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first step
텁텁하게 가라앉은 속이 불쾌해 한잔 가득 찬 양주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홧홧하게 목을 태우며 넘어가는 술이 익숙해질 때까지, 몇 번이고 쏟아부었다.
비워지기 무섭게 채워지는 잔을 다시 입으로 가져다 댔을 때, 불쑥 끼어든 낯선 손이 잔을 뺏어 들었다. 눈동자를 도로록 굴려 훼방꾼의 얼굴을 확인했다.
꽉 다물렸던 입술 사이로 바람 빠지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무영이었다.
“백주 대낮부터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
무영은 의대 동기이자 버팀목의 부재를 서투르게나마 채워 주던 오랜 친구였다.
10년 전, 우리가 본래 예정해 두었던 수련 병원은 한성대학병원이었다. 그러나 나는 서울 외곽에 위치한 종합 병원에 지원서를 넣었고, 결국 우리는 서로 다른 병원에서 서로의 소식을 드문드문 전해야만 했다.
현재까지도 무영과는 근무 병원이 달랐다. 때문에 출퇴근이 힘들었던 레지던트 시절에는 학술 대회가 열리는 날 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펠로우 즉, 전임의를 마치고 조교수로 임용되고 나서부터 무영은 내 퇴근 시간에 맞춰 나를 찾아왔다. 이제 그만 찾아와도 된다고 하면 무영은 “심심해서 온 건데.” 하며 능청을 떨어 댔다.
무영의 얼굴을 보자 ‘기면증’으로 의심되는 증세가 보인다는 말이 목구멍에서부터 치밀었지만 끝내 시원하게 게워 내진 못했다. 수술 중 졸도한 일 역시 굳이 내 입으로 떠벌리지 않아도 머지않아 건너 건너 알게 될 일이었다.
“대낮인 게 문제면 해 질 때까지 마시지, 뭐.”
“야, 야, 음아.”
불안정한 기운이 스며든 눈을 꾸역꾸역 차단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테이블 위 양주를 병째 들이켰다. 질색하며 얼굴을 구긴 무영이 내게 손을 뻗는 것도 잠시, 그는 곧 못 말리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내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왜 그러는데. 곧 그날이라서 그래?”
“그날? 아아, 그러네. 곧 형 기일이네.”
“한음아.”
허탈하게 웃으며 다시금 양주병을 집어 들자 무영이 “잔 줄게. 따라서 마셔.” 하며 잔을 들이밀었다. 그에 들었던 양주병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은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리가 평소보다 배는 무거웠다.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리저리 기우는 머리를 보니 그제야 취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최선을 다해서 살면 무뎌지기라도 할 줄 알았거든.”
“…….”
“속인 사람도 없는데 속은 기분이야.”
허탈하게 터지는 말에 스며든 감정은 조소였다. 나를 향한 조롱, 속에서 돌고 돌아 내 정신을 위태하게 만드는 야유.
잘 참아 왔던 마음이라 여겼는데 이렇듯 술에 취하고 나면 묵은 감정 덩어리들이 물밀듯 쏟아진다.
안간힘을 쓰고 부릅뜬 눈에 힘이 풀어졌다. 메말랐던 감정이 내 지난 세월에 무자비하게 파묻혔다.
네가 없는 하루에 적응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모했는지 모른다. 눈을 뜨면 네가 내 옆에 있을 것 같아서, 손을 뻗으면 너의 체온이 느껴질 것만 같아서. 나는 그렇게 내 세상에서 널 지우는 일을 한없이 늦춰 왔다.
이상했다. 네가 떠나가고 9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갔음에도, 네가 없는 하루에 부응하려 무던히 노력했음에도, 나의 하루엔 너의 빈자리가 늘 함께한다. 나는 아직도 네가 깃들어 있는 구원의 순간에 머물러 있다.
***
기억은 시간을 거슬러 네가 살아 있던 9년 전, 아니, 너와 마지막으로 함께하던 10년 전에 머문다. 그때의 우리는 어땠던가. 아무래도 세월의 흐름을 부정할 순 없는 모양이다. 머물고 싶어 눈을 감은 채 되새겨도 네가 짓던 표정 하나하나가 흐릿하다.
그럼에도 나는 너와의 추억을 더듬고, 또 더듬으며 기억하려 애썼다. 구원의 순간이기도 했던 나의 소중한 기억들은 모두 너와 함께한 세월이었다.
열일곱의 장마. 지독히도 무거웠던 장대비가 내 몸을 내리친 날, 그날 우리는 처음 만났다.
당시 시설 원장에게 받던 학대를 견디지 못한 나는 그날 고아원을 도망쳐 나왔었다. 설상가상으로 발현까지 한 탓에 독한 몸살이 찾아왔던 날이었다.
평생 발현하지 못한 채 베타로 살아갈 줄 알았기에 그저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온몸에서 퍼지는 페로몬을 자각하지 못했고, 아픈 몸을 추스르느라 정신이 없어 주위의 페로몬 역시 의식하지 못했다.
비틀대는 나를 돌려세운 건 너였고, 그런 너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나는 기절했다.
너의 첫인상을 되짚어 보자면, 너는 참 예쁜 의사였다. 시원하게 찢어진 눈매 위에 자리한 옅은 쌍꺼풀과 새하얀 피부, 이마를 덮는 단정한 밤색의 머리카락이 지나치게 조화로웠던. 지나가다 우연히 마주치게 된다면 쉽사리 눈을 뗄 수 없었을 만큼 아주 예뻤던 그런 사람.
너의 사진을 마주하자 자연스레 떠오르는 형체 없는 미소에 불쑥 웃음이 불거졌다. 너의 앞에 설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럴 줄 알았으면 생전에 웃는 모습 좀 많이 찍어 둘걸.
나는 늘 그런 후회를 한다. 너는 웃는 얼굴이 제일 예뻤으니까.
아무런 표정이 담기지 않은 너의 얼굴 위로 손을 가져다 댔다. 손가락 끝으로 따뜻한 너의 체온이 아닌 유리의 찬 기운이 전해졌다. 차마 닿지 못했음에도 이상하게 아주 그리운 향기가 났다.
“오랜만이야, 형.”
그렇게 첫 운을 떼고 한참 동안이나 침묵을 유지했다. 9년 동안 익숙해진 거라곤 이렇게 네 앞에 서는 것 하나였다.
예전에는 네 앞에 서는 것조차 힘겨워 가만히 주저앉아서 유골함만 보다 돌아가곤 했었다. 네 사진 위의 유리를 한참이나 쓰다듬으니 무작정 차기만 했던 손끝에 열기가 돋았다.
“이래저래 좀 바빴거든.”
핑계라고 생각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떳떳하게 말할 수 있었다. 바쁘다는 말보단 기를 쓰고 살았다는 표현이 더 들어맞았다. 나는 그동안 조금의 휴식도 내게 허용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끌어올렸던 내 명예는 한순간에 추락했다. 세상이 내게 가혹한 것인지, 내가 우둔한 것인지 답을 내려 주는 이는 없었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저 세상이 내게 매정한 것 같다며 탓을 돌릴 뿐이다.
기면 증세는 날로 악화됐다. 졸음을 떨치려 눈을 세게 감았다 떴을 뿐인데 20분가량이 지난 적도 있었고, 눈을 감기 전 그리운 얼굴이 보인 적도 있었다.
빼도 박도 못한 증상이었기에 굳이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눈치챌 수 있었다. 아득바득 유지해 오던 일상이었지만 더는 맞이할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병원에 출근하지 않은 지는 오늘로 나흘째였다. 수술 도중 졸도했던 사건은 환자에게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모두가 쉬쉬하고 있는 분위기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병원에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만 했다. 그게 그들이 살아남는 방법이었으므로.
병원은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았고, 나 역시 병원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니까,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재수를 결심했을 때 이후 처음으로 갖는 휴식이었다.
나흘 전 수면다원검사와 더불어 그간 미뤄 왔던 건강 검진을 전반적으로 진행하였다. 꼬박 하루가 걸린 검사에 녹초가 된 몸이었지만 그날따라 수면제가 들지 않아 밤새 뜬눈으로 지새웠다.
사흘간 잠 한숨 자지 못한 내가 발갛게 충혈이 된 눈으로 검사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을 찾았던 날, 나는 나를 바라보던 그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심각한 얼굴로 앉아 있는 정신과 주치의의 옆에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함께 서 있었다.
페로몬을 못 느낀 지는 얼마나 되셨다고 했죠? 히트 사이클은 언제쯤 마지막으로 왔구요? 복용 약물에 억제제 체크하셨던데, 아직도 복용하고 계신 건가요?
음, 현재 이 선생님은 수면 장애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어요. 페로몬 개방 수치가 열성보다도 현저히 떨어져요. 아무래도 장기 복용으로 인해 페로몬에 장애가 생긴 것 같은데. 페로몬을 개방하지 못하는 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도, 히트 사이클이 오지 않는 것도 전부 억제제 때문이 아니라 페로몬 장애 때문이에요.
히트 사이클이 올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까 불임까지도 각오를 하셔야 되구요. 분명 몸에서 신호를 보냈을 텐데, 한 번도 산부인과를 안 찾으셨더라구요. 현재로서는 회복보단 상태가 더 나빠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방법밖엔 없어요.
그 말을 내게 전하던 산부인과 전문의는 ‘어떻게 의사면서 몸이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할 수 있어요?’라는 표정이었다.
그들을 바라보는 내 표정은 어땠더라. 적어도 무덤덤하진 않았을 것이다. 충격이라면 충격이었다. 이따금 찾아왔던 복통마저 가볍게 여겼다.
피로 때문이겠지, 스트레스 때문이겠지. 진통제를 하나둘 늘리며 억제제의 가벼운 부작용이라 생각했던 게 화근이었다. 아니, 어쩌면 애초부터 잘못되길 바라며 외면하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극우성에 가까운 우성 형질로 발현한 데다가 유난히 페로몬에 민감했다. 잠시간 동안 개방된 페로몬이라 할지라도 조금의 자취가 남으면 귀신같이 알아챘다.
그가 죽은 뒤에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히트 사이클에 몸을 움츠린 채 끙끙대다 보면 건너 옆집 알파의 페로몬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타인의 페로몬은 거북했다. 의식하고 싶지 않아도 어디선가 비슷하거나 강한 향을 맡으면 이르게 찾아오기도 하는 히트 사이클이 역겨웠다.
분명 평생 느끼지 않은 채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니까 결국 모든 건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왜 원하던 바를 이루었을 때처럼 마냥 기쁘지 않았을까. 왜 갑작스러운 통보를 받은 것처럼 얼빠진 표정을 지었을까.
유리를 쓸던 손을 아래로 늘어트렸다. 불현듯 죄책감이 일기 시작했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무표정으로 날 바라보기만 하는 너의 시선을 차마 받아 내지 못할 것 같아서 고개를 깊게 숙였다.
“앞으로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미리 사과하러 왔어. 미안해.”
잠시 한국을 떠나 있기로 했다. 심도 깊은 학문 공부가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치료를 위해 결정한 일이었다. 아니, 사실 감당하지 못할 현실에 대한 도피가 조금 더 들어맞는 말이었다.
아마 한국을 떠나 있는 동안 한국 곳곳에 남겨진 너의 흔적들을 그리워하겠지. 그곳에선 너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으니 어쩌면 너를 잊게 될 수도 있었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날 구제해 준 너를, 과연 내가 잊을 수 있을까.
“……사랑해, 형.”
흐릿한 목소리가 공중으로 흩어졌다. 멀리 퍼져 나가지 못하고 되돌아온 목소리는 지난 우리의 추억을 한층 더 눅눅하게 적셨다.
하고 싶었던 말은 많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그 거리가 얼마나 변했는지, 자주 가던 커피숍의 커피 맛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함께 살던 집은 현 집주인이 내놓지 않아 아직까지도 매입하지 못했고, 너의 흔적을 찾아 네가 근무하던 병원으로 이직할까 고민했지만 너의 아버지인 병원장에게 거부당해 한참이나 떨어진 병원에서 의사의 책임을 다하고 있는 것까지.
네가 없는 하루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고, 네가 없는 세상 역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너와 하고 싶었던 것, 너와 보고 싶었던 것, 너와 함께 나누고 싶었던 감정까지도, 모두 내 속에 처박은 채 꺼내질 못하여 점차 문드러지고 있다.
괜찮다가도 이렇게 너를 찾은 날이면 며칠 내내 속이 울렁였다. 먹은 것이 없음에도 토악질이 나올 만큼 더부룩해 억지로 게워 내다 보면 눈물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변기 앞에 주저앉아 널 그리면 반대편으로 떨어졌던 해가 어느새 떠 있었다.
널 생각하는 게 괴로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목 끝까지 차오르는 토기를 억누르며 네 앞에 꿋꿋하게 버티고 섰다. 하루 종일 널 생각할 때에도, 일에 치여 찰나의 시간 동안 널 떠올릴 때에도. 널 추억할 때마다 드는 감정은 미련과 후회였다.
그때 우리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우리의 미래는 조금 달라질 수 있었을까. 너의 얼굴을 더 오랜 시간 볼 수 있고, 너의 체온을 더 오랜 시간 느낄 수 있었을까.
일분일초를 아깝게 여기며 널 그렸다. 네 앞에 무너져 있는 나를 상상하며 너를 떠올리는 만큼 자책하고, 또 자책했다.
되돌리고 싶었다. 하늘이 네가 아닌 나를 데리고 갔더라면, 너를 기억하는 것이 이토록 버겁진 않았을 텐데.
환한 햇살로 뒤덮였던 하늘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너의 일부가 잠들어 있는 납골당에 온 지도 벌써 반나절이 지난 상태였다. 어쩌면 한동안 널 찾아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발걸음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다.
주머니 안에 손을 꽂아 넣어 손끝에 잡히는 작은 종이를 조심스레 쓸었다. 수술을 할 때에도, 잠을 잘 때에도 항상 지니고 있던 그것을 꺼내 눈앞에 마주했다.
10년 남짓한 시간 동안 너를 놓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 환한 표정의 나와 그 옆에서 옅게 웃고 있는 너의 사진. 죽기 전 네가 가지고 있었던 유품 중 하나인 사진을 보면 솟아나는 물음들이 많았다.
넌 이 사진을 보며 어떤 표정을 지었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왜 너는 이 사진을 1년이 넘도록 품고 있었을까.
무수한 물음을 억지로 삼킨 채 사진에만 시선을 박으니 문득 휴대 전화가 진동하는 것이 느껴졌다. 발신인은 무영이었다.
─ 음아, 어디야?
막 퇴근하는 길인지 수화기 너머로 아스팔트를 두드리는 구두 굽 소리가 작게 들렸다. 곧 차의 잠금장치가 풀리는 소리가 울렸고, 차 안으로 올라타는 듯 문소리를 내던 무영이 “음아?” 하고 다시 날 부르자.
“아…….”
그마저도 한 템포 늦게 반응하며 다소 멍청한 반응을 보였다.
“형이랑 있어.”
─ 납골당? 데리러 갈 테니까 30분 뒤에 나올래?
30분. 기약 없는 날을 약속하며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너를 볼 수 있는 시간.
너무 짧았다. 꽤 오랜 시간을 이 자리에 서 있었다고 해도 앞으로 남은 30분은 내게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손을 들어 붉게 오른 눈시울을 가렸다.
마음 같아선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 싶었다. 가기 싫다고, 너를 두고 떠나고 싶지 않다고. 함께 가자고 보채지도 못하게 왜 너는 그 좁은 사각 리스 안에 갇혀 있는 거냐고.
착각하고 있었다. 겨우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긴 시간이 흐른 만큼 너의 죽음을 기어이 인정했다고 여겼는데. 나는 아직도 너의 비보를 들었던 그날에 머물러 있다.
“……응.”
입 안에 고여 있는 짓뭉개진 음성을 가까스로 끄집어냈다. 내 울분 대신 터지는 대답에 무영은 차에 시동을 거는 것으로 답했다. 머지않아 휴대 전화는 내게 통화가 끊겼음을 알렸다.
귓가에 자리했던 손이 무력하게 추락했다. 날카롭게 찢겨 나가는 감정을 삭이기 위해 휴대 전화를 힘주어 쥐었다. 손바닥으로 가려졌던 시야를 굳이 또 한 번 닫아걸었다. 눈을 질끈 감은 채 숨을 들이쉬고 내쉬길 반복했다.
그렇게 한동안을 가만히 서 있는데, 문득 완강하던 중심이 흐트러지는 게 느껴졌다. 눈가를 덮었던 손을 천천히 떨어트렸다.
환하게 빛을 머금어야 할 시야가 이상할 정도로 침침했다. 허공에 뜬 손가락이 미약하게 떨리자 좋지 않은 예감이 날 뒤흔들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꾹 깨문 입술은 이미 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애써 참아 내려 해도 떨쳐 낼 수 없는 증세에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무신경한 너의 시선이 내 병세를 알아볼까 덜컥 겁이 났다. 의사가 돼서 본인 몸 하나 간수 못 하냐는 핀잔이 귓가에 아른거렸다.
되돌아가는 길이 맞는지 헤아려 볼 여유는 없었다. 너에게서 멀어지기 위해 눈에 보이는 출입구라면 무작정 통과했다.
지금 내가 뛰는 이 길이 실내인지, 실외인지 가늠할 새도 없이 날 뒤덮는 졸음과 사투할 때였다.
빠아아아아앙!
귓속을 날카롭게 파고드는 경적에 정신없이 헤쳐 나가던 걸음이 멈추었다. 경적에 놀란 몸은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았고, 소리의 근원지로 향한 눈은 곧 환한 라이트에 의해 찌푸려졌다.
부신 눈앞을 가릴 새도, 피할 정신머리도 없었다. 시야 가득 번지는 밝은 빛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음에도 눈 하나 끔뻑일 수 없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쾅!
그러나 멈춘 시간은 더딘 만큼 재빠르게 흘러가 날 덮치고야 만다. 그것이 나를 쳤다고 자각만 할 뿐 그렇다 할 고통을 느끼지 못했을 때, 내 시선의 끝에는 바람을 타고 있는 너의 흔적이 뒤따랐다.
식어 버린 너의 온기, 죽어 버린 너의 숨결, 다시는 맞을 수 없는 너의 사랑. 너의 사진.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너와의 기억이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더 선명했다.
죽는구나. 무의식중에도 느낄 수 있었다.
너에게 먼저 찾아간 죽음이 이제는 나를 덮치는구나. 나는 너에게도 흘러갔을 이 시간을 눈을 감으며 맞았다.
유난 떨 건 없었다. 그토록 바라던 죽음이었으니까 아쉬울 일 역시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래, 이 정도면 됐어. 이 정도면 그곳에서 널 만나도 부끄럽진 않겠지.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다음 생에도 널 만나고 싶었다. 고아가 아닌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 우연처럼 너를 만나고, 불같이 뜨거운 사랑을 나누고 싶다. 내가 그리는 나의 미래는 너와 함께 눈을 감는 것이었다.
나의 세상을 구원해 준 너를 위해 살겠다고 매일같이 다짐할 수 있었다. 너에게 진 빚과 사랑을 모두 끌어안고 다시 태어날 것이다. 너에게 갚아야 할 것들이 많기에, 나는 꼭 널 다시 만나야만 했다.
***
Rrrrrr
무딘 정신을 깨우는 소리에 몸을 한 번 뒤척였다. 조금 더 긴 수면 시간을 유지하기 위해 바꾼 수면제가 맞지 않는지 몸이 지독하게 피곤했다. 분명 개운하진 않았어도 온몸이 얻어맞은 듯 뻐근하진 않았는데.
울리는 전화가 제풀에 지쳐 꺼지길 기다렸으나 상대는 생각보다 끈질겼다. 나는 결국 낮게 욕지거리를 뱉으며 이불 밖으로 손을 빼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
─ 음아!
받자마자 귀청이 찢어질 듯 울리는 목소리에 작게 인상을 썼다. 흥분한 듯 상기된 목소리의 주인은 무영이었다.
충격을 받은 고막에는 이명이 동반했다. 몰려오던 잠이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을 갔는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멀겋게 떠진 눈을 느릿하게 끔벅였다.
─ 뭐야, 이제 일어난 거야? 음아, 내가 오늘 무슨 말을 들었는지 알아?
그러나 평소와는 다른 무영의 들뜬 음성이 내 불쾌감에 딴지를 걸었다. 내 병명과 곧 출국한다는 이야기 외에는 들을 만한 게 없을 텐데 무엇이 무영을 이렇게 흥분하게 만들었을까.
그 물음은 다음으로 이어지는 말에 박차를 가한 채 꼬리를 물었다.
─ 아니다, 아니다. 아, 일단 일어나서 합격 확인부터 해 봐. 아직 교수님께 따로 연락 없었지?
“합격?”
도통 풀리지 않는 해답은 기어코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알 수 없는 소리를 나열하는 무영에게 되묻는 목소리는 잔뜩 잠겨 있었다.
─ 잊었어? 오늘 국가 고시 합격 발표 날이잖아!
이어지는 무영의 대답에 한숨을 푹 내쉰 나는 눈꺼풀을 도로 감았다.
국가 고시는 내가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치른 시험이고, 그때는 기억에서도 까마득한 10년 전 일이다. 무슨 영문으로 다른 사람도 아닌 나에게 10년 전 일을 거론하는지.
슬슬 짜증이 일기 시작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헛소리야.”
─ 잠 덜 깼어? 너 설마 어제 늦게까지 술 마신 거 아니지?
“너야말로 잠 덜 깬 거 아니야? 합격 같은 소리 그만하고 출근이나 해, 강무영.”
제아무리 장단을 맞춰 주려 애써도 무영을 따라 10년 전에 체류하기엔 나에겐 너무나도 절실했던 시절이다. 어떻게 해서든 되돌릴 수 없는 순간이란 걸 알기에 더 간절한.
아직까지도 흥분한 음성이 흘러나오는 전화를 단숨에 끊었다. 습관처럼 약을 먹으려 일으킨 몸이 책상 위를 더듬었다. 그러나 손에 만져지는 건 매끈하게 바니시칠이 된 목재뿐이었다.
“아, 버렸지.”
그 순간 페로몬에 장애가 생긴 걸 안 뒤 주치의의 판단하에 억제제를 버렸던 것이 떠올랐다. 멍하니 서 찌뿌둥한 뒷목을 주물렀다.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는데, 문득 억제제와 함께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분명 어제 납골당에 찾아갔다가 사고가 났던 것 같은데. 본래라면 병원 병실에 누워 있어야 할 내가 왜 집에 있는지, 그게 의문이었다.
전조등이 빛을 발하던 차는 이따금씩 보였던 환각이고 기면 증세로 쓰러진 날 무영이 집까지 데려다주었을까.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다.
머리를 붙잡고 없는 기억을 되새기기 위해 잠시 고민했으나 곧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여차하면 출국하기 전에 무영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
일어나자마자 기력을 소모했더니 목이 탔다. 갈증을 이기지 못한 내가 뭉그적거리며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몇 걸음도 채 걷지 못하고 걸린 묵직한 무언가에 움직임이 멈추었다.
“이건 또…….”
귀찮음에 문장을 끝맺지 못한 목소리가 신경질적으로 새어 나갔다. 성가시다는 듯 아래로 떨어진 시선이 내 앞길을 막아선 상자에 꽂혔다. 상자? 우리 집에 웬 상자가 있지? 권태로움을 이겨 낸 호기심이 목표를 상실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제자리에 쭈그리고 앉은 나는 손가락으로 상자를 대충 펼쳤다. 상자 안에 채워진 것은 내 짐이었다. 하나뿐이 아니었다.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여섯 개의 상자 안에는 형에게 선물 받았던 의학 서적을 비롯한 여벌의 옷이 있었다.
납골당에 다녀와서 정리해 두려고 했던 건데, 아무리 되뇌어도 직접 짐 정리를 한 기억이 없었다. 이 역시 무영이 대신 정리해 놓은 건가 싶어 볼을 긁적였다.
기억 전체를 통으로 날려 먹은 것을 보니 증상이 꽤 심각한 모양이었다.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짐을 구석으로 치우는데, 침대 위에 올려 둔 휴대 전화가 또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무영일 것이라 예상했으나 발신인은 뜻밖에도 박선영 교수였다.
박선영 교수는 의대 시절 나를 꽤나 아꼈던 교수 중 하나였다. 예과를 비롯해 본과까지 수석으로 졸업한 데다가 국가 고시마저 전국 수석으로 합격했기에 내게 기대를 건 교수들이 몇 있었다. 그들은 수련 병원을 자교의 대학병원이 아닌 연동병원에 지원했던 내게 실망감을 노골적으로 내비쳤었는데, 그중 하나가 박선영 교수였다.
연동에서 전문의 과정까지 밟은 후에도 가끔씩 안부 전화가 왔었고, 의사 협회에서 만날 때도 함께 식사를 나누던 사이였기에 갑작스러운 연락에 딱히 의문이 들진 않았다. 분명 그때까지는 말이다.
“네, 교수님.”
그저 내가 곧 출국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안부차 보내는 전화려니 했다.
─ 그래, 한음아. 국가 고시 발표 난 건 확인했니?
“네?”
또 같은 소리다. 멍청하게 되물으며 눈살을 좁혔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을 모르는 박선영 교수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 그동안 공부하랴, 실습하랴 애 많이 썼다. 합격한 거 축하하고, 별일 없으면 오후에 잠깐 볼 수 있을까?
역시나 알 수 없는 말을 늘어놓는 교수였지만 이번엔 무영에게 그랬던 것처럼 ‘교수님은 또 무슨 헛소리세요?’ 하며 건방지게 반문할 수가 없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아주 둔탁한 충격에 그저 눈만 끔벅였다. 그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말이 있었다.
할 얘기도 있고 하니 편할 때 찾아오렴. 그러자 정말 거짓말 같게도.
─ 할 얘기도 있고 하니 편할 때 찾아오렴.
박선영 교수는 그 말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내게 전했다. 휴대 전화를 귀에서 떼는 바람에 박선영 교수의 말이 아주 작게 들렸지만 전부 내가 기억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휴대 전화만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밝게 켜지는 화면 속에 박힌 문구는, 2008년 1월 19일.
내가 의사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던 08년도, 그러니까, 아직은 형이 살아 있던 그 10년 전의 날짜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였다.
***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고 대답했던 것밖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한 채 멍한 얼굴로 연구실을 나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쓰고 있는 휴대 전화 역시 내가 사용하던 기종이 아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10년 전의 내가 사용하던 휴대 전화였다. 같은 폴더 폰이었기에 의심을 할 여지가 없던 게 핑계라면 핑계였다.
아침에 확인했던 짐 역시 출국을 위해 미리 싸 놓은 것이 아닌 형과 헤어진 후 이사한 집으로 옮겼던 짐들이었다. 형의 유품으로 발견됐던, 색이 모두 빠지고 탁한 잿빛으로 뒤덮여 있던 사진 역시 사라져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인 상황에 머리를 부여잡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떻게 봐도 지금은 2018년이 아닌 2008년이다. 날짜도, 불혹을 바라보던 얼굴에 비해 앳된 얼굴도, 형으로 인해 연줄이 생긴 선배들이 내 어깨를 툭 치곤 “너 이번에 전국 수석 했다며? 징하다, 진짜.” 하며 지나가는 것마저 하나같이 10년 전의 내가 겪었던 일이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혼란스러움에 손에 잡히는 머리카락을 쥐었다 펴기만 반복하는데.
“설마…….”
머릿속이 복잡한 와중에도 떠오르는 얼굴에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났다.
만일 지금이 2008년이 맞다면, 네가 한국을 떠나던 4월 16일 전이 맞다면, 내가 과거로 돌아온 것이 맞다면. 힘이 빠져 휘청대던 다리가 너의 연구실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보고 싶었다. 딱 죽을 만큼 보고 싶었다. 너를 그리워하기만 했던 내 인생은 단 한 순간도 너의 공백을 인정하는 법이 없었다.
차마 너를 따라가지 못했던 나를 하루에도 몇 번씩 혐오했다. 죽지 못해 살았고, 살다 보니 살아졌다. 햇수로만 따져도 열 손가락을 모두 써야 했던 그 세월 동안 나의 후회는 늘 나를 공격했다.
사진 속의 네가 아닌 내 손이 닿을 만한 거리에 있는 널 껴안고 싶었고, 사랑한다, 미안하다 수천 번 속삭여 주고 싶었다. 그동안 묵혀 두었던 감정을 모조리 꺼내면서 다시는 네 곁을 떠나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싶었다.
분명 그러고 싶었는데.
철컥, 철컥.
꽉 잠긴 채 열리지 않는 문에 절망감이 치밀었다. ‘이해준’. 네 이름이 적힌 문패를 확인하고, 틈 안으로 널 찾으려 애써도 네가 없다. 희망으로 움켜쥐고 있던 마음이 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넋 놓고 앉아 좌절하는 대신 행선지를 틀었다.
넌 명성이 자자한 외과 의사였기에 연구실에서 붙어 있을 틈도 없이 수술을 집도하고 있을 수 있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너의 일정을 알고 있을 사람. 짧게 끊어지는 호흡을 다듬을 새도 없이 NS 병동 스테이션을 찾았다. 나는 차트를 보며 걷는 의료진의 팔을 망설임 없이 붙잡아 세웠다.
“무슨 일이세요?”
거친 호흡이 끊이질 않아 숨을 훅훅 내뱉고 있는 사이, 나의 다급함에 덩달아 심각해진 의료진이 내게 물었다.
“이해준, 이해준 선생님 어디 계세요?”
“이 선생님 아직 출근 안 하셨을 텐데, 무슨 일이세요? 환자분 보호자 되세요?”
“아니요. 아니에요.”
희망이 더 선명해졌다. 울컥 눈물이 치미는 기분이었다. 출근을 안 했다는 건 정말 네가 살아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위급한 상황이 벌어진 줄 착각하여 다급히 캐묻는 의료진에게 고개를 저은 내가 그대로 뒤를 돌았다.
“저기요!”
내게 정보를 건넨 의료진이 나를 소리쳐 불렀지만, 이미 그 의료진은 뒷전이 되었다.
NS 병동에서 빠져나와 로비로 향하는 뜀박질은 아주 급박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걸음들은 박자를 제때 맞추지 못했고, 제 스스로 넘어질 뻔한 몸을 나는 몇 번이고 일으켰다.
턱 끝까지 치미는 숨이 계속해서 폐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참지 못한 눈물이 앞을 가로막아 시야도 흐릿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비를 가로지르던, 천 근쯤 되는 쇳덩이를 지고 거니는 것처럼 무거웠던 발걸음이 한순간에 멈추었다.
“잠시만요! 이 선생님 어제부터 세미나 가셔서 곧 오실, 아, 선생님!”
줄곧 뒤따라왔던 것인지 의료진의 목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렸고,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간간이나마 뱉고 있던 숨이 멈추었다.
“마침 오셨네요.”
경직된 시선은 막 로비에 들어서던 너, 내가 너무 사랑해 마지않던 이해준에게 꽂힌 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어붙은 듯 가만히 서 있기만 하는 내가 의아했는지 어깨 위로 따뜻한 손길이 이어졌다.
“저기요?”
“……다행이다.”
시끌벅적하던 주변 소음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무의식중에 내가 중얼거린 소리는 다행이다였다.
10년 만에 마주한 너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보고 싶었다고 해야 할까, 미안하다고 해야 할까. 정말 수없이 고민했다.
그러나 말끔한 슈트를 차려입은, 여전히 말끔하게 예쁜 너를 보며 내가 처음으로 뱉은 말은 다행이다, 였다.
“정말 다행이야…….”
네가 살아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또다시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돼서, 너를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그래서 너무 다행이야.
눈물이 볼을 타고 바닥으로 낙하했다. 과거로 돌아왔음에도 너를 다신 보지 못할까 봐 무서웠다. 네가 없는 그 시간들을 되풀이하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렇게도 보고 싶었던 얼굴을 확인하니 덜컥 안심이 됐다. 그렇게나 간절하게 바라던 순간과 마주하니, 긴장의 끈을 결코 놓지 못하리라 여겼던 짐작마저 저 멀리 밀려나고 나도 모르게 안도해 버렸다.
가만히 선 채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해준의 시선을 받으며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행이라는 말만 쉼 없이 반복하며 이해준의 눈길을 온전히 받아 냈다.
눈물이 앞을 가려 이해준의 얼굴이 희미해졌으나 눈물을 닦을 기력이 남아 있지 않았다. 네가 짓던 웃음, 나를 웃음 짓게 했던 너의 습관과 말투, 체취.
그 모든 순간의 네가 그리웠다.
여전히 미동도 없는 이해준의 흐릿한 형체를 한눈에 가득 담으며 혼이 빠져라 울어 댔다. 당황한 의료진이 괜찮냐며 내게 걱정 섞인 물음을 내뱉을 때까지, 세상 떠나가라 우는 바람에 진이 빠져 시야가 서서히 좁아질 때까지.
어김없이 몰려드는 어둠으로부터 저항하려고 해도, 늘 그랬듯 나를 집어삼키는 칠흑에서 나는 벗어나지 못했다.
***
예전에, 그러니까 자퇴를 결심했던 열여덟쯤이었나. 공부에 별다른 의욕을 느끼지 않았던 그 시절의 나는 이해준을 동경했다. 아무 의미 없었던 삶에 동경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나타난 변화는 생각보다 컸다.
생각지도 않았던 검정고시를 치렀고, 원장 때문에 멀리하던 공부에 다시 전념하기 시작했다. 습관처럼 밤을 지새우고, 밥을 먹는 와중에도 참고서를 끼고 산 결과, 스물한 살이 되어서야 이해준이 졸업한 의과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 노력은 단순 동경으로 시작됐지만 사랑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까지도 그 사랑에 머물러 있다. 그때는 왜 그게 한때의 감정이라 단정 지었던가.
이해준은 시설에서 도망쳐 나온 후 오갈 데 없었던 나를 기꺼이 거두었고, 나는 또 다른 어른의 그늘에서 또 다른 세상을 알게 되었다.
이해준은 내가 경계해야 될 어른이었으나, 하얀 가운을 걸친 채 몸에 난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주위를 에둘러 싼 벽을 너무 쉽게 허물어 버렸다.
그 당시 이해준이 나를 집 안으로 덜컥 들인 이유에 대해서는 늘 의구심을 가졌지만 굳이 그 문제를 거론하지는 않았다. 생전 처음으로 가져 본 안락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이유였다.
처음으로 갖게 된 돌아갈 수 있는 집은 내게 많은 안정과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그 여유가 탈이 되어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꼈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해준과 연인 관계로 지냈던 3년은 행복했지만 결국 치달은 건 파국이었으니, 우리는 애초에 발전시켜선 안 될 인연을 이은 셈이라 여겼다. 그것이 우리가 헤어진 이유였으니까.
나는 이따금씩 꿈을 꾼다. 형과 완전히 돌아선 후 형의 소식을 전해 들었던 그때를 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까마득해지는 형의 얼굴과는 반대로, 이상하게 그날 일은 아무리 잊으려 용을 써도 또렷했다. 잊을 만하면 꿈으로 찾아오는 그날은 불과 엊그제 일어난 일이라 해도 무색할 정도로 생생했으며 내 오랜 불면증의 원인이기도 했다.
눈을 감고 어둠 속에 홀로 남겨져 있을 나를 자각하다 보면 어느새 주위에는 낯익은 것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당직실의 빈 공간을 채우는 2층 침대와 구석에 놓인 원목 테이블, 그 위에 흩뿌려진 전공 서적과 차곡히 정리된 차트.
같은 배경과 같은 패턴이었기에 앞으로 벌어질 상황들을 낱낱이 알고 있었지만, 꿈속의 나는 늘 한결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날은 우리가 헤어진 지 꼬박 1년이 지난 한랭한 겨울이었고, 추위에 꽝꽝 얼어 버린 길바닥과 겹쳐진 굵은 빗줄기가 무수한 사고로 이어지던 날이었다.
헤어짐에 유난 떨어서는 안 된다고 여겼다. 나는 그럴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까. 문득문득 치밀어 오를 때마다 형의 마지막 표정을 상기하며 억눌렀다. 예전부터 그랬듯이 나는 혼자였으니까.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응급실 베드가 부족할 정도로 환자들이 몰리던 통에 꼬박 이틀을 새웠다. 잠 한숨 이루지 못하다가 겨우 생긴 휴식에 쪽잠을 자던 때였다.
제 몸 하나 건사하지도 못하면서 전동 베드에 실려 오는 환자들의 상태를 기계처럼 체크하던 그 당시, 인턴 생활에 치여 슬픔에 젖어 있을 겨를도 없던 나의 하루는 그때의 그 연락을 받고 난 후 크디큰 변화를 맞는다.
조용할 날이 없던 휴대 전화는 다른 날과 다름없이 벨을 울려 대고, 잠에 취해 비몽사몽간에 전화를 받은 나는 급히 당직실을 나선다.
─ ……시신은 이송 중이래.
닳고 닳은 운동화 밑창에 쓸리면서 일어난 바닥과의 마찰이 멎는다. 발신인이었던 무영은 머뭇거리면서도 제 할 말을 멈추지 않는다.
─ 너는 알아야 될 것 같아서.
잠결에 깨 불규칙하게 뛰던 심장이 이제는 귀 바로 옆에서 울리는 것 같은 감각 역시 지난 9년 동안 익숙하게 겪었다.
‘……무슨 소리야, 그게.’
─ 뉴스 봐 봐.
앞으로 벌어질 상황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 안에서 짓이기듯 터져 나온 목소리는 마치 처음 안 사실에 대꾸하듯 파르르 떨린다.
그 뒤로 이어지는 침착한 어조에 잠시간 멈추었던 발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작게 떨리는 손끝과 박동하는 심장에 비해 더딘 움직임은 곧 병동 스테이션에 설치된 TV 앞에 섬과 동시에 얼어붙고 만다.
『소말리아, 국경 없는 의사회(MSF) 병원에서 폭탄 테러… 23명의 사상자 발생.』
『건물 한쪽이 참혹하게 무너져 내린 모습입니다. 소말리아에서 국경 없는 의사회, 이하 MSF가 운영하는 병원인데요. 현지 시각 12월 11일, 의사회 병원 건물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나 스물세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망자는 총 아홉 명으로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인 한국 의사 한 명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져…….』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 뉴스 헤드라인 위로 뜨는 얼굴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흐릿했으나 분명 내가 잘 알고 있는 얼굴이다. 너무나도 사랑했고, 보고 싶었던 얼굴.
간헐적으로 이어지던 숨소리가 점점 미미해졌을 때쯤, 눈앞이 서서히 아득해졌다. 들고 있던 휴대 전화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자.
“안 돼!”
꿈속보다 더 비현실적인 현재로 돌아온다. 꿈속과 마찬가지로 목구멍에 한가득 찬 숨을 간신히 토하며 불안정한 호흡을 내뱉었다.
“아, 일어나셨어요? 안 좋은 꿈이라도 꾸셨나 봐요.”
아직도 파르르 떨리는 손끝에 꽂혀 있던 시선이 낯선 목소리에 반응했다. 기계적으로 뻣뻣하게 돌아가는 고개가 소라색 수술복에서 멈추고, 그 위로 걸쳐진 흰색 가운을 더듬었다.
제발……. 혹시나 현실로 되돌아와 버린 건 아닐까, 겁을 먹은 채 속삭이는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수액 양을 조절하던 움직임이 멈추고, 내 쪽으로 바로 선 의료진의 얼굴을 뒤늦게서야 확인하자.
“아…….”
안도감이 짙게 물들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제 한성대학병원에서 보았던 NS 병동의 의료진이었다. 그러니까 이름이, 김재겸. 눈동자를 느릿하게 옮겨 그의 이름을 확인하니 “음.” 입 속으로 소리를 삼킨 김재겸이 다시 말을 이어 갔다.
“피로 누적으로 실신하셨어요. 포도당 놓고 있으니까 이거 다 맞고 나서 퇴원하시면 돼요.”
바늘로 콕콕 쑤시듯 아려 오는 이마를 감싼 채 손바닥 아랫부분으로 눈꺼풀을 꾹 눌러 댔다.
고른 숨이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듯 보였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뒤죽박죽이었다. 현실로 돌아가지 않은 것은 다행이나 꿈이 길어지고 있는 것인지, 확실하게 과거로 돌아온 것인지 확인할 겨를은 없었다. 몸이 아픈 것을 보면 꿈은 아닌 듯한데.
“공부하느라 많이 힘드시죠. 저도 링거 많이 맞아 봤는데, 이거 맞고 나면 금세 괜찮아지더라고요. 그렇다고 계속 무리하시면 애써 맞은 것도 소용없어지니까 당분간은 안정 취하시는 게 좋아요. 앞으로 인턴 생활 하시려면 이때 많이 쉬어 두셔야…….”
“이봐요.”
그리고 쉴 새 없이 달싹이던 김재겸의 입술이 기어코 내 심기를 건드렸을 때, 나는 시야를 가렸던 손을 내리곤 그와 눈을 마주했다.
“네, 어디 불편한 곳 있으세요?”
“진료 외 관심은 불쾌한데요.”
다소 날카롭게 전해진 말씨에 김재겸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멋쩍은 얼굴을 하며 턱 부근을 손으로 쓸던 김재겸이 불쾌하게 굳어진 내 표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아… 죄송해요. 제가 그, 뒷조사를 한 게 아니라 원내에서도 이해준 선생님이랑 워낙에 유명하셔서. 아, 제가 뒤늦게 스카우트돼서 두 분 사이를 잘 몰랐거든요. 우리 병원 지원하면 앞으로 자주 볼 사이니까 조금 가깝게 지내고 싶어서 그랬던 건데, 불쾌하셨다면, 저기요!”
그러나 장황하게 늘어놓는 변명을 채 듣기도 전에 피곤함으로 얼룩져 있던 몸이 병실 밖으로 튀어 나갔다. 병실 바깥에서 은은하게 퍼지는 낯익은 향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지난 9년간 눈을 감으면 나타났던 희미한 형상은 그저 악몽이었다. 그러나 또 한 번의 과거를 겪는 것이 꿈이 아니라면, 그것은 더 이상 단순한 악몽으로 그칠 일이 아니었다.
되돌릴 수 있다. 고개를 들 새도 없이 날 무자비하게 짓밟던, 서릿발처럼 날카롭게 날 들쑤시던 수년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형!”
점차 가까워지는 향기를 한 손으로 그러쥐었을 때, 내 바람대로 형이 내게 얼굴을 보였다.
형은 나를 보고 그 어떠한 표정도 짓지 않았다. 그저 거칠게 뽑힌 주삿바늘이 남긴 상처로 인해 손가락을 타고 흐르는 피와 초라한 맨발을 훑어보고는 작은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우리를 휘감은 공기는 고요했다. 팔에 난 상처를 소독하고 밴드를 붙이는 동안까지도 형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숨 막히는 정적 속에서도 나는 형의 얼굴을 살펴보기에 여념 없었다.
형은 일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전임의라는 직을 달았으면서도 하나의 분과에 얽매여 있지 않았던 형은 남들보다 펠로우 기간이 유난히 길었다. 준비해야 될 논문이 많았던 탓에 밤낮을 가리지 않았던 형은 어느새 많이 야위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손이 뻗어졌지만, 그 손은 형에게 닿기도 전에 가야 할 길을 잃었다. 몸을 일으킨 형에게 들러붙는 시선이 집요했다.
“링거 새로 달아 줄 테니까 맞고 가.”
기나긴 침묵을 고수한 끝에 형이 뱉은 말이었다. 허공에 멈춘 채 잘게 떨어 대는 손을 오므려 주먹을 쥐었다.
가뜩이나 틀어막힌 목에 답답한 기운이 한가득 들어찼다. 숨을 크게 들이쉬며 형이 내게 보인 등을 가만히 응시했다.
“……안 가면 안 돼?”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침묵은 버거웠다. 언제 말을 꺼내야 할까, 수십 번도 넘게 씹어 댔던 입술이 얼얼할 지경이었다.
눈에 띄게 떨리는 음성에도 손에 한껏 뭉쳐 놓은 쓰레기를 휴지통에 버리는 형의 움직임은 곧았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말고 가.”
“나 말고 형 말이야.”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유지할 것 같던 평정심이 살짝 흐트러졌다. 그제야 나를 돌아보는 형의 얼굴은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냐는 듯 작게 구겨져 있었다.
“형 원래 봉사 활동에 관심 없었잖아. 굳이 안 다녀와도 교수 되는 데에 지장 없을 거고, 여기서도 다양한 케이스의 환자 돌볼 수 있고, 또…….”
“이한음.”
“꼭 극악의 상황이 아니어도 되잖아. 경험 더 안 쌓아도 형 실력이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그러니까.”
도통 정리가 되지 않아 정신없이 횡설수설 늘어놓는 말에 형의 향이 코앞까지 끼친 줄도 모르고 있었다.
겁에 질린 음성이 듣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떨렸다.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아 눈앞까지 다가온 형의 목을 힘주어 끌어안았다.
“제발 가지 마. 내 앞에서 사라지지 마. 부탁할게, 응?”
“너…….”
힘이 잔뜩 실린 손을 손쉽게 풀어낸 형이 심각한 어조로 운을 뗐다.
“내 눈 똑바로 보고 얘기해. 내가 어딜 가는데.”
가지 말라는 소리만 쉼 없이 반복하며 불안한 듯 어느 한 곳에 맞춰지지 않던 초점이 형의 얼굴에서 멎었다. 서서히 젖어 들어가는 시야는 이미 내가 눈물을 머금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소말리아.”
참아 내려던 눈물은 기어코 터졌지만 손목에서 느껴지는 형의 체온에 금세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발갛게 충혈되었을 눈을 형에게 꽂으며 주저하듯 말하자 형의 낯빛이 한층 더 가라앉았다.
형은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토해 내곤 손자국이 남을 정도로 세게 쥐었던 손목을 놓았다.
“돌아가.”
짐짓 무서운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던 형의 시선이 거두어졌다. 짜증이 치미는지 단정하던 앞머리를 신경질적으로 쓸어 넘기는 형을 보며 내가 대답을 재촉했다.
“안 가는 거지, 형.”
“돌아가라고 했지.”
그러나 되돌아오는 목소리는 냉랭하기 짝이 없다.
“형, 제발…….”
차디찬 목소리를 붙잡는 음성은 다시 불안을 집어삼킨 채 달달 떨렸고.
“쫓아내기 전에 네 발로 나가.”
“못 가. 절대 못 가. 내가 못 가게 막을 거야.”
두려움으로 인해 폭발한 이성은 서류로 난발이 된 책상 위를 헤집기 시작했다.
손에 집히는 서적을 펼쳐 낱장 사이사이를 확인했다. 비행기 표라든가 형의 여권을 찾아 찢어 버려야 했다. 그러나 급한 손놀림은 원하는 것을 좀처럼 찾아내지 못했다.
마음이 급했던 내가 서랍에 손을 뻗으려던 찰나에.
“이한음!”
참다못한 형이 기어코 언성을 높이며 내 손을 낚아챘고.
“못 간다고!”
나 역시 악을 쓰며 형에게 소리쳤다. 형은 그 짧은 순간 내게 향했던 환멸 어린 표정을 창밖으로 옮겼다. 숨을 고르는 듯 한참을 말이 없던 형이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우습지.”
아, 그때 그 표정이다.
“가든 말든 네가 무슨 상관인데.”
급격하게 낮아진 형의 어조에 해야 할 일을 망각하고 숨을 멈춘 나는 형의 그 표정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네가 뭔데 간섭을 하냔 말이야.”
처음 보는 형의 표정이었지만 지독하도록 익숙하게 와닿았던 그 감정.
결심했던 이별을 형에게 고했던 날, 그때 형의 얼굴을 맞닥트린 순간 나는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을 느꼈다.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겠구나. 형을 보며 지레 삼켰던 겁은 후에 내가 우리의 관계를 되돌리기 위한 시도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돌아서 놓고 이제 와서 이딴 식으로 수작 부리는 이유가 뭐야, 너.”
내가 형의 이 표정을 보고 느꼈던 감정은 두려움이었고, 그 두려움은 투사(投射)로 이어졌다.
나는 그때 형이 느꼈던 감정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버림받은 적이 없다고 여겼던 나의 세상은 사실 버림으로부터 시작되는 세상이었으니까. 그저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현실을 마주하기가 무서워 기피하기 급급했던 나였다.
나는 형의 이 표정을 보며 빛이 생겨나기 이전의 생활을 무의식중에 떠올렸고, 형이 느꼈을 감정에 과민한 반응을 보이며 나 자신을 채찍질했다. 나를 지키기 위해 행했던 방어 기제가 우습게도 결국 스스로를 공격했던 것.
그때의 나도, 지난 10년간의 나도, 지금의 나도. 나는 그 그늘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살짝 벌어졌던 입술 사이가 꾹 다물렸다. 벙어리처럼 다물린 입술은 도무지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형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온 건지 모르겠는데. 애초에 갈 생각도 없었으니까 그만하고 가. 가서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마.”
얼마간의 세월이 흘렀든 내가 감내해야 할 일이었음에도 나는 그때가 여전히 괴로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형에게 무례한 나는 이 순간을 어떻게 모면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
Rrrrrrr
벌써 열 번째였다. 쉴 틈 없이 울리고 꺼지길 반복하던 벨의 횟수가 꼬박 열 번을 넘길 때까지, 나는 방구석에 앉아 세운 무릎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휴대 전화의 배터리가 다 닳아 절로 꺼질 때까지 끈질기게 나를 찾는 발신인의 정체는 궁금하지 않았다.
연구실을 나오면서부터 머릿속을 가득 채운 건 오로지 형의 그 얼굴이었다. 그 순간의 나는 형을 놓았던 그 시절과 다름없었다.
내가 형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방 안 가득 넘실거리던 불안감이 종국에는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아니, 너는 형의 죽음을 막을 수 없어. 네 주제에 무슨 수로 막을 건데?
엉망이 될 정도로 쥐어뜯은 입술이 뒤늦게 아려 왔다. 갑갑한 가슴이 버거워 숨을 크게 들이쉬었을 때, 불현듯 어디선가 맡아 본 적이 있는 낯익은 향이 끼쳐 왔다.
띵동.
무릎에 처박은 고개를 들었다.
띵동, 띵동.
참을성이 없는 불청객은 그새를 못 참고 초인종을 한 번 더 눌러 댔다.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펴 자리에서 일어선 나는 현관문을 바로 앞에 두고 움직임을 멈추었다.
“음아!”
두꺼운 현관문에 가로막혔던 틈새를 비집고, 낯익은 향기만큼이나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어 록을 해제하니 희미했던 향이 서슴없이 밀려들어 옴과 동시에 시야로 무영이 들어찼다.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걱정했잖아. 전화는 왜 안 받아?”
걱정과 불만이 뒤섞인 얼굴이 내게 다가와 채근했다. 집 안의 온기와 맞물리지 못한 찬기가 얼굴에 닿자 뒤죽박죽 엉켜 있던 감정의 실타래가 저마다 얽는 일을 멈추었다.
무영의 뒤로 현관문이 느리게 닫혔다. 집 안으로 들이지 않았음에도 신발을 벗고 들어온 무영이 경악에 찬 표정으로 내부를 훑었다.
“미친. 집안 꼴이 이게 다 뭐야? 설마 저 맥주캔 네가 다 마신 거야? 환장하겠네. 이사한 지가 언젠데 여태 짐도 안 풀었어, 이한음.”
“…….”
“내가 진짜 미쳐. 빨래도 좀 한쪽으로 모아 두지, 허물 벗은 것도 아니고 이게 뭐야. 이럴 거면 차라리 우리 집으로 들어오라고 했잖아.”
무영의 입술은 쉴 틈이 없었다. 앞니로 아랫입술의 안쪽 살을 살살 씹으며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 밟았다.
“그동안 제대로 먹은 건 맞아? 너 때문에 내가 제명에 못 살 것 같다고.”
본격적으로 집 안을 점검하기에 나선 무영은 텅텅 비어 있는 냉장고를 보며 혀를 찼다.
10년 전의 나야 이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몸을 지배하는 무력감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겠지만, 지금의 나는 이 타박이 살짝 억울하다.
그러나 이 시기의 무영이 무너져 가는 나를 어떻게 지탱하고 있었는지 알고 있었기에 어색한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무영은 내 입가에 그려진 웃음에 살짝 당황하는가 싶더니 이내 못 말리겠다는 듯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너 아무것도 안 먹었지?”
자상한 눈빛, 곰살궂은 목소리로 내게 묻는 무영은 세월을 거슬러도 변함없이 따스했다.
무영이 나를 이끈 곳은 집 앞에 위치한 작은 국밥집이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수저만 휘적거리고 있자 무영이 밥 위로 깍두기를 하나 올려 주었다.
“먹어. 그러다 쓰러져.”
이미 한 번 쓰러지긴 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는 내내 한숨을 내뱉기에 여념 없는 무영에게 그 말을 하려다가 참았다. 별로 입맛도 없었고, 배도 안 고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곳이 너무 불편했다.
“역해.”
“비린내 나? 내 건 안 나는데. 바꿔 먹을래?”
“아니, 여기 공기가.”
과거로 돌아오고 나서 달라진 건 후각이 유달리 좋아졌다는 것 하나였다. 국밥집을 채운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나는 향이 혼잡하게 뒤섞여 있었다.
희미하게 퍼지는 각기 다른 향들이 어울리지 못하고 난잡하게 흐트러지자 이제는 머리까지 아플 지경이었다. 코를 막으며 얼굴을 구기자 무영이 고개를 갸웃했다.
“음식 냄새밖에 안 나는데…….”
“속 울렁거려. 넌 뿌리지도 않는 향수는 또 왜 뿌리고 왔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 향수 안 뿌렸는데?”
눈을 흘기며 코 막은 손을 떼니 무영이 억울하다는 듯이 손목을 들이밀었다.
“진짜라니까? 맡아 봐.”
코앞으로 다가온 피부에서 은은한 향이 퍼지자 나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무영의 손목을 옆으로 밀었다.
“나잖아.”
“안 난다니까. 향수가 아니라 페로몬 잔재 아니야?”
순간 국밥 위에 올려진 깍두기를 숟가락으로 굴리던 움직임이 멎었다. 고개를 들어 무영을 보자 무영이 왜 그러냐는 듯 내게 눈짓을 했다.
“너 원래 페로몬 잘 맡잖아. 그거 아니야?”
둔탁한 무언가가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페로몬 장애로 인해 마지막으로 페로몬을 느낀 것이 까마득한 오래전이라 잠시 망각하고 있었다.
코끝에 흐드러지는 희미한 향으로 형을 구분하고, 무영을 구분했으면서도 단숨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불현듯 심장이 큰 울림을 만들어 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입술만 소리 없이 달싹거리자 무영이 웃으며 내 술잔에 소주를 따랐다.
“축하주. 아까 타이밍 재느라 말 못 했는데, 수석 축하한다, 음아.”
형의 얼굴을 본 순간 느꼈던 묘한 기분이 다시 샘솟았다.
이제야 온전히 실감할 수 있었다. 진짜 과거로 돌아왔구나. 도저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뛰기 시작하는 심장은 이것이 찰나의 꿈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무영은 막차가 끊겼다는 핑계를 대며 침대 밑에 이부자리를 폈다. 딱히 말릴 생각도 안 하고 방바닥을 내준 나는 옆으로 누워 한쪽으로 밀어낸 짐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자?”
문득 방 안을 휘감은 적적한 공기가 답답해 목소리를 내었다. 시선을 돌리니 무영은 눈을 감은 상태였다.
“아니.”
“…….”
“왜?”
불러 놓고 대답이 없는 내가 이상했던 모양인지 무영이 감은 눈을 떠 내 쪽을 바라보았다.
“……넌 이미 정해진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어지러이 놓여 있는 짐을 보면서 내내 고민했다. 취기가 오르는지 언뜻 들기 시작한 걱정은 한없이 땅으로 파고들었다. 마음이 무거워 쉽사리 잠들 수 없는 밤이라고 느꼈다.
돌아올 거면 차라리 헤어지기 전으로 돌아오지. 배가 부른 투정을 삼키며 내내 차가웠던 형의 모습을 떠올렸다. 과거로 돌아와 형이 살아 있는 모습을 확인하고 나니 다음으로 이어지는 걱정은 하나였다.
형의 운명이 바뀔까? 수십 번도 넘게 한 물음이었지만 내게 답을 내려 주는 이는 어느 누구도 없었다.
“1년 뒤에 죽을 사람이라면… 주변에서 무슨 짓을 해도 어차피 죽을 운명인 걸까?”
무영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말이 없었다.
“Hard case(난치병 환자)야?”
“아니.”
“아니면 늙어서?”
“그것도 아니.”
“Accidental death(사고사)인가. 그런데 자연 재해 아니고서야 사고사는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아니지, 미래를 알고 있으면 자연 재해도 충분히 피하고 남지. 미리 대피하면 되는 거잖아. 아, 미래까지 아는 건 좀 너무 갔나? 아닌데, 그러면 미래가 정해진 걸 어떻게 알아.”
무영은 내가 상황을 명확하게 일러 주지 않았음에도 혼자 주절거리며 제법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걸 가만히 누워 듣고 있자면 순간 가슴에서 울음이 일렁인다.
아무래도 취기가 단단히 돈 모양이었다. 가슴 속에서 퍼지는 동요가 어느새 눈가에 와닿았다. 아무런 대답도 못 하고 있자 무영은 천장으로 향해 있던 몸을 내 쪽으로 돌렸다.
“너 요새 영화 봐? 뭐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그런 거? 그런데 그 영화도 결국 주인공은 살아남잖아. 얼마나 재미있게 봤으면 이렇게 심각하게 물어?”
“그건 영화니까 살 수밖에 없는 결말이잖아…….”
“애초에 그 상황도 영화니까 가능한 거지. 현실에 그런 일 생기면 무서워서 어떻게 살아.”
내 말을 받아치던 무영이 결국 웃음으로 마무리하려 들었다. 정말 그럴까. 나는 휘몰아치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눈을 감았다.
“꿈꿨구나. 원래 죽는 꿈 꾸면 명 더 길어진다고 했어. 꿈은 반대라잖아. 혹시 무슨 일 생기면 내가 구해 줄 테니까 걱정 말고 자.”
차라리 그 당사자가 나였으면 했다. 그 일은 절대 꿈이 아니었으니까. 나를 달래는 무영의 말에 몸을 움츠리는 것으로 대답했다.
뒤이어 떨어졌던 소리는 요점을 한참이나 벗어난 주제였지만 결국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모두 하나로 통일된 이야기였다.
살 수 있어. 절대적 운명이라는 건 없어. 사소하게 시작된 가벼운 말이었지만 무영의 위로는 결코 자질구레하지 않았다.
정갈하게 맞물리지 못한 블라인드 탓에 새어 들어오는 달빛이 유난히 밝았다. 마치 형이 내게 내렸던 구원처럼.
비록 장애물에 밀려 간신히 허락된 작은 빛줄기에 불과했으나 그것이 형에게 번진 어둠을 밀어냈으면 했다. 아니, 밀어내야만 했다.
***
겨울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는 1월 말. 뼛속까지 아리게 만드는 칼바람은 한껏 움츠려진 몸을 맹공격했지만, 햇살은 어느 때보다 따스했다. 장엄하게 들어선 건물의 위신을 높이는 채널 간판을 잠시간 눈에 담았다.
한성대학병원. 목구멍으로 두텁게 넘어가는 침에 다물린 입술 사이를 벌려 찬 공기를 쐤다. 그러자 꽉 막힌 속이 그제야 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굳게 먹은 마음에 무슨 긴장이 더 필요할까 싶어 제자리에 두었던 발을 천천히 내디뎠다.
한성대학병원의 로비로 들어서 익숙한 길을 걸었다. 실습 때문에 수십 번씩 들렀던 곳이었고 특히 원내에 자리한 커피숍은 눈 감고도 위치를 찾아낼 수 있을 만큼 익숙했다.
성년이 되기 전에는 늘 이 커피숍에 앉아 형을 기다리며 공부를 했다. 늘 같은 자리에 앉아 같은 음료를 마시면서.
형과 헤어지고 난 이후로는 걸음을 끊었기 때문에 실로 오랜만에 찾는 곳이었다. 추억을 회상하던 내가 은은하게 퍼지는 원두 향을 맡으며 카운터 앞에 섰다.
“어, 오랜만에 오셨네요? 핫초코 맞으시죠?”
이 시절까지만 해도 낯설지 않았던 종업원은 내 얼굴과 내가 주로 마시던 음료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퍽 반가워 저으려던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잠시만요.”
종업원이 마주 웃다 말고 우유를 데우기 시작했다. 초콜릿 특유의 단내가 코끝을 맴돌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속이 부대꼈다. 언제부터인가 단것만 입에 대면 소화가 매끄럽지 않았다.
형과의 추억에 얽매여 넘어가지 않는 것을 억지로 넘기려니 탈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무작정 들이켜고 게워 내기를 반복한 결과 어느새 내가 찾게 되는 건 형이 즐겨 마시던 아메리카노였다.
“못 본 사이에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셨어요.”
종업원은 휘핑크림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올려진 핫초코를 트레이 위에 올리며 말했다. 그 의중을 파악하지 못한 내가 고개를 들자 종업원은 손을 내저으며 트레이 위에 쿠키를 담았다.
“나쁜 의미는 아니고 전보다 많이 성숙해지신 것 같아서요. 쿠키는 서비스예요.”
전과 달라졌다는 말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저 음료와 쿠키가 담긴 트레이를 들고 “감사합니다.”라며 인사를 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가만히 앉아 먼지 한 톨 내려앉지 않은 테이블 위를 쓸어 만졌다. 10년 전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대로였다. 뜨거웠던 음료가 차게 식을 때까지, 예쁜 모양으로 얹어져 있던 휘핑크림이 녹아 진한 초콜릿색의 음료가 육안으로 드러날 때까지, 나는 자리에 앉아 과거를 회상했다.
그때였다. 낯선 주먹이 시야로 들어오더니 똑똑, 하고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린 것은.
“오랜만이네요.”
그것에 놀라 고개를 쳐들자 낯익으면서도 낯선 의료진이 나를 향해 웃고 있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기억을 더듬어도 도통 떠오르지 않는 이름에 나는 시선을 그의 가운에 박을 수밖에 없었다.
아, 김재겸. 의료진의 이름을 머릿속에 되뇐 내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 모습이 자신을 향한 대답인 줄 알았는지, 김재겸은 “자리에 앉아도 되죠?”라고 묻더니 맞은편 의자를 빼내 몸을 앉혔다. 거절하기도 전에 자리 잡고 앉는 것을 보니 참 행동이 빠른 사람이구나 싶었다. 헛웃음으로 반문하며 하얗게 떠 있던 휘핑크림을 휘휘 저었다.
“몸은 좀 괜찮아지셨어요?”
“네, 뭐.”
“그날 갑자기 사라지셔서 좀.”
사라지셔서 좀? 커피 스틱의 움직임을 따라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던 핫초코에서 눈을 떼 김재겸을 응시했다.
“걱정했거든요.”
갑작스럽게 맞닿은 시선에 그가 능글맞게 웃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그쪽이 왜요?”
“네?”
“진료 외의 관심은 불쾌하다고 저번에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
그때와 같은 표정이었다. 나는 한 모금도 넘기지 않은 핫초코를 들고 자리에 일어섰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큰 눈만 끔벅이던 김재겸의 눈동자가 내 움직임을 따라 이동하는 게 느껴졌다.
“아, 저기…….”
“김재겸 선생!”
돌아서는 나를 붙잡으려 성급하게 뱉어진 목소리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부름에 먹혔다. 그리고 매정하게 떨어지려던 내 발걸음 역시 우연히 시선이 닿았던 무리를 확인함과 동시에 자리에서 굳었다.
점심을 먹으러 나가던 길인지 흰 가운을 벗은 무리 사이에는 형이 있었다.
“아직 식사 전이지. 시간 되면 같이 들러 가자고. 아, 그 앞에는 이한음 학생인가?”
“예, 아직 식사 전입니다. 한음 씨를 아시나 봐요.”
얼빠진 표정을 지었던 김재겸이 그새 웃는 낯빛으로 무리에 다가섰다. 형은 내게 보냈던 시선을 김재겸에게 돌린 상태였다.
“그럼 알지. 한음 학생 내가 PK1) 때부터 눈여겨보던 친구인데. 내 수술장도 몇 번 들어왔었어. 그렇지?”
“네, 박 교수님. 안녕하셨어요?”
박제원 교수의 서글서글한 웃음이 꽂히자 기다렸다는 듯 고개 숙여 인사를 건넸다.
박제원 교수는 병원에 실습 나왔을 당시에도 사람 좋은 웃음을 달고 있었다. 실습생 사이에서도 평이 좋았고,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노련한 솜씨가 인상 깊었던 교수였다.
“그래, 박선영 교수한테도 전해 들었다. 이번 국시 수석이 네 자리라며. 그래서 수련 병원은 정했고? 당연히 우리 병원이겠지?”
그가 실습생 사이에서 평이 좋았던 이유 중 하나가 이거였다. 위계질서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 누구와도 거리낌이 없던 사람이라서.
“아직 생각 중입니다.”
“여기저기서 스카우트가 많이 들어오는 모양이야? 아, 그러지 말고 한음 학생도 같이 식사나 하러 가자고. 다들 괜찮지?”
박제원 교수만 한가득 담았던 시야를 틀어 형을 응시했다. 인상을 작게 찌푸리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하는 눈치였다.
“그럼 실례 좀 하겠습니다.”
그래서 미소를 만면에 띠우고 긍정의 의미를 내비쳤다. 형이 나를 불편하게 생각해도 나에게는 꼭 바꾸어야 하는 운명이 있었으니까.
내가 박제원 교수의 제안에 선뜻 수긍할지 몰랐던지 김재겸의 신기하다는 시선이 계속해서 와닿았다.
한 번 말해선 못 알아듣는 타입이구나. 그 시선이 너무나도 부담스러워 얼굴 측면이 닳아 버릴 것 같았다. 작게 얼굴을 찌푸리던 형은 어느새 무신경한 얼굴로 밥알을 깨작거리고 있었다.
“저는 이해준 선생님이랑 겸상하는 것도 처음이네요. 저 빼고 이런 식사 자리 자주 가지셨나 봐요.”
“설마 그러려고. 이 선생 성격이 메스 쥘 때처럼 까탈스러워서 남이랑 수저 안 드는 건 공공연하게 알고 있잖나. 나한테 신세 진 게 있어서 어영부영 나온 거지.”
김재겸이 장난스럽게 말을 건네자 박제원 교수가 웃으며 받아쳤다.
“신세요?”
박제원 교수의 말을 되물은 건 김재겸이 아니라 나였다. 박제원 교수가 나와 시선을 맞추며 입을 열려던 찰나에.
“다 드셨으면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형이 벗어 두었던 블레이저 재킷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박제원 교수에게 향했던 시선이 거의 줄어들지 않은 밥그릇으로 흘렀다.
저렇게 먹고 무슨 일을 하겠다고……. 입술만 잘근잘근 씹으며 눈동자로 형을 좇으니 형은 이미 등을 돌린 상태였다.
“아, 이 선생이 곧바로 수술이 있어서. 한음 학생, 시간 괜찮으면 가서 참관해 보지 않겠나?”
“제가요?”
“이 선생 솜씨가 아주 기가 막혀. 보면 분명 한음 학생도 우리 병원에 오길 희망할 거야.”
당사자의 의견 없이 마음대로 정해도 괜찮은 건가. 의문이 들어 고개를 당장에 끄덕일 순 없었으나 형의 수술장에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다. 형은 참관 안 시키기로 유명한 펠로우였으니까. 우리가 사귈 당시에도 좀처럼 참관시켜 주는 일이 없었던 것이 떠올랐다.
손을 테이블 아래에 둔 채로 주저하며 손톱만 뜯고 있자 박제원 교수가 얼른 따라가 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가만히 앉아 고민하던 나는 형이 나를 수술방에 들이지 않으리란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
기다란 다리를 자랑하듯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형의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내 기척과 함께 터지는 외침에 몸을 돌려세운 형이 불현듯 내 팔뚝을 잡아끌기 시작했다.
“아파, 형.”
내 말도 무시한 채 나를 무자비하게 이끌던 형의 얼굴을 살폈다. 언제부터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인지 싸늘한 시선이 끝내는 나를 외벽으로 밀쳤다.
“아프다고!”
“내 눈에 띄지 말라고 했지.”
형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내게 뇌까렸다.
“그러겠다고 한 적 없어, 나.”
그러나 나는 그런 형의 모습에도 물러설 수 없었다. 형의 세찬 눈빛을 받아치며 대답하자 형이 차오르는 열을 식히려는 듯 한숨을 뱉었다.
오래된 습관이었다. 화가 날 때마다 관자놀이를 지압하며 한숨부터 토해 내는 것은.
“사람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시험해 보냐?”
“…….”
“그래, 후회해. 널 알아 온 시간을 죽도록 후회해.”
“형.”
“그러니까 제발 좀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말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챈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대로 날 지나쳐 병원으로 향하는 형의 뒷모습을 마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물러서면 안 된다고 다짐했던 것이 조금 전이었으나 바닥에 붙어 버린 발을 꿈쩍도 할 수 없었다.
‘형도 후회하지.’
당시에는 답하지 않았던 형이 그날의 나를 얼마나 원망하고 있었는지.
‘왜 아무 말이 없어? 물었잖아, 후회하냐고.’
그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나는 후회해. 이 기분 더러운 열등감 느끼는 것도 지겹고 싫어.’
왜 항상 저질러 놓고 나서야 후회를 하는지. 결국 모든 비수를 감당해야 하는 게 나인 걸 알고 있으면서도, 왜 그 순간의 나를 보호하고자 성급한 판단을 내렸는지. 가장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내면서 보호해야 했던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는지.
끝까지 이기적인 나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염치없이 너를 할퀴었다.
‘검정고시 치르고 의대 준비한 거, 다 성공하고 싶어서야. 성공하고 싶어, 형처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형처럼만 성공해서 부러움 한 몸에 받고 잘 살고 싶었어. 그런데 이상하게 형이랑 있으면 늘 뒤처지는 기분이야. 내가 너무… 내가 너무 부족해.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매 순간 느껴. 난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싫어, 형.’
나는 그저 지독한 열등감에 사로잡힌 더러운 인간이라는 걸. 자학하는 것만으로는 우리 사이를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너무 뒤늦게 떠올렸다.
‘알아, 나 되게 이기적인 거. 욕심도 많고, 못된 것도 알고, 형한테 이런 소리 하면 안 되는 것도 알아. 내가 이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거, 다 형 덕분인데, 형 덕분에 내가 의사라는 꿈 꿀 수 있었고, 무탈하게 졸업할 수 있었던 건데. 형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 느낄 때마다, 형이 미워. 형 잘못 아닌데, 그냥 내가 못돼 처먹은 탓인데, 이런 생각 하는 내가 너무 역겨워.’
다 내가 자초한 일이었다. 후회한다. 그렇게까지 형에게 상처를 입힌 그 순간을 후회하고, 그 순간의 나를 원망한다. 그럼에도 또다시 형에게 상처를 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그래서 형 만난 걸 후회해. 차라리 모르고 살았으면 이렇게까지 추악하고 더러워지진 않았을 거야. 내가 갖지 못한 것에 욕심 부리지도 않았을 거고, 죽는 데 조금의 미련도 없었을 거라고.’
기어코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잔뜩 문드러져 곪은 속이라 더 이상 아플 일도 없을 것이라 여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형에게서 돌아설 수 없는 내 자신이 역겨웠으나 그러할 자격도 없어 가만히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이나 우리의 과거를 되뇌었다. 형에게 처음으로 의지하기 시작했고, 형을 향해 박동하는 심장을 움켜쥐고 하루하루를 절망 속에서 보냈던 그날을.
언제나 형은 나보다 우위에 있었다. 연인 관계로 발전하기까지 형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기억한다.
우리가 점점 틀어지기 시작한 것은, 상·하위 관계에 있던 우리가 동등해지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아니, 성공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부터, 주제 파악도 못 하고 가져선 안 될 감정을 가지고 나서부터.
갑자기 불어닥친 행복에 겨워 잠시 내 처지를 망각했다. 이렇게까지 이기적일 수가 없었다. 묵묵하게 내 뒤를 지탱하고 있는 형을 보며 열등감을 느끼는 내게 분노했다.
나를 괴롭히던 자기혐오는 자기방어 태세로 돌입하는 나 자신을 보호하고, 애꿎은 형에게로 튀었다.
그걸 형 역시 은연중에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후회하고 있으리라 여겼다. 애초부터 단절한 관계였더라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테니까.
그러나 그런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어느 것 하나 투명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었던, 존재 자체가 열등감으로 응어리진 그런 초라한 인간이라는 걸, 그때 알았어야 했다.
***
뼛속까지 아리게 만드는 추위가 무색하게 손바닥에 땀이 차올랐다. 지나치게 긴장해 버린 탓이었다. 목구멍으로 두텁게 넘어가는 침에 다물린 입술 사이를 벌려 찬 공기를 쐬었다.
그날 이후로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물론 그 한 달 사이에 다시 시작된 굴레의 지옥 히트 사이클도 겪었다. 그러나 예전만큼 역겹지 않았던 것이 다행인지, 불행인지 분간할 여유는 없었다.
근 한 달 동안 내가 한 일은 형에게 달려가 의료 봉사 따위 갈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고 울고불고 난리 치는 일이 아니었다.
제일 먼저 책상에 앉아 두터운 스프링 노트를 꺼냈다. 그리고 이 시기로부터 1년간 있었던 일들을 빠짐없이 정리했다.
형과 헤어진 일, 술독에 빠져 허우적거리다가도 술이 채 깨기도 전에 책상 앞에 억지로 앉아 공부했던 일, 국시를 보고 그 결과를 확인하며 기쁨을 토해 내던 일.
형에게 가기를 주저하던 발걸음과 끝내 연락하지 못한 마음, 건너 건너 들려오던 형의 소식들과 그를 향했던 미련을 떨치기 위해 무작정 일에 매진했던 것, 그 순간순간마다 형이 지었던 표정과 지었을 표정들, 너무 사소해서 그냥 지나칠 뻔했던 것들까지 죄다.
형과 헤어지고 형이 죽었다던 소식을 전해 들었을 순간까지 빼곡하게 적은 게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아니, 한 달도 부족했다. 덕분에 수련 병원에 제출해야 할 지원서도 마감 기간에 맞춰 간신히 걸쳤으니까.
과거는 서서히 변하고 있다. 그 변화는 연동병원이 아닌 한성대학병원에 지원서를 제출하면서부터 첫발을 내디뎠다.
악귀 같은 죽음이 또다시 널 집어삼키지 못하게, 나에게는 너의 운명을 바꿔야 하는 사명이 있었다. 그 결심이 내 속을 거북하게 만들고, 심장을 쥐어짜 내도. 내게는 더 이상 물러날 공간이 없었다.
한성대학병원의 오리엔테이션 장소는 원내 5층에 위치한 대강당이었다. 강당으로 들어서자 같은 학교 출신의 동기 또는 선배들이 어색한 인사를 건네 왔다. 삼삼오오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는 신참 의사들을 뒤로하고 멀찍이 떨어져서 앉았다.
자교 출신의 학생들이 월등하게 많았지만 타교 출신의 학생들도 적지 않은 숫자였다. 그중 나와 마찬가지로 홀로 동떨어진 채 앉아 있는 낯선 머리통에 잠시 시선이 멈추었다. 잠깐 내비쳤던 관심은 곧 숨을 몰아쉬며 들어오는 무영에 금세 거두어졌지만 말이다.
“아, 씨. 조금만 더 늦었으면 첫날부터 지각할 뻔했네.”
강당 입구에서 의사 가운을 걸친 스탭들이 하나둘 들어오자 무영은 아직도 진정하지 못한 호흡을 가다듬으며 가슴을 아래로 쓸었다.
“모두 정숙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정갈한 목소리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단숨에 바로잡았다. 잠시 뒤 불이 꺼졌고 스크린에서는 병원을 광고하는 영상이 흘러나왔다.
“누구지?”
“뭐가?”
“이번에 경쟁률 존나 쟁쟁했대. 옥스퍼드 메디컬스쿨 출신도 있다고 했는데.”
옆에서 작게 속삭이던 무영은 여전히 눈동자를 굴리기 바빴다.
“메디컬스쿨 출신이 왜 한국까지 와서 인턴을 해.”
나는 그런 무영에게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며 타박했다. 보통 메디컬스쿨에 들어가 MD(Doctor of Medicine, 의학박사)를 취득한 의대생은 해당 국가에서 수련의 과정이 아닌 전공의 과정부터 밟기 마련이었다.
과장된 소문이 분명함에도 무영의 시선은 변함없이 부산스러웠다. 감흥 없는 눈동자가 의미 없이 무영을 따라 움직였다.
“몰라? 작년 국가 고시까지 수석으로 합격해서 한창 말 많았잖아.”
전혀 몰랐다. 작년 이맘때쯤에 학교가 소란스러웠던 것은 대충 알고 있었으나 원래도 이 시기만 되면 늘 시끄러웠었다. 오른쪽 뺨을 긁적거리는 움직임을 멈추고 주위를 훑던 눈을 다시금 무영에게로 꽂았다.
“작년 국시 수석?”
아무리 둘러보아도 호기심에 답을 내려 주는 이를 찾을 수 없었는지 답답한 얼굴의 무영이 주변을 물색하던 눈을 거두었다.
“그 사람은 왜 이제야 지원한 건데? 작년엔 뭐 하고?”
“모르지, 나야.”
어깨를 한 번 으쓱거린 무영이 몸을 뒤로 기댔다. 어두웠던 불이 켜지고 제시간을 훌륭하게 활용한 영상이 닫혔다.
뒤이어 PPT가 열리며 연설대에 선 채로 이목을 집중시키던 의사가 맨 앞줄에 앉아 있었던 스탭들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물론 개중에 형은 없었다.
오리엔테이션은 꼬박 3일 동안 이어졌다. 딱히 특별한 건 없었다. 그동안 내 이름과 병원 로고가 새겨진 가운을 받았고, 병원 투어도 했다. 인턴은 매달 과를 이동하여 수련을 받아야 했기에 임의로 정해진 스케줄 표도 받았다.
당장 3월부터 맡게 된 과는 일반 외과였다. 신경외과는 4월과 10월, 11월이었다.
아무렴 면접을 볼 때 희망 전공과를 모두 신경외과로 통일했다지만 세 번이나 맡은 건 의아했다. 그래서 아마 박선영 교수나 박제원 교수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으리라 생각했다.
스케줄 표를 받으며 그다음으로 생각한 것은 형이 한국을 떠난 날이었다.
형이 출국한 날은 4월 16일. 그러니까 3월을 일반 외과에서 보내기엔 형의 마음을 돌리기에 턱없이 촉박한 시간이었다.
“겹치는 게 별로 없네. 그래도 6월까지는 겹쳐서 다행인데…….”
옆에서 무영이 자신의 스케줄 표와 내 스케줄 표를 비교하며 말끝을 흐렸다.
“바꿀 거야.”
“뭐로?”
“3월. 3월은 무슨 일이 있어도 신경외과에서 해야 돼.”
펜으로 3월에 동그라미를 그려 표시하자 무영이 손을 뻗어 내 손등을 겹쳐 잡았다. 포개진 손에 힘이 실렸다. 스케줄 표에 박은 시선이 자연스럽게 무영에게로 옮겨졌다. 무영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전공 희망하는 과 신경외과로 적었지.”
“응.”
“왜?”
“왜냐니?”
말투도 미세하게 날카로워진 느낌이었다. 눈살을 찌푸리자 무영이 포갠 손을 떼며 주먹을 한 번 쥐었다 폈다.
“너 그 사람 때문…….”
“맞아.”
“한음아!”
“그게 뭐 어때서?”
미동도 없이 가라앉은 표정으로 답하자 무영이 할 말을 잃은 듯 입을 다물었다.
무영은 형과 나 사이에서 벌어진 일들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영의 걱정에 알맞은 대처를 할 수 없었다.
마음이 급했다. 뒤바뀌는 과거가 어떤 변화를 불러일으킬지 알 수 없었고, 이제 와서 되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영은 10년 전 내가 연동병원에서 신경외과를 전공할 것이라던 소리를 듣고도 화내지 않았다. 이 두 번째 변환점을 보니 마음을 더 놓을 수가 없었다.
“잠깐만, 음아!”
단호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내 어깨를 무영이 도로 잡아 돌렸다. 무영은 불안한 듯 보였다.
“너 요새 이상해. 원래 다른 병원에 지원하려고 했었잖아. 갑자기 마음 돌린 것부터 이상하다고.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너야말로 이상해, 강무영.”
“…….”
“내가 왜 굳이 다른 병원을 가야 하는데?”
“…….”
“나 이 학교 출신이야. 게다가 한성대학병원은 모든 의사들이 근무하길 희망하는 병원이고.”
“하지만…….”
“내 목표는 원래부터 신경외과 서전이 되는 거였어. 이건 너도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
“음아.”
“알아, 네가 뭘 걱정하는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끝은 표정만큼이나 명료했다. 무영은 불만스럽게 비틀린 눈동자를 측면으로 틀었다.
“하지만 네가 미래는 바꿀 수 있다고 했잖아.”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 찡그려진 눈이 도로 내게 꽂혔다. 나는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도망치지 않을 거야.”
설령 그 운명이 내 운명과 뒤바뀐다고 해도.
***
눈앞이 핑 돌았다. 단단하게 선 가로등이 휘청거릴 정도면 말 다했다. 웅크리고 앉아 있던 몸을 바로 세워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내디뎠다.
오므린 입술 사이로 피어난 연기꽃 같은 입김이 공중으로 퍼지자 얼마 가지 못한 위태로운 걸음이 멈추었다.
한 번, 두 번. 멀리 흩어지는 입김의 끄트머리를 놓치지 않기 위해 들어 올려진 시선은 곧 새카만 밤하늘을 담았다.
별을 먹은 밤이었다. 어룽거리는 달빛마저 먹어 버린 심해를 닮은 밤. 그림자처럼 칙칙한 구름을 밀어내기 위해 손을 뻗었다.
내게 별을 보여 줘. 그게 고까우면 달이라도 보여 줘.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달리 구름은 아주 미세하게, 또는 더 포괄적으로 하늘을 가릴 뿐이었다.
스펀지처럼 술기운을 죄다 흡수한 마음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던 물결은 곧 온 세상을 집어삼킬 듯 거대한 쓰나미로 돌변한다.
그것이 곧 나의 몸을 부서트릴 기세로 덮치려 들었을 때, 불현듯 들려오는 구두 굽 소리에 호흡이 멈추었다.
“…….”
그리고 느릿하게 돌아가는 시야에 가득 들어찬 건.
“달이네.”
“…….”
“내 달.”
형이었다. 불규칙하게 뛰는 심장과는 달리 호흡은 안정적이었다. 하늘에 향했던 팔을 아래로 천천히 늘어트렸다. 가만히 서서 나를 바라보던 형에게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뿜은 입김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갔을 때, 한데 얽혀 있는 형의 시선 속에서 일그러진 얼굴로 웃고 있는 내가 보였다. 형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각몽 꿔 본 적 있어?”
“…….”
“딱 이런 기분일 것 같아.”
“…….”
“꿈속인 것처럼 하루하루가 믿기지 않는데 그 속에 섞여 들고 있는 내가 너무 또렷해.”
“…….”
“그런데 낯설지가 않다?”
형을 만난 이후로 내게 벌어진 일들이 줄곧 이런 감정을 안겨 주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 어떤 불편도 감수한 채 나는 형의 집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살았었다. 내가 레지던트였던 시절에는 퇴근이 죽기보다 힘들었던 것 같은데, 그 시절의 형은 밥 먹듯이 퇴근을 하며 내게 얼굴을 보였다.
행여 방해가 될까 형이 귀가하고 나면 방 안에 틀어박혀 있는 내게 형은 늘 그런 말을 했다. 밥은 먹었냐고. 믿기지 않았다. 내 밥을 챙겨 주는 어른이 있다는 것이, 그때는 그게 너무 어색했었다.
아마 나의 시작은 그쯤이었을 것이다. 몇 달이 지나도 변함없는 형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꼈던 내 마음의 시초.
형의 시작은 언제였더라. 그건 형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타인과의 경계선이 분명했던 형에게 어느새 나는 일상이 되었다고. 어느 순간부터 잠을 자고 일어나면 내 낯빛을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무심코 건넸던 챙김이 점점 지나친 관여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느꼈을 때, 그제야 알았다고 했다. 인정해 마지않을 수 없었다고.
그 뒤로 나는 늘 이런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분명 땅을 밟고 있는데, 땅이 아니라 구름을 밟고 있는 것 같은 그런 기분.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그걸 마냥 꿈이라고 치부하는데, 박동하는 심장이 너무나도 또렷해 현실인 것을 자각할 수밖에 없었던 그런 기분. 모든 나날에 괴리감을 느꼈지만 형을 마주한 순간 내가 살아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던 그런 기분.
“이 모든 순간이 꿈이고, 오랜 시간을 이 꿈에 허비하고 있다고 해도. 깨고 싶지 않을 것 같아.”
혹시 내 앞에 선 형마저 허상일까, 곧게 뻗어진 손에 닿은 형의 뺨은 아주 따스했다. 추위에 얼어붙은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잠시나마 닿았던 온기에 소스라치게 놀란 손가락이 마디를 웅크렸다. 가슴께에서 치밀어 오르는 설움에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보일 수가 없어 고개를 푹 수그렸다.
“……미안해.”
떨리던 손끝만큼이나 흔들리는 목소리가 볼품없었다.
“염치없는 줄 알면서도 찾아왔어. 너무 지키고 싶어서.”
취중에 전하는 내 진심. 형과 함께였던 매 순간이 진심이었다고 생각했으나 그때의 모든 것들이 정말 본심이었다고는 확신할 수 없었다. 내가 끄집어낸 열등감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 마음에 기생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무던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명백하게 말할 수 있었다. 무려 10년에 걸쳐 확인받은 마음이었다.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어.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무서울 만큼.”
주변을 기웃거리고 있는 공기는 서늘했다. 그래서인지 온몸이 덜덜 떨려 왔다.
“해야 할 일은 태산처럼 쌓여 있는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서 주량을 넘겼거든. 그런데 너무 걷고 싶은 거야.”
“…….”
“그러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어.”
달빛 한 줄기 허락하지 않는 이곳은 예전에 우리가 함께 살던 동네였다. 이곳에 달이 들지 않는 이유는 하나였다. 형이 달이니까. 한 하늘에 두 개의 달이 뜰 수는 없으니까.
“나 이제 다음 주부터 병원 출근해.”
“…….”
“저번에 들었지. 나 국가 고시 수석으로 합격했거든.”
“…….”
“안 웃네. 형도 분명 기뻐해 줄 줄 알았는데.”
비틀린 웃음을 자아냈던 입꼬리가 일순 경련하기 시작했다.
“말해.”
“…….”
“말하라니까?”
손끝이 파들파들 떨렸다. 주먹을 쥐었다 펴길 반복해도 떨리는 손끝은 비단 추위 때문이 아니었다.
“형이 무슨 송장이야? 말하라고 했잖아!”
절규하듯 형편없이 터지는 목소리와 함께 눈물이 후드득 쏟아져 내렸다.
아니다. 내지른 외침과 함께 떨어지기 시작하는 눈물이 아니었다. 어쩌면 형에게 말을 건넸던 순간부터 내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된 상태였을 수도 있었다. 눈물 자국으로 얼룩진 뺨이 얼어붙은 것처럼 시렸다.
“형!”
울음소리가 형편없이 갈라졌다. 불안정한 울림의 심장과 마찬가지로 호흡이 밭아졌다. 옷깃을 붙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쳐도 형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래선 납골당에서 마주했던 형이랑 다를 게 없잖아! 무작정 옷깃을 당겨 형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맡아야 한다. 이 불안을 떨치기 위해서 형의 페로몬이라도 맡아야 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한없이 예민했던 코는 형의 냄새를 쉽사리 들이켜지 못했다.
이럴 수는 없다. 내게 이래서는 안 된다. 절망으로 인해 아득하니 현기증이 일 기세였다.
“제발 말 좀 해, 제발…….”
“떨어져.”
종국에는 사정하기에 이른 목소리가 단박에 잘렸다. 콱 막힌 듯 맡아지지 않던 형의 페로몬이 뒤늦게 코끝을 맴돌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호흡이 불가할 정도로 울부짖던 감정이 잠시 멈췄다. 더… 더 들려줘.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형의 울대가 다시 한번 울렸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본 형의 얼굴은 인상마저 지운 상태였다.
형은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얼음장같이 찬 손으로 자신의 옷깃을 구기는 손을 떼어 낼 뿐이었다.
그게 서글펐다. 그동안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한구석에 모아 두기라도 한 것처럼, 수년 치를 쏟아 내듯 쉼 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이 자꾸만 앞을 가렸다.
“……미안해.”
“…….”
“아직도 열일곱에 멈춰 있어서.”
“이한음.”
“성공한다는 거… 별것도 아니더라. 애써 쌓은 노력이 무색하게 한순간에 잃을 수 있는 거였어. 참 가증스럽지. 가진 것 하나 없는 인간으로 태어나서 원점으로 돌아간 것뿐인데… 이상하게 살 떨릴 만큼 무서웠어.”
늦은 새벽임을 알리는 한산하고 차가운 공기.
“……그래서 도망치려고 했거든. 형한테 그랬던 것처럼. 내가 계속 도망만 가니까 불쌍해 보였나 봐. 걱정도, 고통도 없는 곳으로 보내려나 싶었는데 나는 또 이 자리에 서 있어.”
형의 표정이 꼭 새벽 공기 같았다.
“왜 날 다시 여기로 보낸 줄 알아?”
날카로운 이면 속에 감춰진 외로움이 보였다.
“난 벌받는 거야.”
“…….”
“내가 태어난 자체가 벌인 줄 알았는데. 아니, 난 벌을 이제야 받는 거야. 시험대 위에 놓인 내 세상은 실패했어. 그래서 그걸 만회하러 온 거야.”
그리고 그 외로움 속에는 형과 내가 갈라섰던 그때의 순간이 선명하게 담겨 있었다.
“다시 잘해 보자고 욕심 안 부릴게. 내가 너무 보기 싫더라도… 내가 너무 밉더라도 만회하게만 해 줘.”
“하나만 해.”
“…….”
“용서를 빌 생각이면 용서만 빌고, 단념할 생각이면 단념만 해.”
깊고도 어두운 새벽이 서서히 밀려나고 있었다. 빛을 발하며 존재감을 드러낸 해가 조금씩 제 영역을 넓혀 가고 있었다.
“용서 빌면, 받아 줄 거야?”
“……아니.”
복잡하게 일그러진 얼굴을 보이던 형이 내게서 등을 돌렸다. 해가 뜨는 방향으로 걸어가는 형의 뒷모습이 헤어지던 날 내게서 등을 보이던 것과 오버랩됐다.
***
첫 출근. 오지 않을 것 같던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일주일 치 바리바리 싸 온 옷가지를 정리할 새도 없이 수련의들은 자신이 소속된 팀의 선배들에게 불려 가기 바빴다.
내가 제일 먼저 맡은 일은 회진을 따라 돌며 환자들의 얼굴을 익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전공의들의 의도와는 반대로 나는 정갈한 형의 뒷머리에 시선을 박았다.
맨 뒤에 서서 앞서 걷는 형의 뒤통수를 끈질기게 좇았다. 환자의 상태를 살피며 회진을 도는 형의 표정은 피곤한 듯 보였지만 그럼에도 형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다.
나는 형이 하는 손짓과 내뱉는 사무적인 말투에서 그 속에 담긴 세심함을 느꼈다. “머리가 아파서 밤에 잠을 못 자요.” 불편함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진통제를 일정량 더 투약해 줄 것을 지시하던 형과 잠깐 눈이 마주쳤다. 물 흐르듯 금시에 건너간 시선이었지만 나는 형의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형은 그날 이후 나를 무시하기로 마음먹은 모양인지 실습생들에게만 질문을 할 뿐 나에게는 단 한 마디도 걸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레지던트도, 실습생들도 나를 불쌍하다는 듯 쳐다봤지만 상관없었다. 형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됐으니까.
8시 반부터 시작되었던 회진은 예정보다 일찍 끝을 냈다. 형은 회진 이후에 모습을 홀연히 감추었고, 나는 점심시간이 훌쩍 넘은 시간까지 불려 다니며 업무를 도왔다.
밥 먹을 새도 없이 레지던트 2년 차의 지시하에 병실 곳곳을 돌아다니며 드레싱을 했다. 그러던 내가 뻐근한 목을 풀며 마지막 병실에서 빠져나오던 참이었다.
“인턴.”
“네.”
레지던트의 부름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틀어진 얼굴이 나를 부른 사람의 정체를 확인하고 나자 미묘하게 굳어졌다.
내게 말을 건넨 사람은 레지던트가 아닌 김재겸이었다. 김재겸은 양손에 자판기 커피를 든 채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김재겸을 따라 올라온 옥상은 고층의 높이를 실감케 할 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마구 흩날리는 머리칼을 내버려 둔 채 난간을 붙잡고 너머의 공간을 내려다보았다.
“일은 할 만해요?”
“보시다시피요.”
뒤이어 김재겸이 내미는 커피를 받은 내가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댔다.
처음에는 몰라봤는데 이제 와 다시 보니 알 것 같았다. 이 사람, 알파구나. 김재겸의 발밑으로 흐드러지는 잔재가 그렇게 말해 주고 있었다.
알고 보니 김재겸은 한성대학병원 펠로우였다. 젊어 보이는 것을 보면 열성보다도 우성 쪽에 가깝겠지.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차별화는 차츰 수그러들었지만, 형질에 따른 역량의 격차는 분명했다. 열성의 형질과 베타 형질보다도 압도적이게 특출 난 우성 형질들은 의도하지 않아도 금세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의문인 건 우성인 것치고는 페로몬 잔재가 너무 희끄무레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열성인가. 짧은 시간 고민했으나 외딴길로 샌 생각을 다시금 바로잡았다. 우성이건, 열성이건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으므로.
아침부터 쫄쫄 굶었더니 벌써부터 체력이 말이 아니었다. 수술 두 번을 연달아 들어가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적응되었던 몸은 지금의 근무 환경이 낯설기만 한 모양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바람을 쐬자 김재겸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능숙하게 척척 하던데요? 할 만하다는 뜻인가. 참, 밥은 먹었어요?”
살갑게 웃으며 물어보는 모양새를 보니 원래부터 김재겸을 알고 있었던 양 착각이 일었다.
김재겸에게 건넬 대답을 골똘히 고민하던 나는 “네.” 하며 짤막하게 응수했다. 왠지 먹지 않았다고 하면 더 귀찮게 굴 것만 같아서. 그게 김재겸에게 거짓말을 한 이유였다.
“정말? 뭐 먹었는데요? 구내식당 갔어요? 저는 아직인데, 오늘 메뉴 좀 추천해 줄래요?”
그러나 어떤 대답을 하든 묻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처럼 구는 김재겸은 내 예상을 철저히 벗어났다.
“커피 잘 마셨어요. 저는 바빠서 먼저 내려가 볼게요.”
귀찮은 사람. 나는 빈 종이컵을 와작 구기며 대답했다. 한가로이 서서 김재겸과 이야기를 나누기엔 그가 불편했다. 그게 쓸데없는 이야기였다면 더더욱 사절이었다.
“한음 씨!”
김재겸이 지나쳐 가려는 날 붙잡기 위해 다급히 내 이름을 불렀으나 내 걸음은 김재겸의 목소리를 가볍게 지르밟았다.
“스크럽(Scrub in, 참관하여 보조를 맡다) 좀 서 주실래요?”
그러나 상상도 못 했던 소리가 들려오자 걸음이 불시에 멈추었다. 저렇게까지 내게 관심을 두는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오메가여서? 상대에 대해 알고 나면 생각은 단순하게 흐르기 마련이다.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려 짧게 비웃은 내가 뒤를 돌았다.
만일 내가 전처럼 성공에 눈이 멀었던 인턴이었다면 스크럽을 서 달라는 말에 무작정 기뻐했겠지만, 지루할 정도로 돌았던 수술장은 더 이상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수술대 근처에 선다는 것 하나로 기뻐하기엔 나는 너무 닳아 있었다.
생각해 보면 결국 나를 파멸로 몰아간 것은 수술대였다. 비록 동경으로 시작했던 마음이었지만 형을 넘어서기 위해 의사가 되어 수술대에 설 것을 결심했고, 이에 대한 책임으로 그토록 자부하던 수술실에서 기절했던 나를 나는 더 이상 의사라고 할 수 없었다.
“다음에요.”
인턴 주제에 건방지다고 생각해도 상관없었다. 나의 목표는 성공을 향한 길보다 이해준을 살리는 일이었으니까. 싸늘하게 돌아서는 나를 김재겸은 더 이상 붙잡지 않았다.
3월 2일. 연동병원에서 첫 근무를 시작했던 날. 어수선한 마음에 새벽 내내 술을 마셨던 날. 형이 자주 물던 담배를 처음 시작했던 날. 술에 취해 형의 집 근처에서 형이 피우던 담뱃갑을 쥐고 형을 하염없이 기다리던 날.
나는 그 옆에 화살표를 치고 무언가를 새로 적기 시작했다. 한성대학병원에서의 첫 근무. 형과 함께 회진을 돈 일. 김재겸이 커피를 사 주며 스크럽을 서 달라고 했던 일은 굳이 적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음아!”
컵라면을 입에 대충 욱여넣으며 노트를 작성하는 내게 다가온 무영이 옆자리를 꿰차고 앉았다. 옆에 앉아 컵라면의 비닐을 벗기는 무영도 나와 마찬가지로 일에 치여 점심을 거른 모양이었다.
“그건 뭐야?”
표시 선에 따라 물을 붓던 무영이 내가 끄적이는 노트를 힐끗 쳐다보곤 물었다.
“별거 아냐. GS(General Surgery, 일반 외과)는 할 만해?”
노트를 닫으며 대충 대꾸하자 무영이 의뭉스러운 눈빛을 내게 보냈다. 그러나 무영은 곧 다 죽어 가는 신음을 뱉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죽을 맛이야. PK 때랑은 달라도 너무 달라.”
“같겠냐.”
컵을 집어 들고 라면을 한입 더 욱여넣자 무영이 책상 위로 엎드렸다.
“첫날부터 ER(Emergency Room, 응급실) 돌려니까 아비규환이 따로 없어. 너는 뭐 하느라 이제 먹어?”
“드레싱.”
“아, 나도 드레싱이나 돌고 싶다.”
“그래서 언제 의사 될래?”
첫날부터 많이 힘들었던 모양인지 툴툴거리는 무영이 웃기면서도 안쓰러웠다. 그러다 문득 그가 처음 근무하던 날, 내게 전화를 걸어 힘들다며 앓는 소리를 내던 무영을 다독였을 때가 떠올랐다.
그날에도 무영은 ER을 돌았을까. 불현듯 스치는 생각에 입술을 잘게 깨물었다.
“아, 걔도 NS 인턴이라던데. 봤어?”
그러나 회상에 얽매여 있는 것도 잠시였다. 무영의 말에 컵라면에 처박았던 시선을 들어 올렸다. 무슨 말을 하냐는 듯 바라보자 무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걔 있잖아. 메디컬스쿨 출신.”
아직도 그 소리인가. 무신경하게 면발을 들어 올리던 나는 무영의 말에 나와 함께 NS 인턴으로 들어왔던 남자 둘을 떠올렸다. 안경을 쓴 채 레지던트에게 질문을 퍼붓던 남자와 가만히 서 나를 쳐다보던 강아지상의 남자.
“보긴 했는데…….”
“어때?”
문제는 누구인지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면발을 입가에 가져다 댄 채 생각에 잠겼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어떻긴. 힘들어서 죽을 것 같다더니 순 뻥이지. 쓸데없는 데 관심 쏟지 말고 밥이나 먹어.”
“궁금하잖아. 나 같으면 영국에 짱박혀 있겠다. 거기가 여기보단 할 만하지 않을까?”
“그럴 거면 이제라도 MD 따러 가든가.”
의자에 기댄 몸을 축 늘어트리며 볼멘소리를 하는 무영에게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차마 입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용기 안에 처박힌 라면을 휘적거리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개수대에 국물을 버리고 음식물 쓰레기통을 열어 남은 라면을 버리는 움직임을 보던 무영은 곧 우는소리를 내며 식사를 시작했다.
그 뒤로는 저녁 먹을 새도 없었다. ER에서 갑자기 걸려 온 호출에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무영이 말했던 것처럼 응급실은 아비규환 그 자체였다.
나는 펜라이트로 Semi-coma(강한 자극에도 반응하지 않는 반혼수 상태)에 빠진 환자의 동공을 확인했다. 동공 반응도 없고 오른쪽 동공보다 왼쪽 동공이 더 컸다.
반혼수 상태에 빠진 데다가 오른쪽 동공이 축소된 것은 뇌출혈이 의심되는 케이스였다. 나는 환자의 호흡을 확인하다 다급하게 보호자를 향해 몸을 틀었다.
“환자분 의식은 언제부터 없었어요?”
“……잘 모르겠어요.”
“그때 상황 좀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갑자기 귀가 안 들린다고도 하고, 마비가 온 것 같다고도 하고… 분명 구급차 탈 때까지만 해도 의식이 있었는데 내리려고 보니까 의식이 없었어요……. 저희 아버지 어쩌죠, 선생님.”
“현재 환자분 동공 반응도 없고, 한쪽 동공이 수축된 걸 봐서는 뇌출혈로 의심되는 상황입니다. 일단 피 검사랑 CT 촬영부터 진행할게요. 김 간호사님, 여기 김수환 환자 피검사 좀 부탁할게요.”
나는 뇌출혈이라는 말에 울음을 터트리는 환자를 진정시키곤 입술을 뜯으며 주위를 살폈다. 아수라장 속에서 찾아낸 치프에게 다가가려던 걸음을 멈추었다.
연동병원에서도 이와 비슷한 케이스가 많았다. 마비 증상과 함께 온 의식 저하에 동공 축소, 호흡 불안. CT를 찍어 보기 전까지는 확진할 수 없었으나 김수환 환자는 뇌교 출혈에 가까웠다.
뇌교는 중뇌, 소뇌와 연수 사이에 위치하면서 무의식적 호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도록 소뇌를 돕는 역할을 한다.
매우 중요한 부위이기 때문에 작은 출혈이 있어도 사지 마비가 오는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뇌교 출혈이 일어난 환자의 78%는 48시간 이내에 사망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2018년도에도 수술 방법이 없어 수술적 접근보다는 보존적 치료를 위주로 치료하였는데, 2008년도에는 오죽하였을까. 나는 침착하게 서서 고민을 하다 형에게 콜을 넣었다.
아무 조치도 취할 수 없는 인턴직인 것이 이토록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긴장을 놓지 못하며 형이 전화를 받기만을 기다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 네.
그리고 형의 목소리가 울림과 동시에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김수환, 63세 남환, 현재 Semi-coma 상태며 Pupillary reflex(동공 반사)가 없고, 한쪽이 Contraction(수축)되어 있습니다. 의식을 잃기 전 Quadriplegia(사지 마비)가 왔다는 보호자의 의견으로 종합해 보았을 때 Pontine hemorrhage(뇌교 출혈)가 의심…….”
“야! 너 지금 누구한테 노티해!!”
그러다 문득 불같이 들이닥치는 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소리의 근원지로 고개를 돌리자 NS 레지던트 1년 차인 김현재가 열이 받은 얼굴로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 CT 찍어 봤어?
“……이제 촬영하러 올라갑니다.”
“휴대 전화 이리 안 줘?!”
어느새 코앞으로 다가와 휴대 전화를 낚아채려고 하는 김현재의 손을 피했다. 수화기 너머의 형은 잠시 동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 갈게.
“네.”
그러나 형은 시간을 오래 지체하지 않았다. 오겠다는 형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휴대 전화를 끊고 김현재를 바라보았으나 그를 바라봄과 동시에 고개가 측면으로 틀어졌다. 통증을 느낀 고막이 얼얼했고 입가는 잘게 경련했다.
“여기 응급실입니다.”
“누구한테 노티했냐고 묻잖아.”
“……이해준 선생님께 했습니다.”
“네가 제정신이야?!”
다시 한번 올라가는 손바닥에 그의 손목을 잡아챘다. 10년 동안 병원에 있으면서도 이렇게 앞뒤 안 가리는 레지는 처음이었다. 아무렴 내가 잘못했다 한들 응급실 안에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은 환자에 대한 도리가 아니었다.
“응급실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김현재는 산만하던 주위가 자신으로 인해 적막에 휩싸인 것을 깨달은 듯했다. 그러나 아직도 열이 채 가시지 않은 듯 숨을 몰아쉬던 김현재가 주위를 둘러보곤 내게 말했다.
“너, 이따 보자.”
내게서 돌아서는 김현재의 말을 마지막으로 나 역시 몸을 돌렸다. 피 검사를 끝내고 CT 촬영실로 올라간 김수환 환자에게 향하던 발걸음은 날 응시하고 있는 김재겸에 의해 제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얼음 팩을 뺨에 가져다 댄 나를 가만히 바라보던 김재겸이 입을 열었다.
“나한테만 성질부리는 줄 알았더니.”
왜 번번이 내게 참견을 해 대는지 그 이유를 종잡을 수가 없었다. 무슨 속셈이지. 의뭉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는지 김재겸이 웃는 낯으로 뺨을 긁었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원래 그렇게 오지랖이 넓은가 싶어서요.”
굳이 에둘러 말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내가 뺨에 가져다 대었던 팩을 내려놓으며 답했다.
그러고 보니 펠로우인 김재겸이 왜 자신에게 매번 존댓말을 쓰는지도 의문이었다. 원래 이런 사람인가. 혀로 볼 안쪽 살을 쓰니 비릿한 향이 느껴졌다.
“편한 대로 생각해요.”
“안 바쁘세요?”
전쟁 통을 방불케 하는 상황 속에서 왜 내게 신경을 쓰냐는 듯 튀어 나간 말에 김재겸이 왼쪽에 찬 손목시계를 보았다.
“저는 곧 퇴근할 시간이라.”
그러면서 싱긋 웃는 얼굴이 이렇게나 얄미울 수 없었다.
“맞은 곳은 괜찮아요?”
김재겸은 여전히 붉게 오른 내 뺨에 시선을 던지며 물었다.
“아니요.”
“너무 마음 쓰지 마요. 그 친구가 원래 좀 성격이 불같아서. 여차하면 제가 한 소리 할까요?”
“마음 안 쓰니까 그럴 필요 없어요.”
내 잘못임이 명백했다. 아무리 급했어도 레지던트가 아닌 형에게 다이렉트로 노티하는 건 병원 위계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손이 날아올 줄은 몰랐지만.
칼날 같은 바람이 뺨을 스쳐 굳이 얼음 팩을 하지 않아도 될 날씨였다. 운동화 앞코로 바닥을 툭툭 차던 움직임이 간헐적으로 이어질 즈음.
Rrrrrr
또다시 울리는 호출에 나는 김재겸을 한 번 쳐다보곤 응급실로 뛰어 들어갔다.
***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아?”
김현재가 검지를 일자로 펴 내 어깨를 밀었다. 그도 선배에게 잔뜩 혼나고 오는 길인지 표정이 말이 아니었다. 내가 대답이 없자 비상구에 김현재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나 지금 벽이랑 대화하냐, 이한음?”
“Pontine hemorrhage(뇌교 출혈) 환자였습니다. 치프보단 스탭 선생님들께서 봐 주시는 게 환자에게 더 빠른 조치를 취할…….”
“야, 내가 너 같은 새끼 한둘 보는 줄 알아? 너 같은 새끼들이 앞뒤 분간 않고 설쳐 대니까 우리까지 싸잡아 욕먹잖아. 내가 지금 그거 물어봤어? 뭘 잘했다고 말대꾸야, 지금!”
“체온도 급상승하고 조금만 늦었다간 사망하는 환자였습니다. 환자는 살리고 봐야 하지 않습니까.”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야!”
김현재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고 말하자 그가 목청을 높였다.
“선배 알기를 우습게 알지.”
그는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병원 들어왔다고 네가 의사라도 되는 줄 알아? 네가 하는 일이 뭔지부터 생각해. 그냥 시키는 거나 열심히 하라고, 괜히 설치지 말고! 너 Pontine hemorrhage 환자 직접 본 적은 있냐? 그래서 그렇게 자신만만해? 어쩌다 한 번 본 것 가지고, 병원 규율 다 무시하고 섣불리 진단까지 내릴 만큼 네가 그렇게 잘났어?”
“규율 무시하고 이 선생님께 노티한 건 죄송합니다. 하지만 규율 지켜서 살릴 수 있는 환자였으면 저도 절차대로 했을 겁니다.”
내 말에 김현재는 말이 안 통한다는 듯 헛웃음을 뱉었다. 그러나 나 역시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오더는 못 내릴지언정 의사로서의 자존심은 있었다.
자신 있었다. 적어도 오진 내서 환자를 죽이지 않을 자신. 지난 10여 년 동안 밥 먹듯이 했던 것이 바로 이 일이었으니까.
그 말을 직접 꺼내진 않았으나 김현재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바를 정확히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김현재가 어이없다는 듯 숨을 토해 내다 곧 조롱이 담긴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았다.
“네가 뭔데.”
빈정대는 언사에 입을 다물었다. 어이없겠지. 내가 김현재였어도 지금 이 상황이 기가 차고 어이없었을 것이다. 분명 거기까진 이해했다. 그러나.
“이해준이랑 사귀었다고 네가 뭐라도 되는 줄…….”
“김현재 선생.”
김현재의 입에서 형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내가 화가 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멈추려고 하였을 때, 비상구 위쪽에서 낯익은 페로몬과 함께 익숙한 음성이 흘러 내려왔다.
“이, 이 선생님.”
낯익은 페로몬의 주인은 형이었다. 조금 이상한 점이 있었다면 다른 페로몬이 함께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어디부터 듣고 있었던 거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을 그 낌새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필 이럴 때. 건조하게 메말라 있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형은 구두 굽 소리를 내며 계단을 내려왔다.
“계속 맞먹어 보지, 왜.”
형의 싸늘한 표정을 보며 몸을 흠칫 떠는 김현재의 얼굴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게, 그 인턴 교육 중에 제가 실수로…….”
“굳이 관계없는 내용까지 들먹이면서? 어디서 배워 먹었을지 모를 교육 방식을 내가 이해해 줬어야 했나?”
“죄송합니다.”
“병원 떠나가라 소리 질러 대서 발걸음 옮기게 했다는 건 실수건 뭐건 간에 책임질 자신이 있다는 뜻이겠지. 뭐, 궁금하긴 했어도 내 험담을 이따위 식으로 듣고 싶진 않았는데 말이야.”
창백해진 낯빛으로 얼어붙어 있는 김현재는 내가 보기에도 안쓰러울 정도였다. 이 상황이 언짢은 듯 공격적으로 칼날을 세우는 듯한 뉘앙스였지만 목소리는 지나치게 태연자약하다.
“서, 선생님… 그런 게 아니라…….”
“내가 얼토당토않는 변명 하나 듣자고 이 자리에 서 있는 줄 아는가 본데… 아, 혹시 면전에 대고 떠들고 싶은 거라면 잠자코 들어 줄 의향은 있어.”
“……아니요. 아닙니다.”
“그것도 아니면 더 할 말이 남아 있나?”
“……아니요.”
“없으면 이만 꺼지라고.”
냉소적인 말씨에 목소리를 떨던 김현재가 형의 눈치를 봤다. 그와 동시에 뻗어 나간 내 시선 역시 형에게 단단히 꽂혔다. 김현재에게 낮게 뇌까리는 형의 마지막 문장은 형의 감정을 숨기지 못했다.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억누르듯 형의 입가가 실그러지자 “……죄송합니다.”라며 아까와 같은 용서를 건넨 김현재가 서둘러 비상구를 빠져나갔다.
가만히 서 형의 옆모습을 끈질기게 좇아도 김현재에게 향한 시선은 내게 닿을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였다.
“형.”
그런 내 처지를 참지 못하고 형을 불렀다. 애가 달은 표정과 함께 뻗어진 팔이 형의 옷깃을 쥐려 했을 때였다.
“이 선생님.”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고개가 반사적으로 틀어졌다. 비상구에 울리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형체를 보일 때까지 들이켠 숨을 내쉴 수가 없었다.
형에게 끼쳤던 낯선 페로몬이다. 그것도 머리가 아찔할 정도로 향이 짙은 우성 오메가의 페로몬.
“먼저 내려가 보겠습니다.”
불안한 초점이 낯선 페로몬의 주인에게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와 함께 신경외과 인턴으로 들어온 강아지상의 남자였다. 형에게 고개를 숙인 남자는 처음 내게 향했던 그 시선 그대로 나를 응시하다 등을 돌렸다.
불안감이 이상할 정도로 넘실거렸다.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내게 말도 섞지 않던 형이 굳이 인턴을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는 사실이 고까운 것인지, 형의 페로몬에 섞여 들었던 그의 페로몬이 걸리는 것인지. 형에게 향하던 팔이 아래로 추락했다.
바짝 깎여 손바닥에 손톱자국을 낼 리가 없어 보이던 손톱들이 살갗에 깊이 파고들었다. 나는 입 안쪽 살을 씹으며 곧게 서 있는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엘리베이터에 들어선 순간부터 내 머릿속을 지배한 것은 단 하나의 물음이었다. 왜 같이 있었을까. 펠로우가 인턴과 함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지도 않았다. 교수 임용을 앞둔 전임의가 특정 인턴을 밀어주려는 경우에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그러나 형이 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뒤통수를 노려보자 그 눈초리를 느꼈는지 그가 반듯하던 고개를 틀어 내 눈길을 맞받아쳤다. 금시에 돌린 탓에 짧게 맞닿은 시선이었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뒤통수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띵.
때에 맞춰 울리는 기계음과 함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자 미동도 없이 서 있던 그가 앞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어… 음아?”
그리고 그 너머에서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 무영이 남자의 옆을 지나쳐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섰다. 토끼 눈을 하고 다가오는 무영의 눈동자에 비친 나는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영이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병원 밖으로 이끌 때까지도, 아마 나는 멍청한 표정을 차마 풀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페로몬을 얼마나 방출했으면, 그 잠깐 사이에도 숨이 턱턱 막히더라니까. 내 말 듣고 있어?”
온전히 지나치지 못한 겨울의 끝자락을 탄 바람이 시리게 불었다. 나는 그대로 눈을 천천히 감았다. 비웃고 있었다. 찰나에 볼 수 있었던 그의 얼굴에는 분명 비웃음이 잔뜩 서려 있었다.
“서재원이랑 무슨 일 있었냐니까?! 음아!”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감을 잡기가 힘들었다. 아니, 알아도 모르고 싶었다.
간과했다. 공석으로 남은 형의 곁을 다른 오메가가 기웃거리고 있으리란 상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형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원하리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한껏 방출된 페로몬이 그에게는 겁에 질려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철저히 간과했다.
***
서재원. 무영의 말에 의하면 어제 비상구에서 조우한 남자의 이름은 서재원이었다. 직감적으로 감이 왔다. 고작 발밑에 흩뿌려지는 잔재가 아닌 짙게 풍기던 페로몬을 맡은 순간 그가 메디컬스쿨 출신이라던 그 무수한 소문의 주인공이었다는 걸 얼핏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래서 함께 있었던 것일까.
형이 서재원과 있었던 이유를 추측해 보려고 머리를 무던히도 굴렸으나 그 자리에 함께 있지 못했던 내가 그 까닭을 알 리 만무했다. NS 과장도 아닌 형이 서재원과 함께 있을 이유는 없었으니까.
나는 노트를 펴 4일 자 내용 옆에 서재원이라는 이름을 적었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한숨이 앞머리를 흩트려 놓았다. 이해준과 서재원이라는 글자를 번갈아 쓰며 빈 노트를 꽉 메웠다.
노트 위를 시끄럽게 유영하는 펜의 끄적임이 복잡한 머릿속과 다를 바가 없었다. 노트를 받쳐 들고 있던 손끝에 힘을 실어 노트를 닫았다. 종잇장 넘어가는 소리가 조용하던 공간에 넘실거렸다.
눈앞에 닥친 수수께끼의 실마리를 잡기도 전에 복병이 생겼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을 텐데, 혼란에 빠진 것처럼 어쩌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이렇게나 한심할 수가 없었다. 의연하게 서 형에게 시선을 건네는 서재원의 뒤통수를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고개를 뒤로 젖혀 난간에 기대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은 누가 봐도 초라해 보일 것이다. 잎새 하나 지니지 못한 채 추위에 떠는 나이테 굵은 나무보다도 궁상맞을 것이 뻔했다. 3월의 초입을 달리는 하늘과는 동떨어진 배경이었다.
그러고 보니 지금처럼 느긋하게 앉아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형이 죽고 난 뒤 하늘을 보는 건 습관처럼 굳어진 일이었지만 내가 올려다본 하늘은 항상 먹을 뒤집어쓴 듯 새카만 하늘이었다. 마치 나를 집어삼킬 것 같던 칠흑 같은 밤하늘.
그 끝은 항상 나를 향한 조소로 끝이 났더랬다.
끼익.
그때 쇳소리를 내며 울리는 옥상 문에 기억을 되뇌던 머리가 활동을 멈추었다. 하늘을 바라보던 시선을 내려 문을 응시하자 그 속에 선 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끄러운 잡음과도 같던 그날의 기억들이 뿔뿔이 흩어짐과 동시에 숨도 따라 멎어 들어갔다.
형은 가만히 웅크리고 앉아 있는 날 보며 멈칫하는가 싶더니 곧 흐트러짐 없는 움직임을 이어 나갔다. 형의 머리카락을 정신없이 흩트리는 바람이 내 손길이었으면 했다.
나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꺼내 드는 형을 끈질기게 좇았다. 자리에서 일어나 지포 라이터를 켜는 형에게 다가간 것은 찰나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시위였다. 그저 바라보기만 하는 것으로도 만족할 수 있다던 결심은 형에게 묻은 서재원의 페로몬에 처참히 뭉개졌다.
나를 무시하지 마. 내가 더 이상 형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더라도 형 앞에 서 있는 나를 도외시하지 마.
형이 물고 있던 장초를 뺏어 입에 물었다. 바람 냄새와 함께 끼치는 형의 페로몬이 달다고 느끼던 순간이었다. 형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고, 보란 듯이 필터를 잘근 씹으며 라이터까지 빼 들어 불을 붙이자.
콜록.
쾨쾨한 담배 연기를 채 삼키기도 전에 나오는 기침에 손목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자 형이 험악한 얼굴로 내게 손을 뻗었고, 나는 형의 손길을 피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뭐 하자는 거야.”
구겨진 인상만큼이나 거친 음성이 귓가를 내려쳐도 형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며 담배를 한 모금 더 빨아 넘겼다.
담배를 깊게 들이켜고 반사적으로 기침을 토해 내는 것이 서너 번 반복되자 금세 익숙해졌는지 더 이상 연기를 토하지 않았다.
“이한음.”
형이 무겁게 깔린 목소리로 날 저지했다. 조금 혼란스러운 듯 보이는 형의 모습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형이 죽고 난 뒤에 배운 담배였으니 내가 담배를 피우리란 생각을 한 적이 없었을 테니까. 형에게서 나는 알싸한 냄새가 불만이라는 듯 툴툴거린 적이 적지 않았던 나니까.
나는 시선을 돌려 손에 들린 담배를 내려다보았다. 흐드러지듯 피어나는 담배 연기가 참 위태로워 보였다. 누구를 닮은 것 같은데.
그것이 나인지, 형인지. 나는 공중으로 흩어지는 연기에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내 시선을 훔친 건 갑작스럽게 뻗어진 형의 손이었다. 눈매가 커다랗게 벌어졌다.
“형!”
외마디 외침과 함께 고개를 바짝 쳐들어 형을 보았다. 형은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덜덜 떨리는 손마디 사이로, 형의 손바닥에 의해 불씨가 죽어 버린 담배가 떨어졌다. 바람결을 따라 꽁초가 바닥을 굴렀다.
담배가 떨어졌음에도 내 손을 감싼 형의 손은 미동조차 없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형의 손을 잡아 손바닥을 확인하려 했지만 형이 더 빨랐다.
“너.”
내 옷깃을 휘어잡아 당기는 형의 손이 평소와는 다르게 조금 떨렸던 것도 같다. 아니, 어쩌면 내 몸이 떨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형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 입술을 두어 번 달싹였다. 형의 입술 사이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오길 기다렸지만 우리를 휘감은 적막 끝에 찾아온 건 토해 내듯 뱉어진 한숨이었다.
“됐다.”
그리고 형은 내게서 돌아섰다. 한 걸음, 두 걸음 멀어지는 형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내 시선이 꽂힌 곳은 형의 손이었다.
괜찮을까. 그리고 그 걱정이 머릿속을 채 맴돌기도 전에 뻗어진 발걸음은 어느새 형의 뒤에 자리하고 있었다.
기어코 형의 손을 잡자 형은 시원스럽게 내딛던 걸음을 멈추고 나를 돌아보았다. 차마 형의 눈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저 손바닥에 난 그을린 자국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숨 막히는 정적이었다. 어떤 날카로운 반응 없이 내게 잡힌 손을 빼내 걸음을 옮기는 형을 따라 움직였을 때도, 내가 기어코 형의 연구실로 따라 들어갔을 때도. 상처가 남은 자리를 소독하고 화상 연고를 직접 발라 줄 때까지도 형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냥.”
나는 형 손바닥 위에 밴드를 붙이며 입을 열었다.
“그냥… 답답해서 그랬어.”
형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예상이 가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형이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는지도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복잡스러운 마음을 하나로 뭉뚱그리며 나를 변호했다. 아직껏 당혹감에 전 목소리는 하릴없이 시들어 있었다.
형은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이해타산적. 내가 알고 있는 형은 그랬다. 어떤 급박한 상황에서도 머릿속에 있는 것을 실천으로 옮기기 위해 사소한 것 하나까지 염두에 두는 것이 형이었다.
아무렴 내가 담배 피우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고, 그 순간 감정적이었다 해도 자신에게 해를 끼칠 만할 짓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혼란스러웠다. 왜 이러는 거지. 왜…….
“아…….”
아랫입술을 엉망으로 씹어 대던 이가 조금씩 벌어지는가 싶더니 소성이 터져 나갔다. 언제부터 쳐다보고 있었을까. 나를 향해 강하게 내리쬐는 형의 시선이 따가웠다.
이상하게 형의 그 시선을 받아 내고 있기가 어려웠다. 마치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한 아이처럼, 어른 몰래 저질렀던 나쁜 짓을 들켜 버린 아이처럼. 다시금 다물어진 입 안으로 돌멩이 같은 침이 넘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니까…….”
옅은 쌍꺼풀이 진 날카로운 눈에서 오뚝하게 선 코로, 얄팍하고 분홍빛을 띠는 입술로, 외모에 어울리지 않는 다부진 어깨로. 그리고 내 손보다 한 마디는 더 긴 형의 손으로.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형은 여전히 말이 없었고, 내 눈길은 여전히 형의 주위를 서성였다.
죽음과 맞바꾼 채 과거로 돌아온 후 이처럼 당황할 일은 다시없을 것이라 여겼다. 겪을 대로 겪어 대부분의 케이스를 꿰고 있던 병원 생활도, 함께 지새워 온 세월만큼이나 익숙한 형도. 그러나 고작 담배 한 대 태운 것이 일고 들어온 파장이 이 정도일 줄이야.
확실히 형은 전과 달랐다. 예상치 못했던 돌발 행동도 물론이거니와 날 무시하기 바빴던 형의 표정이 예전과는 달랐다.
고작 담배 하나 때문에? 그래, 어쩌면 지금 이 순간으로 종지부를 찍을 변화일지도 몰랐다.
알 수는 없었으나 형이 변하였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밑도 끝도 없이 물고 늘어지던 잡생각의 끝은 결국 하나였다.
형을 살리는 것. 내가 과거로 되돌아온 이유. 지금 내가 형에게 해야 하는 것은 변명 따위가 아니었다.
“……두 달.”
방황하던 시선을 올려 나를 꿰뚫어 보듯 관찰하던 형의 눈과 마주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앞으로 딱 두 달만 귀찮게 굴게.”
안 그러겠다고 약속까지 했으면서 자꾸 나도 모르는 새에 욕심을 부리고 만다. 서재원이 형의 옆자리를 노려도 내가 그의 감정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었다. 형의 바운더리에서 스스로 벗어난 건 나니까. 나는 두 달 그 이상의 어떠한 것도 형에게 바라선 안 되었다.
내가 그 이상의 것을 바란다면, 그것은 내 사사로운 욕심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곁에 있게 해 줘.”
또 다른 돌발 행동이 오히려 형을 옥죌 수 있다는 걸 바보같이 몰랐다. 내가 지금 형의 앞에 있는 것 자체부터가 말이 되지 않으니까,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이상할 게 없었다. 겁이 났다. 또 형을 잃게 될까 봐.
잃어버렸다.
햇볕 아래 선 형에게 시선이 팔려서. 메스를 쥐느라 굳은살이 틈틈이 박인 손바닥 사이로 자리 잡은 상처에 정신이 팔려서 잃어버린 줄도 몰랐다.
곧바로 옥상으로 향했으면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형과 나 사이의 정적을 깨트리는 호출에 불려 가 정신없이 발을 굴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형과 헤어지고 난 직후의 일들을 적었던 노트를 잃어버린 것을.
끽해 봐야 몇 시간이었는데. 한숨 돌리고 난 후 되돌아간 자리에는 노트 대신 담배꽁초 하나만 달랑 굴러다닐 뿐이었다.
불안함이 서린 마음이 곧장 드러났다. 무의식중으로 가뜩이나 짧은 손톱을 뜯어내자 아린 감각이 들어 손을 내려다보았다. 어둠에 익숙해져 있어도 시야는 한낱 손톱의 상태까지 전부 담아내지 못했다.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불이 꺼진 숙직실에는 밀린 잠을 몰아서 자는 인턴들의 코 고는 소리만이 울릴 뿐이었다.
깊게 자는 듯 보였어도 이들은 휴대 전화를 품에 꼭 붙든 채 쪽잠을 자고 있었다. 이들의 피로는 어느 선배의 호출에 의해 금세 쌓이고 쌓이리라.
구태여 나까지 보탤 필요는 없었으므로 나는 숙직실의 전등을 켜는 대신 숙직실을 벗어나는 것을 택했다.
“어, 음아.”
문을 열고 나서니 복도의 끝자락에서 걸어오는 무영이 보였다. 무영은 피로가 가득 담긴 눈을 손으로 비비며 나를 반겼다.
아마 고된 하루를 마치고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숙직실로 향하는 걸음이었을 것이다.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졸음기에 내가 작게 웃음을 흘리자 무영이 따라 웃었다.
“호출이야?”
“아니.”
안타깝다는 듯 물어 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저었다. 한산한 복도를 울리는 목소리를 귀담아듣던 나는 서둘러 무영에게 길을 비켜 주었다.
그에 숙직실 안으로 들어서려던 무영이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가만히 서 있더니 이내 숙직실의 문을 도로 닫는 게 아니겠는가. 내가 의아한 듯 무영을 올려다보자 무영이 몸을 돌려 내 어깨 위로 팔을 올렸다.
“배고파. 라면 먹으러 가자.”
“나는 먹기 싫은데.”
“아, 같이 먹어 줘. 혼자 먹기 외롭단 말이야.”
아이처럼 칭얼거리며 거대한 몸뚱이를 내게 기대는 바람에 몸이 자꾸 옆으로 밀렸다.
“알았으니까 저리 떨어져.”
그런 무영을 밀어내도 무영은 웃음기를 달며 내게 달라붙었다. 휴게실로 향하는 동안 둘 사이의 기류는 가벼웠다. 덕분에 억지로 지었던 웃음이 조금은 자연스러워졌고, 오가는 실랑이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상태였다.
분명 그랬다. 무영이 휴게실의 문을 열기 전까지는 말이다.
“라면 다 떨어진 것 같은데, 바람 쐴 겸 편의점이라도 다녀올까?”
어색한 눈짓으로 나를 돌아보는 무영에 고개를 삐딱하게 틀었다. 살짝 열린 문틈으로 보였던 불빛, 부자연스럽게 끌어 올린 입꼬리.
무영은 거짓말이 서툴렀다. 내가 마주치면 껄끄러워질 사이인 사람이 휴게실 안에 있는 것 같은 눈치인데.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턴들을 위해 갖춰진 휴게실 안에 있을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서재원.
나는 당황한 표정의 무영을 밀어내며 휴게실 안으로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그 안에 홀로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서재원이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이건 뭔데.”
수상했던 기척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책을 읽는 서재원을 지나 냉장고 위에 올려진 컵라면을 집어 든 내가 그것을 무영에게 던지며 물었다.
곤란하다는 얼굴로 컵라면을 받아 든 무영이 서재원과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 무영의 맞은편에 앉으며 컵라면을 뜯는데, 가만히 책을 보고 있던 서재원이 불쑥 말을 걸었다.
“내가 되게 이상한 걸 주웠는데.”
누구에게 건네는 말인지 모를 소리를 하자 고개가 절로 들렸다. 서재원은 자신에게 꽂힌 내 눈길에도 시선을 책에 고정한 상태였다.
“처음에는 일기장인가 싶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이상해서.”
혼잣말을 하듯 조곤조곤한 음성을 뱉어 내던 서재원이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그런 서재원의 눈에서 그가 들고 있던 책으로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씨발, 터져 나올 것 같던 욕지거리를 목구멍으로 억지로 삼켜 내며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음아?”
그에 놀란 무영이 놀란 눈을 하며 나를 쳐다보았고.
“이해준 선생님을 이름으로 부르는 것 보면 엄청 각별한 사이인 것 같은데.”
“무영아.”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가려는 서재원의 음성을 대번에 끊어 버렸다. 서재원이 읽고 있던 것은 책이 아니라 내가 잃어버렸던 노트였다.
“어?”
무영이 얼떨떨한 목소리로 내 부름에 답하였으나 내 시선은 여전히 서재원에게 꽂힌 상태였다.
“삼각김밥 좀 사다 줄래? 컵라면으로는 영 배가 안 찰 것 같아서.”
무영의 눈길이 느껴졌다. 무영은 나와 서재원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휴게실을 나섰다.
그런 무영의 뒷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던 서재원은 휴게실의 문이 작은 소리를 내며 닫히자 다시금 내 눈을 응시했다.
“왜? 같이 들으면 더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서재원이 한쪽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비아냥거리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서재원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 들린 노트를 빼앗았다.
“네 거 맞구나?”
“서재원.”
시선을 내려 서재원이 입은 가운에 박힌 이름 석 자를 나직하게 불렀다.
“그래, 서재원. 서재원, 이해준, 서재원, 이해준.”
“그 입.”
“손에 어찌나 힘을 주고 썼던지 내가 다 미안하더라고.”
“다물어.”
서재원은 노트 안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었을까. 목소리를 낮게 내리깔고 말을 짓이기듯 씹자 서재원이 이번에는 작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페로몬이 서재원에게 위협적으로 쏟아질 것 같았다. 나는 평정심을 찾기 위해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숨을 골랐다.
“무슨 고운 소리가 듣고 싶어서 자극하는 건진 모르겠는데.”
“…….”
“적당히 까불어.”
말없이 나를 노려보고 있는 서재원에게서 등을 돌렸다. 끝도 없이 솟구치는 화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차근히 마인드 컨트롤을 하며 문고리를 돌리려는 찰나였다.
“2008년 12월 11일, 형이 죽은 날. 국경 없는 의사회가 운영하던 병원에 폭탄 테러 발생.”
“…….”
“도대체 뭐야, 너?”
서재원의 입을 통해 들은 그날은 여전히 내 가슴을 미어지게 만들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날을 읊는 서재원이 부럽기도 했고,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는 고작 그 두 줄을 쓰는 것조차 힘겨웠는데.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저주인지 뭔지 모를 이 이야기, 당사자는 알고 있어?”
나에겐 지옥과도 같던 시간을 저주로 치부하는 서재원의 목소리는 여전히 투명했다. 조금의 슬픔 따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내게는 절대로 돌이키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신경 꺼.”
아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을 서재원은 조금도 알지 못할 것이다. 치미는 울분과 대조되게 터져 나온 목소리는 잠잠했다.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이 선생님 곧 나랑 약혼할 사이인데.”
약혼. 그 말에 나는 뒤를 돌아 서재원과 다시 눈을 마주했다. 눈꺼풀을 느리게 끔벅이며 바라본 서재원의 표정은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았으나 그의 눈가가 잘게 경련하는 것이 보였다.
“서재원.”
내가 그의 이름을 나지막하게 부르자 서재원은 눈가에 힘을 실었다.
“네가 이해준이랑 약혼을 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야.”
서재원이 내가 지키고 있던 자리에 발을 들인다 할지라도 그것에 목매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다.
“네 말대로 단순히 저주일 뿐인데 그렇게까지 흥분할 필요가 있어?”
“뭐?”
“사실은 저주가 아니라 예지 같지 않아?”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읽어 봐서 알겠지만 그 안에 네 이야기는 단 한 줄도 없어.”
과거로 돌아오기 전 내가 무영에게 전해 들었던 모든 일을 빠짐없이 적은 거니까.
물론 서재원과 형이 실제로 약혼을 하게 되었음을 무영이 내게 전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약혼자가 있는 상황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의료 봉사를 떠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떤 일을 계기로 무산이 되었다든가, 서재원이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든가. 아무리 다짐을 하였다고 한들 후자이길 바랐다. 그래서 서재원의 작은 기색을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거짓말 못 한다, 너.”
숨 막히는 공간을 서둘러 빠져나왔다. 내 의지로 인해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숨을 토해 낼 수 있었다.
등 뒤로 느껴지는 문의 감촉이 지나치게 서늘했다. 나는 옆으로 고개를 돌려 휴게실의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무영을 바라보았다.
손에 든 노트가 꼭 칼날 같았다. 그것이 설령 내 손을 해친다 해도 나는 노트를 놓을 수가 없었다. 형을 볼 낯이 없음에도 형의 주위를 꿋꿋이 맴돌아야 했던 나의 처지와 다를 바가 없어서.
이건 저주가 아니야. 그렇게 소리치고 나오지 못한 내가 너무나도 한심했다. 나는 울대를 치고 올라오는 울화를 사정없이 억눌렀다. 노트를 등 뒤로 숨긴 나는 날카로운 모서리가 내 손바닥을 짓누르는 줄도 모르고 더 억세게 쥐었다.
가슴께에 적나라하게 박힌 울분이 체외로 빠져나가지 못한 채 고요히 흘러내렸다. 그건 생채기가 난 마음에서 떠밀려 나온 핏물과 같았노라, 그렇게 단언할 수 있었다.
드레싱 박스를 ER 데스크에 올린 채 한숨을 폭 내쉬었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온 한숨의 8할을 고단함이 씹어 물었다.
무게 있게 가라앉는 숨 쪼가리에 컴퓨터 모니터를 골똘히 들여다보던 레지던트 2년 차 강유한이 나를 흘깃 쳐다보곤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인턴이 무슨 한숨이야.”
한숨의 의미를 곱씹는다고 해서 누군가 해결해 줄 문제가 아니었다. 나 혼자 풀어야 하는 문제에 의미 없는 웃음으로 상황을 무마했다.
강유한에게 잠시간 시선을 던졌던 내가 이번엔 그가 들여다보고 있던 모니터의 화면을 시야로 담았다. CT 필름이었다. 뇌에 박힌 클립이 지나치게 깨끗한 것을 봐선 수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환자인 듯 보였다.
“재수술 환자인가요?”
“무슨 소리야. 엊그제 수술한 환자다, 인마. 인턴 선생님은 가서 드레싱이나 갈으세요.”
내가 묻자 강유한이 큰일 날 소리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혹시나 잘못 본 것일까 다시 한번 모니터에 시선을 박았다. 세 장의 CT 필름이 연달아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강유한을 보던 내가 데스크 위에 올려놓았던 드레싱 박스를 도로 들었다.
“설마 저대로 두실 건 아니죠?”
“수술도 끝났겠다, 뭐가 문제야.”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싶어 건넸던 물음을 강유한이 대충 튕겨 냈다. 정말 저대로 두겠다고? 나는 손에 든 드레싱 박스를 내려다보다 그것을 다시 데스크 위로 올려놓았다.
“선배.”
“가서 드레싱이나 마저 갈라니까 왜.”
“저 환자 더 신경 써서 케어해야 될 것 같은데요.”
“수술 끝난 게 엊그제라니까 계속 헛소리할…….”
“여기 클립 주위에 출혈, 안 보이세요?”
나는 강유한이 무심코 넘겨 본 사진을 찾아 클립 주위를 확대했다. 아주 미세해서 언뜻 봐서는 알아볼 수 없는 출혈이었다.
수술 직후에 찍은 사진이었다면 자연적으로 지혈이 되길 기다려 볼 수 있었으나 CT 필름에 찍힌 일자는 오늘이었고, 시간은 조금 전이었다.
며칠 전에 한 수술임에도 불구하고 출혈이 보인다는 이야기는 환자에게 썩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무슨 소리냐는 듯 CT 필름을 다시 유심히 보던 강유한이 서둘러 누군가에게 호출을 넣었다.
“박이영! 빨리 내려와.”
그런 강유한의 부름에 서둘러 달려온 사람은 박이영이었다. 서재원과 함께 NS 인턴으로 들어왔던 안경잡이. 박이영은 숨을 고르며 콧대를 타고 내려간 안경을 제 위치로 올렸다.
“너 이연철 환자 ICP(Intracranial Pressure, 두개 내압)2) 체크했어?”
강유한의 말에 박이영이 손에 든 노트를 소리 내어 읽었다.
“13시에 확인했을 때는 19.1이었습니다.”
“……이리 줘 봐.”
성급한 제 성미를 이기지 못한 강유한이 이번에는 박이영이 가지고 있던 노트를 빼앗아 들었다.
12시에는 19.1, 11시에도 19.1. 작게 속삭이며 노트를 읽던 강유한이 아무런 말 없이 노트를 응시하다가 “씨발.” 낮게 욕을 짓이기곤 서둘러 응급실을 빠져나갔다.
강유한이 떠날 때 남기고 간 노트를 들어 수치를 잠시간 확인하던 내가 폐에 들어찬 공기를 어이없다는 듯 단숨에 토해 냈다. 꾸준하게 19.1을 유지하던 ICP가 지난날에는 18.8이었다.
“기록만 죽어라 하면 뭐 해, 대가리가 비었는데.”
“……그거 나한테 하는 소리야?”
한심하다는 듯 뱉은 혼잣말에 박이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들으라고 했던 말은 아니었는데. 속으로 되씹고 끝내야 했던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 나갔다. 그렇다고 들어선 안 될 발언은 아니었기에 나는 별생각 없이 등을 돌렸다.
드레싱 박스를 들어 자리를 피하려던 나는 “……야.” 뒤에서 미약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틀었다. 영문도 모른 채 욕을 먹으니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왜 아직도 여기 있냐는 듯 박이영을 희한하게 쳐다보던 나는 곧 그에게 본인의 노트를 쥐여 주었다.
“아직 초턴이라 정신없는 건 알겠는데, 두개 내압이 유지되고 있는 상태였으면 몰라도 상승세를 보이고 있잖아. 꼭 일정 수치를 넘겨야만 노티하는 게 아니라 떨어져야 할 수치가 올라가고 있는 데에 초점을 두고 다른 사람한테 물어보기라도 했어야지. 혈관 터지고 나서 잘못된 거 눈치챌 거면 왜 여기 서 있어, 가서 간병인이나 할 것이지. PK 때 안 배웠어?”
“…….”
“멍청하게 서 있지 말고 얼른 선배 따라가. 사고는 네가 쳐 놓고 왜 애먼 사람 빌게 만들어.”
수술 직후 시간이 경과할 때마다 부종이 심해지겠지만 며칠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연철 환자의 ICP는 희미하지만 꾸준하게 상승세였다.
두개 내압의 수치가 20mmHg까지는 노티할 필요가 없었어도 19가 결코 낮은 축에 속하지는 않았다. 매시간 환자의 상태를 체크했던 박이영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으니 강유한에게 뒤지도록 깨질 것이 분명했다.
얼굴이 하얗게 센 상태로 강유한이 뛰쳐나간 자리를 따라 밟는 박이영을 보며 나 역시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니까, 내가 왜 이 자리에 있더라.
나는 강유한의 뒤에 서서 스크린에 시선을 고정한 형의 측면을 쳐다보았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여전히 흐트러짐이 없는 모습이었다.
나는 형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박제원 교수에게 흘러갔던 눈길을 김재겸에게로 옮겼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진 탓이었다.
김재겸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런 김재겸에게서 시선을 떼 빔 프로젝터의 빛이 뒤덮은 스크린을 응시했다. 스크린에 떠 있는 사진은 오늘 점심에 보았던 이연철 환자의 CT 필름이었다.
“이연철, 51세 남환으로 19일 오전 10시경 Admission(입원), 당일 CT 촬영 결과 SAH(Subarachnoid Hemorrhage, 지주막하 출혈)3)가 보여 바로 Operation(수술) 들어갔습니다. Clipping(클립결찰술)4)을 진행하였고, 환자는 의식을 찾은 후 두통과 메슥거림을 호소하였습니다. 진통제 투약 후 이연철 환자의 수술 경과를 지켜보기 위해 CT를 재촬영한 결과, 클립 주위에 출혈이 발생하였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신경외과 4년 차이자 강유한이 소속된 팀의 의국장인 김연석의 말에 잠시간 장내에 적막이 흘렀다.
“의료 사고라는 겐가?”
“그게 무슨 소립니까, 과장님!”
정적을 깨트리는 박제원 교수의 말에 정이훈 교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의료 사고라는 말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니 그가 이연철 환자의 집도의였던 모양이다.
“ICP는 제때제때 체크했고?”
“과장님!”
“거, 좀 조용히 하게! 지금 자네를 탓하자는 게 아니지 않나!”
박제원 교수의 높은 언성에 놀란 사람은 놀랍게도 나 혼자였다. 분명 실습생과도 허물없이 유하기만 하던 박제원 교수는 콘퍼런스가 진행되고 있는 이 순간에는 하나의 과를 이끄는 과장다웠다. 김연석이 정이훈 교수의 눈치를 보더니 이내 입을 열기 시작했다.
“19점대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이전부터 수치가 점점 상승하고 있었습니다. 제대로 체크하지 못한 제 책임이 큽니다.”
말을 끝낸 김연석이 스크린 앞에 서며 고개를 푹 숙였다.
“됐네. 그래, 그래서 이연철 환자의 출혈을 발견한 사람이 자네라고?”
박제원 교수가 등을 돌려 강유한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러자 당황한 강유한이 손을 저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아닙니다, 교수님. 그, 이연철 환자의 출혈을 발견한 건 여기 NS 인턴 이한음 선생님입니다.”
아마 이게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까닭이었나 보다. 강유한의 말에 회의실에 모여 있던 의료진들의 시선이 내게로 와 꽂혔다. 개중에는 형의 시선도 함께 섞여 있었다.
“한음 선생.”
늘 서글서글한 웃음을 달고 있던 박제원 교수가 진중한 표정으로 나를 불렀다. 왠지 목이 타는 것 같아 타액을 목구멍으로 세게 넘겼다.
“네, 교수님.”
“자네는 저 CT 필름을 어떻게 해석했나.”
“수술 후 남은 작은 출혈이었다면 자연적으로 지혈이 되었겠지만 CT 필름에 표기된 일자와 시간상으로는 지혈이 될 시기가 지난 듯 보였습니다.”
“이한음 선생!”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이훈 교수의 위협적인 음성이 와닿았다. 그러자 박제원 교수의 따가운 눈초리가 내게서 벗어나 정이훈 교수에게 향했다. 박제원 교수의 암묵이 담긴 저지에 정이훈 교수는 콧김을 세게 토해 내며 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새로 생긴 출혈이다? 왜 생겼는지는 짐작이 가는가?”
“수술 후에도 출혈이 생기는 경우는 많으나 저 경우에는 크게 두 가지로 사료됩니다. 출혈이 생긴 위치를 꼼꼼하게 막지 못했거나 클립을 꽂으면서 클립이 다른 미세 혈관을 눌렀고,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순환하지 못한 피가 고이면서 압력에 의해 혈관에 미세한 틈이 생기지 않았을까 합니다.”
“한음 선생은 정 선생의 과실이라 확신하나 보군. 실습하면서 이런 케이스를 본 적이 있나?”
박제원 교수의 뼈가 담긴 말에 아차 싶었다. 의학적 견해를 너무 서슴없이 내보였다. 연동에 있었을 때처럼 교수직을 달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내 위치를 망각하고 말았다. 적어도 확신 어린 대답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점차 드러나는 예전의 습관이 과거로 돌아온 지금까지 물들어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악물었던 입을 열었다.
“있습니다.”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다. 실습 도중 본 적은 없었지만 연동에서 일하는 동안 본 적이 간혹 있었으니까. 대답과 함께 고개를 주억이며 박제원 교수의 눈을 피했다. 대답 뒤에 따라붙는 정적이 숨 막혔다.
“교수님, 방금 촬영한 이연철 환자의 CT입니다.”
그리고 그 적막을 깨부순 것은 막 회의실로 들어선 영상 의학과의 의료진이었다. 의료진에게서 CT 검사지를 건네받아 그것을 한참이나 들여다보던 박제원 교수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자네가 대답해 보게, 정 선생. 자네는 이제 저 환자에게 어떤 조치를 취할 텐가.”
“저는 인정 못 합니다, 과장님. 출혈이 워낙 미세해 두면 자연스럽게 지혈이 될 겁니다.”
“자연 지혈이 되지 않는다면 그것이야말로 의료 사고네. 이래도 지켜볼 텐가?”
박제원 교수가 날이 선 말을 뱉음과 동시에 CT 필름을 회의실 테이블 위로 던지듯 올렸다. 거리가 멀어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스크린에 뜬 필름과 비교해 보자면 출혈이 조금 더 선명해진 상태였다. 그것을 확인한 정이훈 교수가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등을 보였다.
“이해준 선생.”
“네.”
“자네가 양해 구하고 수술 동의서 받아 오게.”
“제 환자입니다, 과장님! 재수술을 해도 제가 합니다!”
“자네는 수술 일정이 꽉 잡혀 있지 않은가. 이 환자는 이 선생에게 넘기게.”
더는 볼 것도 없다는 듯 그 말을 마지막으로 박제원 교수가 몸을 일으켜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박제원 교수가 자리를 떠나자 정이훈 교수 역시 내게 꽂았던 불같은 시선을 거두며 회의실을 박차고 나갔다.
여전히 정적이 흐르는 공간에서 하나둘 NS 의료진들이 벗어나기 시작하고, 그 사이에 목석같이 서 있는 나를 응시하고 있던 형마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스크럽 서.”
“……네.”
내 옆을 지나치기 전, 형은 얼음장 같은 목소리를 내게 흩뿌렸다. 형의 수술장을 처음 접하게 된 순간이었지만, 어쩐지 기쁘지 않았다.
***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적이 있었다.
‘이 교수 씹새끼 말하는 꼬라지 봤냐? 아오, 씨발. 좆도 아닌 고아 새끼가 끝까지 열받게 만드네.’
‘이빨 빠진 놈한테 뭘 열까지 내. 그렇게 자부하던 수술 중에 기절까지 했는데 얼마나 뒈지고 싶겠어. 쪽팔리니까 괜히 너한테 지랄인 거지.’
‘하여간 내가 그 새끼 그럴 줄 알았다니까. 그간 그 새끼 똥꼬 빤 것만 생각하면 존나 역겨워. 아, 내가 이러려고 연동에 레지 지원했나 보다. 이한음 잘리는 꼴을 드디어 보네.’
익숙했다. 모두 각오했던 일이니까. 표독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변명일 뿐이라며 손가락질을 받아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저 살아남고 싶었을 뿐이니.
내 독설에 많은 이들이 내게 등을 돌렸고, 독설에 덧대어 다른 이의 실력에 비웃음을 토해 냈던 내 거만함은 많은 이들의 곁눈질을 받아야만 했다.
그 사람의 성장을 위한 일이라 위안하며 홀로 사투를 벌여야 했다. 나를 찾는 환자의 수가 늘어나는 만큼 외로워졌다. 애초에 기댈 곳이 없었던 것치고는 그게 꽤 쓸쓸했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던 것 같다.
수도 없이 겪어 왔음에도 변한 게 없구나. 나를 향한 조소는 끊임이 없었다. 질끈 감은 눈을 떠 경의실을 빠져나왔다.
스크럽 룸에서 베타딘 용액으로 손을 멸균하는 동안까지도 마음을 가볍게 먹을 수가 없었다. 거친 솔이 여린 살갗을 고집스럽게 헤쳐도 머릿속에 가득 찬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었다.
탁!
그때 누군가가 무릎으로 세면대를 쳐 수도를 틀었다. 김연석이었다. 김연석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나를 연신 흘깃거렸으나 내 시선은 솔에 꽂혀 요지부동이었다.
탁!
아무런 말 없이 세면대를 쳐 수도를 튼 내가 거품을 씻어 내자 김연석이 결국 한숨을 푹 내쉬었다. 솔을 너무 세게 문지른 탓이었을까. 안쪽 팔뚝 살이 붉게 일어났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지 알아요.”
내 말에 김연석은 베타딘 용액이 묻은 솔을 문지르던 움직임을 멈추었다. 김연석은 내가 실습을 하러 왔을 당시 많은 가르침을 주었던 선배였다. 우락부락한 외모답지 않게 정도 많고, 싫은 소리도 못 하던 사람이었다.
콘퍼런스 도중 내 행동에 대해 조언을 해 주고 싶었던 거겠지. 정이훈 교수와 척을 지게 되는 게 의사 생활에 얼마나 큰 누가 될지 선배는 잘 알고 있을 테니까. 때로는 알고도 모르는 척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앞으로는 유의할게요.”
김연석에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등을 돌렸다.
“그게 아니라.”
그리고 뒤이어 터져 나온 김연석의 말은 내 걸음을 붙잡아 두기에 충분했다.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은 거였어.”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도대체 괜찮지 않을 이유가 뭔지 물어보고 싶었다.
내 실수임이 분명했다. 지난번처럼 멋대로 형에게 노티를 했을 때에도, 정이훈 교수의 수술에 대해 인턴 나부랭이가 왈가왈부한 지금도.
환자를 위한 일이었다며 가볍게 넘기기엔 건방졌다. 분명 이 병원에서는 내가 나서지 않았어도 내가 했던 역할을 보다 정석으로 잘 해낼 의료진들이 많았다. 연동병원에 있었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그러니 질타를 받아야 마땅했다.
“아직까지도 하얗게 질려 있잖아, 너.”
“…….”
“그렇다고 잘했다는 건 아닌데… 실수였다는 건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알아. 그러니까, 깨지더라도 실습생 때만큼만 마음에 담아 둬.”
실습생 때만큼만. 김연석은 너무 오래전 이야기를 거론했다. 등 뒤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대답 대신 무거운 발걸음을 그제야 내딛기 시작했다.
메이요 스탠드 위에 즐비하게 놓인 기구들을 한눈에 담았다. 메스부터 시저, 포셉 등 의료 기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가만히 들여다보다 의료 기구들의 순서를 하나둘 바꾸기 시작했다.
머릿속으로 수술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형은 두개를 직접 여는 것조차도 레지던트에게 시키지 않고 스스로 한다고 들었다. 수술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환자라 절개 라인을 잡아 줄 필요는 없었다.
실을 끊어 낼 시저와 10번 나이프가 연결된 메스. 수술 부위를 넓혀 줄 리트렉터, 두개에 조였던 나사를 풀어 줄 인스트루먼트. 뇌막을 절개할 11번 나이프, 본 훅, 석션기, 베이요넷 포셉, 클립과 니들까지.
준비를 마치고 나니 그제야 형이 수술실 안으로 들어왔다. 형은 가운과 장갑으로 멸균이 된 상태가 유지될 때까지도 내게 시선을 던지지 않았다.
괜히 입 안이 타 마스크 속 입술을 혀로 훑었다. 형은 환자의 머리 위로 자리를 잡은 후 내가 정리한 메이요 스탠드를 가만히 눈에 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내 눈을 응시했다. 그 시선에 무슨 생각이 담겨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시저.”
시선이 거두어짐과 동시에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둘러 시저를 형에게 내밀었다.
“바이탈이요.”
형은 수술할 부위만큼 소독이 되어 있는 환자의 머리에서 아직 아물지 않은 수술 자국 속 실을 가위로 잘라 내며 물었다.
“120에 80, 맥박 70, 호흡 14회, 체온 36.6도입니다.”
형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료진이 바이탈을 체크하자 형은 “메스.”라며 또다시 내게 의료 기구를 전달해 줄 것을 요구했다. 내 손에서 형의 손으로 옮겨 가 라인을 따라 긋는 날카로운 칼날의 움직임이 매끄러웠다.
두피와 힘줄, 뼈막을 절개하고, 두개에 박혀 있던 나사를 풀어내는 손놀림이 깔끔했다. 나는 형의 움직임에 고정되었던 시선을 떼 시간을 확인했다. 피부 절개부터 연수막5) 절개까지 걸린 시간이 5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석션.”
바깥의 시간보다 더디게 흘러가는 것 같은 수술방의 시간 속에서 내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던 건 형의 어시스턴트로 들어왔던 김연석이 석션기를 찾은 다음이었다.
“베이요넷.”
형은 수술 현미경에 눈을 가져다 대며 내게 손을 뻗었다. 그에 따라 내가 내민 포셉으로 형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움직임으로 클립을 제거했다.
혈관의 크기와 적합한 크기의 클립을 형에게 내밀자 곁눈으로 클립을 확인한 형이 받아 들었다. 아니, 받으려 했다.
“죄송합니다.”
잡기 편하게 준다고 노력했으나 아쉽게도 합이 맞지 않았다. 포셉과 함께 떨어진 클립에 나는 서둘러 새로운 포셉과 클립을 준비했다.
잠깐 흐트러졌던 수술방의 분위기는 금세 집중력을 되찾았다. 형은 출혈이 생긴 부위에 새로운 클립을 꽂으며 수술을 이어 갔다.
수술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봉합만을 남겨 둔 채로 수술 현미경에서 눈을 뗀 형이 뻐근한 목을 비틀어 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무리 부탁해, 김연석에게 흘리듯 작게 말한 뒤 금세 수술방에서 빠져나갈 줄 알았던 형은 뜻밖에도 내 팔뚝을 잡아끌었다.
“나와.”
당황한 내가 수술방 안 의료진들을 쳐다보자 그들은 내게 관심을 두는 것 대신 환자의 머리 봉합에 더 신경을 기울였다.
기다란 다리로 성큼성큼 나아가는 걸음은 왠지 모르게 화가 나 보였다. 형은 수술모와 마스크를 거칠게 벗었다. 흐트러짐 없이 차분하던 머리가 이제는 허공으로 마구 흩날리기 시작했다.
“형!”
팔뚝을 조이는 악력에 눈가를 찌푸린 내가 소리쳐도 형은 걸음을 바삐 움직일 뿐이었다. 그리고 형의 성난 걸음이 멈춘 건 수술실이 위치한 층과 연결된 비상구에 도착하고 난 후였다.
형은 살짝 내민 혀로 아랫입술을 훑으며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열이라도 받은 듯 숨을 크게 뱉어 내는 형은 한참 동안이나 말을 아꼈다. 형의 눈치를 보던 내가 얼굴을 답답하게 덮고 있는 마스크와 수술모를 벗었다.
“왜 그러는…….”
“말해.”
종국에 참다못한 내가 채근하려 하자 형이 입을 열었다.
말하란다. 그러니까 뭐를? 내가 가만히 형을 바라보자 형이 내 눈을 마주했다.
“근 세 달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말해.”
체온과 함께 유지되고 있던 피가 차갑게 식는 기분이었다. 머릿속이 한층 더 복잡해졌다. 긴장과 함께 입 안에 고인 침을 가까스로 삼키고서 바라본 형은 여전히 화가 나 있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불현듯 손끝이 달달 떨려 왔다. 떨고 있다는 것을 형에게 들킬 것 같아 두 손을 세게 마주 잡았다.
“그날 이후로 이상한 것투성이야. 더 설명해야 돼?”
형이 말하는 그날은 어떤 날일까. 내가 형에게 헤어짐을 고한 날? 우리가 다시 조우하게 된 날?
아마 후자겠지. 과거로 돌아온 내가 형을 살리기 위해 전과 같지 않은 행동을 취했던 것.
“처음엔 악몽이라도 꾼 건가 싶었지.”
“…….”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지나치게 이상하고, 지나치게 달라졌어.”
형은 생각을 하는 듯 잠깐 말이 없었다.
“……형.”
그 정적을 참지 못한 내가 입을 열어도 형은 나를 집어삼킬 듯 바라보기만 했다.
“처음 스크럽 서는 대부분의 인턴이 의료 기구가 떨어졌을 때 허리를 숙여. 특히 너처럼 수술에 정신이 팔려 있었을 때는 더.”
마지못해 떨어지는 입술을 보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등 뒤로 차가운 벽의 표면이 느껴졌다.
공감하는 바였다. 허리 아래로는 깨끗하지 않은 상태라고 귀에 박히게 이야기해도 인턴들은 기구가 떨어지면 하나같이 허리를 숙였다.
합이 맞지 않은 게 아니었다. 형은 일부러 나를 시험해 본 것이었다.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수술을 진행되는 순서대로 기구 정리해 놓은 것하며, 눈은 모니터에 고정한 채로 확인하지도 않고 기구를 내미는 것하며. 뭐, CT 해석하고 케이스 명확하게 구분하는 건 좆빠지게 노력하면 할 순 있어. 그런데 O.R(Operating Room, 수술실)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지거든.”
형은 사정없이 나를 몰아세웠다. 어서 해명하라는 듯 종용하는 눈빛이 나를 구석으로 내몰고 있었다.
“눈에 띄게 달라진 태도에, 종잡을 수 없는 행동에. 세 달이라는 시간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낯설어지기가 쉽지 않잖아.”
끝맺힌 말에 입술을 작게 벌렸다. 형이 원하는 대답은 하나였다. 지난 내 9년의 세월. 형이 죽고 나서부터 망가져 버린 내 세월.
형의 눈을 피하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눈을 깜박이지 않아서였을까. 시야가 점점 흐릿해지는 것도 같았다. 흐릿한 시야로 들어온 형의 얼굴이 조금 누그러진 듯싶었다.
눈을 깜박이자 눈가에 맺혀 있던 눈물이 기어코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서재원이 내게 캐물었던 날과는 느낌이 달랐다.
누군가에게는 저주로, 또 누군가에게는 악몽으로 치부되는 그날이 나에게는 현실이었다는 생각이 미치자 자리에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토해 낼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 그 세월은 그랬다. 도무지 눈물 없이 회상할 수 없는 것.
그게 형이 없는 세상에서 홀로 남아 있어야 했던 내 9년이었다.
***
병원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이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은 어느 누구 하나도 마음 편히 숨을 돌릴 수가 없었다.
정신없이 걸음을 재촉하다 보면 어느새 녹초가 된 상태로 하루를 보냈고, 해가 뜨기도 전에 울리는 호출에 다시 운동화 끈을 동여맸다. 온갖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는 인턴에게 휴식이란 없었다.
그런 내게도 꿀 같던 휴식이 주어졌을 때가 있었다. 정이훈 교수에게 불려 갔을 때. 우습게도 교수에게 먼지 나게 깨지던 순간이 최근 들어서 가장 긴 휴식을 맞았을 때였다.
나는 한 시간가량의 주의를 받으며 허리를 깊게 숙여 사죄드렸다. 내 고분고분한 태도에 전의를 상실했는지 정이훈 교수는 서로 얼굴 붉혔던 일은 잊고 앞으로 잘 지내 보자며, 곧 있을 입국식 때 참석할 테니 술이나 한잔하자며 너른 웃음을 흘렸다.
이연철 환자의 수술 이후 나를 바라보는 NS 병동 의료진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의사, 간호사 할 것 없이 전부.
옆을 지나가기만 해도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줄지어 이어졌다. 나는 그 수군거림을 피해 병원 앞 벤치에 앉았다.
추위를 담은 바람은 날카로웠지만, 피부를 덮는 햇살은 따가울 정도로 좋았다. 가만히 앉아 햇볕과 바람을 맞고 있으면 눈꺼풀을 맹공격했던 피로가 내 정신을 아득히 먼 곳으로 이끌어 갈 정도로 말이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며 아비규환을 만들어야 할 병원 정문이 오늘따라 평화로웠다. 울퉁불퉁한 바닥에 끌리는 링거대 소리. 까르륵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한적한 바람 소리.
그 모든 소리의 파동이 뇌에 전달되지 않을 때가 돼서야 눈을 뜰 수 있었다. 깜박 졸았다. 얼마나 잔 거지. 여전히 강렬하게 내리쬐는 태양을 찡그린 얼굴로 올려다보던 내가 왼쪽 손을 들었다.
그때 내 몸에서 흘러내리는 새하얀 가운에 나는 그만 시간을 확인하는 것도 잊어버렸다.
누가 이걸……. 단잠을 자는 동안 내 몸에 덮여 어느 정도의 추위를 막아 주었을 가운을 집어 들었다. 가운을 자세히 살펴보려던 내 시선이, 차가운 공기와 함께 기관을 통해 폐로 이어졌던 내 숨이. 불시에 멈췄다.
이해준. 형만큼이나 정갈하게 박혀 있는 이름은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을 멈춰 버리기에 적당했다. 나는 다리를 벤치 위로 끌어 올려 무릎을 가슴팍에 붙였다.
형의 이름이 박힌 가운에 얼굴을 푹 묻자 형의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나는 눈을 감고 지난 기억을 되뇌었다.
이연철의 수술이 끝난 날, 그 시각. 나는 형에게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안 한 게 아니라, 하지 못했다.
입을 열려고 하면 지난 9년의 세월 대신 울음이 터져 나왔다. 곪다 못해 썩어 문드러진 상처를 바늘로 들쑤시기라도 한 것처럼, 물밀듯이 쏟아지는 울음은 나도, 형도 막지 못했다.
형은 원하는 대답을 듣지 못해 답답한 속을 끝내 해소하지 못했다. 한참 뒤에 마주한 형에게서 알싸한 담배 냄새가 났던 걸 보면 형이 그 마음을 담배로 풀려고 했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만약에 말이다. 내가 만약 9년간의 세월을 눈물 한 방울 없이 거론할 수 있었다면, 형은 내 이야기를 듣고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을까. 사실 더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형은 미신을 믿지 않는다. 전생이라든가, 환생이라든가 하는 가히 있을 법한 이야기에도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보았다. 내가 언제 한 번 현생에서 만나는 모든 인연은 전생에서부터 이어져 있대, 라고 말하는 순간 형이 지었던 표정을.
그 말의 다음 문장은 전생에 얼마나 많은 옷깃이 스쳤냐에 따라 현생에서의 관계가 달라집니다, 였다. 형과 나는 전생에 몇 번의 옷깃을 스쳤을까. 그건 내가 늘 궁금해했던 내용이었다.
그저 되도록 많이 스쳤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하며 꿈을 꿨다. 그 행복이 오래도록 이어지는 꿈을.
유사한 예도 있었다. 개봉 당시 SF계의 명작이라고 입소문이 파다했던 영화를 함께 보러 간 적이 있었다.
피곤해 보이는 형을 억지로 이끌고 영화관에 도착했을 때 초능력이라든가, 타임 워프라든가, 흥미가 없어 보이는 형을 위해 영화의 줄거리를 읊는 나를 보며 형은 재미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한심한 기색을 띠었다.
그래, 그게 문제다. 타임 워프. 따지고 보면 나 역시도 과거로 타임 워프를 한 게 아니던가. 나는 차라리 그때 내가 단 한 글자도 토해 낼 수 없을 정도로 울었던 게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침묵을 선택하기로 했다. 나는 내가 형을 살리기 위해 어떤 계획을 실행하기도 전에 정신과에 처박힐까 무서웠다.
뚜둑, 둑.
그때 무언가가 내 머리를 무거운 기색으로 두드렸다. 형의 가운에 묻고 있던 얼굴을 들어 올렸다. 그 무언가는 계속해서 내 머리와 몸을 두드려 댔다.
비. 그렇게나 맑았던 하늘은 어느새 먹구름에 뒤덮여 있었다. 나는 뺨을 향해 내리치는 굵은 빗줄기를 바라보다 다시금 눈을 감았다. 거세게 떨어지는 빗줄기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뜨고 있기가 불편한 까닭이었다.
소나기였다.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줄기가 쏴아아, 억센 빗소리로 변할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무력하게 만들었을까.
나를 몽중으로 이끌어 가려는 피로? 아니면 지금까지도 믿기지 않는 현실? 그것도 아니면 아직까지도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한 형의 죽음?
아마도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무력함에 허우적거리게 만들었을 것이다. 손을 뻗어 내 손마디를 강하게 내리치는 빗줄기를 보았다. 그 빗줄기에서마저 고달픔이 느껴졌다. 힘없이 펴진 손바닥에 빗물은 더 이상 고이지 못하고 땅으로 흘러 내려갔다.
빗물을 받아 내는 의미 없는 행위를 지속하던 내가 고개를 틀었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페로몬, 서슴없이 와닿는 시선. 뛰어오기라도 했는지 밭은 숨을 내쉬는 형이 나를 고요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수직으로 향했던 손을 내려 축축하게 젖은 형의 가운을 구깃 쥐었다. 내게 스며들었던 빗물이 이제는 형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형은 조용히 다가와 내 머리 위로 우산을 펼쳤다.
바보, 등신, 멍청이. 형은 내가 과거로 돌아온 지 67일 만에 틈을 내주기 시작했다.
그날은 형이 소말리아로 떠나기 19일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