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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ourth step (5/14)

The fourth step

결국 서재원은 내게 했던 발언 그대로 병원을 때려치웠다고 했다. 당월 수련 과 레지던트들이 서재원을 씹으며 떠들었다는 걸 들은 사람이 있었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나는 이내 서재원의 생각을 털어 버리기로 했다. 서재원이 두 번 다시 눈에 띄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은 해당 과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한성에서의 생활은 결코 길지 않았지만 내가 화두에 오른 횟수는 적지 않았다. 당시의 상황을 직접 본 의료진은 고작 몇에 불과했으나 나는 그 순간 모든 의료진 앞에서 비난을 받은 것처럼 날것의 상태로 도마 위에 올라야 했다.

서재원의 경솔했던 발언과 함께 싸잡아 털리는 것하며, 내가 서재원에게 그만두라 종용한 것도 아닌데 해당 과 사람들의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것하며. 나를 향한 원성이 지나치게 노골적이었다.

피곤했다. 온갖 데에서 치여 너덜너덜한 상태로 일하는 것이 생각보다 고됐다. 어제까지만 해도 공적인 대화를 하는 데 서슴없었던 의료진들이 이제는 내 앞에서 입을 여는 것조차 서먹해한다.

처음 한두 번은 그러려니 넘겼어도 이게 세 번, 네 번 반복되다 보면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었다. 그건 응급실 환자를 CT 촬영실로 넘기는 순간까지 계속됐다.

응급 환자이니만큼 최단 시간에 결과지를 받아야 했지만 계속되는 요청에도 불구하고 내 환자의 결과는 뒤로 미뤄졌다. 우연찮게 마주친 박이영이 날 도와준답시고 자신과 안면이 있는 영상 의학과 인턴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또 김현재에게 고개를 숙여야만 했으리라.

밉보여도 단단히 밉보였다. 그 생각을 하면 속에서 답답한 기운이 끼쳤다. 한 번 다녀가도 될 일을 두 번, 세 번 반복하게 되니 정신뿐만 아니라 신체적인 피로감도 벼랑 끝으로 몰렸다.

손에 쥔 차트로 다리를 두드렸다. 몰려드는 피곤함에 차트를 쥐지 않은 손으로 눈꺼풀 위를 마사지하던 내가 문득 끼치는 희미한 페로몬에 눈을 떴다.

“…….”

꼭 이런 순간에는 가장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는 법이다. 나는 막 수술을 끝내고 나오는 참인지 수술모와 마스크를 들고 있는 김재겸을 보았다. 김재겸이 나를 보며 멈칫한 몸을 빳빳하게 굳혔다.

김재겸이 머쓱한 듯 손을 들어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시선을 아래로 떨궜다.

“……괜찮아요? 많이 힘들어 보였는데.”

분명 지나친다고 지나쳤는데, 얼마 못 가 다시 자리에 붙어 버린 다리가 문제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튼 채로 한 번 끄덕였다. 더 오가는 대화가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다시 몸을 움직였다.

“잠시만요, 이 선생님.”

억지로 뻗는 걸음이 부자연스럽게 보이진 않을까. 고민하던 나를 부른 김재겸이 빠른 걸음으로 내 앞에 섰다. 내 움직임을 차단하려는 듯 팔뚝을 잡은 김재겸의 손에 시선을 던졌다. 내가 팔을 들어 김재겸의 손길에서 벗어났다.

“……알아요, 이 선생님이 나 불편하게 생각하는 거. 그런데 오해는 풀어야 하잖아요.”

허둥지둥 쏟아부은 말에 김재겸에게서 떨어져 나간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풀이 죽은 듯 보이는 김재겸은 얼굴이 전보다 상해 있었다. 나는 그 이유가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수술 때문이라 생각했다. 김재겸의 상한 얼굴에 들어맞는 이유가 내가 아니었으면 했으니까.

“무슨 오해요?”

차갑게 가라앉은 내 말에 김재겸이 손으로 턱 부근을 쓸었다.

“그때, 갑자기 유정이 얘기 꺼내셨잖아요. 혹시 뭔가 오해를 하고 있나 싶어서요.”

멋쩍게 억지로 웃은 김재겸이 내 눈치를 봤다. 그런 김재겸에게서 시선을 뗀 내가 허공을 훑었던 눈을 다시 그에게 꽂았다.

“없어요, 그런 거.”

“그런데 왜…….”

“김 선생님이랑 저 사이의 거리, 이 정도가 적당한 것 같아서요.”

김재겸의 물음이 끝나기 전에 내가 선수 쳤다. 김재겸은 내 말에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김재겸의 얼굴에 아스라이 걸려 있던 웃음기가 사라졌다. 나는 심히 지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설마 그 고백 듣고 제가 좋아할 줄 알았어요? 좋아해 줘서 고맙다고, 그 마음 잘 간직해 달라고?”

“…….”

“저는 꽃밭에서 굴러 본 적이 없어서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 법 몰라요. 선생님도 제가 이런 반응 보일 거, 몰랐다고 하지 마요. 나는 선생님 마음 충족시켜 줄 수가 없어요. 내가 원했던 마음도 아니고, 그냥 선생님 혼자 키운 마음이잖아요. 제 책임이 필요한가요?”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술을 다문 김재겸의 눈시울이 유난히 붉었던 것 같다. 나는 일부러 김재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우리가 예전처럼…….”

“우리한테 예전이 어디 있어. 친구였던 것도 아닌데.”

결국 내 시선을 먼저 피한 건 김재겸이었다. 나는 김재겸의 위축된 모습을 보며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축였다.

“그러니까, 더는 다가오지 마세요. 부담스러워요.”

나는 그길로 김재겸을 지나쳤다. 보물단지라도 되는 양 페로몬을 꽁꽁 싸맸던 김재겸에게서 무거운 기운이 담긴 페로몬이 희미하게 퍼졌다. 그 페로몬에 동요가 될 것 같아 걸음을 서둘렀다. 지끈지끈 아파 오는 머리에 손으로 이마를 감쌌다.

무지근하게 내려앉은 어둠에 몇몇 환자들은 이미 이불을 뒤집어쓴 채 잠을 청하고 있었다. 분위기를 보니 곧 소등도 머지않은 것 같았다.

“선생님!”

병실 바깥에서 기웃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 유정이가 입술을 예쁘게 말며 손을 흔들었다. 그에 작게 웃은 내가 유정이에게 다가갔다.

“이제 성샌님이라고 안 하네.”

“연습했어요! 재겸이 성, 성샌, 선생님이랑.”

보조석에 앉는 나를 보며 유정이가 자랑스럽게 웃었다. 낯선 발음이 좀처럼 입에 붙지 않는지 몇 번 더듬거리면서도 환하게 웃는 얼굴이 이제야 좀 아이다웠다. 유정이에게서 튀어나온 이름에 얼굴을 살짝 굳혔던 내가 곧 얼굴을 풀며 유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직 화해 안 했구나.”

그런 모습을 또 기가 막히게 캐치한 유정이가 내 눈치를 보며 느릿하게 말했다.

“싸우질 않았는데 무슨 화해를 해. 약속했던 건 잘 지키고 있어?”

“그럼요! 오늘 피 뽀밨는데 바늘 때문에 너무 아팠거든요? 그 성샌님이 옆에 있는 의사 성샌님한테 제 혈관이 잘 안 보여서 그렇다고 설명하는데 제가 저 때문이 아니라 성샌님이 잘모탄 거라고 했어요. 잘했죠?”

한 번 입에 밴 버릇은 연습해도 흥분하면 소용이 없나 보다. 나는 그런 유정이가 귀여워 한참을 웃었다. 칭찬 하나 없이 웃기만 하는 내가 민망했는지 유정이가 입술을 내밀며 입을 닫았다.

“잘했다고. 오늘은 뭐 했어?”

“피 뽑고, 상담했어요.”

나는 유정이가 방사선 치료와 함께 정신과 치료도 병행하고 있다는 걸 떠올렸다.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유정이는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나도 늦지 않게 치료를 받았으면 금세 털어 낼 수 있었을까.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계속 미련을 가졌다. 그러나 나는 형이 죽기 전으로 돌아왔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다. 그래서 그 미련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 재겸이 선, 생님이랑 이야기도 하고, 또 이 사진도 선물로 받았어요.”

“사진?”

“네, 선생님 동생이래요. 선생님이 저 잘 걸을 수 있게 꼭 도와주겠다고 약속도 했어요.”

그러면서 유정이가 내미는 사진을 나는 얼굴을 한껏 굳힌 채 내려다봤다. 많이 바랜 듯 보이는 사진에는 여자아이가 한 명 앉아 있었다. 나는 김재겸과 언뜻 닮아 보이는 얼굴을 보며 이 여자아이가 김재겸의 동생이라던 김유정인 것을 알아챘다.

“재겸이 선생님 완전 다정하죠? 그러니까 이제 그만 화해하면 안 돼요?”

얼어붙은 나를 보면서도 유정이는 입술을 끊임없이 달싹였다. 나는 문득 속이 불편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진 속의 여자아이는 무표정이었다. 사진을 찍는 것이 어색한 듯 한껏 굳은 얼굴을 한 아이를 떠올리며 나는 마른세수를 했다. 내 기억 속의 김재겸은 항상 웃는 낯이었다. 김재겸의 웃는 모습은 그가 다정한 사람일 것 같다는 인상을 심어 줬다.

나는 조금 전 내가 보았던 김재겸의 표정을 상기했다. 미소를 담지 않은 김재겸의 얼굴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김재겸은 형이 내게 페로몬을 덧씌웠을 때 얼굴을 잠깐 굳혔던 적이 있었으니까. 웃고 있지 않았을 때의 김재겸은 예상외로 날카로운 인상이었다.

나는 여자아이의 눈, 코, 입에서 날카로운 분위기의 김재겸을 연상했다. 만일 내가 김재겸의 그런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사진 속 여자아이가 김유정이라는 것에 대해 한참이나 의심했으리라.

두개골을 붙잡고 뇌를 거칠게 흔들어 대는 것처럼 머리가 징징 울렸다. 나는 가슴께까지 덮인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숙직실을 울려 대는 코골이가 유난히 시끄러워 잠자긴 그른 것 같았다. 나는 억지로 눈을 감았다.

띠링

작게 울리는 알림 소리에 내가 뒤집어썼던 이불을 신경질적으로 치웠다. 호출용 휴대 전화는 웬만하면 문자 올 일이 없었다. 그저 스팸으로 치부하기엔 또 지나치게 신경 쓰인다.

천 근 같은 눈꺼풀을 꾹꾹 눌러 대며 상체를 일으켰다. 기둥에 대충 걸쳐진 의사 가운 주머니를 뒤져 휴대 전화를 찾았다.

[안 자면 연구실로 와]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내가 잘못 보기라도 한 듯 눈을 비볐다. 지금 시간은 새벽 2시였고, 낯익은 번호는 형의 번호였다. 형이 이 시간까지 병원에 남아 있었나. 나는 미적거리던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가운을 집어 들고 조심조심 숙직실을 나왔다.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을 때까지도 나는 하품을 뱉어 내기 바빴다. 2시면 그리 늦은 시간도 아닌데 누적된 피로는 내 체력을 더 빨리 지치게 만든다. 뻐근한 목을 한 바퀴 돌린 내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형의 연구실 문에 달린 자그마한 창문을 들여다보며 기웃거리고 있는데 문이 벌컥 열렸다. 놀란 내가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며 문틈을 확인했다. 문틈에서 형의 페로몬 잔재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고, 형이 그 중심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퇴근해?”

다리미질이 잘되어 있는 판판한 와이셔츠를 입은 형이 고개를 저으며 연구실의 문을 닫았다. 도어 록이 잠기는 소리가 뒤늦게 울리고 나는 복도를 걷는 형의 옆에 따라붙었다.

“어디 가는데?”

퇴근도 아니면 지금 이 시간에 어딜 간단 말인가. 내가 다시 한번 더 묻자 정면을 응시하던 형이 나를 내려다봤다.

“자러.”

아무런 고저가 느껴지지 않는 담담한 어조였다. 어디서? 나는 형에게 두 번 묻는 대신 부지런히 형을 따라갔다.

복도 끝에 위치한 연구실에 도착한 형이 문고리를 내렸다. 형이 연구실 안으로 기척을 숨기자 괜히 주변을 살피던 내가 형의 뒤를 따랐다.

연구실 내부를 훑던 눈이 놀라 휘둥그레졌다. 아무도 쓰지 않는 연구실을 당직실로 개조한 방이었다. 인턴 숙직실에서나 보던 싸구려 2층 침대가 아니라 아주 푹신해 보이는 침대가 구석마다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흡사 호텔 방과도 같은 아늑한 분위기에 입술을 벌리자 형이 타이를 풀며 나를 돌아봤다.

“4층은 시끄럽잖아.”

병원 스탭들을 위한 당직실인 것 같았다. 연동에 있었던 당직실에 비하면 시설이 지나치게 좋았다. 내가 의사 가운을 침대 헤드에 대충 걸치며 푹신한 매트리스 위에 앉았다. 형이 손목시계를 풀며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얼른 자.”

“나 숙직실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내가 작게 웃으며 베개에 머리를 누였다. 온몸을 감싸는 푹신한 기운에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잠이 들 것 같았다. 형이 협탁 위에 시계를 올려놓는 소리가 들렸다.

“병동에 없었으니까.”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꺼풀을 가까스로 들어 올렸다. 내가 몸을 구석 쪽으로 구르며 옆자리를 툭툭 두드렸다. 앞머리를 쓸어 넘기던 나른한 표정의 형이 그런 나를 보며 짧게 웃었다. 형의 페로몬이 서서히 가까워졌다. 옆자리에서 묵직한 무게가 느껴졌고, 나는 눈동자를 짓누르는 것 같은 눈꺼풀을 잠자코 수용했다.

머리카락을 건드리는 바람과도 같은 감촉이 좋았다. 나는 바다를 연상케 하는 페로몬 속에서 부드러운 바닷바람을 맞았다. 머리를 아프게 하던 고민도, 수시로 날 지치게 만들던 피로도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몸을 움츠리며 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 밤은 나를 꾸준하게 괴롭히던 악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밤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이어진 호출에 오래 자지는 못했지만, 며칠 만에 질 좋은 수면을 취했더니 비교적 몸이 가벼웠다. 서둘러 오메가 병동으로 움직였다. 414호에 위치한 병실에 들어서자 김현재가 내게 베드를 맡겼다.

“2번 수술실.”

내가 베드를 양 끝으로 붙잡은 간호사 틈에 끼어 베드를 밀었다. 병실을 벗어난 베드가 수술 전용 승강기에 안전하게 실리자 손을 뗄 수 있었다.

다른 때보다도 부산스러운 병동을 보니 이른 새벽부터 진행되는 수술이 많은 모양이었다. 승강기의 문이 열리자 내가 다시 몸에 힘을 실었다. 2번 수술실로 끌리는 베드를 보던 내가 막 수술이 끝난 4번 수술실의 베드를 다시 옮기기 시작했다.

회복실로 이동해야 하는 환자였다. 베드를 옮기던 내가 4번 수술실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김재겸에 잠시 멈칫했다. 김재겸 역시 나를 보곤 마스크를 벗던 움직임을 멈추었다. 내가 고개를 한 번 숙이며 베드를 마저 밀었다. 김재겸은 나를 부르지도, 내 움직임을 막아서지도 않았다.

아침까지 굶어 가며 베드를 옮겼더니 체력이 금세 바닥을 쳤다. 오전 내내 베드를 옮겼던 나에게 강유한은 가서 배를 채우고 오라고 했다.

주먹으로 목덜미를 두드리며 구내식당으로 옮기려던 경로를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땀으로 뒤덮인 몸을 먼저 해결하고 싶었다. 오후가 되면 다시 땀으로 녹녹하게 젖어 들 몸이었지만 나는 당장 찝찝한 기분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NS 인턴 이한음입니다.”

샤워실에 도착한 뒤 대충 몸을 헹구고 머리까지 감은 나는 울리는 호출에 머리를 털다 말고 휴대 전화를 집어 들었다.

타이밍에 들어맞게 배 속에서 끓는 소리가 울렸다. 아직 10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인데. 나는 다시 병동으로 복귀하라는 소리가 들려올까 봐 긴장했다.

─ 올라와.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발신인은 형이었다. 레지던트들의 전화가 아닌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며 젖은 수건을 빨래 박스에 밀어 넣었다.

내가 형의 연구실 안으로 걸음을 뻗자 형이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얼굴에 걸려 있는 안경은 형이 무언가를 연구하고 있었음을 알렸다. 작년에 비하면 형이 수술을 집도하는 일이 확실히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형이 하루 종일 논문을 준비하거나 연구를 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내가 오전에 밀었던 베드 중 집도의가 형이었던 환자를 떠올렸다. VIP 병동 환자였다.

느끼기에 아마 형은 일반 병실 환자들보다 수술이 간간이 있는 VIP 병동 환자를 맡으면서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해서든 교수직으로 올려 보내겠다는 병원의 의도가 투명했다.

그런데 왜 형은 교수직을 달기도 전에 도피하듯 의료 봉사를 떠났을까. 병원장도, 형도 몰랐던 걸 보면 예정되어 있는 일은 아닌 게 확실했다.

사고를 쳤을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이? 형이 내 맞은편으로 와 앉을 때까지도 나는 불현듯 들었던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형이 원목 테이블에 쇼핑백을 올렸다. 쇼핑백 안에 있던 것을 테이블 위로 올리는 손놀림을 보던 내가 형의 얼굴을 살폈다. 형의 시선이 내게 잠시 닿았다. 내 젖은 머리를 훑는 눈길이 곧 내 눈으로 떨어졌다.

“잘 좀 말리고 다니든가.”

“말리기도 전에 부르길래.”

나를 나무라는 형을 보며 작게 웃었다. 형이 플라스틱으로 된 포장 용기를 열어 내게 내밀었다. 초밥이었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레지던트에게 불려 간 나를 위해 시간을 쪼개 초밥을 포장해 왔을 형을 그리며 초밥을 하나 집어 들었다. 분에 넘치는 행복감이었다. 이 순간이 평생 깨지지 않았으면 싶을 정도로.

***

차가운 태양과 벽돌 같은 구름, 온몸을 짓누르는 무거운 공기와 형체를 띠지 않는 얼굴. 그리고 형과 함께하는 2008년도의 나.

공통점이 있다면 큰 모순이 작용한다는 것이고, 그 속에는 실재하는 무언가가 확실하다는 것. 그렇다. 나는 그 모순 속에서 실재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실제 속에서 허구였던 적도 있었다.

2018년, 그러니까 내가 기면증 진단을 받고 수시로 기절했을 때. 나는 그 속에서 형과 몇 번 조우한 적이 있다. 태양의 냉기에 얼어붙은 듯 솜사탕 같던 구름이 저마다 굳어 있었다. 나를 압박하는 기압에 나는 제자리에 선 채 눈앞의 형을 바라본다.

2018년도의 형은 어떤 모습일까. 시선이 더듬더듬 형의 몸을 훑는다. 그리고 그 시선이 마침내 얼굴까지 다다랐을 때, 나는 항상 눈물을 짓곤 했다.

떠오르지도, 그려지지도 않았다. 10년 전의 형도, 2018년도의 형도. 그 형체 없는 얼굴에도, 나는 그 순간에 머물고 싶었다. 형이 날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날 향해 웃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내 앞에 형이 잔존하고 있음에 안주할 때, 때를 놓치지 않는 어둠이 나를 덮친다. 눅진하게 내 몸을, 내 의지를 감싼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더 이상 형이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선물을 주는 건가 싶었다. 형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하는 나를 위해 실낱같은 온기를 내어 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선물은 곧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찬찬히 깨지기 시작하는 환영이 유리 조각이 되어 내 몸 깊숙이 꽂혔다.

나는 살을 헤집는 고통 속에서도 형을 향해 웃어 보였다. 내게 해가 되어도 괜찮아. 나는 형을 사랑하니까. 내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형이 웃기 시작한다.

웃는다, 형이.

“그만 처웃고 퇴근해. 오프 물리기 전에.”

퉁명스러운 목소리에 서둘러 자리를 떴다. 경의실에서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움직임이 가벼웠다. 나는 티셔츠에 팔을 마저 끼워 넣으며 캐비닛을 닫았다.

아니, 닫으려 했다. 내 시선이 닿은 곳은 캐비닛 안쪽에 부착된 자그마한 거울이었다. 나는 푸석푸석하게 일어난 거울 속 피부를 보며 손으로 쓸어 만졌다.

정신없는 인턴 생활 속에서 얼굴이 점점 수척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에 감도는 표정은 생각보다 가벼워 보였다.

그런 얼굴을 한 내가 낯설었다. 낯선 감각이 왠지 싫지 않아 거울 속에 어색하게 서 있는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지잉.

먼지가 내려앉은 거울에 손을 뻗으려던 행동이 멈추었다. 나는 휴대 전화에 뜨는 형의 번호를 보며 서둘러 캐비닛을 닫았다.

퇴근할 때 같이 들어갈까? 아까 그 말을 토해 낼 때 자칫 잘못했으면 입에서 심장이 튀어나올 뻔했다. 내가 긴장 어린 표정으로 형의 얼굴을 살폈다. 머지않아 형이 입을 열었다. 그래. 그게 형의 대답이었다.

“형.”

로비와 통하는 건물 정문을 나서자 슈트 차림의 형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내가 그 옆에 서자 눈짓으로 나를 확인한 형이 검지와 중지 사이에 둔 담배를 튕기듯 버렸다. 저무는 해를 뒤편에 둔 우리는 나란히 걸었다.

나는 분홍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을 보다 형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내 시선이 느껴졌는지 형이 고개를 틀어 나를 내려다보았다.

하늘 속의 바람과 형이 퍽 조화롭다고 생각했다. 형과 눈이 마주치자 입술이 자연스레 호선을 그렸다. 나는 형을 향해 웃는 모습이 9년의 세월을 낱낱이 기억하는 내가 봤을 때도 어색하지 않은 모습이라 감히 단언할 수 있었다.

나와 시선을 마주한 채 느리게 끔벅이는 형의 눈꺼풀이 부드러웠다. 내가 손을 뻗어 형의 손을 붙잡았다. 손바닥에서부터 피어나는 온기가 혈액의 순환을 돕는 기분이었다. 나는 시선을 바닥에 박고 조금 더 큰 보폭으로 걸었다. 떨어졌다 도로 닿는 발걸음이 물 위를 걷는 듯 사뿐거렸다.

미성년과 성년으로 이어지던 시기에 종종 이런 적이 있었다. 형의 오프 날에 맞춰 병원 카페에서 공부하며 형을 기다리던 날. 그때는 연인의 관계가 아니었기에 손을 붙잡고 있지는 않았지만 형과 나를 감싸는 풍경이 그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과거에 파묻혀 가벼운 걸음을 내딛자 옆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웃음소리로 향하는 고개가 형의 미소를 담았다.

나는 이 순간을 정말 모순이라고 할 수 있는지 의아했다. 지고 있지만 여전히 뜨거운 태양도, 바람을 타는 구름도, 안정감 있게 닿는 공기의 무게도. 나는 형체 없는 형의 얼굴에 지금의 형을 덧대었다.

형과 함께하는 2008년도의 나를 더 이상 자각몽 속에 가두지 않기로 했다. 마음을 달리한 이유는 별거 없었다. 형이 나를 향해 웃어 주어서. 그런 형과 마주한 시간이 점점 길어짐에 따라 걸어야 할 길이 두드러지는 기분이었다.

나의 마음가짐이 형에게도 닿은 모양인지 형은 내게 향한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잘하고 있어. 나는 그 웃음 속에 내포된 의미를 그렇게 받아들였다.

나란한 걸음과 맞잡은 두 손, 함께 걷고 있는 길이 찬란했다. 그 찬란함 속에서 우리가 향한 곳은 원래의 종착지와 조금 떨어진 인적 드문 술집이었다.

우리는 마주앉은 채 술잔을 기울였다.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는 술이 달았다. 서서히 오르는 술기운에 내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계속 신경 쓰이면 의료비 지원되는 쪽으로 알아볼게.”

“어?”

나를 보던 형이 술을 한 모금 넘기며 말했다. 내가 눈을 멍청하게 뜨며 되물었다. 술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조유정이라는 애.”

나는 소리 없이 입을 달싹였다. 나를 보며 웃던 유정이와 김재겸이 들고 있던 영수증이 머릿속을 빠르게 넘나들었다. 유정이 일을 형이 나서서 도와주겠다고? 희미하게 느껴지던 취기가 가시는 기분이었다.

“……그건 이미 김 선생님이 알아봤을 텐데.”

김재겸이 의료 복지에 대해 알아보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혹은 이미 어느 정도 지원을 받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런데 2008년도의 복지 혜택이 그렇게 좋았을까. 의미심장한 생각이 들었다. 내 얼떨떨한 목소리에 형이 잠시 침묵했다.

“병원 자체에서 지원해 줄 수도 있고.”

나는 그게 형이 예의상 뱉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형의 도움으로 유정이가 의료비를 지원받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런데 형이 왜? 형이 선뜻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게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은 나, 두 번째는 유정이.

“신경 쓰이잖아.”

내 당혹스러운 표정을 가만히 응시하던 형이 말했다. 나는 무감각한 표정 속에 담긴 형의 의도를 파악할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형의 표정 속에 내포된 의미를 알아볼 수 있었는데.

“…….”

잠깐씩 오가던 정적이었지만 이번엔 꽤 길게 이어졌다. 내가 형에게 향하던 눈동자를 테이블에 뒀다.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소주병과 빈 소주잔. 나는 소주잔에 옅게 깔린 소주를 보았다. 천장에 달린 전구가 보였다.

“네가 걔한테 목매는 이유 알아.”

이어지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형은 내 기나긴 침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숨을 깊게 들이켰다. 초점이 수시로 흔들렸다. 눈을 감아야 할까.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2008년도 기준으로 내가 형과 함께한 지도 10년의 세월이었다. 형은 내가 아직도 그때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걸 안 걸까.

손끝이 잘게 떨렸다.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형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상처투성이였던 미성년의 내가 다시 형의 앞에 서게 될까 봐, 조금 무서웠다.

“가자.”

그런 나를 바라보던 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가 입술을 꾹 다물고 형을 올려다보자 형이 내게 손을 뻗었다. 평소에 자주 듣던 소리였지만 이상하게 오늘따라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가자. 그 말은 열일곱의 내가 형을 처음 마주쳤을 때도 들었던 말이었다. 갈 곳이 없던 내가 퇴원하는 것을 주저하자 형은 그런 나를 보며 내게 선뜻 손을 내밀었다. 그때 형이 짓던 표정과 지금 형이 짓는 표정이 서로 같은 표정이었던가.

형은 내가 나를 옥죄는 순간에 오래 머무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서 잡으라는 듯 나를 집요하게 바라보는 형의 시선에 내가 조심스럽게 형의 손을 맞잡았다.

그때 내가 형과 함께했던 10년의 세월을 어떻게 견뎠는지 떠올랐다. 그 안락함 속에서 내가 왜 그렇게 형에게 의지할 수 있었는지. 형은 좀처럼 짬이 나지 않는 병원 생활 속에서도 틈만 나면 나를 곁에 뒀었다.

형은 내가 그 순간에 오래 머무르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그게 내 상처로부터 온전히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형의 손을 잡았다.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으니까.

***

‘보호자는.’

의사의 무심한 말투가 내게 닿았다. 보호자. 나에게 그런 게 존재했던가. 나는 김중현을 정말 내 보호자라고 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만약 그런 게 보호자라면 나는 절대 보호자의 유무에 답할 생각이 없었다. 내 세상의 보호자는 오직 나 하나였으니까.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것도, 내게 해를 가할 수 있는 것도 오직 나 하나였다.

나는 대답 대신 내가 누워 있는 병실을 훑었다. 병원은 처음이었다. 양호실과 비슷할 줄 알았는데 내가 누워 있는 공간에는 나를 치료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없었다.

학교 도서관에서 시간 때우기용으로 읽었던 소설책이 떠올랐다. 소설 속에서 읽었던 정신 병원의 묘사와 얼추 비슷했다.

나는 나를 결박하고 있는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지만 느낌을 따르기로 했다. 새하얀 벽지와 새하얀 이불. 창문을 가리는 아이보리색의 커튼만이 바람을 타고 있었다. 그게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유동적이었다.

나는 커다란 병실 안에 나와 의사 하나만 존재하는 것을 보며 마치 정신 병원 격리실에 갇힌 기분이 들었다.

김중현이 언제 의사에게 손을 써 두었을까.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김중현이 모를 리 없었다. 몸이 정처 없이 떨렸다. 입술을 거칠게 뜯던 내가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결국 나는 김중현에게 벗어날 수 없었다. 끌려간다면 또 얼마나 맞을까. 아마 이번엔 일주일간 결석을 할 수도 있었다. 아니, 곧 방학이었으니 결석일을 일주일이나 채우지는 못할 것이었다.

나는 그게 못내 아쉬웠다. 김중현의 아들인 김성현의 시험지와 내 시험지를 바꿔치기하는 것도, 김성현과 그의 무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참을 수 없었지만, 차라리 그게 김중현의 시야 안에 담기는 것보단 나았다.

나는 김성현의 성적표를 확인한 김중현이 분노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기말고사 점수란에 간결하게 0이 적힌 성적표는 고소했지만 모든 화가 내게 돌아왔다.

그런 김중현을 짐작하고 있었던 나였지만 한순간에 다른 방향으로 돌변한 김중현을 감당하기엔 벅찼다. 아마 해소하지 못한 분은 나 대신 다른 아이들에게 향했으리라. 손을 들어 내 목을 조이고 싶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성년자는 보호자 없으면 퇴원 못 해.’

내 기나긴 침묵에 의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미 김중현과 오간 대화가 있을 텐데 내게 보호자를 찾는 것이 지나치게 집요했다.

나는 그게 김중현의 속셈인 것 같았다. 네가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내가 필요해. 그러니까 굴복해. 어서 인정해. 김중현의 목소리는 멀리서 듣기만 해도 토악질을 유도했다.

내 불안정한 눈이 오기로 삐딱함을 담았다. 고개가 의사에게 향했다. 그러나 나는 그 의사의 얼굴을 오래 바라볼 수 없었다.

그 흔한 동정조차 담기지 않은 눈빛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눈동자와 반듯한 얼굴. 기절하기 직전에 본 얼굴이 다시 눈앞에 있었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다 냄새가 난다 했더니 그게 의사에게서 나는 냄새였던 모양이다. 나는 의사에게서 시선을 돌리기 전 확인했던 의사의 이름을 되뇌었다.

이해준. 얼굴만큼 반듯한 이름이었다. 이유도 없이 당황한 내가 목덜미와 어깨, 가슴팍을 미친 듯이 긁었다.

의사에게서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의사가 곧 자리를 빠져나가고, 잔뜩 움츠린 몸을 긁던 내 고개가 반사적으로 틀어졌다.

지금이 기회였다. 도망가야 한다. 성급한 몸짓이 침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악했다. 급한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 몸이 바닥으로 굴렀다. 팔에서 어깨로 찌르르 올라오는 고통이 예사롭지 않았지만 나는 서둘러 몸을 이끌었다.

병실 문을 연 내가 양쪽으로 이어지는 복도에 잠시 갈등했다. 그때 왼쪽 코너에서 의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소스라치게 놀란 내가 반대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야!’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빠르게 발을 굴렸다. 제발… 제발 그냥 놔줘. 나 좀 놔줘. 목 끝까지 차오른 눈물이 자꾸만 눈앞을 가렸다. 심장이 부서질 것처럼 뛰어 댔다. 나를 쳐다보는 놀란 시선들을 돌아보던 눈이 굳었다. 비상구로 향하던 몸이 바닥과 가까워졌다.

쿵.

내 발에 걸려 넘어진 몸이 원망스러웠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내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반쯤 일으켜진 몸이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넘어질 때 닥친 충격이 생각보다 컸던 모양이다. 아니면 몸이 미쳐 버리기라도 했는지. 나는 얼어붙은 몸을 바르작거리며 떨었다.

안 돼. 이 상황에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저항은 눈물을 흘리는 것뿐이었다. 바닥으로 낙하하던 눈물이 하나둘 고이기 시작했다. 한 곳으로만 떨어져 내리는 눈물이 내 상황을 일컫는 것 같았다. 벗어나려 용을 써도 그 자리, 김중현의 손안이었다.

내가 고개를 억지로 틀어 뒤를 보았다. 나를 내려다보며 밭은 숨을 토해 내던 의사가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겼다. 정갈했던 인상이 찌푸려진 것을 보며 달달 떨려 오는 몸을 여실히 느꼈다.

의사가 한 걸음 더 내게 다가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거리에 나는 몸을 움츠리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나 나는 곧 눈을 멍청하게 뜰 수밖에 없었다.

‘괜찮아.’

사시나무 떨리듯 떨어 대는 몸을 따뜻한 체온이 감쌌다. 나직하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거짓말처럼 다정했다. 곧 내 주위로 포근한 무언가가 맞닿았다. 등 뒤를 토닥이는 손길에도 몸을 떨던 내가 의사를 보았다.

의사는 마구잡이로 긁어 대는 바람에 생채기가 난 목덜미에 연고를 발라 주었다. 나는 그제야 손톱 안쪽에 끼인 소량의 피를 볼 수 있었다.

침대에서 바닥으로 구르면서 뽑힌 바늘이 살갗을 엉망으로 헤집은 흔적 위로 소독약이 얇게 펴 발렸다. 내가 몸을 흠칫 떨며 팔을 뒤로 물렸으나 의사는 상처 위를 거즈로 덮을 때까지 내 팔을 놔주지 않았다.

내가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조심스레 들어 의사의 표정을 살폈다. 양호 선생님이 늘 달고 있던 동정 어린 표정과 뒤섞인 귀찮음이 아니었다.

상처를 치료하던 의사가 고개를 들자 내가 다시 시선을 땅에 박았다. 손톱을 쥐어뜯던 움직임이 곧 의사 뒤를 확인했다.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 김중현에 목이 타들어 갔다. 수명이 날로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가고 싶으면 적어.’

그런 나를 내려다보던 의사가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김중현이 나를 붙잡고 있으라고 했던 게 아니었나? 의사의 주위를 방황하던 시선이 종이 속 글씨를 읽었다. 개인 정보 동의서. 의사가 받으라는 듯 종이를 한 번 흔들었다.

‘……정말요?’

의심 어린 표정이 종이를 받아 들었다. 내가 의사의 눈치를 봤다. 정말 보내 주는 게 맞나? 김중현이 나를 찾는 게 아니었어? 짧았던 호흡의 간격이 점차 늘어지기 시작했다. 내 물음에 의사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왜?’

‘치료 끝났으니까. 퇴원 수속은 내가 밟을 테니까 보호자 부를 필요 없어.’

그제야 내가 헛짓거리를 했다는 걸 알았다. 아까부터 한결같은 의사의 표정이 그가 거짓말을 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알렸다.

나는 긴장을 머금었던 몸이 힘없이 늘어지는 것을 느꼈다. 병원이 김중현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안 나는 동의서에 서명하는 일을 주저했다.

나 혼자 지내던 병실, 내 상처를 귀찮게 여기지 않고 치료해 주던 의사, 나를 다독이던 의사의 손길. 한 번도 가져 보고, 겪어 본 적이 없는 상황이 안전해 보이는 이곳에서 벗어나는 일을 망설이게 했다.

그런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듯 의사가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그 표정에 덜컥 겁을 먹었다. 그게 꼭 또 왔냐는 듯 나를 바라보던 양호의 표정 같았다. 동의서를 쥔 손에 힘을 실은 내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적어.’

‘…….’

‘그래야 가지.’

이어지는 음성에 동의서를 구긴 손으로 시선이 가 닿았다. 그때, 그런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의사가 내게 손을 뻗었다.

‘갈래?’

‘…….’

‘우리 집.’

일순 숨이 멈추었다. 나는 너를 해치지 않아. 시종일관 같은 표정을 지었던 의사의 눈동자에서 나는 그 말을 읽었다.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김중현과 의사 중 누구를 따라갈 것이냐 묻는다면 일절 고민 없이 대답할 수 있었다. 의사요. 나는 떨리는 손을 의사의 손 위에 겹쳤다.

몸을 옆으로 틀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는 형의 얼굴을 조금도 빠짐없이 내게 보여 주었다. 가지런하게 덮인 속눈썹과 예쁘게 뻗은 콧대, 그 아래로 떨어지는 입술을 눈에 담던 내가 손을 조심스레 들었다. 형의 뺨을 쓸어 만지고 싶어 들었던 손은 형에게 닿기도 전에 다시 아래로 추락했다.

나는 형과 내 주위를 조용히 떠도는 페로몬을 느꼈다. 우성인 형이 페로몬 잔재를 갈무리하지 않는 까닭은 하나였다. 처음 만났던 날 이후로 내가 형의 페로몬에 조금씩 안정을 찾아서. 그 후 병적으로 형의 페로몬에 노출되는 것에 집착하자 형은 페로몬을 갈무리하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게 10년이나 이어져 습관으로 굳은 모양이었다. 형은 잠을 자는 와중에도 페로몬을 끊임없이 흘려 댔다. 히트 사이클 주기에는 그게 독이 되어 형이 집에 들어오는 일이 없었지만.

나는 그때 내가 형을 따라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생각은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는다. 죽었겠지.

나는 내가 형을 만나지 않았다면 단명했으리란 생각에 한 치의 의심이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세상은 어린 혈혈단신에게 너그럽지 않았으니까.

“……형.”

내 목소리가 형의 주위로 작게 흐드러졌다. 형은 깊은 잠을 자는지 미동도 없었다.

“유정이는 강해.”

“……”

“나는 여전히 약해 빠졌는데.”

울음기를 머금은 목소리는 하잘것없었다. 내 목소리에 담긴 파동에 페로몬이 잘게 흔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부러워.”

같은 보호 속에서 유정이는 굳건해지고 있었고, 나는 여전하다. 간신히 덮어 낸 상처는 거즈를 들출 때마다 곪아 있었다. 그게 보기 싫어 나는 끊임없이 거즈를 덧붙였다.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상처는 점점 뼛속까지 갉아먹었다.

조금만 건드려도 나는 허둥거리며 그 자극에 반응한다. 김중현으로부터 벗어난 지도 곧 스무 해가 지나간다. 유정이를 부러워할 위치가 아님에도 나는 유정이가 부러웠다. 나는 그런 내 마음이 모났다고 생각한다.

“너도 강해.”

나는 조용히 들려오는 소리에 온몸을 굳혔다. 형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형이 내 쪽으로 몸을 틀었다.

“사람은 자기보다 강한 사람을 돕는 일에 목매지 않아.”

“…….”

“그러니까 그만 돌아봐. 지금 너는 내 옆에 있잖아.”

상담 치료부터 이야기를 해 볼까요? 환자의 병명을 정확히 짚어도 정신과 상담에 들어가면 원인을 해결할 수 없을 때가 태반이에요.

그렇다고 지난 일을 계속 돌아보게 두면 환자는 그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의사는 환자를 그 원인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끌어내 줄 순 없지만 이끌어 줄 수는 있어요. 환자 스스로가 원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다만 그 일이 쉽지는 않을 거예요. 자존감이 낮은 환자의 경우 저항은 아주 흔하게 나타나거든요. 약물 치료를 권하기 전, 환자가 그 원인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계기를 먼저 다잡는 것이…….

정신과학 수업을 처음 들을 당시 수업을 진행하기 전 교수가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형의 눈에 비친 내가 수시로 김중현을 돌아보는 것이 보였다.

결국은 같은 루트였다. 유정이를 돕기로 마음먹으면서 그때의 나를 과거로부터 건져 내도, 나는 어느새 김중현에게로 상처투성이의 나를 다시 밀어 버리고 만다.

형이 그 시절의 이한음을 다시 떠밀려는 날 붙잡았다. 그 시절의 이한음은 등 뒤로 느껴지지 않는 힘에 의아한 듯 고개를 돌린다. 얼굴을 가득 덮는 멍과 흉이 나를 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 시절의 이한음은 알겠다는 듯 김중현에게로 스스로 걸어가기 시작한다.

그런 모습을 보던 내가 떨리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으로 향했던 시선이 다시 그 시절의 이한음에게 향한다. 내가 서둘러 그 시절의 이한음을 붙잡았다.

……가지 마. 짓이기듯 겨우 토해 낸 내 속삭임에 그 시절의 이한음이 작게 웃기 시작한다. 나는 그 얼굴에 따라 웃을 수 없었지만 스스로를 떠밀었을 때와는 다르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느꼈다.

***

손 위로 겹쳐지는 작은 손이 부담스러웠던 적이 있었다. 나에게 의지하는 듯 내 손을 꼭 붙잡은 채 꼬물거리는 손이 나는 싫었다.

나도 아파. 나는 나를 바라보는 눈빛을 향해 속으로 내 진심을 쏟아 냈다. 나는 너를 돌봐 줄 여력이 없어. 마주친 눈이 나를 보며 활짝 웃는다. 나는 너처럼 속 좋게 웃을 수도 없어. 그 미소에 따라 짓는 웃음이 억지로 비틀렸다. 나는 네가 싫어. 그러면서도 나는 작은 손을 힘주어 잡는다. 그게 내 숙명이라는 듯이.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나는 골목길에 몸을 숨겼다. 시선은 끊임없이 건물을 둘러싼 울타리를 훑었다. 땀이 차오르는 손바닥을 바지에 비볐다.

심장이 뛰는 게 유독 두드러지게 느껴졌다. 아직도 있을까. 아무도 드나들지 않는 입구를 연신 흘깃거리던 시선이 한 곳에 머물렀다. 내가 예전에 입었던 교복. 숨을 들이켠 내가 서둘러 시선과 함께 몸을 돌렸다.

“……한음이 형?”

나와 눈이 마주쳤던 고등학생이 흐릿한 음성으로 나를 불렀다. 나는 얼어붙은 몸을 고등학생 쪽으로 틀었다.

“형 맞지?”

고등학생은 울타리 너머를 눈치 보며 내게 빠르게 다가왔다. ‘형, 언제 와?’ 나는 그때 들려왔던 순진무구한 목소리를 떠올렸다. 고등학생, 아니, 주혁이는 내 손을 잡고 내 고통의 근원지로부터 거리를 넓혀 갔다.

여덟 살이었던 주혁이가 이제는 열여덟이 되어 내 손을 잡았다. 나는 어느덧 훌쩍 커 버린 주혁이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주혁이와 나는 고아원에서 멀리 떨어진 카페에 자리를 잡았다. 아메리카노와 캐러멜 마끼아또가 올려진 트레이를 든 내가 주혁이 앞에 앉았다. 고아원에서 멀어진 상태지만 심장은 여전히 부담스러울 정도로 빨리 뛰었다. 내가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아메리카노를 홀짝 넘겼다.

“얼마 만이지. 10년 만인가?”

주혁이가 캐러멜 마끼아또가 담긴 컵을 들며 말했다. 스트로우를 입에 문 주혁이가 커피를 쪽 빨아 마셨다. 주혁이의 말은 물음표로 끝을 냈지만 정말 10년의 세월이 흘렀는지 내게 확인받을 생각은 없어 보였다.

“……주혁아.”

“어떻게 지냈어? 나랑 아홉 살 차이였으니까, 형이 이제 스물일곱인가? 직업은 뭐야? 설마 백수로 찾아온 건 아니지?”

무겁게 운을 뗐지만 주혁이가 수많은 물음을 쏟아 냈다. 장난스러운 표정이 얼굴을 가득 메웠다. 내가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냥, 뭐……. 병원에서 일하고 있어.”

“병원? 와, 씨. 병원에서 무슨 일 하는데? 설마 의사는 아니지?”

상기된 표정의 주혁이가 다시 빨대를 물었다. 그런 주혁이와 눈을 마주했던 내가 아무 말 않자 주혁이는 적잖이 충격받은 얼굴로 컵을 내려놓았다.

“진짜 의사야? 와, 미친. 공부 잘했던 건 알고 있었는데 그 정도였어? 형 출세했네. 어디 병원이야? 나 거기 가면 지인 할인해 줘?”

10년 전에 비해 주혁이 말투가 많이 걸걸해진 것 같았다. 내가 그 생소함에 작게 웃음을 지었다. 내 웃음에 주혁이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었다.

“병원은 지인 할인 같은 거 없나.”

“병원에서 볼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내 말에 주혁이가 머리 위로 올라갔던 손을 내렸다.

“아, 하긴. 같은 고아원 출신은 좀 껄끄럽겠지? 설마 형 고아라고 무시하는 새끼들도 있어? 내가 친구들 데리고 가서 진상 좀 부릴까? 형 아는 사람이라고는 안…….”

“네가 아플 일 없었으면 좋겠다고.”

“아, 뭐야. 그런 거였어?”

내 말을 오해했던 주혁이가 아까보다 더 짓궂게 웃으며 컵을 들어 올렸다. 그 웃음에 따라 웃은 내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넘겼다.

“한성대학병원이야. 아직 인턴이라 지인 할인 같은 건 잘 모르겠는데, 찾아오면 네 병원비는 내가 낼게. 그 정도 돈은 있어.”

“와, 형 졸라 멋있어. 아는 사람 중에 의사가 있을 줄은 몰랐는데. 나 이제 병원비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다른 거 뭐 더 시켜 줄까.”

“아니야, 됐어. 배불러.”

연신 커피를 마셔 댄 탓에 주혁이의 컵이 거의 비어 있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주혁이가 손을 저으며 나를 도로 앉혔다. 우리 사이를 감도는 적막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주혁이가 컵을 들어 얼음을 씹어 물었다.

“……형 원망 안 해?”

나는 줄곧 내게 웃음을 내비쳤던 주혁이에게 무거운 주제를 들이밀었다. 제일 걱정이 되었던 것은 그거였다. 너희를 두고 도망친 나를 원망하지 않냐고. 내 말에 주혁이가 다시 컵을 들어 얼음을 입에 물었다.

“해.”

대충 예상했던 대답이 들려왔다. 나는 손끝으로 머그컵을 긁듯이 만졌다. 시야 안에 다시 주혁이를 담을 수가 없었다.

“계속 기다려도 형은 안 오지. 애들은 자꾸 형만 찾지. 형 소리 들려올 때마다 원장 새끼는 눈이 돌아서 손에 잡히는 건 다 때려 부수지. 그냥 그렇게밖에 기억이 안 나. 한 3일 지나니까 알겠더라고. 형이 이제 여기 안 온다는 거.”

속이 불편했다. 당장 화장실로 뛰어 들어가 변기를 붙잡고 전부 게우고 싶을 정도로. 나는 역류하려는 속을 계속 억지로 삼켰다. 그때는 나도 어쩔 수 없었다고 변명이라도 하고 싶었다.

“이해 못 하는 건 아니야. 그 미친 새끼가 유독 형한텐 더 심했으니까.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닌데, 사실 아까까지만 해도 되게 미웠거든. 어떻게 10년 동안 한 번도 안 찾아올 수가 있냐고. 그런데 형 얼굴 보니까 왜 그랬냐고 따질 수가 없겠는 거야. 형도 썩 잘 지냈던 건 아닌 것 같아서.”

“…….”

“존나 웃기지. 이왕 도망간 김에 잘 지냈으면 싶다가도 못 지냈으면 했는데, 형 보니까 알겠더라. 사실 형이 존나 미워서 못 지냈으면 했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 그런데 형 얼굴 보고 형도 계속 힘들었구나 싶으니까 용서가 되더라. 용서라는 표현이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랬어.”

그러나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주혁이는 날 이해했다. 그게 나를 더 작아지게 만들었다. 같은 상황 속에서도 주혁이는 어른스러워졌고, 나는 한없이 초라해졌다. 차라리 왜 그랬냐고 욕을 하지. 왜 그랬냐고 때리기라도 하지.

“아직도… 아직도 그래?”

“요새는 못 그래. 예전처럼 애들 쥐어 패고 돈으로 입막음했다간 경찰들 옷 싹 벗을걸. 요새 애들 되게 영악해, 가만히 맞고만 있지도 않고. 그 새끼도 늙어서 그런 건지, 정신을 차린 건지. 이제는 쥐 죽은 듯 있더라. 그냥 뭐, 가끔 김성현 사고 칠 때 물건 부수는 정도?”

나는 주혁이의 말에 안심해야 하는 건지 고민했다. 그때는 물건을 부수는 정도로도 깜짝깜짝 놀라서 자지러지게 울던 아이들이 태반이었으니까. 그래도 한시름 놓이는 것을 보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요새 애들은 그때처럼 힘이 없지 않구나.

“아, 그때 있었던 애들은 대부분 입양 갔어. 가끔씩 연락 오는 거 보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더라.”

내 어두운 낯빛에 주혁이가 주제를 돌렸다. 내가 억지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형이랑 연락하고 지내도 돼?”

“그럼.”

조심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내가 주혁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주혁이가 신이 난 얼굴로 내게 휴대 전화를 내밀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휴대 전화와 호출용 휴대 전화 중에 무엇을 알려 줘야 하는지 갈등했다. 개인 번호로는 연락이 와도 받지 못할 때가 많았고, 호출 번호는 알려 줘도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의료진들은 기존의 휴대 전화를 없애고, 호출용에 두 개의 번호를 등록했다. 그러지 않았던 게 이런 식으로 걸릴 줄은 몰랐다. 나는 결국 주혁이 휴대 전화에 두 번호 다 입력했다.

“개인 번호는 못 받을 때가 많아. 급한 일 있으면 이 번호로 연락해.”

나는 급한 일이 무엇인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그 일이 없길 바랄 뿐이었다. 주혁이는 내 말에도 휴대 전화를 받아 든 채 기분 좋게 웃었다.

어둑한 하늘이 하루의 막을 내리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병원에 복귀했다.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가운을 집어 든 나는 불이 반짝이는 휴대 전화를 확인했다.

[형 나 주혁이 ㅎㅎ]

주혁이의 메시지를 본 내가 짧게 웃으며 호출용 휴대 전화를 들었다. 조만간 휴대 전화 하나를 정리해야 될 듯싶었다. 나는 휴대 전화를 가운 주머니에 넣고 서둘러 경의실을 빠져나갔다.

“복귀했네. 가서 ICU 한 바퀴 돌고 이상 있으면 노티해.”

“네.”

강유한이 중환자실에 입원한 NS 환자 차트를 내게 주며 말했다. 강유한이 내미는 차트를 받아 든 내가 걸음을 바삐 움직였다.

복귀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시 전쟁 통에 합류했다. 환자들의 상태를 하나하나 체크하던 내가 마지막 환자에게 다가갔다.

환자의 옆에는 멸균 상태의 보호자가 있었다. 나는 보호자에게 고갯짓으로 인사를 하곤 환자의 정보를 체크했다. 곽윤이, 여, 만 52세, 형질 베타, 진단명은 Aneurysmal SAH(뇌동맥류파열성 지주막하출혈)였다. 수술을 받은 지 곧 사흘째였다.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던 내가 문득 들려오는 목소리에 움직임을 멈추었다.

“……우리 엄마 언제 깨어나요?”

울음기가 인후에 잔뜩 잠겨 있다. 그런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된 건지 콱 틀어막힌 음성이 맹맹했다. 내가 보호자의 얼굴을 살폈다. 붉게 오른 눈가와 부어오른 눈꺼풀, 새빨간 코. 나는 보호자가 꽤 오랜 시간을 슬픔에 허우적거렸다는 것을 알아챘다.

나는 다시 환자의 얼굴을 훑었다. 굵은 튜브를 물고 있는 환자의 얼굴은 척 보기에도 많이 부어 있었다. 조금 전 돌고 왔던 환자와 엇비슷한 모습이었다.

뒤이어 환자의 진료 과정을 담은 차트에 시선을 돌렸다. 뇌동맥류 파열 후 일어난 출혈이라면 3분의 1가량의 환자가 자리에서 즉사하기 마련이고, 그 외 3분의 1가량의 환자는 이송 도중 사망하거나 치료를 받기도 전에, 혹은 받는 중에 병원에서 사망한다.

곽윤이 환자는 그 확률을 뚫고 병원까지 이송되어 수술을 받았지만 경과 상태가 썩 좋지 않다. 어찌어찌 처치를 취했다곤 하나 재출혈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었다. 그러니까, 곽윤이 환자는 머릿속에 시한폭탄을 달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나는 보호자의 물음에 무어라 답해 줘야 할까. 그건 희망적인 말일까, 절망적인 말일까.

“……선생님.”

“의식을 얼마나 빨리 찾는지는 환자분께 달려 있어요.”

연동에서 일할 당시의 나였다면 보호자에게 향할 대답은 딱 여기까지였을 것이다. 확실하지 않은 대답은 안 하느니만 못하다. 나는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는 보호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고군분투하고 있는 환자분의 의지를 믿어 주는 게 보호자님의 역할이에요. 환자분이 잘 이겨 낼 수 있게 의심하지 말고 믿어 주세요. 저희도 최선을 다해서 케어할게요.”

“…….”

“……계속 울고 계시면 환자분이 속상해하실 거예요.”

머뭇거리던 내가 작업복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나는 내가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손수건으로 땀을 닦은 적이 없다는 걸 다행으로 여겼다. 보호자가 손수건을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박시연 씨, 면회 시간 끝났어요.”

그때 중환자실 담당 간호사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보호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보았다. 손수건으로 눈가를 꾹꾹 눌러 닦고는 내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우리 엄마, 잘 부탁드릴게요.”

곽윤이의 보호자가 곧 나를 지나쳐 중환자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보호자가 빠져나간 뒤에도 곽윤이의 얼굴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환자를 위해 울던 보호자를 본 게 한두 번은 아니었다. 그때는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는데, 지금은 좀 달랐다. 환자가 병상에 있지 않았을 때 보호자에게 얼마나 잘 대해 주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곽윤이의 상태를 마저 적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나는 내 인사를 받아 줄 이가 의식이 없는 상태임을 알고 있었지만 곽윤이 환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곤 등을 돌렸다.

***

“선생님!”

등 뒤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나를 부르는 밝은 음성에 옅은 미소를 띤 내가 몸을 틀었다. 유정이 목소리였다. 등을 돌려 유정이를 찾는 얼굴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김재겸의 손을 꼭 부여잡고 있던 유정이가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는 행여 유정이가 내 눈치를 볼까 서둘러 웃었다. 유정이를 따라 가슴께까지 올린 손을 흔드니 유정이가 김재겸의 손을 끌고 내게 다가온다.

“치료받았어?”

병동에 있어야 할 유정이가 지하 1층에 있는 이유를 찾았다. 허리를 숙여 유정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묻자 유정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잘했다며 머리를 쓰다듬던 나는 텅 빈 가운 주머니에 아쉬움을 토할 수밖에 없었다.

편의점에 갈 일이 없으니 유정이에게 건넬 사탕이 있을 리 만무했다. 괜히 애꿎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내가 숙인 허리를 들었다. 그러다 문득 김재겸과 눈이 마주쳤다. 내가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려 다시 유정이를 내려다보았다. 불편한 감정을 담은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아, 졸리니까 올라가서 자야겠다.”

그런 나를 골똘히 올려다보던 유정이가 김재겸의 손을 놓은 채 기지개를 켰다. 입을 벌리고 하품하는 시늉을 하는 모양새가 자연스럽지 않았다.

“데려다줄게.”

“혼자 갈 수 있어요.”

나를 지나쳐 걷는 유정이의 뒤를 따라붙으려던 움직임이 딱딱하게 굳었다. 불편함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나를 한사코 만류한 유정이가 오른발을 절뚝거리며 조금씩 멀어졌다. 그런 유정이의 뒷모습을 내가 기어코 따라 밟자 유정이가 인상을 쓰며 나를 돌아보았다.

“아, 저 괜찬타니까요, 진짜.”

유정이가 손을 뻗어 내 허리를 밀었다. 기껏 걸어온 길이 다시 원점이 되었다. 나를 굳이 김재겸의 앞까지 밀던 유정이가 불편한 다리를 다시 반대쪽으로 뻗었다.

곤란했다. 손으로 목덜미를 감싼 내가 손끝에 힘을 실었다. 유정이의 의도가 너무나 투명했다. 유정이가 떠나고 난 자리를 휩쓴 적막이 숨 막혔다.

“미안해요. 유정이가 저렇게 고집 있는 성격은 아닌데.”

“네, 뭐…….”

김재겸 역시 당황한 얼굴이었다. 김재겸과 짧게 맞닿았던 시선을 다시 유정이에게로 돌렸다. 뒤를 돌아 흘깃거리는 것을 봐선 아마 이 이후의 김재겸과 내 사이를 기대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나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 고민했다. 유정이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나는 김재겸을 돌아보았다.

“가 볼게요.”

김재겸에게서 등을 돌리니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아직까지도 뒤통수에 김재겸의 시선이 진득하게 달라붙는 것이 느껴졌지만 그와 마주하고 있었을 때보다는 나았다.

“유정이.”

그러나 김재겸은 내가 숨을 틀어막는 무언가에서 벗어나는 걸 원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지원받더라고요, 병원에서.”

떼려던 걸음이 땅바닥에 붙은 듯 꿈쩍도 하지 않았다. 형에게 유정이를 지원해 달라고 속 시원하게 말하진 못했다. 어쩌면 형은 이미 유정이를 지원하고자 나선 후에 내게 물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고개가 제멋대로 돌아갔다. 김재겸은 모호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김재겸의 입장에서도 유정이가 지원을 받는다는 건 좋은 일이어야 할 텐데. 나는 마냥 기뻐 보이지 않는 김재겸의 표정이 의아했다.

“……다행이네요.”

김재겸이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뒤늦게 입을 뗐다.

“역시 알고 있었나 보네요.”

아주 잔잔한 눈빛이었다. 그런 김재겸의 시선이 불편했던 내가 서둘러 고개를 틀었다.

“이 선생님.”

김재겸은 여전히 끈질겼다.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김재겸의 부름에도 내가 그를 쳐다보지 않자 김재겸은 그런 내가 익숙한 듯 말을 이었다.

“미안하다고는 안 해요, 나.”

“…….”

“내 마음에 죄책감을 가져야 하나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 선생님이 워낙에 매몰차게 굴어서 상처가 좀 컸거든요.”

나는 김재겸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손을 작게 떨었다. 흠칫 떨려 오는 손끝을 조심스럽게 말았다.

“……왜.”

울고 싶은 건 나였다. 그렇게 상처받은 듯 날 쳐다보지 않아도 당장에 소리쳐 울고 싶은 건 나였다.

“……왜 하필 나예요? 나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나는 그냥…….”

나는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었다. 형을 살리기 위해 애썼고, 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이곳에 오고 나서 내가 한 행동들은 전부 내 목표를 위한 일이었다.

나는 내가 예상하지 않았던 일들이 더 이상 벌어지지 않았으면 했다. 내가 건드려 놓은 과거가 틀어지면 틀어질수록 무서웠다.

김재겸의 마음 따위는 전혀 고맙지 않다. 왜 하필 나 같은 걸 좋아하냐고 물어보며 호기로운 대화를 나눌 만큼 나에겐 여유가 없다.

형만 가득 채우기도 부족한 마음이었다. 꾸역꾸역 끼어든 유정이를 밀어내지도 못하는 나는 그저 이 상황이 버겁기만 하다.

제발 당신까지 보태지 말란 말이야. 그만큼 밀어냈으면 돌아설 만도 하잖아. 나는 내가 신경 써야 할 사람이 많아지는 걸 원치 않는다.

내 사람조차도 지키지 못하는데 쓸데없이 품을 크게 넓힐 생각도 없었다. 그러니까 나 좀 내버려 두면 안 돼? 얼굴이 금세 우그러질 것 같았다.

“사람을 마주치다 보면 가끔 그러는 경우가 있어요.”

“…….”

“그 사람이 짓는 표정 하나하나가 궁금해질 때.”

듣고 싶지 않았다.

“왜 저 사람은 한결같이 저런 표정을 할까.”

날 이해시키려는 말은 내가 원하는 말이 아니었다.

“나한테 쏘아붙일 때마저 어떻게 저렇게 우울해 보일 수가 있을까. 뭐가 그렇게 힘들길래 늘 지친 얼굴을 하고 있을까. 왜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강한 척을 하는 걸까.”

“…….”

“그날은 왜 그렇게 혼이 빠져라 울었을까. 바늘에 살점이 찢겨 나간 줄도 모르고 왜 그렇게 급하게 병실을 빠져나갔을까. 헤어진 연인을 다시 만나서? 그렇게까지 절박했었나?”

문득 토기가 밀려왔다. 나는 손을 들어 손등으로 입술을 틀어막았다. 주먹이라도 쑤셔 넣으며 위장이 잠잠해지길 기다리고 싶었다.

“생전 남 눈치라곤 안 볼 것처럼 굴고선 그런 표정도 짓는구나. 꼭 날을 세우지 않더라도 단호한 표정을 지을 수 있구나. 흥분을 하면 사실은 감정이 곧이곧대로 드러나는 사람이구나. 어, 웃을 줄도 아네. 웃을 때는 영락없이 애 같다.”

듣고 싶지 않다면서 왜 김재겸이 하는 말 하나하나를 귀에 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김재겸이 일컫는 나는 그간 내가 어떤 얼굴로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지 깨닫게 만든다.

유독 내게 짙게 달라붙었던 형의 시선이 서재원의 헛소리 때문만이 아니었단 걸, 나는 꼭 뒤늦게서야 알아채고 만다. 다른 사람이 알아볼 만한 걸 형이 모를 리 없었으니까.

“그러다 보니까 알게 됐죠. 그게 별 뜻 없이 궁금했던 게 아니라, 내 관심의 척도였다는 걸.”

그저 아스라이 토해 낸 푸념이었다. 그 푸념을 기회로 김재겸은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했다.

“애초부터 끼어들 틈 같은 건 없다는 거,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받아 달라고 고집부릴 생각도 없었고…….”

김재겸의 목소리는 체념한 듯 들리기도 했고, 억울한 듯 들리기도 했다. 나는 모순이라고 할 수 있는 그 두 감정 중 어느 쪽으로 신경을 기울여야 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그날 갑자기 부럽더라고요.”

“…….”

“내가 본 이 선생님 표정은 열 손가락으로도 셀 수 있을 정도인데, 이해준 선생님이랑 있던 이 선생님은 그 잠깐 사이에도 표정이 쉴 새 없이 바뀌니까.”

“……그만.”

이제는 정말 무리였다. 자신의 감정을 내게 밀어붙이는 김재겸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하얗게 센 얼굴은 당장이라도 속을 게워 낼 정도로 일그러져 있을 것이다.

“나한테는 보여 주지 않았던 그 수많은 표정이 더 궁금해지고, 보고 싶고.”

“그만해요.”

“내 마음을 말하는 순간 이 선생님이 지을 표정이 짐작 가다가도 혹시라도…….”

“제발…….”

“혹시라도 내가 상상만 하던 얼굴을 해 주진 않을까 해서.”

내 사정에도 불구하고 무자비한 밀어붙임이었다. 종국에는 김재겸에게서 내가 뒷걸음질 치기에 이르렀다.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하는 대신.”

김재겸은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나를 안타깝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 안타까움이 나를 향한 것인지, 내게 이런 취급을 받는 자신을 향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싶지 않았다.

“접을게요.”

처음 김재겸의 마음을 불신했던 건 사실이었다. 나는 김재겸에게 어떤 여지도 흘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책임져야 할 의무도,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 줘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 마음은 김재겸이 나를 향한 마음에 정당성을 부여해도 마찬가지였다.

“이 선생님 말대로 나 혼자 가진 마음이고, 오래 키운 마음도 아니니까.”

나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시키려는 것이 김재겸의 진짜 의도였는지 의문을 가졌다.

“금세 괜찮아질 거예요.”

나를 향해 떨어지는 표정은 누군가의 동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적당했다. 아니, 아니다. 나를 이해시키기 위함이 아니다. 김재겸의 말은 한발 물러서는 듯 보였지만 나를 전혀 배려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좋은 동료로 남아요, 우리.”

“나는…….”

나 역시도 그를 배려하지 않았기에, 내게 받은 상처가 컸기에 자신의 감정을 이리도 낱낱이 풀어헤치는 것이었을까.

“나도 미안하다는 말 안 할 거예요.”

울음기에 잠긴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덧없이 떨렸다. 나는 도망치듯 돌려세운 몸을 이끌었다. 그만둬 달라고 호소하는 내게 당신의 감정을 앞세웠으니까. 죄책감이라도 가지라는 듯 나를 몰아세웠으니까. 나는 더 이상 김재겸에게 매몰차게 돌아섰던 일에 대해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다.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페로몬들이 뒤엉켜 있다. 그 페로몬 중 내게 제일 절실한 페로몬을 쫓았다. 복도를 거니는 발걸음은 초조했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페로몬 중에 제일 짙은 쪽.

“어, 음아, 너 왜…….”

무영의 폭풍 같은 페로몬은 내가 찾고자 하는 페로몬을 희미하게 가렸다. 무영이 의아한 듯 내게 손을 뻗어도 나는 뭐에 홀린 듯 계속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NS 병동에도, 연구실에도 형의 페로몬 잔재만 잔잔하게 떠다닐 뿐 정작 내가 원하는 건 없었다.

얼굴을 우그러트린 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아래로 내려가려던 엘리베이터가 내 저지에 맑은 기계음 소리를 내며 열렸다. 초조한 행동을 곧이곧대로 드러내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려던 내가 잠시 멈칫했다.

“이한음.”

문이 열리자 형의 페로몬 잔재가 쏟아져 내렸다. 고요히 내 주위를 도는 페로몬에는 의아함이 담겨 있는 것도 같고, 걱정을 담고 있는 것도 같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내가 형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높이에 맞게 추켜올린 고개가 덜컥 형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영문도 모른 채 그저 내가 이끄는 행위에 따라 입술을 벌린 형이 기꺼이 내 혀를 받았다. 성급하게 들이켜진 숨이 형의 페로몬을 맡았다.

맞닿은 가슴팍에서는 요동치는 형의 심장이 느껴졌고, 복잡한 마음에 아무렇게나 얽히고설키는 혀에 덜컥 안심이 됐다.

밀려드는 안정감에 서러움을 토해 냈다. 당황한 듯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형이 손을 내 머리 위로 얹었다. 형의 손가락에 감기는 머리칼이, 차근히 쓸어내리는 손짓에 한층 더 엉겨들었다.

그만두고 싶다. 김재겸에게서 도망치던 순간 내 머리를 잠식한 생각이었다. 유정이고, 트라우마고,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그저 형과 함께이고 싶었다.

형으로 인해 과거를 회피한 채 지내던 날들이 더 편안했던 시절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다 덮어 놓고 외면하는 것이 오히려 내가 숨을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듯했다.

오기라면 누구한테도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 오기가 나를 연동에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만들었으니까.

연동에서도 우여곡절은 많았다. 나는 그 자리도 간신히 차지했다고 생각한다. 쉽게 저버렸다면 나는 결국 쓸모없는 사람이 되어 술에 의지하여 살았으리라. 내가 그 까마득한 현실을 버텨 낸 것은 오로지 오기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의 나에게서는 나를 살게 했던 오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나는 이제 형의 생사에 목을 맨다. 나를 지금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한 것은 형을 살리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랬던 내 다짐이 이제는 둘이 되고, 셋이 된다. 나는 내가 책임져야 할 것들과 신경을 기울여야 할 것들이 늘어날수록 부담감에 파묻힌다. 그게 자꾸 나를 위태롭게 만드는 기분이었다.

저질러 놓은 일들을 주워 담아 폐기 처분할 수도 없었다. 천천히 지치기 시작하는 마음에 닿은 형의 페로몬은 전부 놓아 버리고 싶은 내 마음에 용기를 북돋아 준다. 그냥 다 내버려 둔 채 형에게 목매기만 할까. 나는 대답 없는 질문을 속으로 퍼부었다.

내 시선이 막 수술 현미경에서 눈을 떼는 형에게 꽂혀 떨어지지 않았다. 형이 마무리를 하며 고개를 떼자 보조에 의해 수술 현미경이 수술대로부터 멀어졌다. 형이 나와 눈을 마주치자 내가 서둘러 형에게 니들을 내밀었다.

“네가 해 봐.”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당황한 내가 형의 눈높이와 함께 고개를 아래에서 위로 들자 형이 턱짓으로 앉아 있던 자리를 가리켰다. 비록 수술을 다 마친 상태에서 두개를 봉합하는 일만 남았지만 나는 형의 요구가 떨떠름할 수밖에 없었다.

경험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지만 초턴 시절에는 대개 날달걀의 껍질막만 봉합하는 것이 전부였다. 아무리 그래도 두개골은 닫은 후에 뼈막부터 건막과 피부를 차근히 봉합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내 실력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었다. 인턴에게 덜컥 두개 봉합을 맡기는 형을 바라볼 의료진들의 시선이 걱정이었다.

“봐 줄게.”

형은 주저하는 내게 다시 말을 건넸다. 내가 수술방 안을 함께 차지하던 의료진들의 눈치를 보았다. 의료진들의 시선이 내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깊숙이 꽂혀 있었다. 형이 자리에서 일어났으니 굳이 수술대를 함께 지키지 않아도 된다 여겼던 몇을 제외하곤 다들 목석처럼 서 있었다.

시간을 확인하던 의료진을 본 내가 결국 형의 자리에 섰다. 수술이 한시라도 빨리 끝나야 다른 환자들을 케어할 수 있다. 부족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쓰는 의료진들은 내가 집도의 자리를 차지한 것보단 어서 빨리 이 수술이 끝났으면 하는 눈치였다.

“서서 하게?”

내가 엉거주춤 서자 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엉겁결에 형이 앉았던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손에 들린 니들과 두개가 열린 채 누워 있는 환자.

얼마 만이지. 나는 실로 오랜만인 순간에 형용할 수 없는 모호한 느낌을 받았다. 그저 살기 위해, 명예를 위해 매달렸던 일이었지만 사실은 그 일을 무엇보다도 좋아했던 내가 다시 수술대 앞에 섰다.

기면증으로 인해 마지막 수술장에서 최악을 선보였던 내가 긴장하며 침을 무겁게 삼켰다. 깊게 들이쉬고 내쉬자 빠져나간 숨이 마스크 안쪽을 뜨겁게 데웠다. 니들을 쥔 채 떨고 있는 손을 환자의 열린 뇌막 가까이 대자 거짓말처럼 평정심이 찾아왔다.

오랜 시간 동안 접하지 않았던 일이었지만 손에 익은 움직임은 조금의 흠도 없었다. 열었던 두개골에 나사를 조이고 뼈막과 건막, 두피까지 봉합하고 나자 조금은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형의 눈빛은 무감하다. 잘했다는 듯 고개를 옅게 끄덕이기도 한다. 내가 두개 봉합을 완벽하게 끝내자 어시스턴트로 들어왔던 변미현이 “처음 맞아? 잘하네.” 칭찬을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개두술을 집도한 횟수만 수백 번이다. 숫자로 일일이 세는 것도 힘들 정도로 숱하게 해 왔던 것이었지만 그게 또 괜스레 부끄러웠다.

이런 식으로 칭찬을 받은 것이 기억도 안 날 과거였거니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이 그걸 봐 주었으니까. 죽을 것처럼 앓아 대던 아까와는 달리 기대감이 가슴께를 넘나들었다. 내가 형의 눈치를 보자 형이 수술실 밖을 눈짓하며 먼저 수술실을 나섰다.

나도 당장에 형을 따라 나가고 싶었지만 형은 보호자와 이야기 중일 테고, 무엇보다 이번 수술에 사용한 기구를 소독해야 했다. 내가 메이요 대에 손을 뻗자 수술 간호사가 내 손을 막았다.

“됐어요. 제가 할게요.”

“아, 네…….”

간호사의 반응에 내가 두 눈을 끔벅거렸다. 민망함에 고개를 푹 숙이곤 서둘러 수술실을 빠져나갔다. 마스크를 벗자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달라붙었다.

시야에 잘 들어차게끔 손을 들어 올렸다. 고작 니들을 쥐었을 뿐인데도 하나의 수술을 마친 것처럼 기분이 오묘했다. 예전에는 당연하던 수술이라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던 것일까. 꼭 첫 집도를 무사히 끝낸 것처럼 가슴이 벅찼다.

전에 형의 수술실에 들어갔을 때도 형에게 부러움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는 나를 감싸는 감정에 선뜻 정의를 내릴 수 없었다. 그저 기분이 조금은 홀가분했던 것만 느낄 수 있었다.

수술 가운을 벗고 나서야 수술실을 빠져나갔다. 보호자와 이야기를 끝낸 형이 수술실 앞에 비치된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생소한 표정으로 형에게 다가가자 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그런 형을 보며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에 일어났던 일을 상기했다. 엘리베이터에서 펑펑 우는 나를 달래던 형은 내가 조금씩 진정을 하자 나를 수술실로 이끌었다. 그제야 나는 형이 수술실로 향하던 길이었다는 걸 알았다. 형을 찾는 호출이 울리자 부끄러움에 뺨이 붉게 올랐다.

나는 혹시나 형이 나를 나무랄까 봐 입술을 깨물었다. 연구실로 향하는 형의 뒤를 따라 밟는 걸음은 시원스럽지 못했다. 내가 쭈뼛쭈뼛 형이 걷던 길을 밟자 형이 등을 돌렸다. 무슨 할 말이 있는 줄 알고 걸음을 따라 멈췄던 내가 이내 형의 의도를 파악하곤 형의 옆에 섰다. 형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왜 울었는데.”

형이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속삭이듯 작게 말했다. 형의 말에 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냥 갑자기 너무 힘이 들어서 그랬다고?

사실 갑자기라고 하기엔 원인이 명백했다. 김재겸을 떠올리자 다시 기분이 바닥을 쳤다. 내가 운 이유를 솔직하게 말하면 형에게 설명해야 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유정이 지원 확정이라며.”

“그거 때문에 울었다고?”

내 말에 형이 눈살을 좁혔다. 좀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놀라지 말라고 미리 말해 둔 건데.”

그게 어딜 봐서 미리 말해 뒀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말이었는지. 나는 질문으로 끝을 냈던 형의 말을 다시 되뇌었다.

“그냥… 또 놀랐어.”

형이 이번에는 뭐 그런 거로 우냐는 듯 헛웃음을 토했다. 나는 그런 형의 얼굴을 훑었다. 하나둘 맞물리는 실을 보니 복잡하게 얽혔던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 기분이 들었었다. 처음 봉합을 연습할 때 자꾸 엉키고, 삐뚤빼뚤하게 묶이던 것을 떠올렸다.

급한 마음에 가뜩이나 미숙한 움직임을 서두르니 애먼 곳이 묶이기도 했었다. 누가 보아도 서툰 손짓이 마음에 들지 않아 결국 니들을 집어 던지기까지 했던 나였다. 만약 형이 그랬던 내 과거를 보았다면 눈가를 좁히며 천천히 하라고 꾸짖을 게 뻔했다.

“천천히…….”

작게 이어지는 내 말에 형이 고개를 틀어 나를 보았다. 고개를 휘휘 저으며 작게 웃자 형이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이번에도 천천히 풀어내면 당장은 복잡하기만 한 이 순간, 이 감정을 조금 더 명석하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러나 작은 희망을 가졌던 얼굴이 다시 가라앉았다.

천천히 하기엔 시간이 촉박했다. 형이 떠나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형이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볼 때마다 무언가가 심장을 옥죄는 기분이다.

형이 의료 봉사를 떠났던 이유가 명확하게 두드러지진 않았지만 이제는 대충 가늠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터진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도피하듯 떠났다거나, 형이 스스로 자진해서 떠났다거나.

나는 되도록이면 후자였으면 했다. 차라리 단순히 봉사를 위해 떠났던 것이라면 적어도 형의 앞길을 막고 최대한 버티고 있을 수 있었으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형을 설득할 수 있었으니까.

모든 오감이 전자일 것이라 예견하며 감각을 곤두세웠지만 나는 형을 향해 애써 웃었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내가 형을 지킬 것이다.

설령 그 일이 나를 다치게 한다 해도 상관없었다. 그 일을 뒤집어쓴다면 그것보다 달가운 일은 없었다. 그편이 나았다. 형을 다시 잃는 것보단, 내가 형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내 웃음에 형이 의아한 듯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지만 곧 형의 입술이 예쁜 호선을 그린다. 나는 그 웃음에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오늘도 형이 날 향해 웃는다. 나는 그 웃음이 오래 이어졌으면 했다.

***

형과 함께하는 순간들은 늘 평온하다. 그 시간은 30분이 채 이어지지 않지만 나는 그 순간을 거리낌 없이 누리기로 했다. 형은 내 앞에 앉아 달력을 보고 있었다. 길게 꼬인 다리의 끝에는 허공에 뜬 발이 일정한 간격에 맞춰 작게 까딱거린다.

형은 의외로 몸에 밴 습관이 많았다. 화가 날 때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 댄다거나, 무언가를 집중해서 볼 땐 책상에 팔꿈치를 올린 채 엄지로 턱을 받치듯 붙이곤 검지의 기다란 마디로 입술을 가볍게 쓸어 만진다거나, 깊은 생각을 할 때 발끝을 저렇게 까딱거린다거나.

너무 사소한 습관들이었지만 나는 형의 습관 하나하나를 죄다 기억하고 있다. 나는 형이 달력을 보고 있는 게 유달리 불안했다. 그저 스케줄을 확인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그렇다면 지금 형이 해야 할 것은 발을 까딱거리는 것이 아니라 입술을 만지는 일이었다.

“……달력은 왜?”

심장은 긴장으로 인해 거칠게 박동했지만 목소리는 태연했다. 다만 주저하듯 첫 운을 뗀 게 문제였다. 내가 형의 얼굴을 살피자 형이 까딱거리던 발끝을 멈추었다. 달력에 향했던 시선이 천천히 내게 닿는다. 형의 깊은 눈동자가 내 얼굴을 살피듯 분주히 움직였다.

“곧 두 달이라.”

형의 고요한 목소리가 곧 정적에 감춰졌다. 형이 책상용 달력을 유리로 된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곤 몸을 뒤로 기댔다. 소파 등받이에 편하게 기댄 몸이 지나치게 느긋하다. 형이 머그컵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넘겼다.

두 달? 형의 불투명한 말에 내가 눈가를 좁혔다. 세로로 얇아졌던 눈이 곧 원상태를 찾는다. 전에 내가 형에게 두 달만 시간을 달라고 했던 일이 떠올랐다. 곧 두 달이 지나니까 이제 옆에 있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인가. 갑자기 오한이 찾아와 형 몰래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형에게서 흘러나오는 페로몬 잔재에 떨던 몸이 안정을 찾았다. 형이 달력을 보며 깊은 생각을 했던 이유가 앞서 생각했던 의도가 아니란 것을 어슴푸레 짐작했다. 그러면 왜? 나는 질문의 끝에서 형이 내게 했던 말을 상기했다.

내가 생각한 건 좀 다르거든.

형은 분명 서재원이 이야기했던 내용과는 다른 생각을 한다고 했다. 형의 앞에서 내가 어떻게 굴었더라. 울고, 불안해하고, 초조해하고, 가지 말라며 떼를 쓰고, 두 달만 곁에 있게 해 달라며 조르고.

나는 형이 형의 죽음을 직감하기라도 했을까 무서웠다. 내가 형의 앞에서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했었나. 통 기억이 나질… 아, 서재원. 순간 서재원이 내 노트 속 내용을 형에게 떠벌렸었다는 사실이 머리를 강타했다.

“형이 생각한 건 뭔데?”

떨리는 음색에 형이 무심한 눈꺼풀을 한 번 감았다 떴다. 그때 내가 한 말 때문에 형은 두 달 후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예상하고, 서재원이 한 말 때문에 무슨 일이 형의 죽음이라는 것까지 파악한 상태일까.

“…….”

“…….”

“뭐가 됐든 걔 말이 허튼소리라는 거.”

형이 그 일을 내게 캐묻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도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었다. 참 오랜 기다림이었다. 나는 그런 형의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여겼다.

형의 짙은 눈은 내가 그 이야기를 호소하듯 내뱉을 수 있도록 용기를 심어 주지만 문제는 첫 마디를 떼기엔 내가 겁이 너무 많았다.

무영과 형을 대할 때의 차이는 나를 더 갑갑하게 만들었다. 내 앞의 형이 무영이라 생각하고 이야기를 꺼내 볼까. 그러나 나는 곧 고개를 젓는다. 암만 상상이라도 형은 무영이 될 수 없다.

내가 형을 무영처럼 대할 수 없는 이유는 하나였다. 나는 형을 잃을까 두려웠고, 형이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겁이 난다.

그게 한 번 꺼내고 난 뒤 함께 머리 맞대고 헤쳐 나가면 됐을 일을 이렇게까지 길게 끌게 된 이유다. 그건 설득하면 설득하는 대로 따라오는 무영의 성격과 한 번 아닌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형의 성격의 차이였다.

답답해. 속이 메스꺼웠다. 속을 달래기 위해 차를 한 모금 넘겨도 불편한 속은 똑같았다. 내가 컵을 내려놓고 형을 보자 순간 형의 눈이 커지기 시작한다. 형이 자리에서 일어남과 동시에 툭, 하고 무언가가 바지 위로 떨어진다.

본래는 새빨간 파장을 반사했을 테지만 소라색의 수술복과 융화되어 탁한 붉은 기가 된 것. 커다란 원을 그리며 옷에 스며드는 피를 멍하니 보던 내가 고개를 숙이고 콧등 쪽을 가로로 누르며 지혈했다.

놀랄 것은 없었다. 예전부터 피로와 더불어 코피를 달고 살았으니까. 오히려 이렇게 뒤늦게 터진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형이 휴지를 내밀자 내가 윗입술과 피부의 경계까지 흘렀던 피를 닦았다. 옷 갈아입어야겠네. 옷에 스며들은 피의 형태는 더 이상 크기를 키우지 않았다.

“쉬어. 호출 오면 내가 내려갈 테니까.”

“금방 멎어. 괜찮아.”

직장 생활을 하며 눈치를 본 전적이 없는 형은 과 사람들이 질겁할 만한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내가 별일 아니라는 듯 굴자 형이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눈가를 좁혔다.

형이 별것도 아닌 코피에 유난스럽게 구는 까닭을 유추했다. 내가 형의 앞에서 피를 보였던 적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형은 형대로 바빴고, 나는 나대로 바빴으니까. 일에 치여 살아야 하는 직업이 사소한 걸 많이 놓치게 한다.

콧등 쪽을 계속해서 압박하던 내가 손을 뗐다. 콧속은 답답했지만 더 이상 흘러내리는 것은 없었다. 피가 묻지 않은 쪽으로 피가 번진 부분을 문질러 닦았다. 닦이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아도 휴지를 수술복에 비비는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화장실 다녀와야겠다.”

내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자 형이 구석에 비치된 캐비닛을 열었다. 예쁘게 개어진 수술복을 내게 내미는 형의 표정은 무덤덤한 것 같았지만 평소보다 퉁명스러워 보였다. 그 얼굴에 그만 웃음이 터졌다. 내 웃음에 형이 얼굴을 고깝다는 듯 구겼다.

형이 들고 있던 수술복을 잡아 가볍게 당겼다. 형의 얼굴에 향했던 시선이 수술복을 힘주어 잡은 형의 손으로 떨어졌다. 그게 의아했던 내가 수술복을 다시 한번 당기려고 했을 때, 형이 선수를 쳤다. 그 당김에 의해 내 몸이 한 발자국 더 형에게 가까워졌다. 내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무리하지 마.”

무리할 수밖에 없는 걸 알면서. 나는 대답 대신 형과 시선을 오래 맞추었다. 형이 손을 들어 내 입술 위를 손으로 훔쳤다. 뺨에 닿은 형의 손이 뜨거웠다. 덜 닦았었나. 굳어서 그렇게는 잘 안 닦일 텐데. 민망함에 손으로 코 밑을 벅벅 문질렀다.

수술복을 쥔 형의 악력이 조금은 약해진 것 같아 서둘러 수술복을 잡아당겼다. 덕분에 허공을 쥐게 된 형이 손을 아래로 내렸다. 내 얼굴에 달라붙는 시선이 길게 이어지는 만큼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내가 고개를 대충 끄덕이곤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형은 도통 면역이 되지 않는다. 나는 시끄럽게 울리는 박동을 애써 무시하곤 화장실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자 떨림으로 인해 거세게 뛰던 맥이 차게 가라앉았다. 나는 눈앞에 선 김재겸을 보았다.

흰 가운을 손에 쥔 김재겸이 내 입술을 주시했다. 아니, 입술은 아닌 것 같고 거칠게 문지른 탓에 발갛게 오른 인중을. 김재겸의 시선이 곧 내 몸을 훑어 내 손에 쥔 수술복과 핏방울이 스며든 바지로 향한다. 내리깔았던 눈꺼풀이 다시 들어 올려졌다. 나는 김재겸과 맞닿은 눈길을 피했다.

내가 김재겸을 지나쳐 화장실로 이어지는 코너를 돌았다. 김재겸에게서 흘러나와 낮게 깔린 페로몬 잔재가 내 주위를 기웃거리는 것이 언뜻 느껴졌다. 나는 내게 붙은 김재겸의 페로몬 잔재를 서둘러 털었다.

김재겸은 내게 좋은 동료로 남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김재겸과 정말 좋은 동료 사이로 남을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 주관으로는 불가능했다. 아무리 김재겸과 나 사이에 유정이가 끼어들어 있다 해도 그때뿐이리라.

띠링.

무겁던 분위기에 맑은 벨소리가 끼어들었다. 세면대를 틀어 얼굴을 닦은 내가 물기를 가운에 대충 닦았다. 주머니를 뒤져 휴대 전화를 찾은 뒤 내용을 확인했다.

[한음이 형! 또 언제 쉬어?]

[애들이 형 보고 싶다고 난리야]

[쉬는 날 밥 사 주세요 ㅎㅎ]

메시지 하나를 펼치고 나니 두 개의 메시지가 연달아 왔다. 주혁이의 문자에 굳어졌던 얼굴이 한층 풀어졌다. 일정대로라면 다음 오프는 닷새 뒤였지만 나는 당분간 오프를 반납할 생각이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형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글쎄, 보름 정도는 계속 바쁠 것 같아. 키패드를 가볍게 두드려 메시지를 보낸 내가 거울 속 내 모습을 확인했다. 우울해 보인다라. 나는 무겁게 내려앉은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 올렸다. 거울 속에 비치는 부자연스러운 웃음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분명 형의 앞에서는 웃을 수 있었는데. 그때도 지금처럼 부자연스럽게 보였을까.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 내가 형이 내밀었던 수술복을 시야에 담았다. 이번엔 입꼬리가 제멋대로 씰룩거렸다. 나는 뺨을 찌르는 감각이 새삼 낯설게 느껴져 입술을 깨물었다.

이럴 때 보면 형은 꼭 파도 같았다. 더럽혀진 해변을 쓸어 발자국조차도 남지 못하게 만드는 파도. 형이 마음껏 밀려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해변에는 내게 필요치 않은 오물들이 너무나도 많았기에.

형의 수술복은 생각보다 품이 넓었다. 브이넥으로 떨어지는 멱 부분을 늘어지게 잡은 내가 고개를 숙여 코를 킁킁거렸다. 딱히 형의 체취가 배어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괜스레 형과 함께 있는 기분이었다.

수술복 위로 하얀 가운을 걸치고 나면 이게 형의 옷인지 아무도 알아보지 못할 테지만, 적어도 그걸 입고 있는 나는 알고 있었으니 그 기분에 장단을 맞춰 줄 수 있었다.

NS 병동에서 잡혀 회복실에 있던 베드를 일반 병실로 옮기는 동안까지도 몸이 가벼웠다. 코피까지 터진 마당에 피로마저 완전히 가셨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당장은 그랬다.

감정의 기복은 하루에도 몇 번씩 경로를 바꾼다. 아래로 한없이 추락하던 기분을 위로 잡아끄는 건 항상 형이었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과는 정반대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변화가 싫지 않았다.

환자를 빈자리에 옮기고 나서야 병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날은 어느덧 하루를 마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건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곧 소등이 이어지고, 인턴들은 교대로 불려 가 어둠 속에서도 불빛이 비추는 곳을 지킬 것이었다.

제때 식사를 챙기지 못했음에도 딱히 배가 고프진 않았다. 어느새 불규칙한 생활이 몸에 익은 탓이다. 나는 내가 빠져나온 공간과 조금 떨어진 병실에서 기지개를 켜며 나오는 무영을 발견했다. 무영 역시 나를 보며 반쯤 감긴 눈으로 웃었다.

“졸다가 실수하지 말고 숙직실 가서 눈 좀 붙여. 호출기는 나 주고.”

“그러기 좀 미안한데. 나만 바빴던 것도 아니고.”

무영에게 다가가 손을 뻗자 무영이 머뭇거린다.

“사고 수습하게 만드는 것보단 덜 미안하잖아.”

“아, 음이 너무해.”

장난과 진심이 적절하게 섞인 어투에 무영이 우는 소리를 내며 휴대 전화를 내밀었다. 무영의 휴대 전화를 가운 주머니에 넣으며 응급실로 내려가려 몸을 돌렸다.

“아, 맞아. 이리 와 봐.”

그러자 무영이 내 팔뚝을 잡아 어디론가 끌기 시작한다. 반대쪽으로 기운 몸이 잠깐 휘청였으나 곧 무영의 속도에 걸음을 겨우 맞출 수 있었다. 무영이 나를 이끈 곳은 경의실이었다.

“여기는 왜.”

의아함이 담긴 얼굴이 무영을 훑어도 무영은 잠시만 기다리라며 자신의 캐비닛을 뒤질 뿐이었다. 곧 캐비닛 속에서 자양 강장제와 비타민을 꺼낸 무영이 그것을 내게 내밀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받아 드니 무영이 어서 먹으라는 듯 손짓을 한다.

“갑자기 뭔데.”

“환자분이 줬어.”

“그걸 왜 나한테 줘.”

자양 강장제의 뚜껑을 돌려 딴 내가 무영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비타민은 무영을 향한 고마움이 담긴 환자의 마음이었다. 그걸 내가 어떻게 먹어. 내가 도로 무영에게 내밀자 무영이 손을 저었다.

“꼭 음이 너 주라던데. 휴게실에 두면 누가 먹을까 봐 여기에 넣어 놨었거든.”

내 시선이 다시금 자양 강장제와 비타민으로 향했다. 무영의 재촉에 결국 자양 강장제와 함께 비타민을 목구멍으로 넘긴 내가 빈 병과 빈 포장지를 쓰레기통에 밀어 넣었다.

“누가?”

나에게 이런 걸 챙겨 줄 환자가 있었나. 무감하게 떨어지는 목소리와 함께 무영을 돌아보았다.

“누구더라. 무슨 유정이었는데.”

눈가를 좁히며 환자를 떠올리던 무영이 환자의 이름을 꺼내자 눈살이 찌푸려졌다. 유정이가 무슨 돈이 있어서? 게다가 자양 강장제나 비타민은 어린아이가 선물로 주기엔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유정이가 이 정도로 철이 들어 있었나. 반신반의한 표정이 내 얼굴을 스쳤다.

“유정이가 너한테 저걸 줬다고?”

생각해 보니 더 수상쩍었다. 나는 유정이에게 무영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없었는데, 무영이 내 친구인 줄은 무슨 수로 알았단 말인가.

“응, 김 선생님이 그러셨는데.”

“누구?”

“김재겸 선생님. 왜?”

그러나 머릿속을 가득 메운 의문들은 하나둘 해답을 쥐고 차츰 가라앉기 시작한다. 나는 김재겸과 마주쳤을 당시 나를 훑던 시선을 상기했다.

“너 유정이가 몇 살인지 알아?”

“글쎄. 고등학생?”

“유정이 여덟 살이야.”

차분하게 내려앉은 목소리에 무영이 그러냐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 말에 이상함을 느끼지 않는 무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다음부터는 이런 거 받지 마.”

“어어, 유정이가 여덟 살인 거랑 그거 받는 게 무슨 상관인데?”

“유정이가 준 게 아니니까.”

얼굴을 탐탁지 않게 구긴 내가 문고리를 돌렸다. 그러자 무영이 내 뒤를 바짝 따라붙는다.

“그러면 누가 준 건데. 김 선생님? 둘이 친한 거 아니었어?”

응급실이 위치한 1층으로 내려가려던 내가 무영의 등을 밀었다.

“안 친해. 내 호출기까지 떠넘기기 전에 가서 자라.”

아까까지만 해도 피곤해서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붙던 무영이 이내 헛기침을 하곤 떨어져 나갔다.

너무 바쁘면 깨우러 와. 무영은 수많은 물음을 꾸깃꾸깃 접어 넣은 채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멀어지는 무영의 뒷모습을 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짜증 나.

무영의 입장에서는 별 의심 없이 받았겠지만 짜증이 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금세 들킬 거짓말로 내게 비타민을 먹이는 김재겸은 말할 것도 없었다. 신경질적으로 뻗어지는 걸음은 비상구를 밟고 응급실로 향했다.

응급실로 들어가기 전 화로 얼룩졌던 얼굴을 억지로 폈다. 그러나 응급실 데스크에 서서 볼펜을 쥐고 차트를 끄적이던 김재겸을 보니 얼굴이 도로 일그러졌다. 금일 당직표를 미처 확인하지 못한 내가 죄인이었다.

응급실 입구에 서서 가만히 김재겸을 쳐다보던 내가 이내 가슴 주머니에서 펜 라이트를 꺼냈다. 잠깐이었지만 내 시선을 느낀 김재겸이 내 쪽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내게 달라붙는 눈길을 떨쳐 내며 걸음을 옮겼다.

펜 라이트를 통해 실려 오는 환자의 동공을 확인하고 의식을 확인하는 내게 긴 시간 질척이는 시선을 무시했다. 환자에게 집중하다 보니 김재겸의 존재 역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그날의 새벽을 아주 불편하게 보냈다.

무거운 철근이 내려앉은 듯 감기는 눈꺼풀 위로 마사지를 했다. 응급실은 웬만하면 스물네 시간 내내 혼잡했다. 4시가 되어서야 찾은 평온이 이렇게 달가울 수가 없었다. 무영의 몫까지 발을 굴리느라 녹초가 된 몸을 건물 밖 벤치에 앉혔다.

마음 같아선 이 자리에 드러누워 잠을 청하고 싶었다. 새벽 공기는 적당히 찼고, 새벽바람은 적당히 날카로웠다. 이런 날씨면 밖에서 자도 감기는 안 걸릴 것 같은데.

아침 회진까지는 다섯 시간도 채 남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얼른 올라갈까. 마음은 늘어진 몸을 깨우려 성화였지만 체력이 고갈된 몸은 좀처럼 쉽게 일으켜지지 않는다. 느릿하게 감기는 눈에 의지를 맡겼다.

“저… 선생님.”

그러나 그 의지는 작게 떨리는 목소리에도 쉽게 깨고 만다. 발갛게 충혈된 눈이 내 앞에 서 있는 여자에게 꽂혔다.

“아, 네.”

내가 서둘러 몸을 일으키자 여자는 손을 저으며 나를 다시 자리에 앉혔다. 내가 반쯤 일어나 있던 몸을 다시 자리에 앉혔다. 어디서 봤더라. 여자의 얼굴이 어디서 본 것처럼 낯익었다. 기억 속의 여자를 찾기 위해 머릿속을 더듬더듬 헤집었다.

“이거, 돌려 드리려고… 주무시는 데 깨워서 죄송해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한 여자가 내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아, 여자가 내민 손수건을 보던 내가 입을 멍청하게 벌렸다. 곽윤이 환자의 보호자. 나는 뒤늦게 떠오르는 기억에 여자에게서 손수건을 받아 들었다.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시간에는…….”

“…….”

해도 채 뜨지 않은 하늘에 시간을 확인하던 내가 곽윤이 환자의 보호자에게 쏟아붓던 말을 멈추었다. 이 새벽에 중환자의 보호자가 병원에 있다는 건 둘 중 하나였다. 환자가 의식을 찾았거나 환자에게 안 좋은 일이 벌어졌을 때. 설마……. 작은 직감이 머리를 덮치자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내가 굳어진 얼굴로 소리 없이 입술을 달싹이자 보호자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손으로 눈가를 덮으며 흐느끼는 보호자에게 나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서둘러 휴대 전화를 확인하니 누군가 나를 호출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병원을 시끄럽게 울렸을 경고음조차 듣지 못했다. 밖에 있는 게 아니었는데. 작은 한탄이 입 속을 교묘히 맴돌았다.

“저희 엄마 어떻게 해요, 선생님…….”

어떤 상황인지 알 길이 없으니 보호자를 어떻게 위로해 주어야 할지 모르겠다. 손에 들린 손수건을 꾹 쥔 채 아무 말 않자 보호자가 몸을 움츠리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보호자가 고개를 숙이자 대충 묶은 긴 머리가 어깨를 타고 흘러내린다. 주저하던 내가 보호자 앞으로 가 쭈그리고 앉았다.

보호자에게 뻗어지는 손이 옅게 떨렸다. 보호자의 어깨에 닿은 손길은 아주 조심스러웠다. 느릿하게 어깨에 닿았다 떨어지는 손이 아까보다 추위를 과하게 타는 것 같았다.

속이 뒤틀렸다. 환자의 소식을 듣고 정신없이 달려와 눈물을 토해 내는 보호자의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꼭 형의 소식을 접하고 울분을 토해 냈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어느새 졸음이 가신 얼굴이 보호자와 동화되어 우그러지고 있는 기분이었다. 아랫입술이 하얗게 셀 정도로 치아에 실린 강도가 높았다.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넘어가고 있는 침이 속을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보호자는 좀처럼 진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지만 나에겐 보호자의 옆에 오래 남아 있을 만한 여유가 없었다. 보호자를 벤치에 앉힌 내가 그녀의 손에 손수건을 도로 쥐여 주곤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병원에 들어선 내가 중환자실로 향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곽윤이 환자는 예전에 누워 있던 자리 그대로 누워 있었다. 그러나 바이탈이 안정적이지 않았다.

“곽윤이 환자, 무슨 일 있었나요?”

차갑게 식은 손이 내 뒤를 스쳐 가던 간호사를 붙잡았다. 간호사가 내 손길에 걸음을 멈추었다.

“곽윤이 환자 코드 블루 떴었어요. 다행히 조치가 빨라서 Brain damage(뇌 손상)는 없었는데… 아, 기록지 드릴까요?”

나는 과연 이 일을 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중환자에게 코드 블루는 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한 번 심정지가 온 환자에게 두 번의 심정지가 발생하지 않으리란 법은 없었다.

뛰지 않던 심장이 간신히 소생했다 해도 맥이 예전만큼 단단하진 않을 것이다. 깨어날 확률은 더 희박해졌을 것이고, 또 한 번의 코드 블루가 울린다면 환자에게 더 이상의 희망은 없다.

아마 내게 눈물을 보이기 전, 보호자는 주치의에게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전해 들었으리라. 곽윤이 환자가 생사를 넘나드는 현장 속에서 나는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선생님?”

목석처럼 서 있는 나를 간호사가 다시 한번 불렀다. 기록지를 받는다고 해서 인턴인 내가 곽윤이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곽윤이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암담해하는 것뿐이었다.

그건 설령 내가 인턴이 아니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곽윤이 환자의 숨이 붙어 있는 한 최대한으로 케어할 것을 오더로 내려도 딱히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기적을 바랄 수밖에.

“……아니요. 괜찮습니다.”

나는 그런 뻔한 상황을 굳이 되뇌고 싶지 않았다. 미련이 가득 담긴 걸음을 옮기자 의문 섞인 간호사의 시선이 느껴졌다.

중환자실을 벗어나자 막힌 숨이 뚫렸다. 중환자실 대기실 밖에 위치한 의자에 쓰러지듯 앉으니 곽윤이 보호자의 모습이 다시 머릿속에 그려졌다.

예전에는 곽윤이 환자와 같은 상황에 처했던 환자들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이 봤다. 그때는 그저 환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 왜 지금에 와서는 이리도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지. 벽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제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때처럼만 환자들을 대하고 싶었다. 변해도 너무 변했다. 나는 그런 내가 낯설었다. 그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내가 위독해진 환자의 상태 하나에 지나치게 예민하게 구는 것이.

“음아!”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에도 나는 감은 눈을 뜰 수 없었다. 익숙한 페로몬 잔재가 다가와 내 주변을 기웃거린다.

“음아, 자?”

아니. 나는 터져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침과 함께 삼켰다.

“어디 아픈가…….”

무영의 체온이 이마를 짚었다. 차게 식어 있던 머리에 온기가 닿자 눈이 저절로 뜨였다. 내 얼굴을 살피고 있던 무영과 눈이 마주쳤다.

“아, 일어났어? 어디에 있었어? 상황 진정되고 나서 호출기 받으려고 한참 찾았는데 안 보이길래. 깨우러 오라니까 왜 안 깨웠어. 너 한숨도 못 잤지.”

속사포처럼 떨어지는 무영의 음성이 멀리서 들리는 것 같았다. 무영의 손 아래로 그늘진 눈가가 시렸다. 눈을 한 번 깜박이자 눈가를 시리게 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피부 표면을 가르고 떨어지는 눈물의 감각이 여실히 느껴졌다.

“음아, 너… 무슨 일…….”

“무영아.”

왜 지금 이 순간에 형의 얼굴이 떠오르는지. 왜 하필 지금 이 순간에 형의 웃음이 나를 괴롭히는지. 사라지라고 깽판을 쳐도 형의 얼굴은 점점 선명해지기만 한다.

“나 이상해…….”

무서웠다. 곽윤이 환자를 본 순간 거북해지는 속이 무서웠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돌아서는 내 걸음이 무서웠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형을 포기하게 될 내가, 그 순간 나를 너무 무섭게 했다. 기적을 바랄 수밖에. 그때 내가 속으로 했던 그 말을 다른 사람을 통해 다시 듣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웠다.

“너무 무서워…….”

당시에는 사소한 안타까움도 자아내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은 나를 떨게 만들었다. 곽윤이 환자와 형 사이에는 공통점이 없었다. 살아온 환경도, 형질도, 성별도, 지병도. 다만 그들의 시한부 같은 하루하루가 자꾸 유사한 점이 없는 둘을 엮으려 든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뭘 해야 하는 거지? 무슨 일인지도 모를 그 사건을 한없이 기다리며 손 놓고 있어야 하나?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처지였다면 나는 왜, 왜 이곳에 있는 거지?

형이 웃으면 웃을수록 그 모습을 오래 보고 싶다가도 암전 상태에 빠진다. 형의 앞에선 형을 따라 웃음 짓고는 돌아서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숨이 가빠진다. 나는 언제까지 이런 상태를 반복해야 하지.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곽윤이 환자가 의식을 차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까. 아무 소용이 없으면 어쩌지. 아무리 방법을 모색해 봐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걸 깨달으면 어쩌지. 무서웠다. 결국 그게 형과 직결될까 봐.

사람 살리는 일이 직업이었다. 누군가를 살리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다는 것도, 수술방에 들어서는 순간 남에게 전가할 수 없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문턱 앞에서 끄집어낸 사람은 손으로도 꼽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만하면 훌륭한 의사라고 생각했다. 이만하면 죽어 가는 사람을 손 놓고 두고 볼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다. 이만하면, 형을 지킬 수 있으리라 감히 생각했다.

조롱거리가 된 기분이었다. 어쩌지도 못하게 하면서 괜히 헛바람이나 들게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과거로 돌아와서 할 수 있는 건 되풀이되는 것을 지켜보는 일뿐이었을까. 무능해.

의자 시트를 짚고 있던 손에 힘이 빠졌다. 내 이마에 얹어진 손이 힘없이 떨어진다. 무영의 손에 의해 가려졌던 시야가 트이며 시름이 담긴 눈이 가득 들어찼다.

“언제랬지?”

무거운 표정과 함께 들리는 목소리는 상념을 담아 고저가 낮았다. 무영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무영이 다시 한번 입을 연다.

“그날.”

무영은 전에도 내게 그날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무영과 내게 그날은 형의 기일이었다. 지금의 무영에게 그날은…….

“……4월 16일.”

형이 출국하는 날.

“일주일 정도 남았네.”

무영이 손을 들어 턱 부근을 쓸었다. 무영의 입에서 터지는 작은 한숨들이 내 심장을 갈가리 좀먹는다.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고?”

그리 길지 않은 침묵 끝에 딸려 오는 목소리는 여전히 낮았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내 앞에 서서 생각하던 무영이 곧 내 옆자리에 앉는다.

“차라리 이 선생님한테 직접 여쭤보는 건 안 돼? 계속 속 끓이고 있는 것보단 그게 낫잖아.”

글쎄. 과연 형에게 그 말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까. 확신할 수 없었다. 형의 의지로 떠난 일이 아니고서야 형을 막을 수가 없었다.

정말 큰일이 터져서 나조차도 막을 수가 없는 일이면 어떻게 해. 입 안에서 수시로 굴려지는 의심은 몇 번이고 나를 갉아먹었다.

고개를 푹 수그린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속에서 깊이 우러나오는 한숨이 안면을 덮었다. 그렇게 애써 규칙적인 호흡을 유지하고 있었을 때였다.

─ 삐이, 코드 블루, ICU. 코드 블루, ICU.

갑작스레 울리는 방송에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곽윤이 환자. ICU에 코드 블루가 뜨는 일은 흔했지만 본능적인 직감이 날 뒤덮었다.

절망을 느낄 새도 없이 놀라 확장된 눈이 다급하게 중환자실을 향했다. 총알처럼 튀어 나가는 몸이 서둘러 곽윤이 환자를 찾았다. 곽윤이 환자에게 찾아온 두 번째 코드 블루에 중환자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조금의 파형도 없이 일정한 선으로 이어지는 심전도에 피가 싸하게 식는 느낌이었다. Asystole. 심장이 아예 수축하지 않는 상태다. 무수축 상태일 때는 맥박을 확인할 필요가 없었다.

다급하게 손등 위로 손을 포개고 곽윤이 환자의 흉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내가 CPR을 시작하자 나를 따라 들어왔던 무영이 곽윤이 환자의 피를 뽑기 시작했다. 5cm의 일정한 폭으로 압박을 시작한 나는 고개를 고정한 상태로 눈을 치켜떠 시간을 확인했다.

4:58. 코드 블루의 골든 타임은 4분이 고작이었다. 제발, 제발……. 웅얼거리듯 터져 나가는 말에는 실낱같은 기적을 바라고 있었다.

내 등 뒤로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가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잘 이겨 냈었잖아요. 그러니까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격한 움직임에 온몸에서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뒤이어 당직을 서던 전공의와 인턴들이 뛰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교대해. 이제 내가 할게.”

장난기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이 내게 다가왔다. 무영의 말에 대꾸를 하는 대신 시선을 들어 올려 다시 한번 시간을 확인했다.

5:00. 아직 2분이 남아 있었다. 뒤쪽에서는 여전히 정갈한 기계음 소리가 들렸다.

“한음아!”

강제로 곽윤이 환자에게서 나를 떼어 놓은 무영이 이어서 심마사지를 시작했다. 목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가슴팍이 밭은 속도로 들썩였다. 얼굴을 한가득 적신 게 땀인지 눈물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5:01. 심정지가 온 지 3분이 경과했음에도 곽윤이 환자의 심전도는 파형을 그릴 줄 몰랐다. 뇌 손상은 각오하더라도 심장 박동은 되찾아야 했다.

죽은 듯 누워 있는 곽윤이 환자의 위로 조금 전 내 앞에 주저앉아 울던 보호자가 겹쳐졌다. 턱선을 타고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훔쳐 냈다. 얇게 끊어지는 호흡으로 계속 곽윤이 환자의 심전도를 체크했다.

머지않아 뒤늦게 달려온 인턴과 무영이 교대를 했다. 이제는 시간을 확인하는 게 무서울 지경이었다. 하나둘 교대를 하기 시작하던 인턴들의 행동이 점점 굼뜨기 시작했다.

뻣뻣하게 돌아간 고개가 전자시계로 향했다. 5:09. 두 번째 코드 블루에 심정지 11분이 경과하면서 곽윤이 환자에 대한 기대를 하나둘 접은 것이다.

“그딴 식으로 할 거면 비켜.”

그에 화가 난 내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인턴을 밀어내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붉게 충혈된 눈이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곽윤이 환자를 훑었다.

우득, 계속된 흉부 압박에 곽윤이 환자의 갈비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터져 나가는 숨은 아까처럼 오래 버티지 못하고 쉽게 거칠어졌다. 그러면서도 포기할 수가 없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엄마!”

소식을 접하고 뒤늦게 달려온 보호자가 멀찍이 서서 곽윤이 환자를 불렀다. 목소리에 끼친 울음기가 너무나도 선명해서, 몸을 후들거리고 온 기력이 소진되어도, 그만둘 수가 없었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이번이 두 번째 심정지라……. 10분 넘게 흉부를 압박하는 중인데도 박동이 돌아오질 않습니다. 조금 있으면 갈비뼈도 전부 무너질 텐데, 그렇게 되면 보호자분이 보시기엔 많이……. 계속, 지속할까요?”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죄다 담아 듣는 귀를 떼어 버리고 싶었다. 곽윤이 환자의 주치의인 변미현의 말에 보호자는 절규하듯 울음을 쏟아 냈다.

보호자가 변미현에게 어떤 대답을 했을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그저 지쳐 쓰러진대도 이상할 게 없을 정도로 행위를 지속했다.

“이한음 선생님, CPR 멈추세요.”

설마 했던 마음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강 선생님, 이 선생님 끌어내요, 빨리.”

“한음아…….”

“놔.”

나를 뒤에서 끌어안는 체온이 느껴졌다. 저항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빠진 몸이 곽윤이 환자에게서 떨어져 나갔다.

“이거 놔…….”

거친 숨이 내 정신을 어지럽혔다. 중얼거리듯 작게 흐드러지는 목소리가 정적에 휩싸인 공간을 채웠다. 얼어붙은 고개를 부자연스럽게 튼 내가 곽윤이 환자의 보호자에게 다가갔다.

“살 수 있어요.”

‘가망이 없습니다.’

불현듯,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나를 올려다보던 보호자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왜… 왜 그만둬요.”

‘보호자분이 원하신다면 계속 진행하겠습니다만, 더는 CPR도 큰 의미가 없어요.’

곽윤이 환자 보호자의 손을 부여잡은 손이 거칠게 진동했다.

“이한음 선생님.”

“아직, 10분밖에 안 지났는데. 너무 이르잖아요.”

‘동공 반응, 호흡, 심전도 전부 확인했습니다. 이제 그만 사망 선고 내리겠습니다.’

그런 나를 저지하는 변미현의 말도 무시한 채 나는 보호자에게 환자를 포기하지 말아 달라 사정했다. 내가 내뱉는 말씨 하나하나에 끈덕지게 달라붙는 지난 내 무심함은 나를 한 번 더 무너트렸다.

“……그만해도, 될 것 같아요.”

서글프게 어그러진 눈동자가 변미현의 의견을 거들었다.

“…….”

초점이 탁해졌다. 분명 내 시선은 보호자에게 향해 있는데, 이상하게 한 군데에 고정되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입술이 잘게 경련했다. 일그러졌다 펴지길 반복하는 얼굴이 틀어막혔던 숨을 토했다.

“저는 아까… 마음의 준비 끝냈어요.”

당신마저 포기해 버리면 어떻게 해.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목숨을 유지할 수도 있는데.

“그래도 끝까지, 포기 안 해 주셔서…….”

유지할 수 있을까.

“안 해 주셔서…….”

“…….”

유지할 수 있나.

“감사합니다, 선생님…….”

아니, 없었다. 이미 알고 있었다. 곽윤이 환자에게 처음 심정지가 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두 번째 코드 블루 경고음이 울렸을 때부터, 굴곡 하나 없는 심전도를 두 눈으로 확인했을 때부터.

“사망 선고 내리겠습니다. 2008년 4월 8일, 오전 5시 16분, 곽윤이 환자 사망하였습니다.”

모르지 않았다. 모를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곽윤이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 보호자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야만 내가 형을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아서.

그 어떤 장애물 하나 없이 호흡 기관이 틀어막힌 채 숨을 들이켰다. 내가 몇 십 번이고 눌러 댔던 그 흉부가 가슴을 압박했다.

“한음아…….”

“내버려 둬.”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가는 내 뒤로 무영과 변미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질 않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고, 그나마 붙잡고 있던 이성 역시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추락했다. 당장 봐야만 이 속이 풀어질 것 같았다. 당장 페로몬을 흠뻑 들이켜야만…….

뺨을 적시는 눈물을 거칠게 닦아 낸 나는 서둘러 계단을 올랐다. 닦아도 닦아도 계속 흘러내리는 눈물은 형을 눈에 담아야만 그칠 것처럼 끝없이 솟구쳤다.

안 그래도 체력의 한계를 느낀 몸은 차오르는 숨을 버거워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간에 형이 출근했으리란 보장은 없었지만 나는 형의 연구실로 향하는 발걸음을 망설임 없이 뻗었다.

앞뒤 잴 것 없이 형의 연구실 문고리를 잡고 여러 번 내려도 연구실은 열리지 않았다. 문고리를 붙잡은 채 아래로 떨어진 고개가 격하게 올라온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줄줄 쏟아 댔다.

목울대에 걸려 뭉뚱그려지던 울음소리가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할 게 없는 몸을 겨우 추슬렀지만, 정말 한계였다.

애통하게 터지는 마음이 너무나도 아파 꾹 주먹으로 가슴께를 지분거리던 찰나였다. 손아귀에 잡혀 있던 문고리가 저절로 내려가더니 굳게 닫혀 있던 문이 거짓말처럼 열렸다.

“이한음.”

그 속에서 자취를 드러낸 형이 놀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퇴근도 미루고 논문에 매달리고 있던 모양인지 형은 척 보기에도 피로에 절어 있었다.

속에서 울컥 서러움이 비집고 올라왔다. 형의 어깨를 밀고 들어가니 구석에 배치된 스탠드 등만이 겨우 연구실 안을 밝히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달칵, 내 뒤로 손을 뻗은 형이 연구실 문을 닫았다. 형은 울고 있는 나를 보고도 더 이상 놀라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내 뺨을 닦아 주기만 할 뿐이었다.

그런 형을 올려보다 말고 다짜고짜 턱을 추켜들어 형의 입술을 삼켰다. 늘 입술을 포개고 나면 감겼던 눈은 그 순간에도 형의 시선과 맞닿아 있었다.

입술에서 퍼지는 온기에도 마음은 놓이지 않았다. 내 성급한 입맞춤에도 역시 형은 그 어떤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뺨을 문지르는 손길이 더 짙어졌다.

옷깃을 쥐며 밀어붙여도 내 허리께에 손을 올린 형은 잠자코 뒤로 밀려나 주었다. 그렇게 몇 발자국을 물러섰던 형은 결국 등받이에 걸터앉은 채로 날 받아들였다.

형의 연구실에 들어선 순간부터 일파만파로 개방되었던 불안정한 내 페로몬이 형에게 질척하게 매달렸다.

손을 아래로 내려 형의 버클을 풀어내는 순간에도 날 저지하지 않았던 형은 맞닿아 있는 입술을 뗀 내가 몸을 낮추려 하자 그제야 손을 뻗었다.

“놔.”

팔뚝을 잡아챈 손을 뿌리치고 무릎을 꿇었다. 드로어즈 속 뭉툭하게 솟은 기둥 위로 입을 가져다 대자 형은 내 머리채를 쥐었다. 형의 손길에 의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다가갈 수 없던 내가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뭐 하자는 건데.”

“하고 싶어.”

“뭐?”

무턱대고 내세운 욕구였다. 새까만 드로어즈 위로 혀를 가져다 대 오른편으로 치우쳐져 있는 기둥을 핥았다.

“하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나를 물리려던 형은 습한 공기를 이기지 못하고 점점 크기를 키워 나갔다. 츄읍, 춥. 눅진하게 젖어 들어가는 드로어즈와 내 입술 사이에서는 듣기 민망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내 머리채를 쥐고 있는 형에게선 항복을 선언하듯 페로몬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손길에 제법 힘이 실려 있어 뒤통수가 알알했지만 이제 와 무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원단을 사이에 두고도 뜨거운 기운이 올라오는 기둥을 쥐고 혀를 굴려 대니 형의 선단이 언더웨어 밖으로 튀어나올 듯 꺼덕였다.

“씨발, 이한음.”

불필요한 동선 없이 드로어즈를 벗겨 형의 선단을 입에 물자 형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욕설을 짓이겼다. 형의 아랫배에 달라붙은 듯 세차게 발기한 중심을 한입에 욱여넣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절반도 채 물지 못하고 입 안이 빈틈없이 틀어막혀 얼굴이 괴롭게 일그러졌다.

입 속 점막에 실속 있게 들어찬 성기를 최대한으로 삼켰다. 목구멍 깊숙이 파고든 성기를 버거워하면서도 꿋꿋하게 빨아 댔다.

목구멍으로 있는 힘껏 선단을 조이는 순간 형이 잇새로 신음을 토하며 거칠게 밀어붙였다.

컥, 코로 숨을 들이쉬지도 못할 상황에 봉착하자 한계까지 벌어져 있던 입에서 괴로운 소리가 터졌다. 형의 허벅지를 붙잡은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렸다.

“입, 더 크게 벌려.”

굳이 보지 않아도 창백하게 질렸을 얼굴을 위로 들어 올리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떨어졌다. 분명 최대한 벌어진 입술이었으나 형은 만족이 되지 않는 듯 허리 짓을 하며 목구멍을 쿡, 쿡, 쑤셔 댔다.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올라왔던 눈물의 색깔이 변질됐다. 이제는 괴로움에 허덕이며 울음을 토해 내자 형의 입술이 사납게 비틀렸다.

“하아…….”

형은 쥐었던 머리채를 뒤로 당겨 입 안에서 성기를 꺼냈다. 내 타액과 형의 선단에서 희끄무레 새어 나온 쿠퍼액이 얇은 선으로 이어졌다.

마른기침을 토하며 숨을 몰아쉬던 내가 시선을 들어 올리기 무섭게 다시 한번 입 안에 형의 성기가 가득 들어찼다.

욱, 몇 번이고 입 안을 갈라 목구멍을 쑤셔 대는 통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반항 하나 못 하고 투박한 허리 짓을 감당해 냈다.

강제로 범하듯 내 입을 거칠게 드나들었던 형이 이번엔 성기를 목구멍 깊이 처박고는 허리를 뭉근하게 돌려 댔다.

비릿한 냄새와 함께 욕지기가 일어 숨을 쉬는 일조차 미룬 내가 잔뜩 얼어붙어 있었을 때, 삽시간에 성기가 빠져나가 거친 숨을 토해 낼 수 있었다.

“일어나.”

피로와 쾌감으로 정신이 함락당한 형에겐 자비란 없었다. 다리가 풀려 좀처럼 일어서질 못하자 내 머리칼을 끌어 올려 강압적으로 일으킨 형은 내게 소파 헤드를 짚으라 종용했다.

바들 떨리는 손으로 소파를 짚은 나는 순식간에 하반신이 허전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형은 내 엉덩짝을 양쪽으로 잡아 벌려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흣…….”

허리를 숙여 소파 등받이에 기댄 내가 부드러운 질감 위로 두 눈을 묻었다. 사정을 봐줄 것도 없다는 듯 두 개의 손가락이 안을 멋대로 휘저어 댔다.

“후으, 읏.”

구부려진 마디가 익숙하게 내부를 넓히고 그마저도 부족해 손가락이 하나 더 들어차는 느낌은 늘 생경했다. 평소보다도 짧게 끊어지는 호흡에는 쾌감과 어그러진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구멍 안을 꼼꼼하게도 풀어 대던 손이 불시에 빠져나갔다.

“아프면 그냥 울어.”

무신경하게 떨어지는 것 같은 그 말 속의 의미를 단박에 알아챈 내가 입술을 비틀었다. 허리께로 닿는 따뜻한 체온 때문에 삽입도 전에 눈물이 차올랐다.

잔뜩 뒤틀린 입술이 소리를 삼키기 위해 아랫입술을 꾹 깨물던 찰나 하반신을 쪼개듯 아래를 단숨에 가로지르는 단단한 성기가 느껴졌다.

“흐으, 흣, 윽.”

자연스레 터져 나간 소리가 신음 소리인지, 울음소리인지 구분하기 모호했다. 그걸 형이 몰라볼 리가 없었다.

“으응, 흣! 응! 아파, 우으, 읏. 아파, 형. 아파…….”

형은 내 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 거친 허리 짓을 이었다. 암만 풀어 주어도 받아 내기만 하면 찢어질 것처럼 아린 아래도 너무 아팠고, 어쩔 도리 없이 무너질 것 같은 마음도 너무 아팠다.

내 울음의 의미를 알 리 없는 형이 나를 배려한답시고 대놓고 울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주려는 것 역시 너무 아팠다.

“아파……. 너무 아파. 읏, 후으, 윽.”

소파를 짚은 손이 허공을 움켜쥐며 주먹을 쥐었다. 어깨가 제멋대로 들썩거렸고, 신음 사이로 새어 나가는 흐느낌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내가 힘없이 무너지려 할 때마다 골반을 붙잡은 손에 힘이 실렸다. 마음은 그렇게 허물어져 버렸는데, 형이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기둥을 바짝 세우고 발발거리는 성기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후으…….”

내가 희읍할 때마다 내 깊은 곳을 찔러 대던 형이 내 뒷덜미를 쥐며 속에서 끌어낸 숨을 내쉬었다. 그게 퍽 한숨과도 같아 보여 주먹을 쥐었던 손을 뒤로 올려 형의 손등을 겹쳐 잡았다.

눈물에 젖은 얼굴을 보여 주기 싫어 소파에 처박고만 있던 고개를 들고 뒤를 본 순간 형이 내 전립선을 강하게 찔렀다.

“아! 아아, 응! 흣!”

쾌감이란 이름의 거대한 해일이 나를 덮쳤다. 뭉그러지려 하면서도 바들바들 떨리는 팔로 몸을 지탱해 일어서자 등 뒤로 단단한 가슴팍이 느껴졌다.

뒤에서 나를 끌어안아 내 턱을 고정한 형이 거친 숨을 토해 내며 내 입술을 물었다. 무법 지대처럼 한껏 젖어 있는 뺨을 제멋대로 가르고 흐른 눈물이 형의 손가락을 툭, 건드렸다.

“……가지 마.”

형의 치아에 잘근잘근 씹히던 입술이 본심을 털어놨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성급하게 내 입 안을 탐닉하던 형이 입꼬리 위로 혀를 굴렸다.

“안 가.”

그러면 그게 또 복받쳐서 우는 내게 형은 파정할 때까지 같은 소리를 되씹었다.

가지 않겠다고, 곁에 있겠다고.

상의 안으로 침습한 손이 형의 체온을 각인시켜 주듯 끊임없이 내 살결을 훑어 만졌다.

지옥과도 같은 하루가 흘렀다. 수시로 울리는 호출기에 여느 때와 같은 일상을 보냈지만 마음은 그러지 못했다. 썩어 문드러지다. 지금의 나에겐 그 단어가 적합했다.

형과 함께 있으면 그나마 잠들 수 있었던 시간도 끝이 났다. 나를 뒤덮는 불면은 내가 눈을 뜨고 있어도 꿈속에 빠진 듯한 감각을 동반했다.

당장 눈을 감지 않으면 그대로 쓰러져 기절할 것 같다가도 막상 눈을 감으면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자는 일을 포기한 나는 어제도 새벽 내내 응급실에서 보초를 섰다.

마침내 해가 뜨기 시작했을 때, 몽롱한 정신을 이고 병동으로 올라오자 무언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무영과 눈이 마주쳤다.

“음아!”

“여기 직장이다, 이 새끼야.”

나를 발견하곤 내 이름을 부르며 소리쳐 달려오는 무영을, 강유한은 차트로 가볍게 때리며 한 번 꾸짖었다.

“네에, 죄송합니다!”

입가에 어색한 미소를 달고 내게 다가온 무영이 내 팔을 붙잡았다.

“설마 오늘도 못 잤어?”

“응.”

속도감에 따라 사방으로 갈라진 앞머리를 정리한 무영은 곧 불편하게 서 있는 내 얼굴을 살폈다.

“눈 퀭한 거 봐. 속상해 죽겠네, 진짜.”

안타깝다는 듯 비죽 내밀어진 아랫입술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아, 그리고 내가 혹시나 해서 알아봤는데… 병원 의료 봉사팀은 당분간 해외 일정 없을 거래. 파견 없이 주체적으로 갔다는 건데, 그러기엔 준비할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잖아.”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마냥 눈만 끔벅이고 있던 내가 반쯤 감긴 눈매를 벌렸다. 누적된 피로만큼 느릿하게 회전하는 머리가 무영의 말을 곱씹었다. 이게 무슨 소릴까 싶어 눈동자를 굴렸던 내가 다시 무영을 응시했다.

무영이 내게 하는 소리가 묘안인 것도 아니었는데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어안이 벙벙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대단한 이유가 아닐 수도 있어. 그냥 너무 힘들어서 갔다든가, 뭐 그럴 가능성은 없는 거야?”

무영의 말에 나는 종종 꿈으로 찾아왔던 그날을 상기했다. 형은 원내 의료 봉사팀으로 소말리아에 간 게 아니었다. 국경 없는 의사회는 독립적인 비영리 단체였으니까.

“아…….”

가만히 서서 눈만 끔벅이던 내가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자 무영의 눈이 의아하게 번졌다.

“나, 나 전화 좀……. 고마워. 고마워, 무영아.”

“음아, 곧 아침 회진인데.”

무영이 곤란한 목소리로 시간을 확인하며 내게 말했지만 목표물을 발견한 나는 거리낌 없이 걸음을 내디뎠다. 형이 그 단체를 통해 소말리아에 갔더라면, 예전부터 생각해 두었던 뜻이 아니었더라면. 적어도 시간을 더 벌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내가 왜 이걸 이제야 깨달았을까. 스테이션으로 다가간 나는 컴퓨터에 국경 없는 의사회를 타이핑했다.

“……지원.”

국경 없는 의사회를 통해 소말리아로 파견을 나가려면 그 절차가 꽤 복잡했다. 지원을 한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서류 심사와 심층 면접을 필요로 했다.

형이 이 모든 절차를 밟지 않고 소말리아로 떠난 것이라면 그 단체에 먼저 으름장을 놓으면 되는 거다. 그러면 적어도 형은 소말리아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게 되겠지.

휴대 전화를 누르는 움직임이 다급했다. 센터로 연결되는 신호음은 아주 느렸고, 초조했다. 손끝으로 손톱을 힘주어 긁던 내가.

─ 네, 전화받았습니다.

곧이어 들려오는 소리에 화색을 띠었다.

“국경 없는 의사회에 소속된 의사 명단을 알 수 있을까요.”

─ 무슨 일로 그러시죠?

걸음이 병동에서 멀어졌다. 손톱을 긁는 것으론 만족이 되지 않아 손톱을 물어뜯던 내가 잠시 고민했다. 소속 의사 명단을 흔쾌히 알려 줄까.

“소속되어 있는지만 확인하면 돼요. 한성대학병원의 이해준 선생님, 그 단체에 소속되어 있나요?”

─ 잠시만요.

목이 탔다. 전화를 받은 여자가 꽤 긴 시간 동안 대답이 없자 내가 손을 들어 목 부근을 쓸었다.

─ 아니요. 저희 단체와 무관하신 분입니다.

“혹시 소속되지 않은 의사가 지원 절차를 밟지 않고…….”

“의사 양반, 내 뭐 좀 여쭙시다.”

파견되는 경우도 있나요. 이게 내가 궁극적으로 묻고 싶은 말이었다. 그런 케이스가 없다는 말이 나오면 무슨 일이 있어도 형을 보내지 말라고 하려 했다. 기본 절차를 무시하고 보냈다간 그 일을 공론화하겠다고. 분명 막대한 후원금이든, 병원장의 입김이든 무언가가 작용해 형은 그 단체에 소속되어질 테니까.

“너… 한음이구나.”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초조하던 마음이 새하얗게 변해 버린 순간이었다. 병원 로비에서 의사를 찾던 환자는 가운에 박힌 이름에서 시선을 떼 내 얼굴을 보며 웃었다. 그 순간, 등 뒤로 오소소 소름이 끼쳤다.

─ 여보세요?

귓가로부터 어느 간격 떨어진 휴대 전화에서는 나를 찾는 목소리가 퍼졌다.

“…….”

도려내고 싶었다. 이자를 담은 두 눈을, 이자의 목소리를 단번에 알아챈 귀를. 입가를 노골적으로 맴돌던 손이 힘없이 떨어졌다.

내게 뻗어지는 손에 흠칫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김중현의 비열한 웃음이 귓가에 아른거린다. 한적한 로비를 울리던 구두 굽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예쁘게 컸구나, 한음아.”

그전에도 흰머리가 조금씩 나던 김중현은 어느새 더 늙어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과거로 돌아온 나이 스물일곱으로 치자면 10년 전에 본 것이 마지막이었으니, 그간의 세월을 무시할 순 없었으리라.

나보다 한 뼘 정도 더 컸던 김중현은 어느새 나와 눈높이가 비슷해져 있었다. 예전보다 굽은 허리가 한몫했을 테지만 나 역시도 그때 그 시절보다 더 자랐으니까.

예전처럼 김중현을 떠올릴 때마다 하릴없이 떨리던 발작이 일어나진 않았다. 여전히 떨려 오는 손끝이 두려움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긴가민가했다.

기회가 주어지기 전의 나는 지금으로부터 10년이 흐를 때까지 원장을 마주한 적이 없었다. 당연했다. 그가 병을 앓았고, 수술을 받았지만 뇌사 상태에 빠져 깨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건너 건너 들었던 소식이니까.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어린아이들에게 저질렀던 극악무도한 짓들을 모두 돌려받은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이 그렇게 불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느꼈었다.

“그래, 나는 네가 이렇게 번듯하게 자랄 줄 알았다. 너, 예전부터 공부는 썩 잘했잖아, 응?”

김중현의 얼굴은 마치 제 자식이 의사라도 된 양 상기가 되어 있었다. 지난 세월을 잊은 것도 아니면서 반가운 티를 뻔뻔하게도 냈다. 나는 그 얼굴에 침이라도 뱉어 주고 싶었다.

김중현이 이 병원에 있다는 것은 이곳에서 치료를 받는다는 뜻이었고,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도 그와 몇 번이고 마주칠 수 있다는 소리였다. 그 사실만으로도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지만 견딜 수 있었다. 적어도 김중현이 죽는 꼴을 직접 볼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네가 실력 좋은 의사 선생 좀 내게…….”

“……제가 왜요?”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소리였다. 내 귀에만 겨우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음에도, 내 말을 용케 주워들은 김중현의 얼굴이 묘하게 굳어졌다.

“뭐……?”

“잘되셨네요. 벌받은 거라고 생각하세요.”

미래가 틀리지 않는다면, 내가 되돌아옴으로 인해 당신의 운명이 바뀐 게 아니라면, 당신은 곧 죽음을 맞이할 테니까. 김중현이 죽기 전에 그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

“죽기 전엔 꼭 당신의 죄를 뉘우치고 가셨으면 좋겠네요.”

증오심이 가득 섞인 목소리에 김중현이 황당한 얼굴을 했다. 내 말을 잘못 듣기라도 한 것처럼 멍청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곧 벌게진 얼굴로 언성을 높이는 것이 그래, 내가 알던 김중현은 늘 저런 얼굴이었다.

“뭐, 뭐라고?! 이 자식이! 오갈 데 없는 새끼 먹여 주고, 재워 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예, 오갈 데 없는 아이들 거둬 주셨죠. 그래서, 고작 그 이유만으로 폭력과 폭언을 당연하게 한 건가요?”

우스웠다. 죽을 날을 앞둔 상태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모르는 저 뻔뻔함이 미치도록 우스웠다. 나를 십수 년 동안 공포에 떨게 했던 작자가 정말 당신이라고? 하얗게 센 머리와 삐쩍 곯은 얼굴이 그 시절의 나를 더 한심스럽게 만들었다.

내 기억 속의 김중현은 키도, 체구도 지금보다는 더 컸다. 나는 그 기억 속의 김중현이 무슨 악행을 저질러 왔는지 똑똑히 기억한다. 얼굴이며, 몸이며 가차 없이 가해지는 폭행에 아이들이 어느 정도로 두려움에 떨었는지.

당신은, 그 아이들을 가축 취급했으면서도 당신의 얼굴을 쏙 빼닮은 아들은 무척이나 귀중하게 여겼다. 당신 아들과 우연찮게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손이 날아왔다.

당신의 발길에 차였던 나를, 당신의 품에서 그 모든 폭력을 보고 자란 귀한 아들이 심심풀이로 행했던 폭행마저 견뎌야 했던 나를. 나는 단 한 순간도 잊을 수가 없다.

수없이 이어지는 악순환 속에서 아이들은 어른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부모가 없어서? 살 집이 없고, 나약해서?

“이게!”

눈을 부릅뜨자 김중현이 분에 찬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김중현은 여전히 변한 것이 없다. 아마 그는 수술대에 오르는 그 순간까지도 아이들에 대한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했으리라.

“뭐 하시는 겁니까!”

그저 두 눈만 부릅뜨고 김중현을 노려보는 내게 메다꽂히려는 손을 누군가 잡아챘다.

“음아! 이게 무슨 일이야?”

놀란 무영이 김중현의 손목을 세게 잡아 비틀자 김중현이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움츠렸다. 그것을 보니 헛웃음이 나왔다.

저렇게나 나약한 사람에게 우리는 개처럼 얻어맞았다. 그 흔한 저항 하나 못 하고 어서 이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나길, 어서 당신의 분이 풀리길 기다리며 고통을 감내했다.

“놔! 안 놔?! 저놈이 나한테 뭐라고 지껄였는지 알기나 해? 어디 사람을 뒤질 사람 취급하고 있어!”

“환자분, 일단 진정 좀 하시고…….”

김중현은 무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팔을 세게 휘둘렀다. 온 얼굴이 벌게진 채 언성을 높인 탓에 로비에서 대기하던 환자들도, 병원 관계자들도 모두 모여들기 시작했다.

“저딴 게 의사야?! 저걸 의사라고 뽑은 이 병원이 제정신이냐고!!”

“……버러지만도 못한 새끼.”

“음아!”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이 새끼야!”

제 몸은 소중한 줄 알면서 그렇게 학대했다. 김중현이 제 몸을 끔찍이 아끼는 건 전부터 알고 있었으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 새삼스럽게 굴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한 번 끼친 화를 주체하기란 쉽지 않았다. 차오르는 증오심에 맞물리는 이를 세게 물며 욕을 짓이기자 김중현이 다시 한번 발끈한다.

더 이상 김중현에게 두려움에 떠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았다. 높은 언성이 내게 향할 때마다 여전히 몸을 흠칫 떨었지만 나는 부러 눈에 힘을 더 실었다.

“강무영, 놔.”

“……뭐? 아니, 지금 이 상황에…….”

“놔!”

내 울분 섞인 외침에 무영은 연신 내 눈치를 살폈다. 손목에서 차차 떨어지기 시작하는 악력에 김중현이 무영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김중현의 눈은 한시라도 쉴 틈이 없었다. 나를 노려보기도 하고, 무영을 노려보기도 하던 김중현은 얼굴이 빨갛게 익은 상태로 씩씩대고 있었다.

“사과해.”

“뭐?!”

내가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갔다. 김중현과의 거리가 조금 더 좁혀졌다.

“잘못했다고, 죽을죄를 지었다고! 죽어도 사과는 하고 죽으란 말이야!”

“……이, 이 새끼가 아직도……!”

어느 순간 눈가에 가득 고인 눈물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악에 바친 내 외침에 김중현은 말문이 막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머리끝까지 치솟은 분노가 얼마 가지 않아 내게 떨어졌다. 목에 핏대를 세우고 한걸음에 다가온 김중현이 내 어깨를 세게 밀었다.

흥분에 쌓인 다리가 힘없이 뒤로 밀려났다. 어느새 신호음이 끊긴 휴대 전화는 둔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진정을 할 기색이 없던 몸은 김중현의 힘에 치여 바닥을 구를 것이다.

내 몸이 그의 눈높이에서 한참이나 낮아지고 나면 전처럼 그의 발이 내 몸을 가격하겠지. 그럼에도 김중현에게 향한 독기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나 바닥과 마찰한 것은 내 몸이 아닌 눈에서 흐른 눈물뿐이었다. 나는 등 뒤로 닿는 체온에 몸을 잔뜩 굳혔다. 내 어깨를 감싸는 손이 온기를 머금고 있었다. 내 주위를 웃도는 페로몬은 잔잔하디잔잔했다.

눈을 느리게 깜박이며 이물질처럼 고여 있던 눈물을 모두 떨구고 난 후에야 고개를 틀 수 있었다. 형. 나는 입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는 그 단어를 꾸역꾸역 삼켰다.

형을 보니 가슴 깊이 쌓여 있던 서러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목구멍을 긁는 울음소리가 형과 내 주위를 아스라이 돌았다.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던 형이 고개를 들어 김중현을 응시했다. 형의 싸늘한 시선에 김중현이 나를 밀었던 손을 작게 떨었다.

형의 뒤에서 이 상황을 관망하는 의료진들을 훑던 김중현의 시선이 제자리를 찾은 듯 형에게 꽂혔다. 김중현이 실소했다. 그가 보기에도 형의 위치가 다른 의사들보다 대단히 높아 보였는지 김중현이 나를 손가락질했다.

“저거, 저 돼먹지 않은 새끼 좀 봐! 의사 선생, 자네도 들었을 거 아냐, 응? 저놈이 나한테 하는 소리! 왜 저런 모자란 걸 써먹어, 써먹길. 인재가 어지간히도 없었어?”

김중현은 형이 자신을 적대시하는 줄 모르는 모양이었다. 내가 다시 형의 얼굴을 확인했을 땐, 아까 그 냉소적이던 눈빛이 무감하게 바뀌어 있었다. 내 어깨를 쥐던 손에 힘이 천천히 풀어졌다.

“휴게실이든, 당직실이든 가 있어. 오늘은 콜 가는 일 없게 할 테니까.”

형의 나직한 목소리가 귓가로 우수수 쏟아졌다. 내게서 떨어지는 손을 붙잡고 싶었다.

“……어쩌게?”

기어들어 갈 정도로 작은 소리의 물음은 불안정했고.

“환자잖아.”

뭘 묻냐는 듯 들려오는 대답은 어쩐지 냉랭했다. 내게 향하는 김중현의 경멸 어린 표정은 형이 그에게 다가갈수록 멸시의 기운을 띠었다. 숨이 막힌다. 형이 김중현에게 건네는 말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들리지 않았다.

김중현에게 직속 후배의 실수를 사과하고, 외래 진료실로 직접 안내할 형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견딜 수가 없었다.

형과 말을 섞는 김중현의 혀를 뽑아 버리고 싶었다. 형을 바라보는 김중현의 눈에, 두고 보라는 듯 비열하게 좁혀진 그 눈에 칼을 꽂아 넣고 싶었다.

얼어붙은 듯 제자리에 목석처럼 서 있는 내게 형의 시선이 닿았다. 형의 시선에 우물쭈물 서 있던 무영이 나를 잡아끌었다. 그러나 무영에게 끌려가고 있는 와중에도 내게 손가락질을 하며 형에게 무언가를 따져 묻고 있는 김중현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억지로 끌리던 발걸음이 불시에 멈추었다. 나를 이끌고 있던 무영이 내 얼굴을 붙잡아 고개를 억지로 돌렸다.

난처한 얼굴을 하고 있는 무영과 두 눈이 마주쳤고, 나는 자리에서 주저앉고 싶었다. 형이 김중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어떤 상황에서도 고개를 숙이는 법이 없었던 형이, 김중현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음아, 제발… 그냥 가자. 여기서 상황 더 커지면 진짜 큰일 나.”

나를 구슬리는 말에는 날이 서 있지 않았으나 내 심장을 쉼 없이 찔러 댔다.

믿기지가 않았다. 김중현이 형에게 같지도 않은 설교를 늘어놓는 것도, 형이 김중현에게 고개를 숙인 것도. 전부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형에게서 점차 멀어지는 걸음이 나를 더 주저앉게 만든다.

무영의 손에 이끌려 엘리베이터에 올라타게 된 내가 결국 몸을 무너트렸다. 간헐적으로 내쉬던 숨이 조금씩 거칠어졌다. 가슴께를 격렬하게 맴돌던 울분이 목구멍을 통해 분출되자 멎은 줄 알았던 눈물이 다시금 치솟기 시작했다.

주먹을 쥐어 갑갑한 가슴을 마구잡이로 내리쳤다. 그런 나를 내려다보는 무영의 표정이 당혹스럽게 물들었다. 나는 지난 몇 년간 마음껏 쏟아 내지 못했던 감정을 억지로 토해 내면서도 후련함을 느끼지 못했다.

혼자 있고 싶다는 내 말에 무영은 긴 시간 주저했다. 물어볼 이야기가 많은 듯 머뭇거렸으나 등을 돌리고 누운 내게 무영은 단 하나의 물음도 토해 내지 않았다.

나를 배려하는 무영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형과 김중현이 함께 있던 그 장면이 내게는 그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무영이 숙직실 안에 나를 눕히고 자리를 떴을 때쯤에야 내가 몸을 일으켰다. 긴장은 가셨으나 체온은 여전히 서늘했다. 내려다본 손끝은 내가 정말 진정한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잘게 진동했다. 주먹을 느릿하게 쥐었다 폈다.

불규칙한 맥박에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며 숙직실을 나섰다. 내가 향한 곳은 옥상이었다. 너무 답답해 바람이라도 쐬고 싶었다.

구석에 몸을 앉히고 세운 무릎을 끌어안았다. 김중현에게 고개를 숙이던 형의 모습이 잔상처럼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느닷없던 김중현의 출현이 나를 뒤흔든다. 그 상황을 떠올리면 옅게 쉬어지던 호흡이 드문드문 멈춘다. 가슴을 찌르르 울리는 감각이 고집스럽게도 날 괴롭힌다.

한동안 느끼지 못해 잊혔던 만큼 더 거세진 감도가 나를 탓하며 집요하게 조여 온다. 석연치 않은 그 감각이 싫어 가슴께를 긁어 대도 마찬가지였다.

형은 그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궁금증이 일어도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형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이 문득 겁이 났다. 형과 김중현이 나눌 대화를 귀 기울여 듣고 싶다가도 모르고 싶었다.

가뜩이나 가라앉아 있던 기분은 끝을 모르고 추락했다. 미궁 속에 빠진 것처럼 내가 앞으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맞닥뜨린 난관에 체념하며 빠져나가길 거부하는 것처럼, 나는 늘어지는 몸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분노와 서글픔이 공존했다. 어울리지 않는 감정들은 내 내면에 제멋대로 기복을 만들었다. 김중현을 찢어 죽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다가도 형의 모습이 계속 앞을 드리운다. 서러움이 치밀었다. 또 눈물이 터질 것 같아 눈을 꾹 감고 무릎 사이에 고개를 묻었다.

어느덧 중천에 떠올라 작렬하는 태양도 나를 피해 가는 느낌이었다. 벽에 가로막힌 햇살이 나와는 동떨어진 곳을 내리쬔다.

나는 아주 오랜만에 그 그늘 속에 나를 가뒀다. 4월과 어우러진 싱그러운 기후가 마치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내리깔린 기분에 좌지우지되고 있던 내가 익숙한 페로몬을 맡았다. 곁으로 다가오는 기척에 고개를 들어 올리자 햇볕을 받고 있는 형이 보였다. 헝클어진 머리와 밭은 숨을 뱉느라 짧게 들썩이는 가슴팍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태양이 비추는 자리에 서 있는 형과 빛이 차단되어 그늘진 자리에 움츠리고 앉아 있는 나. 형을 응시하던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우리를 가르는 경계가 눈에 들어왔다. 눈꺼풀이 느릿하게 감겼다 뜨였다. 한차례 끊겼던 시야가 다시 넓어졌을 때, 형의 구두가 불쑥 들어찼다.

내가 갇힌 그늘 속에 기꺼이 발을 들인 형이 내 옆에 앉을 때까지도 나는 형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가늘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 시원한 공기가 끼쳤다. 형에게서 흘러나온 페로몬이 무게 있게 우리 주위를 둘러쌌다.

바닥에 시선을 던진 내가 입술을 도로 다물었다. 형과 나 사이를 감도는 적막이 견디기 힘들었다. 나란히 앉아 있는 몸이었지만 시선만은 따로 놀았다. 내게로 와 닿는 형의 눈빛이 유달리 버거웠다.

어떤 말로 이 숨 막히는 정적을 깨야 할지 감을 잡지 못했다. 어차피 죽을 사람이니 힘쓰지 말고 다른 병원으로 트랜스퍼 해 달라고 할까. 아니면 김중현의 상태를 면밀히 묻고 이변 없는 결과에 흡족해할까.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눈가를 꾹꾹 짓누르자 뜨거운 체온이 손목을 감싸 쥐었다. 고개와 함께 들린 시야가 형의 시선과 맞닿았다. 나는 또다시 울컥 차오르는 울음이 나를 뒤덮을까 눈길을 피했다.

“잘했으니까 그만 울어.”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눈이 어느 정도 좁혀졌다. 나도 모르게 치켜든 고개는 형을 시야에 담았다. 형은 나와 눈을 맞추며 지그시 웃었다.

“잘했다고.”

내 의문을 알아차린 듯 다시 입을 연 형이었으나 얼떨떨한 기분은 여전했다. 형의 눈동자에 비친 내 얼굴이 멍청하게 보일 정도로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뭘 잘했다는 건지 형이 꺼낸 말의 의미를 형의 의도대로 끌어내는 게 힘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한 일이란 없었다. 로비에서 김중현에게 욕을 쏟아 낸 것도 나였고, 소란을 피운 것도 나였고, 형을 고개 숙이게 만든 장본인도 나였다. 도대체 뭘 잘했다고 하는 거야? 두 눈에서 내비치는 감정이 혼란을 머금었다.

“앞으로도 참지 말고 다 쏟아 내.”

그러나 의문이 담겼던 멍청한 표정은 곧 울음을 뒤섞는다. 형의 눈에 비쳤던 형체가 서서히 일그러지고 시야가 흐릿해진다. 형이 내 손을 잡고 있어 얼굴을 가릴 수가 없었다. 어쩔 줄 몰라 수없이 일그러지고 억지로 펴는 과정을 반복했던 내가 얼굴을 푹 숙였다.

“뒷감당은 내가 다할 테니까.”

“형…….”

“적어도 네 앞길에 지장이 가는 일은 없을 거야. 대신.”

믿기지 않는 소리에 형을 불러 세워도 형은 요지부동이었다. 그 모든 일에 조건부가 붙는다는 듯한 템포로 쉬는 형을 내가 다시 올려다보았다. 옅게 웃고 있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나는 그 얼굴에서 괴로움을 읽었다. 주위를 잔잔하게 떠다니던 페로몬이 불규칙하게 일렁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형은 지금 괴로워하고 있다.

그런 형의 감정에 나 역시 괴로워질 수밖에 없었다. 불안정하게 흐드러지는 페로몬 사이에서는 나 역시 불안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저릿해지는 가슴께를 압박하고 싶었다. 그러지 말라고, 앞서 불안해하지 말라고. 그러나 이미 다루기 쉬울 정도로 얇아진 정신은 형의 작은 변화 하나하나에 예민해진다.

“직접적으로 해만 입히지 마.”

한참을 머뭇거리던 형이 종국에 토해 낸 말은 나를 울리기에 적당했다. 형은 내가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할까 봐 무서웠을까. 형이 정말 괴로워할 만한 일이 그거 하나일까. 확신할 수 없었다.

이러나저러나 김중현은 죽음을 피해 갈 수 없다. 나는 김중현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김중현의 죽음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그랬기에 나는 김중현에게 직접적인 해를 입히지 말라는 형의 말에 싫다고 부정하지 않았다.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김중현은 처참하게 죽어 갈 테니까.

“형은…….”

울음기를 먹은 목소리가 형편없었다. 눈가로부터 차차 멀어지는 눈물을 형이 엄지로 훔쳤다. 나는 뺨에 닿는 체온이 달가워 더 많은 눈물을 쏟아 냈다. 무서워. 묻기를 주저하면서도 입은 제멋대로였다.

“내가 안 미워?”

나는 그런 내가 싫었다. 기어코 확인을 받아야 하는 그 마음이 저주스러웠다. 궁지에 몰린 것은 나였고, 그 상황에 형을 끼어들게 한 것도 나였다.

내가 조금만 더 이성적으로 굴었더라면 이런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조금만 더 침착하게 대처했더라면 김중현과 형이 마주칠 일도, 나를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일도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미워야 돼?”

그런 내게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들려오는 말은 나를 더 무너트린다. 형이 왜 나를 미워해야 하는지, 왜 나를 귀찮아해야 하는지 뻔한 상황을 내 입으로 나열하고 나면 나는 속절없이 주저앉고 말 것이었다.

속에서 맴도는 말을 인지하고만 있는 것과 입 밖으로 뱉어 인정하는 것은 그런 차이가 있다. 나는 내가 지탱하고 있던 무게가 나를 더 짓누르는 느낌을 받았다.

“나 때문에…….”

“이한음.”

마지못해 떨어지는 음성을 막는 형의 목소리는 나와는 달리 단단했다. 안정감 있게 들려오는 목소리가 내 심장을 포근하게 감싸 쥐면서도 금세 으스러트린다.

“나는 너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형과 그런 형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나였다. 울음이 호흡의 간격을 더 짧아지게 만드는 것은 나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믿기지 않게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 형은.

“그래도 늘 수긍했어.”

사실 나를 이해하고 있는 눈치였다. 어떻게 날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어떻게 날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런 결정을 내려. 어떻게 날 이해하지 못하는데 내게 위로가 돼. 얼굴을 한바탕 적시는 눈물이 썼다.

“내가 너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이해하지 못하게 만든 원인을 찾아 해결하면 되고, 그 과정을 탓할 생각 없어.”

그 이해가 온전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러니까 겁먹지 마.”

온전한 이해가 아닌 나를 향한 온전한 포용이 적어도 이 순간에는 나를 지탱해 주고 있으니까.

3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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