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9 화
“그러니까 워터에이징으로 숙성한 안심을 수비드로 다시 조리하자 이 말이지?”
“네, 원래는 매장에서 고기를 숙성하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규원 축산에서 워터에이징 숙성고기를 판매한다고 하니까 그거를 일단 사용해보려고요.”
여수 여행을 끝나고 매장으로 돌아온 나는 우리 가게에서 판매하는 히레카츠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조형우와 논의하였다.
류형준에게 다양한 숙성 방법에 대해서 들었다.
실제로 여수에서 방문한 하마루 돈카츠는 숙성 냉장고에서 100시간 숙성한 고기를 사용했는데 나는 일단은 현실적인 방향에서 생각하기로 했다.
고기를 100시간 동안 숙성시키는 것은 상당히 고된 작업이다.
우리가 맛있는 돈카츠를 추구하기는 하지만 프랜차이즈 회사다.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 역시도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수비드를 하면 육즙이 많이 빠지는 걸로 알고 있는데 괜찮을까?”
조형우가 나에게 걱정된다는 듯이 말했는데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제가 먹어 봤는데 육즙의 손실이 크게 없었습니다.”
하마루 돈카츠를 다녀와서 수비드를 하면 고기가 부드러워지는데 왜 숙성까지 했을까로 고민을 했는데 다 육즙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다.
고기를 숙성하면 육즙의 풍미가 고기 안에 농축이 되게 된다.
그래서 오랫동안 조리를 하는 수비드를 하더라도 육즙의 손실을 크게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이것을 설명하였는데 조형우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워터에이징한 고기는 규원에서 받는다고 하더라도 수비드를 하려면 기계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수비드를 하기 위해서는 고기를 일정한 온도의 물로 계속해서 조리를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온도조절에 실패하면 오히려 고기가 더 맛이 없어질 수도 있는데 정확한 온도 조절을 위해서 수비드 전용 기계가 필요하다.
“안 그래도 기계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벌써? 빠르군.”
여수에서 광주로 오자마자 인터넷으로 수비드 기계를 주문하였다. 아마 내일이면 매장에 도착할 것이다.
“네, 팀장님은 수비드에 들어갈 시즈닝을 연구 좀 해주십시오.”
수비드의 단점을 찾아보았는데 고기를 진공된 상태로 오랫동안 조리를 하다 보니 고기가 익으면서 나는 냄새가 배어들어 가 잡내가 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막기 위해서 돼지고기에 여러 가지 시즈닝을 한 후에 함께 조리했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렇군. 알겠어. 일단은 그럼 시즈닝에 많이 사용하는 향신료들로 테스트 해볼게.”
나보다 요리에 대해서 훨씬 정통한 그였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믿고 맡기고 나도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다른 매장에서도 다 수비드 기계를 구매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상현이가 나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마도 그래야겠지?”
“그래? 이거 기계 비싼 거 아니야?”
내가 구매하기 위해서 찾아봤을 때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물론 이것은 로또와 코인 대박이 터진 나에게 해당하는 기준이고 다른 가게들은 다를 수 있었는데 그것들을 감안해서 너무 큰 기계는 구입하지 않을 생각이다.
“아니, 일단은 너무 큰 거 말고 적당한 크기로 구매해서 한정 판매로 가려고.”
“한정 판매?”
여수에서도 수비드 돈카츠를 한정으로 판매했다.
아무래도 조리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이 있기 때문에 재료가 다 소진이 되면 판매를 중단하는 것 같았다.
나도 일단은 같은 방식으로 판매를 시작하고 이후에는 매장의 재량에 맡길 생각이다.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수비드하는 고기의 양을 늘리면 된다. 그러면 더욱 부피가 큰 고기를 사야 하는데 가맹점에게는 이것에 대해 어느 정도 자율성을 줄 생각이다.
“그럼 기존에 히레카츠를 아예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두 개 모두 판매하는 거네?”
“일단은 그렇지.”
동시에 판매한다.
수비드는 고기에 더 많은 재료와 정성이 들어가는 만큼 단가를 올릴 수밖에 없다.
아마 프리미엄 돈카츠 느낌으로 우리 가게에서 제일 비싼 메뉴가 될 것 같은데 그동안 가성비 좋은 가게로 이름을 떨친 우리 가게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기존의 히레카츠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이번 주 목요일 날 방송 나가니까 그 후에 이거를 신메뉴로 준비해서 내보내면 반응 괜찮을 것 같은데?”
생각해보니 이번 주가 목요시식회 방송이 나가는 날이었다.
방송에 어떤 식으로 나갈지는 모르겠지만 방송이 나가면 사람들의 관심이 생기고 매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 분명했다.
그때 맞춰서 이 수비드 돈카츠를 선보인다면 맛있는 돈카츠 전문점으로 이름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서둘러야겠네.”
***
21년 5월 27일 목요일
기다리던 목요시식회가 드디어 방영되었다. 방송은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저번에 와서 먹어보고 맛있었다고 했던 PD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는지 방송에서 알로하는 너무 맛있게 표현이 되었다.
출연진들도 다들 맛있다고 호평을 보냈는데 중간에 나도 같이 들었던 류형준의 아쉽다는 의견이 방송에 나오기는 했지만 방송에서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았다.
“오빠, 이거 봐봐.”
- 여기 너무 맛있을 것 같아요.
- 가보고 싶은데 아쉽게 서울에는 매장이 없는 것 같아요ㅜ
- 대전에 매장 하나 있는데 들어가려면 20분 기다려야 함 ㅜ
- 오? 그래요 엄청 맛집인가 보네요
같이 방송을 하는 것을 보고 있던 단비가 나에게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주었다.
요즘에는 포털사이트에서 실시간으로 댓글처럼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대체로 호의적인 반응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우와 이런 것도 있었네.”
“어, 나도 최근에 알았어. 그런데 사람들 반응이 너무 좋은데?”
“어, 방송에 잘 나온 것 같아.”
“내일부터 손님 엄청 많이 오는 거 아니야?”
내일은 금요일. 평일이라 잘 모르겠지만 확실히 이번 주말에는 사람들이 많이 올 것 같았다.
깨톡!
핸드폰의 알림이 울려서 살펴보니 직원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방송을 봤다는 글들이 많이 있었다.
선우 : 사장님! 축하드려요
선영 : 알로하 더 대박 나는 거 아니에요?
이하연 : 이번 주도 파이팅 다들 화이팅!
한승 : 사장님 너무 힘듭니다 ㅜㅜ
알로하 초창기부터 일했던 직원들에게 스케줄을 공지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단톡방이었는데 지금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폭파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
정훈 : 다들 좀만 더 고생하자.
그 외에도 가맹점장님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도 있었는데 그들도 방송을 하는 것을 보고 있었는지 이번 달 매출이 기대된다는 반응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활발한 곳은 가족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이었다.
은정이와 엄마에게도 방송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렸는데 다들 방송을 시청했는지 계속해서 알로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엄마 : 우리 아들 가게가 서울 텔레비전에도 다 나오고 엄마 기분이 너무 좋다.
예전에 지방방송이기는 하지만 돈카츠 최강자전에 출연을 했을 때도 부모님은 좋아하셨다.
동네 사람들에게 방송에 나왔다고 자랑했었는데 아마 이번에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어버이날에 단비와 같이 부모님을 만나려고 했는데 일이 바빠서 찾아가질 못했다.
용돈을 많이 드리기는 했지만 조금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이렇게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았다.
***
“어제 방송 반응이 좋던데?”
다음날 출근을 하자 조형우가 나에게 말했다.
같이 출장을 가서 조리까지 하고 현장 반응을 지켜보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또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었다.
그것 때문에 그도 신경을 쓴 모양인데 다행히 시청자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네, 저도 조금 걱정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네요.”
“내가 그동안 이것저것 만들어 봤거든 개인적으로 이게 제일 괜찮은 것 같아서 보여주려고.”
나는 그와 같이 본점의 주방에 있었는데 수비드 기계가 들어오고 그는 여기서 며칠 동안 시즈닝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오늘 나에게 음식을 선보인다고 했는데 어떤 맛이 나올지 궁금했다.
그는 진공 포장되어 수비드 된 고기를 나에게 보여주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적당히 잘 익은 것 같았다.
“지금 여기에 들어간 재료는 소금과 후추 그리고 로즈마리랑 라임 그리고 올리유를 좀 집어넣었어.”
생각보다 그렇게 많은 재료가 들어가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시즈닝에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재료만 들어갔는데 나는 궁금하여 이유를 물었다.
“생각보다 많이 안 들어가네요?”
“어, 사실 며칠 동안 다른 향신료나 시즈닝 가루 넣어서 테스트를 해봤거든?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돈카츠가 아니라 튀겨놓은 돼지고기 스테이크 느낌이 들더라고.”
그의 말에 나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우리 가게에서는 그 전에 소금과 후추가 들어가는 기본 시즈닝 밖에 하지 않았다. 너무과하면 향신료에 집중이 되어 돈카츠 맛이 줄어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군요.”
“그래서 딱 필요한 기본 재료만 했는데 이것도 나쁘지 않아.”
그는 안심 한 덩어리를 꺼내서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잘린 단면이 살짝 보였는데 분홍색 빛이 보이는 것이 수비드는 잘 된 것 같았다.
그는 돼지고기에 밀가루와 빵가루를 묻힌 다음에 튀겨냈는데 2분 정도만 살짝 튀겨서 건져 내었다.
평소 우리가 튀기는 시간에 절반 정도가 걸린 것인데 원래 고기가 어느 정도 익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조린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기름을 뺀 후 그는 돈카츠를 잘랐는데 돈카츠를 가지런히 정돈하자 내가 여수에서 본 그 돈카츠와 비슷한 모양이 나왔다.
“모양은 합격입니다.”
밝은색을 띠고 있는 빵가루 거기에 분홍색 소시지처럼 적당히 익은 돼지고기 육즙이 사이사이 배어들어 가고 있었는데 맛있을 것 같았다.
“먹어 보겠습니다.”
나는 젓가락을 들어서 돈카츠를 먹었다.
바삭
빵가루 씹히는 소리가 나의 귀에 울려 퍼졌는데 그것과는 별개로 돼지고기는 스르르 베어졌다.
‘이거다.’
먹는 순간 느낌이 왔다. 하마루에서 먹었던 돈카츠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는데 엄청 부드러웠다.
“어때?”
“너무 맛있습니다.”
하마루와 숙성방법에 차이가 있었다. 어느 정도 부드러움의 차이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아니. 부드러움은 비슷했지만 거기서 먹었다는 것보다 맛있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시즈닝에서 차이가 난 것 같았다.
“그래, 다행이네.”
며칠 동안 수비드 테스트한다고 고생을 한 그였다. 내가 맛있다고 하자 안심하는 표정을 지었다.
“네, 엄청 맛있어요. 여수에서 먹었던 돈카츠보다 맛있는데 시즈닝 차이가 확실히 있는 것 같습니다.”
나는 그를 칭찬해 주었는데 그가 갑자기 미소를 지었다.
“사실 그냥 기본 재료만 사용하는 건 조금 밋밋할 것 같아서 하나를 바꿔봤어.”
“바꾸셨다고요? 어떤 거를요?”
“소금.”
“아, 소금을 다른 거 쓰셨군요.”
“어, 원래 우리 매장에서는 한주소금 썼잖아. 꽃소금으로 하니까 훨씬 간이 잘 배 들어가서 맛있더라고.”
한주소금은 본소금이라도 하는데 꽃소금보다 저렴하여 식당에서 많이 사용한다.
저렴한 대신 짠맛이 강하고 잘 녹지 않는 단점이 있는데 그래서 소금 시즈닝을 할 때 너무 많이 뿌릴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짠맛이 약한 꽃소금으로 고기에 충분히 간에 배도록 뿌린 것 같은데 덕분에 맛이 한층 살아난 것 같다.
"아주 훌륭합니다. 바로 판매해도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