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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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 눈으로 내리쬐는 햇살에도 늑장을 부렸다. 하루가 다르게 불러 오는 배 탓에 끊이지 않는 요통이 내 게으름을 계속해서 자극했다.

해가 중천에 떠오르고 나서야 뜨인 눈이 옆자리를 흘깃 쳐다보았다. 분명 형과 함께 맞춘 오프 날이었는데 자리에 누워 있어야 할 사람이 부재였다.

페로몬이 방 안 가득 메워져 있었지만 옆자리는 온기가 사라져 있다. 어디 갔지. 손으로 옆자리를 더듬거리던 내가 뻑적지근한 목을 한 바퀴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잠에 취해 어떤 소리도 담지 못했던 귀가 그제야 방문 밖의 소리를 주워 담았다. 물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화장실은 아니고, 싱크대인가.

무거운 몸을 이고 걸음을 옮기자 편한 복장으로 무언가를 씻고 있는 형의 뒷모습이 보였다. 비죽이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형에게 다가가니 빨갛게 잘 익은 딸기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갑자기 웬 딸기?”

형의 어깨에 기대 입을 열어도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먹음직스러운 딸기를 잠자코 응시하던 내가 기다리다 못해 손을 뻗어 하나 집어 들려고 하자.

“입 벌려.”

형이 들고 있던 딸기를 흐르는 물에 씻어 내게 들이밀었다. 입을 크게 벌려 형이 건넨 딸기를 받아먹은 나는 입 안에서 터지는 상큼한 과즙에 눈가를 살짝 찡긋거렸다.

“안 그래도 딸기 먹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고 사 왔어? 임신하면 텔레파시도 통하나?”

“그럴 리가.”

눈을 뜨자마자 뭔가가 당긴다 했더니 그게 딸기였던 모양이다. 며칠 동안 고된 입덧으로 음식물 하나 제대로 넘길 수 없었던 속은 기상을 하기 전부터 섭취하고 싶었던 과일을 기분 좋게 받아들였다.

“말한 적도 없는데 귀신같이 알고 사 왔으면서.”

“딸기 먹고 싶다고 새벽 내내 칭얼거렸잖아. 기억 안 나?”

쌍둥이인 탓에 같은 달 다른 임산부보다도 더 크게 불러 온 배를 손으로 쓸어 만지며 입을 벌렸다. 입술이 벌어지기 무섭게 입 안으로 들어차는 딸기를 씹으며 기억을 되뇌었다.

“그랬어?”

“하도 딸기 타령을 해 대서 사 왔더니 세상모르고 자던데.”

아무리 곱씹어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골똘히 생각에 잠겼던 내가 멋쩍게 웃자 과일 접시에 씻어 놓은 딸기를 담은 형이 내게 접시를 바싹 가져다 댔다.

“적당히 먹어. 앉은 자리에서 다 먹지 말고.”

형이 내민 접시를 들고 딸기 하나를 입에 집어넣으며 형의 뒷모습을 살폈다. 피곤한 듯 물기가 묻은 손으로 뒷목을 어루만지는 형의 뒤로 내가 금세 따라붙었다.

“먹여 줘.”

“…….”

“아, 빨리. 허리 아파서 제대로 씹지도 못하겠어.”

“퍽이나.”

나를 무시하고 방 안으로 들어서려던 형이 내 고집에 싱겁게 웃으며 엄지로 내 입 주변을 닦았다. 별수 없다는 듯 접시 위에 올려진 딸기를 내 입에 밀어 넣는 손가락을 가볍게 깨물자 우리 둘 사이를 휘감은 페로몬이 산뜻하게 너울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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