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8 화
“누구요?”
“맛 칼럼니스트 류형준 씨입니다.”
후우우
나의 말에 배종연이 한숨을 쉬면서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나는 혹시나 그가 초청회 출연을 거절할까 봐 긴장이 되었는데 그가 나에게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저는 그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나도 일전에 목요시식회를 봤는데 류형준은 알로하를 그렇게 좋게 보지 않는 것 같던데 출연한다고 하던가요?”
배종연도 목요시식회를 챙겨보았던 모양이다.
“네, 사실 방송 촬영을 할 때 저도 현장에 있었는데 끝나고 나서 류형준 씨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들을 수 있습니다.”
나의 말에 배종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군. 그의 직업이 요리를 평가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도 왜 그가 그런 말을 하는지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해하고 있다는 그의 말에 나는 조금 놀랐다.
“하지만 이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인데 김 사장도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 알 수 있겠지만 나는 회사를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이야.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도 있고 나를 믿고 창업을 한 가맹점주들도 있지.”
그는 나지막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는데 나는 왜 그런지 조금은 이해할 것 같았다.
“류형준은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를 제공해준다는 명분으로 가게들을 평가하지만 실제로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지. 특히 좋지 않은 평가를 받으면 매출에 타격이 생기고 점주들 입장에서 생존을 위협하는 사람인 거야.”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하더라도 이번에 인플루언서들의 평가로 인해 그동안 좋게 받아 오던 평판이 조금 흔들렸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류형준과 하하 호호 친하게 지내면 어떻게 되겠는가? 나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의 등에 칼을 꽂는 것이지.”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나는 처음에 류형준에게 알로하에 대한 평가를 들었을 때 어떻게 하면 그에게 인정받고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배종연은 자신을 따라는 사람들이 피해가 가지는 않을까 걱정을 한 모양이다.
알로하를 창업하고 로또에 당첨되었다. 큰 걱정 없이 사업을 진행해서 그런지 망할 것이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못했다.
실제로 가게가 승승장구하면서 커지기도 했고 말이다.
그런 나와 다르게 배종연은 자그마한 가게부터 자신의 힘으로 키워냈다. 나와는 다르게 로또 당첨금이라는 배경도 없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내가 예전에 창업을 해보지 않은 류형준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자영업을 생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의 어려움을 그가 모르는 것 같아서 한 말이지.”
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영업자들이 많이 어렵다. 코로나 때문에 더욱 어려워졌다.
가깝게는 카페 장사를 하던 조형우 팀장님이 가게 문을 닫았고 동성이 형님도 형제 김밥의 문을 닫았다.
내 기준에서 둘 다 나쁘지 않은 가게였는데 장사를 한다는 것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엄청 많았다.
“하긴 그도 요즘에는 비판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좀 변한 것 같기는 하던데?”
배종연의 말에 나는 웃었다.
그의 말처럼 류형준도 예전과는 다르게 변화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요리를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요즘에는 가성비라던지 다른 것들도 생각을 많이 하고 비평을 남겨주는 것 같았다.
예전에 그의 평가 때문에 손님이 줄어들어 망한 가게들이 있었다.
그도 그것에 책임감을 느껴서인지 좀 더 유해진 것인데 나한테 조언해준 것도 어떻게 보면 그의 성격이 변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네, 맞습니다. 류형준 씨도 만났는데 그도 대표님을 이해한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그런가?”
나의 말에 배종연은 조금 놀라는 눈치였다.
“네, 그리고 초청회는 다 따로 진행할 것이기 때문에 직접 만날 일은 없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럼 출연은 해주시는 걸까요?”
“그건 약속했으니까 당연히 가야지.”
혹시나 그가 출연을 뒤집을까 봐 걱정을 했었는데 약속대로 출연한다는 말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대신에 아까 제가 말한 조건 잘 생각해보세요. 알로하를 위해서도 나쁘지 않은 조건일 겁니다. 런디코리아는 그렇게 작은 회사가 아니니까.”
나에게 이야기하는 배종연의 말투에 자신감이 녹아있었다.
실제로 국내 식품기업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런디코리아이기 때문에 그와 함께한다고 하면 알로하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네, 알겠습니다.”
***
배종연과의 만남을 끝낸 나는 숙소로 돌아왔다.
같이 밥도 먹고 술도 한잔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많은 것을 배우고 친해질 수 있었다.
특히 그가 어떻게 회사를 키웠는지 관한 이야기는 가장 관심이 갔는데 그의 영업비밀이었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약간의 팁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좋았던 일이 또 하나 있었다.
일전에 생각만 했던 식용유와 밀가루등 보관 식품 대량 구매를 그가 도와준다고 했다.
사실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전세계적으로 물류가 원활히 흐르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식용유와 밀가루 등의 식품은 원료 수입에 의존을 많이 하기 때문에 가격이 더 오를 것이고 예상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 대량 구매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상대가 계약을 요구하는 물량이 자신들만으로 소화하기가 힘들어서 고민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우리가 필요한 물량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둘이 힘을 합하면 딱 맞을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거 우리가 같이 가야 할 이유가 늘었군.”
그는 이야기를 듣고 좋아했는데 나도 알로하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서울로 올라와서 류형준도 만나고 배종연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초청회에 온다는 확답도 얻었다.
그래도 요식업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두 사람이었기 때문에 만약 두 사람에게 극찬을 얻을 수 있다면 아직 인터넷에 돌아다니고 있는 안 좋은 여론은 단번에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피곤하네.”
유명한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긴장이 되었는데 숙소로 돌아오니 긴장이 풀리면서 피곤이 몰려왔다.
“쉬어야겠다.”
샤워를 하고 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전화기가 울렸다.
< 고선희 팀장님 >
인사팀 고선희 팀장님의 전화였는데 나에게 전화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어서 나는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여보세요.”
[ 사장님,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
“네, 괜찮습니다.”
[ 일전에 말씀하신 분 찾았습니다. ]
“진짜요? 지금 어디에 계신가요?”
[ 전라북도 무주입니다. ]
***
다음날 나는 서울에서 출발하여 전라북도 무주로 향했다. 만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네비게이션에 무주를 찍고 출발하였는데 생각해보니 무주는 생전 처음 오는 곳이었다.
예전에 대학교 때 친구들과 같이 무주에 있는 스키장에 가자고 이야기만 했을 뿐 실제로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차로 3시간이 넘는 길이었지만 무주로 향하는 나는 기대가 되었다.
예전에 로이스에 사장으로 있던 전상욱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요식업을 선택하고 로이스에서 오래도록 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던 사람이 바로 전상욱이었다.
직접적으로 만난 것은 오래 되지 않지만 직원들은 항상 그가 로이스에 있었던 때를 황금기라고 부를 만큼 좋아했었다.
업무적인 스트레스도 좋고 장사가 잘 되고 직원들도 인정을 많이 받았던 만큼 좋았었는데 강민태와 강훈이 회사로 들어와 경영에 간섭하기 시작하면서 로이스가 변하기 시작했다.
실질적으로 회사를 키운 것은 전상욱이나 다름없었고 이것은 로이스에서 어느 정도 짬이 있는 점장들이라면 모두가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알로하를 프랜차이즈 회사로 성장시키고 내가 직접 경영을 해보니 어려운 부분이 많이 있었다.
직원들이 도와주고 있지만 내가 이 모든 것을 컨트롤 하기에는 경험이나 지식에서 많이 부족했다.
특히 이번 일을 겪으면서 경영에 더 소질이 있는 사람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때 떠오른 사람이 전상욱 사장님이었다.
그가 로이스에서 일했던 것처럼 나를 도와준다면 알로하를 최고의 돈카츠 브랜드로 만들겠다는 나의 꿈도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고선희에게 이야기를 들으니 그는 도시의 생활을 접고 시골로 귀촌을 했다고 말했다.
그와 통화를 하고 찾아뵙겠다고 이야기 했지만 그는 올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로이스를 키웠지만 결국에는 버림을 받았다. 토사구팽 당한 것에 상처를 많이 입었는지 그는 사람들을 만나기를 싫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다.
내가 로이스에서 나와 알로하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관심을 조금 보였고 결국 만남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이미 귀촌을 하고 정착하여 생활하고 있다고 하면 다시 모셔오기가 힘들 것 같았지만 그와 만나서 조언을 얻는 것만으로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나는 바로 무주로 향했다.
무주에 도착을 하고도 산과 산을 넘어 꽤 많이 들어갔다.
시골길을 따라서 자그마한 마을에 들어가고도 조금 더 들어간 후에야 겨우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마당이 있는 자그마한 집이었다.
마당에 주차를 하고 내리자 집에서 누군가 나와 반겨주었는데 바로 전상욱이었다.
예전에 교육을 받을 때나 신년회 등 행사에 본사에서 볼 때면 항상 정장을 입은 모습만 봤었다.
그는 비록 작은 체구였지만 직원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 남다른 에너지를 뿜어냈는데 이렇게 사복을 입은 모습을 보니 예전에 모습이 거의 남아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평범해서 길거리에서 마주쳤다면 몰랐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어제 전화드린 김정훈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그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는데 까맣게 타버린 손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의 손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단순히 귀촌을 한 것이 아니라 농사도 어느 정도 짓고 있는 모양이다.
“예전에 로이스 점장이었다고 했죠?”
“네, 그렇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김정훈 점장이 누구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는 미안하다는 듯이 나에게 말했는데 나는 괜찮다며 웃었다.
로이스 초창기에 나는 그렇게 눈에 띄는 직원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가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제 말씀드렸듯이 로이스 퇴사하고 알로하라고 하는 돈카츠 프랜차이즈 회사를 만들었는데 조언도 듣고 드릴 말씀도 있어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그렇군요. 오느라 힘들지는 않았습니까?”
“조금 힘들었습니다. 서울에서 출발했는데 꽤 멀더군요.”
“원래 무주, 진안, 장수가 전북에서 가장 안쪽이고 산세가 험하고 힘들어 사람들이 접근하기가 힘들었지. 오죽했으면 오기 힘들다고 해서 앞글자만 따가지고 무진장이라고도 부르기도 합니다.”
“그렇군요.”
“힘들게 오느라 고생했을건데 안으로 들어와요. 내가 시원한 오디차 한 잔 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