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5 화
“도와줄 곳이요?”
나는 우리를 도와줄 곳이 어디인지 궁금했는데 전상욱은 대답 대신에 웃었다.
왠지 나에게 맞춰보라고 하는 것 같았는데 일단 먼저 떠오르는 곳은 뉴월드 그룹이었다.
아무래도 나랑 정수아가 친구이기도 하고 뉴월드 백화점에 입점하면서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같이 개발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정수아는 지속적으로 나에게 투자를 한다고 이야기 했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혹시 뉴월드 그룹인가요?”
“뉴월드 그룹도 나쁘지 않지. 그런데 내가 생각한 곳은 그곳이 아니야.”
아니라는 말에 나는 다른 곳을 생각했다.
“그럼 혹시 런디코리아인가요?”
런디코리아의 배종연은 우리 회사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내가 자체적으로 공장을 늘리면서 그의 자회사를 들어가는 것은 거절했지만 그는 지금이라도 괜찮다고 같이 하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배종연은 요식업의 상징적인 인물이니 그와 콜라보하여 식품을 개발하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번에도 전상욱은 고개를 저었다.
“자네도 잘 알고 있는 곳이야.”
내가 두 번이나 맞추지 못하자 전상욱은 넌지시 힌트를 주었는데 그의 말에 나는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그럼 혹시 프레쉬푸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 프레쉬푸드.”
확실히 프레쉬 푸드는 냉동식품 사업이 대히트를 쳤다.
거기와 협업하면 알로하의 다양한 메뉴들을 냉동식품이나 간편식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과연 프레쉬푸드가 우리와 같이 일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지금 프레쉬푸드의 강학우와 강민태는 형제이지 않습니까?”
“그 두 사람이 지금 사이가 무척 안 좋지.”
“그렇기는 하지만…”
나는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형제라는 생각이 있었다. 프레쉬푸드가 로이스와 계약을 끊고 서로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지만 이건 일종의 길들이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회장은 강학우가 되었으니까 자신의 말을 잘 듣도록 교육을 시킨 다음에 나중에 다시 로이스를 프레쉬푸드로 흡수할 것 같았다.
프레쉬푸드에 비하면 로이스는 그렇게 크지 않은 회사이니까 말이다.
강민태가 로이스를 강훈에게 맡기고 프레쉬푸드에 집중하는 이유도 어떻게 보면 프레쉬푸드의 회장이 훨씬 매력적인 자리이기 때문이다.
“원수같은 가족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지. 내가 봤을 때 강학우와 강민태는 절대로 화해 하지 않을 거야.”
“그럴 이유가 있을까요?”
“자네는 지금 프레쉬 푸드의 지분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고 있나?”
“거기까지는 잘 모릅니다.”
“원래 프레쉬푸드의 초대 회장인 강영남 회장이 살아 있을 때는 강영남이 40%의 지분을 가지고 있었고 첫째 아들인 강학우가 15%, 둘째인 강민구가 15%, 셋째인 강민태가 15%, 그리고 막내딸인 강신애가 15%를 가지고 있었지.”
“가족들끼리 사이좋게 나누었었네요.”
“그렇지. 그런데 일단 문제가 강학우와 나머지 형제들의 엄마가 다르다는 것에 있지.”
“아, 그런가요?”
“워낙 예전 일이라 아는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첫째 사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강영남이 재혼을 했지. 강학우만 첫째 사모님의 아들이고 나머지 자식은 둘째 사모님의 자식들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렇군요.”
“그런데 강영남이 죽으면서 자신의 지분 40% 중 15%는 회사를 키우느라 고생한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으로 나누어주고 나머지 25%는 그대로 첫째 아들인 강학우에게 물려주었어.”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강학우를 제외하고 나머지 형제들의 어머니가 다르다면 지분을 모아서 강학우가 회장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지 않았나요?”
강학우의 지분이 40%고 나머지 형제들의 지분을 모으면 45%가 된다.
“그래 원래 강민구랑 강민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 강민구에게 자식이 없는 것은 알고 있나?”
“그렇습니까?”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죽었어. 그래서 원래 강영남이 죽으면 강민구가 회장으로 올라가고 나중에 강민구의 뒤를 동생인 강민태가 하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었어. 그렇게 로이스가 비게 되면 내가 로이스의 사장이 되는 것이었고.”
“그런 비하인드가 있었군요.”
“그런데 강영남이 죽고 나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어. 바로 막내인 강신애가 큰 오빠 편을 들어 버린거야. 자신과 같은 배를 타고난 오빠가 아닌 다른 오빠를 말이야.”
“헐, 그건 왜 그런거죠?”
“강영남은 외동 딸인 강신애를 무척 아끼고 잘해주었는데 죽으면서 큰 오빠를 지지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하더군. 강영남이 강학우가 해외에서 실적을 올린 것을 상당히 높게 평가한 모양이야.”
기사로 이것과 비슷한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전상욱이 직접 이야기해주니까 확실히 더 와 닿는 느낌이 들었다.
“강민구와 강민태는 지금도 강신애를 압박하면서 자신들의 편을 들어주길 바라고 있지. 강신애만 마음을 바꿔주면 회장을 바꿀 수 있으니까 말이야.”
“강영남이 지금 회장에 앉아있다고 하더라도 항상 불안할 수 밖에 없지.”
“그렇군요.”
“더군다나 문제 되는 것이 또 있지.”
“또 있습니까?”
“내가 강영남이 죽으면서 그동안 고생한 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을 남겼다고 했잖아.”
“네, 그랬습니다.”
“그게 이제 곧 보호예수기간이 풀려서 주식이 시장에 나올거야.”
“헐, 그러면…”
“경영권 다툼이 더 심해지겠지. 아마 지분을 더 확보하기 위해서 양쪽 모두 피터지는 싸움을 할거야.”
15% 정도의 지분이 시장에 풀린다. 형제들이 가지고 있는 지분을 생각할 때 적은 양은 아니다.
“아마 지분 다툼을 하기 위해 돈이 많이 필요할거야. 그런데 강학우 입장에서 강민태에게 계속해서 돈을 벌어다주는 로이스가 그렇게 달갑지는 않을 거야.”
식당은 어떻게 보면 매달 현금이 잘 찍히는 캐시카우라고 할 수 있다.
강학우 입장에서는 상당히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는데 잘하면 알로하가 로이스의 견제할 수단으로 어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강학우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봐야겠군요.”
자신의 생각을 알아줘서 그런지 전상욱은 미소를 지었다.
“내가 강학우와 만날 수 있게 만남을 주선해보겠네.”
“부사장님이요?”
솔직히 강학우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만날지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그런데 그가 만남을 주선하겠다고 하니 조금은 놀랐다.
“그래 내가 예전에 프레쉬푸드에서 일을 했었잖아. 그때 인연이 좀 있어.”
생각해보니 그는 프레쉬푸드에서 일을 하다가 로이스로 자리를 옮겨서 대표이사가 되었다.
강민태가 데려왔을 정도로 일을 잘했으니 아마 프레쉬푸드에서도 돋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군요.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
전상욱에게 부탁을 하고 며칠이 지난 후 나는 강학우와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에는 그가 거절하면 어떻게 할지 걱정을 했었는데 강민태와 관련이 있다는 말에 그는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다.
그와 약속을 잡고 서울의 유명한 한정식 집으로 향했는데 나는 긴장이 되었다.
런디코리아의 배종연 대표를 만날 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떨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확실히 대기업의 회장이라고 하니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약속된 방으로 들어가 기다리고 있으니 잠시 뒤 문이 열리면서 강학우가 들어왔다.
기사로는 얼굴을 몇 번 본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를 보고 잠시 주춤 했는데 이런 나를 보고 그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나 강학우네.”
나는 그의 손을 잡으면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알로하를 경영하고 있는 김정훈이라고 합니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전상욱에게 그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듣기는 했었다. 호탕하고 꽉 막힌 성격이 아니니 긴장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렇게 손을 잡으니 더 긴장이 되는 것 같았다.
“이야기 들은 것보다 훨씬 젊은 것 같은데? 얼굴도 훈남이고 말이야.”
그는 나의 얼굴을 칭찬해주었는데 오랜만에 듣는 외모 칭찬에 나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앉지.”
그는 나에게 자리를 권했는데 나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자리에 앉았다.
이미 상이 다 세팅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바로 식사를 할 수 있었는데 그가 자리에 앉아마자 나에게 술을 권했다.
“한 잔 마시겠나?”
“네, 주시면 마시겠습니다.”
나의 말에 그는 도기로 된 주전자를 들어서 나의 술 잔에 따라주었다.
“전상욱 그 친구가 어디로 갔나 했더니 그 쪽으로 가서 일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군.”
“네, 감사하게도 저희 회사의 일을 도와주고 계십니다.”
“능력이 있는 친구라 예전에 민태 그놈 따라가서 일을 도와준다고 했을 때 내가 아깝게 생각하기 했어.”
“그러셨습니까?”
“민태가 속이 좁아서 전상욱을 담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 버림받고 시골로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었는데 어쩌다가 그 쪽으로 가게 되었지?”
“시골에 계셨는데 저희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 되어서 모시고 왔습니다.”
“자네도 예전에 로이스에서 일을 했었다고?”
“네, 로이스에서 점장으로 근무하다가 나와서 알로하를 창업했습니다.”
“사실 이번에 만나자는 이야기를 듣고 자네에 대해서 조금 알아봤지. 그리고 솔직히 놀랐어.”
“어떤 점에서 놀라셨습니까?”
“나도 경영을 하고 있지만 솔직히 프레쉬푸드는 아버님이 거의 다 키웠다고 할 수 있지. 나는 그것을 조금 더 잘 할 수 있게 기름칠을 했을 뿐이고 말이야. 그런데 혼자 창업을 해서 로이스에 견줄 만큼 회사를 키웠다니 정말로 대단해. 그것도 이렇게 단기간에 말이야.”
대기업 회장이라고 할 수 있는 그가 칭찬을 해주니 나 스스로도 엄청난 자부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
“칭찬 감사합니다.”
“나도 이야기를 듣고 흥미가 생겨서 자네를 만나보고 싶었네. 그런데 자네가 나를 만나자고한 용건을 먼저 들어보고 싶은데…”
“먼저 로이스가 최근에 사업 방향을 넓힌 것을 알고 계십니까?”
“냉동식품 사업에 진출한 것 말인가?”
“그렇습니다.”
“아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자네보다 내가 더 잘 알 것 같은데…”
“당연히 그러시겠죠. 하여 혹시 프레쉬푸드에서도 돈카츠 관련하여 냉동식품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면 저희가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원래 프레쉬 푸드는 냉동식품과 밀키트 그리고 가정간편식 사업에 강점을 보이고 있었다.
로이스와 사이가 틀어지기 전까지 같이 식품 개발을 하고 있었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비록 경영권 분쟁으로 갈라서기는 했지만 사업을 추진하고 있었으니 나는 그것을 알로하가 이어 받아서 계속 할 생각이었다.
프레쉬 푸드가 가진 생산 시설과 연구 자료를 활용하면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많이 아낄 수 있을 것이다.
“도움을 준다…정확히는 어떤 도움이지?”
“저희 알로하는 돈카츠 브랜드 중에서 엄청 빠른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시장의 반응도 나쁘지 않은데 저희와 콜라보하여 냉동식품을 출시한 다음 로이스의 제품들과 직접적으로 경쟁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회장님 생각은 어떠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