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0 화
나는 냉장고에 준비해 온 물건들을 차근차근 정리하기 시작했다.
달걀, 우유, 밀가루, 빵가루, 고기는 물론 양배추까지 우리 가게에서 사용하는 기본 식재료들인데 오늘은 특별히 더 신경이 쓰였다.
목요미식회 스튜디오 촬영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시식은 3시간 후에 있을 예정이니까 그때까지 좀 쉬고 계세요.”
“네, 알겠습니다.”
조연출은 촬영 일정을 나에게 알려주고 좀 쉬라고 이야기했는데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정규방송 첫 출연.
그 전에 출연한 리얼맛집탐방의 경우에는 광주와 전라도에만 방영되는 지역방송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전국에 이름을 알리는 것이었기 때문에 신경이 쓰였는데 그것은 조형우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오늘 만들어야 할 양은 7인분으로 그렇게 많지는 않다.
나와 조형우만 있어도 될 것 같아서 둘이서 왔는데 그도 긴장이 되는지 계속해서 두리번 거렸다.
“일단 한 번 테스트로 만들어 볼까?”
“네, 그게 좋겠습니다.”
재료들의 정리 정돈을 다 끝낸 우리는 사전 테스트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조리를 시작했다.
조형우는 먼저 고기를 꺼내서 손질했다.
규원 축산에서 어느 정도 손질을 해서 보내 준 고기지만 그래도 작업을 한 번 더하면 훨씬 부드러운 고기를 만들 수 있다.
조형우는 완전히 처리되지 않은 비계들을 제거하고 연육기로 고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탕탕탕
그 소리에 맞춰 나는 돈카츠를 튀길 준비를 하였다.
계란 15개를 깬 다음 스테인리스볼에 담고 휘핑기를 이용해서 섞기 시작했다. 빙글빙글 돌아가면서 노른자와 흰자가 합쳐졌는데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노란 계란물이 만들어졌다.
거기에 500ml의 우유를 부어서 다시 희석을 시작하였다.
우유가 들어가서 그런지 색깔이 연해졌는데 뚜껑을 닫아서 보관을 해두었다.
‘다음은 밀가루하고 빵가루…’
밀가루를 채에 한번 걸려서 뭉쳐진 부분이 없게 만들었는데 그냥 사용하면 동그랗게 뭉쳐진 밀가루가 고객의 입안에서 터져서 조리가 아예 안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곱게 걸러진 밀가루를 받드에 보관한 후 이번에는 냉장고에서 빵가루를 꺼냈다.
우리 가게에서 사용하는 빵가루는 습식빵가루다.
빵가루는 습식과 건식으로 나뉘는데 습식은 입자가 굵어 튀겼을 때 바삭함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
대체로 일본식 돈카츠는 이 습식빵가루를 많이 사용하는데 냉장고에서 막 꺼내면 습기 때문에 서로 뭉쳐져 있어서 사용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빵가루를 곱게 펼쳐서 숙성을 시켜주면 부드러워지는데 이런 상태로 튀겨주면 서릿발 같이 빳빳하게 서 있는 빵가루 모양을 만들 수 있다.
돈카츠는 이렇게 튀겨야지 완성이 되었을 때 모양도 예쁘고 기름도 잘 빠지기 때문에 빵가루 관리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고기 다 됐다.”
내가 돈카츠 튀길 준비를 다 하자.
조형우가 손질된 고기를 나에게 주었다. 나는 고기를 살펴보았는데 상태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붉은 빛을 띄고 있는 고기가 건드리면 말랑말랑 움직였는데 먹으면 엄청 부드러울 것 같았다.
“나는 그럼 이제 양배추 준비할게.”
고기를 손질을 끝낸 그는 이제 야채를 정리하러 갔는데 나는 그에게 받은 고기를 튀길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체다부터 싸야겠지.”
오늘 조리할 요리는 히레카츠와 체다모짜카츠이다.
히레카츠는 안심을 그대로 조리하면 되지만 체다모짜카츠는 미리 고기와 치즈를 같이 싸두어야 한다.
고기로 치즈를 단단히 감싸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튀길 때 치즈가 밖으로 새어 나와 텅 비어버리는 대참사를 맞이하게 된다.
나는 치즈를 고기에 정성스럽게 감싼 후 받드에 차곡차곡 감싸기 시작했다.
네모난 모양으로 고기가 깔끔하게 정돈되었는데 차분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긴장되었던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 지는 것 같았다.
체다치즈카츠 준비를 마친 나는 냉장고에 그대로 넣어 두었고 이제는 안심을 가지고 와 밀가룰 묻혔다.
고기에 밀가루를 골고루 묻히고 털어낸 다음 계란물에 담가서 휘휘 저었는데 계란물이 골고루 고기에 묻은 것을 확인한 나는 곱게 편 빵가루 위에 살포시 올려 놓았다.
빵가루를 산처럼 만들어 고기 위에 올리고 나는 두 손을 모아서 지긋이 고기를 누르기 시작했다.
돈카츠를 만들 때 이 눌러주는 과정 역시 중요하다.
너무 세게 누르면 돈카츠가 납작하게 되어 버려서 기껏 연육기로 부드럽게 만든 고기가 다시 단단해진다.
그렇다고 너무 약하게 누르면 고기에 빵가루가 잘 달라 붙지 않아서 빵가루 듬성듬성 보이게 되고 튀겼을 때 모양이 안 예쁘진다.
적당한 힘조절이 관건인데 그동안 수없이 많은 돈카츠를 튀겨온 나에게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하나, 둘, 셋.’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 후 나는 기름에 넣을 준비를 했다.
‘맞다, 온도!’
나는 튀기기 전에 튀김기의 온도를 확인했다.
돈카츠는 튀김 요리이다. 기름의 종류와 튀기는 온도 역시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 가게 레시피북에는 175도로 맞추라고 했는데 내가 생각한 가장 적당한 튀김 온도였다.
보통 가게들이 170도에서 180도 사이에서 조리를 하기는 하는데 온도가 너무 높으면 조리 시간을 앞당길 수 있는 대신에 겉면이 빨리 타버려서 색깔이 너무 진하게 나오게 된다.
반면에 온도가 너무 낮으면 오래 익혀야 하는데 그러면 고기 수축이 일어나면서 빵가루와 고기가 분리되게 된다.
가끔 빵가루가 돈카츠에서 벗겨지는 경우가 있는데 바로 튀기기를 잘못해서 그런 경우가 많다.
오랜 나의 경험상 175도가 적당했는데 안심은 4분 정도면 튀기면 적당했다.
나는 튀김기에 돈카츠를 넣고 4분으로 맞춘 타이머를 눌렀다.
시간이 흐르고 4분이 되자 돈카츠가 연한 갈색으로 변했는데 나는 돈카츠를 건져서 기름망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다시 3분의 타이머를 설정하였다.
4분 조리 후 3분 기다림.
돈카츠를 건진 후 기름이 빠지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 과정이 없이 바로 고객에게 나가면 기름기가 뚝뚝 떨어지는 돈카츠를 먹게 되는데 그러면 기름 맛이 너무 많이 나서 고기의 육즙을 즐길 수 없고 돈카츠의 바삭함도 떨어지게 된다.
3분을 기다린 후 나는 도마 위에 돈카츠를 올려 놓고 썰기 시작했다.
탕탕탕
경쾌한 소리와 함께 돈카츠가 적당한 크기로 썰어져 나갔는데 안을 살펴보니 딱 좋게 익었다.
“어때?”
야채 작업을 하고 있던 조형우가 돈카츠 써는 소리를 듣고 나에게 물었다.
“드셔보세요.”
나는 가게에서 가져온 돈카츠 소스를 그릇에 덜어서 그에게 권유했는데 그는 젓가락을 들어서 한입 베어 물었다.
“오호, 뜨겁다.”
예열을 하기는 했지만 튀겨낸지 얼마 안 된 돈카츠여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났는데 그의 입에서도 연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돈카츠를 먹는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의 반응에 나도 맛이 궁금하여 먹어보았는데 그가 왜 웃는지 알 수 있었다.
많은 요리를 조리하는 매장과는 다르게 집중해서 하나의 메뉴만 만들었다. 그 덕분인지 내가 만든 돈카츠 중에서 역대급으로 맛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의 퀄리티가 나왔다.
‘이 정도면 완벽해.’
***
세시간이 지난 후 촬영이 시작되고 나와 조형우가 만든 음식들이 하나씩 세팅이 되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최선을 다해서 준비를 했고 남은 것은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사장님!”
나와 조형우는 촬영장 한 켠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선우가 서 있었다.
선우는 우리와 다르게 출연자 대기실에 있었는데 아침에 도착해서 잠깐 인사를 하기는 했었다.
“어, 선우야.”
“오랜만에 사장님 돈카츠 먹겠네요.”
그는 약간 들뜬 기분인 것 같았는데 원래 우리 가게 음식을 많이 좋아했다.
“그래, 오늘은 특별히 나의 모든 노하우를 담아서 요리했다. 네가 좋게 좀 평가해줘.”
“걱정하지 마세요. 사장님 돈카츠 맛있는 거는 제가 제일 잘 아는 걸요.”
요리에 자신은 있었지만 내가 만든 음식이 그들의 입에는 안 맞을 수도 있었는데 일단 한 명은 내 편을 들어주고 있으니 든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촬영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들리자 선우가 나에게 인사를 하고 무대 위로 올라갔다.
나는 뒤 편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출연진들의 모습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모든 출연진이 테이블에 앉자 준비된 음식들을 먹기 시작했는데 어떤 평가를 해줄지 심장이 떨리기 시작했다.
***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여기가 장선우 씨가 아르바이트로 일했던 곳이라고 하던데 맞을까요?”
메인 MC인 전용호의 질문에 장선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강철왕후 촬영하기 전에 이 곳에서 알바를 했었습니다.”
“알바를 했으면 많이 드셔 보셨을 것 같은데요?”
“네, 거의 매일 점심을 돈카츠로 먹었죠. 그런데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을 만큼 진짜 맛있습니다.”
“그렇군요. 다른 곳과 다른 이 집 만의 장점을 하나 뽑아주시면 어떤 게 있을까요?”
“어, 저 개인적으로 고기가 두툼해서 좋아합니다. 제가 많이 먹는 편이라 다른 집에 돈카츠를 먹으면 항상 양이 부족했는데 여기서는 1인분도 푸짐하게 많이 주시거든요.”
“그렇군요. 한 눈에 보기에도 양이 많아 보이네요. 양배추도 많이 주시고…”
전용호의 말에 다른 패널로 나온 지연희가 말했다.
“저도 이렇게 양배추 많이 주는 가게는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그러게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데 양배추 비린내가 별로 안 나네요. 개인적으로 그 냄새 때문에 양배추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여기서는 그것을 느낄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패널이 양배추에 관해서 이야기 하자 선우가 이야기를 보탰다.
“아, 그것은 양배추를 따로 물로 세척을 해서 그럴 겁니다. 저도 알로하에서 일할 때 사장님이 강조하셨던 부분인데 양배추를 썰고 나서 물로 한 번 세척을 해주면 비린내를 없앨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렇군요. 이거 오늘은 현장에서 직접 일했던 분이 나오셔서 궁금증이 바로바로 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럼 이제 맛을 볼까요?”
전용호의 말에 다들 젓가락을 들어서 돈카츠를 먹기 시작했다.
“음…먹기 적당한 크기로 한 입 씩 썰어주신 것 너무 좋은 것 같아요.”
출연진들은 각자 돈카츠를 먹으면서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평소 일식 돈카츠 소스는 짠 맛이 강하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이 소스는 좀 달달한 맛이 나네요. 저한테는 딱 맞는 것 같아요.”
“이 치즈카츠는 먹기 너무 아까운 것 같아요. 아까 사진을 찍어둘 걸 그랬습니다.”
장선우는 출연진들의 반응을 조용히 살펴보았는데 대체로 좋은 평가들이 많이 있었다.
자신에게 큰 도움을 준 사장님이었다.
이왕 출연하는 거 맛집으로 이름을 알리게 도움을 주고 싶었는데 좋은 이야기들을 해주자 자신도 기분이 좋았다.
정식으로 데뷔를 하고 나서 감독님들 또는 다른 배우들과 맛집으로 알려진 가게를 많이 갔었는데 사장님의 돈카츠는 어느 곳에도 꿀리지 않을 만큼 맛이 있었다.
출연진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때 전용호가 누군가를 쳐다보고 말했다.
“류형준 씨는 어떠세요?”
류형준. 맛 컬럼리스트 중에 가장 잘 나간다고 이름을 알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다들 패널들과 다르게 항상 촌철살인과 같은 멘트로 음식에 있어서 냉정한 평가를 하기로 유명했는데 그는 맛집 중에서도 맛집을 가려낸다고 알려져 있었다.
전용호의 물음에 류형준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손수건으로 입을 닦더니 말했다.
“저는 개인적으로 좀 아쉬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