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시후는 기초체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헬스장에서 살다시피 했다.
죽지 않기 위해 훈련해야 했던 천마동 환경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이었다.
산을 뛰어오르는 것을 러닝머신으로 대체하였고 수중 호흡법을 익히는 것을 수영으로 대체하였다.
사람의 신체를 어떻게 단련해야 가장 최단 시간에 최고의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는 천마동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칠 때 배워 두었었다.
물론, 자의로 익힌 것은 아니었다.
일천 명의 아이들을 한 줌의 빛도 들어오지 않는 천 길 낭떠러지로 던져 놓고 생사를 가르게 하는 천마신교의 미친 방법에 따른 거였다.
“죽기 직전까지 몸을 혹사하는 이 방법을 또 하게 될 줄이야.”
되새기기 싫은 기억이었지만 지금에서는 제일 나은 방법이었기에 천마동에서의 방법으로 신체를 단련했다.
그렇게 단련한 결과 몇 주 전에 앙상하던 몸은 완전히 변해 있었다.
원래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얼굴이 곱상하여 귀여운 맛이 있던 시후였다.
그런데 지금은 딱 벌어진 어깨, 탄탄한 가슴, 왕(王) 자가 짙게 새겨진 복근까지. 완벽한 몸매였다.
그 때문에 본의 아니게 뭇 여성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었다.
지금도 100kg의 역기를 들어 올리며 땀을 흘리는 시후의 모습을 힐끗거리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봤어? 봤어? 어떻게 해!!”
“장난 아니다, 소문 듣고 와봤더니 찐이네?”
“어머? 어머? 저 복근 봐~ 꺄아~!”
역기를 내려놓고 땀을 훔치는 시후를 보며 감탄하는 이들이었다.
시후 외에도 이곳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다들 극과 극이었다.
보디빌더처럼 우락부락한 근육남이거나 이제 운동을 시작한 중년의 아저씨들이거나.
병원에 소속된 헬스장이었기에 사용하는 사람들이 제한적이었다.
여성들도 마찬가지인 게 대부분이 간호사들이거나 환자와 보호자들이었다.
처음에는 시후의 소문으로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에 헬스장 관장이 말려 보았지만, 재활이 필요한 환자들까지 찾아왔기에 그냥 두었다.
시후 또한 천마 시절에 느꼈던 부러움과 선망의 시선을 느꼈기에 그냥 두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제 끝이었다.
내일이면 등교라는 것을 해야 했다.
“어쩔 수 없지, 17살의 나이면 아직 학교라는 곳을 다녀야 한다고 하니. 그리고 마침 그런 곳이 근처에 있다니, 어찌 보면 잘된 일이야.”
며칠 전 어머니가 찾아와 학교에 가야 한다는 소리를 했을 때는 괜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체력이 완성되는 대로 내공을 증진할 단약을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학교라는 곳이 ‘북한산’이라는 곳 근처에 있다는 소리에 시후는 등교를 허락했다.
산이라면 단약을 만드는 데 필요한 약초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목적은 학교가 아닌 북한산.
이제는 익숙해진 스마트폰으로 북한산을 검색하니 여러 장의 사진을 볼 수가 있었다.
우거진 숲, 맑은 물이 흐르는 곳,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장소들.
“약초가 자라기에 딱 알맞은 환경이란 말이지.”
마신방 녀석들에게서 빼앗아 왔던 단약 제조법에 필요한 약초를 구하려는 의도였다.
그동안 근력도 열심히 키웠고 단전에 조금이나마 내공을 모을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북한산의 험한 산세를 가볍게 뛰어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에 흐르는 땀을 대충 닦으며 스마트폰으로 학교부터 북한산까지 다다르는 길을 검색했다.
그러다 문득 옆으로 다가오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뭐냐?”
“오, 오빠, 내일 퇴원하신다면서요?”
“그런데?”
“퇴원하시면 이제 못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저…. 이거….”
더듬더듬하는 말투로 손에 든 작은 상자를 내민 녀석은 시후도 익히 아는 여아(女兒)였다.
시후 병실 바로 앞 병실에 입원한 녀석이었는데.
“너, 나이가 13살이라고 했었나?”
“네? 어, 어떻게 아셨어요? 아, 아니에요! 한국 나이로는 14살이에요!”
어려 보이면 좋아해야 하는데 이 아이는 어째서인지 자신의 나이를 부풀리며 화를 냈다.
‘푸른 눈의 색목인이라 그런가?’
천마 시절 눈동자가 푸른 이들은 중원인들과는 다른 점이 많았다.
사고방식부터 생활방식까지 말이다.
그래서 이 여아도 그런 거라 생각했다.
푸른 눈동자만큼 금발을 양 갈래로 땋은 머리가 참으로 잘 어울리는 귀여운 아이였다.
환자복을 입고 있지만 시후 앞에서는 언제나 환한 웃음을 보여주던 아이.
천마 시절 아이들에게 인기가 없었는데 이곳에서는 이렇게 먼저 다가와 주니 느낌이 새로웠다.
어느 학자가 그랬던가?
어린아이의 미소는 천사의 미소라고.
복수를 위해 무공을 되찾으려는 천마의 가슴에 이런 어린아이의 미소는 가뭄에 단비 같았다.
“그래, 그렇다고 하자. 이건 잘 받으마.”
시후가 작은 상자를 받아들자 여자아이가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어갔다.
그 표정에 시후는 피식 웃으며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빨간색과 금색의 실을 엮어 만든 끈이 있었다.
“이건 뭐냐?”
“어? 오빠 그런 거 처음 받아봐요?”
“뭐…. 그런 편이지?”
천마 시절 기억을 되짚어 봐도 선물을 받아본 기억은 없었다.
조공이라면 모를까.
다들 머리를 조아리며 금은보화가 가득한 궤짝을 들이밀었으니 말이다.
용도를 파악하기 힘든 끈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리자 여자아이가 끈을 낚아채 갔다.
줬다 뺏는 건가?
이미 자신의 손에 들어온 것을 빼앗은 것에 화를 내려던 그때 여자아이가 시후의 손을 끌어당겼다.
“뭐 하냐?”
“가만히 있어 봐요, 이건 이렇게 차는 거예요.”
고사리 같은 조그만 손으로 조물조물하며 손목에 끈을 묶어주었다.
“팔찌?”
“맞아요, 끈 팔찌. 제가 며칠 동안 만든 거예요. 저 잊지 말라고요. 헤헤.”
직접 만들었다는 말에 시후는 가슴 한쪽이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천마 시절에도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며 공물을 바친 것들은 죄다 환갑을 넘은 놈들뿐이었다.
그리고 놈들이 바친 것은 죄다 검, 단약, 화약 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지만 모두 남들을 해하는 데 사용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이런 어린아이가 저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신을 잊지 말라며 이것을 만들었다고 생각을 하자 기분이 퍽 좋았다.
그래서 천마 때라면 하지 않았을 일을 해주기로 했다.
씨익-
“고맙다.”
진심으로 고마움을 담아 환한 미소와 감사 인사를 했다.
“헙!”
“왜 그러냐?”
고맙다고 말했건만 입을 틀어막고 숨을 머금는 여자아이의 모습에 시후는 당황했다.
“오빠, 학교 가면 그렇게 웃지 마요! 큰일 나겠어요!”
“그게 무슨 소리야?”
알 수 없는 소리를 툭 던지고는 입을 삐쭉거리며 도망치듯 헬스장을 빠져나가는 여자아이였다.
얼핏 얼굴이 상당히 붉어져 있던 것 같아서 살짝 걱정되었다.
“아무래도 한번 찾아가 봐야겠어.”
시후는 걱정되는 마음에 후다닥 샤워를 마치고 헬스장을 빠져나왔다.
병실로 들어가기 전 간호국에 잠시 들렀다.
“간호사 누나? 제 병실 앞에 입원해 있는 여자아이요. 괜찮아요?”
“여자아이? 아~ 제니?”
“제니? 그 애 이름이 제니예요?”
“응, 미국에서 치료받기 힘들다 해서 우리 병원으로 와서 치료 중인 아이인데, 왜? 무슨 일 있었어?”
‘미국’이라면 들어본 적이 있는 나라였다.
바다 건너 아주 멀리 있는 나라로 이곳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강대국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 나라에서도 치료받지 못해 이곳에 왔다고 하니 더욱 궁금했다.
“어디가 아파서요?”
“음….”
환자의 병명을 다른 이에게 말해주는 것은 금지된 사항이었다.
하지만 진심으로 걱정하는 시후의 표정을 보니 저도 모르게 간략하게나마 말해주게 되었다.
“심장.”
간호사 누나가 어렵게 꺼내는 듯한 반응에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이 정도 말해준 것도 감사한 일이었기에 시후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병실로 돌아갔다.
병실로 돌아가 침대에 몸을 눕히자 손목에 묶여 있는 끈이 눈에 들어왔다.
“금색과 빨간색이라…. 내가 좋아하는 색인 줄은 어떻게 알고.”
천마 시절부터 금색과 빨간색을 그렇게 좋아했었다.
금색은 금화를 상징하는 것이었기에 좋아했었고 빨간색은 피와 같은 색이었기에 좋아했었다.
“나를 즐겁게 해주었으니 보답은 해줘야겠지?”
그동안 받기만 했던 보답을 오늘 처음으로 베풀어 보기로 했다.
밤이 되고 모두가 잠이 들자 병실 밖을 지나는 발걸음 소리도 잦아들었다.
시후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공을 일으키며 발걸음 소리를 지웠다.
제니가 있는 병실 안으로 조용히 들어가자 이곳도 1인실인지 제니와 그 옆에서 잠들어 있는 여성뿐이었다.
아마도 제니의 엄마일 거였다.
“깨면 귀찮으니 좀 더 자라고.”
둘의 수혈을 가볍게 짚은 뒤 본격적으로 보답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제니의 정수리에 손을 올렸다.
백회혈을 통해 내공을 흘려보내 정확한 상태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오호, 이것 봐라?”
내공을 흘려보내 몸 상태를 확인하자 심장에 문제가 있기는 했다.
그보다 놀란 것은 여자아이의 체질이었다.
“천음절맥(天陰絶脈)을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천 년에 한 명이 나올까 말까 한 천재들이 갖고 태어나는 병이었다.
음기가 너무 강하여 단명하는 운명이었지만 단명하기 전에 병을 고친다면 세상에 둘도 없는 지략가가 되는 이들이었다.
천마 시절에도 보지 못했던 천음절맥을 이곳에서 보게 되자 흥미가 돋았다.
‘심장으로 모이는 음기가 문제구나.’
심장으로 모인 음기가 혈액을 공급하는 데 큰 영향을 주고 있었다.
시후는 정수리에서 손을 떼면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당장 보답해 주고 싶었지만, 지금의 내공으로는 천음절맥을 고칠 수 없었다.
천마 시절 내공의 반만 있어도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기에 차선책을 찾아야 했다.
‘좋아, 아무래도 제니 너랑은 긴 인연이 될 것 같구나.’
앞으로 제니를 자주 보며 천음절맥을 치료할 계획을 꾸렸다.
지금은 살짝 호전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내공을 흘려 넣어주었다.
‘이 정도면 다음에 볼 때까지 그 환한 웃음을 계속 지을 수 있을 거다.’
제니가 헬스장에서 보여주었던 미소를 되새기며 심장에 내공으로 막을 만들어 주었다.
음기가 심장으로 침투하는 것을 일시적으로 막는 거였다.
그렇게 보답의 시작을 해준 뒤 둘의 수혈을 풀어주었다.
조용히 자신의 병실로 돌아온 시후는 잠자리에 들면서 천마분심공을 일으켰다.
잠시 기쁨의 시간을 갖게 해준 제니에게 보답이랍시고 한 행동이 되레 큰 보답이 되어 돌아왔다.
제니의 몸을 확인하기 위해서 내공을 움직였을 때 작은 깨달음이 있었다.
“하긴, 천음절맥은 나도 처음 만져본 것이니까.”
천 년에 한 번 볼 수 있는 천음절맥을 내공으로 만져 보았으니 그 경험이 깨달음으로 온 거였다.
보통의 사람과는 다른 천음절맥 몸에 흐르는 기의 흐름을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그 아주 작은 깨달음을 즉각 운기조식에 사용했다.
역시나 다음 날 아침, 자리에서 일어난 시후는 평소보다 배는 단단해진 단전을 느낄 수 있었다.
“대단하군, 뜻하지 않은 곳에서 좋은 실마리를 찾게 되었어.”
보답하고자 손을 댄 덕분에 내공의 진전을 보인 것을 기뻐하고 있었다.
그때 병실 문이 스르륵 열리며 어머니가 들어왔다.
“우리 시후, 오늘은 기분이 좋아 보이네?”
“어머니, 어서 오세요.”
어머니는 웃고 있는 시후를 보며 다행이라 여겼다.
혹여나 등교 거부라도 하면 어쩌나 했는데 지금 보니 그럴 것 같지는 않았다.
“잠시만요, 금방 옷 갈아입을게요.”
시후는 침대에서 일어나 어머니가 가지고 온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어머니가 흐뭇한 표정을 지어갔다.
“우리 시후, 언제 이렇게 어른이 되었을까? 학교에 가면 다른 여자애들이 난리 좀 나겠는걸?”
“네?”
어머니가 가지고 온 옷은 시후가 등교할 학교의 교복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이후 몸이 커진 시후를 위해 새로운 교복을 준비해온 거였다.
모델처럼 훤칠한 키에 딱 벌어진 어깨하며 곱상하기만 했던 얼굴에 이제는 남성미가 엿보였다.
그런 시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원인 모를 병에 걸려 혼수상태에 빠졌던 그때가 떠올랐다.
“흑흑, 우리 시후가 건강해져서 정말 다행이야.”
“아이고, 뭘 또 눈물을 흘리세요.”
병원에 있는 동안 어머니가 찾아와 자신을 볼 때면 여러 차례 눈물을 보였다.
그때마다 아버지가 옆에 있으면 다독여 주면서 안정을 시켜 줬는데 지금은 자신밖에 없으니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쯧, 이러면 되려나?’
시후는 그동안 아버지가 했던 일을 떠올리며 어머니를 안아갔다.
이제는 훌쩍 커버린 시후의 품에 안긴 어머니는 자신을 안정시키려고 어색하게 안아오는 모습을 보며 미소가 떠올랐다.
“우리 시후, 나중에 여자친구 데리고 오면 엄마가 매우 섭섭하겠는데 어쩌지?”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느닷없이 훅 들어온 이야기에 어머니를 슬쩍 밀었다.
그러자 장난기가 가득 품고 있는 어머니의 표정을 보고는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예전부터 미인은 믿을 게 못 된다더니, 조심해야겠어.’
천마 시절 자신을 보필하던 지괴(智怪)가 자주 했던 말들이었다.
그때는 대충 흘려 넘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시후의 어머니 또한 미모가 뛰어났기에 조심하자는 생각을 하는 거였다.
그래도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은 진심이라는 것은 분명히 느껴졌기에 감사했다.
“그럼 엄마가 학교 데려다줄게. 같이 가자.”
“감사해요.”
학교까지 데려다준다는 말에 시후는 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날 이후로 다시는 학교에 데려다 달라고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