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8 화
알바생이 다급한 목소리로 이경민에게 한 이야기였는데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그런지 촬영중이었던 우리 모두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하필 지금…’
매장에서 이런 상황이야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방송국 사람들이 보고 있는데 조금은 난감했다.
나는 얼른 주방에서 나와 사태를 파악했다.
알바생이 들고 있는 접시에는 돈카츠가 펼쳐져 있었는데 다행히 큰 일은 아니었다.
돼지고기 속에는 미오글로빈이라는 세포가 들어있는데 신선한 고기일수록 이 세포가 많이 분포하여 고기가 약간 보랏빛이나 적색으로 나타난다.
이 부위를 기름에 튀겨서 익히면 밝은 적색으로 보이는데 충분히 잘 익은 것이지만 고객들 입장에서는 덜 익었다고 느낄 수도 있었다.
이경민이 이것을 알바생에게 설명을 해주었는데 나는 알바생을 붙잡고 추가로 이야기를 해주었다.
“고객님에게 안 익은 거 아니라고 설명드리고 그래도 혹시나 찝찝하면 다시 튀겨드린다고 말씀드려.”
“네, 사장님.”
분명히 먹어도 큰 문제가 없는 음식이지만 안 익은 돼지고기를 먹으면 큰일이 난다는 인식이 강하다.
고객이 불안한 느낌이 있다면 괜히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보다 다시 조리해서 드리면 된다.
돈카츠 기름을 빼는 예열의 단계보다 튀기는 시간을 좀 더 길게 튀겨내면 되는데 그럼 부드러움은 감소하고 기름맛이 조금 강해지겠지만 밝은 적색 부분이 없어져 고객 입장에서 안심하고 고기를 먹을 수 있다.
“네, 알겠습니다.”
“아니다. 점장님이 가서 설명해 드리세요.”
알바생이 알겠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경민이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직접가서 고객에게 친절히 설명을 해주었고 고객은 먹어도 괜찮다고 하면 그냥 먹겠다고 하면서 다행히 상황은 쉽게 마무리가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내가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자 담당 PD가 궁금했는지 나에게 물었고 나는 그에게도 설명을 해주었다.
마침 튀겨낸 고기 중 하나가 비슷한 현상을 보이고 있어서 설명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내가 설명을 해주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가끔씩 돈카츠 전문점 가면 이런 경우 있었는데 그게 신선해서 그런 거였군요.”
“네, 냉동육이나 신선하지 않은 고기에서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음에는 그런 일 있으면 안심하고 먹어도 되겠습니다.”
작은 헤프닝이 있었지만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촬영된 화면을 나에게도 보여주었는데 아주 만족스러웠다.
방송국 카메라로 찍은 우리 가게 메뉴는 더욱 맛있어 보였고 편집만 잘하면 방송 후에 시청자 반응도 좋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PD가 돈카츠를 좋게 평가했다.
“저희가 그동안 돈카츠 메뉴는 몇 개 촬영을 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여기가 가장 맛있는 것 같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어떻게 보면 극찬이었는데 나는 기분이 좋았다.
“사실 리얼맛집탐방의 장 PD가 제 대학교 후배입니다.”
어떻게 보면 알로하가 성장하는데 큰 도움을 준 장민웅 PD가 그의 후배였다니 어쩐지 처음부터 호의가 느껴졌다.
“그러셨군요. 전혀 몰랐습니다.”
“대학교 때 같이 스터디 하면서 아이디어 공유를 많이 했죠. 장 PD가 맛있다고 극찬해서 저희 프로그램에도 꼭 한 번 모시고 싶었습니다.”
“장 PD님이 좋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먹어보니 확실히 다른 가게들과 차이가 있군요.”
“제가 돈카츠에는 조금 진심이어서 그동안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예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생각보다 돈카츠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 가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도 있는데 바로 돈카츠에 진심이라는 이야기다.
우리 가게도 너튜브나 SNS에 보면 고객들이 사장님이 돈카츠에 진심인 남자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맞는 말이다.
돈카츠로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진심을 다해서 연구하고 발전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결과로 고객들에게 좋은 호응을 얻고 있고 장사도 잘 되고 있었다.
이번에 촬영하는 목요미식회 방송도 잘 되어서 전국에 돈카츠를 좋아하는 고객들에게 나의 정성이 잘 전달 되었으면 좋겠다.
***
“고생하셨습니다.”
거의 3시간이 넘게 진행된 촬영이 끝이 났다. 나중에 추가로 필요한 부분을 더 촬영할 수 있다고 이야기 했는데 일단은 큰 고비는 넘긴 것이나 다름없었다.
“네, 고생하셨습니다. PD님.”
“나중에 스튜디오 촬영 진행하기 전에 한번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패널들을 데리고 하는 스튜디오 촬영이 남았는데 방송국으로 가서 직접 조리를 한다고 했다.
스튜디오 촬영 일자는 다음 주로 잡혔는데 오랜만에 서울에 또 가야 할 것 같다.
그렇게 촬영팀이 떠나가고 북적북적했던 인원이 빠지자 매장이 텅 빈 느낌도 들었는데 저녁 장사를 위해서는 빠르게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럼 마무리 부탁하겠습니다.”
나는 이경민에게 매장 정리를 부탁하고 본사로 올라가려고 했는데 한 통의 전화를 받을 수 있었다.
“네, 점장님.”
[ 사장님, 안녕하십니까! ]
전화의 주인공은 광안점을 관리하고 있는 양혜원 점장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평소에 매장 관리를 잘하고 있어서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연락을 잘 하지 않는 그녀였는데 나는 무슨일이 있나 걱정이 되었다.
[ 아, 일전에 저에게 처음 가맹점 제안을 하셨을 때 만났던 점장들 있지 않습니까? ]
“네, 그 펜션에서 같이 이야기했던 분들 말이죠?”
[ 네, 가맹점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는데 혹시 가능할까요? ]
일전에는 내가 권유를 했는데 2명만 받아들였다.
“그때 안 하신다고 하셨지 않나요?”
[ 네, 그랬었는데…생각이 좀 바뀐 모양이에요. ]
하긴 광안점은 물론 창원점도 오픈 이후에 매출이 점점 오르고 있다.
처음에는 불안해서 도전하지 못했지만 그들을 통해서 장사가 잘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욕심을 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부산에 매장을 늘릴 생각이었고 로이스에서 점장까지 쌓은 그들의 경험을 높게 쳐주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가맹점주들도 경험과 자본을 가지고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부산에 가맹점을 더 늘릴 생각은 있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사정이 달라져서 저 혼자 결정할 수는 없고 저희 홈페이지에 있는 가맹점 창구를 통해서 지원하라고 말씀해주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나의 말에 그녀가 조금 아쉽다는 말투였다. 하긴 예전에 보니 다들 친하게 지냈던 것 같은데 도움을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체계가 잡혔으니 거기에 있는 룰을 지켜야 한다.
그때 갑자기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혹시 가맹점 지원하는 사람 중에 조우영 씨도 있나요?”
조우영.
예전에 부산에서 나의 뒷담화를 한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물었다.
“우영이는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지원하지 않았다니 그래도 양심은 있는 것 같았는데 양혜원이 조용히 나에게 말했다.
“대신 저희 직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연락이 한 번 왔습니다.”
“직원이요?”
어이가 없었다. 내 욕을 할 때는 언제가 우리 회사에 지원을 한단 말인가.
“네, 우영이가 관리하던 매장이 저번 달에 폐점을 했습니다. 경력 살려서 직원으로 일할 수 있는지 연락이 왔었는데 저도 그때 일이 생각나서 안 될 거라고 이야기는 했습니다.”
원래 로이스는 대부분의 매장이 직영점이었다.
장사가 잘될 때는 수익의 대부분을 본사가 가져가니 큰 돈을 벌 수 있었지만 코로나로 인해서 전국에 모든 지역에 매출이 급격이 떨어졌다.
장사가 잘 되는 매장을 제외한 다른 매장들을 정리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조우영의 매장이 거기에 포함 된 모양이다.
“잘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드릴 말씀이 있었습니다.”
“뭐죠?”
“혹시 대구나 부산 쪽에 직영점 더 내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직영점이요?”
“네, 로이스에서 업장 폐점하고 실업급여 받고 있는 친구들 중에 괜찮은 아이들을 좀 알고 있습니다. 대구하고 부산에 살고 있는 친구들인데 혹시 직영점 여실 생각 있으시면 제가 직원으로 꼬시겠습니다.”
“오. 안 그래도 직영점을 더 늘릴 생각이었습니다.”
일단은 광주에 하나 더 늘리고 다른 광역시에도 늘릴 생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제일 신경 쓰이는 것이 일할 직원을 뽑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문제가 단번에 해결될 수 있는 일이었으니 나로서는 좋았다.
“그러십니까?”
“일단은 본사에 있는 직원들과 의논을 좀 해보고 확정이 나면 연락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
“그래도 하반기부터는 영업이익이 플러스로 전환이 될 것 같습니다. 부사장님.”
“그래? 그거 다행이네. 안 그랬으면 본부장도 잘렸을건데 말이야.”
강훈은 김구열 본부장을 날카롭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본래 본부장은 강훈이었으나 아버지인 강민태 사장이 프레쉬푸드의 지분 다툼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부사장 자리까지 올라와 회사를 관리하고 있었다.
강훈은 부사장 자리에 오르고 나서 회사를 갉아 먹고 있는 벌레들이 많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영업팀장으로 있던 김구열을 본부장으로 승진시키면서 칼잡이 역할을 하게 만들었다.
매출이 안 좋은 지점들을 과감하게 폐점시키고 본사에서도 필요 없는 직원들을 감축시켰다.
상당히 과감한 행보를 보이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프레쉬푸드와 협업 관계를 맺어오던 여러 계약들이 지분 경쟁으로 파기되면서 독자적으로 생존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저렴하게 써오던 물류와 소스 공장 등을 새롭게 구해야 했는데 덕분에 안 나가던 지출이 많이 나가기 시작했고 회사 실적이 안 좋아졌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었는지 회사의 미래가 밝아졌다는 보고를 들어서 강훈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보고 드린대로 줄어든 매출을 복구하기 위해 앞으로는 가맹점을 적극적으로 늘리도록 하겠습니다.”
거의 15개에 가까운 매장을 그동안 꾸준히 폐점시켰다. 그 덕분에 사업 규모가 많이 줄어들었는데 예전에 체급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서 강훈은 적극적인 가맹점 유치를 강조했다.
“그래, 그건 그렇게 하도록 하고…내가 보니까 안 좋은 소문이 들려오고 있던데…”
“안 좋은 소문이요?”
“알로하 말이야. 우리 직원들을 빼가고 있다고 하던데 이거 사실이야?”
김구열은 강훈의 말에 식은땀이 흘렀다. 유독 알로하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강훈에 대해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 저도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희 쪽에서 퇴사한 친구들이 그 쪽으로 몇 명 넘어간 것 같습니다.”
“그래? 내가 그동안 우리 일을 정리한다고 신경을 못 썼네.”
강훈의 말에 김구열은 불안함을 느꼈다. 그가 알로하를 견제한다고 차린 상무점의 매출은 폐점이 필요한 수준으로 떨어졌으나 자존심 때문에 억지로 운영을 하고 있었다.
그의 역린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이 사실을 언급하는 사람은 회사에 없었는데 또 무슨 일을 벌일 것만 같은 생각에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알로하, 요새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조사해서 나한테 좀 알려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