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2 화
“인수를요?”
전상욱은 나에게 규원 축산과 두레 푸드의 인수에 관해 이야기 했는데 나도 예전에 그것을 생각한 적이 있기는 했다.
아무래도 다른 회사로 운영이 되다 보니 점포를 늘릴 때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힘들다고 하면 다른 곳을 찾아야 하니까 말이다. 그동안 내가 요구한 대로 물량을 계속해서 늘려서 공급해주었지만 그게 언제까지 가능한지도 확실히 알 수 없다.
만약 거기서 물량을 더 이상 늘릴 수 없다고 하면 어차피 다른 업체를 또 알아봐야 한다.
인플루언서들의 초청회 이후로 가맹점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특히 배종연이 인수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간 이후로 적극적으로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더욱더 많아졌다.
이 정도 추세면 이번 년도가 끝나기 전까지 30개 점포를 오픈하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
로이스가 직영점으로 60개 정도의 점포를 가지고 있었으니 순수하게 점포의 개수로만 따지면 반을 따라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물량 공급이 늦어진다고 하면 아무래도 점포를 늘리는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저번에 배종연을 만났을 때 그는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나에게 생각해보라고 했는데 그의 말이 어느 정도는 맞았다.
급격한 점포 확장.
대기업이 하청을 두는 이유는 자신들의 입맛대로 마음껏 다룰 수 있기 때문이지만 나는 애초에 그런 성격이 아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에게 봐주는 법이 없지만 두레 푸드나 규원 축산은 나를 많이 도와주었던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냉정히 대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전상욱의 말처럼 내가 두 곳을 인수하여 내가 투자한 다음 운영하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투자를 할 때 항상 내가 가지는 리스크를 걱정했으나 지금은 알로하에 올인하기로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한다.
두 사람이 나에게 넘기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는 결국 다른 길로 가야 한다.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번에 배종연 대표의 기사 등으로 인해 관련된 이야기가 나왔으니 나는 사장님들 과 이야기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배종연 대표와는 별개로 나는 알로하가 독자적인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네.”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인 것 같았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지점도 더 많이 늘어나고 내가 또 인수를 주장하는 이유가 있는데 알로하의 수익 모델이 별로 좋지 않아.”
“수익 모델이요?”
“그래. 무주에서 이사 준비하면서 알로하 회계 자료를 살펴봤는데 직영점을 제외하고는 돈 들어오는 곳이 별로 없더군.”
“네, 그렇습니다.”
가맹비도 저렴하게 받고 있고 로얄티도 다른 브랜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물류는 뉴월드 푸드에 맡기고 있기 때문에 물류비를 따로 챙기지도 않고 거기에 인테리어는 안 서방의 회사에 맡기고 있다.
가맹점에 본사가 소스나 고기 납품과 같은 것으로 돈을 벌 수 있으나 우리는 그것도 다른 업체에 넘기고 있다.
프랜차이즈로 돈을 벌 수 있는 대부분의 사업이 수익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기형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해도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가 몇 가지 있었다.
첫째로는 나의 부수입.
로또로 대박이 터졌고 주식과 코인으로 꾸준히 돈을 벌었다. 은행 이자도 나오고 꾸준히 통장에 돈이 늘어나서 그런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두 번째로는 직영점들이 너무 장사가 잘 되고 있다.
뉴월드 광주점과 대전점은 물론이고 다른 직영점들까지 말도 안 되는 수익을 올려주고 있으니 그 돈으로 본사 운영비가 어느 정도는 충당이 되고 있었다.
전상욱은 이걸 문제점으로 들었는데 나도 최근 들어 어느 정도는 공감하는 부분이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야 괜찮지만 앞으로는 이렇게 해서는 안 되네. 내가 인수를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인데 아예 우리가 인수해서 수익을 가져가던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면 통째로 다른 기업과 합쳐서 아예 저렴하게 물류나 원재료를 받아야만 알로하를 유지할 수 있을 거야.”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만약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면 어쩔 수 없이 가맹점주들에게 받는 비용을 더 늘려야 할 거야.”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랬다.
우선 인테리어업체는 바꿀 수가 없다. 안 서방. 사돈 어르신의 회사였다.
알로하 초창기부터 우리 회사를 위해서 도와주었다. 저렴하게 인테리어도 해주고 실제로 챙겨가는 수익도 그렇게 많지 않다고 알고 있다.
가맹점주들에게 이점이 되고 있는 저렴한 인테리어비를 생각해서도 안 서방과는 계속 일을 해야한다.
결국 수익을 내기 위해서 바꿔야 하는 것은 시스템 아니면 가맹점 비율인 것이다.
업계 1등이 되기 위해서는 가맹점은 계속해서 늘려야 한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시스템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서울로 다녀와서 혼자 고민을 많이 했다. 아니 어쩌면 결과는 알고 있는데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전상욱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는 결정을 내렸다.
“사장님들을 만나겠습니다.”
****
“아저씨, 너무 맛있어요!”
1년 만에 나라를 만났다.
아이들이 부쩍 큰다는 말이 사실인 듯 불과 1년 사이에 나라는 키가 많이 자랐다.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빠인 민국이도 안 본 사이에 많이 자랐는데 여전히 예의가 바른 모습이었다.
“그래, 민국이 많이 먹고 부족하면 또 말해.”
민국의 옆에는 할머니도 있었는데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면서 기분이 좋으신 듯 웃음을 지으셨다.
아이들이 잘 먹어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아이들에 대한 걱정을 덜어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다.
밥을 먹기 전 사무실에서 할머니와 아이들을 먼저 만났다.
그리고 나는 후원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아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지원하겠습니다.”
정미희 팀장과 후원을 결정 했을 때 어떤 식으로 하면 좋을지 고민을 했다.
다른 기업들은 후원금 형식으로 전달했는데 처음에는 그것을 생각하다가 문득 할머니가 생각이 났다.
할머니가 걱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예전에 봤을 때 많이 연로하셨었다. 만남을 위해서 잠깐 통화를 했을 때도 자신이 죽고난 후 아이들이 어떻게 살까 걱정이 된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 걱정을 조금 덜어드리기로 했다.
이야기를 들은 바 민국이는 학교에서 성적이 좋다고 했다.
공부를 꾸준히 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런 민국이를 위해서 대학교 입학할 때까지 학비를 지원하기로 했다.
예전에 신문에서 출생 후 대학교 졸업까지 들어가는 비용을 3억 정도 추청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큰 금액이지만 민국과 나라 남매에게는 그렇게 해주고 싶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저 공부 열심히 할게요.”
나의 이야기를 듣고 민국은 눈물을 보였다.
동생을 챙기고 듬직한 모습을 보였는데 사실 민국이는 걱정이 많았던 모양이다. 할머니는 연로하시고 동생은 어리다.
어린 나이에 철이 들어버려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항상 고민을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주는 도움으로 그 고민이 조금은 해결된 것 같았다.
나는 남매들이 돈카츠를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래, 예전에도 이랬었지?’
로또에 당첨되고 기분이 너무 좋았다. 불쌍한 남매들을 그냥 지켜볼 수 없어서 도와주었다.
나는 꼭 돈 때문에 장사를 하지 않는다.
내가 인수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사장님들이 서운해 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런 진심을 솔직하게 전달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규원 축산 혹시 저에게 넘기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나는 먼저 규원 축산을 찾아갔다.
아무래도 동성이 형님이 여기 있기 때문에 심적으로 이야기 꺼내기 쉬울 것 같아서 그랬는데 역시나 나의 이야기를 듣고 사장님은 놀라셨다.
“가게를 팔으라고?”
“네, 저에게 파십시오. 사장님.”
“전화 통화 할때는 그런 이야기 없었지 않은가…”
박규원은 조금 섭섭하다는 듯이 나에게 말했는데 나는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나의 마음을 솔직히 이야기 했다.
“저는 계속해서 규원과 같이 일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알로하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고기가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잘해주셨지만 앞으로는 부담이 될 것입니다. 차라리 제가 인수하고 더 투자하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인수한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코로나 때문에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동안 몇몇 요구를 다 받아 주셨지만 계속해서 그럴리라는 보장은 없다.
내가 인수를 하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인수를 하여 나의 품에 들어온다면 가져야할 리스트는 오로지 내가 가져가면 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럼 규원 축산을 팔면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규원 축산을 인수한 후 정육 공장으로 업그레이드 할 생각입니다. 그곳에 공장장을 맡아 주십시오.”
공장장에 관한 의견은 전상욱이 내었다.
아무래도 규원 축산에는 그를 따르는 직원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단순히 회사의 경영권만 가져갈 뿐 실질적인 운영은 계속 그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그렇군. 혹시 내가 거절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만약 규원이 거절한다고 하면 계약 기간까지만 관계를 유지하고 자체적인 공장을 건설 할 것입니다.”
말하면서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전상욱과 고민 끝에 사장님들이 혹시 인수를 거절해도 자체적인 시스템을 갖추기로 합의했다.
배종연이 제안한 것처럼 그의 회사 안에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으나 전상욱은 지금 들어가기에는 타이밍이 아쉽다고 이야기했다.
알로하는 지금 좋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규모가 커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기서 점포를 더 늘리고 자체적인 공장을 갖춘다고 하면 배종연 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했다.
그럼 알로하의 몸값은 더욱 올라가니 급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공장을 건설하는데 돈과 사람이 필요하겠지만 나에게는 그것을 뒷받침 할 돈이 있었다.
“갑자기 그런 말을 하니까 좀 당황스럽군. 평생 이 가게만 운영했는데 말이야.”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내가 자그마한 돈카츠 가게에서 프랜차이즈 회사로 성장한 것처럼 규원 축산도 고기를 유통하는 가게에 불과했다.
하지만 나와 거래하면서 직원도 더 뽑았고 설비도 갖추고 규모를 키웠다.
정확히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내가 돈을 번 것처럼 그도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여기서 나와 거래가 끝난다고 하면 새롭게 판로를 찾아야 하니 앞으로의 일은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그렇다고 가게를 넘기자고 하니 그동안 규원축산을 키운 것이 너무 아까웠다.
고민하는 그를 보고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그가 나에게 말했다.
“사실 자네에게 고마운 마음은 항상 있었네.”
“저한테요?”
“그래? 어떻게 보면 규원 축산이 잘 되는 것도 다 자네 때문이니까 말이야.”
박규원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어렸을 때 같이 고기를 잡던 친구들이 광주에서 축산 회사를 많이 만들었는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고 했다.
사실 코로나 터진 이후로 자신도 거래하던 가게들이 문 닫기 시작하면서 위기가 찾아 왔다는 말도 같이 말이다.
그런데 나와 계약하면서 그런 걱정을 덜 수 있었다고 말이다.
“이제 알로하와 규원 축산을 땔래야 땔 수 없는 관계가 되었지.”
사장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예전에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은데 끝까지 가자고 말이야.”
“그 말은…”
“자네에게 회사를 넘기도록 하겠네.”
박규원이 어려운 선택을 해주었다. 나는 너무 고마운 마음이 들어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감사합니다.”
그때 그가 나를 보고 말했다.
“대신에 조건이 있네.”
“조건이요?”
“인수 대금은 알로하 지분으로 받고 싶은데 그렇게 해줄 수 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