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6 화
“결혼?”
잠을 자려다가 넌지시 그녀에게 물었는데 단비는 조금 놀란 표정을 보였다.
단비의 부모님을 만나고 결혼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우리 부모님도 전화를 할 때마다 기대하는 눈치로 이야기를 하시기도 했다.
특히 단비와 매일 같이 만나고 우리 집에서 거의 살다시피 해서 그런지 장모님은 빨리 결혼을 시키고 싶어 하셨는데 우리는 아직 결혼 생각이 없었다.
단비는 그래도 한번 뿐인 결혼을 제대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고 나도 같은 생각이었는데 정확히는 신혼여행 때문에 미루었다.
알로하.
우리 가게 이름처럼 나는 항상 하와이를 가고 싶었다. 단비와 사귄 이후로 신혼여행은 하와이로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상황이 나아질 가능성이 보이지 않고 있다.
확진자가 늘어나고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서 이제는 위드코로나라고 하여 코로나와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 나서고 있다.
우리와 같이 결혼을 많이 미루었던 예비 신혼부부들도 그냥 결혼 후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많이 떠나고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제주도의 호텔값이 해외여행을 가는 것처럼 많이 올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코로나가 금방 끝날 것 같지는 않았다.
단비와 이렇게 같이 지내니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문득 성민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제일 위험하다.’
성민이는 결혼 후 자주 만나지 못했지만 그래도 가끔 통화를 했었는데 나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말에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었다.
결혼을 한 녀석이 그런 이야기를 해서 처음에는 개그인 줄 알았는데 엄청 지지한 녀석의 모습에 나는 결혼 생활이 힘들기는 한 것 같았다.
하긴 생각해보면 사촌인 민규도 결혼은 인생의 무덤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머리에 물수건을 대주고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단비라면 무덤에 누워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코로나 잠잠해지고 결혼하려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서…”
“음…나도 빨리 결혼 하고 싶기는 한데…”
단비도 나와 같은 마음인 모양이다.
하긴 보통 결혼하면 생활 습관 때문에 많이 싸운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우리는 같이 지낸 지 좀 되었지만 별로 크게 다른 점이 없었다.
오히려 서로 잘 맞는 느낌이었는데 내가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급한 거 아니니까 조금 더 기다려 보자. 오빠도 사업 때문에 아직 여유가 없잖아.”
“그렇기는 하지.”
가맹점 늘리는 것도 그렇고 본사에서는 인수에 관한 문제로 정신이 없었다.
아마 올해까지는 정신없이 보낼 것 같은데 그녀의 말대로 결혼 준비까지 하면 몸이 두 개여도 부족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급하게 결혼 안 해도 될 것 같아.”
단비는 담담하게 말했다. 어떻게 보면 나를 배려해주는 듯한 그녀의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나는 단비랑 빨리 결혼 해서 같이 살고 싶은데…”
“뭐…?”
나는 나의 속마음을 그녀에게 솔직히 말했는데 단비가 말을 더듬으면서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같이 밥도 먹고 잠도 자고 아플 때 챙겨주고 하니까 너무 좋은 것 같아."
나의 말에 단비는 감동한 것 같았는데 그녀는 나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했다.
“알았어. 조금만 참아. 나중에 약 기운 때문에 헛소리 했다고 하면 가만 안 둘 거야.”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 잠깐 이야기했는데 다시 잠이 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열 뿐만 아니라 단비처럼 몸살도 있는 것 같았는데 진짜 한숨 제대로 자야 할 것 같았다.
“그래. 이제 더 이상 안 되겠다. 나 한숨 자고 일어날게.”
“어, 잘 자. 오빠.”
****
일주일의 자가 격리가 끝나고 본사로 출근하였다.
처음에 이틀은 열과 몸살 때문에 고생을 좀 했는데 삼 일부터는 상태가 많이 호전 되었다.
기침과 가래가 좀 나오기는 했지만 움직이는데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데 단비도 나와 비슷했다.
덕분에 집에서 제대로 쉴 수 있었다.
호캉스 아닌 호캉스를 보낸 기분이었는데 집에서 맛있는 것도 시켜 먹고 그동안 못 본 영화와 드라마도 시청하면서 진짜 아무런 생각 없이 푹 쉬었다.
단비는 살이 좀 쪘다면서 불평을 했지만 오히려 오랜만에 잠도 푹 자고 그래서 그런지 피부는 오히려 좋아진 것 같았다.
“사장님, 몸 괜찮으세요?”
본사로 출근을 하자 나를 보는 사람들이 다들 걱정스럽게 물어봤다.
항상 직원들에게 코로나 조심하자고 이야기했는데 가장 먼저 걸린 것 같아서 조금 민망한 기분도 들었다.
“네, 괜찮습니다.”
그렇게 직원들과 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는데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규원 푸드의 박규원과 두레 푸드의 김현태, 그리고 전상욱 부사장과 남현성이었다.
남현성은 이제는 거의 우리 회사 법무팀처럼 활약을 하고 있었는데 지분 계약에 관해서 도움을 주었다.
“김 사장. 코로나 걸렸었다면서? 몸은 괜찮아?”
박규원이 나를 보면서 걱정스럽게 물었는데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네, 괜찮습니다. 오히려 걸리고 나니까 속이 편한 것 같아요.”
“우리 매장에서 일어나는 직원도 코로나 걸렸었는데 약 먹고 잘 쉬면 괜찮다고 하더라고.”
“네, 저도 그랬습니다.”
“그래, 좋아 보이니까 다행이네.”
박규원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듣고 있던 남현성이 나에게 말했다.
“다 모인 것 같은데 설명 좀 드려도 될까요?”
나를 대신해 전상욱이 계약서를 점검 했지만 그래도 최종 사인은 내가 해야 하기 때문에 남현성이 계약서를 보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알로하 법인으로 규원 축산과 두레 푸드를 인수하기로 했다.
규원 축산에는 알로하 지분의 10%를 주기로 하였고 두레 푸드는 가진 자본금이 더 많아서 15%의 지분을 주기로 하였다.
이로써 내가 가지고 있는 알로하 지분의 75%로 줄어들었는데 그래도 아직 중요한 결정은 나의 단독으로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특별히 변한 것은 없었다.
남현성의 설명을 들으면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는데 이로써 우리들은 한 가족이 되었다.
“혹시 나중에 지분을 파실 일이 있을 때 김정훈 씨에게 우선권이 있다는 것만 유의하시면 됩니다.”
남현성의 설명을 듣고 다른 두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것은 전상욱 상의하여 집어 넣은 조항이었다.
혹시나 나중에 투자를 더 받거나 해서 지분이 약해질 때를 대비하여 넣은 조항인데 나중에 회사가 커지고 우리 회사를 적대적으로 합병하는 회사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에 집어 넣게 되었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사모펀드에 회사를 뺐긴 다음에 직원들이 구조조정을 당하고 실적을 좋게 바꾸어서 더 비싼 가격에 매각하는 놈들도 있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 전에는 알지 못한 새로운 세계였다.
“사진 찍을까요?”
도장을 다 찍고 나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상현이가 카메라를 들고 와서 말했다.
어떻게 보면 프랜차이즈 회사로서 더 큰 발걸음을 내 딛는 순간이었다.
사진으로 남겨 놓으면 나도 좋을 것 같아서 사장님과 같이 손을 잡으면서 사진을 찍을 포즈를 취했다.
찰칵
사진을 찍고 우리는 다시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는데 박규원이 말했다.
“이거 서운하기로 하고 시원하기도 하고 기분이 이상하네.”
그의 말에 다들 웃었는데 나는 어떤 마음인지 조금을 알 것 같았다.
처음에 로또가 당첨 되었을 때 나는 알로하를 이렇게 까지 키울 생각이 없었다.
조금 운영하다가 혹시나 코로나가 심해져서 돈을 까먹기 시작하면 장사를 접을 생각이었다. 아마 그때 접었으면 박규원과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장사가 잘 되기 시작했고 규원과 두레를 흡수할 만큼 커졌다.
“달라지는 것은 크게 없을 겁니다. 공장을 지금처럼 맡아주셔야죠.”
규원 축산에는 투자를 조금 하여 규모를 늘리기로 했다.
고기를 완전히 숙성하여 각 매장에 전달하기 위해서 지금보다 넓은 장소가 필요했는데 다행히 규원축산 근처에 땅이 있어서 확장 공사를 하면 될 것 같았다.
완전히 공장처럼 시스템을 바꾸고 박규원을 공장장 겸 알로하의 임원으로 만들 예정이고 이것은 두레 푸드 역시 마찬가지다.
두레 푸드는 김현태가 사장으로 있기는 하지만 가족들이 경영하는 회사였다.
그의 어머니나 누나가 혹시나 매각을 반대하면 어떻게 할까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크게 반대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에 공장이 망할 뻔한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았다.
“앞으로 많이 도와주십시오.”
이제는 공장장이 된 사장님들에게 많이 도와줄 것을 부탁했는데 그들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의욕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계약이 잘 되어서 다행이네.”
사장님들이 가고 나서 사무실에는 나와 상현이가 남았다.
내가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전상욱이 사장님들과 지분에 관해서 상의를 했는데 다행히 서로 얼굴을 붉히지 않고 잘 마무리 된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덜 내주고 더 받으려고 언성을 높이다 보면 감정싸움이 될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계약이 파토 되는 경우도 많이 봤는데 서로 조금씩 양보해주면 만족할 만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게 다행이네.”
“아, 일전에 말한 거 있잖아.”
상현이 나에게 말했는데 나는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했다.
“어떤 거?”
“여론 조작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말이야.”
“어, 찾았어?”
방송에 나간 이후로 악의적인 글들이 너무나 많아졌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져서 그런 줄 알았는데 스플렁크에게 자료를 받은 이후로 무언가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상현이에게 경찰 조사를 의뢰하라고 했다.
“일단 악의적인 글을 쓴 사람들을 고소하는 방식으로 경찰에 의뢰했는데 경찰이 해외 IP여서 잡기 힘들다고 하더라.”
“해외?”
어이가 없었다.
알로하는 해외 지점이 없다. 국내에서 이름이 알려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해외까지 이름이 퍼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누군가 조직적으로 영업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았는데 이건 보지 않아도 강훈이 분명할 것이다.
‘강훈, 역시 너였구나.’
사실 인플루언서들 중에서 강훈과 관련이 되어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잡을 수는 없겠지?”
“어,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하시더라.”
“알았어. 그건 일단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아 그리고 김철수 씨가 다쳤다고 하더라.”
“누구?”
“광주점에 일하는 김철수 씨 말이야. 아까 계약하고 있을 때 연락이 왔는데 내가 받았어.”
상현이의 말에 나는 누군지 떠올랐다.
내가 직접 뽑기도 했고 대전에 같이 지원도 가면서 많이 친해졌었다.
그 뒤로 가끔 하연이와 연락하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다쳤다는 이야기에 걱정이 되었다.
“진짜? 어디를 다쳤는데?”
“아침에 식재를 옮기다가 허리를 삐끗했는데 디스크가 터진 모양이다. 오늘 일 못하고 지금 병원에 누워 있다고 하더라.”
“디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