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5 화
목요미식회.
나도 알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렇게 자주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너튜브에서 영상 몇 개를 본 적이 있었다.
주로 맛집으로 알려진 가게의 음식을 평론가, 연예인들이 먹어보고 품평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요리 관련 프로그램 중에서는 영향력이 좀 있다.
물론 전국에 방영되는 프로그램이니 출연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걱정되는 부분도 있었다.
‘혹시 악평을 들으면 어떻게 하지?’
대부분 맛집으로 알려진 가게들을 섭외해서 일반 패널들은 다들 좋게 평가를 해주는 편이다.
메뉴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나가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 같았지만 평론가들이 신경이 쓰였다.
‘제 입맛에는 조금 안 맞네요.’
‘생각보다 맛있지 않네요.’
평론가들은 자신의 기대와 다를 때 저런 평가를 내놓기도 하는데 이게 가게 입장에서 은근히 타격이 크다.
물론 그렇게 하라고 데려온 사람들이고 그들도 일반 패널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과장해서 그러는 경우도 있었다.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평가라서 그런지 인터넷에 회자도 많이 되고 또 이들은 개인의 블로그와 SNS에 글도 남기는데 인터넷에서 평가가 좋은 우리 가게 특성상 타격이 있을 수 있다.
지금 지점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괜히 방송에 출연했다고 안 좋은 이야기라도 나오면 좋았던 흐름이 망가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지금 한창 사람들 사이에 알려지고 인지도를 올리고 있는데 거기에 기름을 끼얹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고민을 하자 상현이 나에게 말했다.
“어떻게 할까?”
“언제까지 결정해야 돼?”
“거기서 그런 말은 딱히 없었어. 출연 여부만 알려주면 자기들이 편성을 한다고 하던데?”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것은 다행이었다. 아직 시간은 충분한 것 같으니 고민을 좀 해보고 결정을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러면 고민을 좀 해보자.”
“그래, 나중에 작가한테 연락 오면 일단은 그렇게 전달을 할게.”
아쉬웠다. 개인적으로 장사의 달인이라는 프로그램을 진짜로 좋아하는데 만약에 거기였다면 고민하지 않고 바로 출연을 했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평가에 중점을 맞추기 보다는 가게에서 어떻게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지 보여주는데 내가 처음에 지역 방송에서 출연했던 리얼맛집탐방도 사실은 장사의 달인을 따라서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
“안녕하십니까. 인사팀 신입 박용우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후에는 회사에 들어온 신입들과 인사를 했다. 한 명 씩 인사를 나누었는데 무언가 묘한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나도 신입사원으로 처음 본사에 갔을 때가 떠올랐다고 해야 하나 다들 출근을 한 지 얼마 안 돼서 그런지 열정있는 눈빛들이 마음에 들었다.
팀장들에게 직원들을 소개 받고 앞으로 담당할 업무도 구체적으로 알려주었는데 확실히 이제는 회사라고 이야기 할 체계가 좀 잡힌 것 같았다.
“다들 만나서 반갑습니다. 앞으로 회사를 위해서 열심히 일 해주십시오. 그럼 저도 여러분의 열정에 따른 보상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혹시 팀장님들에게 물어보기 어려웠던 것 있으면 지금 저에게 물어보세요. 답해 드릴 수 있는 것은 답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 자신이 다닐 회사다. 궁금한 것이 많이 있을 것 같아서 물었는데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하긴 사장과 여러 팀장들이 지켜보고 있는데 자신의 의견을 말할 용기 있는 신입사원은 없을 것도 같았다.
그렇게 신입사원과의 만남을 끝내려고 했는데 누군가 손을 들었다.
“인사팀 김주현 씨?”
“네, 인사팀. 김주현이라고 합니다.”
“궁금한 거 물어보세요.”
“입사한 후에 회사 내규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아까 열심히 일하면 보상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는데 성과금에 관한 이야기가 맞는지 알고 싶습니다.”
성과금.
주어진 일을 잘 수행해 낸 성과에 따라 지급하여 주는 돈이다.
보통 기업에서 매출이 늘어나면 근로자에게 성과금을 지급하는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솔직히 이것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생각해보니 초창기부터 일한 한승이나 하연이도 월급에 더해서 돈을 좀 더 주기는 했었는데 그게 성과금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보통 기업에서 성과금이라고 하면 월급의 몇 배를 받는 것을 말하는데 아마 저 직원은 그런 것을 기대하고 물어본 것 같았다.
나는 직원의 말에 잠시 고민을 했다.
일단 나는 로이스에 있을 때 성과금을 받아본 적이 없다. 설날이나 추석 때 고생했다고 돈을 받기는 했는데 그것은 일종에 상여금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랬다고 해서 내가 데리고 있는 직원들도 그러라는 법은 없었다. 지금은 회사를 키우는 시기, 괜히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네, 맞습니다. 회사 매출이 성장하고 이익이 좋아지면 직원들에게 성과금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성과금을 준다는 말에 직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때 김주현이 다시 손을 들어서 나에게 물었다.
“그럼 사장님. 혹시 구체적인 퍼센트로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퍼센트요?”
“네, '영업이익의 몇 퍼센트를 직원들에게 성과금으로 돌리겠다.'같이 구체적인 목표가 있으면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는 말을 하고 있는 신입사원을 쳐다봤는데 신선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돌하다고 해야 하나? 자신감이 넘치다고 해야 하나?
나로서는 이런 질문을 하기 어려웠을 것 같은데 그는 거침이 없었다.
너튜브에 보면 요즘 젊은 세대들은 조금 다르다고 이야기했는데 직원들이 늘어나니 그것이 조금은 체감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도 MZ세대 아닌가?’
나도 이제 막 30을 넘었다. 기성세대들의 입장에서는 젊은 세대인 것이다. 생각해보면 나도 회사를 다닐 때 저런 것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싶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네요. 팀장님들과 회의를 해보고 적정한 선으로 회사 내규에 성과금에 대한 부분을 넣도록 하겠습니다.”
“오”
나의 말에 직원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다들 내색은 안 하고 있었지만 그러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바로 팀장들이었다. 성과금이 나오면 당연히 자신들도 돈을 더 받는다.
이런 것에 불만을 표할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렇게 다들 좋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우리 회사는 내 자본금이 100%인 회사이다.
직원들이 벌어다 주는 돈이 고스란히 나에게 들어온다는 소리다. 만약 직원들이 열심히 해서 매출이 몇 배 성장한다고 하면 거기서 나눠주는 것은 아깝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해서 회사가 빨리 성장할 수 있다고 하면 더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김주현 사원에게 물어봐도 될까요?”
“네, 물어보십시오.”
“혹시 회사의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마이너스 10%가 되면 월급을 10% 줄여줄 수 있을까요?”
이것은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순수 나의 궁금증이었다. 나는 성과금을 주는 대기업에 다니질 않았다.
그런데 회사라는 곳이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회사가 항상 수익을 내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했다.
회사 사정이 좋을 때 성과금을 많이 주었다.
사정이 안 좋으면 직원들이 고통을 분담해주는 것도 회사 입장에서는 요구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나는 그에게 그럴 마음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어…네, 할 수 있습니다…”
아까 성과금을 당당하게 물어봤던 것과 다르게 이번에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줄어들었다. 자신은 성과금은 생각했는데 잘못하면 월급이 깍이게 생겼다.
물론 나도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생각하는 것과 말은 좀 다르게 나왔다.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열심히 하셔야겠네요. 그럼 더 궁금한 거 없죠?”
나도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사장인가 보다.
****
“후…”
퇴근을 한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수완동으로 향했다. 만날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안하윤. 나의 조카다.
깨톡에 올라오는 사진이나 동영상은 자주 챙겨보았는데 실제로 보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태어나고 은정이는 바로 조리원에 들어갔고 조리원에서 나올 때는 내가 대전으로 떠났기 때문에 만날 기회가 없었다.
엄마와 아빠는 은정이가 조리원을 퇴소할 때 보고 갔는데 너무나 행복해 하셨다.
나도 항상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광주로 오고 바로 날을 잡았다.
“오빠, 왔어?”
은정이가 나를 반겨주었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하윤이는?”
“지금 분유먹고 놀고 있어.”
“그래?”
나는 바로 하윤이를 보려고 했는데 은정이가 나의 앞길을 막았다.
“코로나 환자랑 안 만났지?”
“어, 안 만났어.”
“그럼 화장실 가서 손이랑 씻고 소독해.”
아이가 있는 집이었다. 은정이는 혹시나 내가 코로나에 걸렸을 까 봐 철저하게 검문검색을 했다.
나도 대전에서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은정이의 말에 순수하게 따라주었다.
그렇게 손을 씻고 나서 나는 하윤이를 만날 수 있었는데 아기는 자그마한 아기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자그마한 눈을 뜨고 나를 똘망똘망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을 너무나 예뻤다.
“어때? 오빠 닮은 것 같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이곳에 다녀간 엄마, 아빠의 말로는 하윤이가 나 어렸을 때와 꼭 닮았다고 했다.
나의 돌사진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했는데 닮았다고 해서 그런지 더 마음이 쓰이고 보고 싶었다.
“하윤아, 외삼촌 왔어.”
은정이는 아기의 볼을 만지면서 이야기 했는데 아이가 간지러운지 고개를 움직였다.
“근데 너무 답답해 보이는데?”
하윤이는 포대기에 몸이 꽁꽁 싸매져 있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너무 답답해 보였다.
“원래 아기는 이렇게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감싸야 돼. 자기 팔을 보고도 놀라서 울거든.”
“그래?”
“어, 모로반사라고 하는데 한 3개월에서 6개월 까지는 계속 이렇게 속싸개 하고 있어야 돼.”
은정이는 나에게 이유를 설명해 주었는데 이렇게 보니 그녀가 엄마가 되었다는 것도 실감이 되었다.
“너, 완전 전문가 같다.”
“이 정도는 기본이거든? 너도 미리 미리 공부해 놔.”
“네가 나중에 잘 알려주면 되겠다.”
“한번 안아 볼래?”
“내가?”
은정이는 나에게 아기를 안아볼 것을 권유했는데 나는 갑자기 긴장이 되었다. 아기를 안아 본 적이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은정이는 침대에 누워있는 아기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나에게 다가왔다.
“오른손으로 엉덩이를 받치고 왼손으로는 머리를 받치면 돼.”
그녀는 아기를 안는 방법을 설명해준 후 나에게 건냈는데 나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받아 들었다.
아기는 부서질 것처럼 자그맣고 연약했는데 너무나 가벼웠다.
“엄청 가볍다.”
“이제 4키로 밖에 안 돼. 안아보니까 기분이 어떠세요?”
“모르겠어. 놓칠까 봐. 긴장된다.”
나는 혹시나 아기가 떨어질까 봐.
팔과 어깨 그리고 손에 힘이 들어갔는데 아이는 이런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를 보고 생긋생긋 웃었다.
“우르르르 까꿍!”
나는 그런 아기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장난을 쳤는데 그때 갑자기 아기가 입을 삐쭉거리더니 표정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했는데 이윽고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으에에에에엥”
“갑자기 왜 울지? 내가 너무 가까이 갔나?”
“잠깐만.”
은정이가 아기에게 가까이 와서 냄새를 맡았는데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오빠, 얼굴 보고 놀라서 똥쌌다.”