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6 화
나는 강학우에게 콜라보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는데 생각보다 그의 반응은 별로였다.
“음…콜라보라…”
원래 나는 콜라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바로 허락을 할 줄 알았다.
로이스를 견제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강학우가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오히려 내가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그리고 나는 강학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다 좋은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군…굳이 알로하와 할 필요가 있을지 말이야.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이용하는 것은 알로하라는 브랜드 뿐인데 그것 때문에 우리의 제품 개발 기술과 노하우가 공개되는 것은 별로 내키지 않아서 말이야.”
그의 이야기를 들으니 왜 이런 반응을 보였는지도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 공개는 하지 않았지만 자체적으로 개발한 냉동 돈카츠가 있어서 그걸로 로이스의 사업 확장을 견제를 할 생각이었거든…”
하긴 원래 로이스와 같이 개발을 하고 있었으니 그것을 그냥 없애버렸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동안 연구를 했는데 로이스와 갈라졌다고 해서 바로 엎어버리면 아까우니까 말이다.
더군다나 프레쉬푸드의 냉동식품 사업은 잘 나가고 있다.
돈까스는 대표적인 냉동식품이니 개발을 해도 나쁠 것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개발이 빨리 되어서 벌써 출시를 앞두고 있는 모양이다.
“그렇군요.”
“기껏 여기까지 와주었는데 어떻게 하지? 알로하의 도움은 그렇게 필요가 없을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모양이다.
알로하의 브랜드를 가지고 강학우에게 어필할 생각이었는데 강학우에게 알로하는 그냥 많은 돈카츠 브랜드 중 한 곳인 모양이다.
하긴 그는 내부적으로 어렵다고 했던 미국 냉동사업 시장에서 성공을 하고 온 사람이다.
국내 식품 시장에서 로이스를 밀어내는 것 쯤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우리와 콜라보한다고 해서 꼭 긍정적인 효과가 나온다는 확신도 없는데 괜히 자사의 기술과 인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강학우였어도 비슷한 선택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곳이나 자체 개발 쪽으로 가야하나…’
프래쉬 푸드가 아니어도 다른 방법은 있다.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런디코리아나 뉴월드푸드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와도 틀어진다고 하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자체적으로 개발에 뛰어드는 수단도 있다.
하지만 애초에 프래쉬푸드와 같이 하고 싶었던 이유는 강민태, 강훈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기껏 만남을 성사했는데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속사정을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하기로 결심했다.
“이미 제품 개발을 완료하셨다니 축하드립니다. 하지만 저희와 콜라보 하는 것은 단순한 돈카츠 기업과 협업하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을 겁니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야기 했는데 아까와 다르게 이번에는 강학우가 반응을 보였다.
“자세히 말해보게.”
“사실 저는 회장님이 콜라보를 허락해주시면 로이스와의 악연에 관한 인터뷰를 할 생각이었습니다.”
“악연?”
강학우는 내가 로이스에서 일했다는 사실만 알지 어떻게 퇴사를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나는 내가 퇴사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 했는데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인터뷰는 즉흥적으로 생각해낸 것이었지만 강학우의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나는 겟고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강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하고 개인 가게를 창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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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일이 있었군.”
김정훈의 이야기를 듣고 강학우는 놀랐다. 로이스의 전 대표이사였던 전상욱을 데리고 왔다고 했을 때 어떤 사연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것이 강훈과 관계되었을 줄은 몰랐다.
자신의 조카와 관련된 일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강민태를 따라와 몇 번 강훈은 그렇게 성실한 조카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들려오는 몇몇 질 안 좋은 소문들도 그도 잘 알고 있었고 말이다.
그런데 그 소문들 중 하나에 김정훈이 연관되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김정훈은 담담하게 이야기했는데 로이스와 알로하의 이야기를 듣자 강학우는 강한 흥미가 생겼다.
“저는 로이스에 관련된 이야기를 퍼뜨리면서 알로하와 라이벌 구도를 잡을 생각입니다.”
“라이벌 구도라…”
“제 입으로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저희 알로하의 대중적인 이미지는 아주 좋습니다.”
이것은 강학우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시간을 내서 굳이 김정훈을 만난 이유도 색다른 방법으로 알로하를 키워낸 김정훈에게 관심이 있어서니까 말이다.
알로하는 그동안 성장을 하면서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다.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준 일부터 선우에게 수술비를 지원해준 것, 그리고 작년에 하연이를 구해준 것까지 말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알로하를 떠올리면 착한 회사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강학우도 기업을 경영하고 있지만 착한 회사라는 이미지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그 착한 회사의 사장님이 예전에 갑질을 당해 회사를 그만 두었다는 이야기가 퍼지면 어떻게 될까?
강학우는 상상을 해보았는데 아마 갑질을 한 로이스에 결코 이롭지 않을 것 같았다.
만약 김정훈이 그런 회사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더해지면 알로하의 이미지는 더욱 좋아질 것이고 상대적으로 로이스의 이미지는 더 안 좋아질 것이다.
김정훈은 이런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이야기 하였는데 강학우는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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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단순히 알로하의 맛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이미지까지 프레쉬푸드에 제공하겠습니다. 제가 인터뷰를 하고 나면 로이스에 부정적인 여론이 생길 것입니다.”
김정훈의 말에 강학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충분히 그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저희와 콜라보한다는 기사를 내보시면 이슈도 되고 원래 로이스를 가지고 있던 프레쉬 푸드에도 긍정적인 여론이 생길 것입니다.”
“확실히 그렇겠군.”
강학우는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
김정훈이 인터뷰를 하게되면 원래 로이스를 가지고 있던 프레쉬푸드에도 어떤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지금을 갈라섰지만 원래는 한 뿌리였으니까 말이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이미지 상승을 위해 엄청난 광고비를 지불한다.
특히 국내 1등 기업이라는 프레쉬푸드는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날 것이다. 인터뷰가 프레쉬푸드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지만 잘 콜라보하기만 한다면 좋은 이미지를 가져갈 수도 있다.
“더군다나 강민태도 견제할 수 있겠군…”
“맞습니다. 선대 회장의 지분을 가진 직원들을 섭외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강민태 사장의 도덕성에 금을 낼 수 있으면 회장님이 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실 겁니다.”
강영남이 죽으면서 그가 가지고 있던 주식들 중 일부는 계열사 사장과 임원들에게 들어갔다.
곧 사장과 임원들의 보호예수 기간이 끝나지만 프레쉬푸드는 비상장회사이다.
비상장거래로도 주식을 팔 수 있지만 아마 계열사 사장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쪽에 주식을 팔거나 더 비싸게 부르는 쪽에 주식을 팔 확률이 높았다.
강학우가 로이스를 견제하려는 이유도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동생의 돈줄을 끊기 위해서이니깐 말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지금은 강학우를 지지해주고 있는 막내 여동생의 마음이 언제 변할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반쪽뿐인 강학우보다 완전한 피를 나눈 형제라고 할 수는 있는 강민구, 강민태의 부탁을 끝까지 거절하기 힘들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아직 살아있는 강영남의 둘째 부인이 오빠들을 밀어주라고 하면서 끊임없이 압박하고 있을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아버지의 유언 때문에 막내 여동생이 자신을 지지해주고 있지만 그녀가 마음을 돌리면 결국 남은 15%를 가지고 싸우는 치열한 지분 싸움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민태에게 타격을 줄 수 있는 무기라는 것을 강조하자 강학우는 충분히 공감을 하였다.
그리고 강학우는 자신에게 이런 매력적인 제안을 하는 젊은 사장에게 깊은 관심이 생겼다.
“도저히 거절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군.”
“그럼 협업을 해주시는 겁니까?”
“그래, 우리 같이 로이스를 무너뜨려보지.”
원래는 로이스가 프레쉬푸드가 소유한 외식브랜드였지만 지금은 강민태의 개인 소유 회사일 뿐이다.
강민태만 밀어내면 다시 가져올 생각도 있었지만 로이스의 상태가 안 좋다고 한다면 굳이 다시 가져올 필요는 없었다.
대체할 요식업 브랜드는 많이 있으니까 말이다.
차라리 이번 협업을 기회로 알로하를 자사의 브랜드로 가져오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음식을 앞에 두고 너무 이야기가 많았군. 자 한 잔 들지.”
강학우는 정훈에게 술을 권했고 정훈은 이야기가 잘 풀린 것 같아서 안도했다.
프레쉬푸드와 협업을 한다면 비용은 물론 로이스를 견제할 힘도 더 가지게 될 것이 분명했다.
개인적으로 대항하는 것보다 언론이나 방송에서 재벌인 프레쉬푸드의 힘이 더 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훈은 왠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를 하게 되면 로이스를 향해 총을 겨누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총을 겨누면 아마 강훈도 대응을 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럼 서로 상처를 입게 되고 그럼 알로하가 지금까지 쌓아 올린 이미지도 어떻게 보면 잃을 수도 있다.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정훈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도 조금은 불안한 마음이 들자 건배한 술을 들이키며 걱정되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미 주사위는 굴러졌고 고민을 한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다.
정훈은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기로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자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 졌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앞에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즐기려고 했는데 강학우도 술잔을 비우더니 정훈에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자네 혹시 결혼을 했나?”
****
“으…”
다음날 아침 나는 호텔에서 눈을 떴다.
강학우와 늦게까지 술을 마셨는데 그는 생각보다 술을 잘 마셔서 같이 대작하느라 하마터면 앞에서 속을 게워내는 큰 실수를 할 뻔했다.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냉장고 문을 열고 생수를 마셨는데 시원한 물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니 조금은 정신이 드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자 강학우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직 결혼을 안 했으면 우리 딸과 한 번 만나 보는 것이 어떤가? 우리 딸이 얼굴을 좀 보는데 자네 정도의 외모면 싫어할 것 같지는 않은데…’
강학우는 자신의 딸을 소개했는데 솔직했는데 갑작스러운 이야기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또 자신의 딸을 소개할 정도로 나를 좋게 봤다는 것이니 그에게 좋은 이미지를 주려고 한 나의 계획이 어떻게 보면 성공한 것도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소개는 정중히 거절을 했다.
결혼할 사람이 있다는 말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대기업의 자존심일까? 두 번 권유하지는 않았다.
정신을 차린 나는 전화기를 들었다.
강학우는 협업에 앞서 먼저 조건을 제시했는데 내가 이야기한 인터뷰였다.
인터뷰를 진행하여 로이스와 대결구도가 생기면 그때부터 도움을 준다는 것이었다.
원래 로이스는 프레쉬푸드의 브랜드 중 한 곳이었으니 책임감을 느끼고 도움을 준다는 시나리오로 가면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고 나에게 말했다.
[ 여보세요. ]
“어, 상현아. 나다.”
[ 뭐야, 밤새 연락도 안 되고… ]
밤새 상현이에게 꽤 많은 전화가 와 있었다.
하긴 강학우를 만나러 간다고 하고 지금까지 연락이 없었으니 충분히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미안, 어제 강 회장님하고 늦게까지 술 마셨다.”
[ 그래? 늦게까지 술 마신 것을 보니까 이야기가 잘 된 모양이지? ]
“어, 프레쉬푸드하고 콜라보해서 식품 개발하기로 했어.”
[ 진짜? 그거 잘 됐다. ]
“대신에 조건이 있어.”
[ 조건? 개발비 지불하래? ]
“아니, 인터뷰를 좀 해야 할 것 같아.”
[ 인터뷰? ]
“어, 이왕이면 이슈가 되게 해야 할 것 같은데…괜찮은 곳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