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권-The fifth step (6/14)

The fifth step

병동으로 내려갈 자신이 없었다. 종일 옥상 구석에 틀어박혀 있으려는 내게 형은 또 손을 뻗었다. 형은 계속 내가 첫 발을 내디딜 수 있도록 북돋아 주고 있고, 나는 매번 주저하지만 결국 형의 손을 잡고야 만다. 형의 손을 잡는 것이 내게 해가 되는 일이 아니란 걸 알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지난번 형과 함께 잠들었던 스탭 전용 당직실에 몸을 눕혔다. 분명 며칠을 꼬박 새웠는데도 잠이 오지 않았고, 한나절을 넘게 쫄쫄 굶었는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형 쪽으로 돌아누운 내가 의미 없는 깜박임을 계속 이었다. 그런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던 형이 불쑥 손을 들이밀었다. 따뜻한 손바닥의 감촉이 내 눈가를 덮었다. 하도 눈물을 흘려 붉게 충혈된 눈이 쓰라렸기에 잠자코 눈을 감았다.

형의 주위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페로몬이 나의 불면을 달래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을 진탕 후비고 다니던 김중현이 서서히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안정적인 상태가 길게 유지되자 나는 무방비한 상태로 흐릿해지는 정신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굳이 수면제를 찾지 않아도 되는 효과였다.

시름에 몸부림칠 때마다 잠 못 들었던 예전과는 달리 형이 옆에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깊은 수면이 이어졌다. 끊임없이 내게 손을 뻗는 수마와 엉겨 한참을 헤어 나오지 못했다.

정신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졸음에 눌려 있던 탓인지 몸이 유난히 무거웠다. 아니, 어쩌면 나는 아직도 몽중에 가라앉아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꿈결에 맡은 페로몬인지 가늠할 정신머리는 없었다. 갑작스럽게 끼치는 낯선 기척에도 저항 하나 할 수 없을 만큼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눈꺼풀을 겨우 들어 올리자 머릿속에서 이어지는 것 같던 탁한 세상이 나를 반긴다. 뜨거운 숨이 밭은 주기로 튀어 나가 허공을 메웠다.

눈을 두어 번 깜박여도 흐릿한 눈앞은 여전했다. 낯설게 느껴지던 페로몬이 침대맡에 움츠리고 앉아 내 이마 위로 손을 얹었다. 무뎌진 정신을 미적지근한 체온을 덮었다. 분명 생소하다 느꼈던 기척인데도 불구하고 내 이마를 덮는 손길이 자연스러워 괜히 긴가민가했다.

형? 그 체온의 주인을 확인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성대를 통해 흘러나가는 거라곤 잔뜩 갈라진 신음 하나였다. 이마 위를 웃돌았던 손이 곧 내가 덮고 있던 이불을 목까지 끌어 올리기 시작한다. 이불 밖으로 손을 빼낸 내가 그 손을 꼭 부여잡았다.

“……아프…… 마요.”

형으로 인지한 형체가 내게 말을 건네도 그게 무슨 말이냐는 대답 하나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대답 대신 손에 잡히는 체온을 더 세게 붙잡았다.

불현듯 정신이 들었다. 꿈속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 모호했던 아까와는 다르게 시야가 뚜렷하게 트였다.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세게 붙잡고 있던 체온에 눈동자를 도르르 굴리니 의자에 앉아 눈을 붙이고 있는 형이 보였다.

나는 평소에도 잠귀가 밝은 형이 깨기라도 할까 봐 손에 힘을 싣는 것조차 주저했다. 가느다랗게 내리깔린 속눈썹이 참 예뻤다.

꾹 다물린 붉은 입술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눈, 코, 입이 조화롭게 들어찬 얼굴은 잘 다듬은 조각상 같았다. 선이 너무 굵지도 너무 얇지도 않은, 꽤 공을 들여서 다듬은 그런 조각상.

문득 형의 뺨을 쓸어 만지고 싶었다. 무의식중에 뻗어 나간 손은 형과의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한 채 허공에 머물렀다.

그 기척이 아주 희미했을 텐데도 감춰져 있던 눈동자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눈앞에 머문 손을 한 번, 내 얼굴을 한 번 훑던 형이 손으로 내 목덜미를 감쌌다.

형의 행동이 나를 재우기 위함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았다. 걱정스럽게 젖은 눈과 목에 닿는 체온. 그제야 유달리 무거웠던 몸과 무뎌졌던 정신이 꿈이 아니었음을 자각한다.

아팠구나. 눈동자를 아래로 굴려 팔에 꽂힌 링거 바늘을 시야에 담았다. 내 몸을 짚었던 손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멍하니 보던 내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더 누워 있어.”

그러나 상체를 일으키려던 몸을 형이 막는다. 형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몸을 일으킨 내가 멀어지던 형의 손을 잡았다.

“나 이제 안 아파.”

잔뜩 잠긴 목소리가 거슬려 잔기침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하니 시침이 11을 가리키고 있었다. 얼마나 앓았던 것인지 알 수 없으니 지금이 오전 11시인지, 오후 11시인지 알 길이 없었다.

시계에 향했던 눈길이 느긋하게 자리를 옮겨 형에게 닿았다. 손에 잡힌 형의 손을 간지럽히듯 만지던 내가 천천히 눈꼬리를 휘었다. 내 웃음에도 형은 따라 웃지 않았지만 괜찮았다.

“고마워.”

“…….”

“옆에 있어 줘서.”

눈을 떴을 때 누군가가 내 옆을 지키고 있다는 것, 맹목적으로 내 편에 서 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게 꿈에서나 그릴 수 있었던 이해준이라는 것. 나는 그 사실이 못내 고마웠다.

“이한음.”

“응.”

나는 작게 번진 웃음을 오래 유지했다. 어느새 형이 내 이름을 부르고, 내가 형의 물음에 답하는 것이 익숙해진 몸은 그 사실에 그저 감읍해 있었다.

“왜?”

나를 불러 놓고도 침묵을 유지하는 형을 다시 한번 재촉했다. 그러자 맞닿아 있던 시선이 살짝 틀어졌다. 위로 솟았던 입꼬리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낯간지럽다고.”

형의 입가에 맴도는 웃음이 유난히 쓰다고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짐짓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형의 얼굴이 마음에 걸렸지만 이내 가볍게 털어 버렸다. 김중현을 마주친 뒤 폭발하듯 터져 나갔던 내 감정 쪼가리가 신경 쓰였겠지. 그렇게 막연히 생각했다.

꼬박 며칠을 앓았던 것인지 그 수를 정확히 헤아리기가 모호했다. 그저 중천으로 향하는 태양을 보며 하루 이상은 누워 있었다는 걸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경의실 한쪽 면에 걸린 달력을 보던 내가 손가락으로 16이라는 숫자를 꾹 눌렀다. 차라리 세상에서 이날이 사라지면 어떨까 싶었다. 그랬으면 하루하루가 이토록 불안하진 않았을 텐데. 나는 일어날 리 없는 일을 감히 상상하며 내가 원하는 미래를 그렸다.

내가 암만 그날이 오지 않는 것을 바란다 한들 세상은 단 1초의 시간도 미루지 않았다. 초침이 이동하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너무나도 일정한 간격을 이루는 움직임에 노이로제가 올 것 같았다. 결국 시계에서 눈을 뗀 내가 서둘러 경의실을 빠져나왔다.

새로 꺼내 입은 가운의 감촉이 유독 빳빳했다. 그 느낌이 낯설어 소매를 길게 늘리던 내가 불현듯 느껴지는 시선에 걸음을 멈추었다.

지나치는 의료진의 수가 늘수록 못 박히듯 꽂힌 시선이 증가하고 있었다. 의아함을 느낀 내가 고개를 뒤로 틀었다. 그러자 분명 내게 닿아 있었던 시선들이 하나둘 떨어져 나간다.

엉겨 붙는 시선들은 부담스럽다 못해 불쾌하기까지 했다. 그 불쾌감이 시선의 의미를 더 깊게 새긴다. 평소와는 다르게 가볍게 무시하며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그 의미가 내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이었다. 김중현. 나는 지난번 벌어졌던 소란을 떠올리며 입술 안쪽 살을 잘근잘근 씹어 댔다.

“괜찮냐?”

강유한은 말없이 복귀한 나를 보며 삐딱하게 물었다. 걱정의 말씨였지만 나를 걱정하는 표정은 아니다. 예민하게 날이 서 있던 얼굴이 뒤늦게 사그라들었다.

“……죄송합니다.”

시선을 바닥으로 던진 내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냈다. 머리 위로 강유한의 한숨이 느껴졌다. 착잡하다는 듯 가라앉은 얼굴이 나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한성에 근무하고 나서부터 사고를 몰고 다니던 내가 자꾸 한 장면씩 덧대어졌다. 강유한의 앞에 선 내가 점점 더 작아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가지런히 모은 손으로 손톱을 까딱까딱 마찰하던 내가 죄송하다는 말을 한 번 더 뱉어야 할까 깊게 고민했다.

“뭐, 됐고… 그 환자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

“……환자요?”

그러나 머쓱하게 터져 나오는 말에 손톱끼리 마찰하던 움직임이 멈추었다. 강유한이 말하는 환자가 누구를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싸늘하게 굳어진 얼굴로 고개를 드니 허공을 돌고 있던 시선과 마주쳤다.

“왜, 그… 너랑 소란 피웠던 환자 있잖아. 어쩌다가 마찰이 생긴 건지, 아니면 원래 알고 있던 사이인지. 애들 말로는 후자라던데.”

온몸을 순환하는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어차피 김중현은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고, 나는 그저 지금처럼만 형의 곁에 남아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김중현을 마주치더라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왜 내 가슴이 불로 지진 듯 이렇게 격렬하게 일렁이는 걸까. 뭐가 이렇게 불안한 거지? 누군가에 대한 호기심이 일절 없던 강유한이 왜 지금 이 순간에는 김중현에 대해 궁금해하는 거지? 나는 평소와는 다른 강유한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환자는 왜요?”

의심스럽게 불거지는 감정이 목소리에 여실히 묻어났다. 내 조심스러운 물음에 강유한은 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뭘 왜야. 궁금하니까 묻지.”

“왜 궁금한데요, 그러니까.”

이내 별일 아니라는 듯 등을 돌려 차트를 확인하는 강유한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아침부터 내게 달라붙었던 시선 하나하나가 다시금 선명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시선들의 이유가 정말 김중현과 내가 피웠던 소란 하나뿐이었을까.

“그냥 궁금했다, 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해서.”

차트를 한 장 넘기는 강유한은 더 이상 입을 열 것 같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야. 뭐가 그렇게 대단한데?

왠지 모를 불안감에 입술을 물어뜯던 내가 가슴 주머니에서 펜을 꺼내는 강유한의 행동을 부러 더 집요하게 살폈다.

“아, 왜.”

내 시선을 느낀 강유한의 짜증스러운 어투가 다물려 있던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왔을 때.

“아는 사람이에요. 다툴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까. 그래서 그게 왜 궁금한 건데요? 저는 혹시 무슨 일이 있나, 그냥, 좀… 걱정이 돼서…….”

동시에 내 목소리도 터졌다.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던 강유한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인다.

“어쩐지. 고위급은 아닌 것 같은데 갑자기 VIP로 분류되는 게 이상… 아, 뭐 딱히 불만을 가진 건 아니고. 이 선생님이 특히 신경 쓰는 게 친분이 여간 두터운 게 아닌가 싶었거든.”

“……그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시답지 않은 듯 들려오던 음성이 내게 정정을 하고 이해할 수 없는 말까지 나열하자 눈이 멍청하게 벌어졌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원인이 강유한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몸이 눈에 띄게 경직됐다.

형과 헤어지기 전 내게 잠시 뜸을 들였던 형이 떠올랐다. 사실 형은 내가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던 상황이 낯간지러웠던 게 아니라…….

“의료진이랑 환자가 다투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닌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 선생님이 굳이 달래서 VIP 병동으로 입원시키는 게 좀 신기하잖아. 어차피 너도 곧 듣게 될 것 같아서 하는 말인데 병실도 일반 병실 가격으로 처리된다는 소문이 있거든. 급한 케이스인가 했더니 CT도 깔끔… 아, 씨발.”

“…….”

“VIP CT 본 건 비밀로 해 주라. 어?”

김중현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입술 부근이 잘게 경련하는 게 느껴졌다. 정확히 강유한에게 꽂혔던 시선이 이제는 목표가 불분명한 공간을 떠돌았다.

머릿속이 새하얘진 것 같기도 하고, 노랗게 질린 것 같기도 하고. 말 그대로 패닉 상태가 된 내가 뒤늦게 솟아나는 의문점에 답을 찾기 위해 숨을 가다듬었다.

형은 왜 김중현에게 그런 호의를 베풀었을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중현이다. 거짓도 진실인 양 떠도는 게 소문이었지만 강유한의 말에는 확신과 불신이 공존해 있었다. 강유한도 알다시피 김중현은 병원에서 VIP로 대접할 만한 지위가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병실이야 VIP 병실을 이용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VIP로 분류되었다는 건 병원 내에 김중현의 정보가 귀빈으로 등록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왜. 형은 내게 김중현이 우리 병원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며 치료를 받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까.

두 번째로 들었던 의문은 그래서 김중현의 주치의가 형이 되는가였다.

김중현이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건 타 과 수술 후 회복 도중 심정지가 왔기 때문이었을까. 아니, 강유한이 김중현의 CT를 본 것도, 김중현과 관련된 병원 대처에 대해 알고 있는 것도 모두 우연이 아니다.

김중현은 개두술을 받았다. 하필 NS의 VIP 병동은 형의 담당이었다. 게다가 형은 뇌를 전문으로 다뤘다. 그러니 김중현의 주치의 역시 형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형은 내게 김중현의 수술을 집도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었을까.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김중현은 생각한 것처럼 위독한 상태가 아니었는가였다.

로비에서 김중현을 마주쳤을 때를 떠올렸다. 분명 세월을 받아들인 모습이 그를 더 노쇠해 보이게 만들었지만 비단 그게 병 때문만은 아니었다. 김중현이 정말 위독한 상태였다면 눈에 띌 정도로 피골이 상접해 있어야 했다. 신체는 질병을 숨길 수 없으니까.

여전히 분노를 표하는 데에 있어 거리낌이 없어 보였던 모습. 그리고 강유한이 내게 실수로 떠벌린 김중현의 CT 해석. 형은, 내게 김중현의 상태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까.

문득 속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하기 힘든 것투성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입을 다물고 있는 나를 강유한이 불렀다. 그러나 나는 강유한의 부름에 어울리는 답을 할 수 없었다.

“보여 주세요.”

“어?”

“김중현 CT, 저도 보여 주세요. 아니면 VIP CT 함부로 본 거, 다 말할 거예요.”

그런 나를 떨떠름하게 바라보던 강유한이 곤란하다는 듯 뒷머리를 긁어 대는 것이, 내 협박에 못 이겨 결국 나를 의국으로 이끄는 것이. 모두 느릿하게 전환됐다.

“너 그 환자랑 사이 안 좋지.”

강유한이 사실을 뒤늦게 물었을 때도 나는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성가시다는 듯 일그러진 얼굴이 욕을 씹는다.

“너, 입단속 단단히 해. 어디서 이상한 말 새어 나오면 진짜 가만 안 둬.”

의국에는 강유한과 나 둘밖에 없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메일로 전송되었던 CT 자료를 화면 가득 채운 강유한이 나를 돌아보았다.

뇌종양이었다.

천막1) 상부에 위치한 것으로 봐선 수막종2)일 확률이 높았다.

종양의 크기도 그리 크지 않아 일상생활을 하는 데 큰 지장이 없었을 게 분명할 텐데도 제때 발견이 되었다. 우연히 지나가다 이 CT 필름을 봤더라면 운 좋은 환자라며 고개를 끄덕였을 정도로, 김중현은 알맞은 때에 병원을 찾아왔다.

CT 자료에 박았던 눈을 들어 강유한을 쳐다보았다. 강유한은 꺼림칙한 얼굴로 어깨를 한 번 으쓱였다.

“너도 공범이야, 이제.”

함께 CT를 확인했으니 나 역시 공범이라던 강유한은 그러니 제발 입 다물고 있으란 제스처를 취했다.

“……언제예요.”

“뭐가?”

“저 새끼 수술 언제냐고!”

“뭐? 야, 야! 너 왜 그러는데? 뭐 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조잡하게 우그러진 얼굴이 다급하게 의국 안을 살폈다. 중앙에 배치된 책상 위를 마구잡이로 뒤졌다.

확인해야 했다. 정말 형이 김중현의 수술을 집도했다는 사실을 찾아야 했고, 김중현의 수술 날짜도 알아내야 했다.

누구의 자리인지 구분할 수도 없을 만큼 난잡하게 늘어진 서류 위를 파헤쳤다. 정신없이 스케줄러를 찾아 헤매던 손이 책꽂이에 꽂힌 다이어리를 하나 빼 들었다. 얼결에 찾은 스케줄러를 펼쳐 스케줄을 확인해도 김중현의 수술은 없었다.

“야, 이한음!”

“잠시만요. 잠시만…….”

곧바로 자리를 옆으로 옮겨 다른 사람의 다이어리를 찾았다. 만일 이 의국이 아니라면 다른 팀 의국도 찾아가야 했다. 과연 들여보내 줄지도 의문인 곳을 찾아 뒤지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그러니까 제발 나와라……. 책상 위에 대충 펼쳐진 다이어리를 들어 스케줄을 확인하던 나는 순간 멎어 들어가는 숨을 느꼈다.

「4월 15일, 9:30am, 제2 수술실, VIP 807호 김중현, Tentorial meningioma(천막 수막종)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CT 속 깔끔하게 자리 잡은 종양도 말이 되질 않았고, 그 수술을 집도할 형도 말이 되질 않았다.

그럴 리가 없었다. 김중현은 분명 수술이 잘되지 않아 뇌사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CT 속 종양은 수술을 잘 숙지하고 있는 4년 차 레지던트조차도 부담 없이 집도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무나 붙잡고 묻고 싶었다. 혹시 과거가 뒤바뀐 거냐고. 내가 멋대로 과거를 들쑤셔 놔서 김중현의 운명이 바뀌게 된 거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김중현은 왜 뇌사 상태에 빠졌던 거고, 왜 죽은 건데?

“왜 남의 책상을 뒤지고 지랄이야. 여기 변 선생님 자리라고! 이리 내.”

내 손에 들린 스케줄러를 가로챈 강유한이 변미현의 자리를 내가 뒤지기 전의 상태로 정리했다.

“내가 너한테 또 쓸데없는 소리 하나 봐라. 이거 들키면 선배한테 개죽음당하는 거 알지, 너?”

“그럴 리가 없는데…….”

“뭐가 그럴 리 없다고… 야! 너 또 어디 가!”

강유한의 외침에도 도망치듯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과거가 변하지 않았고, 형이 김중현의 집도를 맡게 되었더라면 김중현은 애초에 죽을 일이 없었다. 형이 고의로 의료 사고를 내지 않고서야.

그러나 그건 내 망상에 불과했다. 그럴 리가 없었으니까. 형이 김중현의 얼굴을 알고 있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러니 김중현의 병명이 바뀌었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속을 쥐어짜듯 위장에서 계속 욕지기가 치밀었다. 텅 비어 있는 속이 감당이 되지 않아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 왔다.

부산스러운 병동을 지나쳐 형을 찾아 발을 내뻗쳤다. 말이 되지 않는 일이라고 여기며 그 안에 김중현의 운명이 뒤바뀌었다는 현실을 부정했다.

승강기를 기다릴 여유가 없어 비상구 계단을 밟으면서도, 가쁜 숨이 차올라 더는 앞으로 내디딜 수 없다는 나약한 의지를 보여도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눈물이 계속 앞을 가렸다. 눈가에 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눈물을 꾸역꾸역 참았다. 기어코 형의 연구실이 위치한 층에 다다른 몸이 서둘러 비상구의 문고리를 잡았다.

“어디서 본 것 같다 했더니 그게 이제야 생각났지 뭐야. 자네, 나 기억 안 나나? 그, 왜, 10년 전이었나. 자네가 나 찾아와서 그 망할 놈 뒤치다꺼리하게 도와줬잖나!”

“그랬던가요.”

비스듬하게 열린 문틈에서 새어 들어오는 목소리는 내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의 것이었다. 목이 턱 막혀 와 숨쉬기가 곤란했다. 그대로 굳어 버린 몸이었지만 이상하게 귀는 두 사람의 목소리를 숨소리 하나 빼놓지 않고 전부 담아 버렸다.

“그래! 자네 설마 그 되바라진 놈이랑 여태 알고 지냈던 겐가? 자네 같은 알파가 그놈이랑 각인을 했을 리는 없고,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형이 김중현을 알고 있었을 리가 없다고 믿고 있었는데.

형은 김중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굴었지만 거짓말이었다. 형은 기억력이 좋았다. 만일, 정말 만일 김중현을 한 번이라도 봤더라면 잊고 있었을 리가 없었다.

“괜찮네, 괜찮아. 뻣뻣하게 굴지 않아도 돼. 하긴, 그놈이 페로몬 하나는 끝내줬지. 그게 몇 년 전 일인데도 아직 그놈만 한 페로몬을 맡아 본 적이 없다니까? 그거 아나? 그놈 그거, 발현도 내가 시킨 거야. 베타면서 또래들보다 머리가 남다르게 좋길래 혹시나 했는데 그게 진짜일 줄 내가 알았겠어?”

김중현이 토해 내는 폭소마저 거북했다. 문득 벽을 짚고 있던 오른손이 잘게 떨려 옴을 느꼈다. 쉬어지지 않던 폐부를 데우듯 거세게 일어나는 감각이 분노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순간 잊을 만하면 악몽으로 찾아왔던 그날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전과 달리 김중현에게서 묵직하게 느껴졌던 페로몬. 발열과 함께 꽁꽁 싸매고 있던 질긴 막을 찢고 터지듯 새어 나가던 내 페로몬.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그 감각들을 나는 이제 알고 있지 않은가. 내가 그날 갑작스럽게 발현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의 말처럼 더 늦을 뻔했던 내 발현을 김중현이 앞당겼으리라.

언뜻 풍겨 오는 형의 페로몬 속에는 김중현의 페로몬이 뒤섞여 있었다. 내 주위를 감싼 페로몬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그러셨군요.”

그때, 무겁게 깔린 음성에서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온몸이 갈가리 찢기는 기분이었다. 비열하게 낄낄 웃으며 농을 건네듯 형에게 말을 거는 김중현도, 그런 김중현에게 웃으며 반응하는 형도.

마치 누군가 나를 태풍의 눈 속에 던져 놓은 것 같았다. 사정거리권 밖으로 한 발자국만 잘못 떼도 칼날 같은 바람에 사지가 찢길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그 속에는 내가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다.

“그래서 그놈 맛은 어떻던가?”

“김중현 씨.”

“그래, 그래. 괜찮으니 한번 말해 보게.”

“지금은 제가 다른 스케줄이 있어서. 뒷얘기는 이다음에 하도록 하죠.”

“그래, 그럽시다. 자네 참 볼수록 괜찮은 사람이네, 그려.”

힘주어 쥐었던 문고리가 불시에 내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미세하게 열렸던 틈이 달칵, 그리 크지 않은 소리를 남기고 닫혔다.

도저히 혼자서 지탱할 수 없었던 몸을 벽에 기댔다. 그러나 이 역시도 내게 큰 도움이 되진 않았다. 벽면을 타고 미끄러진 몸은 여전히 하잘것없이 떨렸다. 투둑, 뺨을 가르고 떨어진 눈물방울이 소라색의 바지를 적셨다.

천에 스며든 물기가 점차 범위를 넓혔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울분을 제대로 토해 낼 수가 없었다. 아래로 곤두박질친 심장은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큰 고동을 만들어 냈지만 나는 이대로 심장을 쥐어짜 터트리고 싶었다.

들이마신 만큼 뱉어지지 못하는 숨이 갈수록 가슴께를 압박했다. 소리쳐 울고 싶었으나 벌어진 입술 사이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뻗어 나가지 못했다.

이대로 몸이 터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래로 깊이 있게 떨궈진 얼굴은 벌써 눈물로 범벅이 되었다.

웅크린 몸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 없이 울던 순간 반대쪽에서 힘을 받아 열리는 문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페로몬이 차단되었던 가림막을 뚫고 들어와 나를 감쌌다.

“이한음.”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나를 보채도 몸은 요지부동이었다. 내 몸이 더는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차마 들리지 않는 머리 위를 커다란 손이 덮었다. 아아, 그제야 속에서만 휘몰아치고 있던 소리가 짓이기듯 터져 나왔다.

“고개 들어.”

내 앞에 자리를 잡고 앉은 형에게서는 다정한 기운이 담긴 페로몬이 넘실거렸다. 비로소 들어 올려진 고개가 형의 시선을 죄다 담아냈다.

형과 눈이 마주친 순간 떠올랐다. 형의 눈매와 똑 닮은 병원장이 나를 피할 정도로 싫어했다는 것.

형이 죽고 난 뒤 나는 한성대학병원으로 이직하길 희망했다. 그런 나를 거부한 것은 병원장이었고, 내가 찾아가 설득하려 해도 병원장은 나를 만나 주지 않았다. 우연히 납골당에서 마주친 날에는 내게 치를 떨기도 했다.

그랬던 병원장이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이 지경에 봉착하고 나자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김중현을.”

“…….”

“전부터 알고 있었어?”

만일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도 김중현이 이 병원을 찾았더라면, 김중현이 환자로 찾아온 것을 형이 알게 되었더라면, 그래서 김중현의 주치의가 되고자 했더라면, 그때도 김중현의 CT 검사 결과가 동일했더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중현이 뇌사 판정을 받았던 거라면, 김중현의 수술 후 형이 소말리아로 도피하듯 떠나게 되었더라면, 병원장이 나를 싫어하기 시작했던 게 이쯤부터라면.

“형이… 형이 어떻게 알고 있어?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그간 이해가 가지 않았던 모든 것들이 짝을 이룬 듯 하나둘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억지로 끼워 맞추려 했던 퍼즐이, 맞지 않았던 모서리가 차츰 닳고 닳으며 본래의 형태를 띠었다.

의료 사고에 휘말린 형에게 고의성이 드러난다면 의사 면허를 박탈당하고, 형을 집행받을 테니까. 병원장은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으리라.

일이 벌어지기 전에는 형을 한국 밖으로 보내지 않으리라 다짐했어도 정말 그런 상황이 오게 되면 외국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형은 나를 사랑했다. 내게 향한 형의 감정이 거짓이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제일 잘 알았다.

그런 형이 김중현의 비위를 맞추려 웃어넘겼던 그 상황을 마주하고 나니 한낱 망상에 불과하던 가설에 모든 오감이 들러붙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형이 어떻게 일부러 의료 사고를 내겠냐고. 솟아올랐던 희끄무레한 부정은 형의 목소리에 한순간에 쓸려 내려갔다.

“정말 너를 안 찾았을 것 같아?”

한숨과 함께 쏟아지는 낮은 목소리에서는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형에게는 특별한 감정적 동요가 없었다. 나와는 달리, 아주 침착하고, 냉철하다.

“네가 갑자기 사라지고 나면 제일 곤란해질 사람이 누구일 것 같은데.”

“…….”

“헛짓거리 못 할 상황에 떨어트려 놓고, 찾으려 들지 않아도 문제가 일어나지 않게 빠져나갈 구멍만 만들어 줬어. 다시는 마주칠 일 없을 줄 알아서 굳이 말할 필요성을 못 느꼈고.”

형이 손이 다정스레 내 뺨을 감쌌다. 엄지가 어루만지는 듯 조심스러운 손길로 눈물을 닦아 냈다.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아니지?”

결국 형이 의료 봉사를 떠난 것도.

“그냥 다 내 망상이잖아.”

폭탄 테러로 인해 죽음을 맞은 것도.

“나쁜 마음 먹고 있는 거, 아니잖아. 그렇지?”

그게 모두 내 탓이었을 줄이야. 형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형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나는 점점 목이 조여드는 기분이었다.

“왜 대답이 없어. 아니잖아…….”

괴로움을 가득 적신 목소리가 하잘것없이 떨리고 파리한 안면이 절망으로 일그러진다. 힘없이 늘어져 있던 손이 형이 걸친 가운의 넥 칼라를 쥐었다. 형이 제발 내 말에 부정해 주길 바랐다.

“아니잖아, 그런 거……. 형이, 형이 왜…….”

위태하게 흐드러지는 채근 속에서도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는 형을 보며, 나는 더 깊이 통탄했다. 판판하게 다려져 있는 가운이 볼품없이 구겨졌다. 더 견디지 못하고 앞으로 기우는 머리를 형의 어깨에 기댔다.

뺨에 오래도록 머물었던 손이 다시금 뒷머리를 둘러쌌다. 머리칼 사이사이에 얽힌 손가락이 내 울음을 달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괜찮아.”

도대체 뭐가 괜찮은 걸까.

“넌 그냥 하던 대로 해. 너한테 피해 갈 일 없을 테니까.”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 걸까. 굳어 버린 머리가 충격에 휩싸여 그 어떤 사고도 원만히 풀어내지 못했다.

“……말도 안 되잖아. 어떻게 고작 나 하나 때문에……”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한 거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어떻게 고작 나 하나 때문에 형이 공들여 쌓아 온 탑을 그렇게 쉽게 쓰러트리냐고.

오랜 시간 끝에 탄탄해진 형의 프라이드와 의사로서의 신념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무너트리냐고.

“고작이라고?”

“…….”

“네가 어떻게 고작이야.”

그러나 형은 끝끝내 내 편에 서서 손을 들어 주지 않았다. 힘겹게 들린 고개가 형의 눈을 코앞에서 담았다. 형의 목소리에 먹힌 말을 속을 게우듯 토해 내고 싶었다.

“너도 다 들었잖아.”

“…….”

“저 새끼가 너한테 무슨 마음을 먹었었는지, 그걸 얼마나 자랑스레 떠벌리고 다니는지.”

들끓고 있는 분노가 형의 눈동자에 노골적으로 서렸다. 김중현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당시 형이 차오르는 화를 어떤 마음으로 억눌렀을지, 그 마음을 전부 알고 나니 차라리 지금이 꿈이었으면 했다.

“10년을 참았어. 10년이면 잊힐 법한 그 얼굴, 그 이름이 아직도 내 머릿속엔 선명하게 남아 있어. 왠지 알아?”

“…….”

“잊을 만하면 네 입에서 그 이름이 나왔으니까. 그게 내가 매일 아침 네 얼굴을 확인해야 했던 이유였으니까.”

왜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바보같이 눈물만 흘리고 있어야 할까. 울분으로 쉴 새 없이 파도치던 마음이 불시에 얼어붙었다.

성년이 채 되기 전에는 매일같이 김중현의 꿈을 꿨다. 내가 검정고시와 수능을 치르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을 때, 나는 이미 김중현에게서 벗어난 상태인 줄 알았다. 유년기 때부터 형과 함께 지낸 것처럼 착각할 정도로 생활이 안정적이라서.

“시간이 약일 거라고,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다 보면 자연스레 잊게 될 거라고. 긴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달라질 줄 알았는데. 그래, 내가 잘못 판단했지. 10년이 지나도 네 트라우마는 사그라들 생각이 없고, 김중현은 그 일에 대해 조금의 용서도 구할 생각이 없어.”

그러나 내 무의식은 언제나 김중현에게 쩔쩔매고 있었던 것일까. 그래서 형이 그걸 알아차렸던 것일까. 내가 스스로 빠져나오길 바라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 그 긴 시간 동안 형은 내 아픔을 모른 체했던 것일까.

“어디에 처박혀 있는지도 모른 채 죽은 듯이 살았으면 잠자코 둘 생각이었어. 김중현이 네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형…….”

“제 발로 나타나서 이렇게 헤집어 놓은 건 그 새끼야.”

누구에게도 받지 못해 결핍되었던 애정,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던 불행한 학창 시절, 스스로도 돌아보지 않아 방치되었던 흉.

그 조합은 누가 보아도 최악이었다. 그런 내가 결국 형을 죽음까지 몰고 갔다는 건, 더 최악이었다.

“그러니까 괜히 말릴 생각 하지 마.”

왜 나는 바보같이 형의 눈에 불거진 원망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는지.

비로소 원흉을 깨달은 나는 어느새 두 갈래의 길에 서 있었다. 어느 하나 바뀌지 않은 미래를 돌이키는 일과 어떻게든 과거를 바꾸어 형을 되살리는 일.

그러면 어떻게? 어떻게 해야 과거를 바꿀 수 있는데? 옆으로 돌아누운 몸이 이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 헤맸다. 손이 건조한 입술을 쥐어뜯었다.

어떻게 해야 형을 살릴 수 있지. 한가득 배어 있던 분노를, 결단코 말리지 말라며 매몰찬 반응을 보였던 형의 고집을 도대체 어떻게 꺾을 수 있지.

생각해. 생각해, 이한음. 형을 살릴 수 있는 방법. 형의 노기를 풀 수 있는 방법. 그게 뭐든 간에 어떻게든 생각해 내.

지끈 아파 오는 머리에 감았던 눈을 번쩍 떴다. 어둠이 내려앉은 숙직실에는 그 흔한 달빛 하나 들지 않았다. 그날따라 잠잠한 새벽 호출 대신 울리는 누군가의 코골이에 정신이 번쩍 뜨였다.

방법이 아주 없진 않았다. 그 방법이라면 형은 의도적으로 의료 사고를 낼 필요도 없었고, 더 나아가 죽음을 맞을 일도 없었다. 그래, 그 방법이 있었어.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구석에 비치된 서랍을 뒤졌다. 손에 들어차는 나무 케이스 속에서 꺼내 든 메스의 날은 어느 한 군데 닳은 곳이 없었다. 인턴 생활의 시작을 기리기 위해 선물 받았을 누군가의 메스를 쥐고 서둘러 숙직실을 빠져나왔다.

메스를 쥔 손이 의도를 깨우치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다. 괜찮았다. 어차피 형의 운명을 뒤집어써도 좋다고 누누이 나를 세뇌시켜 왔으니까.

김중현은 분명 죽어야 마땅했다. 그래, 형의 말이 맞았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을 나누고 있다는 사실은 늘 나를 절망에 빠트렸다. 김중현이 만들어 냈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긴 시간을 홀로 얼마나 사투해 왔는지, 나는 전부 기억한다.

그러니까 그 분노를 내가 먼저 터트리면 뒷일은 더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김중현의 운명을 형이 아닌 내가 바로잡으면. 그래, 괜찮아. 어차피 나는 여기서 더 실추될 명예도 없으니까 괜찮아.

겁을 뒤집어쓴 눈망울에 또다시 차오르려는 눈물을 억지로 끊어 냈다. 김중현이 잠들어 있을 장소로 향하는 걸음은 후들거렸지만 나는 계속해서 나를 속였다. 겁나지 않는다고, 그 10년을 다시 되돌릴 바에야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한 명쯤은 앉아 불이 꺼진 병동을 지켜야 했을 의료진도 오늘만큼은 없었다. 모두 깊은 잠에 빠진 듯 어느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이 시각의 병동은 무서울 만큼 고요했다. 두려움에 휩싸인 호흡이 짧게 끊어졌다.

찬찬히 열리는 승강기에 몸을 태우고, 눈앞에 들어차는 VIP 병동에 카드 명찰을 가져다 대는 동안에도. 나는 수십 번도 넘게 주저앉을 뻔한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내 몸이 기어코 807호 앞에 멈춰 섰을 때. 나는 제대로 내쉬어지지 않던 호흡을 강제로 뱉어 냈다. 떨리는 손이 문고리를 잡자 병실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몸이 삽시간에 돌려세워졌다. 챙, 우악스러운 힘의 반동을 이기지 못한 손이 쥐고 있던 메스를 놓쳤다.

“형……!”

“입 다물어.”

긴장을 흠씬 집어삼켰던 정신이 형을 보고 나니 주변의 상황을 올곧게 담았다. 형에게서 흘러나오던 페로몬이 꽤 오랜 시간 이곳에 머물러 있었다는 걸. 나는 왜 몰랐을까.

형은 바닥에서 잘게 진동하는 메스를 주운 뒤 내 팔을 거칠게 이끌었다.

흉포하게 잡힌 손목이 아파 잇새로 신음이 터졌다. 가지런한 형의 뒷머리에 향했던 시선이 뒤로 흘렀다.

이러면 안 되는데. 형에게 잡혀 끌려가는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중현을 내 손으로 죽이지 못했다는 찰나의 미련 뒤에 따라붙는 감정이 안심이었다는 것도 모르고.

대충 아무렇게나 빈 공간으로 날 떠민 형은 신경질적으로 메스를 집어 던졌다. 챙! 바닥에 메다꽂힌 메스는 아까보다 날카로운 소음을 만들어 내며 진동했다.

“너 미쳤어?!”

평정심을 잃은 형이 내게 소리쳤다. 흠칫 떨린 어깨가 순식간에 붙잡혔다.

“거기 들어가서 무슨 짓 하려고 했어!”

놀란 마음이 그제야 내게 끼친 공포를 인지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은 나는 덜덜 떨리는 몸을 느끼며 형을 올려다보았다.

빈 공간은 불을 켜지 않아 어두웠지만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이 형을 비췄다.

“형, 내가…….”

얼빠진 얼굴이 말을 전부 뱉어 내지도 못하고 우그러졌다. 기다렸다는 듯 후드득 떨어지는 눈물 때문에 내 얼굴은 마를 날이 없었다. 서럽게 터진 눈물은 떨리는 손으로 닦고 또 닦아도 좀처럼 그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울지 마.”

“…….”

“달래 주기 싫으니까 울지 말라고.”

형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몸을 낮추고 내게 손을 뻗었다. 붉게 오른 눈가를 살피고, 자신이 세게 쥐었던 팔목을 다시 한번 살피고.

어둡게 내려앉은 공간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아 답답했던 모양인지 자리에서 일어나 스위치를 켰다.

탁, 환하게 켜진 공간 속에 우뚝 서 있던 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한음.”

“……무서웠어.”

탁하게 토해진 음성은 눈물에 잠겨 있었다. 겨우 진정한 몸과는 반대로 보잘것없이 떨리기도 했다.

“그러니까 왜…….”

“형을 또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너무 무서웠어.”

내 앞에 우두커니 서 있던 형은 이어지는 내 말에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 이유가 아마 내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또’라는 단어 때문이리라. 나는 숨을 깊게 들이켰다.

“10년을 홀로 버텼단 말이야…….”

“…….”

“9년 동안 매일같이 꿈을 꿨어. 형의 부고를 받은 날이 계속 내 꿈에 찾아와.”

자연스레 되새겨지는 그날은 여전히 아팠다. 형이 내 앞에 멀쩡히 서 있어도, 그리웠던 형의 페로몬이 내게 쏟아져 내려도. 여전히 형은 내게 꿈만 같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형이 나직한 목소리를 토했다.

“믿기지 않겠지만, 형한테는 현재인 지금이 나한테는 과거야.”

“…….”

“원래는 이렇게 말해 주려던 게 아니었는데. 상황이 해결되면, 그때 더 가벼운 마음으로 말해 주고 싶었는데.”

정말 이런 식으로 밝히려던 것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 이야기를 꺼낼 때는 더 희망적이고 밝은 분위기여야 했다. 그때는 시원하게 훌훌 털어 버리며 다시는 형을 놓지 않겠다고 형에게 다짐하려 했다.

“형은 4월 16일에 한국을 떠나.”

“…….”

“무슨 소린지 알아? 김중현의 수술이 끝나면 내쫓기듯 출국한다고.”

허탈한 웃음이 좁은 공간을 채웠다. 알고 있다. 형이라고 그 일을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형한테도 살인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두려울지 정도는, 겪어 보니까 뼈저리게 알 수 있었다. 김중현의 죽음을 그렇게 바라고 있었으면서도 막상 때가 되니 그게 얼마나 살 떨리게 무서웠는지.

“그 일이 벌어지면 형은 더 이상 한국에 발붙이고 살 수 없다고.”

형의 희생을 앞세우면서까지 원하진 않는다. 김중현의 운명이 바뀐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건 진작 깨우쳤다. 김중현의 CT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했을 때, 형과 김중현의 대화를 들었을 때.

괴로움에 혹사당한 정신은 어느새 체념이라는 감정을 들이밀었다.

“다른 나라에서 잘 살고 있었으면 또 몰라. 하필 가도 소말리아에 가서 내전으로 부상당한 사람들을 돕다가…….”

나는 말을 잇는 대신 입술을 꾹 깨물었다.

“…….”

“…….”

“결국 돌아오지 못하게 돼.”

죽는 날까지도 형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할 게 뻔했다. 시야는 진작 흐릿했고, 목소리의 끝은 점점 희미해졌다. 내가 뱉어 놓고도 그 말이 나를 갉아먹는 기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건 형이 아니라 겨우 뼛가루 조금이었다고.”

멀찍이 서서 형의 유골함을 넋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그때가 몸서리치게 싫었다. 수많은 사각 리스 속에 형이 함께 섞여 있는 걸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진 하나 놓이지 않은 그곳에 정말 형이 있다는 게 거짓말 같았으니까.

“막고 싶었어. 과거로 되돌아와서 제일 먼저 들었던 생각이 그거였어. 그러려면 어떻게든 못 가게 말려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형을 찾을 수밖에 없었어.”

신음처럼 쏟아져 내리는 말에 점점 무게가 실렸다. 그게 나를 무겁게 짓누르는 듯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푹 수그렸다.

“4월 16일은 다가오는데, 아무도 형이 출국할 거라는 사실을 몰라. 그래서 하루하루 흘러가는 게 고역이었는데, 이제는 알잖아.”

“…….”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내가 그 상황이 되풀이되는 걸 가만히 지켜보고 있어.”

그래서 내가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로 인해 불거진 원한이라면 내가 처리하는 게 맞다고. 살인자로 살아가더라도 형을 살렸으니 된 거라고. 과거로 돌아온 보람이 있었다고.

그러나 모두 끝나 버렸다. 이 말로써도 형을 설득할 수가 없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될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마지막 패를 펼친 나는 앞선 두려움을 견뎌 낼 수가 없었다. 형을 보고 싶었지만 볼 수가 없다.

고개를 들면 그때와 마찬가지로 형의 유골함이 놓여 있을까 봐. 형의 납골당에서 허무맹랑한 꿈을 꾸고 있었던 걸까 봐.

“이한음.”

“…….”

“한음아.”

그러나 형은 이 모든 게 허황된 상상이 아니라는 듯 나직하게 내 이름을 불렀다. 무거운 짐을 이고 있는 듯 깊게 떨궈져 있던 고개가 조금씩 위로 향했다.

어느새 코앞까지 끼친 짙은 페로몬이 날 덮쳤다. 내 머리를 끌어안은 형은 형이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듯 속에 쌓여 있는 페로몬을 전부 끄집어냈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뒷머리를 쓸어내리는 손길이 퍽 조심스러웠다.

“다른 방법을 찾더라도 허튼짓은 안 할 테니까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

그 말에 나는 목 놓아 울어 버렸다. 나를 감싸 안은 품이 너무 안락해서, 내게 내리쬐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달아서.

안심이 됐다. 깊은 수렁에 빠져 옴짝달싹도 못 했던 내게 향한 팔이 너무 단단해서. 아아, 나의 사랑, 나의 하나뿐인 구원자여.

눈을 떴을 때는 전등을 켜지 않아도 실내가 환해졌을 때였다. 눈이 얼마나 부은 건지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일에도 기운을 쏟아야 했다.

새하얀 천장과 머리맡에서 쏟아져 내리는 수증기. 내가 누워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굳이 둘러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병실은 10년을 집처럼 넘나들었던 곳이니까.

정신을 차리고 상체를 일으키니 현기증이 일었다. 머리를 감쌌던 손등에 꽂힌 링거 바늘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바늘과 이어진 수액 봉지가 생리 식염수인 걸 봐선 탈수가 온 모양이다.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링거대를 쥔 손이 지나치게 창백했다. 드르륵, 링거대에 달린 바퀴가 잇따라 굴러가는 소리가 울렸다. 일반 VIP 병실보다 넓은 공간을 훑던 내가 미닫이문으로 손을 뻗었다.

“어디 가.”

그러나 힘을 줘 밀기도 전에 문이 제멋대로 열렸다. 문틈을 몸으로 막은 형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일해야 되는데.”

“그 꼴로?”

발을 뻗을 틈도 없건만 굳이 한 발 더 앞으로 내디딘 형을 피해 내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손을 뒤로 뻗어 미닫이문을 닫은 형에겐 물병이 들려 있었다.

“그냥 누워서 쉬어. 김중현 퇴원할 때까지는 너 찾는 사람 없을 테니까. 대신 여름휴가는 반납해야 돼.”

순간 심장에 저릿한 통증이 끼쳤다. 형의 입으로 퇴원이라는 소리가 나오니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간밤에 한바탕 쏟아 내 탈수를 일으켰던 눈물이 또다시 앞을 가릴 것 같아 눈을 꾹 감았다.

“집도의는 못 바꿨어. 김중현이 워낙 완강하게 나와서.”

“…….”

“수술 들어가기 전에 해결 볼 거야. 네 앞은 물론이고 한성 근처엔 얼씬도 못 하도록.”

곧바로 터진 목소리에 눈이 도로 뜨였지만 말이다. 베드 근처로 가 가지고 왔던 물을 물컵에 따른 형이 그걸 내게 내밀었다.

“정말, 정말 김중현이 내 앞에 안 나타날까?”

“김중현 지장이 찍힌 서류가 있어.”

“……서류?”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장이 찍혔다는 서류는 뭐고, 그 소리가 왜 지금 이 시점에 흘러나오는지. 불신을 한가득 집어삼켰던 목소리가 현재 내가 느끼고 있는 심정을 대변했다.

“말했잖아, 10년 전에 네 일로 도움 준 적 있었다고. 위법 증거들도 몇 개 가지고 있어서 제멋대로 굴진 않을 거야.”

“뒷조사를 했었어?”

“뒤탈 생기면 곤란하니까 혹시 몰라서. 최근 것도 찾으려면 찾을 수 있으니까 그런 쪽으론 걱정 안 해도 돼.”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형은 나를 그 지옥 속에서 온전히 꺼내기 위해 모든 경우의 수를 염두에 두고 있었구나.

그간 아무 생각 없이 안락을 누렸던 내가 부끄러웠다. 그 노력 속에는 분명 내가 스스로 김중현을 털어 버리리라는 기대가 있었을 텐데, 나는 형의 기대치를 조금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응.”

수긍의 목소리가 건조하게 메마른 입 안을 가르고 뒤늦게 터졌다. 고개까지 힘겹게 끄덕이자 형은 몸소 내 앞으로 와 내 손에 물컵을 쥐여 주었다.

“그리고.”

내가 잡고 있던 링거대를 직접 끌어 침대 근처로 이끌었던 형은 얼마 남지 않은 생리 식염수 양을 확인하며 입을 열었다.

“몸 괜찮아지면 내일 중으로 김주영 교수님 찾아가 봐. 바로 진료 볼 수 있게 미리 말해 뒀어.”

붉게 충혈되기라도 한 듯 시려 오던 눈가가 무슨 소리냐는 듯 벌어졌다. 내 의문점을 감지한 형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NP(Neuropsychiatry, 신경 정신과) 교수야.”

“……신경 정신과?”

“필요한 것 같아서. 진작 연결해 줬어야 했는데.”

“…….”

“미안.”

미안하다는 형의 말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울기에는 눈물이 더 나오지 않았고, 웃기에는 썩 즐겁지가 않았다. 당혹스러웠던 표정이 지금은 어떤 감정을 담고 있을까.

“혼자 가기 무서우면 같이 가고. 한성인 게 부담스러우면 다른 병원으로 잡아 줄게.”

“…….”

“내일 5시에 잡아 둘 테니까 옷 갈아입고 여기서 기다려.”

왼쪽 손을 들어 손목시계를 확인하던 형은 내 침묵이 긍정의 의미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멍하니 눈만 깜박이던 내가 형의 손을 잡았다.

“……혼자 갈게.”

무슨 의미로 정신과 교수를 연결해 주겠다는 것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긴 시간을 허덕이고도 김중현에게 벗어나지 못했던 내 정신 건강을 염려한 거겠지.

사실 자신은 없었다. 내 치부와도 다름이 없었던 지난날들을 타인에게 설명하는 것도, 입 밖으로 지난날을 꺼내며 두려워했던 나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약해 빠진 나를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낱낱이 까발리는 것도.

설령 간다고 해도 과연 입이 떨어질까. 내가 정말 그 일에 대해 전부 설명할 수 있을까. 울음이 입을 막아 시간이 흐르는 만큼 눈물을 쏟아 내진 않을까.

내 트라우마를 온전히 고치기 위해서는 나 스스로가 그 트라우마와 직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무서웠다. 너무 성급한 걸음이 될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올라간 속도를 이겨 내지 못하고 내 발에 내가 걸려 넘어지고 말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대신 여기서는 말고.”

그러나 나는 이번에도 그 일을 기피할 수 없었다. 그게 형에게 내보이는 내 첫걸음이었다. 내가 스스로 정신과에 가더라도 최대한 마주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했다. 내가 작정하고 피한다면 나를 볼 수 없을 그런 사람.

***

한성보다 초라한 건물 외관. 정말 오랜만에 와 보는 연동이었다. 이곳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던 것이 엊그제였던 것 같으면서도 낯설었다. 괜스레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근무하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었고, 딱히 정을 붙인 사람이 없었음에도 어쩐지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한성에서의 생활이 고된 탓인지, 연동에서의 생활에 적응이 된 덕인지 가늠할 수는 없었다. 그저 이곳에 서 있는 내가 익숙하면서도 낯설 뿐이었다.

3층 복도를 가로지르면 두 개의 건물을 잇는 구름다리가 나왔고, 그 길을 따라 밟다 보면 내가 일했던 NS 병동이 있었다. 내가 주로 회진을 돌았던 오메가 병동과 내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는 얼굴을 한 의료진들.

나는 그 속에서 내 10년의 세월을 찾았다. 의지할 곳이 없어 홀로 버텨야 했던 내 10년의 흔적을 곧이곧대로 찾을 수는 없었지만 빳빳한 가운을 걸친 채 병동을 뛰어다니는 수련의들을 보면 그때의 나를 얼핏 떠올릴 수 있었다.

의료 행위에 미숙했던 나는 곧 10년의 세월 속에서 적응하고 무뎌지며 내 지위에 프라이드를 가졌던 이한음으로 성장했다.

아니, 이 상황을 정말 성장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분명 겉으로 보았을 때는 성장한 것이 맞았지만 미숙했던 나와 노련해진 나는 정신적으로 변한 것이 없었다.

열등감을 끌어안고 살았고, 그 열등감을 감싼 것은 후회였다. 결국 본질적으로 그 둘은 다를 바가 없었다. 알맹이를 까고 나면 어리숙했던 내가 있었으니까.

달라진 거라곤 사그라든 의욕과 메말라 죽어 가는 뿌리였다. 미숙했든 노련했든 나는 형을 떠났던 그 시점에 머물러 있었다.

병동을 뛰어다니며 홀로 사투했던 나와 여유로운 걸음으로 회진을 돌고 수술방에 드나들었던 나는 나의 잔상조차도 이한음이라는 울타리에 끌어들일 수가 없었다.

그 시절에 내 구원자와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나에게 불리한 일이라면 무조건 부정하고 보던 내 오랜 습관 때문인지. 나는 어느 쪽의 무게가 더 무거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또 한 번 그 시절의 나를 회피하기 위해 걸음을 밖으로 돌렸다. 벌써부터 고갈된 체력은 나를 내가 아니게끔 만들었다. 건물 밖에 외롭게 비치된 벤치에 앉은 내가 습관처럼 고개를 뒤로 살짝 기울인 채 눈을 감았다.

내가 기면증 진단을 받았던 장소와 동일했던 지금의 진료실. 내 주치를 맡은 박미영은 10년 후 내게 기면증이라는 진단을 내렸던 정신과 교수였다. 같은 장소와 같은 사람. 모든 것이 일치했지만 그중 내가 알지 못했던 것도 섞여 있었다.

나 자신을 방치하기 급급했던 내게 냉혹한 태도를 일관했던 박미영은 나를 동료 의사가 아닌 환자로 봤다. 잔잔한 웃음으로 나를 맞는 박미영을 보자 할 말을 잃은 듯 한동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때의 나는 내 주치의조차 한심함을 느끼게 할 만큼 나를 돌보지 않았다는 것이 실감 났다. 의사라는 직업이 무색할 정도로 나를 방치하고 내게 인색했던 나는 아무것도 몰라 자신의 병을 키울 수밖에 없었던 환자들보다 못한 처지였다. 나는 그걸 알고 있었음에도 나를 버려뒀던 거니까.

지금의 박미영에게 나는 알면서도 스스로를 내버려 둔 의사 이한음이 아닌 어쩔 수 없이 스스로를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환자 이한음이었다.

내게 냉정했던 박미영은 환자 이한음에게는 한없이 인자했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포장하고 또 포장했던 내 이야기들 속에서 박미영은 내 취약성을 집요하게 골라냈다.

박미영의 진단 결과는 단순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우울증. 내가 내 상태를 자각하지 못했으니 우울증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나도, 박미영도 알지 못했다.

다만 그 상태가 오랜 기간 지속되어 왔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트라우마로 인한 스트레스와 높은 우울도는 나를 쉽게 무력하게 만들기도 했고, 쉽게 흥분하게 만들기도 했다.

형의 집에서 악몽을 꿨던 날 머릿속에서 지워지듯 생각이 나질 않던 지문이 불현듯 떠올랐다. 지속되는 악몽의 원인을 담은 문단의 말머리에는 극심한 스트레스 뒤에 우울증이라는 단어가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어쩌면 생각이 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내 상황을 부정하던 습관이 남아 그 단어를 기억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이따금씩 무기력해지던 나와 당장 숨이 멎을 것처럼 내 정신을 압박했던 것들이 점점 더 선명해졌다.

그저 숨기기 바빴고, 회피하기 급급했던 나였다. 나는 그런 나를 조금 더 조목조목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언뜻 스쳐 지나갔던 사소한 감정 하나하나까지 기억하고 되새겨야 했다.

그때의 나를 부정하지 않는 것은 내가 처음으로 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것들을 나의 치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그때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 내 변화에 조금 더 예민해지는 것.

감았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말간 하늘을 가득 메우는 구름이 두꺼워 본래 하늘의 형태를 가렸다.

툭.

그때 뺨 위로 떨어지는 물방울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떴다. 중력을 올곧이 느끼며 내게 낙하하는 물방울이 내 마음의 일부와 함께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하나둘 떨어지던 빗방울의 빗줄기가 점점 더 가늘어졌다.

더 씻겨 내려가라. 내 마음의 무게가 조금이라도 더 덜어질 수 있게.

굵지 않았던 빗줄기 덕에 물에 빠진 생쥐 꼴은 면할 수 있었다. 젖은 머리를 대충 털며 병실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사복을 적신 빗물이 찝찝해 당장 샤워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내 병실 앞에 서서 작은 몸으로 기웃거리고 있는 인영에 나는 빠르게 뻗어지던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유정이?”

내 음성에 급하게 고개를 틀어 나를 쳐다보던 유정이가 목소리를 키우며 내게 다가왔다.

“선생님!”

방사선 치료를 주기적으로 받을 텐데도 다리를 저는 모양새가 통 나아지지 않고 있는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걱정스러움으로 인해 가라앉은 얼굴이 몸을 낮추고 어느새 내 앞까지 도달한 유정이와 눈을 맞추었다. 안색은 하얗게 세 있고, 걸음이 유독 부자연스럽다.

“선생님 아파요……?”

내 얼굴을 보자 반갑다는 듯 환해지던 얼굴은 어디 가고 금세 또 입꼬리가 바닥을 향해 기울어졌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보고 싶었는데 재겸이 선생님이 선생님 아프다고 하셔서…….”

커다란 눈에 그렁그렁 매달린 물기를 보던 내가 입술 끝을 무겁게 끌어 올렸다. 미안하게 번진 얼굴은 내 상황을 변호하기보다 유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많이 기다렸어?”

“엄청 많이 기다렸어요. 제가 선생님이랑 재겸이 선생님 억지로 화해시키려고 해서 화난 줄 알았어요.”

“그런 거 아니야. 선생님이 그동안 좀 바빴어. 미안해.”

김중현이 나타난 이후로 유정이를 신경 쓸 새가 없었다. 소원해진 이유에 자신을 끼워 넣으며 이토록 마음을 졸이고 있을 줄은 몰랐다.

씁쓸한 웃음에 유정이는 입술을 꾹 다물고 글썽이던 눈물을 애써 참았다. 유정이의 마음이 상세하게 느껴져 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 편히 울지도 못하고 서운했던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유정이를 달래던 내가 유정이의 손을 잡고 병실로 그를 이끌었다. 문지방을 나란히 넘은 두 개의 그림자는 서로를 보며 잔잔하게 웃었다.

“치료는 잘 받고 있어?”

“아까도 받았어요. 그런데 받을 때마다 자꾸 다리가 부어서…….”

“다리가 부어?”

침대에 걸터앉아 자신의 다리를 통통 두드리는 유정이를 보던 내가 유정이 앞에 움츠리고 앉아 하의 밑단을 걷어 올렸다. 사지가 부어오르는 현상은 방사선 치료 후 생길 수 있는 후유증 중 하나였다. 림프액이 정상적으로 순환되지 않아 생긴 림프 부종이다.

림프 부종에 대한 치료도 받고 있는 듯 유정이의 다리에는 탄력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그래서 걸음이 부자연스러웠구나.

유정이의 옆에 앉아 유정이의 다리를 돌려 무릎 위에 올려 둔 내가 손으로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리 힘을 싣지 않았어도 통증이 오는지 유정이의 얼굴이 한층 일그러져 있었다.

“다리 붓는 거 말고 더 불편한 곳은 없어?”

“음… 가끔 속이 너무 안 좋아서 약도 먹어요.”

아무래도 방사선 치료는 어린 유정이에게 너무 독한 치료였던 모양이다. 치료로 인해 몸에 이상 증세가 오면 마음도 불안해지고 심리적으로 지칠 텐데.

“그런 거 빼면 다 괜찮아요.”

그러면서 환하게 웃는 유정이가 나는 너무나도 아팠다. 힘들 텐데도 별다른 내색을 않는 유정이가 너무나도 안쓰러웠다.

“정말 괜찮은데.”

나를 보며 민망한 듯 뒷덜미를 긁던 유정이가 머쓱하게 웃었다. 그런 유정이에게 애써 웃어 보이며 다리를 마저 주물렀다.

“아, 저 꿈이 생겼어요, 선생님.”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어 나가는 유정이에게 다시 시선을 고정시켰다.

“무슨 꿈?”

“저도 선생님처럼, 재겸이 선생님처럼 멋진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옅게 지었던 웃음이 오묘하게 굳었다. 정을 내비친 누군가와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는 말을 들으니 알 것 같았다. 유정이는 여러모로 나와 비슷하다는 걸. 나는 어색하게 제자리를 찾아가던 입꼬리를 다시 천천히 끌어 올렸다.

“……선생님은 멋진 의사 선생님이 아닌데.”

“무슨 소리예요. 선생님 되게 멋있어요. 저도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

나는 유정이의 말에 기분 좋게 웃을 수가 없었다. 내 알맹이를 까 보고 나면 유정이도 실망할 텐데. 나는 유정이가 생각하는 것처럼 멋진 사람도, 훌륭한 사람도 아닌데.

나를 괴롭히는 지독한 트라우마에, 이기적이었던 더러운 감정 덩어리들, 결국 감정에 쓸려 버린 내 나약한 마음까지. 어느 것 하나 유정이가 내게 본받을 것이 없었다. 전부 닮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뿐이었다.

“원래 제 꿈은 엄마 아빠가 싸우지 않는 거였거든요.”

“…….”

“엄마가 아프지 않고, 행복해지는 거.”

목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나를 닮은 것 같다고 느꼈던 감정을 사방으로 무산시켰다. 유정이는 나와 달랐다. 적어도 유정이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았다. 항상 누군가를 원망하고 탓을 돌렸던 나와는 달리 유정이는 사람을 미워하는 방법을 모르는 아이 같았다.

“그런데 그건 꿈이 아니래요. 그런 꿈 말고 제가 하고 싶은 걸 고민해 보라길래 고민해 봤는데 선생님이 떠올랐어요.”

항상 먼 미래를 보는 사람들과는 달리 유정이는 당장 처한 상황에 대한 돌파구가 필요했으리라. 그래서 유정이에게 꿈은 자신의 미래를 위한 일이 아닌 엄마를 위하는 일이 되었던 것이다.

“저는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요.”

“…….”

“저 같은 아이들한테 용기도 주고, 위로도 해 주고, 도움도 주면서. 그런 훌륭한 어른이 되고 싶어요.”

묻고 싶었다. 너에게 나는 어떤 사람이길래 어떻게 그런 순간에 나를 떠올릴 수 있었냐고.

“사실… 의사 선생님은 저랑 다른 사람들만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선생님도 저처럼 아팠다고 했잖아요. 저도 선생님처럼 멋진 의사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요?”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타인을 위하지 않았던 지난날들은 내 주위에 두껍고 높은 벽을 만들었다. 그 벽을 허물고 먼저 손을 뻗으면 이런 감정을 매 순간 느낄 수 있을까.

내가 형을 보며 의사의 꿈을 키웠던 것처럼 누군가도 나를 보며 의사의 꿈을 키우겠다는 지금 이 상황은, 납득할 수 없으면서도 내게 큰 동요를 일으켰다.

“저도 얼른 커서 의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엄마 아픈 것도 낫게 해 주고 싶고… 저도 그럴 수 있을까요?”

나를 올려다보는 눈동자가 지나치게 투명하다. 조마조마한 듯 동공을 일렁이며 내 대답을 재촉하는 유정이를 가만히 바라보던 나는 유정이가 원하는 대답 대신 물음을 던졌다.

“……엄마가 밉지 않아?”

더 훌륭한 부모 밑에서 자랐더라면 네 상황은 지금보다 더 나았을 텐데. 방사선 치료를 받으며 후유증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게 아니라 여느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놀 수 있는 그런 평범한 일상이 이어졌을 텐데. 너를 위한 꿈을 꾸고, 너를 위한 내일을 기다리며 아픔 없이 자랄 수 있었을 텐데.

“모르겠어요.”

말갛던 유정이의 얼굴이 천천히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울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는 유정이가 누구를 떠올리고 있는지 너무나도 선명하게 나타냈다.

“그냥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우리 엄마…….”

암만 성숙한 아이라 한들 유정이는 아이였다. 그저 유정이가 처한 상황이 그를 다른 아이들에 비해 조숙하게 만들었을 뿐, 유정이는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눈물을 뚝뚝 떨구고야 마는 유정이를 보던 내가 손을 뻗어 아이를 가슴에 안았다.

나 역시 얼굴도 모르는 부모를 찾으며 울었던 적이 있었으니까. 나를 버렸다는 것에 대한 원망보다 지금이라도 찾아와 준다면 그들을 보자마자 용서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은 적이 있었으니까.

그때 나에게 필요했던 건 아마 온기였던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타인을 위로해 본 적이 없던 내가 나도 모르게 유정이를 안아 주었을 리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유정아.”

도대체 뭐가 괜찮다는 것인지, 나는 내가 말하고도 이해가 가지 않을 위로를 건넸다. 유정이는 어쩌면 이번 재판이 끝나고 나서는 엄마의 그림자조차도 마주하지 못할 수 있었다.

유정이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말을 찾지 못한 나는 유정이에게 괜찮다는 말만 수없이 속삭였다. 그저 내 온기를 나누어 주며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 잊지 않을 수 있도록.

내 걱정과는 다르게 유정이는 훌륭한 어른이 될 것 같았다. 나처럼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벽을 쌓지 않으며, 스스로를 구렁텅이에 빠트리지 않는 그런 건강한 사람이 되리란 것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울다 지쳐 잠이 든 유정이의 머리를 가만히 쓸어 만지던 내가 문을 두드리는 기척에 고개를 틀었다. 병실 문을 두 번 두드리던 인기척은 굳게 닫힌 미닫이문을 여는 것에 한동안 주저하는 듯싶더니 곧 모습을 드러냈다.

“…….”

문지방을 채 넘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서 있는 건 김재겸이었다. 눈이 마주치자 유정이와 나란히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김재겸의 시선이 내 얼굴에서 유정이로, 유정이에서 내 얼굴로 옮겨졌다.

“혹시 유정이가 여기에 왔나 해서…….”

김재겸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끝을 흐렸다. 나는 눈짓으로 유정이가 자고 있는 것을 확인한 후 병실 밖으로 나와 문을 닫았다.

“유정이가 자고 있어서 이따가 깨면 보내려고 했어요.”

내 말에 김재겸이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잠깐 동안 이어진 침묵에는 어색한 기류가 맴돌았다. 나는 괜스레 등 뒤로 잡히는 문고리만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몸은 좀 괜찮아요?”

“다리가 많이 부어 있더라고요.”

발끝을 더듬던 시선이 김재겸의 눈동자로 향했다.

“이 선생님 몸 괜찮냐고 물은 거였어요.”

“아…….”

김재겸은 내 대답이 석연치 않았는지 질문의 요점을 다시 되짚었다. 바보 같은 대답이었다. 김재겸은 유정이의 주치의였으니 나보다 유정이의 상태를 더 잘 파악하고 있었을 텐데.

“많이 아팠잖아요.”

멍청하게 벌어진 입술을 일자로 다물었다. 나는 애써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걱정해 주는 이에게 옅은 웃음을 보였다.

상담 후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고, 이를 살피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는 지금은 전처럼 무자비하게 날을 세우지 않았다. 한 걸음씩 나아가면 되니까. 그러면 나도 평범한 일상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

“네, 괜찮아요.”

“다행이네요.”

내 개운한 대답에 김재겸은 마음이 놓이는 듯 짧게 웃었다. 김재겸과 이토록 잔잔한 대화를 나누었던 게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헤아릴 수 없었다. 분명 몇 주 지나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도 아주 먼 옛날을 기억하는 듯 희미했다.

“유정이가…….”

다시 찾아온 정적에 문고리만 힘주어 쓸어 만지던 내가 먼저 입을 뗐다. 김재겸은 뜸을 들이는 나를 재촉하지 않고 하나의 문장을 완성시킬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유정이가 많이 울었어요.”

유정이가 눈물을 보이는 걸 처음 봤다. 물론 내가 보지 않는 곳에서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을 테지만 나는 그 눈물을 잊을 수가 없었다. 유정이를 달래던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 마음은 천 근을 넘어선 무게가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엄마가 보고 싶나 봐요.”

나는 내가 김중현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처럼 유정이도 자신의 친모를 용서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유정이의 세상에는 용서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방법이 없을까요?”

미워하고 원망하질 않으니 용서라는 단어를 마음에 새기고 있을 리 없었다. 유정이에게는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것이 더 나은 처사일까, 아니면 함께 있는 것이 더 나은 처사일까.

“그게… 지금 접근 금지 가처분받은 상태예요. 유정이 친모도 학대에 일조한 데다가 아직도 잘못을 뉘우치지 않아서 아마 풀리긴 힘들 거예요.”

어려웠다. 유정이를 위해서는 아이를 학대했던 부모와 떨어트려 놓는 것이 당연지사였지만 유정이는 자신을 낳고 기른 친모를 그리워한다.

김재겸의 말은 나를 한층 더 답답하게 만들었다.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김중현과 유정이의 친모.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의 피해자는 여전히 그를 원망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의 피해자는 여전히 그를 그리워한다는 것이었다.

“재판이 끝나면 유정이는 어떻게 되나요.”

“…….”

당장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유정이를 위해 내가 그의 미래를 빌어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유정이의 부모가 접근 금지 처분을 받고 나면, 유정이는 그 뒤로 어떻게 되는 걸까. 유정이가 병원에서 지낸 그 몇 주 동안 유정이를 찾아온 일가친척은 없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유정이는 후에 누구와 함께 지내게 될까. 혈연으로 이어진 누군가가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유정이를 반길까. 유정이를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는데 정말 그럴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재판과 수술이 모두 끝나고 나면 유정이는 더 이상 병원에서 지낼 수 없었으니까.

“재판이 끝나고 이식도 잘 마쳐서 퇴원하면, 유정이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나는 유정이의 그 후가 염려되었다.

“유정이한테 친인척이 있는 게 아니라 아무래도 시설에 맡…….”

“시설은 안 돼요.”

어른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아이가 가야 할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기에. 사실 내가 싫다고 해서 유정이가 시설에 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장담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 불가능에 가까웠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좋았다. 시도라도 할 수 있다면 그거면 됐다. 금방 끊어져 버릴 동아줄이어도 나는 여러 번 시도해 볼 것이다.

“선생님도 들어서 아시죠, 저 고아원 출신인 거.”

“…….”

“저도 유정이랑 다를 바 없어요. 선생님이 생각하셨던 그냥 못 지나치는 이유가 그거 때문이에요. 나도 학대받고 자라서.”

나는 내 치부라고 여겼던 순간을 김재겸에게 오픈했다. 박미영에게도 꺼내기 힘들었던 일들이 썩어 버린 동아줄을 잡고 있는 순간에는 아무렇지 않게 튀어나왔다.

“그래서 저는 시설 못 믿어요.”

내가 그 일로 인해 현재까지 나약한 상태라는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눈에 힘을 주었다. 눈이 점차 시려 왔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던 김재겸이 혀로 자신의 입술을 축였다.

“유정이가 그곳에 가서도 같은 고통을 받을까 봐 걱정되시는 거죠.”

나는 김재겸이 나와 같은 걱정을 하고 있길 바랐다. 유정이가 조금 더 나은 상황 속에서 일상을 보낼 수 있길.

“이 선생님 걱정할 일 없게 제가 잘 알고 있는 센터에 연락해 볼게요. 봉사 활동으로 자주 방문하기도 했었고, 센터장님이랑도 아는 사이라 아마 유정이한테 해가 될 일은 없을 거예요.”

“…….”

“정 걱정되면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확인해 봐도 좋아요. 만약 유정이한테 해가 되는 곳이라면 제가 나서서 도울 테니까.”

내가 알고 있는 시설은 하나였다. 우리를 가축만도 못한 취급을 했던 곳. 내가 자랐던 곳. 나는 부디 유정이가 더 깊은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걱정하지 말라는 김재겸의 말에 나는 마음을 놓아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하는가, 고민했다. 걱정을 놓지 못하고 있는 내게 김재겸은 괜찮다는 듯 입꼬리를 더 끌어 올렸다.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유정이를 안아 든 김재겸은 내게 쉬라는 말을 남기곤 홀연히 사라졌다. 적적해진 병실 침대 위에 앉아 있던 내가 창문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 비는 꽤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아…….”

순간 병원으로 돌아온 후 샤워하는 일을 까먹고 있었단 사실을 깨달았다. 빳빳하게 말라 있는 머리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풀기를 반복하던 내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다시 열리기 시작한 문에 시선을 박았다. 형의 페로몬이 끼쳤다.

“다녀왔어?”

형은 방금 수술을 마치고 온 모양인지 수술복 차림이었다. 손에 들린 수술모와 마스크를 보던 내가 고개를 들어 형과 눈을 마주쳤다.

“응.”

짧게 끝난 대답에 내 곁으로 다가온 형이 내 머리 위로 손을 얹었다.

“잘했어.”

형의 말에 촉촉해지는 눈가를 손등으로 비볐다. 형은 나에게 내가 어떤 진단을 받았는지 묻지 않았다. 형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겠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Depression(우울증)이래.”

나는 형을 따라 굳게 다물고 있던 입을 천천히 열었다. 형이 굳이 묻지 않았음에도 입술을 뗀 까닭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나의 상태를 마주하기가 두려워 회피했다면 지금은 달랐다. 나에 대해 설명하는 일에 주저했던 전과는 달리 내 병명과 직면한 나는 나에 대해 설명하는 걸 머뭇거리지 않았다.

“아, 이렇게 말하고 나니까 나 진짜 문제 많은 사람 같다.”

나를 내비치는 것이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다. 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나를 받아들이는 일이 뭐가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는지. 씁쓸하게 웃는 나에게 형은 위로를 하는 대신 머리를 느릿하게 쓰다듬을 뿐이었다.

“PTSD는 그럴 줄 알아서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Depression도 Diagnosis(진단)받을 때는 좀, 놀랐어.”

“…….”

“……나 금방 괜찮아지겠지?”

한 번 터진 입은 내 속내를 늘어놓는 일로 마무리를 지었다.

“천천히 해.”

그런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형은 나의 조급함을 가라앉혔다. 마음에 쌓였던 아픔을 오랜 세월 동안 방치해 두었으니 쉽게 괜찮아지지 않으리란 건 알고 있었다.

나는 형이 금방 괜찮아질 것이란 입에 발린 위로보다 내 성급함을 잠재워 준 것이 고마웠다. 염치가 없는 걸 알면서도 나는 형이 내가 아픔을 이겨 나가는 과정을 함께 지켜봐 주었으면 했다.

형에게 기다려 달라는 말을 함으로써 확답을 받지 않아도 어쩐지 형이 길어질지도 모르는 그 세월을 함께해 줄 것이란 예감이 들었다. 그만큼 나를 바라보는 형의 시선이 따스했다. 나는 작게 웃으며 그 시선을 올곧게 받아 냈다.

그날, 나는 잃어버린 후로 펼쳐 볼 수 없었던 노트를 형에게 넘겨주었다. 무영은 이를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라 생각했고, 서재원은 한낱 저주밖에 되지 않는 일이라 여겼으며, 형은 그저 나의 악몽이라 가벼이 넘기려 했던 일.

형은 잉크가 말라 버린 종잇장을 넘기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 노트는 내가 과거로 되돌아왔다는 일을 온전히 뒷받침해 주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증거가 그 노트와 나였으므로.

***

휴식은 내게 참 낯선 단어다. 일에 치이다 잠깐씩 가졌던 휴식 말고, 그래, 휴가라는 말이 더 나으려나. 눈을 뜨고 있는데도 해야 할 일이 없다는 건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였다.

연동에서 일하던 당시에는 하루도 제대로 쉰 날이 없었다. 억제제를 먹어 히트 사이클을 강제로 미루기까지 했으니 딱히 쉬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주어진 오프조차도 다른 사람에게 넘기기 일쑤였다.

연고도 없던 연동에서 때에 맞게 교수직을 달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믿었던 과장에게 외면당하고 라인을 잘못 타 교수 임용이 미루어진 이들의 수는 손가락으로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교수 자리는 한정적이었고, 그 자리를 목표로 둔 의사는 많다.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형이 원했던 그 자리에 있고 싶었고, 그래야만 이 길고 긴 싸움이 끝날 것만 같았다. 승리를 거머쥔다고 해서 갈증이 사라지진 않는다는 걸 그때는 몰랐으니까.

그래서 무작정 일만 했다. 실력을 갈고닦아 다른 병원에 빼앗길까 애태울 만한 의사가 되는 게 목표였다. 내가 원하는 자리를 병원 측에서 먼저 제안할 수 있는 그런 의사.

같은 기수에 입사한 동기들은 나를 독한 놈이라 칭했고, 외로운 싸움의 승자는 결국 나였다. 반은 성공이었다. 연동에서 먼저 날 교수로 임용하겠다 제안했었고, 그들은 내게 전적으로 의지했으니까.

그러나 그 자리가 불합리한 족쇄와도 같았다는 걸 나는 뒤늦게 알았다. 병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책임질 각오가 되었으나 그들은 그들의 일원과 다름없다던 나를 책임져 주지 않았다. 수술실에서 졸도한 순간 나를 다른 나라로 떠넘기다시피 내친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때는 하루하루를 어떻게 보냈더라. 종일 술을 마시던 것 외에는 생각나는 게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취해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안정감을 느껴야만 했었다.

그러면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형은 내게 김중현이 퇴원할 때까지 쉬라고 했지만, 나는 쉬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어떤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야 하는지, 그 어떤 방법은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공부를 해야 할까. 아니면 연구를 해야 할까. 미리 논문을 준비해 두는 게 나을까. 내 머릿속엔 온통 의학과 관련된 일뿐이었다.

결국 답답함을 이기지 못한 몸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병동 안을 정신없이 뛰어다녀야만 속이 편안해질 것 같았다.

그러나 옷을 갈아입으려던 나는 예고도 없이 열리는 문에 단추를 푸르다 말고 뒤를 돌았다. 탁, 문지방을 넘어선 몸이 병실 문을 닫고 내게 다가왔다. 들고 있던 쇼핑백을 침대 위에 올려 둔 형이 두어 개쯤 풀어진 단추를 마저 끌렀다.

“내가 올 줄은 어떻게 알고 벗고 있어.”

형은 어쩐 일로 사복 차림이었다. 머리도 예쁘게 손질되어 있었고, 품이 넉넉한 면 티 위로 대충 걸친 카디건은 형의 분위기를 한층 가볍게 만들었다. 형의 캐주얼 웨어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내가 넋을 놓고 있는 사이 앞섶이 전부 풀어 헤쳐졌다. 가만히 서서 형의 얼굴을 멀거니 보고 있던 순간 유두를 스치는 손마디에 몸을 흠칫 떨었다.

“정신 안 차리면 이다음은 네 좆이야.”

무신경하게 터진 목소리가 침대에 놓인 쇼핑백을 들어 올렸다. 그 안에 든 옷을 꺼내 내게 내미는 손짓에 엉겁결에 두툼한 니트를 받아 든 내가 환자복을 벗었다.

“갑자기 옷은 왜?”

“데이트하러 가자고.”

니트 안에 얼굴을 집어넣은 채로 입이 꾹 다물렸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뭘 해야 할지 몰랐는데, 형은 그런 내 상태를 알아채기라도 한 것처럼 나타나서 내 비어 있는 일정표를 채웠다.

달랐다. 반강제로 취해진 휴식은 같았지만 그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은 형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가 석연했다. 이렇게 나는 형의 존재에 대한 절실함을 다시 한번 곱씹었다.

서둘러 소매에 팔을 끼워 넣고 바지까지 갈아입은 내가 형의 옆에 나란히 섰다. 예전처럼 형의 차 안에 자연스럽게 탑승하고, 벨트를 매는 순간에도 가볍지 않았던 마음은 바퀴를 부드럽게 굴리는 차가 병원에서 멀어질수록 차츰 트이는 듯한 기분을 맛봤다.

“가고 싶은 곳 있어?”

특별히 정해 둔 목적지는 없었는지 핸들을 돌리던 형이 내게 물었다. 그에 조수석에 앉아 있던 내가 음, 입 속으로 작은 소리를 냈다.

“우리 처음 만났던 거리 기억나?”

“기억나.”

“거기 가고 싶어.”

형이 죽고 나서 퇴근길에 몇 번 들렀던 기억이 있었다. 그사이의 텀이 생각보다 길어서 갈 때마다 변해 있는 거리에 늘 어색함을 느꼈다.

이번에는 어떨까. 그곳으로 향하던 발걸음은 늘 무거웠지만 오늘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분명 형이었다.

“여기 형이랑 꼭 다시 오고 싶었어.”

형의 손을 맞잡은 채 형을 질질 끌다시피 내디뎠던 걸음을 멈추었다. 마침내 내가 다다른 곳은 내가 발현하던 날 쓰러졌던 장소였다. 그게 분명 이 가게 앞이었던 것 같은데.

“와서 뭐 하고 싶었는데.”

“구경? 이때도 되게 많이 변해 있었네.”

2018년도의 이 거리는 빌딩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그때는 몰랐으나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처럼 낮은 건물이 아니라 올려다보기에 목이 아플 정도로 높게 지어진 빌딩들이 거리의 위신을 높였다. 오히려 10년 전보다 10년 후인 그때와 더 비슷했을 정도로.

“가끔 여기 와서 그날 생각했었는데.”

가만히 서 풍경을 감상하기엔 건물과 차를 빼곤 볼 게 하나도 없던 거리였다. 이 거리에 서서 형과의 첫 만남을 그리며 혼자 남아 버린 나를 얼마나 저주했던가.

꼭 다시 오고 싶었다. 혼자가 아니라 형과 함께. 앞으로는 10년의 세월이 흐르더라도 혼자가 아닌 형과 함께 이 거리를 지나게 될까.

순간 잡혔던 손에 힘이 풀리는 듯한 느낌이 들어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마치 생경한 장소에서 꼭 붙들고 있던 엄마의 손을 놓친 아이처럼, 불안이 끼친 마음에 뒤를 돌면 같은 자리에서 어슴푸레 나부끼는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는 형이 있었다.

시야 안에 형이 들어찼다는 이유 하나로 안정이 찾아온 마음이 씁쓸한 웃음을 담았다.

“재미없지. 예쁘다 할 만한 곳도 아닌데.”

“예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따라붙은 음성이었다.

“혼자 지나갈 땐 몰랐는데 이제 보니 예쁘네.”

입꼬리를 끌어 올려 시원스럽게 웃는 얼굴이 놓았던 내 손을 다시 잡아 들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내 손을 쥐고 날 잡아끄는 형의 뒷모습에 울컥 눈물이 복받칠 것 같았다.

아랫입술을 깨물어 눈물을 꾸역꾸역 삼켜 내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지어진 환한 웃음이 만면에 가득 퍼져 있었다.

누군가에게 자랑하듯 나열하기엔 아주 싱거운 하루였다. 그러나 마주 앉아 밥을 뜨고,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의 이 순간은. 훗날의 내가 간절히 꿈꿨던 염원 속의 한 장면이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형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박제원 교수에게서 온 호출을 받으며 함께 돌아가자는 듯 날 돌아보는 얼굴을 보니 아쉬운 마음도 금시에 떠나갔다.

먼저 올라가겠다는 형을 보내고 병원 건물 앞 벤치에 앉아 노랗게 저물어 가는 노을을 눈에 담았다. 간만에 갖는 여유로움이었다. 그날이 지난 것도 아닌데.

표면적인 여유로움은 내가 눈꺼풀을 내리감으면서 사라졌지만, 얼굴이 울 것처럼 일그러지진 않았다. 체력은 일상으로 돌아가도 무방할 정도로 회복이 됐으니 내일부터는 다시 일어서 볼 작정이었다.

가냘프게 꺾였던 의지가 왜 그 거리에 다녀오고 나서부터는 불붙듯 샘솟았는지. 내 앞에서 웃는 형을 보며 이제는 마냥 형에게 의지할 수만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내가 스스로 딛고 일어나야 했다. 더 이상 형의 도움이 아닌 나의 힘으로. 사건의 진위는 파악했고, 형의 마음마저 돌려세웠으니 나는 이제 형의 기대치를 충족시켜 주어야 했다. 그건 형이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한층 더 단단해진 얼굴이 감았던 눈을 서서히 떴다. 마음속에서 일어난 깊은 다짐을 굳히고자 숨을 깊게 들이쉰 순간, 나는 목전에 선 실루엣을 보며 숨을 멈추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곽윤이 환자의 보호자였다. 상주 머리핀을 머리에 꽂은 보호자는 많이 야윈 얼굴로 힘겹게 웃었다. 놀라 벌어진 눈이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보호자가 애써 웃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 역시 보호자를 웃으며 반겨야 할까.

웃지도, 그렇다고 울지도 않은 채 모호한 얼굴을 한 내 앞에 보호자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역광을 받아 잘 보이지 않던 얼굴이 이제야 조금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 저…….”

“박시연이에요. 이제 환자 보호자도 아니니까 외우실 필요는 없지만요.”

보호자, 아니, 박시연은 내게 그렇게 말하는 순간까지도 옅게 웃었다. 눈가는 발갛게 부어올랐으면서.

“장례는, 무사히 잘 치르셨나요.”

“네. 발인 끝내고 집 정리하다가 주머니에서 이걸 발견해서요.”

박시연이 내게 내민 건 일전에 내가 건네주었던 손수건이었다. 뻣뻣한 움직임으로 손수건을 받아 들자 박시연은 내게 고개를 한번 깊게 숙였다.

“손수건 돌려 드릴 겸 마지막으로 감사 인사 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어요.”

“박시연 씨, 저는…….”

“사실 그날 새벽까지만 해도 너무 원망스러웠어요. 엄마도, 의사 선생님들도. 그렇잖아요, 건강해지려고 왔는데 의사 선생님조차도 깨어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하면… 그냥, 한 번 더 심정지 오면 그대로 포기할 거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

“그런데, 선생님이 필사적으로… 필사적으로 CPR 하시는 거 보고 알았어요. 아, 어쩔 수 없는 일이었구나. 엄마가 깨어났으면 하는 건 나뿐이 아니었구나. 저렇게 노력하시는데도 우리 엄마가 못 일어나는 거였구나. 이젠… 보내 줘야 하는 거구나…….”

치미는 감정을 억눌러 참고 있었던 듯 박시연의 목소리가 힘없이 떨렸다. 얄팍한 나뭇가지처럼 삐뚤빼뚤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처연해 보였다.

내가 정말 박시연의 감사 인사를 받아도 되는 걸까. 나는 곽윤이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외면하고 돌아섰다가, 정말 마지막 순간에 끊어질 듯 아롱아롱 피어났던 지푸라기를 잡기 위해 발악했을 뿐이었다. 내가 곽윤이를 위해 행한 일은 그게 다였다.

“선생님 덕분에 보내 줄 수 있었어요, 우리 엄마.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아직도 선생님들 원망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동안 우리 엄마를 위해 무슨 노력을 했었는지도 전부 잊어버리고, 우리 엄마 못 살렸다고… 무능한 병원이라고…….”

“…….”

“그래도 다시는 이곳 오기 싫더라구요……. 앞으로는 이쪽으로 걸음 안 할 거예요.”

“…….”

“그러니까 선생님, 잘 지내세요.”

이게… 이게 무슨 마음일까. 남이 받아야 하는 인사를 중간에 가로챈 기분이었다. 나는 멍하니 내게서 돌아서는 박시연을 응시했다.

고개를 숙였다가 추켜들어 하늘을 바라보다가, 다시 숙였다가. 눈물을 참기 위해 애쓰는 박시연을 보며 손에 들린 손수건을 세게 쥐었다. 말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인사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박시연 씨.”

억지로 토해 내듯 끄집어낸 목소리가 앞으로 나아가는 박시연을 붙잡았다.

“우리… 다시는 보지 말아요.”

나는 끝끝내 그 말을 털어놓는 대신 박시연의 안녕을 기원했다. 병원에 찾아올 일이 없을 정도로 건강해야 한다고. 당신의 슬픔은 이번이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고.

“네.”

내 말에 돌아선 박시연은 내가 그녀를 본 이래로 가장 환한 웃음을 지었다. 맥없이 떨어지는 눈물은 그녀가 그녀의 감정을 최대한 잠재우고 있다는 것을 알렸다.

박시연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나니 나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나약하고, 모자란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나라면 저렇게 강하게 이겨 내지 못했을 텐데. 누군가에게 책임을 돌리고, 그 누군가를 원망하며 나를 죽였을 텐데. 입가를 타고 쓴웃음이 감돌았다.

평생을 가도 곽윤이와 박시연은 잊지 못할 것 같았다. 뇌에 낙인이 찍힌 것처럼, 비위관을 달고 하루하루를 겨우 버텨 내고 있던 곽윤이와 그의 보호자는 그들이 병원에 있지 않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내 머릿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연동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10년을 환자들과 뒤섞여 살았는데, 단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고 나니, 나의 10년이 헛된 세월이었다는 걸 느꼈다.

어떻게 10년보다 한성에서 지샜던 40일 동안 깨달은 게 더 많을까. 기가 찼다. 어이가 없었고,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허탈하게 뱉어진 웃음이 내 발등 위로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그 웃음을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떨어지는 발을 눈에 담았다.

그렇게 내가 병실로 향하고 있었을 때, 문득 100m가량 너머로 보이는 슬리퍼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손이 뒷덜미를 감싸고 있음에도 체온이 서늘하게 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회색 양말을 덮는 검정 슬리퍼에서부터 천천히 올라가는 시야는 곧 김중현의 얼굴을 담고야 말았다.

내뱉는 듯 마는 듯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숨이 김중현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멎어 버렸다. 나는 척추를 타고 흐르는 소름에 천천히 턱을 치켜들었다.

심장이 거친 움직임으로 횡격막을 두드려 댔다. 뒤를 돌아 그대로 도망가려던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 나라면 그렇게 강하게 이겨 내지 못할 텐데. 박시연의 모습을 보며 푸념처럼 되새겼던 목소리가 내게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겨 낼 수 있어. 그렇게 나 스스로를 세뇌시켰다. 벗어날 수 있어. 나는 더 강해져야 했으니까. 코로 숨을 크게 들이켜며 목울대까지 끼치는 분노를 겨우 잠재웠다.

두려움과 분노. 어쩌면 양방향에 서 있는 그 상반된 감정을 억누르며 굳어 있던 한 발자국을 뗐다.

김중현에게서 떨어져 나간 시선이 자연스러웠을지, 부자연스러웠을지 헤아릴 여유는 없었다. 내 머릿속에 입력된 것은 오직 하나였다.

김중현에게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억지로 숨을 뱉어 냈던 내가 김중현의 옆을 지나는 순간에는 어떤 노력을 해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날 연동을 나오기 전 트라우마에 대한 치료도 받았고, 약도 먹고 있었지만 약효는 단시간에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해내야만 했다. 눈앞에 둔 김중현을 무시하는 일. 격앙되는 감정을 잠재우고 김중현에게서 시선을 돌리는 일.

그대로 김중현을 지나쳐 비상구에 진입한 내가 짧은 순간 틀어막혀 있던 숨을 거칠게 내뱉었다. 철문이 닫힌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 내가 벽을 짚고 걸어가 계단 위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차갑게 식어 버린 손을 내려다보던 눈을 질끈 감고 그 위를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꾹꾹 눌러 댔다. 김중현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친 내가 너무나도 대견했다. 그래, 이렇게 하나씩 노력하면 되는 거야. 그러면 머지않아…….

“이 쌍놈이, 네가 감히 나를 무시해?!”

“윽……!”

격렬하게 박동하는 심장을 달래며 나를 진정시키고 있었을 때, 순간적으로 닥쳐오는 힘에 의해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거칠게 잡힌 머리채가 맥없이 치우쳤다. 어쩔 도리가 없이 가공된 타일에 얼굴이 처박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잇새로 신음을 뱉은 내가 얼굴을 틀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러나 머리채를 쥔 손아귀의 힘이 얼마나 강했는지 나는 타일 바닥에 뺨을 붙인 채 연신 바르작거릴 수밖에 없었다. 내게 이런 폭력을 행사하는 이가 누구인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김중현. 머리 위로 쏟아지는 분노에 찬 음성도, 스멀스멀 흘러나오는 역겨운 페로몬도 모두 김중현의 것이었다.

“이 건방진 새끼가! 보자 보자 하니까 내가 밥으로 보여?!”

“이거… 놔……! 놔!”

“모자란 새끼 의사 되도록 키운 게 누군데! 네가 나 아니었으면 이런 곳에서 일할 수나 있었는 줄 알아?! 넌 나 아니었으면 진작 뒤졌어!”

패닉 상태에 빠져 비상구가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계속해서 머리를 짓누르는 손길은 억셌고, 김중현은 흥분에 빠져 내 뒷머리를 손바닥으로 미친 듯이 내리치기 시작했다.

“……놔. 놓으라고, 미친, 윽… 이거 놔, 이 미친 새끼야…….”

“이 새끼가 아직도……!”

“이보세요! 이게 지금 무슨 짓입니까!”

머리를 휩쓴 고통에 쏟아지려는 눈물을 애써 참던 내 위로 묵직한 무게를 싣던 김중현이 순식간에 나가떨어졌다. 복도까지 울렸던 목소리에 뛰어온 무영이 김중현을 민 탓이었다.

“이, 한음? 음아, 너… 너 왜…….”

짓누르던 김중현의 무게가 사라졌음에도 덜덜 떨리는 몸으로 엎드려 있던 자세를 유지하던 나를 무영이 일으켜 세웠다.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려는 몸을 힘주어 받친 무영은 황당하다는 듯 입술을 여러 번 방긋거렸다.

무영이 밀어 구석으로 밀려났던 김중현이 몸을 일으켜 세워 무영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같은 알파의 형질을 가지고 있더라도 다 늙어 버린 김중현에게 젊은 무영이 당할 리 없었다.

“진짜 미쳤어?! 당신 뭐야! 뭔데 계속…….”

“이봐, 의사 선생! 내 말 좀 들어 봐! 내 말 들어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잖……!”

“닥쳐! 내가 본 게 있는데……! 들어 보고 자시고 내가 저번처럼 가만히 있을 줄 알아?!”

화가 난 얼굴로 김중현을 제압한 무영이 그의 멱을 쥐고 구석으로 몰아붙였다. 무영의 기세에 김중현의 분노는 어느 순간 누그러져 있었다. 높은 언성에 시시각각 변하는 김중현의 표정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김중현과 무영의 대화가 더 이상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세가 꺾인 김중현이 결국 비상구를 빠져나가 도망을 칠 때까지 벽에 기대고 서 있던 나는 나를 돌아보는 무영을 눈에 담자마자 몸을 쓰러트렸다.

“음아! 괜찮아? 저 사람 너한테 왜 저러는 건데? 저번에 그 사람 아니야? 또 무슨 일 있었어?”

무영은 내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며 내 몸을 샅샅이 살폈다. 타일과 맞닿아 있던 얼굴에 뒤늦은 열이 쏠렸다.

화가 났다. 왜 나는 이겨 낼 수 없는 건데……! 왜, 왜 나는 그렇게 다짐하고 다짐했어도 김중현의 앞에만 서면 이렇게 되는 건데……!

온몸이 스스로조차도 심각하다 느껴질 만큼 덜덜 떨렸다. 마치 열일곱의 그때처럼.

지독했다. 정말 지독한 트라우마였다. 분명 얼굴을 마주쳤을 때까지만 해도 몸이 이 정도로 떨리진 않았다. 그러나 김중현이 내게 폭력을 가한 순간, 그렇게나 강해지고 싶었던 나는 어느새 열일곱의 이한음이 되어 있었다.

“아, 이거 멍들 것 같은데. 씨발, 벌써 파랗게 올라오고 있잖아. 다시 가서 그 새끼 죽이고 올까?”

“……아니.”

“씨발, 진짜… 무슨 일인데 왜 말을 안 해 줘.”

내 얼굴을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성을 내는 무영을 나는 가까스로 붙잡았다. 힘겹게 들이쉰 숨이 2초가량의 텀을 두고 체외로 가까스로 빠져나갔다. 걱정스럽게 뭉그러지는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나는 작게 벌어진 입술을 달싹였다.

“……나 어렸을 때 있었던 시설 원장.”

“그런데 그 사람이 왜…….”

놀란 듯 커다래진 눈과 함께 당혹스러움이 무영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를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차갑게 굳어지는 얼굴은 아마 내 과거를 대강 짐작하고 있는 듯 보였다. 김중현이 병원에 찾아오고 나서 벌어진 일들을 무영은 전부 보거나 들었을 테니까.

내가 김중현에게 학대를 받았다는 것. 그때를 잊지 못한 채 아직까지 아득바득 살고 있는 나를.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곧이곧대로 표출해 내며 소란을 일으킨 나를. 그런 나를 상상하며 무영은 싸늘하게 식은 얼굴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일단 장소 좀 옮기자.”

온몸에 힘이 풀려 속수무책으로 이끌리는 나를 무영은 휴게실에 앉혔다. 내 얼굴에 번진 멍 위로 연고를 발라 주는 동안에도 무영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숨이 턱 막혀 오는 침묵이었지만 오늘은 도리어 이런 상황이 더 편했다.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떨렸던 몸은 이제야 겨우 진정하고 있었다. 이제는 숨을 들이켜는 일도, 내뱉는 일도 훨씬 수월해졌다.

연고 뚜껑을 닫고 내 앞에 가만히 앉아 있던 무영이 자신의 목을 매만지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무영의 돌발적인 행동은 아직까지도 무영이 화가 많이 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잠깐만 여기 있어.”

“……어디 가는데.”

우중충하게 깔린 얼굴로 내게 말하는 무영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휴게실을 빠져나가려던 무영을 붙잡아도 무영은 내 손을 떨어트려 놓으며 걸음을 움직였다.

“강무영!”

“음아.”

“…….”

“난 도저히 이해가 안 가.”

그의 뒤로 따라붙는 내 어깨를 잡아 휴게실로 밀어 넣은 무영이 한층 더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그 사람도 알잖아. 그 사달이 나고도 그런 새끼를 아직까지 퇴원시키지 않은 거! 나는, 나는 그게 진짜 이해가 안 가, 음아.”

“무영아, 그건…….”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진료 거부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새끼가 소란까지 피운 마당에! 어떻게든 건수 잡고 퇴원시켜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렇게 감정적으로 굴어서 될 문제가…….”

“왜. 왜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가만히 있는 거냐고!”

목에 핏대가 서도록 악에 받친 열분을 토해 내는 무영은 이미 내 말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무영이 빠른 걸음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응시하던 내가 서둘러 무영의 뒤를 쫓았다.

단편적인 것들만 본 무영이 이 순간의 형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건 너무 감정적이고 성급한 판단이었다.

“강무영!”

내가 아무렴 발을 빠르게 굴린다 한들 보폭이 큰 무영을 금세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무영은 뒤편에서 들려오는 내 목소리도 무시한 채 병원을 이 잡듯 뒤지며 형을 찾았다.

“무영아, 내 말 좀 들어 보라고!”

그리고 도통 좁혀지지 않던 거리가 서서히 좁혀지고 제자리에 우뚝 선 무영의 팔을 붙잡았을 때, 나는 김중현과 이야기 중인 형을 볼 수가 있었다.

“진짜… 진짜 제정신 아니야.”

그 광경을 보고서 무영은 헛웃음을 지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당한 줄 알아?! 이 병원엔 미친 의사들이 왜 이렇게 많아!” 형에게 소리쳐 말하던 김중현이 먼저 우리를 발견했다. 사색이 된 김중현이 우리를 삿대질하며 형의 등 뒤로 숨기 시작했다.

“그래! 저놈이야! 저놈이 내 멱살을 잡았다고!”

그건 나조차도 기가 찬 장면이었다. 당신이 지금 누구 뒤에 숨어? 한없이 일그러진 얼굴이 고개를 틀어 우리를 바라보는 형과 정통으로 마주쳤다. 좁혀진 눈가로 내 상태를 살피던 형이 내게 다가오려던 찰나였다.

“걱정은 되나 봐요?”

“강무영, 그만해. 무영아, 제발…….”

비틀린 무영의 목소리가 형의 발목을 붙잡았다. 떨리는 손이 다급히 무영을 막아서도 소용없었다.

“지금 얘가 이 꼴이 된 게 다 누구 때문인지는 알고 그래요? 그 미친 새끼를 감싸 줄 정도로 아량이 조온나 넓으신 의사 선생님. 하나만 하세요. 애 병신 만들지 말고 하나만 하라고! 네가 그러니까 저 새끼가 애를 더 만만하게 보잖아!”

형에게 버럭 소리를 치는 무영은 차오르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떨었다. 힘주어 잡고 있던 무영의 팔을 손아귀에서 놓아 버린 나는 내 얼굴을 오목조목 살피는 형의 시선을 오롯이 느꼈다.

좁혀져 있던 눈가가 본래의 상태를 찾았다.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을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형이 순식간에 거센 페로몬을 개방했다.

놀란 내가 형에게 다가가려고 하자 이번에는 무영이 나를 막았다. 무영의 손을 뿌리치는 과정을 통해 형에게서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려는 김중현이 보였다.

형의 페로몬에 의해 더 뒤로 물러나지 못하고 몸을 움츠리는 김중현과 무시무시한 페로몬을 개방했으면서도 한결같은 표정을 유지하고 있는 형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이한음 데리고 가.”

무영에게 전하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을 뒤로 뻗어 김중현의 멱을 쥔 형이 근처에 있던 비품 창고로 들어갔다.

“형!”

“음아!”

깜짝 놀라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형과 김중현이 사라진 창고의 문고리를 돌리는 나를 무영이 뜯어말렸다.

“형! 제발 문 좀 열어 봐, 이해준!”

고함 소리가 오가는 공간을 향해 울고불고 소리쳤다. 얼마나 광기 어린 페로몬을 쏟아 내고 있는지 문틈으로 형의 페로몬이 꾸역꾸역 새어 나오고 있었다.

시원스럽게 돌아가지 않는 문고리를 계속 돌리며 문을 두드리던 내가 나를 말리는 무영을 밀치고 복도에 놓인 소화기를 집어 들었다.

“음아!”

형이 무슨 짓을 저지를까 봐 겁이 났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화를 참지 못하고 무슨 짓을 저질러 버릴까 봐. 그래서 결국 바뀐 게 없어질까 봐. 마음 놓고 있었는데 또다시 그 일을 반복하게 될까 봐.

높이 든 소화기로 문고리를 마구 내리쳤다. 눈이 돌아 문을 열기 위해 애쓰는 나를 무영은 더 이상 말리지 않고 내 이름만 연신 부를 뿐이었다.

서서히 망가져 가는 문고리에 힘입어 기어코 떨어져 나간 문고리를 본 내가 들고 있던 소화기를 던지듯 내려놓으며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들리던 비명은 언제부터였는지 멎어 있었다. 살결을 가격하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걸음을 옮긴 나는 김중현의 얼굴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있는 형을 보며 쇳소리를 냈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형에게 다가가 형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그만해, 형…….”

“놔.”

“이제 그만해. 그러다가 죽어…….”

울음기가 번진 내 목소리에 형이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형에게 멱살이 잡혀 시체처럼 아래로 늘어진 김중현은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파르르 떨리는 몸에 힘을 실은 내가 형의 등에 얼굴을 폭 묻었다. 아직까지 흥분에 차 팽창하고 수축하기를 반복하는 형의 가슴팍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괜찮아.”

몸을 틀어 내 몸을 끌어안는 형에게 나는 또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터져 나오는 눈물 탓에 어깨를 쉼 없이 들썩이며 형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그러니까 그만 떨어. 괜찮아.”

내 몸을 점점 더 압박하는 형의 품 안에서, 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을 수밖에 없었다.

한나절 사이에 더러워진 밴드를 형의 손에서 떼어 내며 다시 드레싱을 했다. 우리를 휘감은 정적이 유독 무거웠다. 나를 짓누르는 정적의 무게를 크게 체감하는 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었다.

먼저 오늘은 형이 떠났던 날, 그 당일이었다. 과거로 돌아온 뒤 제발 다가오지 않았으면 했던 날. 형은 당일이 되어서도 내 앞에 있었지만 아직 마음을 완전히 놓기에는 일렀다.

김중현이 타박상에 의해 새로 치료를 받게 되면서, 병원 내 모든 관계자는 김중현에게 주먹질을 한 것이 형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정신을 차린 김중현은 더 돌아볼 것도 없다는 듯 퇴원 수속을 밟은 뒤 퇴원을 했고, 그 뒤로 깜깜무소식이었다.

문제는 거기에 있었다. 맞은 부위가 아물지 않았음에도 정신을 차리자마자 병원에서 뛰쳐나간 김중현이 형을 신고하기라도 했을까 봐 무서웠다. 하필 오늘 같은 날에는 무슨 일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사자인 형은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니, 오히려 온몸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때린 김중현을 그냥 보낸 것에 대해 열이 받은 것처럼 보였다. 형은 김중현에 의해 눈가에 시퍼렇게 생긴 멍을 노려보듯 바라보았다.

“약은.”

갈증이 났는지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던 컵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형이 내게 물었다. 나는 지끈 아파 오는 머리에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지금 약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러면 네 몸보다 중요한 게 뭔데.”

“형.”

형은 내 이마 위에 얹어진 손을 잡았다. 이마에서 떨어진 손이 형의 손아귀에 잡혔다.

“안 간다고 했잖아.”

“형, 나는…….”

“앞서 걱정하지 마.”

내 손을 힘주어 잡는 악력이 꽤 셌다. 나는 손을 움츠리기보다 내 손을 잡고 있는 형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형의 말처럼 정말 마음을 놓아도 되는 걸까? 김중현은 죽지 않았고, 형은 살아 있으니까. 나를 떠나지 않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나는 그 약속을 믿어야 할까.

시선을 아래로 떨궈 형의 손을 응시했다. 새하얀 손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밴드를 보면 걱정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그저 형의 손을 바라보며 입술만 씹고 있자 형이 내 얼굴을 향해 손을 뻗었다.

형의 손이 닿은 곳은 내 눈언저리였다. 또 울려고 했었구나, 바보같이. 형에게 잡히지 않았던 손으로 눈두덩이를 비볐다. 마찰에 의해 후텁지근하게 오르는 체온이 느껴져도 손을 뗄 수가 없었을 때.

Rrrrr

나는 나를 부르는 호출에 눈을 가렸던 손을 내릴 수 있었다. 나를 살펴보고 있던 형이 받으라는 듯 눈짓을 하며 내려놓았던 컵을 다시 들어 올렸다.

“NS 인턴 이한음입니다.”

김중현이 퇴원한 뒤로는 일상으로 복귀해서 불안정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쉰 만큼 더 뛰어다녔고, 산더미 같은 업무를 처리하다가 겨우 짬이 나 형의 연구실에서 쉬고 있던 중이었다. 휴식을 취한 지는 이제 겨우 10분이 지나고 있었으나 이 정도면 충분히 쉬었다고 생각했다.

곧장 일어날 준비를 하며 수화기 너머에 집중했다. 전화를 받은 것을 알렸음에도 들려오지 않는 소리에 귀에 가져다 댔던 휴대 전화를 떼 화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주혁이?”

─ …….

가볍고도 옅게 터지는 음성이 발신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주혁이는 여전히 내게 아무런 말도 건네지 않았다. 잘못 걸었나. 형과 시선을 마주하며 잘못 걸려온 것 같았던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였다.

─ ……형.

나를 부르는 주혁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꼭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 것처럼 힘이 빠진 목소리에 신경을 쏟던 내 얼굴은 주혁이가 말하는 텀이 길어질수록 모호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응, 주혁아.”

목소리가 안 좋았던 것 같기도 한데. 무엇보다 주혁이가 전화를 걸어 놓고 말이 없을 아이였나. 차마 할 수 없는 장담이 내 마음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

“무슨 일 있…….”

─ 형… 형, 살려, 우욱, 살려, 줘……. 한음이 형… 형, 우리 좀…….

“주혁아!”

걱정스럽게 가라앉았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반사적으로 일으킨 몸이 잘게 떨려 오는 것 같았다. 나는 순식간에 거칠어진 호흡을 애써 진정시켰다.

침착해야 했다. 나에게 살려 달라고 안간힘을 써 말하는 주혁이를 도우려면 불에 덴 듯 격렬하게 뛰어 대는 심장을 먼저 진정시켜야 했다.

“주혁아, 너 지금 어디야?”

─ …….

“주혁… 주혁아, 형 말 들려? 김주혁!”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새하얗게 질린 얼굴은 좀체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한눈에 보아도 당혹스러움과 두려움에 휩싸인 나를 눈살을 찌푸린 채 보던 형에게서 멀어져 형의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오늘따라 유난히 길게 이어진 것 같던 복도를 달리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거칠게 눌러 대는 내 손을 형이 잡아챘다.

“무슨 일인데.”

“형, 주혁이한테… 주혁이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 형, 주혁이가…….”

주혁이가 나한테 살려 달라고 했어. 나는 그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열린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눈가를 좁혔던 형이 나를 따라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엘리베이터는 평소보다도 아주 느린 속도로 1층을 향했다.

어느새 끊겨 버린 주혁이와의 통화에 머리가 아득해진 내가 서둘러 병원을 빠져나왔다. 정신없이 병원 정문으로 나가 택시를 잡으려는 나를 형이 붙잡았다.

“형, 나 지금 가 봐야 돼…….”

“데려다줄게.”

내가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자 내 손을 잡은 형이 악력을 키웠다. 형이 좀처럼 침착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이끈 곳은 병원 내 주차장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아?”

“분명 우리라고 했어……. 그러니까 거기가… 고아원. 나 살았던 고아원 있잖아. 거기… 거기 주소가 뭐였더라…….”

“됐어. 내가 알아.”

서둘러 조수석에 올라탄 내게 장소를 묻던 형은 망설임 없이 핸들을 돌렸다.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아 속도를 높이는 형을 보며 나는 끊임없이 주혁이와의 전화를 시도했다.

신호음이 이어지는 순간에는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고, 전화를 받지 않아 소리샘으로 연결된다는 안내음이 들리는 순간에는 심장이 멎어 버리는 것 같았다.

“진정하고 119부터 불러.”

파리해진 안색으로 손톱을 뜯는 나를 힐끗 쳐다본 형이 내가 해야 할 일을 차근히 되짚었다. 터져 나올 것 같은 울음을 억지로 참아 낸 나는 형의 말대로 키패드를 두드렸다.

거칠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고아원의 정문 앞에 선 차에서 튀어 나갔다. 서둘러 굴러가는 걸음이 제대로 뻗어지지 못하고 내 발을 걸었을 때도 나는 기우는 몸을 억지로 세울 수밖에 없었다.

외롭게 세워진 건물에 들어가기 꺼려질 것 같던 움직임은 생각보다 날랬다. 1층에 위치한 식당에서부터 이어진 방을 하나하나 열어 보며 주혁이를 찾던 몸이 거센 숨을 토해 냈을 때.

“말도 안 돼…….”

나는 아래로 쓰려지려는 몸을 힘겹게 지탱했다. 고아원의 내부는 말 그대로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한 공간에 쓰러져 있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입에 하얀 거품을 물고 있었다.

급하게 가장 근처에 쓰러져 있는 아이의 호흡과 맥박을 확인하던 내가 서둘러 펜라이트를 꺼내 들었다. 아이의 눈두덩이를 벌리고 빛을 쐤다. 다행히 동공 반응이 살아 있는 상태였다.

일단 급한 대로 처치하기로 했다.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옆으로 눕힌 내가 아이의 입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조금 더 수월한 호흡을 도왔다. 뒤늦게 따라 들어온 형이 욕을 짓이기며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응급 상황을 한두 번 본 것이 아니었음에도 손이 심각하게 떨렸다. 파르르 떨리는 손가락을 다른 손으로 세게 쥔 내가 아이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체크하며 응급 처치를 하던 도중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주혁이를 발견했다.

“……주혁아!”

창백한 얼굴로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무서웠다. 그때 그 순간에 보았던 곽윤이 환자가 떠오르는 것 같아서. 떨리는 손으로 주혁이의 호흡을 확인하던 내가 코 가까이에 가져다 댔던 손을 잠시 멈추었다. 순간적으로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호흡이 없다. 주혁이의 경동맥에 손을 가져다 대도 맥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아, 안 돼…….”

편하게 눕힌 주혁이의 가슴 위로 심마사지를 했다. 늦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조금 전에 심정지가 발생했던 것이라면 아직 살 수 있었다.

“안 돼, 주혁아. 아아, 어떻게 하면 좋아. 주혁아, 안 돼……. 제발, 제발…….”

수십 번 주혁이의 가슴을 압박하며 심마사지를 시도하는 내 몸을 누군가가 거칠게 떼어 냈다. 놔. 놓으란 말이야. 아직 따뜻했어. 아직 살아 있어. 살 수 있어!

공황 상태에 빠진 내게 손을 뻗은 누군가가 무어라 외쳤으나 두 귀는 닫혀 버린 듯 어떤 소리도 담아내지 못했다. 내 주위에 맴도는 공기가 빠져나가다 못해 차단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소리를 전달하지 못하는 진공 속에 갇힌 기분이었다.

나는 들것에 실려 가는 주혁이를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다. 작게 벌어진 입술로 거친 숨을 연신 토했다. 시원한 공기가 뜨거운 숨이 되어 입 밖으로 터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어느새 응급 대원과 경찰로 점령이 된 내부와 하나둘 실려 가는 아이들을 보던 나는 몸을 아래로 쓰러트렸다.

이대로 기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이곳에서 살았던 아이들 중 나 혼자만 내 두 다리로 서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

“신고받고 갔을 때 현장에 김중현은 없었습니까?”

“……네.”

“그제까지 근무하던 병원에 입원했던 기록이 있는데 퇴원 후에 어디로 가겠다는 말도 못 들었고요?”

“……네.”

“정말 몰라요? 보니까 그 고아원 출신이던데 그놈이 어떤 놈인 줄 알고 있었으면서도 치료해 준 거 아닙니까?”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며 기계 같은 대답을 반복하던 내가 고개를 반사적으로 틀었다. 날카롭게 찢어진 눈이 내 앞에 서 있는 형사를 쏘아보았다.

굳이 아이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까지 찾아와서 조사를 하는 형사들의 태도가 상당히 퉁명스러웠다. 나는 내가 왜 그딴 새끼를 돕냐고 소리를 치려다 근처가 중환자실이라는 것을 떠올리곤 입을 다물었다.

고아원에 터졌던 집단 살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는 김중현이었다. 자신의 아내와 아들까지 버려두고 자취를 감춘 김중현을 범인으로 확신한 경찰은 지체 없이 수사를 진행했다.

아이들에게 단체로 쥐약을 뿌린 음식을 먹이곤 홀연히 사라진 김중현 탓에 그의 행방을 알아내려는 경찰들의 움직임이 분주했다.

“박 형사님! 김중현 조금 전에 잡혔답니다!”

나와 이야기 중이던 형사에게 달려오며 소리치던 경찰과 눈이 마주쳤다. 그런 경찰의 외침에 나를 불퉁하게 쳐다보던 형사가 욕을 씹으며 자리를 떴다. 형사가 떠나고 홀로 남은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최근에 와서는 신고가 들어갈까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던 김중현이 그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에 있어서 나는 아이들에게 또 한 번의 죄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고, 김중현이 그 일을 벌이기 전에는 큰 소동이 있었다.

그 고아원과 연관이 있는 나는 김중현에게 있었던 소동의 원인이기도 했다. 하필 그 자리에는 내가 고아원에 있던 당시 나를 제일 잘 따랐던 주혁이가 있었고, 모든 정황은 나에게 비수가 되어 꽂혔다. 나는 주혁이와 아이들이 그렇게 됨에 있어 내 탓이 아예 없다고 섣불리 단정 지을 수가 없었다.

무겁게 가라앉은 몸을 일으켜 천천히 복도를 거닐었다. 로비 천장에 설치된 TV로 박힌 시선의 끝에는 양손이 포박된 채 경찰한테 끌려가는 김중현이 있었다.

『속보입니다.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아동 복지 시설에서 아동 집단 살해를 시도했던 원장 김모 씨가 방금 충청도의 한 외곽 지역에서 체포되었다는 소식입니다. 김모 씨는 설립 당시부터 아동 학대를 일삼으며 아동들에게 지급된 보조금을 갈취하는 등…….』

김중현의 죄질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거웠다. 나는 지난날에 대한 죄목이 추가된 채 처벌을 받을 김중현의 모습을 상상했다.

TV 속 김중현을 멍하니 바라보던 내 옆으로 형의 페로몬이 끼쳤다. 형은 아래로 떨궈진 내 손을 세게 움켜잡았다.

과거는 바뀌었다. 죽었어야 할 김중현은 살아서 자신의 죄를 갚아 나갈 수 있게 되었고, 16일 이후로 죽어서야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던 형은 멀쩡하게 살아 숨 쉬어 내 곁에 있었다.

나는 나를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수했던 형을 응시했다. 형은 목숨을 겨우 부지했으나 아직까지 의식이 없는 주혁이를 생각해서라도 더 견고해져야 한다고 했다.

온전히 뒤바꾸고 싶었던 과거는 결국 누군가의 희생으로 막을 내렸다. 그 이유 때문에 김중현이 체포되었음에도 마음 놓고 웃을 수 없던 나는 건조한 눈동자를 다시 TV로 돌렸다.

***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거친 해일을 일으키기까지 걸린 시간은 정확히 얼마일까. 내 발버둥이 나를 법원에 세우기까지 걸렸던 시간은? 김중현에게 벗어났던 10년의 세월을 답으로 두어야 할까, 김중현이 죽고 나서도 고통에 몸부림쳤던 10년 역시 그 세월에 포함시켜야 할까.

나는 내가 속한 이 공간이 조용하면서도 어수선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머릿속에서 쉼 없이 흘러가는 기억의 조각들이 큰 소용돌이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일까.

“증인.”

가만히 눈을 깜박이던 내가 순간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반사적으로 들었다. 희미했던 시야가 나를 바라보는 검사를 더 선명하게 찍어 냈다. 검사는 멍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를 깨우곤 다시 입을 열었다.

“증인은 사건 당일 서울 강북구에 위치한 한빛 고아원에 어떻게 가게 된 거죠? 증인이 일하는 병원은 강북구로부터 조금 떨어진 지역이지 않았나요?”

검사와 정통으로 맞아 있던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물 흘러가듯 이동하던 시선이 멎은 곳은 피고인석이었다. 옅은 황갈색의 죄수복을 입은 김중현이 피고인석에 앉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켰다. 깊이 들이쉴수록 맑아져야 할 머리임에도 탁한 공기를 머금은 폐는 머릿속을 더 아득하게 만들 뿐이었다.

김중현은 끝까지 최악이었다. 자신의 죄를 결코 깨끗하게 인정하는 법이 없었다. 체포를 당하고 조사받던 김중현이 제일 먼저 꺼낸 말은 잘못했다는 말도, 내가 한 짓이 아니라는 부정의 말도 아니었다고 했다.

한성대학병원 의사 놈들이 떼거지로 자신을 죽이려 했다. 내 얼굴을 보면 모르겠냐. 그놈들 먼저 잡아 가라. 그러기 전까진 입을 열지 않겠다.

“증인은 대답하세요.”

나를 증인석에 앉힌 검사가 다시 한번 더 재촉했다. 김중현에게서 검사에게 옮겨진 시선이 답답할 정도로 느긋했다. 나는 숨을 천천히 고른 후에야 입을 열 수 있었다.

“전화가 왔었어요.”

“누구한테요?”

“주혁이한테요.”

“주혁이라면 이번 사건의 피해 아동 중 한 명인 김주혁 군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피해 아동. 나는 검사의 말에 벌려진 입술 사이로 숨을 크게 삼켰다. 무릎 위에 올려진 손에 힘이 실렸다. 주먹을 꼭 쥔 내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네.” 하고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냈다.

“김주혁 군이 정확히 뭐라고 하던가요?”

“……살려 달라고 했어요.”

그때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던 주혁이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숨을 겨우 토해 내며 고개를 숙였던 나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그러나 나는 감은 눈을 길게 유지하지 않았다. 고개를 틀어 김중현을 바라보며 더 또렷한 음성을 냈다.

“제발… 제발 우리 좀 살려 달라고, 그렇게 말했어요.”

네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똑똑히 기억해. 미물보다도 하찮게 여겼던 우리가 얼마나 살고 싶어 했는지, 그 고통 속에서도 얼마나 몸부림치고 있었는지. 김중현은 자신을 노려보는 나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당시 상황을 좀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음식을 먹고 있었던 건지, 아이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어요. 하나같이 하얀 거품을 물고 쓰러져 있었고, 의식을 확인했을 때 대부분이 반혼수상태였어요. 겨우 호흡을 이어 가고 있었던 아이도, 호흡마저 없던 아이도 있었어요. 검사 결과 아이들 모두 쥐약 양성 반응이 나왔고요.”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됐죠?”

“…….”

누군가 내 곁에서 공기를 좀먹고 있는 것처럼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때를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질문하는 검사를 보며 나는 무릎 위에 올린 손을 잘게 떨었다.

“증인?”

목이 턱 막힌 듯 입을 열기 주저하는 나를 검사가 채근했다. 그저 입술을 소리 없이 달싹이며 어쩔 줄 몰라 했던 나는 불안정한 시선을 검사의 주위로 흩뿌렸다.

갈증이 일어 입 안이 텁텁했고, 긴장으로 인해 입술이 버석했다. 애써 입술을 혀로 축인 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근처 병원으로 이송한 후에 급히 처치해서 비극은 막았지만, 영양이 불균형한 상태였던 데다가 워낙 독소에 취약한 아이들이라… 간신히 목숨을 부지했던 아이들 중에 끝내…….” 

“…….”

“끝내 의식을 못 찾은 아이가 두 명 있었어요. 깨어난 아이들은 충격에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보내고 있고요. 당장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아이는 몇 없습니다.”

울 것처럼 떨리는 음성이 법정에 힘없이 울렸다. 나는 침을 무겁게 삼키며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상해 진단서를 화면에 띄워 주십시오. 최종 진단 부분을 보시면 피해 아동들의 대부분이 살서제로 인한 급성 중독 초기 증상이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급성 살서제는 만성 살서제와는 달리 성인에게도 치명적인 독극물입니다. 이런 독극물을 음식에 섞어 아동들에게 먹인 피고인에게, 정말 살의의 의도가 없었을까요? 이상입니다.”

재판장을 향해 몸을 돌려세우고 신문을 마친 검사가 자리로 돌아갔다. 간간이 숨을 들이쉬고 내쉬길 반복했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변호인 측, 증인에 대한 반대 신문을 하시겠습니까?”

“예, 증인. 증인은 사건 당일…….”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는 재판장과 내 대답을 예의 주시하는 검사, 검사와는 다르게 설렁설렁 신문하는 변호사, 공판이 진행될수록 점차 일그러져 가는 김중현의 얼굴. 마치 꿈속에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인 양 모든 장면을 한 발자국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오로지 김중현에게 겨냥되어 있었던 내 신문이 모두 끝나고 나서야 나는 물러날 수 있었다. 내가 앉아 있던 자리에 선 주혁이가 선서를 하는 것도, 참담하고도 노기를 띤 심정이 낱낱이 드러난 얼굴을 바라보는 것도. 이 상황에서 비탄해해야 하는 것인지, 후련해해야 하는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결국 승자는 없었다. 피해자가 있고, 피해자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고, 피해자가 더 이상 깨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에 우리는 웃을 수 없었다. 그저 김중현이 죄에 걸맞은 벌을 받게 되는 게 다행이라고 느낄 뿐이었다.

형벌이 무거워지면 무거워질수록 우리는 웃기보다 울게 될 것이었다. 우리가 그동안 그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왔던 거니까. 그만큼 우리가 남들보다 불행한 처지였다는 걸 깨닫게 될 테니까.

나는 내 옆에 앉아 내 손을 힘주어 잡는 형을 보았다. ‘고생했어.’ 형의 입 모양이 내게 그 말을 전했다. 고생했다고. 그 말은 이제 더 이상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일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해 아동들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119에 바로 연락을 취하지 않았던 그 이유. 어른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몸부림쳐야 했던 그 이유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우리 어른들은 더 이상 아이들의 신뢰를 잃어선 안 됩니다. 이상입니다.”

“이것으로 모든 증인 신문을 종료합니다. 다음 공판은…….”

재판장이 다음 공판일을 공표함으로 2차 공판은 끝이 났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퇴정하고 있었지만 나는 자리에 앉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내게 주혁이가 천천히 걸어왔다.

“형.”

낮게 가라앉아 있는 목소리가 무게 있게 떨어졌다. 그 중량이 너무나도 무거워 나는 고개를 더 깊숙이 떨궜다.

“한음이 형.”

주혁이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내게 전해짐과 동시에 눈물이 무릎을 적셨다. 주혁이가 의식을 찾지 못했을 때는 틈만 나면 곁을 지켰었는데, 의식을 차리고 나니 차마 찾아갈 수가 없었다.

“……미안.”

“…….”

“미안해, 주혁아. 내가 너무 미안해.”

죄책감 때문이었다. 너희들이 아닌 형을 선택했던 것에 대한 죄책감. 형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았기 때문에 느끼는 죄악감. 와중에도 형이 살아 있어 다행이라고 느꼈던 나 자신에 대한 자멸감.

사실 나는 증인석이 아니라 피고인석에 김중현과 함께 서 있어야 하지 않았나. 내내 그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결국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나 때문에 꽃도 피워 보지 못한 생명이 죽어 나갔는데. 나는 그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형이 왜 미안해해.”

“나 때문에…….”

“그렇게 따지면 내 책임도 있어. 내가 그 자리에 있지만 않았어도 김중현이 홧김에 그러진 않았을 테니까.”

“주혁아.”

시선을 바닥에 처박고 있었던 내가 성급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주혁이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손등으로 거칠게 닦았다. 숨을 고르는 듯 가슴팍을 몇 번 들썩이던 주혁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이 그러라고 등 떠민 거 아니잖아. 우리는 그냥 피해자야. 왜 피해자가 자책을 해. 아무도 형 때문이라고 생각 안 해. 여기서 나쁜 건 형도 아니고, 나도 아니고. 그냥, 그냥 김중현 하나야.”

차마 주혁이를 담을 수 없어 시야를 닫았다. 무겁게 내려앉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려 왔다. 조금의 떨림도 견디지 못한 내가 눈을 더 질끈 감았을 때, 내 손을 그러쥔 체온에 더 큰 힘이 실렸다.

“그러니까 우리는 웃자. 잘됐잖아, 변수가 없는 한 우리가 원하는 대로 판결 날 테니까. 그러니까 억지로라도 웃자.”

그 말이 너무나도 썼다. 억지로 웃어야 하는 것이 비단 나뿐만은 아니라는 그 말의 의미가 나를 너무 아프게 했다.

제2차 공판이 끝나고 배가 고프다는 주혁이의 말에 병원 근처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왔다. 수술이 있다며 먼저 병원으로 들어갔던 형을 보며 나는 형이 부러 자리를 피해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주혁이가 깨어나고 난 후 나는 주혁이와 그렇다 할 대화를 나눠 본 적이 없었으니까. 갈비탕 속 갈비를 간장 종지에 찍어 먹던 주혁이가 불현듯 고개를 들었다.

“안 먹어? 사람 먹는 걸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부담스럽게. 나 얼굴에 뭐 묻었어?”

민망한 듯 입술 주변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은 주혁이는 자신에게 꽂혔던 시선이 꽤 멋쩍었는지 들고 있던 갈비를 내려놓았다.

“잘 먹길래. 이거 더 먹어.”

“아, 됐네요. 형이나 먹어. 난 부족하면 하나 더 시킬 거야.”

짓궂게 웃는 주혁이를 보며 옅게 웃었다. 억지로라도 웃자. 고작 열여덟인 주혁이가 근심 걱정이 없는 것처럼 웃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필요로 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런 주혁이를 보며 나 역시 따라 웃어야 할지, 울음을 내비쳐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웃었다. 여기서 내가 울어 버리면 주혁이는 겨우 일으켜 세웠던 막대기를 다시 쓰러트리게 될 테니까.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라 울고 싶을 때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야 했으니까.

입꼬리를 더 길게 끌어 올리며 말았던 밥을 한술 떴다.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주혁이는 그제야 내려놓았던 갈비를 집어 들었다.

“퇴원하고 나면 우리 집에서 지내.”

“어?”

내 말에 주혁이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새로운 시설 들어가도 얼마 안 가서 퇴소해야 하잖아.”

시설에서 지낼 수 있는 나이는 만 18세까지였다. 연장을 하더라도 주혁이는 언젠가 시설로부터 자립을 해야 했다. 나는 주혁이가 마음고생을 조금이라도 덜었으면 했다.

“됐어. 만기로 채우고 나오면 정착금도 지원해 준다고 하고, 그냥 그거 받으면 돼.”

“시설에서 안 받아 줄 수도 있잖아. 어차피 세 들어 놓고 난 들어가지도 않아. 오프 때는 거의 형 집에서 지내니까 불편해할 필요도, 부담스러워할 필요도 없어.”

“……똑똑한 줄 알았더니 돈을 공중에 뿌리고 다니네.”

“그러니까 들어와서 살아. 아직 짐이 있긴 한데, 불편할 것 같으면 조만간 치울게.”

내 회유에 주혁이는 입맛이 떨어졌는지 들고 있던 숟가락을 빙빙 돌리기만 했다. 다 먹은 뒤에 말을 꺼냈어야 했는데 성급했다. 아차 싶었던 내가 주혁이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이미 엎지른 물을 도로 담을 수는 없었다.

“공부도 해야 하니까.”

“공부는 무슨……. 계속 그 형이랑 지냈던 거야?”

쓰게 웃으며 말끝을 흐리던 주혁이가 주제를 전환했다. 나는 주혁이가 말하는 사람이 줄곧 내 옆에 앉아 있었던 형을 가리키는 것을 알아채고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네가 김중현의 그늘 아래 있을 때도 나는 나 혼자 살겠다고 그 사람과 있었어. 결코 전하지 못하는 내 이기심이 비수가 되어 난도질을 해 댔다.

“좋은 사람 같아 보이더라.”

주혁이의 눈을 고집스럽게 좇았던 나는 다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움츠러드는 나를 보며 주혁이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형.”

“…….”

“아오, 열라 답답해. 형은 왜 더 멍청해져서 왔냐?”

입술을 꾹 깨물어 차오르는 울음을 꾸역꾸역 참았다. 한심하다는 듯 뱉어지는 힐난이 머리 위로 무겁게 자리 잡았다.

“그만 좀 쭈굴거려. 형이 나 낳았어? 정작 책임져야 할 인간들은 그 모양인데 왜 형이 죄책감을 가지고 난리야.”

“…….”

“죽을상 좀 하지 마. 형은 필요 이상으로 우리 신경 써 줬잖아. 그랬던 형 생각도 못 하고 말도 없이 사라졌다고 미워했던 내가 이기적이었던 거야.”

짜증스러운 언행을 토해도 갑갑한 게 풀리지 않았는지 주혁이가 자신의 가슴팍을 주먹으로 힘 있게 내리쳤다.

뒤이어 숨이 길게 내쉬어졌고, 뱉었던 숨을 힘겹게 들이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주혁이는 지금 가슴속에 쌓인 울음기를 가다듬고 있었다. 몇 번이고 토해 내려다 다시 집어삼켰을 그 감정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제대로 컨트롤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부담스러웠다는 거 알아.”

짐짓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여는 주혁이는 아까와는 상반된 감정을 내게 보였다.

“내가 형 자리에 있어 보니까 알겠더라. 나는 뭣도 아닌데 애들은 나를 부모라도 되는 양 생각하고 의지하지, 나는 애들 기대에 부응해 줘야 하지. 그런 애들이 하나둘 늘어나니까 입양도 못 가겠더라. 혹시 나 없을 때 무슨 일 생기기라도 할까 봐. 어쩌면 앞으로는 다시없을 기회였는데, 내 삶에 도움도 안 되는 엿 같은 책임감 하나 때문에 못 갔어. 그런데 그 책임감을 느낄 때마다 후회가 되는 거야. 도망치고 싶었어. 하필 그때 형이 생각나서 야밤에 몰래 도망친 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형…….”

그저 하루의 일과를 고하듯 무겁지만 담담하게 이어지던 문장들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낮게 깔린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멍한 얼굴로 고개를 든 나는 울음이 섞인 숨을 고르는 주혁이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눈시울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나 혼자 살아갈 자신이 없는 거야. 나는 돈도 없고, 집도 없고, 부모도 없는데. 그렇다고 내가 형처럼 공부 머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뭐 하나 가진 게 없는 내가, 앞으로 혼자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도저히 모르겠는 거야. 애들은 나를 의지하는데 정작 나는 기댈 곳이 단 한 군데도 없다는 게, 그게 나는 너무 무서웠어. 나 자신조차 내가 믿고 의지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다시 돌아갔어. 뛰쳐나온 지 세 시간은 지났나. 고작 그 세 시간 버티고 제 발로 기어 들어갔어. 웃기지. 도로 가서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애들 옆에 누웠는데, 그게 너무 어이없고 슬프더라.”

“…….”

“나도 형이랑 똑같아. 차이가 있다면 형은 어떻게든 용을 써서 살아남은 거고, 나는 그러지 못한 거야. 그래서 나는 형 비난 못 해. 내가 형이었으면 진작에 도망쳤을 테니까.”

쇳소리가 새어 나갈 것 같아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내가 떠안았던 부담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채 10년의 세월을 보낸 주혁이를 보며 말문이 막힌 듯 그 어떠한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내가 너희들을 잊고 지냈던 20년 동안 어쩌면 너는 단 한 순간도 나를 잊지 않았을 것 같아서. 찾아오지 않는 나를 기억하며 얼마나 많은 밤을 홀로 보냈을지 상상이 가지 않아서.

주혁이 앞에서 울지 않으려 다짐했지만 내 다짐이 무너진 게 오늘만 벌써 두 번째였다.

“그러니까 이제는 나 책임질 필요 없어. 그 죄책감도 쓸데없는 감정 소모야. 나도 이제 많이 컸고……. 무엇보다 형은 이제 혼자가 아니잖아.”

“……너도.”

“…….”

“너도 혼자 아니야. 나한테는 네가 가족이었으니까. 그래서 미안한 거야. 난 가족을 버렸던 거니까. 그래서 내내 죄책감에 시달린 거야.”

주혁이에게는 잊지 못할 상처로 각인되었던 나였다. 나에게는 없는 줄 알았던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더 이상 아무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출입문을 봉쇄해 버렸다.

“가족…….”

주혁이는 촉촉하게 젖어 있는 눈매를 살짝 휘었다. 그 웃음이 기뻐 보이기도 하고, 슬퍼 보이기도 했다.

“그러네. 형이 내 가족이었네.”

너무 오래 걸렸다. 처음부터 가족으로 결속되어 있던 우리는 내가 너무 멀리 돌아오는 바람에 이제야 온전해졌다.

계속 내 가족으로 남아 줘. 그건 내가 주혁이에게 기댈 수 있고, 주혁이가 내게 기댈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주혁이를 먼저 병실에 올려 보낸 나는 병원 후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어느새 병원 내에서 피해자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큰 사고를 친 내게 향했던 비난은 어느새 동정 어린 시선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김중현에 대한 이슈가 커지면서 내 치부는 속속들이 드러났다. 예전만큼 들키면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무작정 날을 세우진 않았지만 사람들의 입에 아무렇게나 오르내리는 약자가 되는 건 여전히 두려웠다.

그래서 일부러 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강북구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던 주혁이를 한성대학병원으로 옮기고, 주혁이를 케어할 때에도.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인 양 굴었다. 그러나 그런 내 노력에도 그들에겐 내가 피해자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의사도, 환자도 아닌 피해자는 내가 병원 생활을 이어 오면서 처음 받는 대우였다.

그게 불편했다. 그들이 나를 그들과 같은 의료진으로 보지 않아서. 노골적이었던 연민은 하루도 채 가지 않아 멎어 들었지만 나는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시선 속 이한음은 의사가 아닌 피해자라는 걸. 그래서 그들은 이한음을 한심스럽게 보기보다 딱하게 본다는 걸.

나는 어서 빨리 시간이 흐르길 바랐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내가 피해자였다는 사실이 모두의 기억 속에서 차츰 잊혔으면 했다. 그 두려움은 김중현만큼이나 날 괴롭게 했으니까.

숨을 깊게 들이켜며 마음을 가라앉히려던 순간, 나는 내 옆을 지나쳐 가는 무리에 고개를 천천히 틀었다. 뻣뻣하게 돌아간 고개가 곧 무리의 가운데에 선 남자에게 향했다.

김중현이 입고 있던 것과 같은 죄수복, 양팔이 제복을 입은 경찰관에게 포박이 된 남자, 그에게서 희끄무레하게 흘러나오는 오메가의 페로몬. 유정이와 닮은 얼굴은 아니었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그 남자가 유정이의 친모라는 걸 알아챘다.

김중현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사이, 유정이 부모의 마지막 공판은 끝이 났다. 세상은 유정이의 편에 서서 손을 들어 줬고, 공판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검사를 통해 골수의 항원 중 네 개의 항원이 일치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고 들었다. 덕분에 유정이는 며칠 전부터 무균실에 들어가 항암제를 투여받고 있었다.

때가 되었으니 유정이의 친모는 골수가 필요한 유정이를 위해 다시 병원을 찾게 되었을 테고, 범죄자는 경찰의 동행 없이 독단적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내 짙은 시선을 느꼈는지 경찰관과 함께 이동하던 남자가 걸음을 멈추곤 날 돌아보았다. 다크서클이 길게 내려앉은 퀭한 눈이 내게 향했다. 나는 무덤덤하게 끔벅이는 눈과 페로몬에 서려 있는 남자의 감정에 질려 서둘러 몸을 반대로 틀었다.

분명 남자는 지루해하고 있었다. 귀찮아했고, 유정이를 성가셔했다. ‘그냥 보고 싶어요. 보고 싶어요, 우리 엄마…….’ 나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깃들어 있던 목소리가 내 온몸을 지배하는 걸 느꼈다.

나는 권태로운 얼굴을 한 남자에게서 빠르게 멀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제 배 아파 낳았으니 한 번쯤은 유정이를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 길고 긴 재판이 진행되면서 자신이 한 짓과 유정이가 겪은 고통을 조금이라도 뉘우치고 아파하진 않았을까 하는 마음.

나는 곧 실낱같은 희망을 지웠다. 우스운 생각이었다. 김중현을 그렇게 겪고도 그와 같은 부류의 사람이 갱생하길 바랐다니. 유정이의 그리움으로 사그라들었던 증오가 다시 되새겨졌다.

자칫 잘못 뻗으면 제 발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었을 만큼 급박한 걸음이었다. 주머니를 뒤져 카드 명찰을 꺼낸 내가 출입 통제기에 카드를 찍고 무균실로 들어섰다.

“어, 이 선생님.”

무균실에 들어가기 앞서 온몸을 살균 소독하는 나를 발견한 김재겸은 문 한가운데에 뚫린 유리를 통해 손을 흔들었다.

“오셨네요.”

“네.”

주위를 살피며 무균실로 진입한 내가 김재겸의 옆에 섰다. 앞에는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유정이가 있었다. 잠을 자고 있는 것인지, 기절을 한 상태인지 육안으로는 확인이 어려웠다.

유정이를 바라보는 내 눈빛이 아주 무거워 보였는지 내 표정을 살피는 김재겸의 시선이 여러 번 느껴졌다.

“항암 치료가 많이 힘들었나 봐요. 지금 골수 거르고 있어서 도착하면 바로 이식 시작할 거예요.”

“네.”

“……거기서 무슨 일 있었어요?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조심스레 들려오는 목소리에 김재겸을 응시했다.

“아무 일 없었어요.”

아마 김재겸은 내가 증인으로 출석했던 법정에서의 일을 거론하는 것 같았다. 법정에서는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기에 나는 말을 아꼈다.

누워 있는 유정이를 보며 조금 전 마주쳤던 그 남자를 떠올렸다. 남자를 놓지 못하는 유정이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감정을 알기라도 하는 듯 심장이 콕콕 쑤셨다.

“김 선생님, 유정이 골수요.”

“아, 감사합니다, 최 간호사님.”

유정이에게 면역 부작용을 일으킬 만한 세포를 제거한 골수를 받아 드는 김재겸을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았다. 유정이에게 부분 마취를 하며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양새는 보기 드물게 진지했다.

내게 김재겸은 그저 가볍고, 참견이 많은 의사였다. 자신의 마음을 무차별하게 들이밀고,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

가볍다는 건 그만큼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틈을 준다는 것이고, 참견이 많다는 건 주변에 많은 관심을 쏟을 수 있을 만큼 정과 여유가 많다는 것이었다.

마음과 표정을 숨기지 못한다는 건 김재겸이 그만큼 투명하며 솔직하다고 말할 수 있었고, 나는 내게 다가왔던 김재겸이 적대적인 기류를 조금도 섞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했다.

김재겸은 어느새 골수를 주사할 수 있는 모든 과정을 끝냈다. 김재겸의 뒷머리에서 김재겸의 손으로, 김재겸의 손에서 엎드려 누워 있는 유정이에게로.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골수가 잘 주입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던 김재겸이 다시 내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지금 김재겸의 눈빛 속에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을까. 나는 걱정 어린 김재겸의 시선에서 동정을 읽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

“동정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거든요.”

“아,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해요. 나는 그냥 걱정이 돼서…….”

화들짝 놀라 상황을 허둥지둥 수습하려는 김재겸을 보니 불쑥 헛웃음이 튀어나왔다.

“김 선생님은 볼수록 특이한 사람이에요.”

“제가요?”

“그렇잖아요. 매몰차게 밀어낸 사람한테 어떻게 그렇게 한결같을 수가 있는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거든요.”

바보 같으면서도 자기주장이 확실한 것을 보면 강단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김재겸에게 향했던 시선을 내려 유정이를 보았다.

“원래는 미워해야 맞는 건데.”

“그런가요?”

유정이를 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 아니라 그냥 눈을 피하고 싶었다. 혼잣말처럼 이어지는 말에 김재겸은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유정이가 더 크면 아마 김재겸 같은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이 병원에 있는 동안 그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을 테니까.

“다시 시작해 볼 거예요.”

그동안 나는 놓친 게 너무 많았다. 사랑도, 우정도, 가족도, 직업도. 서른일곱의 나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짚지도, 굳이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지고 싶었다.

환자에게 조금 더 진심으로 다가가고 싶었고, 내 본질은 바꾸지 못할지라도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 척을 진 채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의 내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렵게 잡은 기회, 이제는 놓치고 싶지 않아요.”

“…….”

“그러니까 전처럼 지내 봐요, 우리.”

“이 선생님.”

“대신 선생님이 저를 동료로서 좋아해 주시면요.”

유정이에게 향했던 고개가 김재겸에게 틀어졌다. 나는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김재겸을 흔들림 없이 바라보았다.

“저는 더 이상 제 주변 사람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게 몸이든 마음이든.”

김재겸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느릿하게 숙여졌다가 느릿하게 올라가는 고개에도 김재겸의 표정은 여전했다.

“그동안 죄송했습니다.”

나는 지금 내가 내뱉는 진심이 김재겸에게 전하는 마지막 사과였으면 한다. 더 이상 아무도 다치지 않고, 아무도 아프지 않는 것. 그 안에는 내가 포함해 있었다.

해야 할 말을 모두 끝낸 내가 김재겸에게서 등을 돌렸다. 소독실을 지나쳐 방진 캡과 마스크를 버린 나는 소독실로 희미하게 끼치는 페로몬에 문고리를 돌렸다.

활짝 열린 문을 통해 보게 된 바깥세상에는 형이 있었다. 벽에 기대고 서서 날 기다리고 있는 형을 보며 내가 작게 웃었다. 나는 형을 향해 웃었지만 형은 내 얼굴을 오목조목 살피며 눈살을 찌푸릴 뿐이었다.

곧 내 앞으로 다가온 형이 손을 뻗어 엄지로 내 눈을 덮었다. 부어오른 눈두덩이와 맞대진 순간 따뜻하게만 느껴졌던 손이 내 체온보다 낮아졌다.

백열등을 차단한 시야였으나 어둠이 나를 삼켰다고 해서 무섭지 않았다. 나는 눈꺼풀 위로 떨어지는 체온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가로막혀 있던 어둠이 물러났다. 항상 틀어박혀 있던 내 세상에서 온전히 벗어난 또 다른 세상은 어둠조차 두렵지 않은 곳이었다. 나는 그 세상으로 다가가기 위해 스스로 발을 뻗었다. 이번에는 형의 도움이 아닌 오로지 내 의지에 의해.

나는 아직 불완전한 인간이었다. 앞으로 내가 해야 할 노력이 태산이었지만 큰 부담이 되어 내게 다가오진 않았다.

내 앞에 형이 있으니까. 이제는 내게도 가족이 있었고, 사사로운 욕심을 위했던 목표가 아닌 진정으로 향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었으니까.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자로 상통했지만 언젠가 그 목표에 도달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평범한 일상을 보낼 것이다.

부디 너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기를. 유정이에게 했던 그 말을 나는 이제 다른 사람을 통하지 않고도 내게 전할 수 있었다.

그건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며 나를 위한 목표에 향한 첫 도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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