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9 화
“고객님,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이거 좀 짠 것 같아요. 다시 해주세요.”
방금 전에 나간 우동이었다. 내가 직접 만들었기 때문에 짜다는 말에 신경이 쓰였다.
나는 다시 매장으로 들어왔는데 그런 나를 보고 하연이가 말했다.
“사장님, 우동 다시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고객님이 짜다고 하시네요.”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만들기 전에 우동 소스 비율은 정확히 지켰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서 입맛은 다양하기 때문에 김치가 고명으로 올라간 우동이 충분히 짜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소스를 좀 더 연하게 만들어야 겠다.’
직원들을 시켜도 되지만 내가 만들어서 나간 음식이기 때문에 직접 다시 만들고 싶었다.
나는 소스를 조금 더 연하게 만들고 우동을 끓이기 시작했는데 내 옆으로 한승이가 다가와 말했다.
“저 여자 또 왔네요.”
“누구?”
“김치우동 시킨 아줌마요.”
“자주 오는 사람이야?”
“네, 그런데 올 때마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계속 컴플레인 걸어요.”
“그래?”
“오늘은 조용히 지나가나 했더니 또 그러네요.”
한승이의 말에 나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한 번 마음에 들지 않은 식당을 다시 찾아가는 경우는 흔치 않다.
원래 단골인 경우에는 어쩌다가 마음에 들지 않은 음식이 나오면 다시 가는 경우는 있다.
그런데 올 때마다 바꿔 달라고 했다면 우리 가게가 그렇게 썩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찾아오다니 조금은 특이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승이의 말을 들어서 그럴까?
나는 최대한 신경을 써서 다시 요리를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하연이가 나의 옆으로 왔다.
하연이는 약간 걱정되는 표정이었는데 한승이의 말처럼 자주 와서 신경이 많이 쓰인 모양이다.
“자주 오는 사람이라면서?”
“네, 손님 가리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솔직히 저 사람은 이제 안 왔으면 좋겠어요.”
하연이가 컴플레인 처리를 잘하기는 하지만 그녀도 사람이다. 저렇게 까다로운 사람을 계속 상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도 예전에 로이스에 있을 때 진짜로 짜증이 났던 고객이 있었다.
원래 로이스에서는 샐러드류는 포장이 안 되었는데 올 때마다 샐러드 포장을 해달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계속 거절했고 샐러드 전용 용기가 없어서 어렵다고 양해도 구했는데 비닐 봉지에 담아주어도 괜찮으니 포장을 해달라고 했다.
그래도 안 된다고 계속 거절했는데 나중에는 고객을 무시하냐는 말까지 나와서 어쩔 수 없이 비닐 봉지에 샐러드를 담아주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에 나에게 돌아온 것은 고객의 소리였다.
고객이 비싼 돈 주고 포장해왔는데 퀄리티가 너무 구리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결국 고객에게 사과도 하고 본사에서는 포장이 안 되는 음식을 왜 보냈냐고 사유서도 썼는데 진짜 최악의 경험이었다.
알로하를 오픈하고 나서도 진상을 몇 번 만났지만 이렇게 대놓고 찾아오는 진상은 오랜만에 겪는 것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런 진상은 수없이 많은 고객들 중에서 극소수라는 점이다.
계속해서 저런 고객들이 찾아온다고 하면 정신병에 걸려서 매장을 운영하지 못 할 것이다.
그렇게 각별히 신경을 써서 만든 김치우동이 완성이 되었고 하연이가 음식을 들고 갔다.
원래 푸드코트라 고객이 음식을 가지러 와야 하지만 까칠한 고객들에게는 이런 것도 트집을 잡힐 수 있기 때문에 하연이가 조심스럽게 우동을 들고 갔다.
우동을 전해주자 고객은 한 수저 떠서 먹었는데 다행히 이번에는 간이 맞았는지 별다른 컴플레인을 걸지 않고 넘어갔다.
하연이도 매장으로 돌아와 안도의 한숨을 쉬었는데 반응을 보니 그동안 당한 것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하연아. 점심에 초밥 먹으려고 하는데 먹고 싶은 거 있어?”
직원들이 많기 때문에 원래는 이것저것 종류별로 다양하게 사려고 했다.
그런데 저 고객 때문에 꽤 스트레스 받은 것 같은 하연이를 위해서 그녀에게는 특별히 먹고 싶은 것을 사줄 생각이었다.
“음…저는 소고기초밥이요.”
하연이는 회식할 때 소고기를 좋아했는데 그래서인지 이번에도 소고기 초밥을 골랐다.
“그래, 내가 얼른 가서 사 올게.”
****
“휴, 이제 좀 한가해졌네.”
하연이는 정신없는 점심시간을 보내고 겨우 한숨을 돌렸다.
거의 매일 같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지만 오늘은 유독 더 바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김철수가 허리를 다치고 스케줄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다행히 정훈이 와서 그녀는 큰 걱정을 덜 수 있었다.
오랜만에 정훈과 같이 일하는 것이라 평상시와 다르게 조금 긴장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예전에 같이 일했던 생각도 나고 기분이 좋았다.
조금만 있으면 초밥을 먹을 생각에 더욱 즐거웠는데 그때 그녀를 긴장하게 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그녀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 봤는데 아까 컴플레인을 걸었던 그 여자였다.
‘아…’
아무 말 없이 우동을 먹고 있어서 조용히 넘어가나 했는데 부르는 소리에 하연은 그 여자에게 갔다.
“고객님, 필요하신 거 있으세요?”
“이거 좀 치워주세요.”
여자는 다 먹고 국물만 남은 우동 그릇과 쟁반을 가키리면서 치워달라고 했는데 하연은 어이가 없었다.
이곳은 푸트코트이다.
자기가 먹은 식기는 직접 가져다 주어야 하는데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에게 일을 시킨 것이다.
원래 까칠한 고객이어서 그런지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하연은 프로였다.
“네, 치워드리겠습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그녀는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객의 쟁반을 치우기 위해 움직였다.
쟁반을 들고 일어서려고 하는데 갑자기 고객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적으로 테이블이 흔들리면서 하연의 몸에 부딪혔고 그것 때문에 쟁반을 엎을 뻔 했는데 하연은 겨우 중심을 잡았다.
‘휴, 큰일날 뻔 했다.’
만약에 엎었으면 치우느라 고생을 했을 것이다. 하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갑자기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진짜.”
하연은 놀라서 고객을 쳐다봤는데 그녀가 치마를 보면서 인상을 쓰고 있었다.
치마에는 자그마한 국물 자국이 있었는데 흔들리면서 우동 국물이 그 쪽으로 조금 튄 것 같았다.
하연은 얼른 쟁반을 내려놓고 고객에게 사과를 하였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당황한 하연은 근처에 있는 냅킨으로 고객의 옷을 닦으려고 했는데 고객이 하연의 손을 쳐냈다.
“뭐하는 거예요!”
날카로운 소리에 하연은 순간적으로 멈칫 할 수밖에 없었는데 고객은 불쾌하다는 듯이 말했다.
“당신, 이거 일부러 그랬지?”
“네?”
“나한테 불만 있어서 일부러 그런 거잖아.”
“그게 무슨 말씀인지.”
“아까 밥 먹을 때 힐끔힐끔 나 쳐다봤잖아. 내가 우동 다시 해달라고 해서 불만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여자의 말에 하연은 억울했다.
그녀가 밥을 먹을 때 쳐다보기는 했다.
그런데 그것은 컴플레인을 건 고객이 음식을 잘 먹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지 불만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고객님. 오해입니다. 제가 고객님을 쳐다보기는 했는데 그건 다시 만든 우동이 마음에 드시나 궁금해서 그런 거에요.”
“거짓말 하지마. 내가 그런 것도 구분 못할 것 같아? 쟁반도 일부러 나랑 부딪힐려고 그런 거 아니야?”
“고객님 그건 제가 치워드리려고 했는데 갑자기 일어나시는 바람에…”
“나 때문에 그랬다는 거야? 네가 나랑 안 부딪히게 조심 했어야지.”
하연은 너무 억울했다.
원래부터 까칠한 고객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기 할 말만 하고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었다.
솔직히 마음 속 깊이 화가 났지만 여기는 백화점이다. 고객과 머리채 붙잡고 싸울 수 없으니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하였다.
“제가 조심 했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고객님.”
“그래, 너 이 치마가 얼마짜리인 줄 알아?”
“죄송합니다. 제가 세탁비 변상해드리겠습니다.”
억울했지만 어찌 되었던 고객의 치마에 국물이 묻었다. 세탁비를 변상해주려고 했는데 여자는 더욱 인상을 썼다.
“그거는 당연한 거고 내가 여기 올 때마다 느끼는 건데 여기 서비스 정말 마음에 안 들어. 백화점에 이야기해서 컴플레인 걸테니까 그렇게 알아요.”
컴플레인을 건다는 말에 하연은 당황스러웠다.
정훈이 자신을 믿고 매장을 맡겼다. 특히 고객 관리에 한해서 엄청 잘한다고 칭찬을 자주 했었는데 하필 그가 매장에 왔을 때 이런 일이 발생했다.
얼마 전 인터넷에 퍼진 안 좋은 글들로 정훈이 매장 관리에 각별히 신경을 쓴 것을 잘 알고 있다.
단톡방에서도 실제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당부를 했는데 만약 저 고객이 컴플레인을 걸고 매장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었다.
“고객님, 정말로 죄송합니다.”
하연은 다시 한번 고객에게 정중히 사과를 했다. 하지만 고객은 사과를 받아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됐어요. 알로하 괜찮다고 해서 기대하고 왔는데 올 때마다 실망이 크네요.”
여자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는데 그것 때문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씩 쳐다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하연은 더 이상 일을 키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하연의 거듭된 사과에 여자도 조금은 누그러들었는지 아니면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인 건지 목소리가 조금은 줄어들었다.
“뭘, 잘못했는지 아시겠어요?”
고객은 하연에게 닦달하듯이 말했는데 솔직히 하연은 자신이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는지 모르겠었다.
고객이 짜다고 해서 음식을 새로 만들어 준 것?
아니면 혹시나 새로 만들어 준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을까 봐 계속 쳐다본 것?
그것도 아니면 치워달라고 해서 쟁반을 정리하다가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에 부딪힐 뻔 한 것?
그냥 그녀가 다 혼자 오해하고 혼자 화낸 일이다.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하연은 그냥 오늘 미친개에게 물렸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네, 정말로 죄송합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도록 조심하겠습니다.”
하연은 이렇게 상황을 넘어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여자가 말했다.
“그럼 제대로 사과하세요.”
지금까지 계속해서 사과를 하고 있었다. 그러데 제대로 사과를 하라고 하니 하연은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단 또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네요. 다시 하세요.”
고개까지 숙여서 인사를 했는데 하지만 여자의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고객님을 불편하게 해서 정말로 죄송합니다.”
하연은 다시 고개를 숙여서 사과를 했다. 이 정도면 되었겠지라고 생각을 했는데 고개를 들자 돌아온 대답은 다른 것이었다.
“마음에 들지 않네요. 다시 하세요.”
여자는 다시 사과를 요구했는데 하연은 일부러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트집을 잡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동안 많은 컴플레인을 겪었지만 이런 경우는 진짜 처음이었다.
다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는데 정훈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장님, 생각해서 한 번만 참자.’
하연은 눈을 꼭 감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다시 사과를 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주변에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괴감이 밀려왔지만 이 정도로 사과했으면 여자도 더 이상 뭐라고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흥, 이제 진정성이 좀 보이네요. 이거 내가 시킨 거 아니에요. 당신 스스로 한 거지.”
여자는 이제야 마음에 든다는 듯이 이야기했는데 하연은 여자의 말을 듣고 서러움이 밀려왔다.
고개를 들면 눈물이 흐를 것 같아서 고개를 들지 못했는데 갑자기 누군가 하연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이하연. 일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