”
시후의 말에 태산이 웃음을 터트렸다.
인호 또한 입꼬리가 올라간 것을 보니 웃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고 있는 듯했다.
“다른 애들 풀어서 널 찾고 있는 것 같으니 피해. 집에 가든지.”
이제 보니 똥싸개 패거리가 시켜서 시후를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시후를 걱정하는 마음에 그들과 엮이지 말라고 충고를 하러 온 것이었다.
‘가족들 다음으로 나를 걱정하는 이들인가?’
시후는 자신을 걱정하는 이가 늘었다는 생각에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같이 가자.”
“뭐?”
급 땡땡이를 제안하는 시후에 둘은 어이가 없었다.
“너희가 나랑 어울리는 것도 알고 있으니 나를 못 찾으면 결국 너희를 찾을 거야.”
“……!”
“그러니 같이 가자, 너희가 봉변당하면 왠지 사고 칠 것 같아서 그래.”
아리송한 시후의 말이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태산과 인호는 예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둘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만 같이 땡땡이치자.”
피식-
둘이 결의에 찬 표정으로 땡땡이를 다짐하자 시후는 피식 웃었다.
‘나중에 똥싸개 패거리 칠 때는 아주 혈서라도 쓰겠어.’
아직 먼 훗날의 일이었지만 시후는 이 둘의 힘을 키울 생각이었다.
자신을 걱정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고 이미 손도 한번 썼으니 옆에 두고 키울 생각이었다.
눈에 거슬리는 똥싸개 패거리들을 찾아가 다시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게 해줄 수도 있었지만,
후일을 기약하기로 하였다.
어머니의 당부도 있었고 생각보다 신경을 긁을 줄 아는 녀석들을 마주하면 살계(殺戒)를 열 것만 같았다.
이곳은 천마로서 살던 곳과는 다른 곳이었으니.
이제야 천마의 무공을 찾으려고 시도하려던 차에 쓸데없는 일에 엮여 시간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셋은 빠르게 교복으로 갈아입고는 담벼락 앞으로 모였다.
교대로 힘을 모아 담벼락을 가볍게 넘은 셋이었다.
“그래, 그럼 땡땡이치고 어디를 갈까?”
시후의 말에 둘은 씨익 웃으며 양쪽 팔을 잡아갔다.
“이런 날은 Safety World지!!”
“뭐?”
Safety World라는 말은 시후도 많이 들어봤다.
태산이 아침에 거론하기도 하였지만, 병원에 있는 동안에도 종종 접했던 말이었다.
스마트폰에서 무엇을 찾으려고만 하여도 Safety World가 소개되었었다.
관심이 없었기에 주의 깊게 보지는 못했지만 기억하는 것은 있었다.
“가상현실 게임을 하러 가자고?”
사람 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캡슐에 들어가 접속을 하면 가상현실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거였다.
어찌나 현실처럼 만들어 놨는지 평가들이 대단했다.
전 세계적으로 흥행하고 있는 게임이었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두 즐길 수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시후에게는 흥미 밖의 일이었다.
천마 시절의 힘을 되찾아 본래의 세계로 돌아갈 단서를 찾아야 했기에 게임 같은 것을 할 마음은 없었다.
대놓고 싫은 표정을 짓는 시후를 보며 태산과 인호는 발걸음을 재촉해갔다.
“하자~ 너 아프기 전까지 저 게임 잘했잖아, 물론…. 자의는 아니었지만….”
말끝을 흐리는 것을 보니 시후의 과거에 흑역사를 말하는 것 같았다.
시후는 품속에 있는 천년산삼과 음백초를 서둘러 다듬고 싶었지만, 집에 가기에는 이른 시간이었기에 하는 수 없이 둘을 따라갔다.
Safety World를 할 수 있는 게임방은 따로 전용시설이 있었다.
대부분 건물을 통째로 쓰는 편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만 한 크기의 달걀 모양 캡슐들이 즐비해 있었다.
처음 보는 광경에 시후가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인호가 대신 나섰다.
“저희 세 명이요, 2시간 선금이요.”
그렇게 선결제를 한 셋은 쪼르르 배치된 캡슐에 자리했다.
예전과는 다르게 어리바리한 시후의 모습에 인호가 친절히 도와주었다.
“헤드셋은 머리에, 고글도 쓰고, 여기랑 여기에 손과 발을 넣으면 돼.”
친절한 설명에 시후는 시키는 대로 따라 하였다.
“그럼 먼저 들어가서 아이디 만들고 있어, 우리도 금방 따라 들어갈게.”
“알았어.”
어디를 먼저 들어가라는 건지 이해는 못 했지만, START 버튼이 보였기에 눌렀다.
지이잉-
기계가 돌아가는 기계음이 들리더니 고글을 통해 보이던 시야가 확 바뀌었다.
그리고 보이는 세계에 시후는 저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와…. 대박!”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