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1 화
“네?”
나의 말에 팀장은 당황스러운지 말을 더듬었다. 하긴 나도 방금에서야 생각이 났다.
기억을 떠올려보니 예전에 쇼핑을 하고 뉴월드 백화점 VIP 자격을 얻었다.
그 뒤로 단비와 조카 선물은 물론이고 이제는 양가로 챙겨야 하는 부모님들의 선물까지 백화점에서 자주 쇼핑을 했었다.
옷과 기념품 등 상당히 많은 돈을 썼는데 돈은 충분했기 때문에 좋은 것들로 많이 샀다. 그러고보니 최근에 VIP 등급을 올릴 수 있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은 것도 같았다.
저 여자는 VIP라고 해서 나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따지고 보면 나도 같은 VIP인데 그런 차이 때문에 사과를 해야 하는 것이면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 것 같아서 나는 이 것을 강력하게 이야기 했다.
“저도 뉴월드 백화점 VIP입니다. 아까는 가게 이미지 생각해서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저렇게 막무가내로 나오고 저희 직원도 무시하시니 잘잘못을 따져야겠습니다.”
아무리 막무가내 공화국이고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정확히 잘못을 따지고 갈 생각이다.
하연이가 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우리의 잘못은 그렇게 크지 않다.
혹시 이번 일로 우리 가게가 패널티를 받게 되면 억울하니까 그 점을 걸고 넘어졌는데 나의 말에 직원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름을 물었다.
“고객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내가 진짜 VIP가 맞는지 확인하려는 요량같은데 나는 이름을 말해주었다.
“김정훈입니다.”
팀장의 이름은 한지혜였는데 나의 이름을 듣고 고객 상담실에 있는 컴퓨터로 가더니 검색을 시장하였다.
나도 VIP라는 이야기를 듣고 진상을 부린 여자는 조금 놀란 것 같았으나 내가 쳐다보자 노려보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이곳에 오면 제대로 진상을 부릴 생각이었던 것 같은데 무언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돌아가자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나도 그녀의 시선에 피하지 않고 노려봤는데 그렇게 신경전을 벌이고 있을 때 한지혜 팀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고객님, VIP 확인했습니다.”
그동안 쓴 돈이 상당하고 등록까지 했는데 당연히 VIP로 나와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하는 한지혜의 얼굴 표정은 그렇게 좋지 못했다.
팀장까지 올려오면서 그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었겠지만 VIP끼리의 다툼에 관한 것은 그녀도 겪어보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처리 해야할지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는데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리 저희가 백화점에서 일하고 있고 고객님들을 중요시한다지만 블랙컨슈머에게는 냉정하게 대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건 단비를 통해서 들은 이야기였다.
백화점이 고객들을 정성으로 대하고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되도록 소문이 퍼지지 않게 넘어가려고 애를 쓴다.
말이 고객 상담실이지 실제로는 진상처리반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을 노리고 달려드는 블랙컨슈머들도 많이 있는데 일부러 진상짓을 하거나 물건을 훼손해서 돈을 뜯어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백화점의 영업을 강하게 방해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백화점은 이런 사람들에 한해서는 고소를 하는 등 강하게 대응하면서 뿌리를 뽑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네, 맞습니다.”
“저기 있는 고객님께서는 저희 매장에 지속적으로 방문하시면서 컴플레인을 거셨습니다. 저희 직원과 부딪힌 것도 일부러 그런 것 같은데 CCTV를 확인해서 저 고객님이 블랙컨슈머인지 확인을 해보고 싶습니다.”
“블랙컨슈머요?”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던 한지혜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혹시나 나의 이야기를 여자 고객이 들었을까봐 걱정이 되었나 보다.
하지만 일부러 들으라고 크게 한 이야기를 듣지 못 했을 리가 없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블랙컨슈머?”
여자는 소파에서 일어나 나에게 걸어오며 삿대질을 했는데 주변에 있는 직원들이 말리기 시작했다.
“사모님. 진정하십시오.”
“이거 안 놔? 내가 뭐가 아쉬워서 너희 가게가서 그런 짓을 해!”
여자는 이성을 잃은 듯 고래고래 소리쳤는데 나도 그녀가 뭐가 마음에 안 들어서 우리 가게에 계속 왔는지 궁금했다.
“그러게요. 저도 왜 계속 저희 가게에 오셔서 그랬는지 궁금하네요. 그러니까 CCTV를 확인해서 일부러 그랬는지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CCTV를 보자고 주장했다.
이건 하연이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도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점점 급박해지자 한지혜는 일을 더 이상 키우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절충안을 제안했다.
“제가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양쪽 모두 억울한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 백화점 입장에서는 모두 소중한 고객님들이라 어느 한쪽 편을 들어 드리기 너무 어려운데 이렇게 하시는 건 어떨까요?”
하긴 지금 제일 당혹스러운 것은 그녀일 것이다. 그녀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일단은 그녀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어떻게 말입니까?”
“더러워진 고객님의 옷은 저희 백화점에서 새로운 상품으로 교채해드리겠습니다. 그동안 백화점을 이용해주신 고객님들에게 드리는 감사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주시고 저를 봐서라도 화를 누그러뜨리시고 넘어가주시면 안 될까요?”
한지혜는 여자에게 간곡히 부탁을 하였는데 그녀로서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같았다.
하긴 생각해보면 CCTV를 봐서 저 여자가 일부러 그랬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그녀로서도 난감할 것이다.
고객의 치부를 들추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일이 커지고 위에 보고를 해야하는데 직장인에게 이것은 상당히 귀찮은 일이다.
어차피 백화점에서 진상고객들을 상대로 일정 분량의 상품권이 나오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것을 서비스로 여자에게 주고 일단 상황을 종료시키려는 생각 같았다.
하지만 이건 저 여자에게 좋은 일이지 나에게 좋은 일은 아니다.
이런 나의 생각을 읽었는지 한 팀장이 나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알로하도 솔직히 고객님과 사람이 많은 곳에서 말다툼을 한 것은 패널티를 받을만한 일인 것 같습니다. 제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문제를 삼지 않을테니 그냥 조용히 넘어가시게 어떨까요?”
서비스 교육 정도는 각오했었는데 그냥 넘어간다고 하니 나도 그렇게 아쉬울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이렇게 조용히 끝나고 저 여자가 다시는 매장에 안 올테니 더 좋은 것도 같았다.
더이상 이 문제에 얽히기도 싫었기 때문에 나는 절충안을 받아 들이려고 했는데 저 여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흥. 한 팀장. 내가 새 상품 준다고 하면 좋아할 것 같아? 나 돈 많아. 내가 그동안 여기에 쓴 돈이 얼마인데 나를 이렇게 대해. 이거 여기가 아니라 본사에 문제 제기 할거야.”
여자는 마치 무언가에 빙의된 사람처럼 소리쳤는데 순간적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만큼 자신의 프라이드가 강한 모양이다.
‘도대체 얼마나 썼을까?’
예전에 직원에게 VIP 등급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적이 있었다. 티파니 등급이라고 최상위 999명이 있다고 들었는데 궁금해서 찾아본 적이 있었다.
티파니 바로 아래 등급인 다이아가 연간 구매 등급이 1억 이상인 고객이었는데 1년에 1억 원을 쇼핑으로 썼다고 하니 엄청난 금액이기는 했다.
저 여자도 돈이 많은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인터넷에서 본 재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실제 재벌인 정수아를 가까이 봐서 그런지 왠지 재벌들에게는 딱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급스러움이 있었는데 저 여자가 하는 행동을 봐서는 벼락 부자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러고 보니 벼락부자는 나잖아?’
그때 여자가 말했다.
“여기 회원들 얼마 썼는지 확인해 볼 수 있지 않아? 같은 VIP라고 같은 취급하면 곤란하지. 만약 저 남자가 나보다 돈 많이 썼으면 내가 사과하지.”
여자는 전형적인 물질만능주의, 수준 이하의 반응을 보였는데 아마도 자신이 더 높은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고객님, 그것은 개인적인정보라 곤란합니다.”
한 팀장은 나를 대신해서 거절했는데 나는 도대체 저 여자가 얼마나 돈을 썼길래 저렇게 나오는지 궁금했다.
나 역시 꽤 많은 돈을 썼다.
부산에서 옷을 사고 쇼핑을 한 금액을 계산하면 꽤 될 것 이다. 머릿속으로 그동안 백화점에서 쓴 돈을 대략적으로 계산했는데 2천만 원은 넘을 것 같았다.
로이스에 다닐 때 연봉의 절반 정도 되는 금액을 쇼핑으로 써버린 것이니 절대 작은 돈은 아니었다.
“아니요. 확인 해보십시다. 돈 적게 쓴 사람이 깔끔하게 사과하는 것으로 하시죠.”
***
한지혜는 불안한 눈빛으로 모니터를 쳐다봤다.
자신도 이렇게 해도 되는지 정확한 판단이 서질 않았다.
하지만 VIP 고객 두 명이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해서 상황을 조용히 끝내기만 바라고 있었는데 고객정보에 들어가 두 사람이 쓴 금액을 확인했다.
“김정훈 고객님께서는 2천 2백만 원 정도 사용하셨네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생각한 금액과 거의 비슷하게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만족하고 진상 여자를 쳐다봤는데 여자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느껴졌다.
‘저 웃음 본 적이 있는데…’
가까이서 보니 또 본 적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서 봤는지 떠오르지 않아서 답답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여자의 결제 금액을 한 팀장이 말했다.
“조윤정 고객님께서는 4천만 원 정도 구매를 하셨네요.”
조윤정.
혹시나 해서 이름을 자세히 들었는데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건 그렇고 많이도 썼네.’
거의 나에 두 배나 가까운 금액을 썼다. 하는 행동을 봐서 돈을 많이 썼을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조윤정 고객님께서 더 많이 쓰셨네요.”
한지혜는 나에게 다시 언급을 했는데 그녀는 빨리 이 문제를 끝내고 싶어한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이것은 여자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자, 내가 이겼으니까 네가 사과해. 이왕 사과하는 거 아까 그 직원처럼 진정성이 느껴지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돌려 말했지만 아까 하연이가 한 것처럼 무릎을 꿇으라고 말하면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는데 상당히 꼴보기 싫었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은 되돌릴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제와서 그녀에게 사과를 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이 되었는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잠시만 기다려요.”
“뭐야, 너 사과 안 하고 어디가!”
나는 조윤정과 한지혜 그리고 다른 상담실 직원들을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주변을 살펴보았는데 그리고 쇼핑을 할 곳을 찾았다.
‘부족하면 채우면 되지.’
돈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내 통장에는 100억이 넘는 돈이 있으니까 말이다.
오늘 제대로 쇼핑을 할 생각에 괜찮은 매장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주세요.’
매장을 찾으면서 갑자기 떠올랐는데 예전에 드라마를 보면 괜찮은 것 같으면서도 저렇게 쇼핑하는 사람이 진짜 있을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잘하면 내가 그 대사를 할수도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나의 눈에 한 브랜드가 들어왔는데 저기라면 부족한 금액을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