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고백
11일 만이었다. 보통 2년 차의 경우에는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출퇴근이 가능했지만 사람이 부족한 신경외과에서는 출퇴근이 하늘의 별 따기였다. 분명 재작년에는 신경외과 레지던트를 정원에 맞게 네 명이나 뽑았으나 한 해가 지나고 나니까 그 수가 반 토막이 되었다.
병원을 나서기 전에 강유한은 이번 사태를 겪어 보니 꿋꿋하게 버틴 우리가 장했다며 우는 시늉을 했다. 김현재는 귀찮다는 듯 자신을 끌어안는 강유한을 밀어냈고, 나는 그대로 무시하고 나와 의무 기록을 작성하곤 병동을 벗어났다.
소독약 냄새가 방향제만큼이나 익숙해진 코끝은 시원한 공기를 한가득 담았다. 건물에 가로막힌 바람은 내 머리를 잔뜩 헝클어트렸지만 그냥 대충 쓸어 넘기고 말았다.
형이 기다리겠다고 했으니까……. 형이 기다리고 있을 주차장으로 내딛는 걸음은 퍽 사뿐거리기까지 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피로에 절어 있던 모습이 금세 활기를 되찾았다.
똑똑.
익숙한 번호판의 차를 찾아 선팅이 되어 있는 운전석을 손으로 두드렸다. 막을 워낙에 여러 겹 입혀 내부가 전혀 보이지 않아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자 창문이 스르륵 내려간다.
“안 타고, 왜.”
창문이 내려감과 동시에 드러나는 무감각한 얼굴은 언제 보아도 예뻤다. 분명 새벽에 보았던 얼굴임에도 반가워 손을 차 안으로 집어넣었다. 형의 양 뺨을 잡고 쪽, 입을 맞추자 또렷한 눈매가 반으로 접히기 시작했다.
“이러려고.”
만족스럽게 웃으며 말하자 언제 올라갔을지 모를 형의 입꼬리가 나를 반겼다. 조수석으로 돌아가기 위해 내가 고개를 뒤로 물리던 순간, 손을 뻗은 형이 나를 당겼다. 목덜미를 감싼 기다란 손가락이 가을의 끝자락을 여실히 느끼던 피부를 뜨겁게 데웠다.
다시금 맞닿은 입맞춤은 아까보다 더 색감이 짙었다. 윗입술을 가볍게 무는 치아가 달가워 입술을 벌리면 말캉한 혀가 내 안으로 깊숙이 침범한다. 입술을 삼키기 수월할 정도로만 고개를 비튼 형이 검지로 내 뒷머리를 살살 간지럽혔다.
“하아…….”
그 손길이 퍽 야릇하기까지 해 허벅지에 힘이 단단히 들어갔다. 부드럽게 얽히는 혀의 체온이 어느새 내 타액에 물들어 미적지근한 감각을 달고 왔다. 뜨거운 숨이 오가는 좁은 공간은 보나 마나 습한 기운이 감돌 게 뻔했다. 그 안을 익숙하게 훑어 대는 혀와 더 짙게 엉키기 위해 성급하게 따라붙었다.
목덜미를 감싼 채 검지로만 내 뒷덜미를 살살 긁어 대던 손길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을 때, 묘한 흥분으로 점점 뻑적지근해지는 아랫배를 느꼈을 때.
“동생 앞에서 잘하는 짓이다.”
순간 숨을 깊게 들이켬과 동시에 입 안을 배회하던 혀를 씹어 버렸다. 혀를 섞다 말고 봉변을 당한 형이 짧은 신음을 뱉었다. 반사적으로 형에게 떨어지니 목덜미에 얹혀 있던 손이 제자리를 찾아갔다.
너무 놀라 크게 확장된 눈이 서둘러 뒷좌석을 살폈다. 뒷좌석에 앉아 책을 보고 있던 주혁이가 기막히다는 듯 내 얼굴을 흘겼다. 혼란이 찾아온 머릿속이 배로 가중되자 고개를 살짝 치켜들었던 열기가 빠르게 식었다.
“어, 언제부터 있었어?”
“처음부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말을 더듬으며 묻자 주혁이는 고개를 설설 흔들었다. 내 물음에 대한 대답은 형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걸 알면서 그랬단 말이야? 경악을 금치 못하며 뒤로 물러나는 나를 보곤 형이 짧게 웃었다.
“알고서 덤비는 줄 알았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는 건 삽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손으로 얼굴 전체를 가리며 부끄러움을 온몸으로 드러냈다. 딱 이 자리에서 혀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오프의 대부분을 형의 집에서 보내기도 했지만 가끔씩 퇴근을 할 때마다 주혁이와 저녁을 먹었다. 시설에 들어가고자 했던 주혁이의 마음을 돌려세운 뒤로 주혁이는 내가 혼자 살았던 집에서 지냈다.
스무 살이 된 주혁이는 아직도 공부에 전심전력을 다했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하는 바람에 기본기가 부족했던 주혁이는 작년에 수능을 말아먹고 재수를 결심했다. 디데이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최근에는 집으로 찾아가도 주혁이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다.
공부는 잘돼 가는지, 이야기를 나눌 새도 없이 집중하고 있는 주혁이를 보자면 꼭 해내고야 말겠다며 아득바득 이를 갈았었던 예전의 내가 떠올랐다. 물론 지금이야 그때의 내 노력이 도움 되었지만 득만큼 실도 많았다고 생각했다. 인정받겠다는 목표를 온전히 성취하지 못했을 때의 허망감이 날 뒤흔든 감도는 생각보다 컸으니까.
너무 열심히 하지 않았으면 싶다가도 막상 주혁이를 보면 말릴 수가 없었다. 이를 악물고 그저 오기로만 공부했던 나와는 달리 주혁이는 공부하는 게 나름 재미있는 듯 보였다. 어쩌다 모르는 문제를 물어 오기라도 했을 때 접근하는 방식을 알려 주면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기도 했다.
나는 한 번 책을 펴기 시작하면 밥때를 곧잘 놓쳤던 것 같은데 주혁이는 매 끼니를 귀신같이 챙기는 모양이었다. 가끔 냉장고를 채워 주기 위해 근처 반찬 가게에서 반찬을 사 가는 날은 주혁이의 소식을 타인에게서 전해 듣는 날이었다.
‘그 집 학생이 3일에 한 번씩은 꼭 찾아와. 장조림이랑 쌀게무침을 그렇게 좋아한다니까. 여기만큼 반찬 맛있는 곳 없다면서 웃는데. 세상에, 웃는 게 어찌나 예쁜지. 우리 아들보다 더 예뻐서 올 때마다 내가 반찬 한 개씩 더 챙겨 주잖아. 훤칠하고, 예의도 발러. 요새 그런 학생 없다니까? 둘밖에 없다더니 동생을 어쩜 그렇게 잘 키웠어?’
그건 내가 그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이유였다.
“퇴근하고 쭉 같이 있었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민망함에 헛기침을 두어 번 뱉은 내가 고개를 돌려 주혁이를 보았다.
“아마? 도서관 갔다가 잠깐 형 얼굴 보려고 왔었어.”
“도서관?”
“위층에 공사한다고 낮에는 시끄럽거든. 아, 준이 형, 저 여기서 내려 주세요. 서점 들렀다 들어가려고요.”
콘솔박스 앞에 놓인 물병을 들어 물을 넘기던 나는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 애칭에 머금은 물을 뿜을 뻔했다. 주혁이는 형을 잘 따랐다.
내가 퇴근을 못 하는 날에는 형이 가끔씩 주혁이와 단둘이 밥을 먹는다는 것도 대충 알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 사람의 사이가 친밀해지고 있는 걸 체감하면서도 ‘준이’라는 애칭은 들을수록 귀엽고, 웃겼다.
“왜. 같이 저녁 먹자, 주혁아.”
물에 사레가 들어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기침을 뱉었던 내가 창문을 내리고 주혁이를 올려다봤다.
“난 아까 먹었어. 잘 놀다 와. 다음에 봐요, 준이 형.”
“어?”
빙긋 웃는 주혁이를 향해 잘 놀다 오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 물을 새도 없이 차가 출발했다. 차에 붙는 속도감과 함께 시린 바람이 내부를 휘감아 창문을 올렸다.
“준이 씨, 잘 놀다 오라는 게 무슨 말이야? 우리 어디 가?”
“바다.”
주혁이를 따라 하며 내뱉은 애칭에 한쪽 입꼬리를 올려 가볍게 웃은 형이 핸들을 부드럽게 돌렸다. 아침까지만 해도 무겁게 끼어 있던 안개는 어느새 걷혀 있었다. 해가 전부 기울어 버린 시간이었지만 놀러 가기 좋은 날씨였다.
“바다 보고 싶었구나.”
어제부터 내 오프에 유난히 신경 쓰는 게 이상하다 했다. 입가에 웃음기가 노골적으로 맴돌았다. 나도 모르게 콧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혼잣말처럼 나직하게 터진 말에 형은 별다른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밀폐된 공간 안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페로몬에는 나만큼이나 가벼운 감각이 돌았다.
서울을 벗어나기 전 고깃집에서 대충 배를 채웠다. 바다에 도착하고 나서는 조개구이까지 먹었다. 함께 기울였던 소주는 평소보다 배로 달았던 것 같았다. 기분 좋게 오른 취기에 발걸음을 재촉한 내가 해변을 거침없이 밟았다.
바다는 비명이 절로 나올 정도로 바람이 거셌다. 날이 많이 어두워져서 지평선이 보이지 않았지만 귓전을 마구 내리치는 바닷바람이 좋았던 것 같다.
하늘에는 별도 떠 있었고, 달도 떠 있었다. 달이 얼마나 밝게 떠올랐는지 바다에 비친 달빛이 경이로울 정도로 예뻤다. 시원한 바닷가의 바람을 폐가 최대로 팽창할 만큼 깊게 들이켰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어렴풋하게 맡아지는 염분 냄새도 좋았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 같은 파도 소리도 좋았다. 모든 게 평화로운 순간을 만끽하며 뒤를 돌아 형을 보았다. 몇 발자국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나를 응시하고 있는 형을 보니 형에게 달려가 아까 끝을 맺지 못했던 입맞춤을 잇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람이 워낙에 날카로워 밤바다를 구경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지금 당장 혀를 섞다 보면 여기서 일을 치를 것 같아 꾹 참았다. 바다를 보고 싶어 한 건 형이었는데 어쩐지 내가 더 즐기고 있는 기분이었다.
다시 몸을 틀어 발 바로 코앞까지 들어왔다 빠지는 잔물결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데, 불현듯 어깨 위로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다.
“춥지도 않냐.”
바다에 올 줄 몰랐기에 내 차림은 가벼운 상태였다. 형이 뒷좌석에 챙겨 온 패딩은 포차에 들어서는 순간까지만 해도 내 몸에 둘러져 있었다.
그러나 한 잔, 두 잔 기울어지는 술잔에 열기가 올라 벗어 두었던 겉옷을 잊고 부리나케 달려 나가는 바람에 미처 챙기질 못했다. 어쩐지 엄청 춥더라.
내 어깨 위로 패딩을 걸쳐 준 형이 팔을 넓게 둘러 나를 품 안에 안았다. 지금 풍겨 오는 냄새가 바다 냄새인지, 형의 페로몬인지 긴가민가했다.
고개를 숙여 내 어깨에 턱을 올린 형이 내 몸을 더 옥죄었다. 귀밑에 뺨을 바짝 가져다 붙이고 목덜미와 패딩의 깃 사이를 집요하게 파고든 형이 내 목에 입술을 비볐다.
“간지러워.”
귀에 닿는 머리칼이 간지러워 몸을 비틀어도 형은 개의치 않았다. 작게 웃음을 흘리자 형이 혀를 내어 승모근을 덮은 살결을 핥았다.
내 몸을 반 바퀴 감싼 팔이 스멀스멀 움직이는가 싶더니 티셔츠 안으로 들어오는 찬 손이 느껴졌다. 아까 내 뒷머리를 간지럽혔던 것처럼 골반을 톡톡 건드리는 손길이 야살스러웠다.
“미쳤어, 진짜.”
형의 의도를 알아차린 내가 서둘러 몸을 틀었다. 분명 형을 나무랐지만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어 있었다. 내 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던 형이 더 이상 입술을 붙이지 못하게 되자 고개를 슬그머니 들었다.
바짝 붙어 틈이 없었던 탓에 흘러내린 패딩을 형이 잡아채 다시 어깨 위에 걸쳐 주었다. 나는 민망해 죽겠건만 정작 형에게는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다. 그게 얄미우면서도 사랑스러웠다. 결국 주머니에서 손을 빼낸 내가 형의 목에 팔을 둘렀다.
“준이 씨, 이러려고 여기 데리고 온 거지.”
“빨리도 알아챈다.”
장난스럽게 터진 말에 양쪽 입꼬리를 당겨 웃은 형이 얄궂게 대응했다. 위로 솟은 팔 때문에 패딩은 더 이상 어깨 위에 온전히 걸쳐지지 않았지만 내 허리를 바짝 감싼 형의 손 덕에 더 흘러내릴 기미는 없어 보였다.
바닷바람은 여전히 추위에 얼어붙은 뺨을 맹공격했지만 밀착한 두 몸이 한층 더 엉길 수 있도록 기운을 보탰다. 끝내 포개진 두 입술은 정신없이 서로를 탐했다. 입술을 거칠게 밀어붙이는 바람에 고개가 뒤로 밀리면서도 허리를 단단히 지탱하는 손에 의해 허리가 휘었다.
목을 한껏 감싼 탓에 머리 위까지 뻗친 손으로 형의 뒷머리를 얽었다. 듣고 있기 민망할 만큼 적나라한 소리가 파도 소리에 묻히는 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입 안에 들어섰다가 순식간에 거둬지는 혀를 따라 내 혀가 입술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흐리멍덩한 시야가 코앞에 위치한 형의 얼굴을 담았다. 내 타액으로 뒤덮여 번들거리는 얇은 입술은 먹어도 먹어도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턱을 들어 형의 입에 입술을 붙인 내가 고개를 살살 흔들어 입술끼리 비볐다. 아주 미끄러웠고, 부드러웠으며, 입에 넣고 살살 씹고 싶을 만큼 말캉거렸다. 마냥 비비고만 있던 입술을 뗀 내가 형의 아랫입술을 씹기 위해 입을 벌렸을 때였다.
“결혼할까.”
맞닿아지려는 순간 움직임이 단숨에 굳어졌다. 게슴츠레하게 뜨였던 눈매가 점점 더 크게 벌어졌다. 입술만을 담고 있었던 시야에 형의 깊은 눈이 들어찼다. 잘못 들은 걸까. 도통 믿기지 않는 소리에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던 내가 끅, 딸꾹질을 했다.
“결혼하자.”
난데없는 딸꾹질에 부드러운 웃음을 얼굴 한가득 담은 형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어… 끅, 상황을 더 면밀히 파악하려는 듯 목구멍으로 터지는 신음을 길게 늘리던 내가 다시 한번 딸꾹질을 했다.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형과 시선을 맞추는 일은 혀를 섞었을 때보다 더 밀도가 빽빽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숨을 참고 있던 내가 뒤늦게 숨을 들이켜자 눈가가 시려 오는 것이 느껴졌다.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를 통해 눈시울이 붉게 달아오른 걸 들키기라도 할까 봐 서둘러 형의 목을 끌어안았다. 귀밑에 박힌 코끝이 형의 페로몬을 농도 짙게 들이켰다. 아스라이 돌았던 취기는 이미 농후한 달빛에 증발한 상태였다.
“할래. 할래, 결혼.”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을 애써 억눌렀다. 점점 밭아지는 호흡을 느낀 형이 내 등을 살살 쓸어내렸다. 대단할 것 없는 프러포즈였지만 기뻤다. 긴 시간을 돌아왔고, 긴 시간 끝에 맺어졌다.
형과 내가 오랜 시간 엮어 온 실타래의 끝이 앞으로도 한참이나 남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신이 없어 희미했던 타래의 너머가 이제는 제법 선명해졌다.
그 끝을 가늠하는 내 불안한 눈빛이 조금은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를 이기지 못하고 엉켜 있어도 좋았다. 이제는 그 실을 풀어내는 일이 두렵지 않았으니.
투둑, 함께하는 시간이 달가워 별을 박아 넣은 캄캄한 하늘을 구름이 두껍게 에워싸는 줄도 몰랐다. 머리 위로 하나둘 떨어지는 빗방울에도 우리는 웃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던 시야를 손등으로 비비고서야 형에게서 떨어진 나는 형을 보며 눈매를 휘었다.
다른 세상의 사람인 듯 늘 서려 있는 경계를 체감할 수밖에 없던 형과 나는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비를 맞으며 서 있었다. 형이 나를 보며 웃고, 내가 형을 보며 웃는. 지독히도 녹록한 내 세상은 평범했지만 평범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