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0 화
“오, 너무 맛있습니다.”
나는 본점의 매장에서 일하고 있던 이경민을 불러서 그에게도 신메뉴의 맛을 보여줬다.
그는 돈카츠를 먹고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는데 돈카츠 브랜드를 돌아다니면서 오랫동안 일했던 그였지만 확실히 다른 돈카츠와 차이를 느낄 만큼 맛이 있었던 모양이다.
“이거 본점에서 바로 판매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일단 본점에서 판매를 시작하여 사람들의 반응을 볼 생각이었다.
다른 신메뉴와 다르게 수비드 돈카츠는 기계도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조금 신중하게 선택하기 위해서는 본점에서 테스트 판매를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만약에 맛은 괜찮아도 가격이 조금 비싸서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고 하면 시즌 메뉴로 판매를 종료하고 다른 방안을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경민이 나의 의견을 동의하자 나는 본사로 가서 다른 직원들의 의견도 들었다.
다들 나의 의견에 동의해 주었는데 나는 본점에 한정하여 신메뉴를 출시하기로 하고 먼저 조형우에게 정확한 레시피 제작을 주문하였다.
본점에서 직접 조리 및 판매하는 직원들이 어렵지 않게 처음에 수비드 온도 조절을 하는 법부터 자세하게 작성해달라고 말해다.
내가 과정을 살펴보니까 수비드 돈카츠는 조리할 때 신경을 좀 써야 하는 메뉴였다.
그렇다고 다른 메뉴들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고기에 밀가루에 입혀서 튀기는 것뿐만 아니라 수비드 과정에서 진공이 잘 안되었다든지 하면 고기를 전부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렇게 조리에 신경을 많이 쓴 만큼 돈카츠 맛은 확실했다.
류형준이 말했던 아쉬운 부분.
그전에도 광주에서는 최고의 돈카츠로 뽑혔지만 만약에 이 메뉴까지 성공하게 된다면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돈카츠 맛집 타이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메뉴를 판매하기 위해서는 배너 같은 시안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네, 메뉴 개발팀장이랑 상의해서 이미지 컷 촬영 후에 디자인 시안 보여드리겠습니다.”
내가 중얼거리는 말에 정미희가 바로 대답하였다.
이 전에 냉소바 신메뉴 판매로 한 차례 일을 해봤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녀에게 맡기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자, 그럼 다들 각자 분야에서 노력해주세요.”
***
본사에서 새롭게 만든 신메뉴의 판매를 위해 정신이 없을 때 지점에서는 다른 의미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끊임없이 밀려오는 고객들과의 전쟁 말이다.
목요시식회 방영 이후 주말에 매장을 찾아오는 고객들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원래 고객들이 많이 있었던 본점과 뉴월드 광주점과 뉴월드 대전점은 고객들이 엄청나게 많이 몰렸고 화정점이나 부산에 있는 광안점 등 다른 지점과 가맹점에도 사람들이 많이 오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방송을 보고 고객들이 많이 와서 기분이 좋았지만 여수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손님들이 몰리고 기다리는 시간이 늘어나면 컴플레인이나 주문 누락 같은 실수가 발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지점장들에게 직접 연락하여 이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써달라고 이야기했다.
점장들에게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매장이 실제로 얼마나 잘 되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뉴월드광주점으로 향했다.
발렛으로 주차를 맡기고 매장으로 향했는데 우리 매장 앞에 상당히 많은 줄이 있는 것이 보였다.
시간은 오후 2시.
일부러 손님이 좀 적어질 시간에 온 것인데 지금 이 시각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다.
매장으로 가자 하연이랑 한승이가 땀을 흘리면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조금은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때 하연이와 눈이 마주쳤다.
고객을 상대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하연이는 나에게 눈인사했는데 나는 그녀의 인사를 받아주고 조용히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한승이가 나를 보고 놀라서 소리쳤다.
“사장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그냥 바쁘다고 해서 얼마나 바쁜지 보려고 왔어.”
“아침에 오픈할 때부터 손님들이 몰려오고 있어요.”
한승이는 말을 하면서도 열심히 돈카츠를 튀기고 건져내고 있었는데 지친 기색이 보였다. 다른 직원들도 나를 보고 인사를 했는데 다들 얼굴에 피곤함이 가득했다.
“내가 좀 도와줄까?”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보고 있으니 조금은 짠한 마음이 들어서 도와주고 싶었는데 한승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사장님 옷도 갈아입어야 하잖아요. 저희끼리 하겠습니다.”
한승이는 거절을 했는데 조금은 의외였다.
원래 그였으면 너무 힘들다고 먼저 도와달라고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곧 이유를 알 수 있었는데 다른 직원들 때문인 것 같았다.
한승이와 하연이는 알로하 나와 같이 일을 오래 했고 회식도 자주 해서 그런지 친하고 별로 어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직원들은 다르다.
그래도 내가 사장 타이틀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매장에 들어오는 순간 나의 눈치를 많이 보고 있는 것 같았는데 같이 일하면 오히려 나 때문에 능률이 떨어질 것도 같았다.
생각해보면 나도 신입사원도 본사에서 높은 사람들이 매장을 와서 살펴보면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있다.
사소한 재료 손질부터 음식 나가는 것까지 평상시에 하던 일이라도 누군가 지켜보고 있으면 긴장이 된다.
가뜩이나 손님들이 많이 몰려서 정신이 없고 긴장하고 있는데 나까지 나서서 직원들이 부담을 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 차라리 직원들 먹을 것이나 사주자.’
나는 방해가 되지 않게 뒷문을 이용해서 조용히 빠져나왔는데 먹을 것을 사서 조금 있다가 다시 올 생각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단비 만나야겠다.’
지금 기다리는 손님들을 봤을 때 좀 한가해지려면 1시간은 지나야 할 것 같았다. 잠시 시간이 되면 단비의 얼굴을 볼 생각으로 나는 그녀에게 전화했다.
신호음이 가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는데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의 나에게 문자가 왔다.
[ 지금은 회의 중이니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
아마 회의 중이어서 전화를 돌린 모양인데 바쁘게 일하는데 괜히 연락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단비와 연락이 안 되자 조금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혼자 카페에서 좀 기다릴까 하다가 수아가 생각이 났다.
저번에 아파트에서 운동하면서 만난 이후로 한동안 연락을 하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광주점에 온 김에 그녀를 보고 가면 좋을 것 같아서 나는 그녀의 사무실로 향했다.
커피를 사서 그녀가 있는 9층 지점장실로 향했는데 그녀가 사무실에 없을 수도 있었지만 연락은 하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방문해서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할 생각이었는데 9층에 도착하고 사무실로 들어가려고 할 때 누군가 나왔다.
나는 그 사람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사람도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김 점장.”
나를 보고 놀란 사람은 바로 강훈이었는데 자기 직원도 아닌데 여전히 나를 김 점장이라고 부르는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이제 부하직원 아니니까 호칭 제대로 해줄래?”
그래도 예전에는 그에게 존댓말을 했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 그래? 이제는 김 사장님이라고 불러줄까?”
여전히 재수가 없는 말투였는데 나는 녀석을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왜 이곳에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을 스쳐 지나가 지점장실로 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녀석이 나의 팔을 붙잡았다.
“사람이 말하면 대답해야지.”
내가 무시하자 녀석은 화가 난 말투였는데 팔을 잡혀서 그런지 나도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거 놔줄래?”
나와 강훈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신경전을 했는데 강훈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너는 예전부터 그 눈이 마음에 안 들었어. 가진 거는 쥐뿔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센 그 눈 말이야.”
“그래? 이제는 가진 게 좀 생긴 것 같은데? 너희 여기서 우리한테 밀렸잖아.”
아직 로이스에게 비교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알로하는 점점 사업을 넓히면서 커지고 있다.
더군다나 이곳은 뉴월드 광주점.
로이스를 밀어내고 우리가 입점한 만큼 여기서는 큰 소리를 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건!”
나의 말에 강훈은 딱히 반박하지 못했는데 나는 팔을 붙잡고 있는 그의 손을 밀쳐 내었다.
“로이스 가맹사업 보니까 우리 견제하느라 가맹비랑 로얄티 다 면제해주고 있던데 우리가 따라잡을까 봐 걱정되나 보다?”
저번에 상현이에게 로이스에 관한 가맹점 입점 전략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이 많았다.
가맹비도 받지 않았고 로얄티도 2년 면제해주고 있는 등 가맹점 확보에 열의를 올리고 있는 것 같았는데 솔직히 말해서 나는 별로 좋게 보지는 않았다.
옛날이었으면 이런 전략이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경영권 분쟁을 하지 않고 프레쉬푸드와 같은 계열사였을 때는 물류비 등 아낄 수 있는 자금이 많이 있으니 몇 개를 면제를 해주어도 수익이 나겠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걱정은 네가 해야지. 몇 번 요행으로 성공한 것 같은데 경영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너는 여기까지가 한계야. 제발 주제 파악하고 지금 벌고 있는 돈이나 지킬 생각이나 해. 안 그러면 곧 망할 테니까.”
그는 내가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다.
“망할까 봐 걱정해줘서 고마운데 경영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것은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맨날 술 먹고 여자만 만나러 다녔잖아. 아직도 그러고 다니는 거 아니지?”
“뭐라고?”
“너나 좀 주제 파악하고 회사 지킬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우리한테 추월당하기 전에 말이야.”
나는 그의 속을 긇었는데 강훈이 분을 참지 못하고 나의 멱살을 잡았다. 곧 있으면 한 대 칠 기세였는데 지점장실의 문이 열리면서 정수아가 나왔다.
“무슨 짓이에요!”
그녀는 나의 멱살을 잡고 있는 강훈을 보고 소리쳤는데 그녀의 말에 강훈이 슬그머니 손을 놓았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사람이 조금 무례하게 해서 예의를 좀 가르쳐 주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소란 피우지 말고 돌아가세요. 그는 나의 친구입니다.”
“친구요?”
수아의 말에 강훈은 조금 놀라는 눈치였는데 일단은 물러서기로 한 것인지 정중히 인사를 했다.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말씀드린 제안은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십시오.”
“네, 생각해보고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껏 예의를 갖춘 강훈의 모습이 조금은 어색했는데 그는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강훈이 사라지자 수아가 나를 보면서 물었다.
“괜찮아?”
멱살을 잡힌 나를 걱정하는 말투였는데 딱히 다친 곳은 없었다.
“어, 괜찮아.”
“이야기 들어보니까 아는 사이 같던데 로이스에서 만났어?”
수아는 우리의 대화를 안에서 들은 모양이다. 예전에 그녀와 이야기하면서 로이스에 직원으로 다녔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녀가 그것이 떠올리고 나에게 물었는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예전에 내 상사였어.”
“그래? 그런데 왜 그렇게 사이가 안 좋아?”
“강훈이 나를 싫어해서 엄청나게 괴롭혔거든 그거 때문에 로이스에서 퇴사하고 알로하 개업했어.”
“그랬구나…”
나의 말에 수아가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로이스에게 다녔다고만 했지 일을 그만둔 이유를 그녀에게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강훈이 너한테는 무슨 제안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