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9 화
“먹어보게.”
집 안으로 들어가자 전상욱은 나에게 시원한 오디차를 건넸다. 갈색으로 우러나온 국물이 독특한 색을 내고 있었는데 한입 마신 나는 난생 처음 느껴 보는 맛에 놀랐다.
“오”
“어떤가? 맛있지?”
내가 약간 놀란 반응을 보이자 그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는데 나는 다시 한번 들이킨 후 그에게 말했다.
“오디차는 처음 먹어 보는데 엄청나게 맛있네요.”
“여기 뒤에 산에서 직접 채취한 오디일세. 말려 놓고 이렇게 생각날 때면 물에 물려서 얼음이랑 같이 시원하게 먹고 있는데 나쁘지 않아. 예전에 서울에 있을 때는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아침마다 먹었는데 여기서는 이걸로 아침을 보내지.”
“그렇군요.”
시원한 차를 어느 정도 마시자 그가 나에게 넌지시 물었다.
“어제 이야기를 듣고 나도 궁금해서 찾아보기는 했는데 알로하 일본식으로 제대로 만들었더군.”
“네, 처음에 퇴사하고 나서 저도 로이스처럼 경양식 집으로 창업을 하려다가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일본식 돈카츠로 결정했습니다.”
“일본식 돈카츠도 맛있지. 찾아보니까 TV에도 나오고 장사가 잘 되고 있는 것 같던데.”
그는 칭찬하듯이 나에게 말했는데 나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도 실력이지. 그런데 나를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입니다.”
“도움이라 어떤 도움인가?”
“작년에 창업한 이후로 좋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알로하를 프랜차이즈 사업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영에 대한 경험이 아직은 많이 부족합니다. 그때 사장님이 생각났습니다.”
혹시나 그가 거절하면 어떻게 될지 걱정이 되었지만 나는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단독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 회사로 오셔서 저를 도와주십시오.”
개인적으로 로이스를 1등 브랜드로 만드는데 그의 경영능력이 컸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알로하가 1등이 되기 위해서는 그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았는데 어떤 대답을 할지 나는 긴장이 되었다.
“음…”
그는 잠시 고민을 하면서 생각에 잠긴 듯 했는데 나는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뒤 그의 입이 열렀다.
“로이스를 그만두고 얼마 안 있다가 이곳 무주로 내려와서 귀촌 생활을 시작했지. 다른 곳에서 일하려고 하면 더 일할 수도 있었지만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는데 나는 그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곳에 어머니 산소도 있으니 돌보면서 마음을 정리 했는데 막상 살아보니 공기도 좋고 물도 좋아서 지내기가 나쁘지 않았어.”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를 나와 꽤 깊은 산속으로 들어왔다. 확실히 주변과 공기가 다른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나도 가슴이 시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지금 생활이 마음에 드네. 나의 능력을 높게 평가해주는 자네 의견은 고맙지만 나는 이곳을 떠날 생각이 없네.”
기대를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거절이었다.
하긴 도시 생활을 접고 완전히 시골로 내려온 사람이었다. 설득하여 다시 도시로 데려간다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군다나 다른 곳도 아니고 광주였다.
그가 원래 살던 지역은 아마 서울이나 경기도 쪽이었을 것이기 떄문에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쉬었다.
“예전에 로이스에 처음 입사하고 신입사원 OJT에서 사장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랬었나?”
“그때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을 상실하고도 열정만 상실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있다.”
나는 예전에 교육을 받을 때 감명이 깊었었던 이야기를 그에게 다시 해주었다.
솔직히 로이스에 입사하기 전에 나의 인생은 지극히 평범했다.
대학교 성적도 평범했고 다른 사람들보다 뛰어난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로이스에 입사한 것도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의 말을 듣고 나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직접 일해 본 결과 요식업은 그의 말처럼 성실하게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면 성공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전상욱 역시 그렇게 사장의 자리까지 올라갔고 말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군. 생각해보니 예전에 직원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줬던 것 같아.”
“네, 저도 사장님께 들은 겁니다. 그때 이후로 로이스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강훈의 퇴사 권고였습니다.”
강훈의 이름이 나오자 순간적으로 전상욱의 어깨가 움찔 하는 것 같았다.
강훈의 아버지인 강민태가 경영에 나서고 나서 그가 퇴사를 한 이야기는 로이스에서 일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는데 그의 반응을 봐서는 무슨 일이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로이스를 나오고 나서 가게를 창업했습니다. 처음에는 먹고 살기 위해서 가게를 만들었지만 하나 둘 단골 손님을 늘려가고 여러 가지 좋은 일도 생기면서 프랜차이즈 회사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죠.”
나는 조용히 나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는 경청을 해주었다.
“그리고 욕심이 생겼습니다. 나를 버린 로이스를 넘어서 최고의 돈카츠 프랜차이즈 회사를 만들자고 말이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도 점점 몰입이 되는 기분이 들었다.
간혹 직원들이나 다른 사람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진지하게 나의 포부를 말한 적은 거의 처음이었다.
조금은 오글거리는 했지만 말을 할수록 자신감이 생겼는데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상욱 사장님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그저 옆에서 자문을 해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나는 그렇게 말을 마쳤는데 전상욱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쳐다보았다.
거실에는 통유리로 된 커다란 창문이 있었는데 창밖으로 푸르게 물든 산이 보여 꼭 벽화를 펼쳐 놓은 것 같았다.
그렇게 얼마를 있었을까?
전상욱의 입이 열렸다.
“이 이야기는 처음 하는 것 같군. 원래 강민태랑 나랑은 친구 사이였네.”
“친구요?”
로이스에 꽤 오래 있었지만 두 사람이 친구였다는 이야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자네도 알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원래 프레쉬푸드로 입사로 했었지.”
이건 나도 알고 있다. 프레쉬푸드를 다니다가 로이스로 옮겨오면서 사장을 맡았었다.
“프레쉬푸드를 다니고 있을 때 강민태도 정체를 숨기고 경영수업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는데 나이가 동갑이어서 쉽게 친해졌지.”
“그렇군요.”
처음 듣는 이야기.
강훈의 아버지 강민태에 관한 말이 나오자 나오는 그의 이야기에 집중을 했다.
“시간이 꽤 흐르고 지금은 고인이 된 프레쉬푸드의 강영남 회장이 막내 아들이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을 했는지 로이스를 맡기더군.”
로이스의 지분은 원래 강민태가 다 가지고 있었는데 이제보니 그것도 강영남이 주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강민태는 그것에 불만이 많았어. 그때만 하더라도 로이스는 이제 막 점포를 늘리기 시작한 신생 회사였거든 욕심이 많은 강민태의 성에는 차지 않았을 거야.”
“그랬을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어린이들이 먹는 돈카츠를 파는 회사여서 그는 실망을 많이 했지.”
하긴 나 같아도 그랬을 것 같다.
프레쉬 푸드는 국내 1등 식품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막내라고는 해도 그런 곳의 아들인데 그룹의 계열사도 아닌 돈카츠 가게 하나를 줬으니 불만이 생길만 했다.
“이건 내 생각인데 강영남 회장의 마지막 테스트였던 것도 같아. 그룹의 계열사를 맡을 수 있는 자질이 있는지 말이지.”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아버지의 의도를 모르고 돈카츠 회사를 맡은 강민태는 일에 큰 관심이 없었지. 하지만 아버지가 맡길 일이니 그대로 무시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나를 부탁을 했지. 자기 대신에 경영을 좀 해달라고 말이야.”
“아…”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아무리 사장이라고 해도 뉴월드푸드와 로이스는 규모가 달랐다. 왜 갑자기 그가 뉴월드푸드에서 로이스로 자리를 옮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런 속 사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솔직히 말해서 나도 욕심히 있었지. 로이스가 잘 돌아가게 도와주면 나중에 뉴월드푸드에서 한 자리 준다고 했으니까 말이야.”
“그러셨군요.”
그는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속이 좀 상하는지 오디차를 다시 조금 들이켰다.
나도 그를 따라 차를 마셨는데 어떻게 보면 그도 나처럼 로이스에게 버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로이스로 옮기고 내 것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지. 실제로 성과도 좋았고 말이야.”
그가 부임한 이후로 로이스는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로이스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강민태가 말하더군 이제 그만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이야.”
“설마 그대로 쫒겨 난겁니까?”
나의 말에 그는 대답없이 웃었다.
강훈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쫓겨 난 나도 어이가 없었지만 그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민태는 로이스를 키워낸 성과가 자신의 것이라고 아버지에게 자랑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야. 그래야 자신의 경영 능력을 인정 받을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야.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있었으면 안 되었지.”
그는 씁쓸하게 말했는데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강민태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같은 길을 가는 동료 정도로는 생각했는데 그는 그냥 나를 집 지키는 개 정도로 생각했던 것 같군.”
부전자전이라고 했다.
강훈의 그 개차반 같은 성격이 어디서 나왔겠는가.
“사냥이 끝나면 개는 삶아 먹는다는 말이 딱 떠오르더군. 그나마 다행인 것은 퇴직금은 두둑히 받았다는 것인가? 덕분에 이렇게 귀촌 생활도 하고 있고 말이야.”
그는 담담하다는 듯이 억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는데 그 속은 편하지 않아 보였다.
신입사원들에게 열정을 강조했던 그였다.
누구보다 로이스를 위해서 열정적으로 일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의 시간이 모조리 부정 당한 것이나 다름 없다.
기분이 좋을리는 없었다.
나를 이를 악물고 말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로이스를 위해서 말단 직원부터 점장까지 열심히 일했는데 돌아온 것 차별과 모멸감이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로이스에 대한 복수심이 아예 없다고는 말씀드리지 못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한번 진심을 다해서 그에게 말했다.
“로이스를 넘어서 알로하가 돈카츠 1등 브랜드가 될 수 있게 저를 도와주십시오.”
고개를 숙이고 정중히 말했는데 이런 나의 태도에 그도 고민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고민을 하던 그의 입이 열렸다.
“예전에 강훈이 나를 아저씨 하면서 따랐던 적이 있었지.”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말투였는데 표정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퇴사를 결정하고 로이스에서 짐을 싸던 날 강훈이 나를 찾아와 그러더군. 그동안 자기 회사 키워주느라 고생했다고 말이야. 그때 웃으면서 나에게 하던 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
화가 나는 상황이지만 강훈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만 약속해 줄 수 있겠나?”
“네,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물론이고 열정을 가지고 믿고 따르는 직원들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말이야.”
그도 그렇고 나도 로이스에 상처를 입었다. 지금 내가 만든 알로하에서는 그런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것 또한 나의 바람이다.
“네, 약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